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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9-11문
문답내용 9문 : 그렇다면 사람이 행할 수도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에서 요구하신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무한 것 아닙니까?
답 :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귀의 꾐에 빠져 고의적으로 불순종함으로 자신은 물론 후손들까지 그 능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10문 :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순종과 반역을 형벌하지 않고 지나치시겠습니까?
답 :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 모두에 대해 몹시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으로 그 죄들에 대해서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형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0)고 선언하셨습니다.


11문 :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자비하신 분이 아닙니까?
답 :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하신 분이나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죄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권위에 대한 도전이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이 죄에 대해 가장 무거운 처벌, 곧 몸과 영혼에 영원한 형벌을 내릴 것을 요구합니다.
강설날짜 2013-09-2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주(9-11문)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말씀 : 시 7:11-13


9문 : 그렇다면 사람이 행할 수도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에서 요구하신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무한 것 아닙니까?

답 :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귀의 꾐에 빠져 고의적으로 불순종함으로 자신은 물론 후손들까지 그 능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10문 :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순종과 반역을 형벌하지 않고 지나치시겠습니까?

답 :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 모두에 대해 몹시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으로 그 죄들에 대해서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형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0)고 선언하셨습니다.


11문 :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자비하신 분이 아닙니까?

답 :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하신 분이나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죄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권위에 대한 도전이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이 죄에 대해 가장 무거운 처벌, 곧 몸과 영혼에 영원한 형벌을 내릴 것을 요구합니다.


1. 행할 수 없는 우리에게 행할 것을 명령하시는 하나님


지난주에 우리는 모든 인생들이 아담 안에서 함께 타락하여 도무지 선을 행할 수 없는 부패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러면 이어지는 질문이 도무지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는 인간에게 왜 하나님은 여전히 율법을 주시면서 지키라고 명하시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9문입니다.


9문 : 그렇다면 사람이 행할 수도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그의 율법에서 요구하신다면 그것은 참으로 너무한 것 아닙니까?

답 :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만드실 때 율법을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마귀의 꾐에 빠져 고의적으로 불순종함으로 자신은 물론 후손들까지 그 능력을 잃게 된 것입니다.


“지킬 수도 없는데 지키라고 명하시고, 또 못 지키면 벌을 내리시는 하나님이 너무한 것 아닙니까?” 라는 질문은 참으로 얄미운 질문입니다. 이후에도 그렇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는 자꾸 얄미운 질문들이 나옵니다. 이런 질문들을 교회에서 목사님께 했다가는 미운 틀 박히죠. 그렇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답을 가르쳐 주려고 일부러 이런 질문들을 던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실 이것은 또한 어찌하든지 책임을 회피하려고 하는 인간의 파렴치한 생각들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어떤 사람에게 여덟 살 된 딸이 있는데, 그 딸에게 달에까지 뛰어서 날아가 보라고 말했다고 합시다. 그러면 아마도 그 딸은 두 팔을 벌린 채 달을 향해 뛰어오를 것입니다. 그래봤자 땅바닥에서 십여 센티미터를 뛰어오를 뿐이지만 말입니다. 그것을 가지고서 왜 달까지 날아가지 못하느냐하고 나무라고 꾸짖고 매로 때리면서 호되게 책망한다면, 주변 사람들이 그 아버지를 나무라면서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늘같이 높은 이 율법의 요구 앞에서, 우리는 아무리 애를 쓰고 노력해도 조금이나마 지키는 것은 고사하고 도리어 온갖 악행만 저지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인생들에게 여전히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시고 못 지키는 우리를 향해 진노하시고 형벌하신다고 한다면, 우리에게 드는 당연한 생각은 “하나님 너무하신 것 아닙니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러한 생각을 결코 할 수 없다고 확실하게 선언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처음에 사람을 지으실 때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그런 능력을 주시지도 않고 지키라고 명하셨다면 참으로 하나님은 불의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신 후에 지키라고 명령하셨으니 하나님은 불의하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이죠. 물론 그것은 아담에게 그렇게 하신 것이지 우리에게는 처음부터 그런 능력을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억울해 할 수도 있겠습니다만, 그러나 따지고 보면 우리에게도 그러한 능력을 주신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아담은 우리의 단순한 대표가 아니라 우리는 그 아담의 허리 안에서 연합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를테면 우리 모두는 아담 안에서 모두 하나님의 명령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고, 또한 순종할 수 있는 기회들을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의 대표요 우리의 머리인 아담이 자신의 자유의지를 가지고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고의적으로 불순종함으로써 이 하나님이 주신 은사인,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스스로 제거하고 만 것입니다. 그러니 결과적으로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된 데에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지, 하나님을 불의하다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제 타락해서 도무지 율법을 지켜 행할 수 없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율법을 지킬 것을 요구하실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보면 어떤 사람이 사채업자에게서 10억을 빌려갔다고 생각해보십시다. 그런데 이 사람이 부도가 나서 완전히 빈털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사채업자가 와서 멱살 잡으면서 “빨리 10억 갚아”라고 했을 때, 그 사람이 “아니 도저히 갚을 능력이 없는데 나한테 자꾸 10억을 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부당한 처사 아니요?” 그렇게 말했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이 사채업자가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아 내가 좀 심했네, 미안하네...”하고서 탕감해줄까요? 그럴 리가 없습니다. 도리어 어이없어 하면서 더욱 갚으라고 빚 독촉을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본인이 갚을 능력이 있든, 갚을 능력을 완전히 상실했든 상관없이 그 10억을 다 갚기 전까지 빚진 자는 그 채무를 갚아야 할 책임과 의무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생들이 부패하여 도무지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해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여전히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시는 것을 불의하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마땅히 창조주로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이고, 피조물은 자신의 타락의 여부와 상관없이 율법을 지켜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율법을 지켜야 할 의무와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인생들이 타락하여서 도무지 지켜낼 수 없다는 것을 아심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생들에게 이 율법을 명하시고 지킬 것을 요구하시며, 불순종한 인생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다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심히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15)보라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16)곧 내가 오늘날 너를 명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얻을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임이니라(17)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서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18)내가 오늘날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망할 것이라 너희가 요단을 건너가서 얻을 땅에서 너희의 날이 장구치 못할 것이니라(19)내가 오늘날 천지를 불러서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20)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말씀을 순종하며 또 그에게 부종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시니 여호와께서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하리라”(신 30:14-20)

