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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보면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상 읽어보면 그 의미를 새롭게 할 수 있음을 봅니다. 진정한 전도인의 삶이 무엇인지 생각을 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과연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주님과 동행하는 삶이란 무엇일까요? 한결교회 지체들 가운데,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며 매일의 삶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이 되어지는 그러한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어지기를 기도합니다. 새벽에 눈을 뜸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오늘 하루가 주님과 동행하며,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예배가 되기를 기도하며 나아가고, 하루를 정리하며, 감사함으로 감사의 단을 쌓는 그러한 삶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전도를 하지 않는 교회?  
"교회는 하나의 공동체이지 '유일한' 공동체가 아니다"  

송상호 shmh0619@hanmail.net [조회수 : 719]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이 한 때 논란의 대상이 됐던 적이 있다. 그 책에서 주장하는 요지는 한국에 전해진 유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것이다.  

나는 생각한다. 공자가 죽을 것이 아니라 '공자를 따르는 후대의 제자들이 죽어야 한다'라고. 공자의 논어를 보시라. 거기에 어디 죽어야 될 것들이 있는가. 오히려 그 정신을 살려야 이 시대가 살지 않겠는가. 그러면 무엇이 문제인가. 공자의 원래 뜻은 좋았다.

그러나 공자를 따르는 수없이 많은 제자들이 공자의 원래 뜻을 저버리거나 왜곡시켜서 계속 전해 내려왔기 때문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말이 나올 지경에 이른 것이다. 다시 말해서 공자의 원래 뜻이 변질되어 그를 따르는 제자들에 의해 세상에 악을 많이 제공하는 결과가 된 것이다. 유교의 좋은 뜻과 정신보다는 형식만을 강화하여 따르니 이러한 말이 나오게 된 것이다. 나는 오히려 "공자가 진정으로 살아야 나라가 산다"는 것이 맞다고 확신한다.

지난번 <뉴스앤조이>에 실렸던 '교단 없고 간판 없는 교회'라는 제목의 기사가 나간 후 몇 몇 분들의 찬성과 반대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필자는 찬성의 글도 중요하지만 반대의 글에 더욱 귀를 기울이려고 했다. 글 쓴 목적은 그렇지 않은 교회를 비방하는 것도 아니요, 우리교회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이런 교회도 있으니 다양성을 인정하며 대화하고 토론해보자는 것이다.

지난 번 기사에 이어서 주님의교회에 없는 것을 몇 가지 더 소개하려고 한다. 최대한 중복된 것은 피해서 말해보려고 한다.

1. 강대상이 없다

얼마 전만 해도 강대상이 있긴 있었다. 조그만 성찬상이 강대상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필요 없게 되었다. 다른 교회에서 말하는 구역예배처럼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주일낮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일주일에 한 번 드리는 유일한 예배인 주일낮예배도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리고 있다. 그 주장의 근거는 간단하다. 신약성경에도 보니깐 강대상이 없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씀을 전했다. 그런데 제도적인교회(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칙령이후)로 바뀌면서 강대상이 생긴 것이다. 그 강대상이 중세를 거치면서 자꾸 높아만 갔고 화려해져 갔다. 강대상은 엄연히 평신도(?)와 성직자를 구분하는 권위의 경계선이 되었으며 평신도로서는 침범할 수 없는 성역이 되어 갔던 것이다. 종교개혁은 했지만 개신교에서 목사라는 제도를 두면서 여전히 답습해온 것이다. 그래서 강대상은 없애 버렸다. 물론 지금은 건축 중이라서(일죽봉사문화센터겸 무료공부방 건축) 더더욱 없어져 버렸다.

