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014.08.30 19:2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0주(105문,106문,107문) - 제6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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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105-107문
문답내용 105문 : 제6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해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그리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도 안 되며, 오히려 모든 복수심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해쳐서도 안 되고 부주의하게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기 위해서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106문 : 그런데 이 계명은 살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금함으로써 살인의 뿌리가 되는 시기, 증오, 분노, 복수심 등을 미워하시며, 이 모든 것들을 살인으로 여기신다고 가르칩니다.

107문 :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우리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입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증오와 분노를 정죄하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여, 인내와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친절을 보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며, 심지어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강설날짜 2014-08-1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0주(105-107문)


제6계명


요절 : 마 5:21-26


105문 : 제6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해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그리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도 안 되며, 오히려 모든 복수심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해쳐서도 안 되고 부주의하게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기 위해서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106문 : 그런데 이 계명은 살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금함으로써 살인의 뿌리가 되는 시기, 증오, 분노, 복수심 등을 미워하시며, 이 모든 것들을 살인으로 여기신다고 가르칩니다.


107문 :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우리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입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증오와 분노를 정죄하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여, 인내와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친절을 보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며, 심지어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지난주에 우리가 제5계명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제5계명은 모든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 그리고 더 나아가 모든 인간관계에서의 의무를 명하는 계명입니다. 그리고 그 의무의 본질은 사랑인데, 그것은 결국 6-10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래서 제5계명은 두 번째 돌판의 모든 계명을 아우르는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러한 모든 인간관계에 있어서 행해야 할 첫 번째 의무로서 “살인하지 말라”라고 하는 제6계명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1. 살인은 하나님의 형상의 파괴


살인이 매우 큰 죄라고 하는 사실은 신자들뿐만 아니라 불신자들도 다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살인이 왜 큰 죄가 되는지에 대해서는 서로 생각하는 바가 다릅니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은 단순히 살인이 타인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기 때문에... 그래서 그 타인으로 하여금 엄청난 고통 속에서 죽게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큰 죄가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들은 살인죄를 단순히 그런 인간적인 입장에서만 접근할 것이 아니라, 성경적으로 하나님과 관련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살인에 대해서 성경이 뭐라고 말합니까?


“(6)무릇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창 9:6)


성경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사람 죽이는 것을 매우 큰 죄로 규정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타락했어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죽이는 것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훼손하는 것입니다. 설명하자면 이런 것이죠. 로마황제가 자기가 정복한 지역에다 자기 형상을 새겨놓는데, 어떤 사람이 그 형상을 훼손할 시에는 반드시 그 사람을 잡아다가 황제를 해친 자로 간주하여 반역죄로 참수시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아... 나는 그냥 이 형상이 짜증났을 뿐이지 황제에게 나쁜 마음먹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말해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사람을 죽이는 것은 바로 하나님 그분 자신을 침입해 들어가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인죄는 매우 극악한 죄로서 하나님께서 결코 간과하지 않으시고 반드시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어떻게 심판하십니까? 위의 창세기 구절에서 “무릇 사람이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그 살인자를 죽이심으로써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게 죽이실 때 하나님은 세상의 정권을 사용하십니다(롬 13:4). 성경은 철저하게 사형 제도를 찬성합니다. 어떤 사람은 범죄자도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말하면서 사형 제도를 반대하는데, 그러나 그것은 성경의 관점을 완전히 거꾸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 범죄자가 하나님의 형상을 죽였기 때문에 사형시켜야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마지막 문장에서 “살인을 막기 위해서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최초의 살인자


그래서 재미있는 것은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기 때문에 사단 마귀가 사람을 그렇게 미워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어떤 미워하는 원수가 있으면, 그 원수의 자식도 밉습니다. 왜냐하면 그 자식을 보면 그 원수가 생각나기 때문입니다. 닮았으니까요. 마찬가지로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사단마귀는 사람이 그렇게 미워보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마귀가 처음에는 천사였다가 어느 순간에 타락했을 텐데, 그때 혼자 멸망당하는 것이 아니라, 이 땅에 내려와서는 첫 사람 아담을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그래서 아담을 유혹해서 그로 범죄하게 하여 결국 하나님의 형상을 잃게 만들고, 궁극적으로는 흙으로 돌아가게 만들었던 것이죠. 그러므로 최초의 살인자는 가인이 아니라, 사단마귀입니다. 최초의 하나님의 형상파괴자는 사단 마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단마귀를 일컬어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요 살인자라고 말씀하셨던 것입니다(요 8:44).


