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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요리문답
2017.09.04 15:52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6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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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소요리문답 제6문

#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6문)

 

문: 하나님의 신격에 몇 위가 계십니까?

답: 하나님의 신격에 성부. 성자. 성신 삼위가 계시며, 이 삼위는 한 하나님이시요, 본체가 하나이시며, 권능과 영광이 동등이십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살아계시고 참되신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했습니다. 오늘은 그렇게 참되시고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어떤 하나님이신가를 말해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그 존재 양식을 삼위일체로 가지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참으로 어려운 문제입니다. 하나인데 셋이고, 셋인가 하면 하나이고, 인간의 지식과 지혜로는 이해하기 힘든 신비한 하나님의 존재 양식에 관한 교리이기에 어렵습니다. 그렇기에 그냥 넘어가고 싶은 것이 인간의 심정입니다. 그냥 믿으면 되지 이렇게 따져서 공부하고 알아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어떤 사상이나 이념을 믿고 따르는 것이 아니라 오직 인격적인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교제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종교이기 때문에 올바른 신관(하나님을 아는 것)을 갖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더욱이 모든 이단들이 결국 논리적으로 삼위일체에 대한 이단이란 사실을 생각할 때에 이것은 대단히 중요할 뿐 아니라 우리가 필히 알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한편 한국교회는 삼위일체 교리에 대한 바르고 깊은 이해보다는 오히려 단신론적 오해와 삼신론적 오해가 더 많은 상황이기에 더더욱 우리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심을 분명히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요한복음 10장 후반에 보면 소동이 벌어집니다. 예수님께서 이적들을 베푸신 것은 “내가 내 아버지의 이름으로 행하는 일들이 나를 증거하는 것”(25)이라고 하시고 또한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28-30)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다시 돌을 들어 치려”고 하였습니다(31). 그러면서 “선한 일(이적들)을 인하여 우리가 너를 돌로 치려는 것이 아니라 참람함을 인함이니 네가 사람이 되어 자칭 하나님이라 함이로라”고(33) 합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알아들은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하나님 되심을 말씀하신 것이고, 이것을 알아들은 유대인들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해서 돌로 치려고 한 것입니다. 즉 삼위일체 계시가 그들에게 직접적으로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예수님을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결국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신성모독으로 죽입니다.

 

유대인들은 한분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이것은 다신적인 세상 속에서 유일신을 섬기는 아주 특별한 은혜입니다. 이들은 조상 대대로 다신교와 싸워온 역사를 가졌습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을 완전히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 적은 한번도 없습니다. 다만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다른 신을 섬겼고, 이것은 그들을 멸망에로 몰아갔습니다. 이를 통해서 유대인들은 하나님은 여러 하나님이 있는 것이 아니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계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이 고난을 당했고, 순교했습니다. 이들의 역사는 그래서 다신교와의 투쟁사라고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런 확고한 신앙으로 인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돌로치며 대항하고, 결국 죽이는 것입니다. 이점에서 우리는 참으로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입니다. 이들에겐 분명 유일하신 하나님에 대한 계시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세상의 다른 신들은 없는 것이고, 가짜임을 알려주시는 계시이고, 그런 차원에서 ‘유일하시다. 한 분이다’라고 하는 것이지 인격적으로 곧 위격적으로 한분이라는 계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구약의 계시에도 그러한 것입니다. 거기에도 분명 삼위일체적인 계시가 드러나 있습니다. 이제 예수님께서 삼위일체에 대한 계시를 더욱 풍성히 주시면 이들은 그 계시를 구약의 계시들과 연관하여 판단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의 확고한 신념으로 인해 계시의 진전을 받아들이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 나에게 오면 그것으로 인해 내 생각이 새롭게 형성하고 삶을 인도해야 하는 것인데, 하나님의 말씀과 내가 실제에 있어서는 그리 연관이 없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여서 하나님의 말씀이 따로 있고, 나의 생각이 따로 있으면 바로 이 유대인들과 같은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시를 알기는 알되 인격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본의를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사견을 넣어서 ‘이것이 하나님의 계시다’라고 하면 어두운 생각에 빠지는 것입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다른 다신교적인 지역에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하고 말씀하셨다면 설령 ‘미쳤다’고 할지언정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어설프게 배운자들은 그 뭔가 안다는 사실 때문에 예수님을 대항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이란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삼위일체를 알지 못하면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없고, 하나님의 원수로 행하게 됩니다. 결국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삼위일체는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길이요, 구원의 길입니다.

