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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4:1-8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하나님의 뜻
말씀:데살로니가전서 4:1-8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나의 뜻을 관철시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이 나에게 이루어지기를 소원하는 것이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그렇지 않고 그저 나의 소원이나 나의 뜻만이 관철되도록 기도하거나 정성을 드리거나 하는 모든 것들은 결국 우상숭배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라고 하시는 것은 나의 나라와 나의 의가 아니라 ‘그의 나라와 그의 의’입니다(마 6:33). 나의 나라란 자신이 중심이 되어있는 세계 전부를 말합니다. 가정이나 회사나, 교회도 자신이 중심이라고 생각하면 그곳은 다 자신의 나라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사는 모든 삶의 영역에서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지 않으면 결국 모두가 나 중심이고 나의 나라, 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그의 의를 구하라’는 것은 나의 의는 아무리 다 모아도 하나님 앞에 의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 안에 그 무엇이 쓸만한 것들이 있었다면 그러한 것들을 모아서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만 그러나 우리의 마음의 생각과 계획이 어려서부터 항상 악하기에 도저히 우리 스스로는 하나님의 의가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 10:2-3절에서는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히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께 대한 열심은 있었으나 하나님의 의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과 선지자에 의하여 증거된 의, 곧 율법 외에 주어진 하나님의 의를 몰랐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열심히, 자기 나름대로 의를 행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도리어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않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곧 자기 열심히 자기 의를 세우려고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란 우리가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뜻을 성경 전체가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오늘 본문 말씀에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보고자 합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전서를 마무리하면서 4:1절에서 “종말로 형제들아!”라고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종말로’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이것은 편지 말미에 ‘끝으로’라고 하는 말과 같습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어떤 종말이라는 뉘앙스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란 언제나 종말론적인 자세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가 끝으로 하면서 몇 가지의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1절을 다시 보면 “종말로 형제들아 우리가 주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구하고 권면하노니. 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께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바울 사도에게서 받았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받은바 대로 살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곧 그들이 받은바 대로 살고 있지만 더욱 힘쓰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더욱 힘쓰라고 권면하는 내용들은 복음으로 인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와 같은 내용들일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2-3절에 보면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위해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 하는 말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였습니다. 바울은 바로 이런 일에 더욱 힘쓰도록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2절에 보면 “우리가 주 예수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무슨 명령으로 준 것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바울을 통해서 받은 권면의 내용들이 사사로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주 예수로 말미암아 주어진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의 서신들이 사사로운 편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시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수많은 편지들을 주고받고 합니다만 그러나 사도의 서신이 이런 편지들과 다른 것은 하나님의 계시라는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오늘날 어떠한 아름답고 거룩하여 보이는 편지라 할지라도 성경의 편지를 대신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몰몬교도들은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새롭게 발견하였다고 합니다. 미국어디서 금판에 쓰여진 것을 그들의 창시자인가 하는 사람이 계시로 찾아내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몰몬경을 성경처럼 보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비슷한 내용들이 얼마나 많이 난무하는지 모릅니다. 심지어 죽었다가 살았다는 사람들이 천국과 지옥을 보고 왔다고 하는 말들이 무슨 성경의 계시인양 전파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 교회에서도 성경외의 내용들이 비록 성경의 용어를 빌린다고 하여도 전혀 하나님의 뜻과 무관한 것들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만들어 놓고서 맹종하게 만드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일들이 오늘날만의 일이 아니라 사도 바울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래서 편지를 쓸 때는 끝에다가 자신의 사인을 보내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후서 3:17절을 보면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이는 편지마다 표적이기로 이렇게 쓰노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편지를 받아쓰는 사람이 쓰고 나서는 끝에는 자신의 친필사인을 넣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말씀을 들을 때에 과연 성경이 그러한가 하고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곧 과연 이것이 하나님의 뜻으로 주어지는 말씀인가를 보라는 것입니다.

