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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해가 끝나가고 크리스마스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크리스마스와 관련하여 아무것도 하지 않아서, 조금 섭섭할 수 있지만, 그럴지라도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 하신 은혜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시는 한주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크리스마스 때 뿐만 아니라 늘 묵상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이와 관련하여 지난번에 배운 바 있는 소요리문답 강설을 첨부하고자 합니다.

신약의 성례에 관한 강설인데요... 나중에 소요리문답 강설란에 올리긴 하겠지만, 지금 시점에서 미리 이곳에 올리는 것이 나을 것 같아 올립니다. 신약교회의 절기와 관련하여 성경적인 올바른 인식을 가질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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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3월 5일 한결교회 주일 오후 강설


신약의 성례


93문 : 신약의 성례는 어느 것입니까?

답 :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오늘은 신약의 성례라는 주제로 살펴보겠습니다. 신약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입니다. 소요리문답 93문 내용이 굉장히 짧고, 또 우리가 다 아는 내용이라 별로 배울 것이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상 이 93문은 굉장히 중요하고 많은 내용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사실 몇 번으로 나누어서 강의해도 모자랄 만큼 많은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오늘은 그 핵심만 간단하게 살펴보고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이 93문이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것은 신약의 성례는 오직! 세례와 성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신약의 성례는”과 “세례와 성찬입니다” 사이에 “오직!”이라는 문구를 넣으면 좋습니다. 신약의 성례는 오직 세례와 성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7성례를 주장하는 로마가톨릭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로마가톨릭의 관점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살펴볼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신약의 성례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구약의 성례가 있음을 전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93문은 명시적으로 다루지는 않지만, 구약의 성례를 그 내용에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93문에서 구약의 성례에 대해서 그리고 로마가톨릭의 입장의 문제점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먼저 구약의 성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여러분 구약에도 성례가 있습니까? 구약의 성례는 무엇이죠? 원칙적으로는 할례와 유월절 두 가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여러 가지 수없이 많은 정결의식과 세례의식들, 제사 의식들이 추가적으로 주어지고 있습니다.1) 때문에, 구약시대 때에는 할례와 유월절과 함께 많은 거룩한 규례들이 주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많은 규례들을 포함하고 있는 구약의 성례는 결국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할례가 무엇을 상징합니까? 할례라고 하는 것은 남자의 성기의 겉표피를 잘라내는 것인데, 그것은 바로 인류 본성 전체가 부패했으며 때문에 잘라 버릴 필요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2) 더러운 것을 잘라냄으로써 정결하고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음을 표하고 인치는 의식이 바로 할례입니다.3) 뿐만 아니라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을 의미합니다.


(10)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11)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10-11)


그래서 할례를 “언약의 표”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언약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천하만민이 복을 얻는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그리스도를 약속하신 것입니다. 할례는 또한 로마서 4:11의 말처럼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치는 것이기도 합니다.


(11)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롬 4:11)


그러면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뭇별을 보여주시면서 “네 후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고, 아브라함이 그 약속을 믿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신 것입니다. 그 약속은 결국 아브라함을 믿음의 조상으로 하는 그리스도 안에서 복을 얻은 모든 후손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할례라고 하는 것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를 나타내고 그리스도를 향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세례와 결례의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세례(洗禮, 씻는 규례)하면 신약시대에만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데, 구약에도 세례가 있었습니다. 구약에 보면 제사장들이 성전에 들어가기 전에 온 몸을 물로 씻는 결례의식이 있었고, 또 부정한 것을 만졌거나, 시체에 접촉했거나 하면 어떤 이유로 부정하게 되었을 때는 물로 깨끗하게 씻어야 정결하게 되었습니다. 문둥병 같은 경우, 문둥병이 다 나았을 때는 피와 물을 그 사람에게 뿌려서 정결하게 하였고, 제사장을 세울 때도 물로 씻고, 피를 발라서 정결하게 하여 세웠습니다. 이렇게 여러 가지 다양한 정결예법, 결례의식들이 주어지고 있는데, 이러한 의식들이 상징하는 바는 결국 할례와 마찬가지로 그들의 본성이 부정과 추악함으로 더렵혀져 있음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이러한 그들의 더러움을 씻어주는 물과 피는 바로 인류를 더러운 죄에서 깨끗케 하는 그리스도의 피를 예표하는 것입니다.


