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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4:13-18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서로 위로하라!
말씀:데살로니가전서 4:13-18

 
데살로니가전서 4장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성도의 삶에 대해서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1-8절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함에 있음을 배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4:9-12절 말씀을 통해 성도의 삶은 주님의 사랑에 기초해서 서로 사랑해야 하며, 자기 손으로 힘써 일하여 외인에게도 단정함을 보여야함을 배웠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성도의 삶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4:18절에 보면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서로 위로를 받고 위로를 하여야 할 상황들을 많이 만나게 됩니다. 사고를 당하기도 하고, 실패를 할 때도 있고, 실직을 당할 때도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들은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우리 모두에게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성도가 이러한 일들을 만났을 때 어떻게 위로할 수가 있겠습니까? 오늘 본문에 보면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을 말씀하면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증거 하였을 겁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잘못된 지식으로 인해 일도 하지 않고 있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난주에 살펴본 대로 자기 손으로 일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 보면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줄 알았는데 성도들 가운데서 죽은 자들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자 이러한 일이 어떻게 된 셈인가 하면서 당황해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들이 예수님의 재림에 어떻게 함께 할 수가 있겠는가 하는 의구심들이 일어나면서 어떤 자들은 예수님의 재림자체까지 불신하려는 경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에 대하여 좀더 상세하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13절을 보면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한다’라고 합니다. 자는 자들에 대하여 알게 됨으로 소망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 않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은 죽은 것이 아니라 자고 있는 것입니다. 자고 있기 때문에 언젠가 깨어날 것입니다. 요한복음 11장에 보면 나사로가 죽었을 때도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잔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깨우러 가자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은 ‘자면 깨어나겠내요’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나사로의 죽음을 말하였던 것입니다. 그런 후에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불러내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그러자 마치 자다가 일어나는 것처럼 나사로가 걸어나오는 것입니다. 이 사건은 바로 예수님은 부활이요, 생명이심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는 이미 부활과 생명 안에 들어 있기에 비록 세상이 볼 때는 죽어서 무덤에 들어갔지만 주님께서 깨우시면 언제나 일어나는 것입니다. 따라서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세상의 소망이 없는 자들처럼 슬퍼하지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14절을 보면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주무신 것이 아니라 죽으신 것입니다. 그리고 무덤에 묻히셨다가 부활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은 죽음이 아니라 자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것은 말 그대로 죄의 결과인 사망인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는 그 죄의 값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 하셨기 때문에 사망이 아니라 자는 것이 됩니다.

 

그러면 성도가 죽지 않고, 곧 오늘 말씀대로는 자지 않고 그대로 영생에 들어가면 될 텐데 왜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이 문제에 대해서 성경은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를 보고자 합니다. 15절을 보면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이 바울 사도의 사사로운 말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주님의 계시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말씀의 권위를 통하여 더욱 예수님의 재림과 부활의 확실성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이미 그리스도 안에 죽어 있는 자, 즉 자는 자들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살아 있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간상으로는 예수님의 재림 시에 거의 동시적 사건으로 일어나겠지만 순서상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임을 말씀함으로 죽은 자들에 대하여 슬퍼하거나 당황해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15b-17절에 보면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리스도 안에서 자는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살아있는 성도들이 저희와 함께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 주님을 맞이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미 주안에서 자는 자들과 함께 현재 살아서 주를 믿는 자들이 함께 재림의 주님을 영접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한가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18절에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이상한 교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천당이 없는 교회, 지옥이 없는 교회들이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설교에서 천국과 지옥에 대하여 설교하지 않는다는 말을 빗대어 하는 말입니다. 그러면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설교가 없는 이런 교회가 진정 참된 교회일까요? 성도의 복이란 하나님 자체입니다. 그러므로 지상에 보이는 것들이 성도의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오늘날 우리가 천국과 지옥을 알고 있다면 우리의 최고의 위로와 소망이 무엇이어야 마땅한 것입니까?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입니다. 곧 주님의 재림으로 성취될 극치에 이른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토록 우리 주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성도의 진정한 위로입니다. 이 소망이 있는 자는 위로가 되지 않는 상황은 없는 것입니다. 만약 성도라고 하면서 이 말씀이 위로가 되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이름만 성도이지 진정한 성도가 아닌 것입니다.

