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014.01.07 13:3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4주(35문,36문) - 동정녀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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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35-36문
문답내용 35문 :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곧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그런 분으로 존재하시는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참된 인간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참된 다윗의 자손이 되시고, 모든 일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36문 : 그리스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은 당신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로서 자신의 순결함과 온전하신 거룩함으로 내가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덮어 줍니다.
강설날짜 2013-12-2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4주(35,36문)


동정녀 탄생


요절 : 마 1:23


35문 :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곧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그런 분으로 존재하시는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참된 인간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참된 다윗의 자손이 되시고, 모든 일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36문 : 그리스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은 당신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로서 자신의 순결함과 온전하신 거룩함으로 내가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덮어 줍니다.


우리가 지난주까지 사도신경의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라는 부분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울 때, 빛의 속도로 훅 지나가버리는데, 사실 사도신경의 고백 하나하나가 엄청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 의미 하나하나를 다 생각하면서 고백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평소에 묵상을 많이 해야 하고, 또 고백할 때 집중해서 그 의미를 되새기면서 고백하려고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곧 12월 25일이 다가오는데, 성탄을 우리가 기억하고 묵상하면서 제일 중요한 사실은 그분이 참 하나님이신데, 참 사람이 되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빠지면 암만 다른 내용으로 성탄을 기념해도 그것이 사실 본질을 놓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신성과 인성은 얘기하지 않으면서 그저 예수님의 희생적인 삶이나 예수님의 사랑을 본받자고 말하는 것은 기독교가 아닙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그것을 잘 지적해주고 있습니다.


35문 :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라는 말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 곧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그런 분으로 존재하시는 참되신 하나님의 아들이 성령님의 사역을 통해서 동정녀 마리아의 살과 피로부터 참된 인간성을 취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참된 다윗의 자손이 되시고, 모든 일에서 그의 형제들과 같이 되셨으나 죄는 없으십니다.


35문을 한마디로 하면 그분은 성령으로 잉태되신 참 하나님이시고,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신 참된 사람이시고 다윗의 후손이시다 하는 것입니다.


1. 동정녀 탄생을 부정하는 자유주의 신학


이 동정녀 탄생과 관련해서 우리는 우선 자유주의 신학에 대해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아직 한국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러나 미국과 유럽에서는 이미 보편화되어 있고, 앞으로 우리나라도 언젠가는 신학이 자유화 될 것입니다. 자유주의신학은 한마디로 말하면, 합리적인 관점에서 성경을 비평적으로 읽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동정녀 탄생을 믿지 않거나 무시합니다. 심각한 이단적 사상입니다. 이러한 자유주의 신학은 교회사를 보면 중세를 지나 르네상스를 겪으면서, 사람들이 하나님과 종교에서 벗어나고자 한 것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여러 철학자들, 예를 들면 데카르트나 칸트 같은 사람들, 그리고 코페르니쿠스나 존 뉴톤 등과 같은 과학자들을 통한 새로운 발견과 과학의 발전, 그와 더불어 찰스 다윈의 진화론까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비로소 종교와 신학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한 이성으로 모든 사물을 판단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것이 자유주의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러한 합리주의적인 관점에서 성경도 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성경에 나타나는 모든 초자연적인 사건에 대해서 그것은 허구요 신화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성경은 그저 인간의 작품이요, 하나의 문학작품이라고 주장함으로써 성경의 무오성과 영감설을 완전히 부정해버렸습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복음서에 나타난 예수에 대한 기록들은 지어낸 이야기이고, 실제 예수님의 모습과 삶을 고대문서를 통해 재발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즉 그들은 예수님을 그저 한 인간으로 보고 있으며, 성경은 인간의 훌륭한 문학작품으로서 연구할 가치가 있는 서적으로 보고 연구하는 학자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 신성, 죽으심과 부활을 믿지 않으면서 성경을 가르치는 신학자들이 미국이나 유럽의 신학교에 널려 있습니다. 이들은 심각한 이단입니다.


