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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5:23-28

2009년 데살로니가전서 공부
                                                        흠 없게 보전되기를
말씀:데살로니가전서 5:23-28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말씀을 인하여 목숨을 받쳤습니다. 도대체 말씀이 무엇이길래 말씀이 잘못 증거되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목숨까지 바쳐서 개혁을 부르짖었겠습니까? 구약에서든 신약에서든 교회의 역사 속에서든 하나님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는 것을 사탄이 그렇게 싫어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변함없이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늘 기억하여야 할 것은 말씀이 나에게 달콤하게 들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셔야 합니다. 우리의 죄된 본성상 하나님의 말씀이 귀에 거슬리게 되어 있습니다. 단 한 가지만 제시하여도 단번에 기분이 나쁜 말씀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는 살고자 하는데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마 16:24).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것이 물질 곧 돈입니다. 그런데 디모데전서 6:10절에 보면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는 말씀이 기분이 좋게 들립니까? 나쁘게 들립니까?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주머니가 회개하지 않으면 참된 회개가 아니다.’ 우리의 싸움은 결국 주님을 사랑할 것인가, 돈을 사랑할 것인가의 싸움인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우리는 그 앞에서 벌거벗은 듯이 드러날 것입니다. 그때 주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시겠습니까? ‘너는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돈을 사랑하였구나. 그러니 너는 돈과 함께 망할 것이다’고 하시지 않을까요? 사도행전 8장에 보면 마술사 시몬이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사려고 하였다가 ‘네 은과 함께 망할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목사에게는 ‘너는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너의 목회를 사랑하고 너희 교회를 너의 소유처럼 사랑하였지 나를 사랑한 것이 아니구나’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말씀 앞에 앉아 있습니다만 과연 지금 우리가 무엇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시편 137편을 보겠습니다. 무엇이라고 노래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이는 우리를 사로잡은 자가 거기서 우리에게 노래를 청하며 우리를 황폐케 한 자가 기쁨을 청하고 자기들을 위하여 시온 노래 중 하나를 노래하라 함이로다. 우리가 이방에 있어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예루살렘아 내가 너를 잊을진대 내 오른손이 그 재주를 잊을지로다. 내가 예루살렘을 기억지 아니하거나 내가 너를 나의 제일 즐거워하는 것보다 지나치게 아니할진대 내 혀가 내 입 천장에 붙을지로다. 여호와여 예루살렘이 해 받던 날을 기억하시고 에돔 자손을 치소서 저희 말이 훼파하라 훼파하라 그 기초까지 훼파하라 하였나이다. 여자 같은 멸망할 바벨론아 네가 우리에게 행한 대로 네게 갚는 자가 유복하리로다. 네 어린 것들을 반석에 메어치는 자는 유복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자신이 가장 즐거워하고 있는 것보다 더 예루살렘을 사모하지 않으면 자신의 혀가 입에 붙어버리라고 저주선언을 합니다. 지금 우리가 그런 선언을 하고 그렇게 되어 버린다면 저부터 혀가 입에 들어붙어 벙어리가 될 것입니다. 과연 내가 가장 즐거워하는 것보다 더 주님을 사랑하십니까? 그렇지 않다면 주님을 맞을 준비가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 인생 최후 최고의 목표가 무엇이어야 합니까? 우리의 삶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며 주님의 재림을 사모하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 나라가 극치에 이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최고의 목표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말로하면 주님이 임하실 때 우리가 그 앞에서 흠 없게 보전되는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3절을 다시 보면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고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최대의 관심사가 되고 있습니까? 23절 말씀에서 영과 혼과 몸이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어떤 분들은 사람을 세부분으로 구분합니다. 이것을 삼분설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이에 반해 어떤 사람들은 이분설로 나누기도 합니다. 이분설은 사람은 영혼과 육체로 되어 있다고 봅니다. 삼분설을 주장하면 우리의 이해가 더 쉽습니다. 혼과 몸은 짐승에게나 사람에게나 같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영은 사람만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슨 설이 정당하다고 보십니까? 이분설입니까? 삼분설입니까? 그러나 이렇게 분석적으로 나누는 것은 헬라적 사고방식입니다. 우리가 교육받아온 근대철학이 서구의 헬라철학이라고 합니다. 이에 반해 오히려 동양적인 사고방식은 통합적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동양적 사고도 아니요, 서구적 사고도 아닙니다. 성경에서 인간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서 인간을 어떻게 보는가를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구약에서는 인간을 이분설이나 삼분설로 말하지 않습니다. 구약에서는 마음, 영혼, 육신, 정신 등의 개념만이 아니라 귀와 입, 손과 팔과 같은 개념들이 서로 동등하게 교환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체의 한 부분을 그 사람의 전체를 나타내는 대명사와 거의 바꿀 수 있는 것처럼 나타나는 것입니다. 시편 6:2-4절에 보면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긍휼히 여기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나의 영혼도 심히 떨리나이다. 여호와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여호와여 돌아와 나의 영혼을 건지시며 주의 인자하심을 인하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나의 뼈가 떨린다’, ‘나의 영혼이 떨린다’는 말을 같은 의미로 사용합니다. 이런 표현법을 평행법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므로 뼈 따로 영혼 따로가 아닙니다. 뼈가 곧 영혼이요, 영혼이 곧 뼈로 환원이 됩니다. 결국 이것은 이렇게 고백하는 ‘나’ 자신을 대신 명칭하는 것입니다.