 

특히 신명기 말씀은 더욱 우리를 놀라게 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서 너희들이 율법을 지킬 수 있다고까지 강조하시면서 지킬 것을 요구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사람이 얼마든지 선을 행할 수 있고, 생명을 택할 수 있는 것처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하나님도 이미 아십니다. 그것이 그 다음장에 곧바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16)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열조와 함께 자려니와 이 백성은 들어가 거할 그 땅에서 일어나서 이방신들을 음란히 좇아 나를 버리며 내가 그들과 세운 언약을 어길 것이라(17)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버리며 내 얼굴을 숨겨 그들에게 보이지 않게 할 것인즉 그들이 삼킴을 당하여 허다한 재앙과 환난이 그들에게 임할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이 재앙이 우리에게 임함은 우리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시지 않은 까닭이 아니뇨 할 것이라(18)그들이 돌이켜 다른 신을 좇는 모든 악행을 인하여 내가 그 때에 반드시 내 얼굴을 숨기리라(19)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이 노래를 써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쳐서 그 입으로 부르게 하여 이 노래로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에게 증거가 되게 하라(20)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21)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신 31:16-21)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은 이미 이스라엘의 상상하는 바를 알고 계신 것입니다. “상상”이라는 단어의 원어를 보면, 그 뜻이 “형태, 틀, 골격, 근본 마음의 구조”라는 뜻입니다. 즉 사람의 마음의 구조와 형태가 악을 행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언약을 맺으시면서 율법을 명하시고 그 율법으로 광야 40년 동안 시험하셨고, 더 나아가 가나안 땅으로 들이신 이후 700년 동안 이스라엘을 시험하셨으며, 또 불순종할 때마다 벌하실 뿐만 아니라 마지막에는 앗수르와 바벨론을 통해 심판하심으로써 나라가 망하고 포로로 잡혀가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첫째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를 분명히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한 우주적인 법을 가지고 이 세상을 만드셨고, 그 법을 지킬 사람을 만드셨으며, 그 법의 의무를 사람에게 지워서 지키게 하시고, 그리고 마지막 날에 그 법에 따라 각 사람이 행한 바를 재판하여 행한 대로 갚으시는 방식으로 이 세상을 섭리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을 도덕적 통치라고 하는데, 사람이 타락했든 안 했든 상관없이 이 도덕적 통치를 실현해 나가신다는 것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지킬 수 없는데도 우리 인생들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자신의 죄를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서 주신 것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은 자기 스스로 똑바로 걷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자를 대고 줄을 똑바로 그어놓고 그 위로 걸어가도록 해보면 스스로 자신이 엉뚱하게 걸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이 하늘과 같이 높은 율법의 수준 앞에서 사람은 비로소 자기가 저 밑바닥 수준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고, 도무지 매꿀 수 없는 간격 앞에서 절망하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은 바로 이 절망을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그리하여 구속자를 바라보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지킬 수 없음에도 명하시는 이유에는 또한 이러한 명령과 규례를 온전히 지킬 한 사람을 보내주겠다는 약속이 여기에 전제되어 있습니다. 첫 사람 아담은 순종하는데 실패했지만 실패하지 않을 둘째 아담을 보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과 계명 속에는 장차 이 모든 계명들을 온전히 순종할 메시아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참 이스라엘이시고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한 순종,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미암아 우리가 죄사함을 얻고 값없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입니다.


