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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올린 글이었는데... 올 초에 주 5일제 근무 도입을 두고 여러 사람들의 주장이 많이 있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 간에도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 나름대로 주장을 폈습니다. 아래 글은 뉴스엔조이에 실린 글인데 읽어 보니 상당한 일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상당부분 저의 생각과 일치하는 것 같아서 소개합니다.

참된 안식일 준수는 특정한 날에 매이는 것 아니다

▲칼빈은 참된 안식일 준수를 율법주의적 준수 로 보지 않았다. '칼빈이라면 주 5일 근무제를 어떻게 보았을까?' 적어도 이 도발적인 질문은 두 가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은 우리가 속한 많은 교회가 그의 사상에 전통을 두고 있기 때문이며, 둘째로, 주 5일 근무제는 여전히 우리 사회의 뜨거운 감자와 같은 민감한 주제라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왜 칼빈인가? 우선, 이 문제를 칼빈에게 호소하는 것의 중요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제가 속한 장로교회의 전통이 칼빈에게서 나온 개혁주의이기 때문입니다. 한국 교회의 대략 70% 가 "장로교"라는 이름 하에 예배와 교육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장로교는 칼빈신학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장로교의 신앙고백서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가장 칼빈적인 고백서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 장로 교회는 비록 신학적 색깔이 다양하게 존재하지만 미국 장로교 선교사들의 영향하에 청교도적이며 보수적인 칼빈주의 신학을 유지해 왔습니다. 세계적으로 장로교회가 가장 융성하고 활동적인 곳은 장로교의 기원지인 유럽도 아니고 청교도의 나라 미국도 아닌 한국입니다. 종교 사회학적 의미는 차치하고, 우리가 서 있는 신학적 뿌 리 혹은 노선의 근간에 분명 개혁자, 칼빈이 서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적어도, 장로교라는 신학적 전통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분들에게 칼빈은 성경 해석하고 일차적인 자문을 구해야할 역사적 원천입니다. 물론 칼빈이 모든 판단과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최종 결정자는 아닙니다. 칼빈의 생각이 틀릴 수도 있으며, 만약 틀렸다면 그의 사상과 이론도 개혁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 개혁주의의 오랜 모토인,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Semper Reformanda)의 의미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신학적 전통 속에서 칼빈이 어떠한 관점에서 성경을 보고 해석했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크게 이상하지도 않고 무리한 일도 아닙니다. 이런 면에서, "칼빈이라면...?" 의 질문은 여전히 의미와 중요성을 가지는 것입니다.
주 5일 노동 논쟁 정부와 노동계, 그리고 사측의 입장이 얽히고 섥혀 이제까지 수 많은 토론과 논쟁을 불러일으킨 이슈가 바로 "주 5일 근무제" 일 것입니다. 각자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첨예하여 가타부타 쉽게 해결책을 제시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교회는 어떤 점에서, 제 3자의 입장에 서서, 혹은 기독교 신앙의 이타적 정신에 입각해, 불편부당하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신선한 제안을 내야 했지만 그렇게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지는 못했습니다. 적어도 저의 견해로는 주 5일을 찬성하여 노동자들의 쉼을 보장하며, 노동환경 개선의 목소리를 내는 분들은 소수인 것 같습니다. 오히려, 얼마전 서울의 한 대형 교회 목사님은 유력 일간지에 낸 기고문에서 주 5일 근무제는 성경적이 아니며, 이것이 시행될 때는 교회가 위기에 처한다는 주장을 내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서울 강남의 대형교회를 담임하는 목사님이 가장 보수적인 일간지에 낸 기고문은 내용의 신학적 정당성을 차치하고서라도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킬만 했습니다. 저는 그분이 속한 신학적 전통이 칼빈주의, 혹은 개혁주의라는데 주의하였습니다. 결국, 칼빈에게 이 문제에 대한 답변을 듣는 것이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신학적 논의의 결정적인 근거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칼빈을 통해 적어도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개혁주의 교회의 적절한 해답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안식일은 영적 안식의 날 칼빈은 안식일은 문자적인 의미가 아닌 영적인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해석했습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안식일은 '의식법' 이기 때문에, 예수님의 오심과 함께 폐기된 법으로 보는 것입니다. 다만, 그 안에 담긴 영적인 의미만이 지금까지 효력을 발휘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구약의 안식일 준수의 계명들은 이제 문자적으로 지켜야 할 법들이 아니라, 그 의미를 헤아려 완성하여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칼빈에게 있어서 안식일은 단순히 일을 멈추는데서 그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영적 안식을 얻는 날로 여겨집니다.
