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014.08.20 19:29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9주(104문) - 제5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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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104문
문답내용 104문 : 제5계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해 합당한 순종을 하며,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강설날짜 2014-08-0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9주


제5계명


104문 : 제5계명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해 합당한 순종을 하며,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1. 제1계명과 제5계명의 연관성


제5계명 “네 부모를 공경하라”에서 ‘부모’는 물론 우리의 육신의 부모를 말하는 것이지만, 그러나 거기에는 또한 그에 앞서 우리의 영육간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5계명은 먼저 하나님을 공경할 것을 명하는 계명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5계명은 두 번째 돌판의 첫 번째 계명이기도 하지만, 또한 첫 번째 돌판의 연장선상에 있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불신자들 가운데 효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도, 그들이 제5계명을 지켰다고는 우리가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지으신 참 하나님 아버지를 공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5계명은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해야 할 것을 가르칩니다. 이것이 제일 중요합니다. 그래서 그냥 부모를 공경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2. 부모의 사랑은 하나님의 사랑의 반영이다


왜냐하면 부모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이기 때문입니다. 부모가 자식 사랑하는 것은 본능입니다. 어떤 부모도 내가 자식을 사랑해야지 하고 의지적으로 결단해서 사랑하지 않습니다. 자기부인 자기 십자가 짐으로써 자기를 희생하고 자녀를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저절로 그렇게 사랑하며 섬기는 것입니다. 자기의 형상을 닮은 피붙이기에 그냥 아무런 이유도 없이 그 자식을 향한 사랑과 긍휼의 마음이 애끓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도 아깝지 않은 것이 부모 마음입니다. 타락한 인간에게서 이러한 무조건적인 희생의 사랑이 나온다는 것이 너무나 신비로운 일이지만, 하나님의 놀라운 뜻 가운데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러한 존귀한 본성을 심어주신 것입니다. 이런 본성을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피조물에 새겨주셔서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피조물들이 태어나고 자라가며 살아감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사랑과 보호와 양육을 부모로부터 받아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자식을 향한 부모의 사랑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모의 마음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또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 잘 보존되고 발육되기를 원하시는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얼마나 잘되기를 바라시는가 하는... 그 피조세계를 향한 하나님의 부성애적인 사랑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마땅히 부모의 사랑을 통해서 참 부모가 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고 먼저 그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니하고 하나님은 모르고 그냥 육신의 부모만 공경하고 사랑한다면 그것은 심하게 말하면 선물을 전해준 사람은 무시하고 그 선물을 전해주는 택배 아저씨에게 감사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시고 우리를 이 땅에 살아가게 하신 우리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먼저 하나님을 공경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그 하나님을 공경한다 하는 자의 마땅한 삶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육신의 부모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육신의 부모는 우리를 낳고 양육할 사명을 위해 이 땅에 세움 받은 하나님의 전권대사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공경하는 자는 마땅히 주께 하듯 부모를 공경해야 하는 것입니다.


3. 사랑은 내리사랑 & 은혜에 보답하는 인격


그런데 여기서 하나 의문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의 자식 사랑은 본능인데, 자식의 부모공경은 본능이 아니라고 하는 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랑은 항상 내리사랑이라서, 자식이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것은 본능이 아닌 의무로서 행해야 할 것입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자식에게도 부모공경을 본능으로 주셨으면 더 좋을 텐데 말입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의 크신 뜻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극명히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고 그 부모의 사랑에 자식들이 인격적으로 반응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사실은 부모가 자식에게 사랑을 퍼부어줘도 자식은 모릅니다. 그러나 오랜 세월이 흘러서 고생하는 가운데 철들면 부모의 사랑을 깨닫게 됩니다. 자식이 철들어서 부모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깨닫게 되면, 이제 그 인격이 감화를 받아 자발적인 인격의 반응으로서 부모에게 감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것을 의도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사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이기도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내리사랑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시고 부모도 자식을 무조건적으로 사랑합니다. 짐승이라면 그 사랑을 받기만 하고 끝이겠지만, 그러나 인격은 그 사랑에 감사와 순종으로 반응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5계명은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인격에 관한 계명입니다. 은혜를 알고 보답할 줄 아는 것이 사람이지, 은혜를 받고도 보답할 줄을 모르면 그것은 사람모양을 하고 사람행세를 해도 짐승과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담이 타락한 이래로 이 세상에 제대로 된 인격이 단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 인간적으로 부모에게 효도하는 사람은 있을지 몰라도, 진정한 의미로 제5계명을 지키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4.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이유


