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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125문
문답내용 125문 : 넷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우리의 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려 주시며, 그리하여 오직 주님이 모든 좋은 것의 근원임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복 주심이 없이는 우리의 염려나 노력, 심지어 주님의 선물들조차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함을 알게 하소서.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게 하옵소서.”
강설날짜 2014-11-09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50주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요절: 마 6:11


125문 : 넷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우리의 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려 주시며, 그리하여 오직 주님이 모든 좋은 것의 근원임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복 주심이 없이는 우리의 염려나 노력, 심지어 주님의 선물들조차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함을 알게 하소서.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게 하옵소서.”


1. 몸의 필요만? 아니 영적 필요도...


오늘은 4번째 청원인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지난번 10번째 계명에 대해서 배울 때 이미 다루었지만, 이 기도는 출애굽기의 만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습니다.


“(4)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나의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


하나님께서 왜 이스라엘을 낮추시고 굶주리게 하시고, 또 그들에게 만나를 내려주셨습니까? 그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감을 가르쳐주시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무슨 말이냐 하면, 사람의 몸이 하루라도 음식을 먹지 않으면 도무지 살아갈 수 없듯이, 사람의 영혼도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먹지 않으면... 곧 말씀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양식으로 삼아 그분의 살과 피를 매일 먹지 않으면 단 하루도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배울 일용할 양식을 위한 기도는 결국 일차적으로 영적인 양식인 그리스도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다루지 않고 있지만, 우리가 가장 먼저 생각해보아야 할 부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이 오늘 하루를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영적인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단 하루라도 은혜 안 받고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 때문에 우리가 예배드릴 때 단 한 번도 은혜 못 받을까봐 두려워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배를 등한시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제일보기 흉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살 수 있는 것 같은 표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죄악된 것인지 아십니까?


여러분 우리가 지금 숨 쉬고 있는 것도 은혜의 결과인줄 아십니까? 우리는 숨 쉬는 것이 자동으로 되니깐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은혜의 결과입니다. 튼튼한 다리로 여기까지 와서 예배드릴 수 있는 것도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의 뇌가 머리를 굴려서 온전한 정신으로 생각하고 사고할 수 있는 것도 은혜의 결과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베풀어주신 하루분의 은혜를 힘입어 살며 기동합니다. 만일 그 하루분의 은혜가 끊어지면 우리는 모든 것이 올스탑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에게 의존되어 있고, 그분의 손 안에 있는 존재인데, 그래서 우리의 육신도 주님의 붙들어주시는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데, 하물며 우리의 영혼은 더더욱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은혜를 받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각오로 은혜를 간절히 구하면서 매순간을 살아가야 합니다.


