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2017.09.06 08:42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9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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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소요리문답 제19뮨

#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9문)

 

문: 사람이 타락한 지위에서 비참한 것이 무엇입니까?

답: 모든 인류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고, 진노와 저주 아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금생의 모든 비참함과 사망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창세기 5장에 있는 아담의 계보를 읽어보면 우리 눈에 띄는 인상적인 내용이 몇 가지 있습니다. 첫째는, 930세라든지, 912세, 905세 등등 900세가 넘는 나이들이 많습니다. ‘와! 굉장히 오래 살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금은 아무리 의술이 발달하고 음식과 생활수준이 높아졌지만 100세를 살기가 힘듭니다. 그런데 창세기 5장에 보면 900세 이상이 된 사람들이 많습니다. 참으로 이런 시대가 있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날도 우리가 이렇게 살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의 경험으로 볼 때 900세 이상 산 것은 굉장히 오래 산 것이지만 창세기를 처음부터 자세히 읽어보면 이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창조하시고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 이렇게 하나님이 복을 주시고 전혀 죽는다든지 고통스러운 일, 슬픈 일에 대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원래 우리 사람이 창조될 때에는 죽음이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며 하나님과 교제하며 영생복락을 누리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주시고 땅을 정복하고 모든 것을 다스리면서 살아가라고 하신 관점에서 보자면 ‘죽었더라’, ‘죽었더라’고 한 사실이 매우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축복을 받은 사람이 왜 죽게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아담의 족보에서 우리가 아주 깊은 인상을 받는 것은 ‘다 죽는구나!’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대대로 이 죽음이라는 것을 겪어 왔고, 우리가 살면서 이런 사실을 주변에서 봅니다. 그리고 초목도 났다가는 죽고 짐승들도 났다가 죽습니다. 그러니까 ‘인생이 그런가보다’하며 죽음을 당연한 것이라고 받아드립니다. 하지만 이 말씀을 볼 때, 그리고 인류의 전 역사를 볼 때 죽음이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 아닙니다. 죽음은 하나님이 원래 지으셨을 때의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사람에게 뜻하지 않게 불의하게 당한 것입니다. 창세기 2:16절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인간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살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인간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타락하였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죽음이 선고 되었습니다.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창 3:19).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결과 죽음이 왔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앞에서 배웠습니다. 불순종이 없었더라면 죽음도 없었을 것입니다. 참으로 불순종하기 전의 삶, 그 시대는 우리 인생이 흠모할 만한 굉장한 시대였습니다. 창세기 5장은 창세 때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어겼다는 사실과 관련해서 읽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이 죽음이 과연 어떤 것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바로 알 수 있게 됩니다.


5장에서 볼 때 또 한 가지 특이한 사실이 있습니다. 21절에 보면 “에녹이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300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를 낳았으며 그가 365세를 향수하였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창 5:21-24). 에녹에 대해서는 ‘몇 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는 말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데려가셔서 사람들이 볼 수 없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이 말해 주는 바가 무엇입니까? ‘사람이 나면 죽는다’는 말이 성립되지 않음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왜 에녹은 다른 사람과 같이 죽지 않고 하나님께서 데려가심으로 사람들이 볼 수 없게 되었는가? 그 의미에 대해서는 다음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사실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서 에녹이 은혜를 받고 죽음을 맛보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에녹의 사건에서 볼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사람이 죽음을 맛보지 아니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사람이 한 번 났으면 죽는다. 죽음이란 피할 수 없다’하는 세상에 있는 고정관념을 이 하나님의 말씀이 깨뜨려 버립니다. 죽음이 온 이유가 있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시면 이 죽음도 사라지고 사람이 영원히 살 수 있는 것이다 하는 것을 이 하나님의 말씀이 가르쳐 줍니다. 창세기 5장에서 우리는 이 특이한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죽음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된 세계에서는 자연스러운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어긴 징벌로,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아 오는 비참함입니다. 우리가 당하는 비참함은 죽음 뿐만 아니라 그 외에도 이 땅에서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온갖 질병과 온갖 불구와 지진과 홍수와 같은 천재지변과 전쟁과 경제 공항과 온갖 도덕적 타락 등이 있습니다. 이런 문제들로 인해 우리 인생은 말할 수 없는 비참함 속에 살아갑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이런 비참한 것 뿐만 아니라 죽음 뒤에는 반드시 지옥의 형벌이 있다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의 가장 큰 것은 지옥의 형벌입니다. 마태복음 8:11-12절에 보면 “동서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나라의 본 자손은 바같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는 세상 끝 날에 있을 이야기입니다. 세상 끝 날에는 어떤 사람은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가는 것이 있을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마태복음 5:29-30절에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네 오른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에 하나가 없어지고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불구가 얼마나 비참합니까? 그래서 우리가 자식이 다리를 잘라야 할 상황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그 사실을 잘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불구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견디기 힘든 고통스러운 인생입니까? 그런데 주님께서는 불구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났다고 하십니다. 이것을 보면 불구와는 비교도 안되는 두려움이 죽음 후에 있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5:41절에 보면 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시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에 들어가라.” 영영한 불이 있다는 것과 거기에는 마귀와 그의 종자들, 그의 사자들이 있는데 거기에 저주받은 자들이 갈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과 함께 있지 못하고 하나님을 떠났다는 사실이 바로 비참한 것이고, 그것이 모든 비참함을 가져오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며,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삶이 무한한 복이고 영광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타락함으로 하나님을 떠나게 되었고 하나님과의 교제가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비참한 가운데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비참한 것으로 느끼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과 교제를 나누는 것을 부담스러워하고 하나님이 멀리 계시기를 바라는 것이 타락한 사람의 심정입니다. 시편 10:11에 보면, “저의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을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은 악인이 마음으로 하는 말입니다. 악인들은 ‘하나님이 잊으셨고 그 얼굴 가리우셨으니 영원히 보지 아니하시리라’ 그것을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시편 13:1에 있는 대로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나를 영영히 잊으셨나이까? 주의 얼굴을 나에게서 언제까지 숨기시겠나이까?”하는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가까이 해 주시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타락한 사람들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있는 것을 오히려 편하게 생각합니다. 그 것이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난 비참한 현실의 일면입니다.