뿐만 아니라 이 사단마귀는 범죄한 인생들을 지배하면서 인생들끼리 서로 싸우고 갈등하고 살인하게 만들어서 사람 가운데 남아있는 이 하나님의 형상을 끊임없이 파괴하는 일을 지금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특별히 그 일을 교회에 집중적으로 힘써 행합니다. 왜냐하면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 자들로서 사단마귀가 제일 꼴 보기 싫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단마귀는 어찌하든지 성도들끼리 서로 미워하게 만들고 싸우고 갈등하게 만들기 위해 모든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래서 교회로 하여금 서로 살인하게 만들어서 그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 사단의 속임수에 넘어가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가 사단마귀의 궤계를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 미워하고 싸워서 교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우리 안에 회복된 하나님의 형상을 더욱 세워가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라고 말했습니다(갈 4:19). 우리는 사도바울과 같이 상대방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세워가는 일을 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해산의 수고가 따릅니다. 왜냐하면 형제의 허물을 용서하고 용납하며 품고 섬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우리의 이기적인 본성이 깨트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성령을 의지하여 서로서로 하나님의 형상을 세우기 위해서 해산의 수고를 감당해야 합니다. 이것이 제6계명을 참으로 지키는 길입니다.


3. 부주의로 인한 살인


계속해서 살인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살인은 곧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귀한 존재인줄 알고, 생명을 존귀히 여기고, 사람을 존중하며, 어떤 이유에서든 사람의 생명을 해치거나 빼앗아가는 죄를 범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105문 : 제6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거나 그들을 미워하거나 해치거나 죽이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나는 생각이나 말이나 몸짓으로 무엇보다도 행동으로 그리해서는 안 되고, 다른 사람을 시켜서 해도 안 되며, 오히려 모든 복수심을 버려야 합니다. 더 나아가 자기 자신을 해쳐서도 안 되고 부주의하게 위험에 빠뜨려서도 안 됩니다. 그러므로 살인을 막기 위해서 국가는 또한 칼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우리가 사람을 죽이는 것만 살인죄가 아니라, 이웃의 명예를 훼손하는 것, 그리고 그들을 마음으로 미워하는 것, 그리고 폭력과 청부살인, 그리고 자살도 하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부주의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과 타인을 위험에 빠뜨리는 것도 살인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오늘날 부주의하게 행동하다가 갑작스런 사고를 당해서 죽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다 자기 스스로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자살행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생존을 위해 주신 눈과 귀와 코와 모든 감각기관을 잘 사용해서 작업을 하거나 길을 다닐 때 항상 앞을 잘 살피고 안전사고에 주의를 기울여서 부주의로 인해 사고를 당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소위 익스트림 스포츠(extreme sports)라고 해서 아주 위험한 상황에서 스릴을 즐기는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우리는 그러한 문화를 멀리해야 마땅합니다. 유투브에 보면 정말 아찔한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층빌딩이나 구조물에서 한손으로 매달려 있거나, 고층빌딩 사이로 외줄타기 하거나, 아무런 안정장치 없이 암벽 등반을 하는 등... 보고만 있어도 손에 땀이 나고 심장이 쫄깃해지는 그런 아찔한 동영상들이 많이 올라와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도전하고 모험하는 것을 좋아하고, 또 그렇게 도전할 때 주위 사람들이 보고서 박수치며 대단하다고 치켜세워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들은 하나님 편에서 보면 스스로 위태한 상황에다 두는 매우 지혜가 없는 어리석은 행위입니다. 물론 우리가 안전장치가 잘 갖추어진 놀이기구나 익스트림 스포츠는 얼마든지 즐길 수 있습니다만, 그런 안전장치 없이 스릴을 즐기는 것은 자살행위와 다를 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그러한 무모한 모험문화를 경계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자기 자신만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타인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는 것도 제6계명이 명하는 중요한 내용입니다. 율법에도 보면 소를 간수하지 않아서 그 소가 타인을 들이받아 죽일 때에는 소도 죽이고 그 주인도 죽이도록 하였습니다(출 21:29). 그리고 집 옥상에 난간을 만들어 놓도록 했는데, 부주의함과 게으름으로 난간 안 만들었다가 누군가가 거기서 떨어져서 죽으면 그 피에 대한 책임을 집주인이 지도록 하였던 것입니다(신 22:8). 그러므로 아무리 직접적인 고의성이 없다 하더라도 과실치사로 인해 사망할 시에는 그것이 암묵적인 고의성으로 인정되어 살인죄에 해당된다는 것을 우리가 유념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번 세월호 사건도 결국 그러한 부주의로 인한 인재로서 살인사건으로 봐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만 생각하는 이기주의, 그리고 모든 것을 대충대충 하는 부주의와 안전 불감증... 이런 것들이 복합적으로 엮어져서 터진 것이 바로 세월호 사건입니다. 그래서 선장부터 해서 승무원들, 그리고 그 배를 운영하는 해운사 직원들과 간부들, 그리고 그 배를 검사하고 감시하는 공무원들... 모두 다 이 피 흘린 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이 그 사람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부주의와 안전불감증, 대충대충 하는 습관들을 버려야 합니다. 오히려 우리는 매사에 나라가 정한 안전규정과 법규를 철저하게 지키고 또 자신과 타인의 안전을 최우선시하여 모든 일을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4. 살인과 살인이 아닌 것