2. 교회당이 따로 없다

모이는 곳이 곧 하나님나라이며 교회이니 따로 교회당이 필요치 않은 것이다. 주님의교회도 교회당은 있었다. 9평 남짓한 방에서 평일엔 무료공부방을 하고 평일 저녁엔 손님맞이 거실로도 사용하고 평일 밤엔 필자의 가족이 모두 자는 침실로도 사용했다. 독거노인 분들을 모시고 식사 대접하는 식당으로도 사용을 했다. 물론 주일에는 주일낮예배를 드리는 예배실로도 사용을 했다. 그러니 교회당 이라기보다는 다용도실이라는 표현이 더욱 맞을 것이다. 거기서 아이들과 장난도 치고 가끔씩 탁구도 쳤으니 말이다. 이제는 더욱 교회당이 없어져 버렸다.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예배를 드리기로 했으니 교회당이 따로 필요 없게 되었다. 그런데다가 전의 다용도실을 무너뜨리고 신축해서 앞으로는 공부방 겸 일죽자원봉사문화센터 사무실 겸 노인분들 사랑방으로 사용할 터이니 말이다.

신약성경을 보면서 "성전은 무너졌다. 예수가 곧 성전이다. 또한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곧 성전이다"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교회당이 절대시되기도 하고 너나없이 교회당 잘 짓기에 바쁜 시대에 조그만 객기를 부려보고자 하는 것이다.

나는 예언자는 아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예언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앞으로 십 수 년이 흐르고 나면 지금의 교회당들을 처리하는 것이 사회적인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말이다. 서양의 거대한 교회당들을 보라.

3. 한 사람만의 제사장이 없다

우리 성도님들은 계속해서 생각하고 이야기해서 (물론 발제는 필자가 했지만) 주일 하루만큼은 제사장을 돌아가면서 하기로 했다. 아마 회중교회에서 그렇게 하는 줄 알고 있다. 다만 회중교회와 다른 점은 처음부터 조직적으로 그런 것이 아니라 필자와 성도님들의 대화와 공감을 통해서 조금씩 바꾸어 온 것이라고 생각되어진다.

순서를 정해 놓고 일주일동안 그 순서자가 예배를 생각해 두었다가 주일낮예배 때에는 예배 인도와 성경봉독과 설교(간단한 자기 소감이나 일주일동안 묵상한 감동 풀어 놓기 등)를 하는 것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그 날 하루는 담당한 사람이 제사장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너무 완벽한 예배를 드리려고 하지 않느냐는 생각에서 온 것이다. 너무 완벽하기 때문에 역으로 온전한 예배가 되지 않고 위선적인 예배가 되지 않느냐는 조금은 독선적인 생각에서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말로만 해왔던 '만인제사장'을 직접 실천하려고 하는 것이다. 종교개혁자들이 다른 것은 찾으려고 애를 썼으면서 '만인제사장'은 찾지 못하고 또 다른 '일인(소수) 제사장'으로 되돌아 간 것을 뼈아프게 생각하면서 시행해보는 것이다.

4. 전도가 없다

주님의교회는 이때까지 전도(?)를 해 본 적이 없다. 전도도 한 번 안 해본 게 목사냐 라고 하면 할 말이 없다. 또한 그렇게 하니 교회성장이 없이 만날 그 모양이 아니냐 라고 해도 할 말이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의 교회들이 하는 전도들은 거의 다가 본질에서 벗어나 있다는 것이다. 단지 교회구성원을 늘리는 수단으로 전락한 게 사실이다. 교회부흥과 성장의 도구로 전락해버린 것이다. 조금 심하게 표현하면 "교인 수 채우는 영업활동"으로 전락해 버린 것이다. 물론 순수한 뜻으로 전도하는 분들을 필자의 주위에서 많이 보았다. 하지만 그것이 교회의 조직적인 면으로 들어가게 되면 여전히 그 선상에 서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전도라는 것이 교리의 나열과 선포, 주입과 설득이라는 것도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전도란 말 그대로 길(道)을 전달하는 것이다. 그 길이 무엇이냐 하는 것이 과연 몇 번의 말로서 가능하다고 보는가. 이쯤 되면 예수가 하신 말씀선포사역을 예로 들면서 성경과 예수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말할 독자가 있으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예수의 전도는 지금처럼 교회구성원을 늘리는 전도가 아니었다. 말씀선포도 또한 지금 우리가 만들어 놓고 전하고 있는 교리의 나열이 아니었다. 그의 전도는 간단했다. 바로 하나님나라에 관한 소개였고 삶으로 하나님나라를 보여주었고 능력으로 치유하여 하나님나라를 실현시켜준 것이었다. 그것을 도에 연결시켜보면 도에 대한 소개였고 삶으로 도를 보여주었고 도를 실현시켜주신 것이라 하겠다. 이것이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신 전도의 참모습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우리가 섬기는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교회 오라고 말한 적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들이 믿는 종교(이슬람교, 힌두교 등)가 있기 때문이다. 소위 말하는 전도(?)를 목표로 외국인근로자를 섬기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섬김 그 자체가 전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보면 주님의교회도 전도는 꾸준히 해 온 것이라 할 수 있다. 단지 입으로만 하지 않고 삶으로 해왔으며 예수의 정신으로 해왔다는 것일 뿐. 입으로 전도 못하는 자의 궁색한 변명으로 봐도 좋다.