 

우리가 믿는 유일하신 하나님이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라면 왜 처음부터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을 온전히 계시하지 않으셨을까 하는 의문이 생깁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깊으신 뜻 안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지만 인간의 입장에서 조금만 생각을 해봐도 생각할 수 있는 것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내신 인간들이 타락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로 인하여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부패하고 왜곡 되었습니다. 그것은 인간의 신인식조차도 그리되어서 이제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의 계시가 없이는 하나님을 정당하게 알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자신 안에 있는 부패한 신인식을 통해서 여러 신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그의 본성적인 것이 되었습니다. 이런 인간들에게 하나님께서 세 위격을 가지셨음을 가르치면 그것은 금방 다신론으로 갔을 것입니다. 이것은 신약의 삼위일체 계시가 주어진 때에라도 자꾸 다신론 쪽으로 가서 이단이 되는 것을 보아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되심을 시사하는 계시를 주시면서 점진적인 계시의 진전,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신약을 통한 풍성하고도 온전한 삼위일체의 계시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깊으신 뜻 안에서 인간들의 인식의 한계 속에 경륜적으로 서서히 당신의 삼위일체 되심을 드러내 주신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계시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하나님의 삼위일체는 하나님의 독특한 존재 양식이기에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 유비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겐 참으로 새롭고도 독특한 것이고, 인식하기에 매우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삼위일체에 대해서 뭔가 시원한 이해를 주는 비유들, 우리가 알고 있고, 쉽게 쓰고 있는 비유들은 오히려 다신론이든지 양태론적인 단신론적인 비유들입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하나님의 삼위일체 되심은 온전히 다 알 수도 없습니다. 이것은 극치에 이를 하나님 나라, 예수님께서 다시 재림하셔서 이룰 새 하늘과 새 땅에 가서도 다 알 수 없을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는 무한하신 하나님의 존재에 관한 것이기에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고 믿어나갈 수 있을까요? ‘성경을 통해서 계시해 주시는 하나님만이 유일한 하나님(일체)이신데, 이 하나님께서는 세분(세 위격)으로 존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이 세 분이 서로 교제하시는데, 성부께서는 성자를 낳으시고, 성신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라는 것을 아는데서 출발하면 됩니다. 이것은 우리의 일상용어로 표현하였지만 결코 우리의 경험과 같은 수준에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부의 성자를 낳으심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낳는다’는 것과 다르게 ‘영원히 낳으시는’ 것입니다. 우리의 낳음은 낳은 전과 낳은 후가 있는 것입니다만 성부께서 성자를 낳으심은 초시간적으로 ‘영원히 낳으시는’ 것입니다. 성신의 나오심도 이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결코 유추로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표현했습니까? 이것은 그동안 교회가 대대로 내려오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해서 생각하고, 오랜 기간 연구에 연구를 거듭한 끝에 이렇게 진술하게 된 것입니다. 이렇게 진술된 것을 잘 살펴보면 동일본질(일체)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세 분(삼위)으로 구분되시면서 통일성을 이루는 교제를 하심을 명확하게 표현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보다 더 깊은 논의는 우리의 평생을 통해서 계속 배우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해하기도 어려운 것을 온전히 이해해야만 그리스도인으로서 살 수 있는 것인가라는 생각이듭니다. 여기 우리가 어떻게 시작해야 하는지를 시사하는 성경의 사건이 있습니다. 바로 가버나움의 백부장에 관한 사건입니다(마 8:5-10; 눅 7:2-10). 백부장은 자신의 하인을 낫게 해주시기를 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도무지 감당할 수가 없어서 친구를 보내서 “저도 남의 수하에 든 사람이요 제 아래에도 군명이 있으니 이더러 가라 하면 가고 저더러 오라 하면 오고 제 종더러 이것을 하라 하면 하나이다”(눅 7:8)고 하였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여기서 백부장은 삼위일체의 요점을 파악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명령이면 무엇이든지 다 순종할 수밖에 없고, 그대로 된다’고 하는 확고한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이것은 결국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는 믿음에로 나아가게 되는 것이고, 그것이 삼위일체 신앙을 갖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 보지 못하였노라”고 칭찬하셨습니다.

오늘날 대표적으로 삼위일체 신앙이 잘못되어 있음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에 대한 오해가 바로 그것입니다. “성령 받아라”라고 외치거나 안수나 기타 행위를 통해서 성령님을 전달하거나 나타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일들이 만연함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인격이신 성령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여 성령님을 마치 ‘에너지’ 정도로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은 누가 전달하거나 부어주거나 할 수 없는 자유하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감히 그분을 부르는데도 실례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과의 교제도 인격자와 인격자 사이의 인격적인 교제이어야 하는 것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이처럼 삼위일체 교리는 어렵지만 한걸음 한걸음 바른 인식에로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또한 삼위일체 교리가 바르게 서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의 신앙함에 큰 불균형을 초래할 뿐아니라 종국에는 이단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는 진정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되심과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을 온전히 인식하고 인정하는 생각과 삶을 가지고 있는지’ 자기 자신을 점검해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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