(10)이런 것은 먹고 마시는 것과 여러가지 씻는 것과 함께 육체의 예법만 되어 개혁할 때까지 맡겨 둔 것이니라(11)그리스도께서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12)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 가셨느니라(13)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14)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0-14)


뿐만 아니라 유월절과 여러 가지 희생제사도 마찬가지입니다. 희생제사는 자신들의 불의를 깨닫게 하는 동시에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케 하고 죄를 속하기 위해서는 보속이 필요함을 보여줍니다.4) 동물의 희생이라는 보속을 하나님께 드림으로써 보속으로 죄의 용서를 얻었던 것입니다. 또한 희생제사는 그 제사를 집례하는 제사장, 곧 중보자가 필요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희생제사 역시 그리스도를 나타냅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친히 자신이 제물이 되셔서 자기 자신을 우리에 대한 보속으로 하나님께 드리심으로써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할례와 유월절을 위시로 한 모든 구약의 성례들은 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구약의 성례는 단순히 그리스도를 나타내기만 할 뿐일까요?5)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구약시대 백성들은 예수님이 아직 오시지 않으셨으니까 구원의 은혜를 전혀 못 받은 것이 아니라, 바로 이러한 구약의 성례들을 통해서 그들은 실제로 구원의 은혜를 받고 누렸던 것입니다. 물론 그 의식 자체에 어떤 효력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1)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요 참 형상이 아니므로 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2)그렇지 아니하면 섬기는 자들이 단번에 정결케 되어 다시 죄를 깨닫는 일이 없으리니 어찌 드리는 일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리요(3)그러나 이 제사들은 해마다 죄를 생각하게 하는 것이 있나니(4)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히 10:1-4)


그 의식 자체에 효능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의식이 바라고 예표하는 바 장차오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의 공로로 말미암아서 그러한 의식들이 구원의 은혜를 전달하는 것입니다.6) 그렇기 때문에 구약의 성례는 본질적으로 신약의 성례와 같은 것입니다.7) 둘 다 그리스도를 나타내는 것이고, 둘 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서 효력을 나타내는 구원의 은혜의 방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고린도전서 말씀입니다.


(1)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2)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3)다 같은 신령한 식물을 먹으며(4)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5)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6)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 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고전 10:1-6)


구약의 백성들은 그리스도를 몰랐으니깐 구원의 은혜를 누리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그리스도로부터 세례 받고 하늘의 만나를 먹고 신령한 물을 마셨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받은 것과 우리가 받은 것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들도 그렇게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의 혜택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불순종했을 때는 하나님께 멸망을 당했고, 이 일이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례 받고 성찬식에 참여한 것으로 다 구원 받은 것처럼 생각하고, 그래서 아무렇게나 막 죄를 짓고 하면 구약백성들처럼 똑같이 멸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사도바울은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단순히 물로 씻는 세례 의식이나,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성찬의식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도리어 우리가 구원받았다고 하는 것을 외적으로 표하고 인치는 의식인데, 그러므로 성례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실제로 중생하지 아니했으면, 그 성례는 무의미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도 세례의 실상은 외면적인 씻음에 있는 것이 아니라 중생하여 거듭난 맑은 양심에 있다고 증거 했습니다.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이렇게 구약의 백성들의 성례나 우리 신약시대 사람들의 성례나 본질상 다를 바 없습니다. 우리가 성례를 통해서 은혜를 받는 것처럼 구약의 백성들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약의 성례를 통해서 은혜를 받은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성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불순종의 삶을 살아갈 때에 멸망을 받는 것처럼 우리도 똑같이 성례에 참여했다 하더라도 중생하지 아니했으면 결국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약의 성례에 참여했으니깐 그들과는 달리 본질적으로 구원에 있어서 어떤 우월적인 위치에 있다고 생각할 아무런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는 본질적으로 동일합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8)


“무엇이든지 현재 성례가 우리에게 보이는 것을 옛날 유대인들은 그들의 성례에서 받았다. 즉 그리스도와 그의 풍성한 은혜를 받은 것이다. 우리가 우리의 성례에서 느끼는 것과 똑같은 힘을 그들은 그들의 성례에서 느꼈다.”


