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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살전 1:2-4
성경본문내용 (2)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4)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강설날짜 2009-11-15

2009년 11월 15일 설교


바울의 감사


말씀:데살로니가전서 1:2-4

데살로니가전서 5:16-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고 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항상,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실 추수감사절 같이 어느 특정한 날을 정하여 하나님께 감사의 단을 쌓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일이 아닐 것입니다. 마치 그 하루만 감사하면 다 된 것처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가 추수감사제를 통해 지난 일년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돌아보며 감사하며 새롭게 하나님의 은혜 위에 굳게 서서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자 작정하는 데에는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오늘은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감사제목을 중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를 돌아보며 감사의 단을 쌓고자 합니다.  

2절에 보면 “우리가 너희 무리를 인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함은”이라고 합니다. 바울 사도가 1절에서 데살로니가 교회에 은혜와 평강으로 인사를 하고 난 후에 데살로니가 교회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를 생각하면 항상 감사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기도할 때 마다 말한다고 하고 있습니다. 바울 사도가 복음을 전하고 그 복음의 열매들이 나타났을 때 그것이 얼마나 기쁨이겠습니까? 이러한 복음으로 말미암아 나타난 역사는 하나님의 일하심이기에 바울은 그 감사를 하나님께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또한 자신의 기쁨이기도 한 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에서 삼 주간의 짧은 기간 복음을 전하고 그곳에서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핍박하는 자들에 의해 쫓겨났습니다. 그런데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서 그 삼 주간의 말씀을 듣고서 그곳에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면 바울이 데살로니가 성도들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데살로니가 교회에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나타남으로 다른 교회들에게 본이 되기 때문입니다. 3-4절을 보면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의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감사 제목을 하나씩 살펴보겠습니다. 첫 번째로, 믿음의 역사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먼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감사 제목으로 그들 가운데 나타난 믿음의 역사로 인해 감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냥 믿음하면 되지 왜 역사라는 말이 붙는 것입니까? 참된 믿음이란 반드시 역사가 있는 것입니다. 역사란 말이 새번역에는 ‘행위’로 되어 있습니다. 참된 믿음에는 그에 따른 행위가 반드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야고보서에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약 2:26). 따라서 믿음에 따른 행위, 이것이 믿음의 역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이 믿음의 역사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나타남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 나타난 구체적인 믿음의 역사가 무엇입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그 믿음으로 인한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와 같은 것입니다. 6-8절에 보면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고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많은 환난과 핍박 가운데서도 바울이 전한 복음을 기쁨으로 받아 주를 본받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이와 같은 믿음의 역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의 모든 믿는 자들에게 본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마게도냐와 아가야 뿐 아니라 각처에 퍼지게 되었습니다.

히브리서 11:1절을 보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가 이 말씀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합니다. ‘지금 우리 교회 예배당이 비록 초라하고 보잘 것 없지만 앞으로 5년 후에는 멋진 새 예배당으로 지어질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앞으로 되어질 그 일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열심히 헌신합시다’라고 독려합니다. 이런 독려를 하면서 그들은 ‘믿음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이미 본 것처럼 믿고 바라는 것이다’라고 합니다. 그러나 5년 후에 지어질 예배당 건물이 하나님의 약속 안에 주어져 있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의 약속은 이런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1:1절 이하에서 믿음의 선진들이 무엇을 바라고 기다린 것입니까? 아벨이나 에녹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이 무엇을 바라고 믿었습니까? 그것은 바로 약속의 실체가 오시기를 믿고 기다린 것입니다. 곧 모든 언약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바란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그들은 세상에서는 나그네로 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증거로 나타난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는 바로 이와 같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난 것입니다. 바울이 비록 삼 주밖에 복음을 전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을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았습니다. 2:13절에 보면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쉬지 않고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속에서 역사하느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이 전한 복음 곧 모든 약속을 이루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영접하고 믿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 합당한 삶의 모습이 나타난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역사인 것입니다.

