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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5:12-15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화목하라!
말씀:데살로니가전서 5:12-15

 
오늘 말씀은 크게 두 가지의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째는 12-13절 말씀으로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다스리며 가르치는 자들을 알아주고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라”고 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14-15절 말씀으로 모든 성도들에게 여러 가지의 내용들로 권면하고 있습니다. 오늘 이 시간 이 말씀을 구체적으로 보기 전에 교회가 무엇인지 먼저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교회가 무엇입니까? 에베소서 4:1-7절을 보면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라고 했습니다. 교회란 건물이 아니라 주의 백성들이 교회입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에 의하면 부르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부르심을 입어 나온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 4:15-16절에 보면 이러한 자들의 머리는 그리스도입니다. 머리란 모든 지시를 내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란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리스도의 지시를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성령께서 각자에게 은사를 허락하심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사를 주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오셨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심으로 대적의 성문을 깨트려 버린 것입니다. 그 결과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아 내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마귀의 권세에 붙들려 사망의 종노릇하고 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승리하심으로 우리를 주님께서 사로잡아 내신 것입니다. 이런 표현은 전쟁용어입니다. 이 말씀이 창세기 3:15절에서 이미 예언된 그러한 전쟁인 것입니다. 여인의 후손이 뱀의 후손의 머리를 상하게 함으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사로잡아 낸 자들에게 무엇을 주시는 것입니까? 은사를 주시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11-12절에 보면 그 은사들을 몇 가지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주신 것입니다. 여기서 사도와 선지자와 복음 전하는 자는 이미 그 직임이 완결 된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자는 무엇입니까? 이미 사도들과 선지자들에 의해 확정된 복음의 내용을 전하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복음 전하는 자들을 사도들과 동일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은 계시를 받아서 증거하였고, 오늘날 복음 전하는 자들은 그 받은 복음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분이 왜 필요한가 하면 구분하지 않으면 얼마나 혼동이 많겠습니까? 나도 계시 받았다 하는 사람들이 어디 한두 사람입니까? 그러므로 오늘날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늘 주의해야 할 것이 사도들이 전한 복음을 전하는지 아니면 자신이 만들어낸 복음을 전하는지 늘 주의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구분은 신분상의 높고 낮음이 아니라 기능상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의 교회 안에서 사도와 선지자들과 복음 전하는 자들의 기능을 누가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목사와 교사라는 것입니다. 물론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목사만이 아닙니다. 모든 성도들이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나 이 직분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에 중요하기 때문에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치는 자가 목사요, 교사라고 하는 것입니다.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로 주신 것은 에베소서 4:12절에서 보면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결국은 교회에 직분을 주신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러한 일에 목사와 교사로 쓰임을 받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2-13절에 보면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너희끼리 화목하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 곧 목사와 교사를 사랑 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겨라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 가지 은사와 직분이 있는데 왜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를 가장 귀하게 여기라고 하는 것입니까? 그것은 교회 성도들이 말씀을 듣고서 가야할 방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단지 목사를 위하여 성도가 있는 것이 아니라 목사가 성도를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도, 선지자도, 복음 전하는 자도 바로 성도들을 위하여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것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주님께서 이루어가시는 일에 목사와 교사를 주셔서 성도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말씀을 배우고 가르침을 받아서 성장하여야 하는 것입니까? 에베소서 4:14절을 보면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이 말씀의 터 위에 세움을 입지 아니하면 계속하여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말씀의 터 위에 세워가는 일을 하는 자를 알아주라는 것입니다. 목사가 자기의 욕심을 위해서나 자기의 명예를 위해서 말씀을 인용한다면 그러한 자들은 성도들이 거부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를 보면 그러한 자들을 거부할 말씀에 대한 바탕이 없으니 계속 끌려 다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고 정말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들이 있다면 성도들이 알아주고 사랑 안에서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것이 결국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날은 워낙 목사에 대하여 불신이 많다 보니 아예 색안경을 끼고 경계를 하고 있습니다. 어디 한번 두고 보자라는 식입니다. 곧 말씀을 제대로 가르치나 보자는 것입니다.

