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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3:9-13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바울의 기도
말씀:데살로니가전서 3:9-13

 
오늘 말씀은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기도하는 내용입니다. 바울의 기도를 통해 성도들의 참된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한국교회의 특징 중에 하나가 새벽기도입니다. 어떤 교회에서는 500명의 교인 중에 400명이 새벽기도회에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의 기도의 주 내용이 자식이 잘되기를 원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부흥회를 통해 기도하면 자식이 잘된다고 하고, 일천번제를 함께 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기도 형태가 이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한국교회에 보편화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러한 기도를 너무나 당연히 여기며, 좋아한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것을 은혜 받았다고 하면서 열심히 새벽기도, 금식기도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것을 성경적인 신앙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머니들이 자식이 잘되기만 한다면 한 겨울에도 정한수 떠다 놓고서 얼마나 빌고 또 빌었습니까? 자식들이 잘되는 것은 곧 자기의 집안이 잘되는 것인데 무엇인들 못하겠습니까? 그러한 욕구와 바램이라는 불씨가 사람들 안에 다 들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죄악된 본성에 새벽기도와 부흥회를 통해 기름을 부어 버린 것입니다.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면 당장 ‘그러면 자녀를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는 것입니까?’라는 질문을 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기도를 바르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기도란 하나님의 뜻에 자기를 쳐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곧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의 뜻이 세워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말하는 이런 기도를 하면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곧 자녀들이 잘 되고, 세상에서 복받는 그런 기도를 위해서 기도할 때는 많은 사람들이 새벽 기도에 나왔는데 이런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기도를 할 때는 기도에 참석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바른 기도를 할 마음이 없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잠언서에 보면 “좀더 자자 좀더 졸자 손을 모으고 좀더 눕자”라고 하면 가난과 궁핍이 도적같이 임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단지 물질적인 가난만을 말하고 있을까요?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가 성도라면 믿음에 부요하여야 하는데 그러한 기도는 하기 싫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려야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7절에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떤 기도를 하여야 합니까? 성경에 보면 성령이 충만한 사람들의 기도가 나옵니다. 우리가 바른 기도를 하기 위해서 그런 믿음의 선진들의 기도를 보고 배우는 것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바울 사도의 기도를 보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서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의 기도는 감사로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3:10절을 보면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너희 얼굴을 보고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케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주야로 심히 간구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주야로 심히 간구하는 기도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먼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 보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장 가서 만나 보면 되지 않습니까? 그러나 사단이 막고 있음을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간절히 주야로 기도하면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만나고자 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너희 믿음의 부족함을 온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의 부요를 위하여 그렇게 간절히 기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를 보면서 정말 주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것은 과연 무엇입니까? 주야로 간절히 원하고 소망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영원한 것들입니까? 없어질 것들입니까? 과연 믿음에 부요하기를 주야로 간구하고 계십니까? 무슨 일을 하든지 집안일을 하든지 직장에서 일을 하든지 간에 믿음에 부요하여 지기를 소원하고 있습니까? 바울 사도의 기도의 목적이 우리의 기도의 목적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우리도 바울과 같이 성도들의 믿음이 부요하여 지기를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바울이 기도를 누구에게 하고 있습니까? 데살로니가전서 3:11절에 보면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는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라고 합니다. 기도란 하나님 아버지께만 드려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주 예수 그리스도도 기도를 받으시는 분이 되어 있습니다.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동격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들에게는 혁명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님에게 모든 권세를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간구의 내용은 무엇입니까? 첫째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바로 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 길을 너희에게로 직행하게 하옵시며”(11). 바울이 그냥 바로 가려고 한다고 해서 가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로 가기를 얼마나 원했습니까? 그러나 바울은 사단이 막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구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도를 보면서 범사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함을 배울 수 있습니다. 기도란 내 뜻대로 무엇을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계획을 세우고 무엇을 하리라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하리라고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언제나 내 뜻과 내 주장과 내 고집을 앞세워 놓고서는 그것을 이루어 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주장과 뜻들이 과연 주님의 마음에 합한 것인가를 생각하지도 않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가기를 원하는 것은 사사로운 볼일이나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어려움 가운데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을 부요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라도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 성도의 마땅한 자세입니다. 이것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일거야. 무조건 열심히만 하면 된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과 상관없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4:6-7절을 보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했습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아뢸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서 아뢰어야 합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아뢰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기도하면 응답이 잘 된다는 방법론적 차원으로 보면 안 됩니다. 이미 이렇게 기도하는 성도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은 모든 일에 대하여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주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보기를 원하는 것도 자기가 보고 싶다고 해서 마음대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간구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12절에서 성도의 사랑이 넘치기를 기도합니다. “또 주께서 우리가 너희를 사랑함과 같이 너희도 피차간과 모든 사람에 대한 사랑이 더욱 많아 넘치게 하사.”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를 사랑한 것처럼 데살로니가 성도들끼리 사랑하기를 원한 것입니다. 성도와 성도간의 사랑이 풍성하여지고 넘쳐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에 대하여서도 사랑이 풍성하여 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근거는 물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사랑에 근거하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은 사람입니다. 자신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한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놀라운 사랑을 받은 그 사랑을 받았기에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사랑하고 그러한 사랑을 받은 자들은 또한 서로 사랑하고 이것이 모든 사람에게 까지 사랑이 풍성하여 넘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안에서도 이러한 기도가 있기를 원합니다. 참으로 주님의 사랑을 알아갈수록 성도들 안에 사랑이 풍성하고 넘쳐나기를 기도합니다. 그저 모이면 아이들 교육문제, 결혼문제, 장래문제 이러한 말들보다는 서로 말씀으로 위로하고 말씀으로 세워가는 그러한 사랑이 풍성하여 져야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이 풍성하여 지려면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날마다 더 깊이 알아가야 할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근거를 바울의 다른 기도 가운데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에베소서 1:15-23절을 보면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또 만물을 그 발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바울의 기도의 제목이 무엇입니까? 이 세상적인 어떤 잘됨이라든가 땅에 것들에 소망을 두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입니다.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셔서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마음눈을 밝히사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가 받을 그 기업의 영광이 무엇인지, 그의 힘의 강력한 역사하심이 어떻게 베풀어 졌는지를 알게 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우리에게 있습니까?

