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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리스도인의 상식이 과연 오늘날 한국교회에서 통용이 되는가 하는 의구심마져 들게 하였던 탄원서였습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일반인이든 지극히 상식적인 차원으로 생각하고 판단을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하여 소위 교회지도자라고 하는 분들이 조금은 어처구니 없는 일들을 하시고 있는 것을 보면서 영적인 분노를 가지게 합니다.

저의 생각에는 좀더 많은 분들이 나자신과 가족과 지역 교회 뿐만아니라 한국교회를 위하여, 아니 이 땅의 모든 교회들의 문제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면 좋겠습니다. 마음에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님의 관심과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생각하며 때로는 지극히 작은 것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고 씨름도 하여야 하겠지만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고,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보며 기도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 생각합니다.
누구나가 진실로 세계를 가슴에 품고 기도하며 하나님의 만민구속역사를 바라보며 하나님 자체와 하나님의 열심으로 이루어 가시는 역사를 크게 보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해 갔으면 좋겠습니다...

아래글은 뉴스엔조이에서 퍼온 글입니다......


[ 김영석 변호사, 종교의 자유도 객관적 가치질서 속에서 보장돼야 ]

김홍도 목사에 대한 고소사건에 대하여 일부 교회 지도자들이 제출한 탄원서를 읽고 매우 당황스러웠습니다. 탄원서 속에서 그 작성자들이 가지고 있는 사고체계의 어떠함이 느껴져 이것이 한국교회의 현실이구나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자 매우 암담하기도 하였습니다.

필자는 한국교회의 작금의 현상과 관련하여 개개인의 교회 지도자를 비난하기에 앞서 부패를 조장하는 현재 한국교회의 교회정치제도상의 문제점에 대해서 좀더 관심을 가지고 문제의식을 느껴야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와 관련한 이야기는 추후에 기회가 되면 하기로 하고 우선 탄원서와 관련한 필자의 개인적 의견을 개진해보고자 합니다.

1.종교의 자유는 종교지도자의 전횡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는 어떠한 경우에도 어떤 종교를 강요하거나, 그 종교를 국가의 지배 관리하에 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국가는 오로지 종교인들만을 위한 국가는 아닙니다. 게다가 기본권에는 종교의 자유권만 있는 것은 아니고 다른 많은 권리들도 있으며, 또한 한 개인에게 주어진 권리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지켜야할 헌법적인 가치질서도 무수히 많은 것입니다. 헌법학상 전자를 '주관적 공권'이라 하고 후자를 '객관적 가치질서'라고 합니다.

그런데 각 기본권들은 자신의 영역에 대하여 보장을 받는 대신 다른 권리(의사결정의 자유, 재산권 등)를 침해하지 말아야 될 의무 및 공동체의 공존을 위한 객관적 가치질서를 준수하여야할 의무도 기본권 속에 함께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기본권은 이론상으로도 그 제한이 가능하며 헌법상으로도 헌법 제37조의 규정에 의하여 법률로서 그 제한이 가능 한 것이지 탄원서의 내용과 같은 무소불위의 권리는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기실 거의 모든 법률은 기본권을 제한하는 내용을 품고 있는데 하다못해 교회당을 지으려고 해도 우리는 건축법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종교의 자유의 영역을 넘어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거나 객관적 가치 질서를 위반한 경우에는 당연히 그에 따른 법적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탄원서는 종교의 자유권에 대하여 너무 심취 또는 강조한 나머지 국가는 오로지 종교의 자유를 위하여서만 존재하는 것처럼, 그리고 종교의 자유 앞에 다른 권리들이나 객관적 가치 질서는 모두 무시하여도 되는 것처럼 생각하는 듯합니다.  

그러한 탄원서의 논리대로라면 종교의 이름으로 어떠한 범법행위를 저질러도 그것은 당해 종교단체가 알아서 처리할 일이고 사회법으로는 일체 처벌할 수 없는 것이 되어, 극단적으로는 최근 JMS신도들로 추정되는 사람들에 의하여 야구방망이로 무자비한 폭행을 당하거나 더 나아가 사람이 죽임을 당하는 일이 발생되더라도 사회법으로 처벌할 수 없다는 논리가 되는 것인데, 그러한 논리가 온당치 못하다는 것은 너무나 자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김홍도 목사에 대한 사법적 대응은 탄원서가 말하는 것처럼 종교 탄압도 아니며 매우 정상적인 사법적 조치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 사회의 지성인인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그것을 모르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알면서도 다른 소리를 하는 것인지 필자는 답답할 뿐입니다.

