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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역대상 28:9-10
2003년 특강

                                                  하나님을 알고 섬기라

말씀:역대상28:9,10
요절:역대상28:9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길지어다 여호와께서는 뭇 마음을 감찰하사 모든 사상을 아시나니 네가 저를 찾으면 만날 것이요 버리면 저가 너를 영원히 버리시리라.”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습니다. 물론 우리가 잘 알듯이 그는 죄와 허물이 많은 왕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왕으로 하나님을 심히 기쁘게 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다윗의 인생을 보면 참으로 파란만장한 인생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인생은 전쟁과 함께 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는 사울왕의 정치적인 라이벌로 낙인찍혀 10년이 넘도록 쫓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 기간은 그에게 생사를 넘나드는 아슬아슬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전쟁과 아들들의 반역 등 많은 인생의 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그는 그런 환난과 역경을 통해 도리어 하나님을 생생하게 만날 수 있었습니다. 이런 다윗이 이제 하나님의 부르심을 앞에 두고 이스라엘 백성들과 아들 솔로몬에게 유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다윗의 유훈 중에 특별히 아들 솔로몬에게 하는 유훈입니다. 28:1절에 보면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의 각계 지도자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고 유훈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 유훈의 핵심은 하나님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구하여 지키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아름다운 땅을 누리고 후손에게 영원한 기업이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백성의 지도자들에게 유훈을 한 후 후계자인 아들 솔로몬에게 유훈 합니다. 솔로몬에게 하는 다윗의 유훈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네 아비의 하나님 곧 다윗의 하나님을 알라는 것이고, 둘째는 이 하나님을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윗의 유훈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을 어떻게 섬겨야 하는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앞에 두고 아들 솔로몬에게 유훈합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마지막으로 할 말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먼저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고 유훈 합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알라”하는 말은 단순한 종교적 지식이나 영적인 지식을 많이 얻으라는 권면이 아닙니다. 곧 하나님에 대한 지식의 증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서 “하나님을 알라”는 말은 개인적인 경험이나 체험에 기초해서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알라는 말입니다. 히브리어 원어로 보면 “안다”는 말은 “야다”입니다. 이 말은 단순한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어떤 관계를 통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성경에 보면 자주 “남자가 여자를 안다”라고 하는 말이 나오는데 여기서 “안다”라는 말은 대단히 중대한 관계가 발생했다는 뜻으로 성관계가 이루어졌을 때 “야다”라는 단어가 쓰여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이 “안다”는 말은 개인적인 교제, 더 깊고 밀접한 의미에서 사랑의 관계를 통해 상대방을 알아가는 그런 앎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알라”라는 말은 부부가 성관계를 맺음으로 더 깊이 인격적으로 체험적으로 아는 것처럼 하나님과 개인적으로 깊은 관계와 교제와 사랑의 관계를 통해서 체험적으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지난 중에 생각해 봤듯이 성경 속에 나타나있는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곧 내 생활 속에서 내가 경험하고 체험하고 만난 하나님, 관계와 사랑 속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이 있어야 함을 배웠습니다. 나의 생활 현장 속에서 경험하고 체험하며 만난 나의 하나님이 있을 때 정말로 진실된 사랑고백을 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알라”고 한 것은 솔로몬이 개인적으로 밀접하게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아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지식적으로 아무리 잘 알고 많이 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과 깊숙한 개인적인 관계를 갖기 전까지는 아무도 하나님을 참으로 안다고 할 수 없습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을 알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고 한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네 아비의 하나님” 이 말은 다윗이 전 생애를 통해서 경험하고 체험한 하나님을 말합니다. 곧 다윗이 실재 삶 속에서 만난 하나님을 알라는 말입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자신이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체험한 만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를 열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다윗이 그의 인생 속에서 경험하고 체험한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입니까? 