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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122문
문답내용 122문 : 첫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바르게 알게 하여 주옵시며, 주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거룩히 여기고 경배하고 찬송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주님의 전능과 지혜와 선하심과 의와 자비와 진리가 환히 빛나옵나이다. 또한 우리의 모든 삶을 지도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장하셔서, 주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고 오히려 영예롭게 되고 찬양을 받게 하옵소서.”
강설날짜 2014-10-1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7주(122문)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요절 : 사 6:1-7


122문 : 첫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로 다음과 같이 기도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바르게 알게 하여 주옵시며, 주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거룩히 여기고 경배하고 찬송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주님의 전능과 지혜와 선하심과 의와 자비와 진리가 환히 빛나옵나이다. 또한 우리의 모든 삶을 지도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장하셔서, 주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고 오히려 영예롭게 되고 찬양을 받게 하옵소서.”


1. ‘거룩’의 의미에 대해서


우리는 이제까지 ‘거룩’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가르쳤고 또 배웠습니다.


“우리는 거룩하면 무엇을 떠올립니까? ‘거룩’하면 뭔가 깨끗하고 신성하고 도덕적으로 정결한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거룩이 아닙니다. 거룩은 ‘구별됨’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수많은 민족가운데서 선택하셔서 세상에서부터 그들을 구별하여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거룩함입니다. 세상과의 구별, 분리가 바로 거룩함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하시다는 말은 하나님이 이 세상 피조세계와 구별되신다는 뜻입니다.”


이 가르침이 다 틀린 것은 아니지만, 다음과 같은 몇 가지 문제를 가지고 있습니다. 첫째, ‘거룩’의 개념에서 도덕적으로 온전히 순결하고 깨끗한 완전성을 배제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오히려 도덕적인 순결이야말로 ‘거룩’의 핵심개념입니다. 둘째, 하나님이 선택하셔서 구별하여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이 ‘거룩하게 하심’인 것은 맞지만, 그러나 어떻게 구별하여 자기 백성 삼으셨는지에 대한 설명이 없으면 그것은 온전한 설명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어린양의 피로 구속함을 얻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것으로 구별되어 바쳐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린양의 피로 그들의 모든 죄책을 씻어주시고, 또 그 피로 그들을 구입하셨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수많은 민족들 가운데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된 것입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의 ‘거룩’입니다. 따라서 거룩에는 두 가지 개념이 있는데, 하나는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완전한 것을 의미하고, 또 다른 하나는 구별됨을 의미하는데, 그 두 가지는 항상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출애굽기 말씀을 보시면...


“(2)이스라엘 자손 중에 사람이나 짐승이나 무론하고 초태생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출 13:2)


여기서 한글성경은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라고 번역함으로써 마치 3개의 단어가 있는 것처럼 표현하지만, 그러나 원문을 보면 3개의 단어가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한 단어를 이 세 가지 단어로 풀어 설명한 것입니다. 그 하나의 단어가 바로 ‘카도쉬’입니다. ‘카도쉬’는 일반적으로 “거룩하다”라는 뜻의 단어인데, 그 단어 자체에 “구별하다, 봉헌하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러한 의미들을 잘 살려서 “거룩하게 구별하여 봉헌하라”라고 풀어 번역한 것입니다. 아주 잘된 번역이며, 이를 통해서 성경의 ‘거룩’의 개념을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야 할 중요한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초태생만을 거룩히 구별하여 봉헌하라고 명하셨다는 것입니다. 왜 초태생만 바치라고 합니까? 장자재앙 때 초태생이 어린양의 피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은 어린양 안에서 함께 죽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했으니, 하나님 앞에서 그들이 어린양과 연합하여 사망의 형벌을 당함으로써 죄값을 다 치른 것입니다. 그러면 지금 살아있는 초태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선물로 주신 새로운 생명이요 새로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초태생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따라서 어린양의 피는 두 가지 효과를 가져다주었는데, 하나는 그들의 죄를 다 씻어 그들을 도덕적으로 깨끗하고 온전하게 만들었다는 것이고, 하나는 그들을 하나님께 구별된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가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두 개념은 항상 함께 가는 것입니다. ‘거룩’이라는 단어 자체만 보아도 “구별하여 봉헌하다”라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와 더불어 “정화하다, 깨끗하다”라는 뜻도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거룩이란 언제나 이 두 가지 개념, 곧 도덕적 완전성과 구별됨이 하나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이 두 가지 의미를 하나님께 적용해보십시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란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완전하시다는 것,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신 외에 모든 피조물과 근본 구별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요절로 읽은 이사야 6장을 통해 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습니다.