더욱이 교회 내부에서는 교회지도자가 권위적으로 온갖 전횡을 휘두르며 오히려 성도들의 권리에 대하여는 매우 완고한 태도를 보이고 교회의 공금을 마치 개인의 돈인 양 사용하는 일들이 지금도 수도 없이 벌어지고 있고, 김홍도 목사의 사건도 그 연장선상에서 발생된 사건으로 볼 수 있는데, 탄원서는, 자신들이 세상을 바라보던 그 방식 그대로, 자신들을 위한 권리만이 눈에 보이고 그 외의 다른 권리나 가치질서를 볼 수 있는 더 넓은 안목을 갖지 못한 철부지 같은 식견을 드러내 보이는 것이어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기도 합니다.

2. 기본권의 제한은 항상 침해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헌법학적으로 법률은 헌법에서 보장한 기본권에 대한 국가의 기본권제한의 논리 즉, 국가에 의한 기본권 침해의 논리에서 출발한 것은 사실입니다. 물론 그러한 성격은 현재도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역사가 발전되고 사회가 민주화됨에 따라 오히려 국가가 아닌 일반 사인에 의한 기본권침해 사례가 늘어나면서 국가에 의한 기본권 제한의 예각을 타인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일반 사인들에 대하여 세움으로서 한편으로는 선량한 다른 기본권 주체들의 기본권 향유를 더욱 공고히 하는 측면도 함께 가지고 있습니다.  

단순히 말하면 범법자를 감옥에 보내는 것은 그에게는 기본권 제한이 되나 그것은 다른 일반인들의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서 정당화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기본권의 제한을 항상 나쁜 시각으로만 볼 것은 아니고 기본권주체들의 기본권의 향유를 위하여 꼭 필요한 것이기도 합니다.

3. 김홍도 목사의 행위는 기독교적(종교적)으로도 정당화 될 수 없습니다.

성경에 보더라도 부패한 제사장들에 관한 기록이 수없이 많이 나오며 그 당시에도 성전에 바쳐진 헌물을 제사장의 개인적인 용도로 빼돌리던 일은 비일비재하였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그런 기록이 있다고 하여서 그런 행위가 정당한 행위가 되는 것은 물론 아니며 하나님도 그런 행위를 옳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도 성전정화 사건에서 제사장이 일부 상인들과 어울려 가난한 자들의 돈을 종교적인 이름으로 착취하는 모습을 보고 매우 진노하셨고 예수님이 그와 같은 진노를 드러낸 것은 그 때가 유일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떠나 지극히 상식적으로 보더라도 최근 들어 극심한 불황으로 그렇지 않아도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이 정성 들여 낸 헌금을 수십억원이나 개인적인 용도로 사용하였다면 그 어떤 언어의 유희를 가지고도 그 행위를 정당화시킬 수는 없는 것입니다.

4. 교회를 소도와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합니다.  

한편 탄원서는 교회를 소도와 비교하며 교회는 국가권력이 관여할 수 없는 성역이라고 주장합니다.

과거 2000여년전 거의 원시적 종교 형태에서 나타난 소도는 현대 사회의 정교분리의 정신을 구현한 것이 아니고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가 민중을 분할 통치하기 위하여 타협적으로 지배 영역을 나눈 제도에 불과합니다.

역사 발전이 미비한 당시로서는 민중은 그저 지배자들의 수탈의 대상이었을 뿐이었는데 소도제도는 그 수탈의 권한을 종교지도자와 정치지도자가 나누어 가진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위와 같은 제도는 종교의 자유가 없던 시대 즉,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가 서로의 필요에 의하여 협력하고 융합되어 공존하며 지배하던 시대의 이야기입니다. 그러한 제도는 민중을 위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신봉했던 절대자를 위한 것도 아니며 오로지 지배계층인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 그들만을 위한 제도였던 것입니다.

교회를 소도와 비교하며 교회를 성역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동안의 역사 발전에 대한 기본적 소양이 전무한 자의 사고방식으로서 종교지도자가 정치지도자와 같이 민중 위에 군림하여 자기만의 영토를 가지고 싶어하는 삐뚤어진 욕망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일부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의 바램일지는 모르나 하나님의 뜻과는 거리가 먼 것입니다.  

어쩌다 한국 기독교지도자가 교회를 전근대적 제도인 소도와 비교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는지 그 몰상식과 역사의식의 전근대성에 참으로 비탄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탄원서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현대사회에서도 국가 공권력은 종교단체를 존중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종교단체는 이 사회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최후 보루라는 공감대에서 기인한 것인데 지금은 오히려 교회 자체의 부패를 문제삼고 있는 마당에 도대체 누구를 위한 성역이라는 것인지 모를 일입니다.