그런데 우리가 또한 주의해야 할 점은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에는 중대한 불연속성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본질적으로는 차이가 없지만, 그러나 신약의 성례가 구약의 성례보다 훨씬 더 풍성한 은혜를 전달해줍니다. 그것은 계시사적으로 필연적인 일입니다. 구약의 성례는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어렴풋하게 그를 나타내지만, 신약의 성례는 이미 임재하시고 구속사역을 완성하신 그리스도를 회고하면서 그것을 밝히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신약의 성례에서 보다 그리스도가 완전하게 나타납니다. 세례는 우리가 주님과 연합하여 함께 죽고 부활함으로써 우리의 죄가 씻음 받았다는 것을 확증해주고, 성만찬은 우리가 십자가에서 희생된 그 주님의 몸과 피에 참여함으로써 구속을 얻었음을 확증해주는 것입니다. 구약 백성들은 장차 그리스도가 오셔서 어떻게 우리를 구속하실 텐데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루어질 지는 잘 모릅니다. 그러나 신약의 성례는 그 구속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분명하게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십자가가 성례의 원천인데, 이 십자가를 신약의 성례가 밝히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또한 구약의 성례와 신약의 성례의 중대한 차이점은 바로 구약에는 할례와 유월절과 아울러서 수많은 성례 의식들이 있지만, 신약에는 단 두 가지, 곧 세례와 성찬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약의 모든 성례를 그리스도께서 성취하셨기 때문에 이제 그 의식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 폐지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할례는 세례로 대체되고 유월절은 성찬으로 대체되면서 신약시대 때에는 오직 두 가지 세례와 성찬만 행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구속사적인 의미들을 잘 생각하면서 세례와 성찬만 잘 행하면 되는데, 교회가 타락하면서 다른 것들을 자꾸 첨가하고 덧붙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로마가톨릭은 여기에 5가지를 더 추가해서 7성례를 주장합니다. 그들의 가치관은 성경에서 금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유익하다면, 무엇이든 다 하는 것입니다.9) 성상숭배도 교육적 효과가 있으니까 하는 것이고10), 세족식도 주님께서 하라고 하신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은혜가 되고 효과가 있으니깐 행합니다. 성례도 주님께서 명하신 것 외에 5가지를 더해서 7성례를 행합니다. 뿐만 아니라 신구약의 구속사적인 의미를 다 무시하고 무시간적으로 구약의 것을 끌어다가 오늘날에 적용합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에는 제사로 예배를 드렸으니깐, 신약시대에도 제사로 예배드리자고 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미사로 예배합니다. 이 미사를 제사로 드리면서 동물의 희생제물 대신에 그리스도께서 희생제물이 되시고, 사제는 제사장이 되며, 단상은 제단이 됩니다. 또한 구약처럼 촛불도 켜고 향도 피웁니다. 미사뿐만 아니라 구약에서 절기를 지켰으니 신약시대에도 절기를 지켜야 된다고 주장합니다. 이렇게 그들은 구약의 것들을 무시간적으로 끌어다 적용합니다.