물론 모든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하나님을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초자연적인 역사들을 부정하면서도 하나님을 믿고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성경이 신화이고 허구이지만,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그러한 신화라는 문학 장르를 통해서 우리에게 계시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타난 초자연적인 기적들에 대한 역사적 사실은 부인하면서 그 이야기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나 의미는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는 신앙의 대상이라기보다는 하나의 모범이며, 이런 신학에서 민중해방신학이나 인권운동 또는 사회복지운동 신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 식으로 신구약 성경의 모든 기적과 이사들의 역사적 사실을 부인하는 자들이 자유주의자들이요, 성경에 예언된 적그리스도이며, 사실 이런 자들은 이미 초대교회 때부터 있어왔던 이단인 것입니다.


“(2)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3)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요 4:2-3)


적그리스도는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부정하고 그리하여 결과적으로는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실제로 자유주의자들은 동정녀 마리아 탄생을 부정하고, 부활, 재림을 부정함으로써 결국은 십자가의 대속을 부정합니다. 그들은 ‘도덕감화설’을 주장하는데, 십자가가 예수님께서 죄 많은 피조물들과 고통을 함께 나누시며 그들의 고뇌와 슬픔을 직접 담당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현시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이것을 보고 인간이 감동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이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겉으로는 굉장히 종교적이고 착하고 선한 사람들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양의 탈을 쓴 늑대요, 교회의 원수요,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그렇게 자유주의화가 되자 경건한 신앙인들이 반발하였고, 신앙의 개혁을 외치면서 자신들이 절대로 양보할 수 없는 근본적인 진리를 외쳤는데, 그것이 바로 아래의 다섯 가지입니다.


1) 성경의 영감과 권위
2) 예수의 동정녀 탄생과 신성
3) 초자연적 이적
4) 십자가의 대속적 죽음
5)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과 승천


경건한 신자들이 5가지 근본 교리 선언한 것에 대해서 사람들은 이 무리들을 근본주의라고 지칭했는데, 사실 이들은 개혁신학자들입니다. 우리가 ‘근본주의’라고 하면 매우 나쁜 인상을 갖는데, 원래 근본주의라는 말은 참된 신앙인들을 일컫는 말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무리들이 자유화된 프린스턴 대학교를 나와서 그래샴 메이첸을 중심으로 개혁신학의 보루라고 할 수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습니다. 물론 나중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내에서도 어떤 갈등이 있어서 메킨 타이어를 중심으로 따로 나온 부류가 있는데, 그들이 바로 오늘날 소위 ‘근본주의자들’이라고 불리는 자들인 것입니다. 그들은 전천년설을 주장하고 금주, 금연을 강조하며 성경을 문자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미국의 페이스 신학교를 세웠는데, 복음의 본질에 있어서는 우리와 같지만, 일부 성경 해석과 적용에 있어서는 개혁신학과 조금 달리하고 있습니다.


