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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1:9-10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복음의 내용
말씀:데살로니가전서 1:9-10

 

지난주에 우리는 복음의 능력이 어떻게 나타났는지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죄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는 자체가 복음의 능력입니다. 환난과 고난을 당하는데도 기뻐할 수 있는 것이 복음의 능력입니다. 오늘은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나고,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그 복음의 능력이 어떠한 내용으로 되어 있는가 하는 것에 대해서 알아보고자 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 지식이 아니라, 생명으로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사람이란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무엇을 기대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곧 무의미하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러한 행동의 중심에는 반드시 자신의 유익과 상관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교회에 나올 때에 자신이 무언가 기대하는 바가 있을 것입니다. 또한 그 기대에는 기대하는 부분이 만족되어야 한다는 요구들이 들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분이 새롭게 공예배에 참석했는데,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어보면 마음의 참 평안을 얻기 위해 왔다고 하기도 하고, 사람들과의 교제를 위해 왔다고도 합니다. 어떤 경우에는 자기가 사업을 하나 하려고 하는데 이런 곳에 와보는 것도 도움이 되지 않겠나 해서 와 보았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이야기가 우리에게 우습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러나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거의 다 자기의 바램이나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바램이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내용인가 하는 것을 우리가 보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이미 주셨고, 또 주시기를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지도 않고 자기가 평소에 소원하고 바라는 것들을 달라고 하는 것은 산에서 물고기를 구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의 내용이란 무엇입니까? 9-10절을 보면 “저희가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고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 들어간 것과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니 이는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서 한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그것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입니다’라는 말씀입니다.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이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복음의 핵심내용입니다. 사도행전 3:14-15절을 보면 “너희가 거룩하고 의로운 자를 부인하고 도리어 살인한 사람을 놓아주기를 구하여 생명의 주를 죽였도다. 그러나 하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으니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사도행전 3:1-13절에 보면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할 시간이 되어 기도하기 위해 성전으로 올라가다가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쳐주신 사건 이후에 주어지는 말씀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 미문에서 날 때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일으키자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주목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때 베드로가 무슨 말을 합니까? 12절에 보면 “이스라엘 사람들아 이 일을 왜 기이히 여기느냐? 우리 개인의 권능과 경건으로 이 사람을 걷게 한 것처럼 왜 우리를 주목하느냐?”고 하면서 앉은뱅이를 일으킨 것이 자신들의 권능이 아니라 바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이렇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에 대하여 증인이라는 것입니다(15).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지금도 살아 계셔서 일하시고 계시다고 증거한 것입니다.

 

우리는 베드로를 통해서 복음을 전하는 자가 무엇을 전해야 하는가 하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무엇을 전하여야 되는 것입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이라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1-4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한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 나사”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핵심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복음을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다면 구원에 이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말씀을 우리가 이미 알고 있고 기초적인 것으로 알고 있다는 것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것을 누가 모릅니까? 교회 나오면 그것 다 알고 믿는 것 아닙니까?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사흘 만에 살아나신 것은 사도신경에도 나오는데 그것을 모릅니까? 그런 것은 이미 믿고 있으니 그것 말고 믿고 나왔으니 다른 것을 좀 달라는 것 아닙니까? 내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여러 가지 힘들고 어려우니 실질적인 도움을 달라는 것이라는 겁니다. 이미 돈은 잘 안주시는 것을 알았으니 이제 마음의 위로나 평안이라도 좀 주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각박하고 인심이 사납게 돌아갑니까? 그러니 교회 안에서라도 서로 사이좋게 지내자는 것입니다. 군중속의 고독을 해소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들마다 사람들의 요구를 맞추어 주기 시작한 것입니다. 교인들의 필요가 무엇인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들을 개발하여 교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복음이 아닙니다. 복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의미를 알고 믿게 되면 그 외에 그동안 관심가졌던 것들이 다 죄임을 알고서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에 나오는 사람들이 정말 성령의 이끄심을 따라 나오게 되면, 성령께서는 반드시 그리스도를 증거합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증거되는 것으로만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교회라는 것입니다. 비록 건물이 초라하고, 목사가 볼품이 없고, 교인들을 돌아보아도 특별히 세상적으로 나은 것이 없다고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증거되는 것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성도들이 복음 안에서의 교제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 안에 도대체 무엇이 들어있는지를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저는 오늘날 성도들의 가장 큰 고질병 중에 하나가 이미 십자가도 알고 부활도 알고 있다고 자위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어릴 때부터 들어온 것이고, 외워온 내용이기에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치 초등학교 학생들이 구구단을 달달 외우면 수학을 다 공부한 것처럼 착각을 하고 있는 것과 같이 십자가를 알고 부활을 알고 사도신경을 외우고 있으면 복음을 다 알고 있는 것처럼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을 알고 외우고 믿는다고 하는데 그런데 그 능력이 무엇인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 권세와 능력과 영광을 말하고 있는데도 그 내용들이 모두 안개 같고 그림자 같고 잠시 있다가 없어질 것들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입과 지식으로는 십자가와 부활을 알고 있다고 말하지만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진정한 의미에서 십자가와 부활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로마서 5:1-11절을 보면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 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을 인하여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한곳의 말씀만으로도 얼마나 엄청난 내용인지 몇 시간을 다 말씀을 드려도 부족합니다. 이 말씀의 중심에도 역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을 통하여 성도에게 주어지는 엄청난 내용들이 들어 있는 것입니다.

 

먼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었기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은혜 안으로 더 나아가는 것입니다. 이것 뿐만이 아니라 환난이 와도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환난이 즐거울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환난도 즐거운 이유는 환난이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어 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능력이 무엇 때문에 일어납니까?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죽으심, 그의 피로 인하여 의롭다함을 얻었기에 우리가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로마서 6:1-11절을 보면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살으심은 예수님 혼자의 죽으심과 부활이 아니라 그의 택하신바 된 성도들도 함께 죽음과 부활에 연합이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란 그리스도와 한 몸으로 연합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에게 일어난 은혜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심과 부활을 모델케이스로 보여주신 것이 아니라 친히 우리를 그의 몸에 묶어버리신 것입니다. 이것을 연합이라 곧 세례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그리스도와 연합됨이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인 것입니다.

 

로마서14:8-9절을 보면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에 의하여 성도란 이제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거나 죽거나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의 권세는 우리에게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권세는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산자와 죽은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살아나심이 얼마나 놀라운 능력이 되시는지 에베소서 2장에서는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하늘에 앉히웠다고 합니다. 에베소서 2:1-9절을 보면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 주셨습니다.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종이 되어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좇아 살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을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혀주셨습니다. 성도들에게 주어지는 이러한 권세와 영광은 세상의 것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을 제대로 알게 되면 어떠한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까? 주님의 십자가와 그 부활을 생각하면 다른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2:2절에서 십자가 외에는 알려고 하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안에 모든 믿음의 비밀이 다 들어 있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복음의 내용을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서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권세와 은혜가 충만히 들어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의 심령에 복음의 내용들로 가득하게 하여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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