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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2:17-3:10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바울의 기쁨
말씀:데살로니가전서 2:17-3:10

 
오늘 말씀에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사랑과 관심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얼마나 보고 싶어하는지 내가 어쩔 수 없이 떠났다고 합니다. 그러나 몸은 떠났지만 마음이 떠난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2:17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잠시 너희를 떠난 것은 얼굴이요, 마음은 아니니 너희 얼굴 보기를 열정으로 더욱 힘썼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원문으로 보면 바울이 떠난 것을 수동태로 기술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원해서 그들을 떠난 것이 아니라 타의에 의해서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된 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미 앞에서 배웠듯이 바울이 데살로니가를 떠난 것은 자신이 원해서가 아니라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의 핍박 때문에 단 3주만 말씀을 전하고 그곳을 떠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어쩔 수 없이 떠나게 되었지만 그러나 마음이 떠난 것은 아니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몸이 멀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정말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아무리 몸이 떨어져 있다고 하여도 마음이 멀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더 그리워하고 사모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러한 사람이 있습니까? 성도와 성도의 관계이든, 목사와 성도의 관계이든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이러한 그리움과 보고 싶어함이 있습니까? 비록 몸은 떨어져 있지만 그러나 늘 보고 싶고 그리운 사람이 얼마나 있습니까? 단지 한 교회 출신이나, 동문이나, 같은 고향사람이라는 관계가 아니고 복음 안에서 만나서 교제가 계속되는 형제, 자매가 있습니까? 만약 이런 형제, 자매가 있다면 그는 행복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에 반해 이런 형제, 자매가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저 친목을 도모하기 위한 모임들은 몇 개씩 가지고 있을지라도 말씀의 교제를 위한 모임이 없다면 불행한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과 데살로니가 성도간의 이러한 사랑과 관심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생긴 것입니까? 골로새서 1:3-6절을 보면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음이요,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인함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기쁨과 감사가 나오는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듣고서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이 나오는 것은 그 근거가 하늘에 쌓아둔 소망 때문입니다. 하늘에 쌓아둔 소망을 함께 바라보는 사람이 생긴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소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하늘에 있습니까? 땅에 있습니까? 우리의 소망이 하늘에 있지 않고 땅에 있다면 우리에게는 바울이 누렸던 그 기쁨과 감사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하늘에 소망을 둔 자라면 그런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참으로 기쁘고 감사한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복음을 듣고서 복음의 열매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1-4절을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고 했습니다. ‘하늘에 소망을 둔다’라는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자가 하늘에 소망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복음으로 거듭나게 된 자들이 위엣 것을 찾는다는 것입니다. 이 소망은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성도란 땅엣 것을 생각지 않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에게 우리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고 합니다.

 

