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방문자 : 
    364
  • 어제방문자 : 
    664
  • 전체방문자 : 
    1,467,341
조회 수 109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수정 삭제
우리가 꿈꾸는 교회(2) - 바른 예배  

바른 예배(1) 하나님 중심의 성격 회복해야
이승구 교수 / 합동신학교 부교수. 조직신학

우리 모두가 다 성경이 바라는 바른 교회를 이루고 섬기기를 꿈꾸고 있다. 어떻게 해야 그런 교회를 바르게 잘 섬겨갈 수 있을까? 제일 먼저 우리가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은 무엇보다 먼저 ‘교회의 예배’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배는 다 하는 것이기에 예배는 별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모든 교회가 다 예배하는데, 예배를 통해서 과연 교회의 개혁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는가를 의문시하는 이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개혁자들이 교회를 성경 말씀에 따라서 개혁하려고 할 때, 그들은 무엇보다 먼저 교회 예배의 개혁을 위해 노력하였다는 것은 이 예배 개혁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에게 잘 말해 준다. 그러므로 우리들도 어떻게 하면 하나님 앞에서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예배를 행할 것인가 하는 것에 모든 신경을 다 써야 한다. 교회 개혁은 예배의 개혁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예배에 대해서 생각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 우리들의 예배가 ‘하나님 중심의 성격을 회복하도록’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 예배는 삼위일체 하나님께 구속받은 하나님 나라 백성들이 영혼의 무릎을 꿇어 절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배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이 예배가 하나님 중심적으로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예배는 상당히 인간 중심적인 특성을 많이 드러내고 있다. 예배를 제대로 드리지 않는 이들이나, 예배를 여흥거리로 바꾸어 그런 예배를 즐기려는 이들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예배를 제대로 드린다고 하는 이들도 그 예배를 정성껏 최선을 다해 드려서 우리가 어떤 은혜를 받는가 하는 것에 많은 신경을 쓴다. 이처럼 우리의 예배는 우리네 인간 중심적이다. 물론 예배에서는 인간들이, 즉 구속받은 사람이 경배하는 것이므로 인간적 요소에도 신경을 써야 하지만(따라서 비인간적 예배와 같은 것이 있어서는 안 된다), 근본적으로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인 것이다.

따라서 예배를 통해 내가 어떤 은혜를 받는가, 내가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지만(따라서 예배를 통해 변화하는 모습이 강조되어야 하지만) 그것은 역시 부차적인 것이다. 예배하는 일에서는 우리가 과연 하나님께 예배하고, 하나님께서 그 경배를 받으시는가 하는 것이 일차적인 관심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들의 일차적 관심은 주께서 과연 우리가 하는 경배를 받으시는가 하는 것이다. 주께서 받지 아니하시면 우리가 최선을 다해 드린다고 해도 그것은 무의미한 일일뿐이다.

따라서 문제는 과연 어떻게 해야 우리의 경배가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는가에 달려 있다. 우리는 미가와 같이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막 6:6)라고 물어야 한다. 그런데 이 점에서 어떤 이들은 우리의 최선을 다해서 우리의 지고한 것을 다 주께 드리면 주께서 받으신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있었고, 또 지금도 있다. 그들은 자신의 지고(至高)한 것을 정성을 다해 드리면 주께서 가납(加納)해 주시리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그것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고 최선의 것을 마련해 보려고 한다.

그러나 성경은 그런 것이 주께서 요구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왜냐하면 궁극적으로 따져 보면, 타락하고 부패한 인간이 최선을 다해 드리는 것이 주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인간의 선(善)은 다 떨어진 누더기와 같다고 한다. 여기서 동양 사상과 기독교의 본질적 차이가 아주 극명하게 드러난다. 동양사상에서는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인간의 최고의 것도 하나님께서 가납하실만한 것이 되지 못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배는 과연 어떻게 하나님께 가납되는 것일까? 성경의 가르침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그 공로만이 우리를 하나님께 가납적(加納的)이게 하며, 따라서 우리의 경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하게 만든다고 한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할 때나 그 언제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에 철저히 의존할 수밖에 없다. 십자가의 공로에 의존해서 주께 드리는 것이 아니면 우리의 최선의 예배라도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것이 못 된다. 따라서 우리 예배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구속 공로에 의존하여 드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온전히 성령님께 의존하여 항상 성자의 구속의 적용함을 받아야 한다. 성령님께서만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구속과 관련되게 하신다. 따라서 우리는 (1) 성령님 안에서 (2) 그리스도의 구속에 근거하여 (3)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의 경배의 대상이 삼위일체 하나님이시고, 우리들로 하여금 이 경배를 드리게 하시는 이도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그런 경배만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이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합당한 것만을 받으시기 때문이다. 따라서 십자가에서의 구속 공로에 의해 죄 속함을 받아 새롭게 된 사람들만이 성령님께 의존하여 삼위일체 하나님께 경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하나님께 하는 경배는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만을 높이며, 하나님을 존중하며, 하나님의 뜻이 온 세상에 극명하게 선언되도록 한다.