칼빈은 안식일 계명(4계명)의 가장 큰 목적이 바로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를 위해 그가 제시하는 구체적인 방법은 첫째, 정해진 시간의 공중예배이고, 둘째, 노동으로부터의 적절한 쉼이었습니다. 칼빈은 그의 기독교강요(Institutes)에서 안식일의 영적 준수만 이루어진다면 그 안에 담긴 문자적인 규율들은 이제 폐기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칼빈이 거부한 것은 모든 문자적인 준수였습니다. 예를들어, 6일, 하루, 그리고 주간(7일)등의 숫자에 문자적으로 매이는 것 까지 "미신"(superstition) 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에게 안식일은 문자적인 날이나 의식으로서는 폐지된 날입니다. 그는 안식일의 진정한 의미, 즉 "영적 안식"이 "예배" 와 "쉼" 을 통해 성취되어야 하는 것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토요일인가, 주일인가? 유대인들은 자기들의 시간 계산법대로 금요일 저녁부터 토요일 저녁까지를 제 7일째 날로 보아 안식일로 엄수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부활의 날인 주일을 따로 정하여 하나님께 예배하는 날로 정했습니다. 유대인들과 안식교인들은 토요일, 기독교회는 주일을 지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칼빈은 "만약, 교회내의 질서와 훈육이 잘 이루어질 수 있다면 어느 날을 따로 정하여 예배드리는 것은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립니다. 물론, 칼빈의 제네바 교회는 기독교회의 전통을 따라 주의 날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칼빈 자신은 꼭, 주의 날이 아니라도 각 신앙 공동체가 질서와 훈육에 합당하게 날을 정하여 예배 드리는 것을 문제 삼지 않겠다고 합니다. 적어도, 칼빈에게 있어서는 "어느 날이 정확한가?"의 문제가 아니라 "그 정한 날을 어떻게 보내느냐?"가 중요했던 것입니다. 특별히, 칼빈이 특정한 날을 중요시 여기지 않았던 것은 성경에 나타난 '날들 숭배'나 '엄격한 안식일 엄수' 등을 경계했기 때문이며, 심지어 칼빈은 한 날을 다른 날보다 더 거룩하게 여기거나 특별하게 여기는 것을 매우 잘못된 것으로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칼빈은 창세기 2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본을 따라 적어도 6일 중 하루를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만 이루어진다면 문제가 없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적어도' 라는 단서가 붙습니다. 칼빈에게 날의 구분이 없다는 것은, 그가 7일 중 하루라는 주간 개념까지도 크게 문제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칼빈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했던 것은, 매일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매일 공중예배를 드리는 것은 천국이 아닌 이 땅에서는 인간의 "연약함"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칼빈도 인정했습니다. 때문에, 적어도 7일중 하루라도 시간을 정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주 6일을 꼭 일해야 한다? 이러한 질문은 성경을 너무나 문자적으로 보아서 그 안에 담긴 의미를 깊이 헤아리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칼빈의 시대에도 이런 식의 해석과 질문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칼빈은 제 4계명 주석에서 바로 이 질문에 대해 답합니다. 그런데 칼빈의 대답은 매우 냉소적입니다. 이런 질문은 그 자체가 "어리석은"(foolish)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주신 노동이 본질상 선한 것이므로 게으르거나 상전의 눈치를 보며 행한다면 악한 것이지만, 꼭 6일을 일해야 하고, 5일만 일하면 죄가 된다는 말은 어리석은 해석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특히 칼빈은 6일의 노동을 부과하는 것은 물질과 자기욕심을 부인하지 못한 것이며, 결국 성화는 구체적으로 일을 쉬며 하나님을 찾아 예배할 때 이루어진다고 보았습니다. 결국 더 많이 일을 쉬는 사람이 성화에 더욱 가까와진다는 논리가 됩니다. 실제로 칼빈에게 있어서는 쉬지 않고 일하는 것 자체가 악한 것입니다. 칼빈에게는 자기 일을 쉬는 훈련이 성화의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 쉼은 육체적 쾌락이나 방종을 위한 쉼이 아님은 분명합니다. 칼빈은 진정한 쉼이란 하나님을 기억하며 영적으로 예배하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힙니다. 그러므로 하루만 쉬는 것은 최소한의 쉼 입니다. 가능하다면 쉼을 더 많이 가질 수록 하나님께 가까와 지며(성화), 하나님의 말씀(제 4계명)에도 부합합니다. 주 5일 근무제: 교회가 환영해야 할 법 칼빈의 신학 전통 속에 있는 교인들에게 주 5일 근무제는 매우 긍정적인 요소가 있습니다. 매일 쉬면서 영적 예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이상적인 쉼이라는 칼빈에게 있어서, 주 5일 근무는 오히려 반가운 것입니다. 만약 주 5일 근무제가 법적으로 시행된다면 교회는 기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제는 맘 놓고 예배할 수 있는 날이 이틀로 늘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회에 있어서 역효과를 능히 미루어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쉼의 날을 어떻게 계획하고 보내느냐의 책임은 교회에 있습니다. 교회는 새로운 도전과 응전의 기회 앞에서 얼마든지 선용할 가능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적어도, 칼빈에게 있어서 주 6일은 꼭 일하고, 주일만 쉬어야 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생각입니다. 참된 영적 안식이 이루어지는 것이 우리의 핵심 과제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예배는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말미암는 성도들의 믿음의 역사위에 지켜지는 것이지, 주 6일 노동의 고수로 지켜지는 것이 아님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때문에 칼빈은 참된 안식일 준수는 숫자나 특정한 날에 매이는 율법주의적 준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바른 선포와 성례의 시행, 봉사와 기도, 그리고 사회적 약자를 위한 구제가 제대로 시행되는데 있다고 주장합니다. 이를 위해 교회가 정한 시간에 정기적으로 모여 하나님의 뜻을 실천해 나가는 것이 이 땅에서의 예배와 쉼의 방법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칼빈의 가르침이 우리의 예배와 주 5일 근무제에 대한 하나의 판단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적어도 장로교, 개혁주의 교인들에게는 더 큰 의미가 있겠다 생각됩니다.
신동수 (2002-12-02 오후 1:3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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