“(1)웃시야 왕의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2)스랍들은 모셔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그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그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3)서로 창화하여 가로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4)이 같이 창화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집에 연기가 충만한지라(5)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6)때에 그 스랍의 하나가 화저로 단에서 취한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7)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사 6:1-7)


여기 보면, 천사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합니다. 그러면서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거룩하심의 영광 앞에서 이사야는 자신의 부정을 깨닫습니다. 이것이 다 연결되어 있습니다. 쉽게 설명하면 이렇습니다. 금이 18k와 24k가 있는데, 24k가 18k보다 불순물이 더 적게 들어있습니다. 눈으로 봐도 딱 표가 납니다. 24k가 훨씬 아름답게 빛납니다. 금은 불순물이 적을수록 그리고 순금일수록 더욱 찬란하게 빛납니다. 금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불순물이 없이 그것 됨으로 온전할 때 거기서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입니다. 사람도 사람됨으로 온전히 꽉 차 있을 때 빛이 납니다. 여자가 육체적으로 여자 됨으로 꽉 찰 때가 18살 정도라고 합니다. 18살 되는 여자가 미모나 몸매가 어느 하나 흠잡을 데 없이 온전할 때, 그 여자에게서는 빛이 납니다. 실제로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연예인들을 보면 빛이 난다고 말을 하죠. 여러분 원빈이 제 옆에 있다면 원빈에게서는 빛이 날 것이고 옆에 있는 저는 그냥 오징어로 보일 것입니다. 이렇게 이 세상의 썩어질 것들도 불순물이 없고 온전할 때 거기서부터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표출되면서 빛이 찬란하게 비취는데, 하물며 하나님은 어떠하시겠습니까? 생각해보십시오. 하나님은 이 세상의 썩어질 피조물이 아니시죠. 하나님은 이 세상을 만드신 상천하지의 유일하신 지존자이십니다. 그분께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고, 어떠한 부족이나 불결함도 없이, 하나님의 모든 속성이 퍼펙트하고 아니 퍼펙트를 넘어서서 무한하고 영원하고 불변하십니다. 하나님의 존재하심이나, 그분의 지식, 그분의 능력, 그분의 모든 도덕적 성품들... 선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인자하시고 자비로우시고 사랑이신 그분의 모든 속성들이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무한합니다. 그러니 그런 하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시며 그분으로부터 얼마나 찬란한 빛이 뿜어져 나오겠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가히 볼 수도 없고, 봤다가는 그냥 죽는 것이고, 볼 수 있다 한들 그것을 어떻게 사람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삼층천에 가서 그것을 보고 들었는데, 사람이 가히 이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가히 쳐다보지 못할 그런 찬란한 빛, 하나님으로부터 나오는 그 빛을 우리가 ‘영광’이라고 표현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 그 빛을 보면 그 빛에 압도될 수밖에 없는 참으로 두려움과 위엄과 영광의 빛입니다. 그래서 죄가 하나도 없는 천사도 그 빛을 감히 볼 수가 없어서 그 두 날개로 자신의 눈을 가리고, 두 날개로는 자신의 발을 가리고 두 날개는 날갯짓을 하면서 “거룩하다”를 연신 세 번을 외친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존재적으로 거룩하시기 때문에, 도덕적으로나 존재적으로나 온전하지 못한 피조물과 근본 구별되시는 것입니다. 피조물인 사람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게 될 때 첫 번째로 느끼는 것은 바로 자신과 창조주 하나님 사이의 좁힐 수 없는 무한한 존재적 격차와 도덕적인 격차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이사야의 반응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찬란한 거룩의 영광의 빛 앞에서 자신이 얼마나 아무것도 아닌 존재인가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더럽고 비참한 죄인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이 고백이 모든 것을 말해줍니다. 이것은 다음과 같이 고백하는 것입니다.