그래서 부모를 공경해야 된다는 것을 양심으로는 다 알아도, 많은 사람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불효하는 데에는 자기 나름의 이유가 있습니다. 즉 부모가 전혀 공경할만하지 않다 라는 것입니다.


예전에 ‘똥파리’라는 영화에 대해서 말씀드린 적이 있는데, 그 똥파리 영화를 보면 이 주인공의 아버지가 알콜 중독자에다 가정폭력을 행하던 자였습니다. 그래서 이 주인공이 어렸을 때, 아버지의 가정폭력에 의해 자신의 어머니와 누나가 죽고 말았던 것이죠. 이로 인해 이 주인공이 느꼈을 고통과 아픔, 그리고 그 아버지에 대한 복수심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 영화를 보면 주인공이 아버지의 죄에 대한 끓어오르는 분노와 복수심으로 일평생을 살면서, 나중에 아버지가 힘없는 노인이 되었을 때, 매일같이 찾아와서 폭력을 가하면서 복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주인공의 패륜적인 행동에 충격을 받으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그 주인공이 당한 고통이 얼마나 큰 것인지 이해가 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노년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아주 불효를 행하는 사람들을 보면, 결국 대부분이 과거에 부모로부터 많은 상처와 아픔을 겪었던 사람들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든 관계를 맺을 때 중요한 원리로 삼는 것이 바로 “give and take,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고 하는 원리입니다. 그래서 부모가 자식들에게 잘못한 것이 아주 많으면 자식들은 나중에 커서 노년의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많은 사람들이 불효를 행하는 주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불효를 행하는 또 다른 이유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돈을 사랑하는 이기적인 본성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어릴 때는 부모의 권위 아래 잘 있습니다. 왜요? 어렸을 때는 부모의 도움 없이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이 들어서 자립하게 되었을 때, 그래서 부모 없이 자기 스스로 살아갈 수 있게 되면, 서서히 부모를 멀리하게 됩니다. 어렸을 때는 부모로부터 여러 가지 유익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부모의 권위 아래 있었는데, 이제 크면 부모로부터 얻을게 없죠. 오히려 부모가 늙으면 그 부모를 섬겨야 하니깐, 이제부터는 내 호주머니에서 자꾸 돈이 나가야 되는 상황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멀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일이 있느냐 하면, 부모가 일부러 유산을 빨리 안 물려주는 것입니다. “나를 모시는 자에게 내가 유산을 더 주겠다.”고 선언하는 것이죠. 왜요? 그래야 자식들이 부모를 노년까지 공경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 씁쓸한 일인데, 그러나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이유는 돈이 안 되기 때문이고, 또 노년에 부모를 섬기는 것도 다 유산을 바라보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결론적으로 사람이 자기중심적으로 그리고 자기 유익에 따라 모든 관계를 맺기 때문에, 자기한테 상처를 주었으면 복수하는 것이고, 자기한테 돈이 안 되면 그 관계를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불신자는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다고 쳐도, 예수 믿는 우리는 어떠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똑같지 않습니까? 우리도 과거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기억하면서 미운마음이 들고 복수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습니까? 돈이 되면 막 성심을 다해 봉사하고, 돈이 안 된다 싶으면 소홀해지고, 또 섬겨도 억지로 귀찮은 마음으로 마지못해 하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의 신앙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입니다. 그것은 여러 가지 계명 중에 하나를 불순종한 것으로 볼 것이 아니라 근본 신앙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눈에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부모를 어떻게 섬기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회개해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예를 들어 부모가 유산상속 다해줘도, 그리고 나한테 돈이 하나도 안 돌아와도, 부모를 섬김으로써 나한테 아무 이득이 없어도, 부모를 사랑하고 공경하고 마땅함으로 감사함으로 섬기고 봉양해야 됩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자기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해준 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변화된 인격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받은 은혜를 귀하게 여기고 그 은혜를 갚을 줄 아는 인격에 있습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부모로부터 말할 수 없는 은혜를 입었기 때문에 자식은 마땅히 그 은혜에 보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설사 부모로부터 말할 수 없는 상처와 아픔을 받았어도 자식은 부모를 공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제5계명을 모든 인생들에게 명하실 때, “부모가 공경할만하면 공경해라” 라고 조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무조건적으로 “공경해라” 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부모가 공경할 만하지 않아도 공경해라는 것입니다. 왜요?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부모의 권위를 세우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관계의 질서와 권위는 하나님이 세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관계에서 우리는 사람 중심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저 사람을 나의 부모로 세우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명하셨기 때문에, 돈이 되든 안 되든, 부모가 상처를 주었든 안 주었든, 무조건적으로 부모를 공경하고 봉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이유는 그리스도의 무조건적인 은혜를 우리가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실 때 우리가 사랑받을 꼬투리가 있어서 사랑하셨습니까? 만일 그랬다면 이 세상에 구원받을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원수와 같던 우리들을 일방적으로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해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내어주셨습니다. 이 은혜가 우리의 모든 관계질서의 원리를 송두리째 바꾸어놓은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give and take...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는 원리를 따르지 않습니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아니라 겉옷을 달라는 자에게 속옷까지 주고, 오른편 뺨을 맞으면 왼편 뺨도 돌려대고, 원수를 사랑하고 자기를 핍박하는 자를 위해서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똥파리 영화의 경우처럼 아무리 부모가 잘못했어도 예수 믿는 성도라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모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고 성심껏 봉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5. 제5계명은 모든 권위에 대한 순종을 명함


