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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조이에서 퍼온글입니다. 지난주에 대구센터(대구CMI)에서 강의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악을 발견하고,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새롭게 하기를 더욱 힘써야 하는 때인 줄 생각이 듭니다. 나도 모르게 근거 없이 전해져 온 이야기며, 습관들을 진리인양 생각하며 살아 가기 쉽습니다. 한결교회 모든 사랑하는 지체들 가운데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하나님 앞에서의 삶, 날마다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고자 힘쓰는 교회가 되어 가기를 기도합니다. 직분! 살아계신 하나님 앞에서 무슨 순서가 있으며, 높고 낮음이 있고, 또한 죄인들이 무슨 권으로 서로를 정죄하고 판단하는 죄악을 더하겠는지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오늘도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에서 나아가며 내게 주신 사명을 순종함으로 감당하며,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기에 힘쓰는 오늘 하루가 되고, 하나님께 기억함이 되는 오늘의 삶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교회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가 교회개혁의 필수조건  
                                                                                         대구실로암교회 이광호 목사

"말씀과 고백으로 세운 직분 간 균형과 견제 강조 "

한국교회가 앓고 있는 적지 않은 문제점들과 갈등의 뿌리는 교회 직분에 대한 성경적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못된 적용을 하기 때문이라는 진단이 있다. 세상이 주지주의와 합리주의를 추구하면서 교회도 그러한 시각으로 접근해 갈 때, 때로는 하나님의 말씀의 원리를 벗어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될 것이다. 한국교회는 시대조류나 시대적 가치가 아닌 직분에 대한 바른 성경적 이해와 진단, 그리고 대안을 모색해야 우리 시대 교회 안에 만연한 문제점들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지난 7월 11일 대구 선교교회에서 있었던 이광호 목사(실로암교회)의 강연 요약 내용이다.

직분의 중요성
직분은 교회를 지탱하는 뼈대와 같다. 직분이 없으면 아무리 순수한 성도들이라 할지라도 제각기 자기 마음에 따라 행하려고 하는 인간의 본성으로 인해 온전히 교회를 세워나갈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교회를 온전히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직분을 은사로 허락하셨다.

우리 시대 교회가 세속화 되고 허물어져 가는 저변에는 직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적용이 없기 때문이다. 즉 직분이 허물어지고 직분자들이 교회로부터 부여받은 직분을 잘못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작금에 이르러 제기되고 있는 불건전한 평신도운동은 자칫 직분 제도 자체를 인정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경향으로 나아가기 쉽다. 그러기에 성경적 직분에 대한 이해는 중요하다.

직분의 의의
교회의 직분 제도는 역사 가운데 존재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유지 보존하기 위해 허락하신 주님의 은사이다. 주님의 은사라 함은 그것이 인간들의 지략에 의한 것이 아님을 말한다. 즉 직분은 교회를 잘 지탱하기 위한 수단으로서 인간들의 합의에 의해 제정된 제도가 아니라 지상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인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의 직분은 교회 역사 가운데 발전한 것이 아니라 사도교회 시대부터 요구되어 온 교회의 제도임을 잘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다.

교회에 허락된 다양한 직분들은 내적 소명과 외적 소명을 요구한다. 내적 소명이란 개인 성도가 특정 직분을 감당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내적인 부르심이 있느냐 하는 문제이며, 외적 소명이란 교회의 회중이 그를 직분자로 부르고 있는가 하는 문제이다. 전통적으로는, 하나님께서 어떤 이들을 세워 교회의 직분자가 되게 하실 때, 그 자신이 느끼는 바 내적인 소명을 교회 회중이 선출하는 방법의 외적인 소명을 통해 인쳐주는 식으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직분으로 부르신다는 점을 강조해 왔다.

진정한 내적 소명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움에 진정한 관심을 가지고 봉사하고자 하는 선한 마음이다. 그 마음은 하나님께서 선물로 허락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런 내적 소명을 확인하는 작업이 개인에게 맡겨진 것이 아니라 교회 회중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이다. 각 성도들의 내적 소명을 확인하는 일이 교회에 맡겨져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은 교회의 직분자 선출을 실행함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직분은 교회의 주인이 주님임을 선포하는 것
우리가 고백하는 것처럼 교회의 주인은 오직 하나님 한 분이시다. 교회는 주님께서 친히 피로 값주고 사신 거룩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주인이신 하나님 이외에 어느 누구도 주인 행세를 하거나 주인을 대리하려 해서는 안 된다. 모든 직분자들은 말씀을 통해 주님의 뜻을 알아가며 그의 직분적 요구에 순종해야만 하는 것이다.