 

특히 우리는 여기서 미사의 심각한 오류에 대해서 지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80문은 미사를 가리켜서 ‘가공할만한 우상숭배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최근에 미국의 CRC 교단에서 이 부분을 삭제 했습니다. 천주교와 화해하기 위해서인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왜 미사가 우상숭배일까요? 미사란 무엇입니까? 미사란 구약의 백성들이 제사의 형식으로 예배를 드렸던 것처럼 동일하게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예배 때마다 재현하는 방식11)으로, 곧 제사의 형식으로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마치 구약의 백성들이 제물을 가지고 오면 제사장이 그것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것의 피를 흘려 그 피를 단에 뿌리고, 희생제물을 각을 떠서 불에 태워 하나님께 바침으로써 죄 용서함을 얻었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속죄의 희생제물로 드리는(봉헌하는) 미사를 통해서 새로운 죄의 용서와 새로운 의를 획득하게 된다고 말합니다.12) 여기에는 네 가지 심각한 오류가 내포되어 있습니다.


1) 영원한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이 아닌 또 다른 제사장을 말하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모독하는 것이 됩니다.

2) 그리고 미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멸시하는 행위가 됩니다.13) 동물의 제사가 반복된 이유는 염소나 송아지의 피가 죄를 속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제사를 미사를 통해서 반복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능력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미사가 그리스도의 희생을 생생하게 재현하기 때문에 더욱 은혜가 클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상 그들은 그 죽음의 힘과 효력을 무시하고 무력화 하는 것입니다. 미사는 그리스도께서 단 한번 참으로 죽으셨고,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 완전하고 충족한 구원을 이룬다는 것을 잊게 만듭니다.

3) 또한 이 미사를 드리는 가운데서 예수님은 다시 십자가에서 죽으시며 하나님께 바쳐집니다. 그것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예수님을 다시 십자가로 끌어내리는 예수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14)

4) 그리고 2000년 전의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현재 계속 드려지는 미사라고 하는 제사를 통해서 죄사함을 받는다고 생각하게 됩니다.15)