오늘날도 역시 믿음의 증거란 같은 원리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어떻게 나타납니까? 디모데전서 6:6-12절을 보면 “그러나 지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 되느니라.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침륜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사모하는 자들이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찔렀도다. 오직 너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들을 피하고 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좇으며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라 영생을 취하라. 이를 위하여 네가 부르심을 입었고 많은 증인 앞에서 선한 증거를 증거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역사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들을 피하고 믿음과 사랑과 인내를 위하여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있다면 이것이 믿음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이루어낼 수 있는 일들을 믿음의 역사라 하지 않습니다. 엄청난 업적들을 가지고 믿음의 역사라고도 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영생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알고 그것을 위하여 세상의 것들을 버리는 일들이 믿음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믿음의 역사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땅의 것들을 사모하고 있습니까? 그런데 그러한 것들 곧 땅의 것들을 사모함을 피하고 영생을 위하여, 믿음과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을 인내하며, 영생을 추구하고 달려가는 일이 어떻게 가능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바울 사도가 데살로니가 교회에 이러한 믿음의 역사가 나타남을 인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의 능력이고 말씀의 능력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데살로니가 교회 가운데 이루신 이런 믿음의 역사를 우리 가운데도 이루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복음을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의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주님의 몸된 교회로 세워주시고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대로 참된 교회로 세워져가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말씀의 본의를 바르게 배우고자 힘쓰는 가운데 사람의 말로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 역사를 이루어 주셨습니다. 또한 주일 오후 소요리문답 공부와 수요일 신구약 성경공부를 통해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가게 해 주시고 온 교회가 주님을 바르게 믿고, 예배가 회복되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참된 교회로 세워져 가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온 교회가 조금씩 말씀에 기초한 바른 의식을 가지고 하나님의 백성다운 삶을 살게 역사해 주셨습니다. 이제 우리 교회가 말씀의 본의를 들어내며, 신약성경이 증거하는 참된 교회로 세워져 가는 교회로 조금씩 영향력을 끼쳐가게 하셨습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 이루신 믿음의 역사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두 번째로, 사랑의 수고에 대한 감사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사랑의 수고로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하고 있습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반드시 따르게 됩니다. 자기희생이 없이는 결코 참된 사랑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사랑의 수고’라고 할 때 ‘수고’라는 말 속에는 ‘노동’이란 뜻과 함께 아기를 낳을 때 겪는 산모의 ‘산고’와 ‘진통’이라는 뜻도 함께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참 사랑에는 아기를 낳고 아기를 기를 때 엄마가 치루는 ‘산고’와 ‘진통’과 ‘수고’를 포함한다는 말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 가운데 이와 같은 사랑의 수고와 사랑의 산고가 있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사랑의 수고는 데살로니가 교회 내에만 그치지 않았습니다. 온 마게도냐 지역 교회 형제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9-11절에 보면 “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너희가 온 마게도냐 모든 형제를 대하여 과연 이것을 행하도다. 형제들아 권하노니 더 많이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사랑에 관하여는 더 이상 쓸 것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사랑의 수고는 온 마게도냐 지역 모든 형제들에 대해서 나타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구체적인 사랑의 수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어려운 형제들을 물질로 돕는 것이었습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자기들 교회 안의 형제들에게만 아니라 온 마게도냐 지역의 교회 형제들에게도 이러한 사랑의 수고를 행하였습니다. 마게도냐 지역에는 빌립보와 베뢰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이러한 교회들에게까지 데살로니가 성도들의 형제 사랑이 나타난 것입니다. 그런데 어려운 형제를 물질로 돕고 나눈다는 것은 그냥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희생과 힘씀이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사랑의 수고라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합니까? 그런데 말로서는 하는데 행동으로 나타나지는 않는 것입니다. 이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곧 사랑의 수고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가 배고프면 밥사 먹어라고 말만하지 말고 밥 사먹을 돈을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추운데 옷을 사 입어라고 말만하는 것이 아니라 옷을 하나 사다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사랑의 수고입니다. 곧 말로서만이 아니라 실제 수고가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이란 말이 아니라 수고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3장의 사랑이란 말에서 나오는 모든 내용들이 결국 자기의 수고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예수님께서 하셨고 그 선물을 우리에게 주신바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형제에 대한 사랑의 수고가 나타나기 위해서는 우리 속에 주님의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주님의 사랑이 내 가운데서 넘쳐날 때 자연히 형제들에게까지 그 사랑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가운데도 사랑의 수고가 넘쳐나게 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는 아직 미조직 교회요, 외적으로 작은 교회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 가운데 사랑을 부어 주셔서 그 사랑으로 성도들 간에 사랑의 수고가 풍성하게 하여 주셨습니다. 성도들 가운데 어려운 형제를 말없이 물질로 도와주고 여러 가지 필요로 섬기는 역사가 있습니다. 또한 물질이 힘든 가운데도 시골 교회와 개척 교회, 세계선교를 돕고 섬기게 하셨습니다. 우리 가운데 더욱 주님의 사랑을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살고 그 사랑이 넘침으로 우리 안에서 아름다운 사랑의 수고가 더욱 나타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세 번째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로 인한 감사입니다.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성도들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소망의 인내란 나의 사사로운 꿈이나 장래의 계획으로 인한 인내가 아닙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입니다. 이것은 단지 우리가 되었으면 하는 그러한 소망이 아닌 것입니다. 로마서 8:24-25절에 보면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눈에 보이는 이 세상의 것들이 소망이 될 수 없습니다. 돈이나, 명예나, 출세나, 심지어 목회적인 성공도 우리의 소망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장차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 불태워지기 위해 보존되고 있을 뿐입니다(벧후 3:7). 우리 성도들의 소망은 주님의 재림과 성도의 부활입니다. 극치에 이를 하나님 나라입니다. 이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이런 것을 소망하며 사는 자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이루어질 극치에 이를 하나님 나라! 이것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진 자는 인내로 기다려야 합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많은 믿음의 선진들이 이 소망을 인해 인내하며, 이 땅에서는 거룩한 나그네로 살았습니다. 히브리서 11:8-16절을 보면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 것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이 생육하였느니라. 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또 땅에서는 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이같이 말하는 자들은 본향 찾는 것을 나타냄이라. 저희가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저희 하나님이라 일컬음 받으심을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저희를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13-18절에 보면 바울 사도는 주님의 재림의 소망을 가진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권면합니다.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 찐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 참으로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이런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의 수고를 하며, 아름다운 믿음의 역사가 그 교회 가운데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에게도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주시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문화 명령을 수행하며, 거룩한 나그네의 삶을 살게 하여 주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삶을 살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가진 자들은 어떤 자들입니까? 4절을 보면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고 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가 있는 자들입니다. 복음을 증거함으로 이러한 자들을 얻게 된다면 그들로 하여금 함께 감사하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바로 주님께서 사랑하시고 택하신 자들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가 무엇인지 알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사랑과 소망의 인내의 열매를 더욱 풍성히 맺어가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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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살로니가전서 1장] 바울의 감사 살전 1:2-4 손재호 2009-11-15 4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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