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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1:2-4

2009년 데살로니가 전서 공부
                                                              바울의 감사
말씀:데살로니가전서 1:2-4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은혜와 평강으로 인사를 하고난 후 데살로니가 교회를 인하여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 항상 감사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다 감사로 데살로니가 교회를 말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가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의 열매들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얼마나 기쁨이겠습니까? 이러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역사는 하나님의 일하심이기에 바울은 그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자신의 기쁨이기도 한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에 걸쳐서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 의하여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 3주간의 말씀을 듣고서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교회에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남으로 다른 교회들에게 본이 될만한 열매들이 나타남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는 이러한 열매들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지가 벌써 몇 년이 되었습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단지 3주간의 말씀으로 인하여 얼마나 아름다운 열매들이 나타나고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듭니까? 혹시 목사님이 지금까지는 하나님이 다하신다고 하더니만 이제는 드디어 사람의 행함을 강조하구나 하는 생각이 드십니까? 아니면 그렇지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순전히 나만 사랑하였구나 그것을 복음이라는 빌미로 이용하고 있었구나하고 회개가 되십니까? 주님과 여러분만이 아실 것입니다만 그러나 그 열매로 사람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열매로 그 사람을 안다고 해서 우리가 열매를 맺자는 쪽으로 나가면 이것은 믿음 더하기 행함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믿음에다가 행함을 더하여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참된 믿음이란 어떤 열매가 나오는가를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과연 바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15-20절을 보면 “거짓 선지자를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하는 이리라.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컹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양의 탈을 쓰고 오는 거짓선지자를 어떻게 분별하는가 하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거짓 선지자는 겉으로는 모르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양과 같습니다. 겸손하고, 부드럽고, 자상하고 천사와 같습니다. 그렇게 위장하고 올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속에는 노략질 하는 이리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가 있습니까? 열매로 알 수 있습니다. 열매란 하루아침에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몇 년이 지나봐야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과나무든지, 배나무든지 과실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는 좋은 나무인지인지, 나쁜 열매를 맺는 나무인지는 몇 년이 지나봐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사람도 몇 년을 지나보면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짓 선지자를 분별하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을 하여 분별하여 보는 것입니다. 과연 나에게서 아름다운 열매들이 있는가? 데살로니가 교회처럼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나타나고 있는가 하는 것을 점검해 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조심해야 할 것은 자기의 행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여기서 어떤 식으로 나가는가하면 열심히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자는 식으로 나가기 쉽습니다. 결국 사람의 열심과 사람의 행함으로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결국 믿음에다가 사람의 행위를 포함하여야 된다는 말을 하게 됩니다. 구원은 은혜로 되었지만 상급은 행함으로 이렇게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에서 어떤 식이 되어 버렸습니까? 열매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열매를 맺게 되는가 하니 억지 열매를 맺게 하는 것입니다. 전도의 열매, 헌금의 열매, 헌신의 열매하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결과물을 만들어 내기 경쟁에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성경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말은 성경적인 용어를 사용하고 있어도 그 내용은 ‘하면 된다’는 식으로 인간의 열심과 행위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이러한 운동들이 교회 안에 너무나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이것이 세속화입니다. 이런 교회가 도리어 믿음이 있는 교회, 은혜가 있는 교회, 살아 있는 교회로 칭송을 받고 있습니다. 어떤 교회 벽에 보니 전도 왕 골든벨이라는 커다란 사진들이 붙어 있었습니다. 전도하여 교회로 다섯 명을 데리고 오면 면류관을 씌워서 사진을 크게 찍어 벽에 붙이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가 교회에 데리고 사람들의 이름을 훈장처럼 사진 밑에 걸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해서라도 많은 열매를 맺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과연 성령의 열매입니까? 육체의 열매입니까?

 