그리고 이 원리는 부모를 공경하는 문제에만 국한 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관계의 질서와 권위에 대한 우리의 자세에도 적용되는 것입니다. 제5계명에서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은 단순히 육체의 부모만 공경할 것을 명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권위에 대해서 그리고 모든 윗사람에 대해서 공경할 것을 명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육신의 부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부모가 있습니다. 교회의 목회자가 바로 영적인 부모입니다.


“(15)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


그리고 우리에게는 정치적인 아버지로서 대통령을 공경해야 합니다. 나라의 왕을 우리가 국부(國父)라고 부르지 않습니까? 그리고 아내에게 남편은 집에 있는 아버지입니다. 그래서 남편을 ‘지아비(집+아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내는 남편을 공경해야 합니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선생은 사회적인 관점에서의 아버지이고, 직원에게 직장상사는 경제적인 관점에서의 아버지입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은 단순히 육체의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 모든 권위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복종하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우리는 늘 “목회자가 목회자다워야 존경하지... 대통령이 대통령다워야 존경하지... 남편이 남편다워야 존경하지... 직장상사가 직장상사다워야 존경하지...” 하는 관점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권위가 존경스럽지 않아도 하나님 때문에 존경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권위는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입니다.


“(1)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 권세는 하나님께로 나지 않음이 없나니 모든 권세는 다 하나님의 정하신 바라(2)그러므로 권세를 거스리는 자는 하나님의 명을 거스림이니 거스리는 자들은 심판을 자취하리라”(롬 13:1-2)


모든 권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났기 때문에 권세를 거스르는 것은 곧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아랫사람은 윗사람을 두려워하고 공경하며 복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공경하고 복종할 때, 대충 하는 것이 아니라 주께 하듯 해야 합니다.