매일 일용할 영적 양식을 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만나를 먹기 위해서 매일 새벽같이 나아가서 거둬들여야 했던 것처럼 우리는 매일 새벽에 나와서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는 “귀찮게 왜 매일 새벽마다 나가야 하나? 힘들다. 그냥 주말에 한 5-6시간 한꺼번에 기도해서 일주일을 살자.” 그렇게 생각하기 쉬운데,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은혜는 저축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만나의 법칙입니다. 만나는 저축이 안 됩니다. 매일같이 나가서 하루 먹을 만나를 거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매일 매일 그날을 위한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한은 그 육체가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임한 은혜의 불을 끄고 우리를 강퍅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제 5시간 기도해서 은혜 충만히 받았어도, 그것은 어제만을 위한 은혜였고, 오늘이 되면 또 오늘 하루 살아갈 은혜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도 마찬가지에요. “어제 예배를 통해서 말씀의 은혜 충만히 받았으니깐, 이번 일주일도 잘 버틸 수 있을꺼야.”라고 생각하면서 일주일의 양식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있는데, 절대로 그럴 수가 없습니다. 어제 주일날 말씀의 은혜 충만히 받았어도, 오늘이 되면 또 오늘을 위한 말씀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주일말씀을 다시금 묵상하고 또 주일 말씀 말고도 다른 말씀들도 읽고 묵상하고 경건서적도 열심히 탐독하고... 그렇게 매일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 나눠주는 큐티 책 이름도 “일용할 양식”입니다. 그거 몇 일 거르는 바람에 밀려가지고 일주일씩 몰아서 하는 분들이 계시는데, 그것은 책의 제목과 전혀 부합하지 않는 큐티 생활입니다. 여러분, “오늘 집을 나서기 전 기도했나요. 오늘 받을 은총 위해 호소했나요.”라는 찬송가의 가사처럼 오늘 하루를 시작하기 전에 꼭 기도하고 시작하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서 오늘 하루를 위해 예를 들어 새벽에 교회 나와서 말씀 읽고 기도해서 은혜 충만히 받으면 이제 기도 안 해도 오늘 하루를 살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아닙니다. 오늘 새벽에 말씀과 기도에 힘써서 성령충만의 은혜를 충만히 받았어도 오후가 되면 여전히 죄에 시달리는 것이 우리의 연약한 현실입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는 말은 사실은 매순간 은혜를 구해라는 말입니다. 그런 의미로 사도바울이 데살로니가전서에서 쉬지 말고 기도하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가 기도를 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아니 쉬는 정도가 아니라 거의 내려놓은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가 기도를 안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의지해야 할 필요성을 못 느끼니깐 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없이도 살 수 있다고 믿기 때문에 안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것을 이미 의존하고 있는 것이죠. 하나님이 아니라 다른 것을 하나님으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돈입니다. 여러분 기도할 시간은 없어도 학교에서 공부할 시간은 있지 않습니까? 기도하는 것은 빠져먹어도 직장에는 하루도 안 빠지고 열심히 일하지 않습니까?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돈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돈 없이는 살 수 없습니다.”라는 돈에 대한 신앙과 충성을 삶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떡으로만 살아가는 존재입니다.”라는 것을 몸으로 표현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우상숭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일체의 행위가 우상숭배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쉬는 것이 우상숭배의 죄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쉬는 죄를 회개하고, 정말 주님의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고 날마다 쉬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 열심히 한다고 우상숭배 안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기도 열심히 해서 우상숭배 하는 사람들이 있죠. 그것이 바로 자기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는 것입니다. 이점에 대해서 우리가 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2.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 입을까 기도하지 말라 <->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


여러분 우리가 이 세상 살면서 돈이 없을 때, 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하면 안 됩니까? 질병이 생길 때 고침받기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까? 기도하면 안 됩니까? 우리 김예지 자매 수능시험 잘 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까? 안 해야 합니까? 저는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과 소요리문답의 고백이고, 또 성경 전체의 내용과 주기도문의 정신과 부합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개혁파 목사들 가운데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조금씩 의견을 달리하고 있는데, 성경과 주기도문의 정신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 가운데 자신의 육신의 필요를 위해서 하나님께 구하는 것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느냐 하면, 산상수훈에 보면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구하지 말라고 명하는 구절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깐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모든 육신의 필요에 대해서 기도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를 위해서 기도하면 그것은 기도하지 않아도 하나님이 다 알아서 책임져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사실 편협한 생각입니다. 물론 우리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구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위해 살고자 할 때 우리에게 있게 되어지는 영육간의 모든 결핍에 대해서 우리는 간구해야만 합니다. 영적인 것만 구하고 육적인 것을 터부시하는 것은 영육이원론의 또 다른 형태이고, 성속을 구별하는 행위입니다.