물론 그들은 이런 반론을 인정하지 않습니다.16) 사제는 제사장이 아니라,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사역을 대행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희생제사를 반복하는 것이 아니라, 그 희생제사의 적용을 반복할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제사의 형식으로 미사를 드리는 근거로 구약 성경의 몇몇 구절을 제시합니다(말 1:11; 사 19:19,23,24).17) 그러나 이러한 그들의 주장은 칼빈의 말처럼 구차한 변명에 불과합니다.18)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한 번 제물로 바치신 것은, 그의 희생을 매일 새로운 예물로 확인하라는 조건에서가 아니라 그의 희생의 혜택을 복음 선포와 성찬 집행에 의해서 우리에게 분여하라는 조건에서였다(고전 5:7; 고전 5:8). ... 십자가상의 제물이 우리에게 충분히 분여되어 우리가 향유하며 진정한 믿음으로 받아들일 때에, 그것이 곧 이 희생을 우리에게 적절하게 적용하는 방법이라고 나는 주장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는 그 제사를 재현함으로써 봉헌된 희생제물, 곧 미사의 예물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2000년 전의 그리스도의 유일한 희생제사가 믿는 자 안에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씀으로 그리고 성찬으로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매번 미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희생제물이 보속이 되어 새로운 죄의 용서와 의를 획득하게 된다면, 그것은 결국 2000년 전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의 효력을 완전히 무력화시키는 결과를 낳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것으로서, 가공할만한 우상숭배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사뿐만 아니라 절기에 대해서도 우리는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로마가톨릭은 주님께서 금하시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해도 된다고 생각하기에 구약시대처럼 절기를 만들어서 지킵니다. 물론 절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약의 백성들을 신앙교육 하시기 위해서 즐겨 사용하셨던 의식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날마다 출애굽의 은혜를 기억하고, 그 은혜에 기초해서 삶을 살아야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특별히 이 절기를 제정하셔서 어떤 특별한 날에 여러 가지 의식들을 통하여 그 은혜를 더욱 깊이 기억하고 회상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사실 절기라는 것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도 광복절이나 3.1절, 개천절을 통해서 나라의 중대한 사건들을 기억하고 기념합니다. 이런 기념일을 지키는 것은 개인에게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매년 생일, 결혼기념일 등을 특별한 날로 보냅니다. 이렇게 어떤 날에 어떤 사건을 기억하고 기념하고 특별한 의식을 행하는 것은 모든 인류의 공통적인 관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기념일, 절기를 지키는 이유는 과거의 어떤 사건이 대대로 기억할 만큼 중대한 것이기 때문이며, 이러한 기념일과 절기들을 통해 그 과거의 사건을 다시 회상하고 기념하고 오늘날 그 의의를 적용하며, 그것을 통해 서로가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절기라고 하는 것은 인류 사회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하고, 또한 교육적인 효과나 사회적인 효과가 대단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절기를 통한 교육방법을 이스라엘에게도 사용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시고 출애굽 한 역사를 여러 가지 절기와 의식들을 통해서 그것을 기억하고 기념하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1년을 단위로 각 기간별로 절기가 딱 있어서 절기를 지킴으로써 매년 반복적으로 구속의 은혜를 기억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의문을 갖는 것은 신약시대가 되어서 예수님께서는 세례와 성찬을 행할 것을 명하신 것 외에 일체에 어떤 의식도 명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을 지키는 것도 초대교회가 ‘주일’을 지켰던 것 외에는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절기라는 제도가 얼마나 유용한 것인지, 어떤 교육적인 효과가 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모르실 리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백성들에게 명하셨던 것처럼 얼마든지 나의 탄생일과 고난일, 십자가 죽음과 부활일을 정해서 기념하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절기를 제정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세례와 성찬만 제정하실 뿐 다른 무엇도 명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의미심장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이 점에 대해 침묵하셨다는 사실 앞에서 우리는 우리의 어떤 필요성이나 교육적 효과에 관한 우리의 모든 생각들을 일단 내려놓고, 왜 침묵하셨는지에 대해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보다 더 지혜로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훈계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 왜 주님께서는 그것을 명하지 않으신 것일까요? 그것은 일차적으로 예수님께서 신약백성들을 구약 백성들보다 수준 높게 보셨기 때문입니다. 구속사적으로 신약백성들은 구약백성들에 비해 월등한 위치에 있습니다. 구약의 모든 절기와 의식들은 다 그림자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한 것입니다. 구약의 모든 그림자들의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는 구약의 모든 약속을 성취하시고 구속을 완성하시며 하나님 나라와 종말을 도래케 하시고, 자신의 영인 성령을 이 땅에 보내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그리스도 안에서 구속함을 받고 성령을 선물로 받은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 백성들보다 훨씬 더 풍성한 은혜를 누리며 확실한 계시와 그리스도의 찬란한 복음을 듣고 알뿐만 아니라 예전에는 감춰져 있었던 때가 찬 경륜의 비밀을 들어 알고 있는 것입니다(마 11:11; 13:16-17; 엡 3:9; 골 1:25-27). 이렇게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성도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습니다. 그런 점에서 바울은 구약시대의 할례나 절기, 안식일 지키는 것을 초등학문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습니다.


(3)이와 같이 우리도 어렸을 때에 이 세상 초등 학문 아래 있어서 종노릇 하였더니 ... (9)이제는 너희가 하나님을 알뿐더러 하나님의 아신 바 되었거늘 어찌하여 다시 약하고 천한 초등 학문으로 돌아가서 다시 저희에게 종노릇 하려 하느냐(10)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갈 4:3,9-10)


바울이 율법의 행위들을 초등학문이라고 했을 때는 율법에 대해서 어떤 적대감을 품고 하는 말이 아님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감에 있어서 초등학문이 얼마나 중요한 것입니까? 그것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서도 초등학교에 다니고 있다면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옛 언약과 율법은 굉장히 중요한 것이고 꼭 필요한 것이지만, 그러나 새 언약, 새 시대가 오면 그것은 다 폐지될 것입니다. 이제 새 언약과 새 시대에 맞는 교육이 필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구약의 것들을 무시간적으로 끌어다가 적용할 것이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새 언약과 새 시대에 합당하게 무엇이든지 행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심으로써 모든 구약의 절기와 날의 구분을 폐지하셨습니다. 그리고 오직 주의 날을 지킬 것과 성례를 지킬 것만 명하셨습니다.19) 왜냐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수준이 높은 신약의 성도들은 구약의 방식과 같이 수없이 많은 규례들이나 절기들이 필요가 없고, 날의 구분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의도를 잘 생각해서 오늘날 절기 지키는 것에 대해서 잘 분별해야 합니다.