그러면 이쯤에서 우리가 생각해볼 것은 모든 살인이 다 악한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모든 고의적인 살인과 청부살인, 낙태, 안락사, 자살 같은 경우는 명백하게 살인이지만, 사람을 죽여도 살인이 아닌 경우가 또한 있는 것입니다. 먼저 정당방위는 살인이 아닙니다. 율법에 보면, 도둑이 들어왔는데 밤에 실랑이를 벌이다가 그 도둑을 죽이게 되었을 때는 정당방위로서 살인이 아닙니다(출 22:2-3). 그러나 낮에 그러면 그것은 살인입니다. 왜냐하면 정당방위는 언제나 상대방을 제압하는 것까지만 허용되기 때문입니다. 밤에는 보이지 않기 때문에 도둑을 제압하려다가 원치 않게 죽일 수가 있는 것이지만, 낮에는 확실히 제압만 할 수 있는데 죽인 것이므로 고의성이 있다고 판단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전쟁도 살인이 아닙니다. 적군이 침입했을 때, 그들은 넓은 의미에서 온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위협하는 강도입니다. 그래서 여호와 증인처럼 살인할 수 없다고 해서 칼과 방패를 손에서 놓아버리는 것은 적군들로 하여금 온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빼앗도록 하는데 일조한 셈이 되는 것입니다. 방관한 죄도 똑같은 죄라고 우리가 이미 배웠죠. 그러므로 전쟁하지 않는 것은 더 큰 살인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때는 적군을 섬멸하여 나라를 지켜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살인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로 법집행을 통해 사형수를 사형시키는 것도 살인이 아닙니다. 네 번째로 부주의가 아닌, 순전히 우발적인 사고로 인해 타인이 죽게 되었을 때, 그것 역시 살인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고의성이 없기 때문입니다.


5. 제6계명은 결국 마음의 문제


그러므로 결국 여기서 드러나는 아주 중요한 사실은 고의성이 있느냐 없느냐로 살인이냐 아니냐가 결정된다 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고의성의 본질은 바로 그 상대방을 향한 미움과 복수심입니다. 사실 상대방에 대한 미움과 복수심이 살인죄의 근본 원인인 것입니다. 제6계명을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사람 죽이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 미움과 복수심도 살인입니다.


106문 : 그런데 이 계명은 살인에 대해서만 이야기합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살인을 금함으로써 살인의 뿌리가 되는 시기, 증오, 분노, 복수심 등을 미워하시며, 이 모든 것들을 살인으로 여기신다고 가르칩니다.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사람을 미워하지 않습니다. 물론 정신병자들이나 아주 악한 사람들 중에는 아무 이유 없이 사람들을 미워하고 폭력을 가하고 무차별 살인을 행하는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그런 경우는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고, 대부분은 원한관계가 있기 때문에 살인을 행하는 것입니다. 뭔가 그 사람으로 인해서 내가 피해를 입고 상처를 받고 고통을 받게 되었을 때, 우리 마음속에는 그 사람을 향한 분노, 미움, 복수심이 끓어오르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살인입니다.


