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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뉴스엔조이에 실린 글입니다.
http://www.newsnjoy.co.kr/rnews/pastorate-1.asp?cnewsDay=20030703&cnewsID=2

돈과 부 자체에 대한 좋은 견해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이 같은 생각을 공유하고 돈이나 부에 대한 접근을 하면 어떨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자칫 돈이나 부 자체를 목적으로 생각하고 또한 그것이 자기의 원하는 그 무엇인가를 이루게 해 주는 수단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읽고 은혜 받으시면 좋겠습니다.

불의한 부(富), 불의한 청지기
주인에게 칭찬받은 불의한 청지기의 지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도 말씀하셨다. "어떤 부자가 있는데, 그는 청지기를 하나 두었다. 이 청지기가 재산을 낭비한다고 하는 고발이 들어와서, 주인이 그를 불러 놓고 말하였다. '자네를 두고 말하는 것이 들리는데, 어찌된 일인가? 자네가 맡아 보던 청지기 일을 정리하게. 이제부터 자네는 청지기 일을 볼 수 없네.'

그러자 그 청지기는 속으로 말하였다. '주인이 내게서 청지기 직분을 빼앗으려 하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옳지, 좋은 수가 있다. 내가 청지기의 자리에서 떨려 날 때에, 나를 자기네 집으로 맞이해 줄 사람들을 미리 마련해야 하겠다.' 그래서 그는 자기 주인에게 빚진 사람들을 하나씩 불러다가, 첫째 사람에게 '당신이 내 주인에게 진 빚이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기름 1백 말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는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어서 앉아서, 쉰 말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당신의 빚은 얼마요?' 하고 물었다. 그 사람이 '밀 1백 섬이오' 하고 대답하니, 청지기가 그에게 '자, 이것이 당신의 빚문서요. 받아서, 여든 섬이라고 적으시오' 하고 말하였다.

주인은 그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하였다. 그것은 그가 슬기롭게 대처하였기 때문이다. 이 세상의 아들들이 자기네끼리 거래하는 데에는, 빛의 아들보다 더 슬기롭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어라. 그래서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원한 처소로 맞아들이게 하여라(눅 16:1-9).

"내 돈 가지고 내 맘대로 쓰는데 당신이 뭐요?"

돈 많은 사람들이 당당하게 하고 싶은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라는 윤리적 요청을 묵살하기 위한 방편으로 혹은 자신의 부가 정당하며 거리낄 것이 없음을 강조하기 위한 요령으로 말입니다.

"부(富)가 나쁜 것입니까"라는 질문에 대해 흔히 나오는 답은, "'부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 이를 어떻게 벌어서 쓰느냐가 문제다"라는 견해입니다. 혹은 "정직하게 번 돈은 나쁘지 않지만, 현실적으로 공정하고 정직하게 부(富)를 축적한다는 것이 어렵기에 한국에서의 부(富)는 문제가 있다"는 정도의 입장입니다.

사실 돈이라는 것 자체가 의롭거나 불의하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1백 원짜리 동전이나 1백 억원짜리 수표나 그것들이 지니고 있는 가치는 도덕적인 영역에서 논의될 성질의 것이 아닙니다. 단지 상업적 거래의 수단으로서 부여된 값어치를 나타낼 뿐입니다. 거래적 가치는 도덕적 가치로 변용할 수 있는 항목이 아닙니다.

부(富)의 도덕성을 말할 때, 거래가치 측정의 수단인 돈을 연상해서는 곤란합니다. 단지 거래가치 측정의 수단으로서의 돈을 떠올리고는 '부(富) 자체는 선도 악도 아니다'라는 주장에 쉽게 동조하는 경우가 있기에 그렇습니다. 부(富)의 도덕성을 논할 때의 부(富)는 거래 가치 측정이라는 관점이 아니라 배타적 소유라는 관점에서 거론되는 것입니다. 다른 누구도 간여할 수 없는 나만의 것이라는 사유재산권의 논리에 부(富)의 뿌리가 있는 것입니다.

시대적 상황이 어떠하든 간에 인간은 자신의 손에 돈을 쥐고 운용하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그 돈에 대한 배타적 소유를 꿈꾸기 마련입니다. 따라서 부(富)의 축적이라는 말은 나만이 사용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돈의 양을 늘려간다는 의미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나만이 사용할 수 있는 부(富)라는 개념에는 독점의 욕구가 개입되어 있습니다.

과연 인간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을 독점할 수 있는 것일까요? 그것이 정당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일까요? 자기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일용한 양식을 제외하고 말입니다. 과연 이 지구상에 있는 누군가가 다른 사람보다 수십만 배를 더 소유해도 좋을 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고백일까요? 결국 우리의 모든 것이(시간, 능력, 소유) 다 하나님의 것이라는 점을 생각할 때에 말입니다. 그리고 어느 누구도 다른 이의 도움 없이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에 말입니다.

