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2014.09.11 13:2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3주(112문) - 제9계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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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112문
문답내용 112문 : 제9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뒤에서 헐뜯거나 중상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성급히 정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성급히 정죄하는 데에도 참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지 않기 위해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법정에서나 기타 다른 경우에도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고백해야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높여야 합니다.
강설날짜 2014-08-3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3주(112문)


제9계명


요절 : 출 23:1-2


112문 : 제9계명에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답 : 내가 어느 누구에게도 거짓 증언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말을 왜곡하지 않고, 뒤에서 헐뜯거나 중상하지 않으며, 어떤 사람의 말을 들어보지 않고 성급히 정죄하지 않으며, 다른 사람이 성급히 정죄하는 데에도 참여하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를 당하지 않기 위해 본질적으로 마귀의 일인 모든 거짓과 속이는 일을 피해야 합니다. 법정에서나 기타 다른 경우에도 나는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하게 진실을 말하고 고백해야 하며 할 수 있는 대로 이웃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고 높여야 합니다.


1. 거짓말 하지 말라? 거짓증거 하지 말라!


제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입니다.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명이 아닙니다. 거짓 증거 하지 말라는 계명입니다. ‘증거’는 원어로 보면 ‘목격자, 증언’이라는 뜻의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제9계명은 법정의 상황을 일차적으로 전제로 하는 것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법정의 정의는 다소 단순했습니다. 날카롭고 예리한 변호사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셜록홈즈나 코난 같은 명탐정 수사관도 없었으며, 지문이나 DNA검사 같은 첨단 과학 수사 기술도 없었던 시대였습니다. 따라서 고대 법정에서는 모든 것이 목격자의 증언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명기 말씀에 보면...(신 17:6; 19:15)


“(15)사람이 아무 악이든지 무릇 범한 죄는 한 증인으로만 정할 것이 아니요 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신 19:15)


두 세 사람의 증언만 있으면 그 사건에 대한 법적 판결을 내릴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증인의 정직한 증언, 진실한 증언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사람의 재산이나 명예뿐만 아니라 목숨까지도 그 증언에 따라 좌지우지되는 것이죠. 증인에게 바로 그러한 생사여탈권이 달려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정직한 증언의 중요성을 아시고, (제3계명할 때 배웠던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여 증언하게 하셨고, 또 제9계명으로 아예 명시적으로 거짓 증거 하지 말라고 명령하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나 전적타락한 인간은 이러한 증언제도를 도리어 악용하여 사람의 재물을 빼앗거나 그 목숨을 죽이는 일을 행하곤 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나봇의 포도원 사건입니다.


“(13)때에 비류 두 사람이 들어와서 그 앞에 앉고 백성 앞에서 나봇에게 대하여 증거를 지어 이르기를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다 하매 무리가 저를 성 밖으로 끌고 나가서 돌로 쳐 죽이고”(왕상 21:13)


나봇의 포도원을 강제로 빼앗기 위해서 이세벨은 거짓 증인을 돈으로 매수하여 거짓증거를 하게 함으로써 나봇을 죽였던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과 동침하려고 했는데 끝까지 거부하자, 열 받아서 그랬는지... 요셉이 자기를 강간하려고 했다고 거짓 증언을 하여 요셉을 강간범으로 누명을 씌워서 감옥으로 보내버렸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제9계명을 통해 금하신 거짓증언의 예인 것입니다.