 

진실로 우리가 성탄절, 사순절, 부활절에서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성령의 오심 등의 모든 구속사적 의미를 우리는 매 주일을 통해서 기념합니다. 그리고 성례를 통해서 특별히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을 기념합니다(고전 11:23-26). 때문에 따로 절기를 지켜서 그것을 기념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탄절과 사순절, 부활절을 지킬 필요가 있다고 느끼는 것은 그만큼 우리가 주일과 성례를 참되게 지키고 있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해줄 뿐입니다. 그것은 마치 태양이 찬란하게 비취고 있는데, 더 밝게 하기 위해서 촛불을 켜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주일과 성례 속에서 주님의 모든 구속의 의미가 다 담겨있기에 우리는 매 주일을 통해서 주님의 구속의 은혜를 기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뜻을 생각해볼 때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탄절이 되면서 기대에 들뜨고 흥분해하고, 주님의 탄생을 기억하고 그 사랑을 묵상하며 기념하는 모습들이 사실 굉장히 이상한 모습임을 알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 의도하신 것은 성탄절이 다가오면서 들뜨고 기쁜 것이 아니라, 모든 날들 속에서 주님의 성육신의 은혜를 인해서 들뜨고 기뻐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항상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365일이 우리의 성탄절이고, 그 은혜를 특별히 주일날 더 깊이 있게 기억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난주간이 되어서 금식하고, 고난을 묵상하고 기억할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속에서 주님의 고난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주님을 본받아서 날마다 고난 받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려하면 늘 고난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365일이 고난주간이 되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365일이 부활절이고, 특별히 주일을 통해서 부활을 더 깊이 기념하며, 365일을 부활의 산 소망가운데 살아갑니다. 이렇게 신약시대는 마땅히 모든 날을 같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크신 뜻과 의도를 잘 생각해서 우리가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오늘날 주일을 어떻게 지킵니까? 이러한 주님의 구속의 사건에 대한 깊은 묵상이 없이, 그냥 형식적으로 주일예배에 참여한다면, 그럴 바에야 차라리 일반교회들처럼 매년 절기를 지키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일반교회처럼 절기를 지키면, 1년에 한번만이라도 예수님의 구속사건의 각각의 의미를 묵상하고 생각하고 거기서 유익을 얻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가 매 주일마다 주님의 탄생과 고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을 묵상하고 기념하지 않는다면, 실로 절기를 안 지키는 것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신약에는 절기가 없다고 하는 것이 구약 백성들처럼 날을 지키는 수고를 할 필요가 없어서 훨씬 편하게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수준 높게, 더 깊이, 더 자주 그 의미를 되새겨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신약백성들에게 두신 이 깊으신 뜻을 받들어서 주일을 그런 의미있는 주일로 성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와 더불어 우리가 또한 한 가지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만큼 그렇게 주님의 뜻에 순종해 가야할 필요가 있지만, 그 뜻을 온전히 알지 못해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는 연약한 교회들에 대해서 결코 정죄하거나 그들보다도 우월하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절기를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들지 못한 것이지만, 하루 날 잡아서 주님의 탄생을 묵상하고 기념하는 것 자체가 죄악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절기를 지키는 교회들을 다 싸잡아 정죄하거나 잘못되었다고 비난할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3)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4)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5)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 14:1-6)


