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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2:6-12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사도의 의무와 권리
말씀:데살로니가전서 2:6-12

 
모든 직분에는 의무와 권리가 있습니다. 자신이 행할 의무를 당연히 하였다면 권리도 주장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의무는 행하지 않고 권리만 주장하는 자들이 많다면 이런 곳은 참으로 피곤한 모임일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의무는 충분히 감당하는데도 자신의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모임이 되겠습니까? 오늘은 바울 사도의 의무와 권리가 무엇이며, 또한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를 통하여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바울은 자신을 사도라고 합니다. 사도란 우리가 잘 알듯이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즉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보냄을 받은 자라는 것입니다. 이 사도의 직분은 항존직이 아니라 일시적인 직분입니다. 오늘날도 사도라는 말을 쓰는데 이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경이 증거하는 사도란 열 두 제자와 바울 뿐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사도들을 보내실 때 무엇을 위하여 보내셨습니까? 우선 열두 제자들을 보겠습니다. 마태복음 28:18-20절을 보면 “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전권을 하나님께로부터 부여 받았습니다. 그리하여 그 권세로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보내시는 것은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고 그들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을 세례를 주고 주님께서 사도들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의 가르침이란 ‘천국복음’입니다. 이러한 복음을 전하도록 사도를 부르신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의 의무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이 주된 의무를 소홀히 하게 되는 경향이 사도행전 6장에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구제의 문제로 말썽이 생기자 사도들이 자신들의 본연의 의무로 돌아가기 위하여 행한 일이 무엇입니까? 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사도행전 6:1-6절을 보면 “그 때에 제자가 더 많아졌는데 헬라파 유대인들이 자기의 과부들이 그 매일 구제에 빠지므로 히브리파 사람을 원망한대 열 두 사도가 모든 제자를 불러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형제들아 너희 가운데서 성령과 지혜가 충만하여 칭찬 듣는 사람 일곱을 택하라. 우리가 이 일을 저희에게 맡기고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하니. 온 무리가 이 말을 기뻐하여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 스데반과 또 빌립과 브로고로와 니가노르와 디몬과 바메나와 유대교에 입교한 안디옥 사람 니골라를 택하여 사도들 앞에 세우니 사도들이 기도하고 그들에게 안수하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본연의 의무란 말씀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제하는 일이나 제정출납들의 일을 하다가 보니 말씀을 제쳐두게 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것이 합당치 아니하다고 하여 집사를 세운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이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겠다고 하니 성도들이 기뻐한 것입니다. 이것은 성도들도 자신들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 사도들이 무엇을 감당해야 하는지를 알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된 임무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아서 말씀과 기도에 전무하니 어떻게 되었습니까? 사도행전 6:7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고 했습니다. 만약 사도가 자신들의 의무에 충실하지 않았다면 교회는 구제사업소로 바뀌었을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 살아 계셔서 역사하시기에 이렇게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는 것입니다만 오늘날도 교회가 말씀에 관심이 없으면 교회가 예수를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도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그런 일들을 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들은 하나님의 일을 열심히 한다고 스스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열두 사도들이 이렇게 되었다면 바울은 어떠합니까? 바울은 열두 사도들과 다른 배경에서 사도가 되었으니 사도의 의무가 달랐겠습니까? 결코 아닙니다. 역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사도 바울의 의무였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4절을 보면 “오직 하나님의 옳게 여기심을 입어 복음 전할 부탁을 받았으니. 우리가 이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울 사도의 의무인 것입니다. 주님께 부탁을 받은 것이 복음전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간사하게 사람의 마음을 유혹하는 미끼를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님께로부터 복음을 부탁 받았기에 이러한 복음을 변질 시키는 자들이 있다면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할지라도 저주를 받으라고 하는 것입니다(갈 1:8). 그러므로 이러한 자세가 자신의 의무에 충실한 자세입니다. 이러한 자세로 인하여 수많은 핍박과 고난을 당하지만 그러나 자신이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마땅히 할 일이기에 자기 자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단지 의무적인 일이라서 마지못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그 복음으로 인하여 자신이 의롭다함을 받은 이 은혜의 복음이 얼마나 좋은지 사도행전 20:21-24절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심령에 매임을 받아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저기서 무슨 일을 만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거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은혜의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자기의 생명도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단지 의무의 차원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의무일 뿐만 아니라, 주님의 크신 은혜로 인하여 복음을 전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생명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러한 복음 전하는 자로서의 권리는 없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권리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9:1-18절을 보면 “내가 자유자가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찌라도 너희에게는 사도니 나의 사도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나를 힐문하는 자들에게 발명할 것이 이것이니. 우리가 먹고 마시는 권이 없겠느냐.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이 없겠느냐.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이 없겠느냐.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실과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떼를 기르고 그 양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모세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전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 육신의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을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 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을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라.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을 모시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임이로라. 내가 내 임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내게 있는 권을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사도들이 이러한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권리를 사용하는 것이 전혀 무리한 것이 아닙니다. 바울 사도는 고린도 교회에 대하여 더욱 그러한 권리를 주장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개척을 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그러한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 복음이 방해를 받지 않기 위하여 그렇게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희생하며, 자신의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는 것이 자신의 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바울은 또다시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단지 복음을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권세를 다 비우시고 종으로 오신 것처럼 바울이 복음을 위하여 자신의 권리를 다 사용하지 않은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6-8절을 보면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도로 능히 존중할 터이나 그러나 너희에게든지 다른 이에게든지 사람에게는 영광을 구치 아니하고, 오직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우리가 이같이 너희를 사모하여 하나님의 복음으로만 아니라 우리 목숨까지 너희에게 주기를 즐겨함은 너희가 우리의 사랑하는 자 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이 사도로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하여 능히 권리를 주장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권리를 주장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유순하게 어머니가 아이를 다루듯이 행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어머니가 자신을 희생하면서 자녀를 키우듯이 바울 사도가 단지 복음만 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주고자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바울의 사랑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 사랑이란 바로 복음을 듣고서 복음의 열매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한 열매가 무엇입니까?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나타난 것입니다(살전 1:3). 그러므로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기를 원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9-11절을 보면 “형제들아 우리의 수고와 애쓴 것을 너희가 기억하리니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고 밤과 낮으로 일하면서 너희에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였노라. 우리가 너희 믿는 자들을 향하여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없이 행한 것에 대하여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도다. 너희도 아는 바와 같이 우리가 너희 각 사람에게 아비가 자기 자녀에게 하듯 권면하고 위로하고 경계하노니”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수고가 사랑하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한다고 하면 그를 위하여 수고하고, 내어 주는 것이 힘이 드는 것입니까? 행복입니까? 행복입니다. 현대인들이 행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사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당신 없으면 죽겠습니다. 나는 죽도록 당신만을 사랑합니다. 이러한 사랑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것입니다. 사랑은 움직이는 것이라고 광고하지 않습니까? 그러니 사랑이라고 말하면서, 순전히 자신의 욕심만 채우려고 하지, 희생하고 인내하고 섬기려고 하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은 말로는 사랑이지만, 속으로는 완전히 자기중심적인 이기주의입니다. 그러나 참된 사랑이란 자신을 희생하고 수고하고 심지어 목숨까지 내어주더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것이라면 행복한 것입니다. 지금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향한 사랑이 바로 이러한 사랑인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란 결국 자신이 복음 안에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았으며, 그 사랑으로 데살로니가에서 복음을 전하여 복음의 열매를 보게 되니 얼마나 사랑스러웠겠습니까? 부모가 자식을 사랑하는 것보다 훨씬 더한 사랑입니다. 아이가 잠 안자고 애를 먹이니 힘들고 괴로운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사랑하면 그것도 기쁨과 행복이 되어야 하는 것 아닙니까? 그러므로 누가 이러한 사랑을 할 수가 있습니까? 단지 의무와 권리만 남은 그러한 관계란 이미 죽은 관계입니다. 부부라도 의무와 권리만 주장한다면 법적인 남남은 아니더라도 이미 남남인 것 아닙니까?