“당신은 영원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저는 당신이 지으신 피조물로서 잠시 있다 사라지는 들풀과 같은 존재이고, 죽으면 티끌로 돌아갈 사람에 불과합니다. 그리고 저는 당신 앞에서 정말 비참하고 더럽고 불결한 죄인입니다.”


이것이 바로 거룩하신 하나님의 임재 앞에서 사람이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사야는 자신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부정한 죄인임을 깨달았을 때, 즉시로 목숨의 위험을 느꼈습니다. 그것은 매우 당연한 반응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우연히 바퀴벌레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면, 곧바로 본능적으로 “저 더럽고 혐오스러운 바퀴벌레를 당장 죽여버려야겠다”라는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사야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바퀴벌레와 같은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고, 때문에 하나님의 혐오와 진노를 받으며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직감하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입니다.


그런데 이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거룩하신 하나님은 그런 죽어 마땅한 부정한 이사야를 심판하지 않으시고, 도리어 제단 숯불로 그 입을 지져서 그의 모든 죄를 사하여주셨습니다. 이사야는 아마도 이것이 우리의 허물을 위하여 찔리시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함을 받으시고 우리에게 평화를 주시기 위해 징계를 받으시고 우리를 낫게 하시기 위해 채찍을 맞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을 의미한다는 것을 깨달았을 것입니다. 이사야는 거기서 하나님의 지극한 용서의 사랑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 즉시로 이사야는 자기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여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자신을 하나님께 봉헌하여 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깐 이사야가 “주님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소서”하고 고백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거룩하심이며, 또한 그 거룩하심을 깨달은 인간의 반응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긴다는 말의 뜻은 바로 이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알고, 자기를 알고, 또 자기를 구원해 주신 은혜를 알아서, 그분 앞에 엎드려 그분의 존영과 영광과 그분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에 합당한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왜 이름을 거룩히 여겨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저번에 이미 설명 드렸습니다. 사람들이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깨닫고 인정하든 아니면 하나님을 몰라서 인정하지 않든 상관없이 하나님은 영원히 거룩하신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이름은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위해 기도해야 하는데, 그 이유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지만, 그분의 이름은 이 땅에 있어서 사람들의 입에서 불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기도란 바로 나와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이 거룩하심을 알고 이사야처럼 그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엎드려서 경배할 수 있게 되기를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2. 내가 먼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살아야 함


우선 먼저 내가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기도를 제일먼저 하도록 하셨다는 것은 바로 이 기도가 우리의 가장 최우선적인 관심이요, 가장 중요한 문제임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에게는 각자 시급히 해결 받아야 할 어려움이 있고 기도제목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의 인생문제, 건강문제, 가정문제, 돈 문제, 직장문제, 결혼문제 등 많은 결핍과 어려움이 우리 앞에 놓여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 가장 중차대한 문제는 그런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삶을 살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솔직하게 얼마나 하나님을 만만하게 생각하며 살아갑니까? 다른 거 생각할 것 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만 봐도 다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면서 예배드리는데, 지각하고 조는 것은 둘째 치고,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나 존경 없이 그리고 구원에 대한 감격과 감사 없이,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없이, 그냥 형식적으로 그분의 이름 부르며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그것이 바로 우리가 제3계명에서 배웠던 것처럼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현재 영적으로 무지하고 어둠 가운데 있어서 예배와 삶 속에서 하나님이 얼마나 거룩하신 분이신지를 깨닫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는 늘 이 부분에 먼저 초점이 맞추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 부분이 해결이 안 되면 다른 부분을 위한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사야처럼 내가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며 예배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정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삶을 살고자 하는 자는 이 은혜를 위해서 간절히 기도할 뿐만 아니라, 말씀을 열심히 읽고 배우고 묵상하는 일에도 힘써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나를 바로 알고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진정으로 깨닫는 길은 오직 성경말씀을 배우는 데 힘쓰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답 :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로 하여금 주님을 바르게 알게 하여 주옵시며, 주께서 행하시는 모든 일에서 주님을 거룩히 여기고 경배하고 찬송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주님의 전능과 지혜와 선하심과 의와 자비와 진리가 환히 빛나옵나이다.