“(21)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22)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마 5:21-22)


사람이 괜히 형제에게 노하겠습니까? 괜히 형제에게 ‘라가’라고 욕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무시하겠습니까? 다 그 형제가 잘못을 했든지 어떤 어리석을 행동을 했기 때문에 그렇게 대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유야 어찌되었든 예수님은 그렇게 형제를 미워하고 형제에게 화를 내며 욕하는 것이 곧 살인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말씀이 사실은 우리에게 충격적인 말씀으로 다가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화를 내고 미운 마음을 품고 살아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우리는 엄밀히 말해 날마다 수십 명씩을 살해하며 살아가는 끔찍한 연쇄살인범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그런 끔찍한 살인자라고 생각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보통 우리는 그것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우리는 사람을 미워하는 것을 아주 사소한 죄로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람을 찔러 죽인 죄보다도 훨씬 작은 죄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맞습니까? 틀립니까? 사실 틀린 생각은 아닙니다. 죄에는 분명 경중이 있습니다. 확실히 살인이 미워하는 것보다도 훨씬 더 악한 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죄의 경중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죄의 본질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미움과 살인이 죄의 본질과 관련하여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옥수수를 심었는데, 싹이 났을 때와 아주 커서 열매를 맺을 때를 비교할 때, 그 둘의 모양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그러나 그 둘을 동일한 옥수수라고 부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마찬가지로 살인은 미움이 자라 절정에 이른 열매에 불과한 것이고 결국 미움이나 살인이나 하나님 보실 때는 본질적으로는 동일한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미움을 “살인의 뿌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이 관을 가져야 합니다. 미운 마음을 품고, 욕 한마디 하는 것을 우리가 결코 사소하게 생각면 안 되고, 정말 그것이 사람을 칼로 안 찔렀다 뿐이지 살인한 것이나 다름없는 심각한 죄임을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십니까?


“(23)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 들을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24)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 5:23-24)


이것이 참 어려운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미워하는 것이 살인이라고 말씀하셨으면 그 다음에 무슨 말씀을 하셔야 자연스럽습니까? “그러므로 미워하지 마라... 형제의 죄를 용서해라...” 이렇게 말씀하셔야 그 문맥이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것을 말씀하지 않으시고 형제에게 원망 들을 일을 한 자가 그 형제에게 가서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런 것이죠. 어떤 사람이 잘못을 하여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입혔으면, 피해자는 상처와 고통 속에서 가해자를 향해 미움과 복수심을 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움은 곧 살인이므로 피해자는 이미 가해자를 살해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때문에 피해자는 반드시 하나님 앞에서 가해자를 미워한 죄를 회개하고 가해자의 죄를 마음에서부터 용서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날 일이 아닙니다. 피해자의 마음속에 시작된 용서는 이제 실제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의 관계회복으로 완성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관계회복의 키(key)를 가해자가 가지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찾아가서 “당신이 이러 이렇게 나한테 잘못을 했는데, 내가 당신을 미워하다가 마음을 고쳐먹고 용서하기로 했다. 우리 화해하자” 그렇게 이야기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관계회복은 먼저 가해자가 자기 죄를 깨닫고 피해자에게 가서 용서를 구하고, 이에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용서를 선언하고 그 가해자를 사랑으로 용납함으로써만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피해자의 미운 감정에 대해 이야기를 하시면서 그와 동시에 관계회복을 위해 가해자의 의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피해자와 가해자 양쪽의 의무를 다 명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결국 미워하는 자도 살인이지만, 또한 형제에게 죄를 범하여 자기를 미워하도록 원인을 제공하는 것도 똑같은 살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제6계명은 타인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중하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하나님의 형상답게 거룩하게 살고 타인에게 선을 행하면서 살아감으로써 칭송을 받아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문제를 자꾸 일으키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고... 그래서 형제자매들로 하여금 자신을 미워하게끔 스스로 원인을 제공하는 것은 바로 자기 스스로 자신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해치는 것입니다. 그것은 자살입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미워하여 살인하도록 칼자루를 쥐어준 사람이 바로 자기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예배드리기 전에 먼저 서로 용서하고 용서를 받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손에 피가 가득한 채로 예배드리는 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예배를 받지 아니하십니다. 왜요? 그들의 손에 피가 가득했기 때문입니다. 무슨 피입니까?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며 그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는 살인을 행한 것입니다. 그러한 삶을 살면서 예배당에 와서는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남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오. 우리 마음속에도 어느 누구를 향한 미움과 쓴뿌리와 불신이 있지 않습니까? 그런 미운 마음을 회개치 않고 예배 나오는 것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칼 한 자루씩 들고서 예배당에 나와 있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예배를 가증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를 드리기 전에 형제를 미워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파괴한 자신의 죄를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형제에게 원망들을 일을 한 것이 기억나면 그 즉시로 형제에게 가서 용서를 구해서 화해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것입니다.