다윗의 인식과 다윗의 영혼과 다윗의 지성과 다윗이 일생을 통해 부딪쳐 알았던 그 하나님은 도대체 어떤 하나님이었습니까? 다윗이 생활 속에서 경험하고 만난 하나님은 시편에 보면 잘 나타나 있습니다. 그가 만난 하나님을 우리가 일일이 다 기록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크게 몇 가지로 요약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입니다. 다윗은 전 생애를 통해서 약속을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시편에 보면 다윗이 얼마나 신실하신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까? 시편105편8-10절에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언약 곧 천대에 명하신 말씀을 영원히 기억하셨으니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이며 이삭에게 하신 맹세며 야곱에게 세우신 율례 곧 이스라엘에게 하신 영영한 언약이라.” 다윗은 그의 삶에서 언약하신 것을 기억하시고 신실하게 지키시는 하나님을 매순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또한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본질과 속성에서 거룩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일생을 통해서 거룩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했습니다. 하나님은 거룩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자신이 범죄했을 때 그 죄를 용납하시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철저하게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했습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였을 때 하나님께서는 그의 죄를 철저하게 징계하셨습니다. 그의 아들을 데려 가셨습니다. 그리고 말년에 끝임없는 반역에 시달렸습니다. 이것은 모두 다윗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였습니다. 다윗은 이 거룩하신 하나님을 철저하게 경험했습니다. 시편7편11절에 보면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또한 다윗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체험했습니다. 시편32편 1-5절에 보면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허물의 사하심을 얻고 그 죄의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가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치 않는 자는 복이 있도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화하여 여름 가물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다윗은 그의 생애를 통해서 죄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깊이 체험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을 고백할 때마다 “노하시기를 더디 하시고 용서하기를 속히 하시는 하나님”,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다윗의 인생을 그토록 힘 있게 하고 능력 있게 하시며 늘 찬양과 감사 속에 살 수 있게 한 원동력은 하나님의 용서하심이었습니다. 용서의 사랑만큼 사람을 감격케 하고 능력 있게 하는 것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피할 수 없는 자임을 깨달은 자가 용서함을 받을 때 그 때의 감격이 어떠하겠습니까? 용서는 우리를 자유케 합니다. 용서는 우리 감동케 합니다. 용서는 우리로 하여금 새로운 삶을 살게 합니다. 용서의 사랑은 그 사람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힘이 있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을 보십시오. 그녀가 주님께 용서의 사랑을 덧입었을 때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녀의 삶이 완전히 변화되었습니다. 주와 복음을 위해 온전히 헌신하는 믿음의 여인, 전도 여왕이 되었습니다. 다윗은 용서하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또한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힘이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원수들로부터 생명 싸개로 보호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며, 또한 수많은 반역과 전쟁 속에서 힘이 되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시편 곳곳에서 이 하나님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지난 주 살펴보았던 시편18편 1,2절에서는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자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나의 피할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 뿐만 아니라 다윗이 만난 하나님은 목자 되신 하나님이십니다. 시편23편만큼 아름다운 시도 없습니다. 이 시편에 보면 다윗은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시는 목자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한 하나님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참으로 다윗이 만난 하나님을 우리는 다 열거하기도 힘듭니다. 다윗이 만난 하나님을 다 열거하려면 오늘이 다가도 부족할 것입니다. 다윗은 신실하신 하나님, 거룩하신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목자 되신 하나님, 인자하신 하나님, 선하신 하나님, 힘이 되신 하나님, 이런 하나님을 자신의 생애를 통해 체험했습니다. 다윗은 전 생애를 통해서 만나고 체험한 자신의 하나님을 그의 생애 마지막에 아들에게 남기기를 원했습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라.”

