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014.09.10 18:2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2주(110문,111문) - 제8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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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110-111문
문답내용 110문 : 제8계명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께서는 국가가 법으로 처벌하는 도둑질과 강도질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고, 이웃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시도하는 모든 속임수와 간계를 도둑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들은 폭력으로 혹은 합법성을 가장하고서 일어날 수 있는데 곧 거짓 저울이나 자나 되, 불량품, 위조 화폐나 고리대금과 같은 일, 기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든 탐욕을 금하시고, 그의 선물들이 조금이라도 잘못 사용되거나 낭비되는 것을 금하십니다.

111문 :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이웃의 유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내가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일해서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강설날짜 2014-08-2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2주(110-111문)


제8계명


요절 : 엡 4:28


110문 : 제8계명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께서는 국가가 법으로 처벌하는 도둑질과 강도질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고, 이웃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시도하는 모든 속임수와 간계를 도둑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들은 폭력으로 혹은 합법성을 가장하고서 일어날 수 있는데 곧 거짓 저울이나 자나 되, 불량품, 위조 화폐나 고리대금과 같은 일, 기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든 탐욕을 금하시고, 그의 선물들이 조금이라도 잘못 사용되거나 낭비되는 것을 금하십니다.


111문 :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이웃의 유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내가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일해서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우리


오늘은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제8계명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우선 도둑질이라는 말 자체가 전제하고 있는 것은 사유제산제도가 정당하다는 것입니다. 각자가 자신만의 재산을 소유할 수 있어야지만 훔치는 것이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도둑질이란 남의 소유를 주인의 동의 없이 몰래 훔쳐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도둑질을 생각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 세상에서 가장 악한 도둑질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11)하늘이 주의 것이요 땅도 주의 것이라 세계와 그 중에 충만한 것을 주께서 건설하셨나이다”(시 89:11)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피조물로서 주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의 범죄로 우리가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주권에 반역하면서 우리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도둑질했습니다. 내가 주님의 것인데, 그것을 도둑질해서 내 것으로 삼아, 내 인생이 내 것 인양 그렇게 주인행세하며 내 마음대로 사는 것이죠. 그것이 가장 악한 도둑질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그렇게 강도요 도둑으로 살았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런 우리를 값없는 은혜로 말미암아, 그 피로 값 주어 다시 사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욱 주님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구원받은 우리가 매일 매일을 주님의 것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 내 인생, 내 재능, 내 시간, 내 소유, 내 가족... 전부 주님의 것인데, 우리가 그것을 인정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소유권은 곧 사용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마땅히 주님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어떻게 살아가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여전히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한다면, 그것이야말로 가장 악한 도둑질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인생의 주인이 되어서 자기 마음대로 살면, 암만 이 땅에서 도둑질 안하고 착하게 살아도 소용없습니다. 내가 가장 악질의 강도요 도적입니다. 율법 앞에서 우리가 늘 깨닫는 것은, 성령이 조명하시기 전에는 그런대로 착한 사람이라고 스스로 생각했는데, 성령이 조명하시는 가운데 말씀의 의미를 배우니깐, 내가 바로 부모를 공경하지 않은 자요, 살인자요 간음자요 도적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8계명을 배우면서 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 도적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2. 청지기 자세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나에게 주신 모든 것들, 내 생명 그리고 내가 소유한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잠시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이 맡기신 것들을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청지기는 1세기 로마 당시에 주인의 재산을 맡아서 관리하고 경영하는 종을 일컫는 말입니다. 그냥 잘 보관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경영해서 부의 증진을 이루는 사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각 사람의 재능에 따라 달란트를 주셨습니다. 받은 달란트로 열심히 장사해서 이윤을 남기는 것을 목적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이 그것으로 아무것도 안하고 땅속에 숨겨놓았다가 주인이 왔을 때 그대로 돌려주었습니다. 아마도 종은 한 달란트로 장사하다가 잘못해서 그 한 달란트마저 날려먹느니 차라리 그냥 잘 보존하는 것이 낫겠다 싶어 땅 속에 숨겨놓았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이 얼마나 얼토당토 않는 생각입니까? 주인이 그저 한 달란트를 잘 보존할 생각이었으면, 그 한 달란트를 종에게 줄 필요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없습니다. 그냥 은행에 넣어두면 되고, 은행에 넣어두면 이자까지 생깁니다. 한 달란트를 종에게 준 것은 열심히 장사해서 이윤을 남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주인의 의도와 목적을 망각하고, 그 한 달란트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본전이라도 잃지 않고 돌려주겠다는 생각은 사실 변명에 불과한 것이고, 악하고 게을러서 일하기 싫어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안한 것입니다. 그것은 한 달란트로 열심히 장사했다면 벌어들였을 그 이윤을 이 종이 도둑질한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생명주시고, 재능을 주시고, 사랑하는 가족을 주시고 돈을 주신 것은 어떤 분명한 목적을 위해서 우리에게 잠시 맡기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청지기적인 자세를 가지고, 나와 나의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면서, 이 모든 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이루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목적은 하나님 자신의 영광, 그리고 하나님 나라의 영광입니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소유한 모든 것을 쏟아 붓는 자는 결국 마지막 때에 주님 앞에서 칭찬 받는 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목적을 망각하고, 그냥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결국 마지막 때에 한 달란트 받은 종처럼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8계명 “도적질 하지 말지니라” 라는 계명 앞에서 가장 먼저 우리 안에 있어야 할 일은 내가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있는 이 교만의 자리에서 내려와서, 정말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한 나의 죄악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나의 주요 왕으로 모시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