 

16-17절을 다시 보면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호령소리와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강림하실 때에 주 안에서 자던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리고 살아 있는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그러고서는 우리 주님과 함께 영원히 거하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에서 공중으로 끌어 올려진다는 말을 휴거라고 합니다. 휴거란 국어사전에는 없는 말이지만 데살로니가전서 4:17절의 내용을 한문글자로 만든 것이 휴거입니다. 이장림씨가 휴거란 책을 번역하여 한동안 휴거 열풍이 분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시에 휴거가 되지 못하면 지상에 남아서 엄청난 고통을 당한다는 세대주의적인 성경해석에 따라서 휴거론이 대두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상이 성도들에게 경각심을 주긴 하였습니다만 너무 지나친 신비주의로 치닫고 재림의 날 자를 예언하고 하는 바람에 이제는 아예 이 영광스러운 휴거를 이야기 하는 것조차도 금기시 되어 버렸습니다. 구름 속으로 영광중에 끌려 올라가 주님을 공중에서 맞이하여 영원히 우리 주님과 함께 거하게 되리라는 성도의 최종 소망이 실종되어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도 천국도 없고 지옥도 없이 그저 보이는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다가 이방인들이 상상하는 무릉도원 같은 세계에 들어가겠거니 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주님의 큰 호령소리와 천사장의 나팔소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져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60년대 부흥회 때나 나오는 이야기여야 합니까?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공중의 권세 잡은 자의 세력이 완전히 멸하여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예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히 살게 되는 것이 왜 이렇게 희미하여 져 버린 것입니까? 오늘날 우리 성도들이 지금 어떠한 고난과 고통과 아픔 가운데 있을지라도 이러한 주님의 재림과 그 영광중에 주님을 맞이할 것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면 우리는 지금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 가운데는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영광스러운 소망을 가지고 죽음의 길을 의연하게 걸어간 허다한 증인들이 구름같이 있습니다. 그들은 아무 것도 가진 것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그들은 모든 것을 소유한 진정한 부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삶이 부끄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이 위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들이 치유와 위로의 목회라고 하면서, 현대사회 속에서 여러 모양으로 고통 받고 있는 자들에게 상담하고 위로하는 방법을 개발하여 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왜 그렇게 힘들고 지쳐하는 것입니까? 단지 일용할 양식을 원하는 것이 아니라 십년, 백년, 천년, 만년 먹고 살기 위하여 일하고 있으니 피곤하고 지친 것입니다. 이러한 자신의 탐욕으로 인하여 지쳐 있는 자들에게 위로를 한다고 눈치 없이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로 위로한다고 하면 아마 욕으로 들리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천에 하나 만에 하나 이러한 위로를 기다리는 성도가 있는데도 목사가 믿음이 없어서 이러한 위로를 하지 않고 그저 세상에서 잘되리라는 말로 위로한다면 이 사람은 또한 괴로워 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에 대하여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고린도전서 15:17-19절을 보면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으리니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바라는 것이 다만 이생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리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이 없었다면 우리의 믿음도 헛것이요,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잠자는 자도 망하였을 것입니다. 여기서도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를 잠자는 자라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이 이생뿐이라면 가장 불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님의 재림과 부활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생만 바라고 지금 살고 있다면 가장 불쌍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곧 양다리를 걸치고 이생의 것을 소망하고 살고 있다면 주님의 재림과 부활의 소망도 없이 이생이 다니까 먹고 마시고 즐기자는 자들보다 더 불쌍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20-24절을 보면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 때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처럼 부활의 순서가 나옵니다. 첫 열매는 예수 그리스도시고,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 그에게 붙어있는 자이고, 그 다음에는 모든 산자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심판하시고 만물을 하나님아버지께 바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50-58절을 보면 “형제들아!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고 또한 썩은 것은 썩지 아니한 것을 유업으로 받지 못하느니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고 했습니다. 혈과 육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담의 몸을 벗고, 신령한 몸을 입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죽음이요, 부활입니다. 그러므로 다 잠잘 것이 아니라 마지막 나팔에 홀연히 변화될 것입니다.

 

57절을 다시 보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이김을 받은 자는 세상에 미련을 두지 아니하고 그 날 곧 주님의 재림의 날, 다시 말하면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를 그날을 소망하며 사는 것입니다. 곧 주님이 오십니다. 주님이 바로 문밖에 와 계십니다. 개인적인 종말은 오늘 밤일 수도 있습니다. 주님의 날이 홀연히 임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 사도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4:7-10절을 보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열심으로 서로 사랑할찌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하고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주님의 재림에 대한 이러한 약속의 말씀이 오늘날 우리의 참된 위로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극치에 이른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며, 이러한 여러 말로서 서로 위로하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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