5. 신자와 불신자라는 구분이 없다

흔히 교회에서는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을 일컬어 불신자라고 한다. 교회라는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신자이고 속해 있지 않으면 불신자라고 하는 것이 일반적인 교회들의 표현이다. 좀 더 진지하게 말하면 믿지 않는 자를 일컫는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자요 너희는 불신자라는 이분법적인 것이 들어있다. 더욱 심한 구분은 신자는 천국, 불신자는 지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불신자(?)와의 교제를 멀리하거나 죄악시하는 경우가 있다. 결혼도 불신자와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것도 이스라엘의 독선적인 선민사상과 다르지 않다고 필자는 본다. 물론 그런 것을 말하는 경계선상에는 예수그리스도의 대속론(기독론)이 우뚝 서있지만 말이다. 필자의 입장에서 불신자와 신자의 구분을 굳이 한다면 이렇다. 믿음이란 아는 것이 아니다. 영문 표기 'belief'가 아니라 'trust'이다. 곧 신뢰라는 것이 믿는다는 것이다. 물론 성경에는 두 가지 다 사용되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는 믿음은 언제나, 그리고 궁극적으로 '신뢰(trust)'였다.

그렇다고 하면 지금 우리가 하는 불신자와의 구분은 다분히 문제가 있는 것이다. 그 기준은 분명히 교회를 다니는 지의 여부도 아니고 하나님과 예수에 대한 교리를 받아들이는 지의 여부도 아닌 전 생애를 다해 그분을 신뢰하고 따라가는지의 여부인 것이다. 기독교적인 표현이 아닌 좀 더 일반적인 표현으로는 하늘(진리 또는 도)과 함께 하나 되어 하늘의 뜻을 따라 전 생애를 드려서 진리를 따라가는 사람이다. 그 사람이 곧 신자인 것이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불신자인 것이다. 이 구분도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단지 편의상의 구분이지 절대적인 구분이 아니다. 그 구분은 본인과 그 분만이 제대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주님의교회는 굳이 주님의교회 공동체에 가입시키려 하지 않는다. 그가 주님의교회 공동체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불신자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며 기독교회에 들어오지 않는다고 해서 불신자라고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 공동체에 속해 있든 아니든 여전히 우리가 사랑하고 섬기고 나눌 소중한 이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며 그 분 안에서 다 같은 형제라고 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이지 유일한 공동체도 아니며 기독교회도 하나의 공동체이지 유일한 공동체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좀 더 진리 앞에서 솔직하게 지금의 교회를 바라보고 올바른 교회의 모습, 원래의 예수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돌아가 보자는 것이다. 뭔가 본질에서 벗어나서 뒤틀려진 모습이 있다면 올바른 진리의 길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그런 교회의 모습을 보면서 솔직하게 토론하고 연구하고 고쳐 나가보자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리스도인이란 "자기의 십자가를 지고 전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임을 명심하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님을 명심하자.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이며 본질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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