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2017.09.04 16:47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0-1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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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소요리문답 제10문

#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0문-1)

 

문: 하나님께서 사람을 어떻게 지으셨습니까?

답: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되 자기 형상대로 지식과 공의와 거룩함이 있게 지으셔서 모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작정하심이 행위로 나타나는 것이 이 세상의 창조입니다. 이 세상의 창조를 살펴보면서 우리는 이 창조에 어떤 방향이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혼돈하고 공허하며 깜깜한 상태로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창조 주간을 지나면서 점점 그 목적에 맞도록 형태와 내용을 잡아가더니 마지막에 인간을 지으셨습니다. 그리고는 인간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의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1:28)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해 오신 목적인 것입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다시 인간의 창조 목적이 있고,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소요리문답 제10문은 인간 창조에 관한 내용을 가르쳐 주려고 합니다. 이것은 창세기 1장과 2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1장과 2장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것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먼저 창세기 1:26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볼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을 따라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에게 복을 주기로 작정하셨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작정하신 것을 실행하십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1:27) 하셨습니다. 그리고는 위에 인용한 28절의 복과 명령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와 구체적인 명령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확인하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사람을 창조하심에 대해서 곧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고 계심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사람의 창조, 특히 남자와 여자의 창조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설명하는 것이 2장에 나옵니다. 2:7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불어 넣으셔서 아담을 만드십니다(히브리어로 흙은 ‘아다마’이고, 이것은 사람이라는 단어인 ‘아담’의 여성형 입니다. 이런 것을 언어유희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단 한 사람만 만드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아담(사람)에게 명령을 주시고 에덴동산에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아담(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18절)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세상을 창조하시면서 계속 ‘좋다’고 하신 것과 대조되는 것입니다. 그렇기에 이 ‘좋지 못한’ 상황에 대해서 조치가 필요했습니다. ‘좋지 못한’ 상황을 ‘좋은’ 상황으로 변화 시킬 조치는 ‘돕는 배필’을 지으시는 것이었습니다. 문제는 ‘돕는 배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도와서, 무엇을 ‘좋게’ 만들 것인지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다’라는 단어는 ‘멋있다’, ‘맛있다’, ‘사랑한다’, ‘동의한다’, ‘맞다’ 등등의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서 어떤 의미에서 ‘좋다’의 반대 상황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좋지 못한’ 상황을 ‘좋게’ 만들기 위해 지어지는 ‘돕는 배필’이 어떤 역할을 하는 자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에서 ‘좋다’라는 말이 여러 번 나왔고, 그 의미는 ‘의도나 목적에 적합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의 ‘좋지 못함’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의도와 목적을, 그 명령하신 바를 다 이루지 못할만한 상황이라는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돕는 배필’이 필요하고, 여자가 지음을 받은 것입니다.

 