3. 돈에 대한 청지기적 자세


그런데 예수님을 나의 주요 왕으로 모시고 산다는 것이 말은 쉬운데, 실제로 그렇게 사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내 생명, 내 건강, 내 재능, 내 시간, 내 돈, 내 가족을 다 주님 뜻대로 사용해야 하는 것인데,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돈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겠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가진 돈이 여러분의 것이 아니라 주님의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그 돈을 어디에다가 어떻게 쓸지는 반드시 일일이 다 하나님의 허락을 맡고 써야 합니다. 그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하나님의 지시사항이 성경에 있습니다.


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자기와 자기의 가족을 위해서 써야 함.


“(18)사람이 하나님의 주신 바 그 일평생에 먹고 마시며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 중에서 낙을 누리는 것이 선하고 아름다움을 내가 보았나니 이것이 그의 분복이로다(19)어떤 사람에게든지 하나님이 재물과 부요를 주사 능히 누리게 하시며 분복을 받아 수고함으로 즐거워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라”(전 5:18-19)


먼저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기신 돈은 우리가 열심히 일한 것에 대한 대가로 우리에게 주신 분복이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그 돈을 우리 자신을 위해 씁니다. 자기를 위해 쓰는 것이 무조건 이기적인 행위라고 볼 수 없습니다. 아래 말씀과 같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는 마음으로 자기를 위해서 쓰는 것은 성도의 마땅한 행실입니다.


“(11)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12)이는 외인을 대하여 단정히 행하고 또한 아무 궁핍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살전 4:11-12)


만일 우리가 이 땅에서 아주 가난하고 비참하게 된다면, 결국 하나님의 영광이 짓밟히게 되기 때문에, 돈을 벌어서 궁핍함이 없이 단정히 행하기 위해서 자기를 위해 돈을 써야 합니다. 그리고 자기를 위해서 쓴다는 말에는 확장된 자아로서 가족을 위해서도 써야 함을 포함합니다.


“(8)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딤전 5:8)


즉 돈을 벌어서 그 돈으로 가족들의 필요를 채워주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우리가 시키지 않아도 대부분 잘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기까지는 본성으로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다음부터는 우리의 본성과는 정반대입니다.


② 구제하는데 써야 함.


“(28)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엡 4:28)


이 구절은 제8계명의 궁극적인 의미입니다. 즉 돈을 벌어서 구제하는데 써야 합니다. 흔히들 “구제하지 않는 것은 도둑질 하는 것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잠언서에 보면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 3:27) 라고 했습니다. 구제는 마땅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구제는 나의 것을 희생하여 남에게 주는 것이 절대로 아닙니다. 주님의 것으로 가지고서 주님의 뜻을 따라 전달해주는 것입니다. 구제하지 않는 것은 곧 주님의 것을 도둑질하는 것이요, 가난한 사람에게 돌아갈 몫을 내가 강제로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제하는데 써야 합니다.