“(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6)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7)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엡 6:5-7)


이쯤 되면 이제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 윗사람, 부모는 “아, 오늘 말씀 좋네... 들었지... 너희들 나 존경하고 복종해...” 그러기가 쉬운데, 그러면 안 됩니다. 제5계명은 아랫사람에게 명하신 계명이지만, 또한 역으로 윗사람에게도 요구하는 것이 있습니다. 제5계명에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네가 아랫사람으로부터 공경을 받고 싶으냐? 그러면 네가 공경 받을 짓을 해야 한다. 먼저 너 자신이 제1권위이신 하나님을 공경해라. 그리고 내가 너에게 그런 권위를 준 목적을 생각하고 너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라.” 이것을 로마서 말씀이 잘 보여줍니다.


“(3)관원들은 선한 일에 대하여 두려움이 되지 않고 악한 일에 대하여 되나니 네가 권세를 두려워하지 아니하려느냐 선을 행하라 그리하면 그에게 칭찬을 받으리라(4)그는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네게 선을 이루는 자니라 그러나 네가 악을 행하거든 두려워하라 그가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 곧 하나님의 사자가 되어 악을 행하는 자에게 진노하심을 위하여 보응하는 자니라(5)그러므로 굴복하지 아니할 수 없으니 노를 인하여만 할 것이 아니요 또한 양심을 인하여 할 것이라(6)너희가 공세를 바치는 것도 이를 인함이라 저희가 하나님의 일군이 되어 바로 이 일에 항상 힘쓰느니라(7)모든 자에게 줄 것을 주되 공세를 받을 자에게 공세를 바치고 국세 받을 자에게 국세를 바치고 두려워할 자를 두려워하며 존경할 자를 존경하라”(롬 13:3-7)


모든 정치적인 권세는 다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인데, 그것은 권세자들로 하여금 백성들을 압제하고 그들의 소유를 빼앗아서 혼자서 잘 먹고 잘살도록 하기 위해서 세우신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이롭게 하기 위해서 세우신 것입니다(4절). 모든 권세와 권위는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은총과 선을 베푸시는 하나의 방편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권위에는 아랫사람에게 유익을 줄 의무와 책임이 있습니다. 그 의무와 책임을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하나님이 그들에게 힘과 능력을 주신 것입니다. 위의 로마서 말씀처럼 하나님은 정치권력자가 자신의 권위를 잘 수행하도록 하기 위해서 칼, 곧 공권력을 주셨습니다. 교회의 목회자들에게는 천국열쇠라는 엄청난 권세를 주셨습니다. 부모에게는 자녀를 임의대로 다룰 수 있는 양육권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권위자가 그러한 하나님이 주신 힘을 이용해서 자기욕심이나 채울 목적으로 자기 마음대로 사용하여서 아랫사람을 괴롭게 하고 압제하고 군림하는 경우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성도는 그럴지라도 그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망각하고 자신의 신분과 힘을 이용하여 아랫사람을 고통스럽게 하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거라는 사실입니다.


다윗과 사울의 예가 이것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사울이 하나님께 불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버림을 받아서 하나님이 그 권위를 지지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오히려 다윗의 권위를 세워주셨습니다. 백성들도 그것을 다 아는 것이죠. 민심이 이미 다윗에게 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사울이 어떻게 합니까? 자신이 가진 힘으로 다윗을 죽이려고 하고, 백성들에게 복종을 강요하여서 스스로 권위를 주장하고 내세우는 지경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권위주의의 출발점입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마음은 이미 다윗에게로 가 있지만, 사울의 공권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울에게 복종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오래가겠습니까? 결국 사울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김정은 정권이 얼마나 오래갈 것 같습니까? 결코 오래 못 갑니다. 민심이 떠난 정권은 반드시 역사 속에서 심판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보편적인 정의과 공의에 어긋나는, 그런 불법을 행하는 정권은 절대로 오래갈 수 없습니다. 그런 권위는 힘이 없습니다. 여러분 권위주의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고, 하나님이 정하신 법대로 권위하지 아니하고, 자기마음대로 불법과 불의를 행할 때, 결국 아랫사람으로부터 존경과 지지를 못 받으니깐... 그 다음부터 어떻게 합니까? 자기 권위로 내리누르는 것입니다. “내가 누군데... 내가 아버지인데, 내가 목사인데, 내가 직장상사인데, 내가 사장인데, 내가 대통령인데, 내가 왕인데...” 하며 자기의 권위를 가지고서 힘으로 내리누르는 것이 바로 권위주의입니다.