   다윗이 아들 솔로몬에게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을 바로 섬기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알게 되면 그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게 될 것입니다. 남편을 바로 아는 아내가 남편을 바로 섬길 수 있고, 스승을 바로 아는 제자가 스승을 바로 섬길 수 있고, 상관을 바로 아는 부하가 상관을 바로 섬길 수 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잘 아는 사람이 곧 하나님을 바로 아는 사람이 하나님을 바로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참된 봉사는 참된 지식에서 비롯됩니다. 다윗은 아들 솔로몬에게 “네 아비의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라”고 했습니다. 섬긴다는 것은 종의 심정에서 출발합니다. 종의 심정은 종의 신분에 대한 자각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종의 신분은 하나님을 바로 알 때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내 삶에 주인이 되신다는 것을 아는 사람만이 비로소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그것도 지식적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내 생활 속에서 체험적으로 알아야 합니다. 곧 나의 삶 속에서 만난 나의 하나님이 있어야 합니다. 내 삶 속에서 체험적으로 하나님을 알 때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면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은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할까요? 여기서 “온전”이라는 말은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그런 의미에서 완전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본래 “나누어지지 않는 마음”을 말합니다. 야고보서4장 4절에 보면 세상과 더불어 하나님을 섬기는 성도들을 영적으로 간음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하나님은 우리가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세상과 더불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만을 소망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다윗은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하나님을 상징하는 법궤가 들어왔을 때 그의 행동으로 알 수 있습니다. 법궤를 모신 다윗은 얼마나 기쁘고 좋았던지 왕으로서의 신분과 체면을 다 벗어 던지고 법궤 앞에서 덩실덩실 춤을 췄습니다. 얼마나 열정적으로 춤을 췄는지 바지가랑아가 흘러내리도록 춤을 췄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애정, 하나님에 대한 열정,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마음,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인해 기뻐할 수 있었던 다윗 그는 온전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그 때 그 마음에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그 하나님을 향해 나눌 수 없는 사랑, 분리 될 수 없고 파괴될 수 없는 순전한 마음으로 그 삶을 송두리째 드리는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기쁨으로 충만케 됩니다. 이런 자가 하나님의 마음에 합당한 자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항상 이런 삶을 살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그렇게 살지 못해 마음이 아플 때가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제 인생을 마감할 때를 앞에 두고 마지막으로 아들 솔로몬에게 부탁하는 것입니다. “내 아들 솔로몬아 너는 네 아비 하나님을 알고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섬기라.”

   다윗은 아들 솔로몬이 하나님을 바로 알고 온전한 마음으로 섬길 뿐 아니라 기쁜 뜻으로 섬기라고 합니다. 그러면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긴다는 것을 어떻게 하는 것을 말할까요? 여기서 기쁜 뜻으로 섬긴다는 것은 강요된 봉사와는 전혀 다른 의미입니다. 우리는 마지못해 하나님을 섬기기 쉽습니다. 환경 때문에, 분위기 때문에, 필요에 의해서, 목사나 선배가 섬기라고 하니까 마지못해 하나님을 섬기기 쉽습니다. 또한 억지로 마지못해 섬기기 쉽습니다. 여기서 기쁜 뜻으로 섬기라는 것은 이런 섬김이 아닌 마음 속에서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강요된 헌신, 마음에도 없는 억지 봉사, 의무감으로 드리는 헌금 이런 것은 하나님 앞에 의미가 없습니다. 이런 섬김을 하나님은 받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기쁜 마음을 드리는 섬김을 기뻐 받으십니다. 주님을 위해 무슨 일을 하든지, 예배를 섬길 때나, 말씀 공부 할 때나, 전도 할 때나, 식사 써빙을 할 때나, 심방할 때나, 헌금을 할 때나 기쁜 마음으로 섬기며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자발 적으로 마음에 우러나와서 기쁘고 즐겁게 섬기고 헌신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이런 섬김을 기뻐 받으십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에게 한없는 축복으로 함께 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에 보면 바울은 헌금을 할 때도 이렇게 하라고 합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자발적으로 섬기는 것을 기뻐 받으십니다.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섬김은 어떠합니까? 여호와 하나님은 뭇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분이십니다. 그 마음의 모든 생각과 사상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이 하나님은 자기를 찾는 자를 만나 주시고, 자기를 버리는 자를 영원히 버리십니다. 우리가 힘써 하나님을 알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은혜와 축복을 영원히 누리는 복된 자들이 되길 바랍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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