그러면 어떻게 하라는 것입니까? 회개하고 주 예수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나타나는 열매들이지 그분을 떠나서 무엇을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포도나무의 비유에서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기만 하면 절로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 나타나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무엇인지를 보면서 우리가 더욱 주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귐이 있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먼저 믿음의 역사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믿음이면 되지 왜 역사라는 말이 붙는 것입니까? 참된 믿음이란 반드시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란 말이 새번역에는 행위로 되어 있습니다. 믿음에 따른 행위가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의 역사를 가장 많이 인용하는 곳이 어디입니까?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 능치 못함이 없느니라”(막 9:23)는 말씀과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일을 할 수 있느니라”입니다(빌 4:13). 이 말씀을 앞뒤도 보지 않고 달랑 그 구절만 가지고서 어떤 식으로 적용합니까? ‘할 수 있다,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을 가지자. 가나안에 왜 못 들어갔는가? 부정적인 생각으로 들어가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방식으로 나아가자. 이것이 믿음의 역사를 이룬다’하면서, 총전(총동원 전도)도 하고, 특새(특별새벽기도회)도 하고, 커다란 예배당도 건축합니다. 자신들의 땀과 수고로 이루어 놓고서도 말로서는 믿음으로 하였다고 합니다. 도대체 이들이 말하는 믿음이 무엇입니까? 이러한 일들은 믿음이 없이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믿음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잘 아는 히브리서 11: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어떻게 아전인수격으로 해석을 하고 있는가 하면, ‘지금 우리 예배당이 비록 초라하고 보잘 것 없지만 앞으로 5년 후에는 멋진 새 예배당으로 지어질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되어질 그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열심히 헌신합시다’라고 파이팅을 요구합니다. 그러면서 여기서도 믿음을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믿고 바란다고 합니다. 그러나 5년 후에 지어질 예배당건물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 주어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절 이하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무엇을 바라고 기다린 것입니까?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이 무엇을 바라고 믿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약속의 실체가 오시기를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곧 모든 언약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란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거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날도 역시 믿음의 증거란 같은 원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타납니까? 디모데전서 6:6-12절을 보면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의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역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피하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위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면 이것이 믿음의 역사란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루어 낼 수 있는 일들을 믿음의 역사라 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업적들을 가지고 믿음의 역사라고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영생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서 그것을 위하여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일들이 믿음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의 역사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땅의 것들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것들 곧 땅의 것들을 사모함을 피하고 영생을 위하여,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소망하며, 영생을 추구하고 달려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니 바울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러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남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두 번째로, 사랑의 수고입니다. 기독교만큼 사랑이라는 말을 많이 하는 곳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지 주님을 사랑하고, 그래서 그 사랑의 수고를 감당하는 자들이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3:1-5절을 보면 “네가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니.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 아니하며 배반하며 팔며 조급하며 자고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게 돌아서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사랑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합니다. 자기를 사랑하니 무엇이 가장 필요합니까? 돈이 필요합니다. 그러니 돈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일에 쓰는 돈은 하나도 아깝지 아니한데 주님을 사랑하는 일에는 인색한 것입니다. 자기의 쾌락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때가 지금 아닙니까?

 

여러분의 가정에서 가장 귀하고 좋게 여기는 것을 교인들이 사용할 수 있도록 내어 놓습니까? 형제에게 한 것이 예수님께 한 것이 되는데 어떻습니까? 집에서 쓰다가 별로 쓸모가 없어지고 치우기도 귀찮으면 이것 교회(예배당)갔다 놓을까 그러지 않습니까? 이것이 주님을 사랑하는 모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사랑 사랑이라고 말하지만 누가 진정 수고를 하고 있는 것입니까? 누가 사랑의 수고를 감당하고 있는 것입니까? 모두가 사랑받기를 원하고 자기를 사랑하여 주기를 원하고 있는데 어떻게 사랑의 수고가 나오겠습니까? 자신이 얼마나 놀라운 주님의 사랑을 받았고, 또한 받고 있는지를 모르기에 끊임없이 사랑받기만을 원하고 사랑의 수고는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란 말이 아니라 수고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이란 말에서 나오는 모든 내용들이 결국 자기의 수고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예수님께서 하셨고 그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러한 사랑이 나오지 않음은 여전히 자기만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예수님이지 교회 곧 조직이나 건물이 아니라고 하니 자기 가족만 챙기는 것입니다. 자기 가족도 아니라 결국 자기만 챙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을 우리가 지적받음으로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그 사랑 안에 살고 그 사랑이 넘침으로 우리 안에서도 아름다운 사랑의 수고가 나타나기를 사모하고 기도해야 하겠습니까?

 

세 번째로, 소망의 인내입니다. 소망의 인내란 나의 사사로운 꿈이나 장래의 계획으로 인한 인내가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그러한 소망이 아닙니다. 이미 로마서 8:24-2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어떤 한지를 조금이나마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러한 내용들로 우리 안에 채워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꾸만 세상의 것들로 채우면서 말로만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이야기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믿음의 역사 사람의 수고 소망의 인내를 데살로니가에서 결론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9-10절을 보면 “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기다리는 것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우상을 다 섬기고 있습니다. 노골적이든 은근하게든 간에 다 우상숭배자들입니다. 탐심이 우상숭배이지 않습니까? 탐심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 바로 이것이 믿음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서 그동안의 우상을 버리고 참되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된 것보다 더 큰 믿음의 역사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데 사랑의 수고가 당연히 나오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우리는 자기가 사랑을 받기 위하여 모든 행위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주님께로부터 그 사랑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받았기에 우리는 그 사랑을 알고 이제 주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10절을 보면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어디로 갑니까? 그 내용이 예수 그리스도시요, 그 소망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는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장래에 노하심에게 건지실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사실을 믿는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4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는 자들입니다. 복음을 증거함으로 이러한 자들을 얻게 된다면 그들로 하여금 함께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택하신 자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인내의 열매를 맺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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