우리가 사울과 같은 권위주의자가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내가 자식에게 그런 권위주의적인 부모가 되면 안 되고, 직장상사로서 직원들에게 그런 권위주의적인 사람이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로서 성도들에게 권위주의적인 목회자가 되면 안 됩니다. 물론 권위자가 권위주의로 아랫사람을 내리누를 때, 아랫사람은 그럴지라도 그 권위에 순종해야 합니다. 다윗이 사울의 권위를 끝까지 인정하고 사울을 존경하며 공경했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인내하는 고통은 다윗의 인생에서 보는 것처럼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것이 다윗에게 좋은 훈련이 되었다는 것도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윗사람이 불의하고 권위주의적일지라도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반발하고 대적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권위 아래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 인줄 알고, 그 권위 아래서 인내하며 순종해야 합니다. 그 고통과 인내의 시간이 아무 쓸데없는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연단하시는 시간으로 선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보시면...


답 : 나의 부모님, 그리고 내 위에 있는 모든 권위에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실함을 나타내고, 그들의 모든 좋은 가르침과 징계에 대해 합당한 순종을 하며, 또한 그들의 약점과 부족에 대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손을 통해 우리를 다스리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저같이 부족한 목회자를 만난 것도 여러분에게 상당한 인내를 요구하겠지만, 그러나 한편으로 그것이 여러분들을 성숙시키는 기회로 작용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인내를 통해서 상대방의 약함과 부족함을 인내하고 참으며 품는 법을 배우고, 또 목회자가 부족할지라도 그 목회자를 통해서 자신을 다스리시고 자신에게 유익을 주시기를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는 것을 알기에 그 목회자에게 복종함을 통해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는 법을 배우게 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완벽한 목사도 없지만, 전적으로 유익이 안 되는 쓰레기 같은 목사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 때문에 하나님이 세우신 목사를 존경하고 그 권위 아래 복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성도들에게 고통을 주는 목사는 결국 하나님이 친히 심판하실 것입니다. 목회자의 권위는 결국 성경에서 나옵니다. 바른 말씀을 증거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에서 참 목회자의 권위가 나옵니다. 성도들이 모르는 것 같아도 다 알고 있죠. 이 목회자가 정말 주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며 사는지... 다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목회자가 바른 말씀을 가르치고 그 말씀대로 살면 하나님이 친히 그 권위를 세워주시는 것입니다. 성도들에게 “목회자를 존경해라, 사랑해라” 말하지 않아도 성도들이 자원해서 그 목회자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야지 전혀 존경스럽지 않은데 하나님이 존경하라 해서 어쩔 수 없이 존경하는 그런 목회자가 된다면, 그것은 목회자 본인도 불행하고 성도들도 고통스럽습니다. 부모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전혀 공경하고 싶지 않은데, 하나님 때문에 공경하는 그런 부모가 되면 정말 부끄러운 것입니다. 인생 잘못 산 것이죠. 회사에서 직장상사가 되어가지고 직원들에게 “더럽고 아니꼽지만, 직장상사니 어쩔 수 없이 복종한다...” 이런 말을 들을 것이 아니라, “저 사람이라면 내가 기꺼이 즐거움으로 복종한다.” 이런 말을 듣는 직장상사가 되어야 합니다. 남편으로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이 정말 믿음이 있고 인자하고 존경스러운 사람이어서 그래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는 그런 남편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남편이 참으로 드문데 이런 남편을 얻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일 것입니다. 그런 경우는 남편을 공경하라는 제5계명이 부담이나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윗사람이 되어야 합니까? 아랫사람이 나에 대하여 이 제5계명을 지킴에 있어서 부담이나 어려움으로 다가오지 않는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에서 윗사람이 제대로 하면, 거의 대부분 자연스럽게 제5계명이 지켜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제5계명은 아랫사람들에게 명하는 계명이지만 역설적으로 윗사람에게 어떻게 보면 더 무거운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관계의 질서가 바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양측이 다 회개하고 노력해야 하지만, 특별히 윗사람이 먼저 회개하고 바르게 서서 그 관계를 주도해야 합니다.