여기까지 말한 것을 부정의 형태로 바꾸어 진술하면 그것에는 동의하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모순에로 나아가지 않도록 우리는 주의해야 한다. 한번 그 요점들을 부정의 형태로 제시해 보기로 하자. 첫째로, 그리스도의 구속에 의존해서 하는 경배가 아닌 것은 예배가 아니다. 둘째로, 성령님 안에서 하는 예배가 아닌 것은 예배가 아니다. 셋째로, 삼위일체 하나님께 하는 예배가 아닌 것은 예배가 아니다. 만일에 이 세 가지 요점을 잘 유념한다면, 우리는 요나가 다시스로 도망하는 배가 폭풍이라는 문제에 직면했을 때 그 선상에서 벌어졌던 선상 기도회 같은 것은 진정한 의미의 예배도, 기도회도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만 한다.

오늘날 종교다원주의의 다양한 영향 가운데서 여러 종교에 속한 이들이 각기 그들의 방식을 살리면서 함께 경배하거나 기도하는 것이 그런 대로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일이 점점 보편화되고 있다. 그렇게 생각해야 참으로 보편적이며, 폭 넓은 사상을 가진 것이며, 인도적 사상을 가진 이들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상당히 교조적이어서 서로 말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이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앞서 이야기한 예배의 본질을 가지고 생각하면 우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할 것이다.

이 문제와 연관해서 우리야 하나님을 아니까 그렇게 예배하는 것이 마땅하지만, 다른 이들이 잘 모르므로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예배하는 것은 그냥 허용하고, 심지어 존중해야 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는 이들도 늘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런 이들에 대해서는 불쌍히 여기면서 그들이 참 하나님과 참 하나님께 나아 갈 수 있는 유일한 방도인 십자가에 철저히 의존하도록 노력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우리는 앞서 이야기한 예배의 본질을 잘 의식하는 것이 된다. 그러므로 참으로 예배하는 이들은 아직 하나님께 바르게 예배하는 이들이 매우 적다는 것과 관련해서 매우 강한 선교적 동기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바르고 참된 예배는 우리들로 하여금 복음 전하는 일에 힘쓰도록, 선교하는 일에 힘쓰도록 만든다.

또한 예배에서 사람이 높임을 받거나 영예를 받도록 하지 않도록 힘써야 한다.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에서는 하나님께서만이 높임과 존귀와 영광을 받으셔야만 한다. 어떤 사람의 영광과 뛰어남과 아름다움이 드러나도록 하는 것은 바른 예배에 적합한 것이 아니다. 사람을 기념하는 예배도 있기 어려운 일이다. 사람을 많이 신경 써서 그들의 눈치를 보는 예배는 참된 예배가 아니다. 예배 중에서 사람에게 박수를 치거나 영예를 돌려 드리는 것도 없어져야 할 일이다. 이렇게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한다. 사람이 중심이 되거나 사람의 받는 은혜가 중심적인 것이 되어서도 안 된다. 우리가 즐기는 것 중심의 예배가 되어서도 안 된다. 예배는 여흥(entertainment)이 아니다. 따라서 우리의 예배는 음악회나 연극을 구경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

부디 우리가 하는 예배가 진정으로 하나님 중심적 예배가 되기를 우리는 꿈꾼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만이 높임을 받으시며, 그 예배와 과정과 결과가 하나님 중심의 사상과 행동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 땅 가운데서 수행해 나가는 이들이 되도록 하기를 바란다. 이렇게 참으로 예배하는 이들을 주께서 찾으시며, 주께서 만나주시고, 주께서 이끌어 주신다. 참으로 성령님 안에서 그리스도에 의존해서 하나님께 예배하는 이들은 예배할 때마다 자신들이 주께 예배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것에 대한 벅찬 감격을 느끼게 되고 감사하며 예배할 것이다. 우리가 항상 그런 예배를 드리는 교회가 되기를 꿈꾼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4 현대교회와 교리 설교의 회복 손재호 2008.12.11 1664
63 이승구 교수님 창원극동방송 인터뷰 mp3 최상범 2011.12.31 1269
62 술과 담배에 관하여 최상범 2011.07.02 1782
61 절기에 대한 좋은 글(이천우 목사)을 올립니다. 최상범 2011.03.09 1491
» 우리가 꿈꾸는 교회(2) 손재호 2009.05.19 1090
59 우리가 꿈꾸는 교회(1) 손재호 2009.05.19 1109
58 유아세례에 관하여 1 손재호 2009.02.17 1200
57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만 한다. 1 손재호 2005.01.17 930
56 한국 교회 목회자 수급 문제에 대한 제언 2 손재호 2004.08.07 936
55 교회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가 교회개혁의 필수조건 조세훈 2004.07.27 978
54 성전(예배당)건축이 교회의 지상과제인가 1 조세훈 2004.07.02 984
53 전도를 하지 않는 교회? 조세훈 2004.06.21 841
52 개혁정신을 가진 그리스도인 조세훈 2004.06.11 822
51 맑은교회 수직체계 조장하는 목사 호칭 거부 조세훈 2004.06.10 900
50 교단 없고 간판 없는 교회 조세훈 2004.06.05 986
49 일시적 부흥은 가라 조세훈 2004.06.02 700
48 설계도 있는 교회에 다니고 싶다 조세훈 2004.04.17 886
47 거짓 선지자는 가라 조세훈 2004.03.29 776
46 정관이 잘 정립되기를... 조진호 2004.02.20 835
45 목사·장로 임기제, '함께 죽고 함께 사는 길' 조세훈 2004.02.18 957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Next
/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