어쨌든 우리 개혁신학은 지난 2세기동안 자유주의신학에 맞서서 힘겹게 싸워왔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개혁신학은 극소수이고, 대부분이 자유주의 또는 신복음주의입니다. 신복음주의는 뭐냐 하면, 기독교의 근본교리들에 대해서는 근본주의자들과 의견을 같이 하지만, 그러나 자유주의자들로부터의 교회적 분리는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신복음주의자들 입장에서 볼 때 우리 개혁주의자들은 몹시 사랑이 없고 전투적이며, 무조건 싸우고 분리하고자 하는 분리주의자들로 보이는 것입니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신학보다도 화해, 하나 됨을 더 중시하는 자들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한신대(기독교장로회)나 장신대(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가 그러한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신성, 기적과 이사, 동정녀 탄생, 부활, 십자가 대속을 다 인정합니다. 그러면서도 신학공부 할 때는 비평적 자유주의 신학도 배웁니다. 왜냐하면 학문성이 결여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미국이나 유럽 신학계에서는 개혁신학의 입장을 취해서 성경을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들을 아주 무식한 사람으로 취급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장신대는 개혁신학도 가르치면서 동시에 자유주의 신학도 가르칩니다. 그리고 복음주의와 동일하게 교리보다는 사랑을, 성경계시에 철저히 의존하여 사색하기보다는 하나님에 대한 실제적 경험과 체험을 더 중요시합니다. 성경을 어떤 관점에서 어떻게 해석하든 간에, 그 해석을 통해 우리가 소위 ‘은혜’를 받으면 그 은혜 받은 것이 하나님의 계시이고 그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이런 관점은 자유주의신학으로 빠지게 되는 첫 시발점이 됨을 우리는 교회사를 통해서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렇게 자유주의신학에 대해서 타협적인 태도 또는 어정쩡한 태도를 취하는 자들이 바로 신복음주의자들입니다. 그래서 신복음주의자들의 특징은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는 별로 말을 안 한다는 것입니다. 부정하지는 않지만, 별로 강조하지 않는 것이죠. 굳이 논란이 되는 이야기를 꺼내서 자유주의자들에게 싸움을 걸고 싶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나 동정녀 탄생에 대해서 불신하거나,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참되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입니까? 동정녀 탄생을 의심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경에 나오는 모든 이적과 기사들, 초자연적인 사건을 믿을 수 있습니까? 김헌수 목사님은 동정녀 탄생이 부정되면 그의 십자가의 대속의 사역도, 부활도, 모든 것이 다 부정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지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배운 것처럼, 중보자의 자격요건은 바로 참된 하나님이면서 참된 사람이며 죄가 없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동정녀 탄생이 부정되거나 강조되지 않으면 바로 이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가 파괴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이 부정되면 우리의 중보사역도 부정되는 것입니다. 모든 기독교 복음진리가 다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동정녀 탄생 교리는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마리아의 믿음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남자를 모르는데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까?”라고 의문을 품었을 때, 천사가 성령의 역사로 가능하다고 말했고, 이에 대해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주의 뜻이 이루어지이다.”라고 하면서 그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도 바로 이런 믿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어떻게 이런 기적의 역사가 있을 수 있느냐? 성경은 허구다.”라고 말하는 것이 보편화되어 있는 이 시대에 동정녀 탄생도, 그리고 성경에 나오는 모든 초자연적인 기적들도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함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그것이 역사적 사건임을 고백하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동정녀 탄생의 의미 -> 둘째 아담, 새창조


마태복음 1장을 보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라고 하면서 예수님의 족보를 밝히는데, 거기 보면 ‘OO가 OO를 낳고(능동태)’의 형태로 단조로이 반복되다가 16절에 와서는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라고 나옵니다.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셨다(수동태)’고 기록되었다는 것은 예수님이 혈통적으로는 다윗과는 아무 상관없음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예수가 다윗의 자손이 되는데, 왜냐하면 마리아와 정혼한 사람이 바로 다윗의 자손 요셉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셉이 예수님의 육체적 출생과 관련해서 아무 관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에서 그를 중요하게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요셉은 바로 예수님의 법적 그리고 사회적인 아버지로서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어도 다윗의 자손이 되시는 것입니다.


아니 그러면, 그냥 요셉과 마리아가 성관계 해서 자식을 낳았으면 확실하게 다윗의 자손이 될 텐데, 굳이 이렇게 동정녀 탄생이라는 아주 독특하고, 어떻게 보면 좀 유별난 탄생의 방법을 하나님이 취하실 필요가 있었던 것일까 하는 의문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동정녀 탄생이 아니라면, 그냥 부모들 사이에서 성관계를 통해서 태어난 아이라면 그 아이는 그저 사람일뿐 하나님이실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아담의 후손일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이면 부모의 범죄에 어쩔 수 없이 오염된 채로 태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앞서 배운 것처럼 사람이기만 해서는, 그리고 죄인으로서는 우리의 중보자가 되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참 하나님이셔야 하고, 또 죄가 없이 태어나는, 즉 첫째 아담의 범죄에 붙어있지 아니한 별다른 아담인 둘째 아담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셔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로고스께서 인성을 취하시는 이 일은 그냥 자연적인 부부의 성관계로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로고스와 인성을 한 인격으로 연합시키시는 성령님의 특별한 역사가 필요한 것입니다.