 

3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오늘 바울 사도가 하나님의 뜻이라고 권면하는 내용은 “거룩함”입니다. 거룩이란 분리입니다. 세상의 가치관 사고방식과 분리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거룩함 중에 오늘 말씀은 ‘성적인 거룩’을 말하고 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가 있는 곳은 지중해 연안입니다. 이 시대는 1세기입니다. 로마제국과 특히 헬라의 생활을 특징 지워 주는 것은 성적방종이었습니다. 당시에는 그리스 신전들이 곳곳에 세워져 있었고 그 신전에서 신들에게 제사를 지냈습니다. 제사를 지내는 과정에 성적인 혼음들이 있습니다. 신전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제사를 지내러온 남자들과의 성적인 관계가 그들의 신을 섬기는 예식의 한부분인 것입니다. 그렇게 함을 통하여 하늘의 신과 땅의 신을 자극하여 농사가 잘되기를 바라는 제사행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데살로니가의 성도들의 일상적인 생활 속에 성적인 간음들을 심각한 범죄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일상적인 생활의 일부로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적인 문제를 바울 사도가 지적하면서 거룩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가치관과 생각들이 세상의 가치관과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거룩입니다.

 

 3-6절을 보면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각각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의 뜻은 너희의 거룩함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음란을 버리고 각기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아내 취할 줄을 알라고 합니다. 여기서 ‘자기의 아내’라는 단어가 원어로 보면 ‘그릇’이라는 단어입니다. 남자나 여자를 그릇에 비유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므로 꼭 남자가 자기 아내만을 바르게 취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릇을 몸으로 본다면 모든 성도가 자신의 몸을 거룩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남자만 바람피우는 것이 아니라 여자도 얼마나 많이 바람을 피우는 것입니까? 아내라는 단어에 몸이라고 넣어도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무엇과 다르게 구별되라고 하는 것입니까? 5절에서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라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을 때는 색욕을 좇아가는 이방인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자들이 복음을 듣고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의 뜻은 그러한 이방인들과 같이 색욕을 좇을 것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자 합니다. 이러한 성적인 거룩만이 아니라 우리도 이 세상의 탐심을 따라 이 세상의 풍속을 좇아 살아온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지금도 그러한 모습들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같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를 바라며 삽니다. 자녀들도 하나님의 백성다운 가치관과 세계관을 갖고 살도록 돕기보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출세를 위하여 살도록 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모습들을 함께 지적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단지 성적인 음란만이 아니라 세상에 대한 사랑이 주님 앞에서 음란한 것이면 역시 간음인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세상의 없어질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역시 부정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상적인 가치관과 세계관을 가지고 돈을 사랑하고 없어질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간음인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지금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지 세상을 사랑하고 있는지를 점검하여 보는 기준이 무엇이겠습니까? 모든 삶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는가 하는 것입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이것을 원하시는가 하는 하나님의 뜻을 물어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하여 말씀을 읽고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의 기뻐하시고 선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예배당에는 오는데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이 없다면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합니다. 단지 예배드리러 오는 나의 정성을 바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려고 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신의 뜻들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뜻을 고집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있으니 자기에게 무언가 유리한 말씀은 얼른 받아 챙기는데, 자기에게 손해가 오는 것들은 버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의무적으로 하지 않아도 된다더라, 의무적으로 전도 하지 않아도 된다더라. 물론 우리가 이런 것들을 의무적으로 곧 율법적으로 할 필요는 없지만 마땅함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유익을 위해 자의적으로 받아들여 합리화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모두가 자기 일에 바쁘고 자기 기쁨이 앞서지 주님이 무엇을 기뻐하실까에는 별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우리의 삶의 모습이 바로 주님 앞에 간음인 것입니다.