교회에 직분 제도가 있는 것은, 개인이 자기 취향이나 판단에 따라 교회를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장치 역할을 동반한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는 어느 누구도 절대적인 위치를 차지하는 자가 있어서는 안 되며, 허락된 직분들을 통해 공동으로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직분의 권위는 말씀에 의해 행사되어야 한다
직분에 관한 모든 권위는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행사되어야만 한다. 특정한 목적을 지닌 선교단체와 차이나는 주님의 몸된 교회의 고유한 성격 중 하나는 개별 직분자의 리더십이 특별한 권한을 가질 수 없다는 점이다. 물론 교회에는 다양한 능력들이 필요하지만 교회가 필요로 하는 능력은 개인의 특별한 재능이 아니라 주님으로부터 제시된 직분 즉 은사인 것이다. 직분으로 드러나는 그런 집합적 은사들이 교회를 온전히 세워나가게 된다.

한국교회가 허용한 비성경적 직분들
직분은 교회의 필수요건이다. 즉 정상적인 교회에 직분이 없으면 안 된다. 이에 반해 부수적 직분은 없어도 되며, 성장한 교회에서는 도리어 불필요한 것들이다. 한국교회에는 목사, 교사, 장로, 집사 이외에 부수적인 임시직분들이 많이 있다. 강도사, 전도사, 권사, 서리집사 등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는 강도사, 전도사를 직분으로 볼 수 있느냐는 생각을 해 볼 때 그에 대한 답변을 하기 쉽지 않다. 즉 교회가 직분자로서 선출하지 않은 직분이 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권사 제도는 특이한 직분처럼 둘 것이 아니라 그 명칭을 바꾸어 여자 집사로 직분명을 바꾸어야 할 것이며, 그것은 남자 집사와 다른 요건인 나이 제한 등은 바꾸어져야 할 것이다.

그와는 별도로 한국교회에 있는 서리집사 제도는 매우 특이하다. 엄밀한 의미에서는 그것을 과연 직분이라 해야 할 지 판단하기가 쉽지 않다. 현재 한국교회의 서리집사는 회중의 투표를 통해 선출된 직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의 서리집사는 헌법상 교회에서 직분자로 인정받고 있다. 서리집사는 제직회에 참석하여 교회의 중요한 의결과정에 참여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원리적으로 보아 이해하기 어렵다.

직책이나 직임이 직분보다 중시되어선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직분보다 직책이나 직임이 더 중요시되어서는 안 된다. 각 부서의 회장이나 성가대 지휘자와 같은 직책 및 직임보다는, 외적으로 그런 식으로 드러나지 않지만 교회의 회중에 의해 세움을 받은 집사 직분이 본질적으로 훨씬 중요한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직책이나 직임이 직분보다 오히려 더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있다. 즉 집사의 직분은 대중적인 것으로 생각하여 맡겨진 직분을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으나 직분이 아닌 다른 직책들에 대해서는 최선을 다해 봉사하고 일하는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것이다.

직분은 계급이 아니다
교회의 직분은 어떤 경우에도 계급으로 인식되어서는 안 된다. 직분은 세상에서 보여주는 어떠한 명예를 제공하지 않으며 여하한 개인적인 권력을 부여하지도 않는다. 모든 직분은 상호관계 속에 놓여 있으며, 모든 직분자들은 성도들 간에 존재하는 유기적 관계 가운데서 기능해야 한다. 교회의 각 직분들은 개별적이지 않고 집합적이자 상호연관성을 지니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한국교회에서는 직분이 마치 계급제도처럼 인식되어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 입교하면 일정기간이 지나 집사 직분을 맡게 되고, 그 후 일정기간이 지나면 다시 장로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성도가 한평생 신앙생활을 했는데도 장로가 되지 못하면 신앙이 별로 좋지 않은 사람으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직분관에 문제가 있다는 증거이며 매우 잘못된 생각임이 분명하다.

건강상의 여건이나 특수한 형편으로 인해 직분을 감당하기 어려운 성도이면 비단 신앙이 훌륭하다 할지라도 직분자가 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사실상 온전하고 성숙한 교회라면 모든 성도들이 직분과 관계없이 동일하게 올바르며 성숙한 신앙을 가져야 하는 것이다.