그러므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는 기도는 한 마디로 말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참되게 깨달아 알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기도하면서 말씀을 읽고 배우는 가운데 성령이 역사하시면 이사야가 했던 동일한 체험을 우리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체험이 바로 회심이고 영적각성입니다. 이 체험을 우리가 해야 합니다. 이 체험 없이는 우리는 신앙생활을 아직 시작도 안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은혜를 주셨던 것처럼 동일한 은혜를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로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주님의 찬란히 빛나는 거룩하신 영광을 보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 거룩하신 하나님을 깨닫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 우리를 통해 온 세상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도록 힘써야 함


그러면 이제 두 번째로 나 혼자만 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길 것이 아니라, 온 세상 사람들이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도록 하기 위해서 힘써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의 의무가 있습니다.


답 : 또한 우리의 모든 삶을 지도하시고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주장하셔서, 주님의 이름이 우리 때문에 더럽혀지지 않고 오히려 영예롭게 되고 찬양을 받게 하옵소서.


첫 번째는 우리의 허물과 죄로 하나님의 이름이 이 세상에서 욕먹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오히려 우리의 선행으로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롭게 되도록 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사람들에게 말해놓고서는 그리스도인답게 선하게 살지 않고 우리 육체의 본성대로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결국 우리로 인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3)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24)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로 인하여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롬 2:23-24)


우리를 포함해 한국교회 성도들의 세속적인 행실로 인해서 기독교가 욕을 많이 먹고 있는데,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기 그지없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하고 우리가 이 땅에 빛과 소금으로 부르심을 받았다고 하는 우리의 정체성을 다시금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15)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4-16)


예수님이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런데 이 예수님을 믿어 마음에 모시면 우리 안에 계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서 빛이 나옵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주님을 닮은 의로움과 거룩함과 착한 행실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바로 우리의 선행을 통해서 자신의 빛을 온 세상의 비취셔서 자신의 이름을 이 땅에서 영화롭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한 성도가 회심하고 영적각성 되어서 주님을 진실되게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게 되면, 그런 성도한테는 다른 사람에게서는 볼 수 없는 찬란한 빛이 느껴집니다. 눈빛부터 살아있습니다. 이 빛을 보고서 두 가지 반응이 있게 됩니다. 하나는 그 빛을 비췸을 받고 도전을 받고, 진리를 깨달아서 하나님께로 돌아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반응이 있고, 또 다른 하나는 그 빛으로 인해서 자신의 어두움이 다 드러나기 때문에 그 사람을 미워하고 그 사람을 핍박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어쨌든 하나님은 그 두 가지의 상반된 반응 모두를 통해서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얼마만큼의 선한 삶을 살아야 합니까?


“(13)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14)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15)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16)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벧전 1:13-16)


우리는 주님의 거룩하심과 같이 거룩해지고자 해야 합니다. 단순히 외적인 말과 행실에서 특별히 나쁜 짓 안하고 교회 꼬박꼬박 잘 나오는 것으로 만족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온전히 사랑하고 모든 악한 동기까지도 미워하며, 우리 마음이 예수님의 마음과 같이 온전하게 되어서 모든 이기적인 욕심을 다 버리고 형제를 진실되게 사랑하기까지에 이르는 것이 우리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에서 율법을 마음의 동기까지 적용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요,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이미 간음한 자라고 말했습니다. 누가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 뺨도 돌려대고,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며, 꾸고자 하는 자에게 거절하지 않고 원하는 대로 다 주며, 억지로 오리를 끌고 가는 자에게 십리까지 동행해주고, 철천지원수라도 용서하고 사랑하라고 말씀하시면서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룩’과 ‘온전’은 같은 뜻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야 할 길입니다.


물론 우리가 이 땅에서 육신을 입고 있는 한은 이 명령을 온전히 지켜서 예수님과 완전히 똑같이 그렇게 살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처럼 온전해지는 것은 오직 주님의 재림의 때에 은혜로만 될 것입니다. 다만 이 땅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살지 못하는 자신으로 인해서 애통하며 회개하면서, 늘 성령님의 은혜를 구하고, 그 성령을 의지해서 내 안에 죄를 죽이고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할 수 있는 대로 순종하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것이 주님이 기뻐하시는 복음적 순종입니다.