이 본문의 문맥은 믿음이 연약한 자가 있는데, 그러한 자를 멸시하지 말고 영접하고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그 예로 날을 지키는 것과 먹는 문제를 거론합니다. 바울의 의도는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모든 날과 절기들을 다 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음이 연약한 자는 옛 언약과 새 언약 사이의 불연속성과 그 구속사적 의미를 잘 모르기 때문에 어떤 날에 종교적인 의미를 부여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갈라디아 교회처럼 그렇게 해야 구원받는다고 한다면 정말 지탄받아 마땅한 심각한 오류이겠지만, 로마서의 경우는 구원에 있어서 예수님만으로 충분하다는 것을 고백하지만, 이러한 안식일이나 절기도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므로 어느 정도 중요한 날이 아니냐 하는 생각을 갖는 경우입니다. 이런 경우에 바울은 그러한 연약한 생각을 하는 형제들을 멸시하거나 정죄해서는 안 되고,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섬겨주어야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 그 마음에 생각하는 대로 확정하라는 것입니다. 다만 전제는 어떻게 하든지 그것을 주님을 위한 열정으로 그리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라는 것입니다. 날을 지키는 자도 주를 위해서 한다면, 비록 그것이 주님의 뜻에 충분하게 부합되지 못하지만, 그것대로 괜찮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날을 지키지 않는 것도 주님을 위한 열정과 감사로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절기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획일화된 정답을 가지고, 교회를 정죄하고 나누는 일은 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날 모든 교회가 절기를 지키는 것에 대해서 너무 비판적이고 정죄하는 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습니다. 물론 그들이 하나님의 뜻에 더 부합하지 못하기 때문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고, 또 그렇기 때문에 기회가 되는대로 이러한 주님의 뜻을 그들에게 가르쳐서 그들로 하여금 주님의 뜻에 더 부합하도록 도와주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그들과 갈라설 필요는 없는 것입니다. 요즘 성탄절을 지키지 않으면 이단 취급받지만, 그것은 매우 나쁜 것입니다. 주를 위하는 열정이 같다면 성탄절을 지키든 안 지키든 서로 형제가 됨에 있어서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강의를 통해서 로마가톨릭의 관점과 그 오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금하지 않은 것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해서 온갖 의식을 만들어 행합니다. 나름대로 효과를 내기 위해서 그리고 좋은 동기에서 시작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미신과 우상숭배를 조장했을 뿐입니다. 우리의 입장은 오직 주께서 하라고 하신 것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라고 안 한 것은 암묵적으로 금지한 것이라고 보아야 합니다. 주께서 하라고 명하신 것은 주일과 성례밖에 없습니다. 신약의 성례는 오직 세례와 성찬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신구약의 구속사적인 그 풍성한 의미를 잘 생각해서, 주께서 행하라고 명하신 세례와 성찬에 신실하게 참여해야 할 것입니다.

 


1) 벌코프, 881. “구약 시대에는 할례와 유월절이라는 두 개의 성례가 있었다.” 또 다른 곳: “성례와 더불어 이스라엘은 다른 많은 상징적인 규례들, 예컨대 성례와 일치하는 제사 규례와 정결의식을 가지고 있었던 것과는 대조적으로 신약에는 오직 성례만이 존재한다” [위로↑]

2) 칼빈, 361-2 참조. [위로↑]

3) 벌코프, 881. “구약 시대에서의 할례는 피의 제사로서, 죄책과 죄의 오염을 제거하는 것을 상징하며,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원리를 삶의 전영역에 침투시킬 의무를 부과하는 것을 의미했다.” [위로↑]

4) 칼빈, 362. [위로↑]

5) 칼빈은 스콜라 학파들의 주장을 이렇게 인용합니다: “옛 율법의 성례는 하나님의 은혜를 예시할 뿐이고 새 율법의 성례는 하나님의 은총을 현재의 실재로서 준다” 스콜라 학파들의 주장의 근거는 히브리서 10장에서 말해지고 있는 것처럼 동물들의 피로는 죄가 속하여지지 않는다는 점과 바울이 할례와 같은 의식들을 부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는 점 등을 제시합니다. 칼빈, 363-7 참조. [위로↑]

6) 물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의식들을 통해서 구원의 은혜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만이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장차 있을 그리스도의 구속의 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위로↑]