5. 관행에 대하여

탄원서는 김홍도 목사의 행위가 관행에 따른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모두 합법적인 것은 아니라는 것을 건전한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동안도 우리사회는 잘못된 관행 때문에 부패했던 경험이 많이 있었고, 그러한 잘못된 관행을 점차 시정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를 깨끗하게 하는데 앞장서야 하며 잘못된 관행이 있다면 교회내의 것은 물론이고 교회 밖의 것에 대해서도 이를 고치기 위하여 노력해야할 종교지도자가 마치 사회의 부패한 지도층들이 변명하는 단골메뉴인 '관행' 운운하며 자신들 행동이 정당한 것이라고 항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관행에 따른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정도가 있는 것입니다. 더욱이 그것이 잘못된 관행이었고 그 동안 수도 없이 문제를 제기하여 왔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교회 스스로 고치지 못하여 곪아 터져 나온 것을 가지고 그러한 관행의 잘못을 바로잡는 노력이나 반성은 전혀 없이 오히려 그러한 관행을 합법성의 근거로 제시하는 것은 너무나도 염치없는 행동은 아닌지 반문하고 싶습니다.

6. 교회의 자정노력

탄원서는 또한 김홍도 목사의 사건을 교회의 자정노력에 맡겨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선 탄원서의 작성명의자들은 교회의 자정에 얼마나 노력하였는지 반문해 보면서 작금 흐름과 김홍도 목사 사건의 의미를 제대로 보고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들의 눈으로는 김홍도 목사에 대한 고소가 매우 불경스러운 것으로 보일지 모르나, 시각을 달리하여 다시 보면 교회는 지금 현재도 스스로 자정노력을 계속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김홍도 목사를 최후 수단으로 고소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그 동안 수차례의 내부적 시정요구에 대하여 교회의 자정을 말하시는 분들은 무엇을 하셨는지요? 교회의 자정 노력은 탄원서를 작성한 분들의 노력만 자정노력이고 다른 기독교인들의 자정노력은 자정노력이 아니라는 것인가요? 탄원서에서는 무엇인가를 대단히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조직 또는 사회의 자정력이라는 것은 마치 자연계의 자정력과 유사하여, '종교개혁'이라는 역사적 사건이 말해주듯 그것은 역사적 필연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정에 맡긴다고 자정이 되고, 자정에 맡기지 않는다고 자정이 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자정은 진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김홍도 목사에 대한 고소의 이면에는 교회 자체의 수많은 자정노력이 누적되어 왔던 것이고 그럼에도 오로지 일부의 자들만이 어리석게도 시대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지금까지 스스로의 자정노력을 등한히 함으로 인하여 형사고소라는 최후의 결과까지 빚어진 것입니다.

결국 이 사건을 교회의 자정에 맡겨야 한다는 탄원서의 주장은, 자신들은 아직까지 변변한 자정노력을 기울였던 기억이 없다는 사실만을 자인하는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교회의 자정노력은 지금도 이미 활발히 진행되고 있으며 그 자정노력의 일환으로, 자정의 대상을 고소하기에 이른 것이지만 필자가 보기에는 단지 탄원서의 작성자들만이 그 사실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다시 새삼스레 교회 자정능력에 맡겨야 한다는 논리는 교회의 자정노력에 맡겨야 한다는 명분으로 또다시 자신들만이 전횡을 해보겠다는 심사로밖에 볼 수 없는 것입니다.  

7. 결론  

아직 한국교회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일제 치하, 한국전쟁, 오랜 군사 독재 정권 등 불행했던 과거들로 인하여 비단 교회만이 아니고 교육, 정치, 경제, 문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전근대성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교회만을 보고 한숨을 쉴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면서 과거의 부정과 부패, 잘못된 관행, 권위적인 전횡들이 백일하에 드러나고 이에 대한 시정 압력이 높아가고 있습니다. 이에 보조를 맞추어 교회에서도 그러한 노력이 일어나고 있기에 아직 희망을 버릴 때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필자는 다소의 아픔이 있더라도 이왕에 거쳐야할 시대적 요청이라면 좀더 투명하고 건실하며 사랑과 정의의 정신이 구현되는 교회를 위하여 앞으로도 더욱 매진해야 할 때임을 강조하며 글을 마치고자 합니다.



기독교윤리실천운동 건강교회운동본부 운영위원 김영석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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