그러니깐 제9계명은 단순히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명이 아니라, 법정에서 거짓증언해서 사람에게 누명을 씌워 그 사람의 명예나 재산이나 생명을 해치는 것을 금하는 계명입니다. 또한 발 더 나아가서 법정의 상황이 아니더라도 그러한 악의를 가지고서 증명되지 않은 거짓 풍설(소문, 카더라 통신)을 퍼뜨려서 그 사람의 명예나 평판을 훼손하는 것을 금하는 계명입니다. 제9계명을 거짓말 하지 말라는 계명으로 오해하지 마십시오. 거짓말은 오히려 때때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거짓말이 있죠. 누가 미용실에서 머리를 했는데, 개떡같이 해와도 예의상 “우아~ 머리 예쁘다. 잘 어울린다.”라고 칭찬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거기서 그리스도인은 거짓말 하면 안 되고 진실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야~ 무슨 머리를 개떡같이 해왔냐? 설마 돈 주고 깎은 거 아니지?”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예의상 거짓말은 인간관계의 윤활유와 같은 것으로서 꼭 필요한 거짓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는 거짓말도 있습니다. 출애굽기 1장의 애굽의 산파들이 바로왕 앞에서 거짓말 한 것은 정죄 받을 만한 행동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칭찬받을 행동이었습니다. 라합의 거짓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히틀러가 유태인을 학살할 때, 유태인을 집안에 숨겨두었는데, 독일군이 집에 검문 와서 유태인을 숨겨두었냐고 물어보면 모른다고 거짓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을 사랑하여 하는 거짓말은 선행입니다. 이렇게 거짓말이 때로는 필요합니다. 그러나 무슨 거짓말을 하면 안 됩니까? 자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 잘못을 숨기는 거짓말, 그리고 다른 사람을 해치기 위한 악의를 가지고 하는 거짓말은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2. 거짓말 하는 이유


많은 경우 자기체면 때문에, 그리고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거짓말을 합니다. 예를 들어 방구를 뀌었는데, 부끄러우니깐 자기가 안 꼈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거짓말 참 많이 하지 않습니까? 자기체면 구기는 것이 싫어서 거짓말 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방구 뀐 것을 안 뀌었다고 거짓말하는 것은 애교수준이지만, 최근에 있었던 제주 지검장의 거짓말은 결코 가벼운 거짓말이 아닌 것입니다. 심히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행동을 했는데도 자기가 평생 쌓아온 명예와 체면이 훼손될까봐 무조건 안했다고 우겼다가 결국 나중에 사실로 들통나버렸습니다. 차라리 맨 처음부터 이실직고 하는 것이 나았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인간이 그것이 안 됩니다. 숨겨서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안했다고 우기고 보는 것이 인간의 죄악된 본성입니다. 아담과 하와가 그러했죠. 부끄러우니 숨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 잘못한 거 절대 인정하지 않고, 남 탓하기 바쁘죠. 그러다가 자기 부끄러운 치부가 다 드러나고 자신이 쌓아온 명예와 자존심이 하루아침에 완전히 무너져버리면 결국 견디지 못해 자살해버리는 것입니다. 사람이 이렇게 자기 명예와 체면을 사랑합니다. 그래서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또한 많은 경우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자기가 안 그랬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차 사고가 나면, 일단은 무조건 자기는 잘못한 것이 없고 상대방이 잘못했다고 우깁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최대한 손해를 덜 보기 위해서죠. 그것이 결국 돈에 대한 탐심인 것입니다. 그래서 어찌하든지 손해를 덜 보기 위해 자기 잘못한 것은 이야기안 하고, 남 잘못한 것은 막 부풀리고 과장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가 손해를 많이 볼 것 같으면, 완전히 거짓말을 지어서 말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것이 쉽지 않아요. 웬만한 곳에 CCTV가 있고, 또 차마다 블랙박스가 다 있어서, 처음에 발뺌했다가 나중에 들통 나버리는 경우가 많으니까요. 요즘은 다행히 그런 것 때문에 거짓말하기가 쉽지 않은 시대입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것 때문에 들통날까봐 두려워서 거짓말 안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것이 없어도 진실만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CCTV가 항상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말하는 것처럼 모든 모양의 거짓을 버려야 하고, 진리를 사랑하고 정직해야 합니다. 자신의 부끄러움 모습, 죄악됨을 하나님과 사람 앞에 감추거나 숨기지 마십시오. 속은 썩어있으면서 겉은 깨끗한 척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하나님께 거짓말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이 가증히 여기시는 외식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외식했습니까? 하나님의 영광보다도 자신의 체면과 영광이 더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려면 자신이 저 세리와 창기들과 다를 바 없음을 인정해야 하는데, 바리새인들은 그것을 결코 허용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의 명예를 사랑하는 자들은 반드시 외식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외식을 버려야 합니다. 어차피 주님 재림하시면 다 밝히 드러날 것입니다. 우리가 은밀히 행한 모든 죄들이 온 세상 앞에 까발려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혜있는 자는 이 땅에서부터 미리 빛 가운데 나와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서 거짓을 미워하신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지금 당장 자신에게 어떠한 손해와 자존심의 상처, 또는 명예실추가 있다하더라도 어떤 사실이든지 숨기지 말고 정직하고 진실되게 말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법정의 거짓증언도 결국 돈에 대한 탐심 때문에 그러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거짓증언은 항상 뇌물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여전히 (고대사회만큼은 아니지만), 목격자의 증언이 최종 판결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칩니다. 그래서 돈 많은 사람들은 뇌물을 줘서 거짓증언하게 만들고, 판사를 돈으로 매수하고 해서 재판에서 승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돈 없고 백 없는 사람들은 아무 죄도 없는데, 하루아침에 범죄자로 누명을 써서 감옥에 가게 되는 경우가 가끔씩 있는 것입니다. 그런 것을 보면 사람의 돈에 대한 탐욕이라는 것이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사람은 돈이 된다고 하면 무슨 짓이든지 다 하는 것입니다. 돈만 되면 후쿠시마 지방의 해산물 수입 해다가 국산으로 둔갑시켜 파는 것입니다. 국민들이 그것을 먹고 건강이 어떻게 될지는 아무관심도 없고 그저 돈 많이 벌어서 떵떵거리며 살 생각만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돈만 주면 시키는 대로 거짓 증언하는 것입니다. 그 거짓증언 때문에 당사자가 억울한 누명을 써서 어떤 비참한 상황에 내몰리게 될 지는 아무런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부패한 인간의 탐욕입니다.