아담을 내신 의도와 목적, 아담이 받은 명령이 무엇입니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그렇게 해서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이것은 1:28절에 주신 복과 명령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주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 쉽게 다 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것은 1:27절에서 남자와 여자가 모두 창조 받은 다음, 28절의 명령이 주어지고 있음을 간과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여자가 창조되기 전 상황입니다. 그렇기에 오히려 1:28절보다는 26절을 봐야 합니다. 26절에는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내용이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의 일부분을 보여 준 것이고, 이 계획이 아담에게는 어떻게 전달되었는가를 봐야 합니다. 2:15절에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창 2;15). 바로 이것입니다. 아담은 다스리며 지키는 것을 그의 일로써 명령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지금 아담의 홀로 있음이 이 명령을 제대로 감당할 수 없게 만들고 있어서 ‘좋지 못한’ 것입니다. 그래서 홀로 있음을 타파하기 위해서 여자가 돕는 배필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외로움이나 생육과 번성 등이 일차적인 이유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해를 위해서 1장과 2장을 시간적으로 파악하면 1:26절은 하나님의 영원전 작정하심의 일부분을 설명하는 것이고, 1:27절 “사람을 창조하시되”는 2:7절과 같은 시간이며, 그 다음 27절 하반절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는 2:18-23절과 같은 시간입니다. 그런 다음에야 비로소 1:28절의 복과 명령이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돕는 배필의 필요를 ‘다스리고 지키는 사역’에 초점을 맞추지 않고, 여자를 만드셨다는 사실과 1:28절의 명령만 생각하면서 생육과 번성에 초점을 맞춘다면 다음 구절들이 이상해집니다. 2:18절을 다시 한번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돕는 배필’을 지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19-2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난데없이 짐승들과 새들을 아담에게 나오게 하시고, 아담은 이름을 짓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는 21절부터 다시 ‘돕는 배필’을 지어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연관 없는 ‘이름 짓기’ 작업이 문맥과 관계없이 나온 듯한 느낌을 받습니다. 그러나 20절 “사람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에서 하반절을 원문을 직역하면 “그러나 아담(자신)을 위해서 그(아담)는 자기와 상응하는 돕는 자를 발견하지 못했다”입니다. 하나님께서 짐승과 새들을 아담 앞에 불러내신 이유가 거기서 ‘돕는 배필’을 찾도록 하셨던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해 보면 하나님께서 아담 혼자 당신께서 명하신 일을 하기에 부족한 것을 보시고, 이 일을 하는데 필요한 ‘돕는 배필’을 찾도록 하시기 위해서 땅위의 모든 동물들을 아담에게 나오게 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 받은 존재이고 동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이것이 생육하고 번성하는 문제 때문에 동물과 맞선을 본다는 것은 전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돕는 배필’은 생육과 번성, 외로움을 해결하기 위한 존재가 아니라 잘 다스리도록 하는 문제와 관련된 것입니다.

 

아담은 동물들이 자신 앞으로 나올 때, 그 본질들을 잘 파악하여 이름을 지어주었지만 거기서 ‘돕는 배필’을 찾지 못하였던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께서 직접 지어주셨습니다. 아담은 이 존재를 보고 감탄을 합니다. 탄성을 지릅니다. “이번에야 말로”(한글 개역 성경 번역에선 누락됨) 무슨 말입니까? 지금까지는 아니었는데 이제는 제대로 찾았다는 뜻입니다. 23절의 직역을 보겠습니다. “이번에야말로 이는 내 뼈들 중의 뼈이며 내 살 중의 살이다. 이는 여자라 불리우리라. 왜냐하면 남자로부터 이가 취해졌기 때문이다.” 아담은 이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난 고도한 존재임을 한눈에 알아본 것입니다. 여자는 바로 그런 존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런 과정을 거쳐서야 아담에게 ‘돕는 배필’을 주셨을까요? 아마도 사람이 얼마나 독특한 존재로 지음 받았는지를 확인시키시며, 또한 앞으로 지어질 존재 또한 얼마나 다른 피조물과 다른 고도한 존재인지를 인식하게 하시는 의도로 이렇게 하셨을 것입니다. 자신과 또 다른 존재인데 자신보다 높지도 않고, 낮지도 않은 동등한 존재, 더 나아가 한 몸이자 한 존재를 이루게 되는 그런 존재를 인식할 수 있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방편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돕는 배필’이라는 말 때문에 성경이 여자의 지위를 남자에게 종속된 존재로 말씀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역사 속에서 남성들의 지배, 특히 우리나라 같은 경우에는 유교적인 관습인 ‘남존 여비’ 사상적 관점으로 성경을 보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성경이 말씀해 주시는 ‘돕는 배필’이란 원어 상으로 ‘돕는 자’와 ‘그와 상응하는’입니다. ‘돕는 자’라는 의미는 조수, 내조자 등의 의미가 아니라 ‘능력이 있는 자’인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돕는 자로 표현됨을 생각할 때 분명해 집니다. 하나님을 우리의 조수로 생각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돕는 배필’이란 ‘그와 대등한 능력을 가진 자’인 것입니다. 남자가 오른 쪽 눈이라면 여자는 왼쪽 눈이란 것입니다.