 

시편 84:2절에 보면 “내 영혼이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 쇠약함이여 내 마음과 육체가 생존하시는 하나님께 부르짖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영혼과 마음과 육체’가 같은 뜻으로 주님을 사모한다는 것으로 사용됩니다. 이사야 52장에 보면 “평화를 전하는 자들의 아름다운 발이여”라고 하는데 이 말이 그 발만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발이 빠르게 달리는 것을 통하여 그 사람 전체를 말하는 것입니다. 사사기 7장에 보면 “내 손이 나를 도왔다”고 하는데 이 말은 자기의 무장과 자기의 능력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단어 하나 하나를 현대적인 의미로 풀어낸다고 해서 정확하게 뜻이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서 인간을 말할 때는 인간의 경향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몇 부분을 떼어 내거나 분리시키는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인간이 어떠한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인간을 영이라고 하든 몸이라고 하든 간에 그 인간의 죄된 경향성이 다 드러나는 것입니다. 물론 신약적인 의미에서 영은 영이요, 육은 육이라고 하는 것은 사람을 영혼과 육체로 구분하는 것이 아니라 죄된 인간의 경향성 전체를 육으로 보는 것이고, 영이란 오직 하나님의 선물로 주어진 것을 영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임한 자를 영이라고 본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영이 없는 자는 육인 것입니다. 이 사람의 정신과 혼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런 전체적인 의미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말씀에 영과 혼과 육이 흠이 없게 보전되기를 원한다는 것은 어느 한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계획과 행동까지 그리스도 재림의 날에 흠이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조금 복잡하지만 조금더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영과 혼과 육으로 말하고 있지만 이것을 원문에 보면 복수로 말하지 않고 단수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전체적인 한 인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인이 흠이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정말로 기다린다면 이러한 기도가 도전이 되고 은혜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정말로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기로 되어 있다면 신랑이 오는 그 날까지 얼마나 자신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하겠습니까? 자신의 흠들을 가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부화장이 비싼 것 아닙니까? 얼굴의 여러 가지 흠들을 가리고 예쁘게 보이기 위해 비싸게 화장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의 영원한 신랑을 기다리기 위하여 어느 정도로 흠이 없게 되도록 보전하고 계십니까? 마태복음 5장의 산상수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네 오른손이 범죄하거든 찍어 내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서 지옥에 가지 않는 것이 낫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온전함입니다. 눈이 범죄하면 빼어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한 눈이 없이 생명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다 가지고 지옥 불에 가는 것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발이 범죄하고 눈이 범죄한 것입니까? 아니면 인간 전체가 죄를 범한 것입니까? 어떻게 발 혼자, 눈 혼자 범죄를 하는 것입니까? 결국 인간의 죄된 경향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 온전케 하여 흠이 없도록 보전하려면 다 잘라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3:9-18절을 보면 “그러면 어떠하뇨. 우리는 나으뇨.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기록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저희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함과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신체적인 부분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것들에게 흠이 없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라고 하였으니 목구멍 틀어막아 버리고, 혀는 속임을 베푸니 잘라 버려야 하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니 역시 잘라 내어 버려야 합니다.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니 잘라 버려야 하고, 눈도 더러운 것을 보니 빼어 버려야 합니다. 결국 이러한 신체적인 기관들을 통하여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인간의 죄인됨의 경향성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꼭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스스로 주님 앞에 흠이 없이 설려고 하면 다 잘라내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전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는 말씀이 실감이 나지 않습니까?

 

왜 우리가 죄인인지 아시겠습니까? 이러한 인간이기에 사는 것이 다 죄 뿐입니다. ‘나 행한 것 죄뿐이니’라는 찬송가 가사가 생각납니다. 이 사람이 악하였기에 이러한 가사를 고백하였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성결하게 거룩하고 깨끗하게 살려고 정말 죄와 싸우기를 피흘리기까지 싸운 사람들의 고백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우리가 너무 쉽게 ‘인간이 죄인이야 별수 있겠어.’ 그렇게 말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처절하게 자신이 온전케 되도록 흠이 없도록 시도해본 사람만이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라는 말씀에 참으로 동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것이 너무 피상적입니다. 그저 무슨 스피드 퀴즈대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죄의 깊이를 보게 되면 자신에 대하여 절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지금도 정결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먹는 것, 입는 것까지 율법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러니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않고 먹는다고 유대인들이 책망을 할 때 예수님께서 무어라고 하셨습니까? 사람의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으로 정결케 하시는 분이 앞에 계신데 자신들은 스스로 정결하고 흠이 없게 행한다면서 예수님을 배척한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날 윤리와 도덕과 종교가 나아가는 길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흠도 티도 없게 할 수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입은 자는 결단코 자신이 스스로 흠이 없게 할 수 없음을 알고 흠 없는 어린 양의 피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모든 희생의 짐승들의 공통된 특징은 흠이 없어야 하는 것입니다. 온전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흠이 있는 것을 드린다면 이것은 사기이며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무엇으로 온전한 것을 드릴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스스로 만들어 내어서 드린다고 하면, 반드시 죄인이기에 흠이 있습니다. 그러면 하나님 앞에 사기 치는 것이며, 저주를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우리가 어떻게 의롭다 함을 받아 흠이 없는 자가 됩니까? 베드로전서 1:18-19절을 보면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의롭다함을 받고 흠이 없는 자가 된 것은 은이나 금과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24절에 보면 “너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시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부르신 예수님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이 일을 주님께서 이루실 것입니다. 에베소서 1:4절에 보면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이유는 우리를 흠이 없게 하시려함입니다. 그러므로 유다서 20-25절에서 말합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곧 우리 구주 홀로 하나이신 하나님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과 위엄과 권력과 권세가 만고 전부터 이제와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은 그 영광 앞에 흠이 없게 세우실 자를 기다립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주님 앞에 흠이 없게 서고자 하는 거룩한 소망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미쁘신 주님께서 반드시 이루실 것을 믿고, 그 소망 가운데 형제들을 위해 기도하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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