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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1:5-8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복음의 능력
말씀:데살로니가전서 1:5-8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복음을 전하고 핍박자들로 인해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났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능력이 나타난 것을 보니 이것이 하나님께서 선택한 것이요, 사랑하신 것임을 안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이 택함을 받았는지 택함을 받지 못했는지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복음을 증거해 보면 그 사람이 복음을 기뻐하는지 배척하는지를 통하여 알 수가 있습니다.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할 때 바울이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유대인의 회당이었습니다. 유대인의 회당이란 바벨론 포로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봅니다. 유대인들이 세계 여러 곳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유대인 성인 열 명이 모이면 회당을 하나 세울 수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회당에서 매 안식일에 모여서 모세 오경이나 선지서나 시편을 읽는 것입니다. 당시는 성경이 귀하였기 때문에 회당에만 보관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회당에 가서 복음을 전하니 믿는 자도 있고 배척하는 자도 있는 것입니다. 주로 배척하는 자들은 유대인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긴다고 하는 자들이 참되신 하나님을 증거하니 아이러니하게도 배척을 한 것입니다. 그리고 헬라인들 가운데서도 복음을 인하여 손해가 오는 사람들은 배척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도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도 권함을 받아서 바울과 실라를 따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이며, 이들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복음을 받아들일 수가 있었겠습니까?

 

오늘날 우리도 복음이라는 말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그 복음이 우리의 삶을 통해서 열매로 나타나기보다 말로서만 나타날 수가 있습니다. 아직도 종교적인 습관들이 몸에 배여 있어서 옛날을 오히려 그리워하는 것입니다. ‘이것저것을 행하라 그러면 복을 받는다. 또는 이것저것을 행하지 말라 저주 받는다.’ 이런 식의 가르침을 사람들이 좋아합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이 의미 있는 것 같고, 신앙이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또한 다른 것은 고민 안 해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늘 설교를 들으면서 오늘은 무엇을 하라는가, 무엇을 하지 말라는가만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받아 적든지, 아니면 기억을 해서라도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신경씀이 과연 주님을 사랑해서인가, 아니면 자기에게 손해가 오지 않고 복이 오게 하려는 방책인가 하는 것을 점검해보면 거의 다 후자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셨는지에 대하여서는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또는 이미 다 알고 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참된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점검해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연 복음의 능력 안에 있는가를 점검하는 것입니다.

 

5절을 보면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와 복음을 받는 자들이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은 말로서만이 아니라 참으로 자신들의 소유가 된 것입니다. 복음을 받은 자의 동질성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복음 안에서 하나임을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이 말로서만이 아니라 어떻게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인지를 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만 들으면 대단한 능력의 종이 나타나서 기적을 베풀고, 신기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봐라. 지금도 하나님의 살아계신 현장을 체험하라’그러는 것입니다. 얼마 전에 울산에 있는 어느 교회는 산뿌라로 덮어씌운 이빨이 그 교회에 가서 목사의 기도를 받으면 산뿌라가 금으로 바뀐다는 것입니다. 금요기도회 때 그렇게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한국 교회에서는 이런 것이 기적이요, 능력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이초석이나 이재록 같은 사람들이 이 땅에서 활개를 치고 다니는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 사도가 말하고 있는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란 어떤 것입니까? 5b절을 다시 보면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다”고 합니다. 그러면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어떠한 사람으로 알려졌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2절을 보면 “너희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먼저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하였으나 우리 하나님을 힘입어 많은 싸움 중에 복음을 너희에게 말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에서 고난과 능욕을 당한 것이 사도행전에서 잘 나옵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에 와서는 그러한 고난과 능욕이 없었겠습니까? 사도행전 17:5절을 보면 “그러나 유대인들은 시기하여 저자의 어떤 괴악한 사람들을 데리고 떼를 지어 성을 소동케 하여 야손의 집에 달려들어 저희를 백성에게 끌어내려고 찾았으나”라고 했습니다. 빌립보에서만이 아니라 데살로니가에서도 역시 고난과 능욕을 받은 것입니다. 이러한 바울의 형편을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잘 알고 보았습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는 바울의 모습이 어떤 모습이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2:9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수고하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기 위해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이러한 고생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목도한 것입니다. 그러니 복음을 전하는 자가 벤츠를 타고 와서 손 한번 흔들면 병자들이 살아나고, 말 한마디 하면 기적이 일어나는 그러한 전도자가 아니라 죽도록 고생하는 모습으로 보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사람이 전하는 내용을 누가 귀담아 들으려고 하겠습니까? 그런데도 그러한 바울의 모습을 알면서도 그가 전한 복음을 받아 들였다는 것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입니다. 즉 성령으로 아니하고서는 누가 그러한 복음을 듣고서 기뻐하고 따르겠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1:6절을 보면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가 되었다”라고 합니다. 복음 전하는 자만 환난과 고생을 한 것이 아니라 복음을 받은 자들도 환난을 당한 것입니다. 어떠한 환난이겠습니까? 바울이 당하는 그러한 환난인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유대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들을 본받은 자 되었으니 저희가 유대인들에게 고난을 받음과 같이 너희도 너희 나라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을 받았느니라”고 했습니다. 결국 복음을 인하여 같은 고난을 받는데도 예수님과 바울을 본받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의 고난이요, 바울도 그 십자가의 고난을 증거하면서 온갖 환난과 고생과 고난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도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이러한 고난의 주님과 또 바울을 본받는다는 것이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복음을 전한다는 사람들의 기술과 테크닉이 얼마나 세련되고 화려한지 모릅니다. 말로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온갖 음향과 조명과 멀티미디어까지 갖추고 사람들에게 접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전도 집회나 대형교회들이 주관하는 대형집회들에 가보면 아실 것입니다. 또한 많은 전도자들이 예수님만 믿으면 만사형통이라고 외치고 있습니다. 크고 힘 있게 된다고 외칩니다. 복음으로 인한 고난을 단지 성공을 위하여 치르는 희생정도로 생각합니다. 어디에서도 바울의 복음 전하는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저 예수 믿어서, 가정이 잘되고, 나라가 잘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힘을 가지고 세계를 복음화 시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다른 나라가 아니라 우리나라가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능력이라고, 성령의 역사라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정말 오늘날 교회가 성경을 보고 있는지 의심스럽습니다.