우리 마음에 이 목표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 영적으로 다 잠들어 있는데, 안일과 게으름 속에 우리 마음을 방치하고 신앙이 타성에 젖어서 주일예배만 나와 주는 이 상태로 우리가 있어서는 안 됩니다.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이렇게 외쳤습니다. “(14)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엡 5:14) 우리가 주님의 빛 비취심을 받아 잠자는 데서 깨어나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8)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엡 5:8-9)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빛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빛의 자녀답게 빛 가운데 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 우리는 사도 베드로의 권면처럼 우리의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해야 합니다. 마음의 허리를 졸라맨다는 것은 우리 마음을 더 이상 정욕대로 살도록 방치하지 않고, 우리의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악한 생각들을 제어하겠다고 하는 영적전투의 자세를 의미합니다. 그리고 근신한다는 것은 “침착하고 신중하게 그리고 주의를 기울여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늘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죄로 더럽혀지지 않도록 최선의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전에 마음지킴교리에 대해서 강설했는데, 이 베드로의 권면이 바로 마음지킴교리입니다. 정말 마음에서부터 주님과 같이 온전해지고자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음에 쌓은 선으로 말미암아 그 말과 행실에 선이 나올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세상에 우리의 선한행실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우리를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할 말이 없게 만들어야 하는 것이고, 또 우리를 통해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전도하는 것이 바로 온 세상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기도록 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5)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6)너희도 그들 중에 있어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롬 1:5-6)


온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그들로 예수를 믿어 예수님의 제자로 삼는 것이 바로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이름을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전도에 힘써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궁극적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비추어야 하는 빛은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는 것이 우리의 선행의 목표이지, 내가 얼마나 착하고 선한지 자랑하려고 그러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힘써 선행을 행하되, 무엇보다도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나는 하나님의 이름에 관심 없다”는 표현입니다. 우리가 거의 전도 안하는데, 우리의 부끄러운 신앙의 모습을 깨닫고 회개해야 합니다. 먼저 내가 이사야처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체험하고 깨닫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랑을 깨닫고 정말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신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향한 치열한 열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예전에 나와 같이 진리를 모르고 어둠 가운데 방황하는 수많은 영혼들에게 주님을 위하여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이렇게 살 수 있기를 위해 날마다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라는 기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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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52주(127문,128문,129문) -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file 127-129문 최상범 1644
5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51주(126문) -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file 126문 최상범 1297
57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50주(125문)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file 125문 최상범 1442
56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9주(124문) -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file 124문 최상범 1502
5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8주(123문) - 나라이 임하옵시며 file 123문 최상범 1311
»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7주(122문) -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file 122문 최상범 1654
5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6주(120문,121문)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file 120-121문 최상범 1664
5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5주(116문,117문,118문,119문) - 기도 file 116-119문 최상범 1849
5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4주Ⅱ(114문,115문) - 율법과 성화 file 114-115문 최상범 1844
5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4주Ⅰ(113문) - 제10계명 file 113문 최상범 2231
4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3주(112문) - 제9계명 file 112문 최상범 2177
4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2주(110문,111문) - 제8계명 file 110-111문 최상범 2092
47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1주(108문,109문) - 제7계명 file 108-109문 최상범 1634
46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0주(105문,106문,107문) - 제6계명 file 105-107문 최상범 2234
4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9주(104문) - 제5계명 file 104문 최상범 2240
44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8주(103문) - 제4계명 file 103문 최상범 2161
4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6-37주(99문,100문,101문,102문) - 제3계명 file 99-102문 최상범 1956
4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5주(96문,97문,98문) - 제2계명 file 96-98문 최상범 2504
4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4주(91문,92문,93문,94문,95문) - 율법과 제1계명 file 91-95문 최상범 2705
4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3주Ⅱ(88문,89문,90문,91문) - 그리스도인의 회개의 삶 file 88-91문 최상범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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