이러한 영광과 소망과 기쁨을 자신의 면류관으로 바울 사도가 보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9-20절을 보면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의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바울 사도의 소망과 기쁨과 자랑의 면류관이 데살로니가 성도라는 것입니다. 이 성도들이 바울 사도의 영광과 기쁨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나타날 소망과 기쁨과 자랑을 바울 사도는 이미 맛을 보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는 이러한 소망과 기쁨과 자랑이 있습니까? 오늘날은 이런 것이 없음에 대하여 안타깝게 여기고 부러워하고 하는 성도가 얼마나 희박한지 모릅니다. 왜 이러한 기쁨이 우리에게는 없는 것입니까? 그것은 사단의 방해공작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바울 사도와 데살로니가 성도간의 교제도 방해하는 세력이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18절에 보면 “그러므로 나 바울은 한 번 두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한두 번 가고자 애를 썼지만 가지 못함은 사단의 방해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단의 방해를 바울 자신의 육체의 가시를 사단의 가시라고 하였기에 육체적인 질병으로 보기도 하고, 또 다르게는 데살로니가에서 유대인들의 방해로 쫓겨난 것을 말하는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금지령으로 보기도 합니다만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단의 방해로 인해 자신이 직접가지 못하고 그리스 아테네에 머물면서 대신 함께 하나님의 일군 된 자요, 영적인 아들인 디모데를 그들에게 보내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1-10절을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참다못하여 우리만 아덴에 머물기를 좋게 여겨 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누구든지 이 여러 환난 중에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로 이것을 당하게 세우신 줄을 너희가 친히 알리라.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장차 받을 환난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더니 과연 그렇게 된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 이러므로 나도 참다못하여 너희 믿음을 알기 위하여 보내었노니. 이는 혹 시험하는 자가 너희를 시험하여 우리 수고를 헛되게 할까 함일러니. 지금은 디모데가 너희에게로부터 와서 너희 믿음과 사랑의 기쁜 소식을 우리에게 전하고 또 너희가 항상 우리를 잘 생각하여 우리가 너희를 간절히 보고자 함과 같이 너희도 우리를 간절히 보고자 한다 하니. 이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모든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너희 믿음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위로를 받았노라. 그러므로 너희가 주 안에 굳게 선즉 우리가 이제는 살리라.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기를 원하는 것은 그들의 믿음을 더욱 든든히 세우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가지 못하여 디모데를 보내면서 역시 성도를 굳게 하고 믿음에 대하여 위로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임을 통하여 당하게 되는 여러 가지 환난에 요동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계속하여 사단의 방해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복음 안에 있는 자유를 가만히 엿보고 요동하게 하려고 시험하는 자들이 들어와서 바울의 전한 복음을 헛되게 할까봐서 디모데를 보내었는데 디모데가 가지고 온 소식은 그들의 믿음과 사랑에 대한 소식을 가지고 왔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도 바울 사도를 간절히 보고자 하는 이야기를 듣고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한 자들이 함께 기뻐하고 감사하였기에 우리라고 표현을 합니다. 당하는 여러 가지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 그들의 믿음의 소식을 듣고서 위로를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궁핍과 환난 가운데서도 그들이 믿음 위에 선 것을 인하여 이제 살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기쁨과 감사가 바울 자신의 노력과 애씀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감사를 결국에는 어디로 돌리고 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3:9절을 보면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를 인하여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보답할꼬”라고 합니다. 결국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은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자신이 궁핍과 환난 중에서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지만 그러나 그러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임을 알기에 이러한 복음의 열매가 나타남을 인하여 자신의 기쁨과 영광과 자랑일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열매를 허락하신 궁극적인 원인을 하나님께 두고 있기 때문에 그는 오직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이러한 기쁨과 감사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인한 감사와 기쁨이 있습니까?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있기에 이 복음이 우리를 살리는 능력이 됨을 인하여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나 같은 죄인에게 이렇게 놀라운 복음의 선물을 주셨습니까? 이 은혜를 무엇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겠습니까?’하는 그러한 감사가 나오고 있습니까? 이러한 감사와 기쁨의 교제를 함께 나눌 수 있는 지체들이 있습니까? 바울 사도의 기쁨과 감사는 결단코 이 세상에서 평안하고 잘 먹고 잘사는 그런 것에 있지 않습니다. 환난과 궁핍과 질고가 그를 따라 다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하나님을 향하여 감사와 기쁨이 충만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러한 기쁨과 감사가 나오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이 문제를 우리가 심각하게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지금 우리의 관심사가 어디에 있습니까? 땅의 것입니까? 아니면 하늘의 것입니까? 우리의 관심사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에 기쁨과 감사와 영광이 되는 것입니까? 아니면 예수님 재림하실 때 불타버릴 것들입니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나타날 그 기쁨과 감사와 영광을 생각하신다면 바울 사도와 같은 기쁨과 감사가 우리에게도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환난과 궁핍과 질병이 있다고 하여도 그것을 뛰어넘는 하늘의 은혜와 기쁨을 맛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말은 하지만 우리의 관심사가 이 땅에 것들이라면 이러한 하늘의 기쁨을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조그마한 손해 앞에서도 벌벌 떨게 됩니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어떤 책제목을 보니 ‘우리는 사소한 것에 목숨을 건다’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내용은 시간을 잘 지킨다, 참는다,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 배려한다 등의 사소한 이야기들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러한 사소한 것들, 곧 정말 별 것 아닌 것들로 인하여 목숨을 걸고 있는 것입니다.

 

열왕기상 21장에 보면 아합 왕은 자신의 정원을 넓히기 위하여 자신의 궁궐근처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을 사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봇에게 다른 포도원을 주든지 아니면 돈을 줄테니 포도원을 자기에게 팔라고 합니다. 그러자 나봇이 거절합니다. 가나안 땅은 사거나 팔거나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이 정한 것입니다. 율법이 이스라엘의 헌법이기 때문에 왕도 어찌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속이 상해서 밥도 안 먹고 들어 누워버렸습니다. 이 아합의 모습을 보고 그의 아내 이세벨이 나봇을 모함하여 죽이고 포도원을 차지합니다. 이 사건으로 인하여 아합과 이세벨이 얼마나 비참하게 죽는지 개들이 아합의 피를 핥고 이세벨은 개들이 뜯어 먹어 버리는 것입니다. 자신의 정원을 넓히지 못하여 근심하고 답답해하는 아합의 모습이 오늘날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 땅에서 우리가 다 나그네로 살고 있습니다. 이 사실은 아무도 거부할 수없는 진실입니다(히 11:13-14).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자신의 정원하나 넓히는 일로 인하여 답답해하고 있는 모습이 오늘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물론 우리나라는 자본주의 나라이기에 땅도 사고팔고 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그러한 것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와 다른 교회들을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교회당 건물을 지었다든가, 누가 어떻게 출세하였다든가 하는 것을 일체 언급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복음이 증거 되고, 그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서 어떠한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믿음이 든든히 세워지는 것을 인하여 기뻐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이 말씀을 통하여 나의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어디에 있는가를 점검하여야 할 것입니다. 도대체 내가 무엇 때문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까? 안개와 그림자와 바람을 붙들고 무언가를 잡았다고 감사하고 기뻐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나타날 그 기쁨과 감사와 영광을 나의 면류관으로 여기고 살겠습니까?

 

끝으로 빌립보서 3:17-21절을 보면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저희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서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으라고 권면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십자가의 원수로 행한다고 합니다. 저희의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고 합니다. 거기에는 우리를 구원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몸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켜 주신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습니다. 장차 우리 주님께서 그곳에서 우리의 몸을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인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빌립보서 4:1절에서 이렇게 권면합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요,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이러한 약속의 말씀이 우리의 진정한 기쁨과 감사와 자랑과 면류관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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