항존직에 대한 오해
흔히 목사, 장로, 집사를 항존직으로 말하는데, 사실은 이 모든 직분들이 항존직이다. 항존직에 대해서 잘못 이해하고 있는 자들은 종신직과 항존직 사이를 오해하고 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항존직인 집사로 장립을 받은 성도가, 그 직분을 중단하고 장로로 장립되기도 하며, 집사나 장로로 장립받은 성도가 그 직분을 중단하고 목사로 장립받기도 하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직분이 개인을 위한 직책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직분이라면 교회의 의사에 따라 새로운 직분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그것은 단순히 교회의 민주적 절차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른 교회의 의사를 통한 직분자 선임에 의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현대 한국교회의 폐단 가운데 하나는 직분 자체를 권위나 권력으로 생각하거나 명예로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교회에서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 감히 누가 개인적 권위를 가지며 권력을 가질 수 있는가? 누가 감히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개인이 누릴 수 있는 명예를 가질 수 있다는 말인가? 지역 및 시대교회의 분위기가 그런 식으로 변질되면, 잘못된 자들은 직분을 성도들을 다스리는 통치수단으로 오해하게 되며 결국 직분을 개인을 위해 도구화하기 쉽게 된다. 설령 그런 악한 의도를 가지고 직분을 이행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항상 깨어 있지 않으면 부패한 인간은 자기 지향적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항상 염두에 두어야 한다.

목사의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
이런 가운데서 보면 목사는 공예배에서의 말씀선포와 성례집행, 권징사역, 축도를 감당하는 직분이다. 거기에는 예배를 인도하는 것이 목사의 가장 중요한 직무임이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그 직분을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익숙하여 교회의 인정을 받는 자로서 회중의 선임을 받아야 한다. 어떤 의미에서는 교회의 직분자들 가운데 가장 자의적으로 직분 이행을 할 수 없는 자가 목사이다. 목사는 자기 의중에 따라 설교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드러내야 하는 직분자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목사가 설교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한다면 그 권리를 자기 마음대도 활용하다가 쉽게 주님의 뜻을 벗어나게 될 것이다. 성례집행, 권징사역, 축도 등에 대해서도 이와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우리는 목사가 결코 자의적으로 설교하거나 성례집행 및 축도를 할 수 있는 권리를 가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도리어 목사 직분을 받은 성도는 교회가 부여한 대로 하나님의 뜻에 따라 말씀을 드러내며 예배에 수종들 수 있는 직무를 부여받은 자로 이해해야 할 것이다.

목사는 결코 설교를 통해 자기 역량을 펼치는 통치자나 권력자가 아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교회의 직분을 인간의 시대적 조류에 따라 결정한다는 생각을 가져서는 안 된다.

그리고 목사가 해야 할 일 중 하나는 교사, 즉 신학교수들을 독려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는 교권적 감독이 아니라 신령한 독려여야 한다. 세상의 변화와 더불어 끊임없이 교회 내부로 침투해 들어오는 비신앙적 요소들에 대한 해답을 공교회적 입장에서 확인하기 위해 신학교수들에게 지속적인 답변을 요구함으로써, 목사와 교수들은 상호연관성 가운데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장로교에서 개혁교회와 달리 교사 즉 교수의 직분을 따로 두지 않는 것은 목사 직분과 신학교수 직분의 공교회 가운데서의 동등성과 밀접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교사(신학교수)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
성경에서 말하는 교사 직분자란 오늘날 신학교수들을 일컫는다. 장로교회에서는 교사 직분을 독립된 직분으로 구분하지 않음으로써 목사직에 포함시키고 있다. 그러나 개혁교회에서는 교사를 일반목회자와 구분된 특별한 직분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특별한 직분이란 직분 자체의 의미에서도 그렇거니와 선임과정에서도 그렇다. 목사, 장로, 집사 등 다른 직분들이 노회와 지교회에 속한 직분인데 반해 교사는 노회 뿐 아니라 공교회 즉 교단에 속한 직분이다. 그러므로 지교회의 청빙과 투표에 의한 선임이 아니라 전체 공교회에서 살펴 선임함으로써 말씀해석자와 교육자로서 교사직분을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교수직은 공교회적 직분이며, 교수는 공교회의 신학적 일치와 유지를 위해 말씀을 끊임없이 해석해야 하는 직분자이다. 그들은 교회의 치리나 교회정치에서 중립적이어야 하는데, 이는 정치적 영향에 관계없이 순수하게 말씀을 잘 해석해야 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다.