만일 우리가 육적인 것에 대해서 어떠한 것도 구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면, 예수님은 주기도문에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부분을 말씀하시면 안 됩니다. 일용할 양식도 하나님이 알아서 다 채워주실 것인데 뭐한다고 일용할 양식을 구하라고 하십니까?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했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만을 구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토대위해서 우리의 먹을 것과 입을 것, 모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면서 당하는 모든 어려운 문제들에 대해서 하나님께 구체적으로 일일이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를 뭉뚱그려서 추상적으로 하지 마십시오. 기도는 항상 구체적이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그렇게 구체적으로 우리의 필요를 구할 때, 그 기도가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여 구하는 이방인의 기도와 차별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이 네 번째 간구의 핵심입니다.


가. 예수님 의존 or 예수님 이용


첫 번째는 바로 그 기도가 소원성취용이 아닌 의존과 교제의 차원의 기도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구체적으로 매일 일상에서 만나는 육적인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에 대해서 하나님이 정죄하시지 않으심을 확신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도리어 기뻐하신다는 것을 믿으십시오. 아니 오히려 우리로 기도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러한 문제들을 주시는 것입니다. 왜요? 그 기도함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께 의존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자녀들이 부모님을 매사에 의존하는 것을 부모가 얼마나 기뻐합니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바로 이 점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125문 : 넷째 간구는 무엇입니까?
답 :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로, 이러한 간구입니다.
“우리의 몸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내려 주시며, 그리하여 오직 주님이 모든 좋은 것의 근원임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복 주심이 없이는 우리의 염려나 노력, 심지어 주님의 선물들조차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함을 알게 하소서.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게 하옵소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말하는 넷째 간구의 핵심은 바로 의존입니다. 그분이 우리의 복의 근원이시고, 주님의 복주심이 없이는 우리의 염려나 노력, 심지어 주님이 이미 나에게 주신 선물들조차도 나에게 유익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 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날마다 문제가 있을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것은 바로 이러한 하나님께 대한 절대적인 의존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돈이 없으면 돈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이것을 통해서 하나님이 재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질병이 있으면 질병을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이를 통해서 우리의 육신의 건강을 주관하시는 분, 사람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어떤 문제에 부딪히면 그 문제를 위해서 기도하십시오. 그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그 기도가 응답되어졌을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의 모든 직장생활과 가정생활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체험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의존적인 신앙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방인의 기도는 어떠합니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세로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이용해먹는 자세로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나의 소원성취용 자판기라는 생각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알아가는 데는 전혀 관심이 없고, 그분의 나라, 그분의 의를 위해서는 하나도 기도하지 않고, 그저 이 세상에서의 자신의 행복과 안녕을 위해서만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기도하면 자신의 소원이 성취될 때는 감사하는데, 자신의 소원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 원망 불평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간구를 들어주셔도 감사, 들어주지 않으셔도 감사합니다. 왜요? 기도하는 목적이 소원성취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설사 자신의 간구가 이루어졌어도 그것조차도 목표로 하는 바가 하나님을 더 많이 알아가고, 하나님과 교제 나누는데 있기 때문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청원하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는 절대적 의존의 믿음을 강화시키기 위한 것이지, 어떤 것을 우리에게 제공하는 데 목적이 있지 않습니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이 있는데, 이 여자가 남친에게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이야기하면 다 사주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여인은 그렇게 남친이 사준 물건이 하나하나가 쌓여갈 때마다, 그 모든 물건을 사용하면서 그녀는 남친의 사랑의 손길을 느끼는 것입니다. 늘 마음은 그 물건 자체에 가있는 것이 아니라, 남친을 향해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남친은 관심 없고, 늘 남친에게서 무언가를 얻어낼 생각만 하고 남친이 주는 것으로 사치하며 사는 데만 관심이 있는 여자를 우리가 뭐라고 하느냐 하면, 된장녀라고 합니다. 그리고 남친은 그저 그 된장녀로부터 어장관리를 당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어장관리하면서 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하나님을 자판기 취급할 때가 얼마나 많습니다. 그것이 우상숭배요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이렇게 되면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언가를 구하고, 또 하나님께로부터 무언가를 공급받을 때, 중요한 것은 주님께 대한 전적인 의존신앙이고, 또 그분과의 사귐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손길을 이 세상에 살면서 구체적으로 느끼면서 사는 것이 얼마나 즐거운 일입니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그렇게 인격적으로 사랑하는 관계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나. 복의 개념의 차이


그리고 또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이방인의 기도에서 핵심적인 차이점은 복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복에 대해서 강조하는데, 뭐라고 말합니까?