③ 목회자의 생활비를 지원함


그리고 목회자의 생활비를 공급해주어야 합니다.


“(22)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 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23)네 하나님 여호와 앞 곧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에서 네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를 먹으며 또 네 우양의 처음 난 것을 먹고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24)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이 네게서 너무 멀고 행로가 어려워서 그 풍부히 주신 것을 가지고 갈 수 없거든(25)그것을 돈으로 바꾸어 그 돈을 싸서 가지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곳으로 가서(26)무릇 네 마음에 좋아하는 것을 그 돈으로 사되 우양이나 포도주나 독주등 무릇 네 마음에 원하는 것을 구하고 거기 네 하나님 여호와의 앞에서 너와 네 권속이 함께 먹고 즐거워할 것이며(27)네 성읍에 거하는 레위인은 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자니 또한 저버리지 말지니라(28)매 삼년 끝에 그 해 소산의 십분 일을 다 내어 네 성읍에 저축하여(29)너의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는 레위인과 네 성중에 우거하는 객과 및 고아와 과부들로 와서 먹어 배부르게 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손으로 하는 범사에 네게 복을 주시리라”(신 14:22-29)


이스라엘 백성들은 기업이 없는 레위인들을 위해서 십일조를 드렸고, 또 축제와 잔치를 위해 별도의 십일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삼 년째 되는 해에는 자신들의 축제와 잔치를 위한 십일조를 자신이 거하는 성읍의 창고에 저축해서 고아와 과부, 레위인들로 하여금 배부르게 먹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토지소산의 10분의 2를 이와 같이 사용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원리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교회 성도들은 자신의 수입의 일부로 구제에 쓰고, 또 목회자의 생활비를 위해서 씁니다. 오늘날 문자적 의미에서 십일조는 의미가 없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십일조가 성취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십일조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목회자의 생활비를 책임진다는 십일조의 정신은 그대로 유효합니다. 그러면 온 교회 성도들이 각기 얼마만큼 헌금하여 목회자들의 생활비를 책임져야 할지는 각 개인의 성도들이 알아서 결정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의 실용적이고 보편적인 원리를 추천 드리자면, 각기 자신의 소득의 십분의 일 정도를 목회자의 생활비와 교회 운영을 위해 헌금하는 것이 적당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인구비율과 레위인의 인구비율, 그리고 가난한 자의 비율을 생각할 때 각자 토지소산의 십분의 일을 레위인들을 위해, 그리고 별도의 십분의 일은 가난한 자들 위해, 그리고 십분의 8은 자신들을 위해서 쓰면 얼추 다 풍족하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비율이 오늘날의 일반적인 교회의 상황에서 성도들의 비율, 목회자의 비율, 가난한 자들의 비율과 얼추 비슷합니다. 물론 항상 들어맞는 것은 아니지만, 이 비율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적용되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오늘날에도 각자 소득의 십분의 일 정도는 목회자의 생활비로, 그리고 별도의 십분의 일은 구제하는데 쓰고, 나머지 십분의 8정도는 자기를 위해서 쓰면 얼추 다 풍족하게 돌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상황에 따라서는 그 비율이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율법의 조문을 따라 십일조를 지키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교회에 가난한 자들이 많으면 구제의 비율을 높여야 할 것이고, 교회가 개척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성도가 적다면, 목회자 생활비의 비율을 높여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개혁교회 가운데 십일조가 비성경적이라고 주장하면서 교회 성도들로 하여금 십일조를 하지 못하도록 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좋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가 어떤 형태로든 목회자들의 생계비를 책임져야 한다는 그 십일조의 정신까지 없애버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많은 개혁파 교회를 보면, 그저 각기 자원하는 마음으로 자율적으로 헌금하기만 하면 충분한 것으로 가르치고, 교회 성도들이 목회자의 생계비를 책임지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해 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자원해서 드리라고 하면, 그리고 목회자의 생계비를 책임지는 것이 마땅한 의무이며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도둑질이라는 의식이 없으면, 당연히 죄악된 인간으로서는 인색하게 드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개혁파 교회가 십일조를 없애면서 재정적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 그것은 목회자의 가르침이 지나치게 한쪽으로 치우쳤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성도들로 하여금 이러한 사실을 충분히 인식할 수 있도록 가르쳐서 각기 어떻게 얼마만큼 헌금해야 목회자의 생활을 넉넉하게 책임질 수 있는지에 대한 충분한 고민 속에서 헌금하도록 도와야 할 것입니다. 보편적인 상황이라면 자신의 소득의 십분의 일 정도를 헌금하도록 도우면 충분할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지만, 십일조와 구제는 자기의 것을 희생해서 선심 쓰는 게 아닙니다. 그것으로 공로삼지 마십시오. 도리어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이 도둑질이 됩니다. 십일조는 마땅한 것입니다. 주님의 것을 가지고서 주님의 지시하심을 받아 전달해줄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 돈을 받는 목회자와 가난한 자들은 그러한 공급에 대해 먼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목회자들이 성도들의 호의를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면 곤란합니다. 성도 편에서는 마땅함으로 당연한 것으로 드려야 하고, 그 돈을 받는 목회자와 가난한 자는 그러한 호의를 베풀어준 성도들에게도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하나님이 넘치는 복으로 채워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해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랑과 은혜의 나눔입니다.