장로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
장로는 교회의 목사와 함께 감독자이다. 이는 단순히 감시자라는 말이 아니라, 치리자라는 말을 포함한다. 장로가 감당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감독 직무는 ‘목사의 설교를 책임있게 감독하는 일’과 ‘그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성도들을 사랑으로 감독하는 일’이다.

달리 표현하자면 장로가 감당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직무는 목사의 설교에 대한 선한 나눔인 것이다. 목사와 장로로 구성되어 정기적인 모임을 갖는 당회에서 지속적으로 행해져야 할 가장 소중한 직무는 목사가 선포한 말씀에 대한 당회원들 사이에서의 나눔이다.

당회에서는 목사가 설교한 성경 본문을 펼쳐두고 함께 말씀을 다시 읽으면서 본문의 의미를 새기는 가운데 자연스럽게 목사의 설교가 올바르게 잘 선포되었는가 하는 점검을 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장로의 직무를 통해 목사는 자의적으로 설교하지 않는 은혜를 누리게 된다. 장로가 그 직무를 온전히 감당하기 위해서는 말씀에 대해 목사와 버금가는 이해가 있어야만 한다.

장로의 직무 가운데 또 다른 중요한 일은 성도들을 심방하는 일이다. 그 심방의 기초는 역시 목사를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심방의 목적은 결코 교인들을 단순히 관리하거나 위로하기 위한 방편이 아니다. 한국교회에서 일반적으로 심방을 부목사나 여전도사, 권찰 등에게 맡기는 것은 재고해 보아야 할 일이다. 자칫 잘못하면 그런 류의 심방은 교인 관리 수준에 머무를 수 있으며 장로들이 해야 할 참된 직무에 대한 방해 기능을 할 우려마저 있는 것이다.

대다수 교회들에서는 장로들이 자기들에게 맡겨진 일이 아니라 집사들에게 맡겨진 재정에 관한 것에 모든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리고 교회의 일반 의사결정을 위한 최고의결기관인 것처럼 인식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잘못된 관행이며 불행한 일이다.

집사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
집사 직분은 다른 직분들보다 덜 중요한 직분이라는 생각은 결코 옳지 않다. 다른 직분들과 마찬가지로 이 땅에 존재하는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고 유지하기 위해 주님께서 허락하신 귀중한 직분이다. 그렇지만 한국교회에는 집사 직분이 제 기능을 거의 감당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집사 직분은 교인들의 일상적 생활과 연관이 된다. 즉 먹고 살아가는 문제와 직접 연관이 있는 것이다. 성도들은 일상생활 가운데서 정당한 노동을 하고 그로 말미암아 얻게 되는 수입 가운데 일부를 교회에 은혜의 연보를 하게 된다. 그 연보는 단순히 기부금처럼 돈을 내는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에 대한 고백적 표현이다. 그렇게 해서 모여진 돈을 집사 직분을 맡은 성도들이 교회의 여러 일들을 위해 사용하게 된다.

집사 직분은 교회의 재정적인 논의와 함께 일반적인 구제사역에 관한 문제 등을 담당한다. 이때 집사는 역시 목사, 장로와 연관되는 직분으로써 장로들로부터 심방을 통해 구제의 필요성이 있는 성도들에 관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이는 교회의 공적인 재정문제 뿐 아니라 성도들의 일반적인 생활형편에까지 관심을 기울여야 함을 의미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성도들간의 생존에 관한 공평한 삶을 주 안에서 이루어 가도록 직분을 감당하게 되는 것이다.

성경적 근거가 없는 직분들
강도사, 서리집사, 공로목사, 원로목사, 원로장로 등 교회 내에 직분과 관련되어 존재하는 명예직들은 아무런 역할이 없을 뿐 아니라 직분적 의미 자체가 없는 것이다. 그런 잘못된 불건전한 제도를 바탕으로 한 직분적 이름들은 마땅히 없애야 할 명칭들이다. 교회는 어떤 경우에도 그리스도 이외에 달리 특별한 명예를 받을만한 직분자를 둘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교회가 소홀히 한 집사회
당회는 목사, 장로들로 구성된 모임이며, 제직회는 당회원들을 포함한 집사들과 다른 임시직분자들이 포함된다. 이는 매우 중요한 의결기구라 할 수 있으나 한국교회의 제직회는 회중에 의해 선출된 직분자가 아닌 서리집사 등이 포함된, 요건을 정상적으로 갖추지 못한 기형적 모습을 띠고 있다.