결국 인간의 자기 사랑이 모든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자기 사랑은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사랑하고 또 돈을 사랑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의 명예와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자신의 잘못을 숨기는 거짓말을 하는 것이고, 또 돈에 대한 탐심 때문에 거짓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누군가가 자신의 명예를 짓밟고 자신에게 금전적인 피해를 입히면, 그 사람에 대한 미운감정과 복수심으로 사로잡히게 되어 그 사람을 해치는 데로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칩니까? 아무리 미워도 칼로 찔러 죽였다가는 자기가 범죄자가 되니깐 그렇게 하지 않고, 말로 그 사람을 해치는 것입니다. 즉 만나는 사람마다 그 사람에 대해서 험담을 하고, 그 사람의 허물을 들추어 소문을 퍼트리고, 또 심지어는 헛된 풍설을 지어 퍼뜨려서 그 사람의 명예를 훼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3. 험담


“(1)너는 허망한 풍설을 전파하지 말며 악인과 연합하여 무함하는 증인이 되지 말며(2)다수를 따라 악을 행하지 말며 송사에 다수를 따라 부정당한 증거를 하지 말며”(출 23:1-2)


“허망한 풍설”은 원어를 그대로 직역하면 “텅빈 소문”으로서 “근거 없는 소문”을 말합니다. 특히 연예인들마다 안티가 있는데, 이 안티들이 하는 일이 근거도 없는 소문을 지어내어 퍼뜨려서 그 연예인의 명예와 평판을 훼손하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 ‘카더라 통신’이 얼마나 빨리 퍼지는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근본 죄악된 사람은 본성적으로 다른 사람들의 은밀한 허물이나 잘못에 굉장히 관심이 많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있을 때 다른 사람의 잘난 점을 칭찬해보십시오. 다들 반응이 “그래? 그렇구나...”라며 시무룩해합니다. 왜냐하면 자기들은 그렇게 못사니까요. 그러나 그 사람의 은밀한 허물과 숨겨진 죄악들을 이야기해보십시오. 곧바로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정말? 그래서...” 엄청난 관심을 보이며 집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입니다.