그러면 앞서 말한 것처럼 상황에 따라 목회자의 생활비, 그리고 가난한 자를 위한 구제비의 비율이 높아질 수 있다고 했는데, 어디까지 높여야 합니까? 이 점에 대해서 예수님은 산상수훈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40)또 너를 송사하여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가지게 하며(41)또 누구든지 너로 억지로 오리를 가게 하거든 그 사람과 십리를 동행하고(42)네게 구하는 자에게 주며 네게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마 5:40-42)


예수님께서는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도 주라고 하셨습니다. 그 당시 사회에서 겉옷이란 생존의 기본권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막이나 광야에서 얼어 죽지 않기 위해 이불 대용으로서 겉옷을 입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빚을 져서 겉옷을 전당잡혔다 하더라도 해가 지기 전에는 반드시 돌려줄 것을 율법은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의 생존문제와 직결된 인간의 기본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남을 위해서는 자신의 생존 기본권까지도 내어놓을 수 있어야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남에게 베푸는데 한계가 있어서는 안 된다 하는 것입니다. 42절에 예수님께서는 구하는 자에게 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하는 데로 다 주어라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는 내가 줄 수 있는데, 그 이상은 줄 수 없다고 선을 그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을 도울 때 얼마를 도와줄 것인가 하는 것은 내 형편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얼마가 필요한가 하는 것으로 결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상대방의 필요액수가 나의 전재산이라고 한다면, 전재산을 미련 없이 팔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때 성령이 강림하시고 나서 교회 가운데 있었던 일중의 하나가 바로 그런 일이었습니다. 자기 소유를 다 팔아서 각자 필요에 따라 나눠주었던 것입니다. 물론 이것은 아무나 실천할 수 있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일반 가정이 그렇게 했다가는 다른 사람 구제하다가 자기 가족들이 거지가 되는 수가 있는 것입니다. 구제는 평균케 하는 것인데, 그것은 평균이 아니라 한쪽으로 몰아주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정이 있는 자들은 열심히 일해서 돈을 많이 벌어서 자기 가족을 위해서는 최대한으로 검소하게 쓰고, 나머지는 다 남을 위해서 써야 하는 것입니다. 구제가 많이 필요할 때는 자신의 가족의 최소한의 생존을 위한 것만 남겨두고 나머지를 다 구제에 써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참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결코 재산을 축적하는 것으로 나타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세상 끝날까지 가난한 자들이 우리 주변에 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월세 -> 전세 -> 아파트 -> 평수 늘림”이라는 목표로 살아갑니다. 차를 사도 맨 처음에는 “소형차 중고 -> 소형차 새 차 -> 아반떼 급 중형차 -> 소나타 -> 에쿠스 급 고급 세단”으로 발전합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러한 흐름에 역행하는 삶을 살아갑니다. 남을 돕다보니까 차를 중형차에서 소형차로 바꾸는 일이 생기기도 하고, 구제하면서 살다보니까 형편이 어려워져서 집 평수를 낮추어서 살아가기도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것 다 퍼주고 희생하는 삶이야말로 참된 신자의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새계명을 명하시면서 형제를 사랑하되 목숨을 내어주기까지 사랑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목숨까지도 그 형제를 위해 포기할 수 있다면, 그 목숨을 유지하는데 수단에 불과한 물질이야 얼마나 더 많이 베풀어 줄 수 있겠습니까? 요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 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할까보냐(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19)이로써 우리가 진리에 속한 줄을 알고 또 우리 마음을 주 앞에서 굳세게 하리로다”(요 3:16-19)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말과 혀가 아닌 행함과 진실함으로 사랑할 때 우리가 진리에 속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행함이란 무엇입니까? 형제의 궁핍함을 보았을 때, 아낌없이 도와주는 것입니다. 힘에 겹도록 도와주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실천입니다.