 

다시 6절을 보면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는 자 되었느니라”고 했습니다. 환난이 많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엇이 있습니까? 성령의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환난이 없어지고 나의 어려움이 사라지면 기쁨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세상에서 잘되고 축복 받으면 기쁨이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참된 기쁨이란 성령으로 인하지 않고서는 주어지지 않습니다. 성령으로 인하여 주어지지 않은 기쁨은 모두가 순간이요, 안개요, 허무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의 능력으로 주어지는 이러한 기쁨을 맛보지 못하면 예수를 믿는 것이 참으로 피곤하고 힘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환난 가운데서 도대체 무엇이 기쁨이 되는 것입니까? 바울이 감옥에서 기뻐하는 기쁨이 어디서 나오는 것입니까? 복음을 인하여 고생하는 것이 기쁨이 되는 것이 도대체 어떤 능력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5: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의 능력이란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곧 십자가의 도를 받은 것이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이란 지금까지 자신의 만족과 유익이 있으면 기쁨이고, 자신의 불만족과 손해가 오면 화가 나고 기쁘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러한 것들에 상관없는 기쁨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러한 기쁨을 데살로니가전서 2:3-4절을 보면 “우리의 권면은 간사에서나 부정에서 난 것도 아니요, 궤계에 있는 것도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환난과 고난을 당하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이것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기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모습을 이 말씀에서 점검을 해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기쁨은 도대체 어디에 있습니까?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화가 납니까? 오직 나의 만족과 유익이 채워지면, 나의 명예와 자존심이 세워지면, 나에게 기쁨을 주는 일들이 일어날 때에 기뻐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복음의 능력이란 지금까지 자신의 만족과 유익과 기쁨이라고 여긴 것들이 순전히 자기 자신을 위한 이기적인 것임을 알고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는 사람이 된 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제는 나의 기쁨을 위하여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 하실까를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교회 일이나 직장일이나 가정이나 공부나 무슨 일을 하든지 나의 모든 삶을 통하여 주님께서 무엇을 기뻐 하실까를 생각하면서 사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범사에 나의 만족과 유익을 위하여서만 살고 있다면 우상 예수를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만족과 기쁨을 위하여 교회에 들락거렸다면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환난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는데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그러면 복음이 도대체 무엇이길래 그렇게 기쁜 것입니까? 데살로니가전서 1:10절을 보면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분이신 예수님이 계시기 때문에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기쁨이요, 소망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예수님이 증거되고 그 예수님을 인하여 기뻐하는 자들이 나타나는 것은 참으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자는 참으로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1-5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 하였나니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며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노라.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바울 사도가 복음을 어떤 자세로 전했는지 그 자세가 나옵니다. 바울은 사람의 어떠한 지혜나 지식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두려워하며 심히 떨었다고 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것이 구원의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에게 좋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십자가의 영광을 증거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람들에게는 심판의 소식이 됩니다. 왜냐하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님”이라고 증거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심판의 소식 앞에서 ‘예! 참으로 그러합니다’하고서 죄를 회개하는 자들이 나오는 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참된 전도자는 사람들에게 아부하거나 아첨하지 아니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제대로 증거할 뿐입니다. 그러면 이상하게도 이것을 반대하는 쪽과 받아들이는 쪽으로 나누어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복음은 이처럼 두 종류의 사람으로 나누어 버립니다. 그리고 반대하는 쪽은 핍박을 합니다. 그런데 반대하는 자들의 그 어떤 핍박에도 굴복하거나 결코 굽히지 아니하는 것이 복음의 능력인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의 능력을 육에 속한 사람은 결코 알 수가 없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2:6-16절을 보면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의 없어질 관원의 지혜도 아니요, 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취었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이 지혜는 이 세대의 관원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기록된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했습니다. 누가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오직 성령으로 알아들을 수가 있습니다. 복음에는 이러한 자들을 골라내는 능력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복음으로 인하여 환난 중에도 기뻐하십니까?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복음의 능력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들에게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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