“(35)천사가 대답하여 가로되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 1:35)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은 마치 새가 날개로 새끼를 덮듯이 성신께서 마리아를 덮어서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표현이 창세기 1:2에 나옵니다.


“(2)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창 1:2)


여기서 ‘운행한다’는 말은 원어로 보면, “닭이 알을 품는다. 새가 날개로 새기를 덮는다.”는 뜻입니다. 성령님께서 천지를 덮으셨을 때, 이처럼 조화롭고 아름다운 세상이 창조되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제 그 동일하신 성령님께서 마리아를 덮으셔서 둘째 아담을 창조하셨습니다. 그것은 가히 새로운 창조의 역사입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아담 안에서 죄를 범하여 영원한 진노 아래 떨어져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세상에서 마지막 아담을 지으셔서 그들을 구원하여 그들로 새로운 세상을 이루어 나아가시려고 하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새로운 창조의 첫 출발점이 바로 동정녀 마리아의 자궁에서의 작은 한 수정체의 창조입니다. 사람이 볼 때는 참으로 작고 미미한 일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보실 때, 그 일은 어떻게 보면 천지창조보다도 더 크고 놀라운 일인 것입니다.


3. 동정녀 탄생의 의미 -> 신성과 인성의 연합


그래서 그분은 참 사람이시면서 참 하나님이십니다. 50% 신성과 50%의 인성의 결합도 아니고, 90% 신성에 10%의 인성이 연합한 것도 아니며, 100% 신성과 100% 인성이 연합된 것입니다. 그러면 인성은 어디에서 취하셨습니까? 그것은 바로 마리아의 살과 피, 곧 마리아의 몸에서부터 참된 인성을 취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령의 능력으로 잉태된 것 외에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한 과정으로 자궁에서 자라서 태어나셨고, 죄 빼고는 모든 면에서 우리와 동일하게 되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깐 태어나자마자 울지도 않고, 사람들을 알아보고, 말도 하고, 자기 똥오줌도 가리고... 그러셨을까요? 아닙니다. 다른 아이들하고 똑같이 한 3-4살 되실 때까지는 기저귀 차고 똥오줌도 못 가리시면서 사셨습니다. 말하는 것도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부모로부터 차차 배워가셨고 부모의 보호 아래서 자라면서 부모로부터 여러 가지 가정교육도 받으셨으며, 또 회당에 가서 율법을 배우셨습니다. 또 다른 아이와 똑같이 감기에 걸리기도 하시고, 다치기도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부모도, 가족들도, 그리고 그 주변의 모든 이웃들도 예수님이 사람이시라는 사실에 대해서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기독론에 있어서 가장 큰 문제는 과연 그분이 하나님이시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신성을 부인하며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저가 요셉의 아들인데, 우리가 요셉을 아는데 어떻게 하늘에서 왔다고 하느냐, 요셉의 아들이면서 어떻게 아브라함보다 먼저 있었다고 말하느냐”하면서 배척했습니다. 그러나 택한 받은 사람들은 다 예수님 앞에서 하나님 고백을 하는 것이죠. 요한은 이 예수님이 창세전에 하나님과 함께 계신 로고스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며, 또한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에도 사도 도마는 예수님께 “당신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했던 것입니다. 이 사실을 우리가 믿습니까? 이것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동정녀 탄생의 사실이 우리에게 바로 이 사실을 명백하게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예수님의 신인성중 한쪽이라도 부정하거나 약화시킨다면, 우리는 참된 신앙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참 하나님이심을 부인한다면, 그분의 십자가가 나의 모든 죄를 구속하는 대속의 사역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믿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반대로 그분이 우리와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되신 참 사람이심을 깊이 깨닫지 못한다면,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대표가 되셔서 참 중보자가 되신다는 사실과 죄 빼고 우리와 모든 면에서 동일하게 되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참으로 동정하시는 그분의 자비를 알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참 하나님이시면서 참 사람이신 사실은 인간의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이단들이 참 많습니다. 신성과 인성이 연합해서 신성도 인성도 아닌 제3의 성질이 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단이 있는가 하면, 인성이 신성에 흡수되었다고 생각하는 이단도 있고, 신성이 인간의 몸만 취했다는 이단도 있으며, 아니면 아예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도 많습니다. 이성적으로 이해하려다가 한쪽으로 치우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신앙의 선배들은 이 모든 이단들을 정죄하면서 성경적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를 확립했는데, 그것이 칼시돈 신조입니다.