자, 이것이 우리가 가진 돈에 대한 하나님의 지시사항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재물의 주인이 주님이심을 고백한다면 반드시 이렇게 돈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쓰고 있습니까?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 도둑질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왕 말한 김에 시간에 대해서도 생각해보십시다. 우리의 시간이 주님의 것임을 믿으십니까? 그러면 우리가 시간 어떻게 써야 할까요? 모든 시간을 주님의 허락을 맡고, 주님이 지시하심을 따라 사용해야 합니다. 주님이 시간에 대해서 지시하신 사항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항은 주일예배입니다. 여러분, 주일을 온전히 지키십니까? 모든 세상의 사사로운 일들과 오락을 멀리하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말씀과 예배와 선행에 몰두함으로써 주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십니까? 만일 그렇지 못하다고 할 것 같으면, 그것은 바로 주님의 시간을 도둑질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주일 하루도 온전히 못 지킨다고 할 것 같으면, 어떻게 일주일의 시간을 주님 뜻대로 사용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일의 삶 속에서 우리가 말씀 읽고 기도하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을 투자합니까?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한다”고 사도바울이 한탄했던 것처럼, 우리가 그렇게 주님을 위해서 시간 쓰는데 인색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다 심각한 도둑질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것을 도둑질하고 있는지... 우리에게 얼마나 청지기적인 자세가 없는지... 돌아보고 정말 참회하며 회개해야 합니다. 내가 내 힘으로는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되돌려드릴 수 없기에, 성령님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래서 성령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하나님이요 내가 왕이 되어 있는 이 교만하고 배은망덕한 자리를 참회하며 내려와야 합니다. 그리고 내 마음 중심에 주님을 모셔야 합니다. 그래서 다시 원래 주인에게 돌려드려야 합니다.


4. 도둑질의 원인


그러면 계속해서 도둑질하는 원인이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는 이유는 첫 번째로, 바로 소유 분배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분배행위가 정당하다고 믿습니까? 어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지질히 가난하고, 먹을 것이 없어서 수많은 아기들이 굶어죽고, 반대로 어떤 아이는 태어나보니 아빠가 만수르인 것입니다. 그래서 평생 초호화판 생활을 누리고... 이것이 하나님의 공정하신 분배에 의한 것이라고 믿어지십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하나님이 있니 없니 하며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어떻게 합니까? 인간 스스로 분배를 주관하겠다고 나서는 것입니다. 그것이 공산주의입니다. 그래서 어떻게 합니까? 혁명을 일으켜 부한 사람들을 다 죽이고 그들의 재산을 다 빼앗아 모든 사람들에게 똑같이 재산을 분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도둑질입니다.


왜 사람들이 도둑질합니까? 나는 없고 저 사람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빈부차이를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정하셨음을 안다면, 감히 도둑질 할 수가 없죠. 아무리 가난해도 불평하거나 열등감을 느끼거나 남의 것을 탐하거나 하지 않고, 자기 형편에 자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늘 자신의 처지를 불만족스럽게 생각하고, 또 남의 것을 탐하게 되고, 그러면서 결국 도둑질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도둑질을 하는 두 번째 이유는 탐욕 때문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이 제8계명이 탐심을 금하는 계명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처럼 도둑질의 본질적인 원인은 인간의 탐심에 있습니다. 남의 떡이 맛있어 보인다고... 자기에게 먹을 떡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남의 떡까지도 뺏어 먹고 싶은 마음이 바로 인간의 끝없는 탐욕입니다.