그래서 ‘카더라 통신’에서 그런 것을 이야기하면, 그리고 그 소문이 퍼져서 다수가 말하면, 대부분 아무런 고민 없이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다수라고 하는 것이 늘 무섭습니다. 아무런 근거가 없는 이야기도 다수가 이야기하면 정말 “그런갑다” 하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것이 방금 읽은 출애굽기 말씀처럼 바로 악인과 연합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수가 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일단은 받아들이지 말고, 정확한 근거와 정황적인 증거가 나타나기 전까지 그 사람에 대한 어떠한 험담이나 비방에 동조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설사 그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렇게 형제의 허물을 들추어내어 험담하는 것은 매우 악한 것입니다. 사실 이 험담하는 것이 우리의 언어생활에 있어서 매우 심각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워낙 험담하는 것이 일상이라고 쳐도, 문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예외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평소에 험담 많이 하지 않습니까? 사실 사람들이 모여서 대화를 나눌 때 주로 하는 이야기가 무엇입니까? 주로 남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좋은 쪽으로보다는 부정적으로 소위 ‘씹는’ 일을 많이 합니다. 맘에 안 드는 직장상사라든지 짜증나게 하는 친구들 또는 동료들, 그리고 교회에 맘에 안 드는 형제 자매를 소위 씹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허물과 실수들을 열거하면서 그리고 서로 맞장구치면서 그렇게 열의를 가지고 남을 험담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들은 결코 그 험담이 그 당사자에게 얼마나 큰 상처와 피해를 주게 될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합니다. 오히려 그 사람에 대한 미운 마음을 그렇게 험담을 통해 표현하고, 스트레스를 풀려고 합니다. 또한 그 정보가 사실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것을 퍼뜨리는 일에 정당성이 있다고 종종 생각합니다. 그래서 잠언 말씀은 험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의 말하기를 좋아하는 자의 말은 별식과 같아서 뱃속 깊은 데로 내려가느니라”(잠 18:8)


별식과 같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합니다. 첫째로 별식은 기가 막히게 요리를 한 음식이라는 뜻입니다. 즉 요리조리 흠을 잡아내는 발군의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을 맛있는 별식과 같이 만들어 내는 재주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사람이 했던 말을 인용할 때 그냥 인용하지 않고, 이야기의 일부만을 전체 문맥에서 떼어내서 기가 막히게 곡해를 해서 인용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간의 양념, 곧 부풀린 소문을 첨가해서 말합니다. 참으로 기가 막히게 잘 요리한 별식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별식은 사람에게 만족을 주는 쾌락과 기쁨을 의미합니다. 음식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생존음식, 별식이 있습니다. 생존음식은 먹지 않으면 죽기 때문에 살기 위해서 먹는 음식입니다. 그러나 별식은 지금 먹고 사는 데는 문제없고, 오직 혀의 쾌락에만 초점을 맞춘 음식입니다. 최고의 맛을 위해 만든 음식입니다. 험담이 바로 그런 만족과 기쁨을 주는 별식과 같습니다. 그것을 말하는 자나 듣는 자나 맛이 있어서 그것이 뱃속 깊숙이 내려가는 것입니다. 뱃속 깊숙이 내려간다는 것은 만족감을 표현하는 것이고 또한 마음 깊숙이 심겨져서 잊혀 지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너도 나도 험담하기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잠언 말씀을 보면 험담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11)의인의 입은 생명의 샘이라도 악인의 입은 독을 머금었느니라(12)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우느니라”(잠 10:11-12)