 

목사란 성도들을 말씀으로 훈련하고 봉사의 일을 하게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귀하게 여기는 것은 성도들의 성장에 유익한 것입니다. 목사와 사사로운 감정이 생기거나, 화목하지 못하면 또는 성도 간에 화목하지 못하면 결국 성도들의 손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수고를 알아주라고 합니다. 목사의 수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수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는 것이 무슨 수고냐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분은 목사님은 이제 성경 분문만 보면 설교가 줄줄 되겠네요라고 합니다. 그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물론 때로는 짧은 시간에 말씀의 줄기가 세워지기도 합니다만 대부분 몇 날 몇 일 끙끙거립니다. 주일 한편의 설교를 위해서도 몇 주일씩 상고하고 수십 번씩 원고를 고쳐 쓸 때도 있습니다. 저는 일주일에 4편 정도의 설교를 준비하는데도 너무 진이 빠집니다. 그래서 재충전을 위해 안식의 필요를 느낍니다. 말씀을 증거하는 자에 대한 교회의 배려가 중요합니다. 말씀 증거자에 대한 배려가 나타나는 것은 결국은 성도들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4-15절을 보면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고 했습니다. 이 권면은 목사와 성도 모두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 이러한 자들이 있을 경우에 어떻게 하라고 하시는가를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 말씀이 자신에게 해당이 된다면 이 말씀의 권면을 받아들이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일을 목사가 하기에 귀하게 여기라는 것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의 영적인 유익을 위하여 수고하는 자입니다. 이것을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하나 하나의 권면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는,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라고 합니다. 규모 없는 자들이란 군대 대열에서 낙오된 병사들에 대하여 사용하는 말입니다. 곧 어떤 대형을 흐뜨리게 하는 자들입니다. 교회의 목표란 분명합니다. 우리를 부르신 그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믿는 일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를 통해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일입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일을 흐뜨리는 자나, 교회 공동체의 하나됨을 깨뜨리는 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주님의 몸된 교회를 허물어뜨리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을 권면하고 책망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마음이 약한 자는 믿음에 낙심해 있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데살로니가에서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다가 먼저 죽어 버린 형제들로 인하여 낙심 중에 있는 자들을 안위하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안위는 사도 바울이 한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 시에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날 것임을 증거함으로 안위를 주는 것입니다.

 

셋째는,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힘이 없는 자란 육체적인 것이겠습니까? 영적인 것이겠습니까? 물론 영적인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힘이란 세상적인 힘입니다. 돈이나 권세나 명예 같은 것이 힘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는 것이 아니라 영적으로 무력한자들, 연약한자들을 붙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4:1-23절을 보면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으로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네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케 하지 말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을 받지 않게 하라.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하니라.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일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고 있으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책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니라”고 했습니다.

 

고린도전서 8:1-13을 보면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이 사람은 하나님의 아시는 바 되었느니라.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분 밖에 없는 줄 아노라.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풍성함이 없으리라. 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읽은 로마서와 고린도전서 말씀에 보면 먹는 문제와 날 문제에 있어서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아직도 구약의 음식 정결법을 지키거나 또는 안식일을 지키는 자들에 대하여 힘이 없는 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을 붙들어 주라는 것입니다. 이는 형제를 함부로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성도란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며,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하는데 왜 너는 이것을 하지 못하느냐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상에 받쳐졌던 제물이 아무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러한 자들을 위하여서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평생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하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형제의 유익을 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바울은 이처럼 자기 유익을 구하지 않고 형제의 유익을 구함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바울처럼 믿음이 연약한자들을 붙들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모든 사람에 대하여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여 주님께서 오래 참으신 것처럼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단지 형제에 대하여서만 오래 참는 것이 아니라 성도가 아닌 자들에 대하여서도 오래 참는 것입니다.

 

끝으로,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오직 피차 대하든지 모든 사람들을 대하여 항상 선을 좇으라고 하십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안에 여러 가지 핍박이 있었습니다. 교회 밖으로부터 오는 핍박도 있었고, 교회 안에서의 핍박도 있는 것입니다. 이러할 때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것입니다. 로마서 12:17-21절을 보면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했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오늘 바울의 권면의 말씀이 우리들에게 생명의 말씀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우리 가운데 서로 알아주고 귀히 여김으로 화목케 하는 역사가 충만히 있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이를 통하여 주님의 몸된 교회를 세워 가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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