그러면 남의 떡을 먹고 싶은 것이 인간의 탐욕이라면, 그것을 돈 주고 사서 먹으면 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왜 도둑질해서 빼앗는 것이죠? 그것은 인간의 게으름 때문입니다. 이것이 도둑질을 하게 되는 세 번째 이유입니다. 인간의 탐욕은 끝이 없는데, 그것을 채우기 위해서는 돈이 많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돈을 많이 벌기 위해서는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정말 피나는 노력과 애씀과 수고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근본 게으른 본성을 지닌 사람은 그 과정이 너무 힘든 것이죠. 그래서 어떻게 하느냐 하면 불로소득 또는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입니다. 복권에 목을 걸고, 주식이나 부동산에 몰빵 합니다. 그것도 힘드니깐 결국에는 사람들이 사기치고, 은행 털고, 강도짓하고, 훔치고... 그런 식으로 한탕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너무 위험요소가 많으니깐, 합법을 가장해서 여러 가지 눈속임을 통해서 돈을 벌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것을 도둑놈 심보라고 하죠. 딱 일한만큼, 노력한 대가만큼 받으려고 해야 하는데, 조금 일하고 많이 벌려고 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예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언급하는 “거짓 저울이나 자나 되, 불량품, 위조 화폐나 고리대금과 같은 일”입니다. 그 중에 거짓 저울의 예 하나만 생각해보십시다. 어떻게 보면 저울을 조작하는 것만큼 상인들에게 큰 유혹거리는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장 간단한 조작 하나로 엄청난 이득을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많은 상인들이 이런 불법을 행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인과 거래하면서 그 누구도 그것이 불법적인 거래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입니다. 즉 합법을 가장한 도둑질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장에서 상인들이 저울을 조작하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가끔씩 정부에서 저울을 검사하는 사람들이 불시에 검사하곤 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이런 저울을 조작하는 일보다 더 악한 일이 있으니 바로 제품 자체에 손을 대는 경우입니다. 고추의 중량을 많이 나가게 하기 위해 고추에다가 물을 뿌려 놓는다던가 아니면 생선 안에 납을 넣는다던가, 음식물에 어떤 첨가물을 넣어서 양을 늘린다던가 하는 식의 정말 들으면 기가 찰 그런 기괴한 수단과 방법들을 통해서 불법을 행하는 일들이 우리 주위에 난무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정의와 정직함을 찾아볼 수 없는 사회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세상사람들은 모두 자기 이익만을 극대화하기 때문에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달라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경제활동을 함에 있어서 정직과 진실을 철칙으로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제8계명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철저하게 도둑놈 심보를 버려야 합니다. 정말 소유분배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인정하고, 탐심을 버리고 게으른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주를 위해 성실하고 정직하고 부지런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자 그러면 이제 앞의 내용을 염두에 두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살펴보겠습니다.

 

110문 : 제8계명에서 하나님께서 금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께서는 국가가 법으로 처벌하는 도둑질과 강도질만을 금하신 것이 아니고, 이웃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시도하는 모든 속임수와 간계를 도둑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런 것들은 폭력으로 혹은 합법성을 가장하고서 일어날 수 있는데 곧 거짓 저울이나 자나 되, 불량품, 위조 화폐나 고리대금과 같은 일, 기타 하나님께서 금하신 일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또한 모든 탐욕을 금하시고, 그의 선물들이 조금이라도 잘못 사용되거나 낭비되는 것을 금하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도둑질과 강도질을 금하시는데, 그뿐만 아니라 이웃의 소유를 자기의 것으로 삼으려고 시도하는 모든 속임수와 간계를 도둑질로 보십니다. 도둑질과 강도질은 바로 폭력으로 빼앗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울을 속이는 것이나 불량품을 만들어 파는 것이나, 바가지 씌우는 것이나, 위조지폐를 만드는 것이나, 이런 경우들은 눈속임을 통해 모두 합법을 가장해서 사기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경제적인 불의가 인간의 탐심에서 오기 때문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탐욕을 문제 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말하는 것이 “그의 선물들이 조금이라도 잘못 사용되거나 낭비되는 것을 금하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이 의미심장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이 선물입니다. 이것은 앞서 읽었던 전도서 말씀을 인용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들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의 것이 아니죠. 그러나 우리를 단순히 남의 것을 관리하고 경영하다가 다기 주인께 돌려드려야 하는 종으로 지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 모든 받은 것들을 누릴 아들로 불러주셨습니다. 그래서 달란트 비유에서도 보면... 각기 달란트의 배가의 역사를 이루었을 때, 주인이 어떻게 합니까? 그것을 다시 가져가시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주시면서 더 큰 일을 맡기십니다. 우리로 그것을 누리도록 하기 위해 선물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들이 우리에게 맡기신 것이기도 하지만, 또한 선물로 우리에게 주셔서 누리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주셔서 누리게 하신 이 모든 선물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누려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누린다는 것은 이 모든 것이 주님의 것이라는 믿음 안에서 그것을 누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잘못사용하면 안 되고, 또 쓸데없이 낭비해서도 안 되는 것입니다.