“(1)자녀들아 너희 부모를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이 약속 있는 첫계명이니(3)이는 네가 잘 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엡 6:1-4)


이 에베소서 말씀이 제5계명에 대한 정확한 적용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고 순종해야 할뿐만 아니라, 부모도 자식을 노엽게 하지 않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항상 같이 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 완벽한 윗사람도 없고 완벽한 아랫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윗사람은 먼저 본인이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복종해야 합니다. 그래서 자신에게 권위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아랫사람의 유익을 위해서 헌신해야 합니다. 또한 아랫사람은 윗사람이 허물과 실수가 있어도 자신을 그 권위아래 두신 분이 하나님이신 줄 알고 그 권위에 인내하며 복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부족한 권위자를 통해서 나에게 선을 베푸시는 분이시고, 또 인내의 훈련을 시키시는 분이십니다.


6.  장수한다는 약속의 의미


그러면 이제 마지막으로 이 계명에 포함되어 있는 약속의 내용을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5계명 뒤에 순종할 때 받게 되는 상급을 언급하셨습니다. 그것은 땅에서 잘되고 장수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정말 부모님께 효도하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것일까요? 소요리문답은 우리의 질문에 이렇게 답하고 있습니다.


66문 : 제5계명이 지켜야 할 이유가 무엇입니까?
답 : 제5계명을 지켜야 할 이유는 이 계명을 지키는 모든 사람에게 장수하고 잘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그들에게 선이 되는 한 그렇습니다.


소요리문답은 그 구약의 약속이 오늘날 우리에게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합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땅에서 잘되고 장수하는 비결은 진실로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에 있습니다. 물론 여기서 잘된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세상에서 출세하고 돈을 많이 벌고, 건강하고, 무슨 재앙을 만나지 않고 평안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런 것들을 전혀 배제하는 것은 아니나 잘되는 것의 기준이 세속적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진정한 잘됨은 하나님의 뜻과 목적에 부합하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소요리문답은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그들에게 선이 되는 한 그렇습니다.”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즉 우리가 건강한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는 건강한 것이 잘되는 것이고, 우리가 병들고 죽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면 병들고 죽는 것이 잘되는 것입니다. 기준이 세속적인 복의 개념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죠.


그리고 장수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분명 5계명을 잘 지키면 (논리적으로 보더라도) 장수할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왜냐하면 부모는 늘 자식의 건강을 생각하고 자식의 유익을 위해서 말하기 때문에, 그 부모의 말을 잘 따르면 그만큼 건강한 삶을 오래도록 유지할 가능성이 많게 되는 것입니다. 부모말씀에 청개구리처럼 무조건 반대로 하면 일찍 객사할 가능성이 다분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5계명을 잘 지키면 무조건 장수한다고 볼 수는 없습니다. 소요리문답이 제시하는 조건을 잘 볼 필요가 있죠. 소요리문답은 하나님에게 영광이 되고 우리에게 선이 되는 한 그렇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부모를 잘 공경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찍 죽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고 그 자신에게 선이 된다면 일찍 죽을 수도 있다 하는 것입니다. 꼭 시간적으로 오래 살아야 장수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오히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정하신 연수를 다 채우는 것이 장수일 것입니다. 영원의 관점에서 보면 70년 산 사람이나 20년 산 사람이 별반 차이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제5계명이 약속하는 복과 장수의 본질은 결국 영원한 새 하늘과 새 땅에서의 복됨과 영생에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제5계명을 통해 윗사람으로서, 그리고 아랫사람으로서 의무와 책임이 무엇인지 배웠습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모든 권위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복종함으로써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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