칼시돈 신조를 한 마디로 하면,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고, 참 사람이시다. 신성과 인성은 각각의 독특한 특징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서로 하나로 혼합되거나 변화되지 않고, 구별되지만 그러나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한 인격에 연합되어 있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해당되는 모든 속성이 예수님께 다 해당됩니다. 전지전능하시고 무소부재하시고 권능과 영광이 무한하십니다. 이를 알기에 우리는 성부 하나님께 돌려드릴 모든 영광과 찬송과 경배를 예수님께도 동일하게 올려드립니다. 한편으로 인간에게 해당되는 모든 속성이 예수님께 다 해당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인성으로는 지성과 능력에 한계가 있으시며, 그리고 시공간에 제한되십니다. 이러한 신성과 인성이 예수님의 인격 안에서 하나로 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논리적으로는 말이 안 되지만 굳이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바다에 거니실 때 인성은 그 갈릴리 바다의 예수님 안에만 있습니다. 그러나 신성은 그 때도 온 세상을 통치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리고 신성으로는 모든 것을 다 아십니다. 그러나 인성으로는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수님 당시 우리나라가 고조선 시대였는데, 한반도에 고조선이 있었다는 것을 모르셨습니다. 유대 땅에 태어나 유대문화에 적응하셨고, 유대인들의 사고방식과 틀의 한계를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신성으로는 고조선이라는 나라를 여전히 통치하시고 섭리하고 계셨습니다. 또 다른 예로 예수님께서는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라고 하셨는데, 그것은 인성을 따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마 24:36). 그러나 신성으로는 그것을 참으로 아시는 것입니다. 때로는 초자연적인 기적을 일으키심으로 자신의 신성을 나타내시기도 하시지만, 또 때로는 육체의 연약함으로 인해 배 안에서 풍랑이 이는 것도 모른 체 골아 떨어지실 때도 있으셨습니다.


이렇게 신성과 인성이 신비하게 연합되어 있다는 것은 논리적으로 전혀 맞지 않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원토록 참 하나님이시고, 또 영원토록 참 사람이십니다. 그래서 우리의 중보자가 되셨습니다. 이분을 우리가 믿고 경배하고 찬양하며 나의 구세주로 의지하는 것입니다.


4. 동정녀 탄생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이제 이 동정녀 탄생의 사실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36문답을 보시면...


36문 : 그리스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은 당신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그리스도는 우리의 중보자로서 자신의 순결함과 온전하신 거룩함으로 내가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나의 죄를 하나님 앞에서 덮어 줍니다.


그분께서 죄 없이 그리고 온전히 거룩하게 잉태되시고 태어나신 것으로써 우리가 죄 가운데 잉태되고 출생할 때부터 가지고 있는 죄와 허물을 덮어주시는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시편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4)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주께서 말씀하실 때에 의로우시다 하고 판단하실 때에 순전하시다 하리이다”(시 51:4)


4절이 좀 어렵게 번역이 되었는데, 표준새번역을 보면 그 의미가 잘 드러납니다.


[표준새번역] 주님께만, 오직 주님께만, 나는 죄를 지었습니다. 주의 눈 앞에서, 내가 악한 짓을 저질렀으니, 주님의 유죄 선고가 마땅할 뿐입니다. 주님의 유죄 선고는 옳습니다.


다윗은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그에 이은 5절에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5)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즉 자신은 사실 태어날 때부터 원죄를 안고 태어났고, 전적으로 부패한 상태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고백입니다. 그런데 그 이전에 하나님은 다윗에게 어떤 말을 듣게 하셨습니까?