7) 벌코프는 3가지 점에서 이것을 논합니다. “1)고전 10:1-4. 2)롬 4:11. 3)성례들이 같은 영적인 실재들을 나타낸다. 곧 신약과 구약의 성례들의 명칭들이 상호 교차적으로 사용된다. 할례와 유월절이 신약교회에 대해서도 사용되고 있으며(고전 5:7; 골 2:11), 세례와 성찬이 구약 교회에 대해서도 사용된다(고전 10:1-4).” [위로↑]

8) 칼빈, 364. [위로↑]

9) 윌리암슨, 220-2. [위로↑]

10) 십자가상이나 성모 마리아상, 예수님 상, 여러 가지 성화나 벽화들은 명백하게 제2계명을 범한 것입니다. 물론 그들은 제2계명을 범하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그 형상이나 그림을 숭배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면서 배우고, 묵상하며 감동을 받기 위함이라고 말합니다. 토마스아퀴나스는 “그리스도의 성상도 조각된 나무토막에 불과하므로 경의를 표할 만한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인간은 그들이 듣고 읽는 것보다 보는 것에 더욱 쉽게 감동한다.”고 말했습니다(마이클호튼, 95; cf. 토마스왓슨, 110-1). 즉 그것을 경배하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성상을 통해 교훈을 얻도록 하기 위해, 다시 말해 교육적 목적에서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리 효과가 있다 하더라도 예배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명하신 것이 아니기에 성상을 사용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순수한 교육적 목적이라고 해도, 그것은 은밀하게 우상숭배를 조장하는 결과를 낳게 합니다. [위로↑]

11) 로마가톨릭은 미사는 그리스도의 죽음의 반복이 아니라, 적용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 궤변은 쉽게 반박됩니다.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한 번 제물로 바치신 것은, 그의 희생을 매일 새로운 예물로 확인하라는 조건에거가 아니라 그의 희생의 혜택을 복음 선포와 성찬 집행에 의해서 우리에게 분여하라는 조건에서였다.” 칼빈, 528. [위로↑]

12) 칼빈, 530. [위로↑]

13) “나는 미사에는 또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수난을 은폐하며 매장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 제단을 쌓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즉시 타도된다는 것은 아주 확실하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영원히 성결하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서 희생 제물로 바치셨다면(히 9:12, 26; 10:10) 이 희생의 힘과 효력이 무한히 계속된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율법 하에서 희생 제물이 되는 소나 송아지 이상의 존경을 그리스도에 대해서 느끼지 않을 것이다. 소나 송아지의 희생의 효력과 힘이 약했다는 것은 그것이 자주 반복되었다는 사실이 증명한다.” 칼빈, 527. [위로↑]

14) 칼빈, 530. [위로↑]

15) 칼빈, 531. [위로↑]

16) 칼빈, 526-529 참조. [위로↑]

17) 이에 대한 칼빈의 반론은 칼빈, 529-30을 참조하라. [위로↑]

18) 칼빈, 528-9. [위로↑]

19) 물론 “주의 날”을 지키라고 주님께서 명하신 적은 없습니다. 그러나 성경전체에서 보았을 때, 주의 날을 지키는 것을 주님께서 의도하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안식후 첫날 또는 주의 날”에 대한 분명하고 빈번한 언급들은 이 날을 중요한 날로 초대교회가 지켰다는 것을 보여줍니다(마 28:1,6; 요 20:19; 요 20:26; 행 2:1-2; 행 20:7,11; 고전 16:1-2; 계 1:10). 주님께서는 안식후 첫날에 부활하셨고, 그 후 7일 간격으로 주의 날마다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강림하신 날도 주의 날이고, 또 초대교회에서 이 날에 연보하고 공적인 예배와 성경공부 모임을 하였던 것을 보게 됩니다. 디다케, 바나바서신, 이그나티우스의 글들에서도 이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주의 날을 지켰다는 것은 그것이 주께서 의도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주의 계시를 받은 사도들의 지도를 초대교회가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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