6. 어떻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가


그래서 제6계명에서 핵심은 용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복수심을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도리어 그 사람을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도 사랑하라고 명하셨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보십시오.


107문 : 앞에서 말한 방식으로 우리 이웃을 죽이지 않으면, 그것으로 이 계명을 다 지킨 것입니까?
답 :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시기와 증오와 분노를 정죄하심으로써 우리가 우리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여, 인내와 화평과 온유와 자비와 친절을 보이고,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그들을 해악으로부터 보호하며, 심지어 원수에게도 선을 행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은 미워하지만 않으면 제6계명 다 지켰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요한일서에 보면 사랑하지 않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라고 말했습니다(요일 3:14-15). 결국 제6계명이 요구하는 것은 사랑까지 가야 하는 것입니다.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힘으로 가능합니까? 자식도 속 썩일 때는 미워죽겠는데, 피한방울도 섞이지 않은 사람을... 그것도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손양원 목사님도 자기 아들을 죽인 원수가 사랑스러워서 사랑한 것이 아닙니다. 손양원 목사 딸이 아버지에게 “어떻게 저런 사람을 내 양 오빠로 삼아야만 합니까?” 그렇게 말했을 때, 손양원 목사가 “성경이 명령하고 있지 않느냐? 나도 사랑하지 못하겠는데, 성경이 명령하니깐 하는 거야...”라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즉 이것은 고통 속에서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뜻에 쳐서 복종시킨 것입니다. 이것이 진짜 순종이요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입니다. 어떤 순종은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소원을 주셔서 우리가 자원하여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순종은 정말 하기 싫은데, 하나님의 명령이기 때문에 자기의 의지를 꺾고 쳐서 복종시키는 순종도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예수님의 감람산 기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에서부터 일향 십자가 지고자 하는 자원하는 심령으로 충만하신 가운데 십자가 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도 인성의 의지로는 십자가 지는 것을 심히 싫어하셨습니다. 그러나 감람산에서 기도하시면서 자기가 십자가를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기에 자신의 의지를 쳐서 복종하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주님이 친히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음이 내키든 안 내키든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 주님의 뜻이기에 거기에 우리의 의지를 쳐서 복종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정말 마음에서부터 원수를 사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가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하는 유일한 원동력은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입니다. 우리가 구속의 은혜를 깊이 깨달을 때, 비로소 원수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일만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가 잘 보여줍니다. 일만달란트 빚진 자 비유에서 핵심이 무엇입니까? 저 사람이 나한테 잘못한 것은 백 데나리온에 불과하지만, 내가 하나님께 잘못한 것은 일만 달란트에 해당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백 데나리온만 빚져도 너무나 고통스럽고 힘들어서 죽을 것만 같고, 그 사람에 대한 분노와 미움과 끓어오르는 복수심을 주체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일만 달란트 빚진 주님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가 나에게 상처를 주고 고통을 주었을 때, 그래서 내 마음에 미움과 복수심이 불타오를 때, 그 상처와 아픔을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합니까? 주님이 나 때문에 얼마나 고통스러워 하셨을지, 그리고 나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이 얼마나 분노하셨을지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과거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모르고 반역하고 거역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땅에 짓밟고 살아가던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따라서 무한한 복수의 심판을 받아 마땅한 죄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일방적으로 사랑하사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어주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값없이 용서해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스런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시켜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는다면, 어떻게 고작 일백데나리온 빚진 형제를 향해 미움과 복수심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예수님의 용서의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는다면, 우리는 주님 앞에 눈물로 엎드릴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 은혜 안에서 원수를 향한 미운 마음들과 복수심들이 다 녹아져 내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매일매일, 매순간 십자가 은혜 붙들고,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고, 그런 미움의 감정들을 죽이고 부인함으로써 형제를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하신 주님의 뜻에 복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먼저 주님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닫도록 도와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 은혜 안에서 성령을 힘입어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아감으로써 제6계명을 참으로 지키며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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