험담은 말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는 별식과 같지만, 그러나 그 험담의 당사자에게는 독과 같은 것입니다. 험담은 곧 당사자를 독살시키는 살인행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떠한 험담도 해서는 안 되며, 어떤 사람에 대한 부정적 사실들을 이야기하는 것에 대해서 일체 동조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사랑으로 모든 허물을 가려주고, 또 누군가가 험담을 할 때에는 오히려 적극적으로 그 사람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기 위해 변호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웃의 죄와 결점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는 것이 다 험담은 아닙니다. 칼빈은 징계하고자 하는 의도의 책망이나 악을 시정하기 위한 고소나 법적인 탄핵, 다른 성도들을 죄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도록 하기 위해 하는 공적인 교정, 경고, 권면 같은 것은 험담과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칼빈은 험담을 남의 명예를 훼손시키고자 하는 악의와 방자한 욕심에서 일어나는 미움이 담긴 비난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이것은 불신과 쓴뿌리, 비방과 중상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웃의 명예를 존중하고, 보존하고 유지하며 증진시키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했습니다(벧전 4:8). 그러므로 신자들은 상대방의 실수와 허물을 오히려 감추어주고 사랑으로 덮어주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험담으로 이웃의 명예와 명성과 평판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늘 기억하면서, 입에 재갈을 물려야 할 것입니다.


4. 목회자에 대한 험담


특히 교회 안에서 이런 별식과 같은 험담을 하는 경우 중에 목회자를 향한 험담은... 단순히 그 목회자의 명예와 평탄을 훼손하는 차원이 아니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훼손하는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1)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대적이 내가 성을 건축하여 그 퇴락한 곳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라(2)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코자 함이라(3)내가 곧 저희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떠나 정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 가겠느냐 하매(4)저희가 네번이나 이같이 내게 보내되 나는 여전히 대답하였더니(5)산발랏이 다섯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내게 보내었는데(6)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네가 유다 사람들로 더불어 모반하려 하여 성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7)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8)내가 보내어 저에게 이르기를 너의 말한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9)이는 저희가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저희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정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10)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저가 이르기를 저희가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있고 그 문을 닫자 저희가 필연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11)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하고(12)깨달은즉 저는 하나님의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13)저희가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느 6:1-15)


사마리아 거민 산발랏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이스라엘 성전과 성벽 재건을 아주 못마땅하게 생각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느헤미야가 이 역사를 이루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계속해서 방해공작을 펼쳤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느헤미야가 성전과 성벽을 거의 다 건축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듣고 다급해진 산발랏은 지금당장 느헤미야를 제거하지 않으면 이제는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고 최후의 계책을 냈습니다. 그것은 바로 느헤미야에게 마치 화친조약을 맺는 것처럼 해서 협상테이블에 불러들여 그를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이를 간파하고서 응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거짓 소문을 지어서 퍼뜨렸습니다. 느헤미야가 왕을 배반하고 유대왕국을 세우려고 한다는 내용의 소문을 퍼뜨렸습니다. 이 역시도 느헤미야가 적절히 처신하여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느헤미야 밑에 있는 사람을 뇌물로 매수해서 느헤미야로 범죄하도록 함정으로 유도했습니다. “산발랏이 오늘밤 사람을 보내어 당신을 테러할 것이니 자리를 피해 성전 외소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있자”라고 권유하도록 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목적은 느헤미야가 죽음을 두려워하여 역사를 쉬고 혼자서 성전에 피신해 있다는 소문을 퍼뜨려서 이 이스라엘로 하여금 죽음을 두려워하고 역사를 쉬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결국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해 감에 있어서 사단마귀가 어떻게 훼방을 놓는지 그 전략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단마귀는 바로 지도자 한 사람, 목회자 한 사람 흔드는데 모든 총력을 기울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흔들 때에 바로 허망한 풍설과 거짓증언, 험담을 통해서 흔드는 것입니다. 신약의 서신들을 보면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던 것을 우리가 쉽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의 서신들을 보면 거짓교사들이 항상 하는 일이 무엇이었습니까? 사도바울에 대한 허망한 풍설을 지어서 퍼트리고 그리고 사도바울을 깎아 내리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사단마귀가 교회에 보낸 스파이들입니다.