 

6절을 다시 보면 “이 일에 분수를 넘어서 형제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고 증거한 것과 같이 이 모든 일에 주께서 신원하여 주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모든 것을 신원하여 주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분수를 넘지 말라고 합니다. 자기의 분수를 넘는 것은 형제를 헤치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우리의 모든 삶의 영역에서 다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자족할 줄 아는 것이 성도의 거룩함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자족이 없습니다.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한 아내로 만족하지 않습니다. 바람피는 것을 무슨 자랑이냥 영웅담처럼 이야기 합니다. 이런 것은 다 자기 분수를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오늘날도 끊임없이 세계제일을 향하여 달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신자들도 이런 세상 사람들의 욕망을 좇아 행합니다. 헌상을 하지 않아도 자식은 어려서부터 학원을 두세개씩 보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고 살기보다 이 땅에 소망을 두고 물질의 욕망을 좇아 삽니다. 이런 모습이 죄가 가져다 준 욕망의 포로된 모습입니다.

 

오늘날 세계제일의 강대국이 미국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세계에 대한 경찰 나라로 자처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일으킨 전쟁으로 인하여 죽은 자들이 지금 미국이 당한 테러로 인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입니다. 자기분수를 모르고 전 세계에서 왕 노릇하려는 미국이기에 얼마나 원수가 많이 생기겠습니까? 지난번 9.11테러로 세계 무역센터가 무너져 내리는 것을 봤습니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이 사건을 보면 요한계시록 18장이 떠오릅니다. 요한계시록 18장 말씀이 바벨론이 무너지는 내용입니다. 전 세계의 무역상들이 의지하던 바벨론이 무너지자 그 바벨론을 의지하던 도매상들이 모두 통곡하는 내용들입니다. 지금 미국의 무역센터가 계시록의 바벨론이라는 말씀이 아니라 그러한 성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 어느 국가든지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나라가 되기를 모든 나라들이 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 대통령이 건물을 무너뜨리더라도 미국인의 의지를 꺾지 못하리라고 하는 말을 들으면서 에돔이 또 생각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는 것을 자기들이 또 일으켜 세우겠다는 것입니다. 말라기 1:4절을 보면 “에돔은 말하기를 우리가 무너뜨림을 당하였으나 황폐된 곳을 다시 쌓으리라 하거니와 나 만군의 여호와는 이르노라. 그들은 쌓을지라도 나는 헐리라. 사람들이 그들을 일컬어 악한 지경이라 할 것이요, 여호와의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 할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무너뜨리는데 우리는 다시 쌓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자들을 악한 지경이라 영영한 진노를 받은 백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불굴의 의지로 우리는 다시 일어나리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너졌을 때 겸손하게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미국의 대통령들이 성경에 손을 얻고 선서를 하지만 자기의 분수를 모르고 하나님처럼 되어 버린 것입니다. 이것이 미국만의 일입니까? 오늘날 우리 모두가 다 이러한 색욕을 좇아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것이 저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미국을 무슨 하나님의 나라나 되는 것처럼 미국을 말하고, 미국의 부자들이 하나님을 잘 섬겨서 부자가 되었다고 설교 예화로 얼마나 많이 들고 있습니까? 바벨론의 속성과 에돔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을 보면서 우리가 경계를 삼아야 할 것입니다. 그들이 우리보다 악해서 저렇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도 회개하지 않으면 저렇게 되는 것입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져서 18명이 죽은 것이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들보다 죄가 더 많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이와 같이 망하리라고 예수님께서 누가복음 13장에서 말씀하셨습니다. 미국처럼 거대하지는 않더라도 모두가 자기들의 바벨탑을 쌓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바벨탑이 무너집니다. 우리는 그때 애통하며 통곡하는 인생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우리의 거룩함입니다.

 

7-8절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하심이 아니요, 거룩케 하심이니. 그러므로 저버리는 자는 사람을 저버림이 아니요 너희에게 그의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저버림이니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습니까? 그렇다면 세상의 가치관을 따르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가치관을 거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거룩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거룩하여 져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이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었기에 거룩함을 입은 것입니다. 우리를 그 아들의 피로 단번에 거룩하게 하심을 입었기에 그 거룩함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것들로 더럽히지 않도록 자신의 몸을 지키고 자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무엇으로 지킬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과 기도로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심은 부정케 함이 아니요, 거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거부하는 것은 성령을 주신 하나님을 거부하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힘써 배워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구별된 삶을 사는 자들이 되게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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