“(28)주의 여종의 허물을 사하여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삼상 25:28)


다윗이 용병 생활할 때, 나발의 재산을 보호해주었는데, 나발이 그 은혜를 갚지 아니하므로 다윗이 분노하여 군대를 이끌고 찾아가던 중이었습니다. 그때 이 나발의 아내인 아비가일이 참으로 지혜가 있는 여자였는데, 그녀가 나발 몰래 양식을 챙겨서 미리 다윗을 찾아가서 쓸 것을 봉양하고 용서를 빌었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위의 말을 다윗에게 했던 것입니다.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습니다.”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이런 말은 그냥 지나치면 안 됩니다. 이 말은 그냥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 가운데서 하는 말입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다윗은 잉태에서부터, 그리고 태어남에서부터 죄 중에서 태어났고 죄인이고 또 나중에 큰 죄를 범할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다 아시는데, 아비가일로 다윗에게 그러한 말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이런 말씀을 하실 수 있나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다윗의 온 일생을 그리스도로 덮으셨기 때문입니다. 요람에서 무덤까지 다 덮으셨습니다. 그래서 나중에 밧세바를 범하는 죄를 지었을 때에도, 하나님은 선지자 나단을 보내사 그를 책망하게 하시지만, 또한 그 자리에서 곧바로 용서의 선언도 하게 하신 것입니다.


“(13)다윗이 나단에게 이르되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 하매 나단이 다윗에게 대답하되 여호와께서도 당신의 죄를 사하셨나니 당신이 죽지 아니하려니와”(삼하 12:13)


물론 다윗의 죄에 대해 하나님이 철저하게 징계하셨지만, 그것도 사실 은혜인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의 고백이 무엇입니까?


“(6)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바(7)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8)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롬 4:6-8)


다윗만 이러한 복을 누린 것이 아니라 우리도 이 복을 받은 자입니다. 이 사실을 믿습니까? 여러분은 이 은혜를 받으셨습니까? 이 은혜를 받고 행복하십니까? 아니 오히려 우리는 날마다 자신의 죄 때문에 절망하지 않습니까? 물론 우리가 죄 지을 때는 죄책감을 느끼고 아파하고 절망해야 합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저는 오랫동안 이 구절에 있는 ‘정죄함’이라는 단어를 죄책감이나 정죄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에게는 구원파가 말하는 것처럼 죄책감이 없어야 한다고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니 이 ‘정죄함’이라는 단어는 그냥 형벌입니다. 번역이 매끄럽지 못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형벌이 없는 것이지 죄책감이나 정죄감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 지으면 정죄감과 죄책감이 드는 것이 정상입니다. 없으면 양심에 화인 맞은 사람입니다. 죄 지으면 죄 때문에 아파하고 참으로 절망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가 너무나 자주 계속 자기 죄만 바라보고 절망에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겸손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교만입니다. 우리는 주님이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기억해야 합니다. 그것은 덮으시는 은혜입니다. 요람에서 우리가 죄 중에 잉태될 때부터 우리가 죽을 때까지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일생은 자신의 피로 다 덮어주셨습니다. 때문에 만일 누군가가 우리 일생에서 죄를 찾는다고 해도 그 어떤 죄도 찾을 수 없는 것이고, 사단 마귀가 “너는 죄인이다, 너는 하나님의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다”고 우리 귀에 속삭여도 우리는 아래의 사실을 확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33)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롬 8:33-34)


우리는 사실 늘 다윗처럼 우리 자신이 죄 중에 잉태되었음을 고백하지만, 하나님은 은혜롭게도 우리 귀에 “당신의 일생에 아무 죄도 찾지 못했습니다”라고 하는 아비가일의 말을 듣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은혜의 선포를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죄를 회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이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의지해서 하나님과 화목을 누려야 합니다. 더 이상 내가 죄 안 짓고 착한 삶을 살아야 하나님께 용납될 것이라는 생각하지 말고,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은혜로 화목하게 되었음을 알고, 다만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그리고 그 은혜를 감사하면서, 그리고 “이제 주님의 것으로 살겠습니다.” 결단하면서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의지하고서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과의 화목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신앙생활입니다. 동정녀 탄생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고, 그분의 거룩한 잉태와 탄생이 우리의 모든 죄를 덮었음을 알고 주님과 참 화목을 누리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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