“(16)하여간 어떤 이의 말이 내가 너희에게 짐을 지우지는 아니하였을지라도 공교한 자가 되어 궤계로 너희를 취하였다 하니(17)내가 너희에게 보낸 자 중에 누구로 너희의 이를 취하더냐”(고후 12:16-17)


정말 일향 주와 복음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사도바울도 돈에 대한 허망한 풍설에 시달렸는데, 하물며 허물 많은 일반 목회자들은 오죽하겠습니까? 그래서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에서 성도들이 모여서 주로 하는 이야기가 바로 목사님 험담입니다. 물론 그렇게 목회자를 험담하는 데에는 다 사연이 있습니다. 목회자로부터 인정받지 못했다든지, 또는 목회자로부터 어떤 문제를 지적받았다든지, 목회자와의 관계가 어떤 일을 계기로 틀어졌다든지, 또는 목회자에게 상처를 받았다든지, 또는 목회자에 대해서 실망하는 일이 있었다든지 하는 일들로 인해 목회자를 미워하게 되어 험담하는 것입니다. 사람관계가 참으로 무서운 것이 아무리 평소에 친하게 지내도, 어떤 계기로 일단 심사가 뒤틀리면 서로 원수가 되는 거 한 순간입니다. 그래서 많은 성도들이 목회자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서 뒤에서 마음 맞는 사람들끼리 수군수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험담을 할 때 목회자의 허물과 약점이 큰 재료로 사용됩니다. 그리고 목회자에게 큰 허물과 약점이 별로 없으면, 거짓을 지어서 중상합니다. 또는 있는 사실을 좀 더 부풀리고 과장하여 중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퍼뜨려서 온 성도들로 목회자를 불신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정확하게 사단마귀의 계략에 넘어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그런 위험성을 알기 때문에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아예 받지도 말라고 명하였습니다.


“장로에 대한 송사는 두 세 증인이 없으면 받지 말 것이요”(딤전 5:19)


보통은 어떤 사건이 있으면 일단 송사부터 하고 법정에서 재판하는 과정에서 두 세 증인의 증언을 통해 재판결정을 할 수 있는 것인데, 장로에 대해서는 처음부터 두 세 증인이 없으면 아예 송사조차 할 수 없도록 못 박아 놓은 것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자의 명예와 평판을 허무는 것은 단순히 한 사람의 명예와 평판을 허무는 일이 아니라 교회와 하나님 나라를 훼방하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목회자에 대한 부정적인 소문이 돌 때 명확한 증거가 있기 전까지는 그저 허망한 풍설로 취급해야 하며, 설사 그것이 사실로 증명되더라도 그것이 경한 죄일 때에는 너그럽게 용서하고 덮어주어 비밀로 간직해야 하는 것이고, 그것이 큰 죄일 때에도 막 떠벌리며 들고 일어나지 말고, 교회가 큰 혼란에 빠지지 않도록 지혜롭게 그 문제를 해결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20)내가 갈 때에 너희를 나의 원하는 것과 같이 보지 못하고 또 내가 너희에게 너희의 원치 않는 것과 같이 보일까 두려워하며 또 다툼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중상함과 수군수군하는 것과 거만함과 어지러운 것이 있을까 두려워하고”(고후 12:20)


사도바울이 두려워하는 이 일들이 지금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우리의 언어생활을 진지하게 성찰해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모든 악독과 미움과 쓴뿌리를 버리고 회개하며,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며 서로의 명예와 평판을 보호하며 높이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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