2. 반드시 죄를 형벌하시는 하나님


10문 :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불순종과 반역을 형벌하지 않고 지나치시겠습니까?

답 :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원죄와 자범죄 모두에 대해 몹시 진노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공의로운 심판으로 그 죄들에 대해서 이 세상에서 그리고 영원히 형벌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갈 3:10)고 선언하셨습니다.


10문 역시 어찌하든지 책임에서 회피하려는 인간의 본성을 반영해줍니다. 때때로 부모들은 자식들에게 엄포만 놓고 그냥 지나치는 일들이 있습니다. 그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심판에 대해 경고하시고 엄포를 놓으셨지만, 결국 형벌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시는 경우가 있지 않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결코 그럴 수 없다고 못 박습니다. 모든 죄에 대해 진노하시고 반드시 갚으신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불변하는 절대적인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원죄와 자범죄 모두에 대해서 몹시 진노하신다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답합니다. 즉 태어날 때부터 안고 태어나는 원죄에 대해서 진노하시고 또 그 원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매일 짓는 죄인 자범죄에 대해서도 진노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소하게 생각하는 작은 실수도 하나님은 심히 분노하시고 진노하십니다.


“(11)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12)사람이 회개치 아니하면 저가 그 칼을 갈으심이여 그 활을 이미 당기어 예비하셨도다(13)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그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시 7:11-13)

“(4)주는 죄악을 기뻐하는 신이 아니시니 악이 주와 함께 유하지 못하며(5)오만한 자가 주의 목전에 서지 못하리이다 주는 모든 행악자를 미워하시며(6)거짓말하는 자를 멸하시리이다 여호와께서는 피 흘리기를 즐기고 속이는 자를 싫어하시나이다”(시 5:4-5)“(2)여호와는 투기하시며 보복하시는 하나님이시니라 여호와는 보복하시며 진노하시되 자기를 거스리는 자에게 보복하시며 자기를 대적하는 자에게 진노를 품으시며”(나 1:2)

“(6)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반포하시되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7)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아비의 악을 자여손 삼 사대까지 보응하리라”(출 34:6-7)


우리가 성경을 찬찬히 잘 읽어보면,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생들을 향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에 대한 경고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이를 통해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진노하시며, 인생들이 다 하나님의 진노와 천벌 아래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 인생들의 죄에 대한 형벌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하면 사망입니다. 이 사망은 삼중적인 의미의 사망으로서 현세와 내세에서 받는 형벌을 말합니다.

 