답 : ...주님의 복 주심이 없이는 우리의 염려나 노력, 심지어 주님의 선물들조차도 우리에게 아무 유익이 되지 못함을 알게 하소서. ...


복되시는 주님 없이는, 이 세상에서 나에게 분깃으로 주신 행복, 건강, 재물이 전혀 나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재앙이 됨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질병이 있어서 그것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거절하셨습니다. “네 은혜가 족하다. 내 능력은 네가 약할 때 온전히 나타난다.” 그렇게 말씀하시니깐 사도바울이 도리어 질병으로 인해서 감사했습니다. 사도바울에게는 질병을 고침 받는 것이 복이 아니라, 오히려 질병이 있는 것이 복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복 주심 없이 우리에게 주어진 모든 이 세상에서의 행복, 모든 재물, 모든 건강은 복이 아니라 재앙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금송아지를 숭배한 이스라엘에게 “내가 약속대로 너희에게 가나안 땅 줄테니깐 가라... 거기서 모든 풍요와 번영을 누리게 해주겠다. 그러나 나는 너희랑 같이 가지 않겠다.” 그러니깐 이스라엘 백성들이 좋다고 가나안 땅으로 간 것이 아니라, 황송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하나님 앞에 회개했습니다. 왜요? 하나님 없이 누리는 모든 이 세상에서의 풍요와 번영은 복이 아니라 재앙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하나님만 우리와 함께 하신다면, 이 황량한 광야라도,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부자가 되느냐 가난하냐, 건강하냐 질병이 있느냐, 수능시험 잘치느냐 못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느냐 없느냐가 복이냐 재앙이냐를 결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매순간 모든 육적인 결핍에 대해서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들어주셔도 감사, 거절하셔도 감사한 것입니다. 건강한 것도 축복이요, 병든 것도 축복입니다. 이 세상에서 부자가 되는 것도 주님이 주시는 축복이요, 주님의 뜻을 따라 가난하게 되는 것도 축복입니다. 부자가 되면, 죄책감 갖지 말고, 주님의 은혜로 부자가 되었다고 떳떳하게 고백하십시오. 우리가 부자 되는 것을 너무 죄악시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성도들이 많은 부를 합법하게 증진해갈 수 있도록... 다시 말해 점점 부자가 될 수 있도록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것이 소요리문답 제8계명에서 배운 내용입니다. 다만 부자들은 그 재물로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게 마음가짐을 갖고, 검소하게 살면서 그 번 돈으로 교회와 가난한 자를 위해서,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서 다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에 대한 개념이 전혀 다른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자에게 복이란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 그 자체입니다.


다. 염려의 유무


세 번째로 그리스도인의 기도와 이방인의 기도의 차이의 핵심은 바로 염려의 유무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갈 때에 여러 가지 궁핍과 결핍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미래가 참으로 어둡고, 염려가 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미래를 염려하여 끊임없이 든든한 보장을 마련하려고 계속적으로 재물을 축적하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목적으로 하나님께 돈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돈을 달라고 기도합니까?


“(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빌 4:6)


우리가 모든 일에 대해서 기도해야 하는데,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구해야 합니다. 왜 염려하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주실 것이니까요. 나에게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도리어 감사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염려의 유무의 차이 때문에 하나님께 구하는 양식의 양에서도 분명한 차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리고 내일 일을 염려하지 않기 때문에 오늘 하루분의 양식으로도 충분하므로 일용할 양식을 구하지만, 이방인들은 하루분의 양식으로는 불안해서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루분의 양식이 아니라, 몇 달치 몇 년치 양식을 구하는 것입니다. 왜요?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서 충분히 축적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달라고 기도해야 하는데, 문제는 하나님 없이도 든든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충분히 축적하기 위해 물질을 달라고 구하는 것은 앞서 말했듯이 우상숭배입니다.