필자가 강조하고 싶은 것 중 한 가지는 한국교회에 마땅히 있어야 하지만 있지 않은 집사회이다. 한국교회에는 집사회가 없는 상태에서, 당회와 당회원들이 포함된 제직회가 재정을 비롯한 집사들에게 맡겨진 일들을 통괄적으로 논의하다 보니 직분적 봉사영역이 명확하지 않아 집사들의 직분 기능이 약해지는 것이다.

당회로부터 독립된 집사회가 교회의 재정을 비롯한 구제사역에 관련된 제반사항을 논의하고 의결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그래야만 직분의 독립성과 다른 직분과의 상호연관성을 통한 협력이 원활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므로 교회에 필요한 기관은 당회와 제직회 두 기구가 아니라, 당회, 집사회, 제직회 세 기구가 필요한 것이다. 당회에서 결정한 내용들은 당회가 제직회를 거쳐 공동의회를 통해 교회의 최종의사를 확인하듯이 집사회 역시 제직회와 공동의회에, 맡겨진 직무들에 대한 보고를 함으로써 교회의 최종의사를 확인해야 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가장 중요한 영적인 권위는 당회가 가지지만 재정과 일반구제에 관련된 권위는 집사회가, 그리고 교회가 위임한 일들에 대한 의결권은 제직회가 가지며 그것들에 대한 일반적인 보고와 승인에 대해서는 전체 교인들의 회인 공동의회가 최고의 권위를 가지고 있음을 잘 알아야 한다.

당회의 임무
당회는 교회의 가장 중요한 영적인 분야를 맡은 직분자들인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다. 당회는 당회에서 논의된 사항을 집사회에 보고할 의무를 가지지 않는다. 그렇지만 당회의 중요 결정사항을 제직회와 공동의회에 공적으로 발표함으로써 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당회의 가장 중요한 임무 중 하나는 말씀 연구와 성도들을 위한 기도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당회는 목사를 통해서 선포된 하나님의 말씀을 함께 나누며 성도들을 말씀으로 지도하기 위해 힘써야 한다. 올바른 말씀 이해가 전제될 때 장로는 목사의 설교에 대한 논의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며, 그런 가운데서 각 성도들을 심방하며 파악하게 된 형편들을 기도제목으로 나누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배경으로 성례와 권징사역에 관한 논의를 하며 교회를 말씀으로 세워나가게 된다.

집사회의 의무
교회의 재정과 구제에 관련된 집사회의 논의와 결의는 당회의 허락을 받을 필요가 없다. 이는 집사회의 직분을 당회가 맡긴 것이 아니라 교회의 회중이 맡겼기 때문이다. 집사회의 논의사항을 당회에 보고해야 할 의무가 없는 것은, 당회가 당회의 결의사항을 집사회에 보고하지 않아도 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집사회는 모든 의결사항과 실천사항을 제직회에 보고하여 확인과 검증을 받아야 한다. 당회원들은 당연히 제직회에 속해 있으므로 제직회를 통해 문제를 지적하며 감독의 직무를 감당할 수 있다. 집사회는 성도와 이웃들의 직업이나 일상생활을 잘 살핌으로써 그들의 의식주에 관련된 삶의 어려움이 없는지 살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집사회는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면서 관련된 내용들을 나누며 기도하게 된다.

제직회의 임무
제직회는 교회가 맡긴 직분자들의 전체적 대의기관이다. 그 회에서는 목사, 장로, 집사 등 모든 직분자들이 모여 영적인 일과 일반 행사들을 논의하며, 교회의 제반사항들에 대한 논의를 하며 의결하게 된다. 그리고 당회나 집사회에서 행해진 중요한 사항에 대한 보고를 받고 논의하게 되는 것이다.

교회는 제직회를 통해 교회에 필요한 새로운 문제들을 논의하기도 하고 전반적인 교회 행사들에 대해 검증하기도 한다. 목사, 장로, 집사들의 모임인 제직회는 교회의 전반적인 일반사항들에 대해 논의하는 직분자들의 최고의결기관인 셈이다. 즉 당회와 집사회가 전문적 기능을 가지고 있다면 제직회는 일반 직분적 의결기관이라 할 수 있다.