첫 번째로 영적사망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관계가 단절됨으로써 영혼이 죽은 채로 태어나는 것이 바로 형벌의 시작이며 모든 불행의 근본원인입니다. 물 밖으로 나온 물고기처럼, 나무에서 떨어져나간 가지처럼 당장에는 파닥거리며 살아있지만, 그러나 고통 속에서 죽어갈 수밖에 없는 (사실상 죽은 것이나 다름없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한 임신한 여자가 화장실에서 아기를 낳고 똥통에 버리고 도망가 버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한참 후에 우는 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와서 구출했지만, 각종 세균에 감염됨으로 말미암아 시름시름 앓다가 비참하게 죽고 말았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축소판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고아처럼 버려져서, 이 세상에서 땀 흘리고 수고하면서 80-90년 살면서, 죄에 더렵혀진 채로 온갖 고통스러운 일들을 당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 자연재해와 전쟁, 질병, 사람들과의 갈등과 상처, 그리고 여러 가지 사건과 사고로 말미암아 말할 수 없는 고통과 고난을 당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의 일반은총으로 말미암아 우리 인생이 고통과 고난의 일색인 것은 아닙니다. 어떤 즐거움이나 보람이나 기쁨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그것이 악인에게도 해와 비를 주시는 일반은총이지만, 그러나 참된 은총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도살할 날을 위해 살찌우는 것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들을 죄 가운데 내버려두셔서 마지막 날에 임할 진노를 쌓게 하시는 것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의 적극적인 측면의 한 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때때로 즐겁고 기쁜 일이 있다 하더라도 근본 우리 인생이 불행하고 고통스럽다는 사실에는 아무런 변함이 없습니다. 이것이 현세에 당하는 죄에 대한 형벌입니다.

 

두 번째로 육체적인 사망입니다. 일평생 고통하며 살다가 결국에는 죽습니다. 몸과 영혼이 분리되어 영혼은 하늘로 가고, 몸은 땅에 썩는 것입니다. 이것은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가라”는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결과입니다.

 

세 번째로 그러한 죽음으로 끝이 아니라, 마지막 주님의 재림의 때에 다시금 영원한 몸으로 부활하게 됩니다. 그리고 지옥에 떨어져서 거기서 영원토록 생명의 근원되신 하나님과 단절된 상태에서 몸과 영혼에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을 둘째사망 또는 영원한 사망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지옥에 대해서 많은 설명을 하고 있지 않지만, 그러나 드러난 것만 보면, 거기에는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타는 용암이 있고, 혐오스러운 벌레들로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지옥에 떨어진 사람들은 어떤 고통을 당하느냐 하면, 먼저는 맹렬한 하나님의 진노가 자신의 영혼에 쏟아 부어지는 극도의 영적인 고통을 느끼면서 그와 더불어서 용암 불에 온 몸이 화상을 입어 살과 뼈가 녹아내리는 극도의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와중에 구더기와 혐오스러운 벌레들이 자신의 살을 파먹는 것으로 인해 말할 수 없는 육체적 고통을 느끼면서 처절하게 절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그러한 영육간의 고통이 아닙니다. 그들을 가장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이 고통이 끝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렇게 온 몸이 불에 타는데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죽지 않고 영원히 살아서 그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차라리 100년 후라도 벗어날 수 있다면, 아니 100년이 아니라 1000억만년 후라도 벗어날 수가 있다면 그래도 희망이 있잖아요? 그러나 지옥은 그 희망이 없습니다. 이것이 지옥이고 이것이 모든 죄인들을 향해 내려지는 하나님의 최후의 형벌입니다.

 

3.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

 

그러면 우리는 놀라서 묻습니다. 11문을 보십시오.


11문 : 그러나 하나님은 또한 자비하신 분이 아닙니까?