 

오늘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생각해 봅시다. 의무와 권리의 관계로 유지됩니까? 아니면 사랑의 관계로 유지됩니까? 저와 여러분이 목사와 성도라는 의무과 권리 주장으로 유지됩니까? 아니면 사랑으로 유지되고 있습니까?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의무는 소홀히 하면서 각자 자신의 권리만 주장하고 있는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바울 사도와 고린도 교회 사이가 의무와 권리의 관계를 주장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목숨을 바칠지라도 권리는 사용하지 않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곳에서는 자신의 권위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와 주님의 관계가 의무과 권리의 법적관계로 된다면 우리 모두는 죽어 마땅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그 어떤 의무도 제대로 행한 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저 주시는 은혜의 복음을 받았습니다. 그 사랑을 알고 주님을 나의 생명처럼 사랑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이고, 행복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사람들끼리 만나면 계산적인 관계가 되지 아니합니다. 서로 사랑하여 목숨까지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하지 못한 우리의 이기적인 모습을 회개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없는 에베소 교회에 주님은 촛대를 옮겨 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계 2:1-5). 그래서 너희가 어디에서 사랑에 실족하게 되었는가 돌아보고 회개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에게 그러한 사랑이 있기라도 하였습니까?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다시 복음을 들어야 합니다. 복음의 능력을 알아 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의무와 권리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복음을 통하여 우리 모두가 12절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2절을 보면 “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자신의 의무를 다 행할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내어주고자 한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은혜의 복음 때문입니다. 그러한 복음을 전하여 복음의 열매로서 데살로니가 성도를 만나게 되니 계산 없는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통하여 결국은 우리를 부르시고,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 나라와 그 영광의 나라에서 사는  모습이 어떠한지를 조금이나마 보게 됩니다. 의무와 권리의 관계가 아니라 서로 사랑하는 관계입니다. 자기의 목숨까지 내어주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가 받고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자기의 이기적인 욕심을 정당화하지 말고 회개하면서 이러한 사랑, 곧 자기를 내어 줌으로 행복해하는 이러한 사랑을 맛보아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알고, 그 사랑과 그 은혜의 복음을 증거 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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