공동의회의 의무
공동의회는 직분자 회는 아니지만 일반적인 사항들에 대한 최고의결기관이다. 교회에 속한 모든 입교인들이 공동의회 회원이 되어 질의하고 의결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며 성도로서 갖추어야 할 모든 의무를 감당하게 된다. 공동의회는 교회 회중이 목사와 장로로 세워서 맡긴 당회의 일과 집사를 세워서 맡긴 집사회의 일, 그리고 제직회의 일들에 대해 보고를 받고 승인하는 기관이다.

여기서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점은, 영적인 일에 대해서는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직분자 회인 당회의 권위가 가장 소중하며, 일반적인 논의에 있어서는 공동의회가 가장 중요한 최종 의결권을 가지게 된다는 사실이다. 이것이 교회가 단순한 민주적 회합체가 아님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결론
우리는 위에서 직분에 대한 전반적인 내용들을 살펴보았다. 그것이 하나님의 몸 된 교회를 세우기 위한 거룩한 방편으로서 얼마나 소중하며, 그 본질적 의미가 무엇인지 확인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한국교회에서는 각 직분이 크게 오해되고 있을 뿐 아니라 제 기능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다. 각 직분자들이 자기 직분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며 직분자들의 회인 각 기관이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

목사가 집사의 직분을 마치 자기 권리인 양 행사하고 있는가 하면, 장로는 자기의 직분 사역을 하지 않으면서 도리어 집사의 직분을 대신하고 있다. 집사들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자기의 직분을 다른 직분자들에게 내어주고 있다. 그렇게 되면 직분의 형식만 남게 될 뿐 진정한 의미는 사라지게 된다. 그렇지만 이는 한국교회에서 발생하는 엄연한 현실이다.

나아가 특정 직분자들은 다른 직분의 영역을 침범하거나 권위주의적으로 다른 직분을 유린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의도적이라기보다 무지에 의한 한국교회의 관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무지로 인한 관행이 교회의 올바른 직분 이행을 가로막고 있음을 주목해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제 각 직분자들이 다른 직분의 경계를 넘지 않으면서 자기에게 맡겨진 직분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제자리를 찾아야 한다. 이는 사실 대다수 교단 헌법들이 이미 명시하고 있는 바이기도 하다.

한국교회의 직분에 대해서는 이제 말씀의 원리에 따라 새롭게 정리해야 하며 각 직분들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강도사, 서리집사 등 더 이상 불필요한 직분들은 과감하게 폐지할 수 있어야 하며, 공로목사, 원로장로 등 명예직분은 당연히 없애야 한다. 그리고 직분자가 사임하거나 퇴직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일반성도로 돌아가야 한다. 특히 목사의 경우 퇴직 후 더 이상 목사 직분을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스스로 아직도 목사라 생각하고 있다면 교회에서 정상적인 신앙생활을 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리고 각 직분회를 분리해야 한다. 즉 한국교회의 '당회, 제직회' 두 직분회를 '당회, 집사회, 제직회' 세 독립된 직분회로 분리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직분회는 다른 직분회를 주 안에서 존중해야 하며 그 직분들의 최종적인 기초가 되는 전체 회중의 공동의회를 염두에 두고 직분수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직분자를 말씀의 원리에 좇아 올바르게 선출하기 위해서는 우선 모든 성도들이 성숙해야만 함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성숙하지 못한 교회라면 성령의 인도하심에 따라 올바른 직분자 선출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직분은 자기의 취향에 의해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회중이 기도 가운데 각 성도들의 은사를 확인해 맡기는 것이다.

그러므로 직분자는 개인적 성향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직분을 맡긴 교회의 의사에 따라 직분을 수행해야만 한다. 교회의 여러 직분들 간에 상호 균형이 맞는 가운데 직분적 사역이 이루어짐으로써 하나님을 섬기며 전체 교회에 봉사해야 한다. 각기 다른 직분은 다른 직분자들에 대해 건전한 견제기능까지 이행해야 하는 것이다.

허물어져 가는 한국교회의 회복을 위해서는 직분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이행이 필요하다. 교회는 말씀과 고백에 합치하는 방법으로 직분자를 세워야 하며, 세움을 받은 직분자들은 교회가 말씀을 근거로 맡긴 직분을 성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다양한 직분들 사이에 경계가 없이 혼합되어 있거나 계급적 경향으로 인한 치우침은 한국교회의 심각한 문제이다. 올바른 직분제도의 확립을 통해 원래의 아름다운 교회의 모습이 회복되기를 바란다. 직분에 대한 올바른 회복 없이는 한국교회의 개혁도 없음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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