답 :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하신 분이나 동시에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죄는 하나님의 지극히 높으신 권위에 대한 도전이므로, 하나님의 공의는 이 죄에 대해 가장 무거운 처벌, 곧 몸과 영혼에 영원한 형벌을 내릴 것을 요구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긍휼의 하나님이신데, 어떻게 이렇게 죄 좀 지었다고 해서 무자비하게 사람들을 심판하실 수 있습니까? 하나님 무섭네요... 하나님은 사랑도 없습니까?” 그렇게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도 되시지만, 또한 공의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답합니다. 즉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도 한이 없으시지만, 그러나 죄는 반드시 갚아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이제 이렇게 물을 것입니다. “좋습니다. 죄를 결코 용납지 아니하시고 반드시 심판하셔야 된다면 심판하십시오. 대신 이 세상에서 감옥에 갔다가 일정기간 지나면 다시 풀려나는 것처럼 각 사람이 행한 대로 일정 기간 동안 때리고 벌하신 다음에 다시금 그 형벌에서 놓아주면 안 됩니까? 죄 좀 지었다고 영원한 지옥형벌로 벌하시는 것은 너무하시는 것 아닙니까?”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질문은 결국 죄가 하나님 보실 때 얼마나 중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지난 2008년에 있었던 아동성폭행 사건인 조두순 사건 때문에 온 나라가 떠들 썩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피의자 조두순은 징역 12년을 선고받았는데, 이에 대해서 국민들이 분노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아마도 최소한 무기징역이나 사형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만큼 너무나 폐륜적이고 충격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요즘도 아동성폭행 사건이나, 여러 가지 폐륜 범죄들에 대해서 법정이 형량을 선고하는 것에 대해서 국민들이 불만이 많고, 또 폐륜 범죄에 대해서는 사형집행을 다시금 부활시켜야 된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끔찍한 범죄는 그에 마땅하게 최고의 형벌을 내려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가장 최고의 형벌이 내려지는 죄는 내란죄입니다. 요즘 이석기 의원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러운데, 이 의원에 대해서 반역죄가 성립이 되느냐 하는 것은 논란이 되지만, 만일 반역죄가 성립된다면, 그 형량은 법정 최고형인 사형입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나라에서 가장 엄하게 벌했던 죄는 왕에 대한 반역죄입니다. 우리나라도 옛날에는 반역죄를 범하면 삼족을 멸했고, 중국 같은 데는 구족을 멸했다고 합니다. 그만큼 엄벌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나라에 반역하는 것은 한 두 사람 살인하는 정도가 아니라 나라를 뒤흔듦으로써 전 국민의 안녕과 목숨을 위협하는 죄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죄에 대해서, 심지어는 우리가 하나님께 짓는 사소한 죄 하나에 대해서도 영원한 지옥형벌로 벌하시는 이유는 바로 우리의 모든 죄가 하나님께 대한 반역죄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는 다 하나님의 최고의 권위에 대한 도전이요, 하나님을 보좌에서 끌어내리고, 자기 자신이 신이라고 하면서 그 자리에 앉으려는 행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중대한 반역입니다. 그러므로 이 죄에 대해서 하나님은 심히 진노하시고 분노하시며, 따라서 벌하시되 최고의 형벌로 벌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들을 죄와 심판 가운데 내버려두지 않으시고,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저 죄를 모른 채하고 눈감아 주심으로써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죄에 대한 형벌의 값을 예수로 대신 지불하게 하셔서, 곧 공의를 만족시킴으로써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공명정대한 공의는 죄에 대한 값을 반드시 지불할 것을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자신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도 죄를 뒤집어썼을 때는 무한한 진노로 가장 잔인하게 죽여 버리시는 하나님의 공명정대한 공의가 십자가에서 나타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 하나님의 지극한 사랑만 볼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준엄한 공의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 공의를 모르면 사랑도 모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공의와 사랑은 하나가 되었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공의를 세우기 위해서 사랑을 희생할 때가 있고, 또 때로는 사랑을 이루기 위해 공의를 꺾어야 할 때가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는 십자가에서 충돌하지 않고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하나님의 도덕적 통치, 율법의 저주와 무서운 형벌, 우리 인생의 죄와 비참함에 대해서 깊이 깨달아야 하고, 또한 그 십자가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지극한 사랑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구원받을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는 사실을 깊이 깨닫고 그분을 일평생 굳게 믿고 의지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것이 됨으로써 어떠한 비참함과 형벌에서 구원받았는지를 늘 잊지 말고, 그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한 이러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와 천벌을 기억하면서 하루하루를 두렵고 떨림으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7)

“(17)외모로 보시지 않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자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른즉 너희의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벧전 1:17)


이렇게 죄에 대해 진노하시는 공의의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살기 때문에 우리는 더욱 두렵고 떨림으로 자신의 구원을 이루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으니 이제 심판이나 지옥은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고 안일하고 나태하게 살아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구원받은 자신이라도 잘못하면 멸망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두려워하면서 더욱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영적전투하면서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믿음과 인내로써 신앙의 경주를 힘써 해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에 주의하지 않고 죽음의 문턱에 이를 때까지 자기가 멸망의 길로 가고 있다는 것을 모른 채 그렇게 분주하고 정신없이 사는 인생이야 말로 참으로 어리석고 불쌍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늘 죽음과 하나님의 공의, 지옥심판을 깊이 묵상하면서 우리의 무뎌진 마음과 부주의하고 나태한 마음을 일깨워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십자가의 은혜만을 붙잡고 믿음의 길을 끝까지 인내하며 걸어가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이러한 사실을 마음에 새겨주셔서, 경거망동하게 행동하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옥죄어주시고, 더욱 깨어 기도하면서 죄를 버리고 주님 앞에서 경건하고 복종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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