 

오늘 소요리문답 제19문에서 사람의 타락의 비참함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인류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고, 진노와 저주 아래 있게 되고, 그로 인해 금생의 모든 비참함과 사망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보면 인생의 비참함에 대해서 총망라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인간의 비참함을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것이고, 다른 하나는 진노와 저주 아래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죄를 범함으로 인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습니다. 교제가 끊어진 결과 진노와 저주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진노와 저주 아래 있음으로 인해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이 무엇입니까? 금생의 모든 비참한 일을 당하는 것과 사망과 영원한 지옥의 형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과 교류가 끊어진 사실을 비참하게 느끼는 것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느끼는 것이지 하나님과 관계가 없는 사람은 느끼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아주 갓난아이 때 부모를 여의고 고아로 자란 사람은 어머니가 보고 싶으냐고 물으면 기억이 없으니까 보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진 사람은 그것이 슬프다든지, 내가 참으로 비참한 처지에 있구나 하는 것을 별로 느끼지 못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형벌은 아직 당해 보지 않았으니까 두려운 줄도 모르고 지냅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면 하나님이 경고하시는 말씀에 대해서도 두렵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것을 참말로 여기지 않고 기독교에서는 그렇게 말하는가보다 하고 지나치기 쉽습니다. 금생에 당하는 모든 비참함이나 죽음이라는 것을 보통 사람들이 피부로 느끼고 아파하고 슬퍼하고 울지만 그것이 하나님의 진노로 말미암은 것이라는 것은 알지 못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땅 위에서 당하는 여러 가지 비참한 일들을 보고 마침내 죽고하면서도 이것이 하나님의 저주로 말미암은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인 것입니다. 그렇게 알지 못하는 한 이것을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어떤 고통스러운 일이나 비참한 일을 당할 때에는 하나님을 생각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들은 비참한 일이나 죽음 같은 것을 생각할 때에 그것만을 생각하고 그것만을 붙들고 어떻게 해결하려고 씨름하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 대해서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거기에 비해 믿는 사람들은 너무 하나님과 관계해서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하나님의 진노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똑같이 지진이 나고 해일이 일어나고 질병에 걸리고 사고가 난다고 할지라도 믿는 사람이 당하는 것과 안 믿는 사람이 당하는 것은 아주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입니다. 시편 119:71절에 보면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바를 배워서 그것을 잘 지키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고난당한 것이 그에게 유익입니다. 똑같은 비참한 사실일지라도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이것이 그를 죽음으로, 나중에는 저주로, 영원한 형벌로 이끌어 가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유익을 줍니다. 그로 말미암아 깨닫고 하나님의 뜻을 알아서 이제는 돌이켜서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새로운 길로 가게 만듭니다. 불신자는 고난을 당하는 것이 결코 그렇게 좋은 데로 이끄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이고, 현세에서 그것을 당하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침내 죽고, 죽은 다음에는 이를 갈며 슬피 우는 자리로 들어가고 맙니다. 이렇게 사람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교제가 끊어지고 저주와 심판에 떨어져 금생에서 여러 가지 비참함과 사망과 영원한 형벌에 떨어지게 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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