 

에베소서 3:14-21절을 보면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바울 사도는 성도가 속사람이 강건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속사람이 강건하게 된다는 것은 우리의 마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로 계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내가 내 마음에 주가 되어 있고 예수님은 우리의 시중이나 드는 그러한 분으로서 믿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내가 하기 싫고 귀찮은 일이나, 어렵고 힘 드는 일을 떠넘기는 식의 기도는 하지 않습니까? 분명히 자신이 깨어지고 부수어 져야 하는데 기도하였다고 떠 넘겨 버리는 것은 아닙니까? 기도는 열심히 하지만 자신의 모습은 여전히 그대로입니다. 이것은 기도했다는 것으로 핑계대고 자신은 도망가는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역시 예수 그리스도가 주가 아니라 자기 자신이 주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주로 계시게 하시기를 간구하면서 우리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가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충만히 알아감으로 성도가 서로 사랑하게 되며, 이러한 사랑을 우리가 입었기에 모든 사람을 대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가 바울 사도의 기도입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3:13절을 보면 “너희 마음을 굳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께서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하나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성도의 사랑이 풍성하여 짐으로 너희 마음을 굳게 하고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흠이 없게 하시도록 간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데살로니가 성도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을 향한 바울 사도의 기도인 것입니다. 바울 사도는 모든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강림하실 때에,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 흠이 없게 해 주시도록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이러한 흠이 없이 나타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 것입니까? 신랑 되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기를 기다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참예 하려면 무엇이 있어야 합니까? 어린 양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지어진 의의 옷을 입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지어진 하나님의 의를 입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 옷이 더러워지지 않도록 잘 지키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위가 들어가지 않도록 깨끗하게 입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직 신랑이 주신 것만 챙겨서 나가는 것입니다. 다른 지저분한 것들은 천국에서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기도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성하여져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에 기쁨으로 맞이할 수 있도록 기도하여야 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6-8절에 보면 “또 내가 들으니 허다한 무리의 음성도 같고 많은 물소리도 같고 큰 뇌성도 같아서 가로되 할렐루야 주 우리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도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고 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22:14절에 보면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라고 했습니다. 어린양의 혼인 잔치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세마포 옷을 입고 나가야 합니다. 곧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고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옷을 빠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성하여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영광과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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