한 개인의 부(富)의 축적은 결국 다른 사람들의 부(富)의 포기를 전제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내 부(富)가 늘어난다는 의미는 다른 사람의 몫이 그만큼 줄어들었다는 뜻입니다. 한 명의 거부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다수의 사람들이 자기 몫을 내놓아야 합니다. 로또 복권에는 세상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부(富)의 축적 메커니즘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습니다. 숱한 사람들이 2천 원씩 내놓은 것을 몇몇 사람이 독식하는 것입니다. 부(富)를 갖게 되는 과정에 능력이라는 말 대신에 행운이라는 말이 대치되어 있을 뿐입니다.

어느 누구도 부(富)를 독점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애써 벌었다고 생각하는 부(富)조차도 사실은 하나님의 것일 뿐입니다. 따라서 부(富)라는 것은 그 자체로 불의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 나만의 것이라는 배타적 독점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운용하는 부(富)는 나만의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만의 것으로 간주하고 있으니 불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불의한 정치기의 불의함은 주인의 재산을 낭비했다는 데 있습니다. 아마도 그는 주인의 재산을 이용해 사적인 이익을 취했던 것 같습니다. 자기의 소용에 따라 주인의 재산을 써버리거나 자기만의 소유를 늘리기 위해 삥땅을 쳤을 것입니다. 자기 것이 아님에도 자기의 것인 듯이 사용하였습니다. 주인의 재물을 가지고 자기만의 이익을 위해 유용했던 것입니다.

주인이 그에게서 그가 누리던 것을 빼앗겠다고 하는 순간 그는 생각했습니다.

"이제 내가 쫓겨난 연후에 무엇을 할꼬, 미리 나를 도와줄 사람 즉 친구를 사귀어 두어야겠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그들의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빚을 탕감 받은 사람들이 불우한 처지에 빠진 자신을 박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들에게 능력껏 호의를 베풂으로써, 청지기직을 박탈당한 자신이 비빌 언덕을 마련하려는 고도의 전술입니다.

청지기의 행동은 분명 주인의 재산에 손실을 입힌다는 점에서 이전까지 그가 저질렀던 행동과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은 그를 칭찬하였습니다. 자신의 재산을 여전히 축내고 있는 청지기를 보고 칭찬하는 주인의 심사를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주인이 중시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보아야 합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축내기는 마찬가지이나 이번에는 주인에게 색다른 보상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것은 인자하고 어진 사람이라는 평이었습니다. 이전에는 청지기가 주인의 돈을 임의로 착복함으로써 주인의 재산에 손실을 줄 뿐만 아니라, 바보 같은 주인이라는 소문도 함께 가져다 주었습니다. 자기 아랫사람 하나 제대로 다루지 못하는 주인이라는 평 말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청지기의 행동이 주인에게, 빚을 탕감해주는 어진 사람이라는 평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주인은 청지기를 칭찬함으로써 청지기가 한 일은 바로 주인 자신이 시켜서 한 일일 것이라는 인상을 사람들에게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만일 이 청지기를 정죄했다면 사람들은 주인은 강퍅한 사람이고 청지기는 관대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니 주인으로서는 청지기를 칭찬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주인은 재산의 손실보다는 어진 사람으로서의 명성을 더 염두에 두었던 것입니다.

당시 스스로 빛의 자녀임을 자처하며 자기들만의 공동체를 만들어 폐쇄적인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 사람들은 세상사람들(어둠의 자식들)과 일체의 교류를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끼리 재산을 모아 자기들끼리만 쓰며 세상과 고립된 삶을 유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기만을 기다리며 엄격한 종교 생활로 자신들의 영역을 고수하는 집단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富)를 자기들만을 위해 사용하는 그들보다는 차라리 하나님의 부(富)를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나누고 교제하는 세상사람들이 더 현명하다는 것이 예수께서 가지신 관점이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부(富)를 독점하고 풍요를 누리는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로 하여금 세상은 불공평하다, 하나님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원망을 하도록 만듭니다. 하나님의 부(富)를 가지고 자기만을 위해 씀으로써, 하나님의 부(富)를 축냄과 동시에 어질지 못하고 무능한 하나님이라는 평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이 진정 공평하시고 인자로우시다면, 저들은 저렇게 호의호식하는데 나는 이렇게 배고픔과 질병으로 고통 당하도록 그냥 내버려두시겠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일입니다. 부(富)의 독점과 풍요로운 소비는 결국 하나님의 재산을 유용하는 것이며, 더 나아가 하나님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결과를 낳는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입니다. 우리의 소유는 하나님의 것이며 단지 우리에게는 그것을 선용하고 관리하는 책임이 맡겨져 있을 뿐입니다. 우리가 이를 가지고 빚진 자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고 세상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지혜로운 종이라 칭하시며 더 큰 것을 맡기실 것입니다.  (글쓴이 : 유성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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