 

이 대등한 돕는 자가 있어야 하나님께서 명하신 다스리고 지키는 일을 ‘좋게’, 잘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즉, 사람은 혼자 세상을 다스려 가도록 되어 있는 존재가 아님을 확인하였고, 주께서는 이런 존재의 부족을 공동체를 형성함으로 채워가게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공동체가 점점 크게 되어 땅에 충만하도록 요구하신 것입니다. 아담에게 생육과 번성이 가능한 여자를 주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럼 결국 여자는 생육과 번성을 위해서 지어진 것 아닙니까?’라는 질문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인식해야 하는 것은 여자가 ‘생육과 번성의 도구’로 지어진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생육과 번성, 땅에 충만하라는 명령이 먼저 주어졌고, 여자가 이것을 이루기 위해 애 낳는 도구로 지어진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여자가 지음 받았기 때문에 생육과 번성의 복된 명령이 사람들에게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즉, 여자 덕에 온 복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잘 다스리기 위해서 공동체 형성이 필요했고, 이 다스리는 사역을 함께할 존재로 주신 것이 여자이며, 더 나아가 생육과 번성이 가능한 ‘돕는 자’를 주신 것은 그 다스리는 공동체를 크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란 말입니다.

 

여성을 생육과 번성을 위해 지어진 것으로 보느냐, 여성이 지음을 받았기에 생육과 번성의 명령을 받을 수 있었느냐는 참으로 큰 차이를 가져오는 것입니다. 도구적인 존재냐, 동일한 존재로서 명령을 수행하는 위치냐의 차이인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이 말하는 여자의 위치는 고도한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이 말씀을 자신들의 죄성을 가지고 성경을 왜곡하곤 했습니다. 그러고는 그것이 성경이 말하는 것이라고 주장해 왔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성경 본문을 자세히 살펴보면서 알 수 있었습니다.

 

오늘의 시점에는 이 말씀이 그리 큰 감흥이 없을지도 모릅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이 주어졌던 시기의 유대인들은 여자를 남자와 같은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던 시기입니다. 유대인 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는 남자들의 횡포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행해 왔습니다. 그러나 여자가 없이는 세상을 잘 다스려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증언하시는 것입니다. 아마도 세상이 지금처럼 심각하게 어려움의 상당부분은 남자들이 여자들을 억압했기 심화된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은 비록 많은 부분에서 도를 지나치며, 창조의 본의와 질서를 거스르는 면이 있지만, 우리가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봅니다.

 

아마 많은 진보적인 성향, 특히 페미니스트적인 성향을 가진 자들은 이제부터의 제 말에 대해서는 강한 반감을 가질 것입니다. 잘 나가다가 엉뚱한 이야기를 하여서 망쳤다고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성경의 이야기임을 분명히 확인했기에, 이제 성경이 말하고 있는 또 다른 면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은 이처럼 강력하게, 그리고 논리적으로도 남녀의 차별이 없고, 동등하며, 결국엔 한 몸임을 말씀해주고 있지만 차이 또한 분명하게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과 2장의 남녀 관계 설정에 대한 차이점에 대해서는 바울 사도께서 잘 요약해 주고 계십니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며 남자가 여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지 아니하고 여자가 남자를 위하여 지음을 받은 것이니”(고전 11:8,9) 위에서 한 이야기들을 한 순간에 뒤집는다고 볼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두 가지가 결코 모순된 것만은 아닙니다. 책임과 의무의 측면에서 다르다는 것입니다. 물론 세상은 책임이 크면 권리가 크고, 어떤 책임은 다른 책임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거나 귀하게 여겨집니다. 이것은 타락한 구조인 것입니다. 여기서 놓임을 받는다면 이 두 가지는 참으로 아름답게 조화되어 하나님께서 내신 본의와 질서를 이루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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