111문 : 이 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이웃의 유익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이든지 행하는 것입니다. 또한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내가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실하게 일해서 어려운 형편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것입니다.


111문에서는 소요리문답과 마찬가지로 이웃의 부의 증진을 위해 우리가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다른 사람의 소유를 빼앗지 않을 것만 제8계명이 명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소유를 오히려 반대로 늘려줄 것까지 명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근거로 황금률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마 7:12)


이 구절은 산상수훈의 결론이자, 구약과 율법 전체의 핵심 메시지입니다. 우리가 율법을 두 가지 강요로 요약하면,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지만, 그러나 율법을 하나의 강요로 요약하라고 하면, 이 황금률을 말하면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근본원리가 됩니다. 하나님 자신이 이 원리로 우리와 관계를 맺으십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명하실 때, 특히 사회적인 약자들(고아와 과부들)을 보살피라고 하실 때에 항상 그 근거로 출애굽의 은혜를 상기시키십니다(신 24:17-22). “너희도 종이었고, 너희도 사회적인 약자였는데, 내가 너희를 은혜로 구원해주었다. 그러므로 너희도 사회적인 약자들을 긍휼히 여기고 너희의 거저 받은 것들을 그들에게 거저 주어라”는 것이죠. 그러나 그들이 이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고아와 과부를 압제하고 그들을 착취하면, 그들로 하여금 고아와 과부가 되게 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출 22:22-24). 하나님은 사람이 남을 대접하는 대로 그 사람을 대접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복을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런 대접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십시오. 그것이 율법의 정신입니다.


이러한 황금률의 정신은 예수님께서 명하신 새계명에도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새계명을 말씀하실 때에,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5:9). 우리가 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으로 대접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까? 그렇게 대접 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이 바로 새계명입니다. 하나님께 사죄의 기도를 드릴 때도,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이것도 황금률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죄용서의 대접을 받고 싶으면 남들에 대해서도 그렇게 대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 나아갈 때는 자기를 불쌍히 여겨주시기를 기대하고 탕감의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면서, 나는 계산해서 받을 것 다 받고 욕할 놈 욕하고 토죄할 놈 토죄한다면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 될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한다는 말”은 “네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과 동일한 것입니다.


이 황금률은 우리의 경제적인 정의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우리는 다 부자가 되고 싶고, 부의 증진을 이루고 싶어 합니다. 부의 증진이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닙니다. 주를 위해 부의 증진을 이루어야 합니다. 우리가 다 그렇게 하나님의 복 주심을 따라 부의 증진의 대접을 받고 싶어 합니다. 율법은 바로 내가 대접 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는 것입니다. 즉 남들을 부유하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장사를 해도 그 손님으로부터 뭔가 최대한으로 얻어낼 생각으로 대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직업의 서비스를 통해서 그 사람에게 어찌하든지 최고의 유익을 끼치고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직장생활하면서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고 눈치봐가면서 적당히 시간 때우기 식으로 직장생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라와 회사의 유익을 증진시키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황금률의 정신으로 직장생활 하는 것이 바로 이웃사랑을 참되게 실천하는 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살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부인이 되어야만 합니다. 황금률은 우리의 자아와 완전히 반대되는 원리입니다. 근본 이기적인 죄악된 본성이 성령님의 은혜로 깨트려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가 날마다 이 자기깨어짐의 은혜를 받아, 주님의 뜻을 따라 이웃의 부의 증진을 위해 정직하고 부지런히 살아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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