여러분 우리 마음속에는 세상에 대한 염려가 있고, 그래서 자꾸 돈을 축적하고 돈을 의지하려고 하는 못된 습성이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곧 이런 자신을 죽여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직 나의 생명과 생존이 하나님께 달려 있음을 믿고, 하나님만을 의지하게 해달라는 기도입니다.


답 : ... 그러므로 우리로 하여금 어떤 피조물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님만 신뢰하게 하옵소서.


사람이 떡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임을 믿을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돈을 축적하기 위해 썩는 양식을 위해 살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해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라. 자기사랑 or 이웃사랑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의 일용할 양식과 이방인이 무엇을 먹을까 마실까하는 염려의 기도의 또 다른 차이점은 삶의 방향성이 다르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을 자세히 보면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마 6:11)라고 해서 주어가 ‘우리’입니다. ‘나’의 필요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필요를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각 사람이 홀로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형제의 결핍은 곧 나의 결핍입니다. 형제의 아픔은 곧 나의 아픔입니다. 옆의 형제의 아픔이 나의 아픔으로 느껴지지 않는다면, 우리는 내가 정말 주님과 연합했는가에 대한 근본적인 의심을 가져야 합니다. 형제와의 연합됨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신경에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사오며”의 고백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을 믿지 않으면 구원 못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참으로 교통하는 사람은 형제와 참으로 교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교통은 서로의 필요를 위해 서로가 기도하는 것을 통해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기도만 하는 것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자신의 것을 나누어 형제의 필요를 채워주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기도가 이웃사랑을 의미한다고 지난번에 말씀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속옷을 달라하는 자에게 겉옷까지 다주고, 꾸고자 하는 자에게 달라는 데로 다 주고... 그렇게 자신의 모든 것을 희생해서 남 주면 자기는 오늘 먹을 것조차 없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없어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즉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다 이웃에게 베풀고 살아야 됨을 이 기도가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양용의 교수님의 이 기도에 대한 해석입니다. 다시 말해 이 기도를 그냥 따로 떼어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산상수훈의 맥락에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산상수훈의 정신대로 살면 정말 빈털터리가 될 수밖에 없어요. 정말 오늘 당장 먹고 살 것이 없는 상황이 됩니다. 그래서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는 신앙이 아니면 우리는 결코 아낌없이 나누어주는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기도를 하면서 이 세상을 염려하여 돈을 축적하고자 하는 자기를 죽여달라고 기도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 기도는 전적으로 순교의 정신이 아니면 할 수 없는 기도입니다. 정말 이 기도를 할 수 있기를 위해서 기도해야 합니다. 날마다 일용할 양식을 구하며 살아가시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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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3주(112문) - 제9계명 file 112문 최상범 2304
4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2주(110문,111문) - 제8계명 file 110-111문 최상범 2218
47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1주(108문,109문) - 제7계명 file 108-109문 최상범 1727
46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40주(105문,106문,107문) - 제6계명 file 105-107문 최상범 2343
4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9주(104문) - 제5계명 file 104문 최상범 2339
44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8주(103문) - 제4계명 file 103문 최상범 2315
4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6-37주(99문,100문,101문,102문) - 제3계명 file 99-102문 최상범 2050
4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5주(96문,97문,98문) - 제2계명 file 96-98문 최상범 2631
4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4주(91문,92문,93문,94문,95문) - 율법과 제1계명 file 91-95문 최상범 2953
4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33주Ⅱ(88문,89문,90문,91문) - 그리스도인의 회개의 삶 file 88-91문 최상범 2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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