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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부대를 내 의지대로 바꿨다고 해서 포도주까지 내 뜻대로 발효되는 것은 아니다

평생 가져 본 직업이 공직 한 가지 뿐이었으니 조직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며 살아왔다. 관계부처 회의에 참석해 봐도 앉는 자리는 부처의 건재 순위다. 대통령과 가까운 권력 핵심부서가 상석(上席)이다. 참석자의 눈과 귀는 모두 이 상석에 쏠리게 마련이다.

좀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일은 조직보다도 그 조직에 실린 힘에 의해 좌우된다. 10.26 사건 직후 권력핵심이 움직일 때 내가 몸담고 있던 그 공룡과 같은 조직도 맥없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나는 직접 경험해 보았다. "일은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조직이 한다"는 통설을 의심하기 시작한 것도 그 일이 있고 나서부터였다.

100여 년 전통의 한국교회 역사 가운데 자랑할 만한 것을 들라면 나는 '새벽기도'와 '구역모임'을 드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그 '구역모임'이 교회 안에서 수난을 당하고 있다. 웬만한 교회는 이미 '구역모임'을 '목장' '공동체' '셀' '사랑방' 등으로 이름을 바꿨다. 그 기능이 어떻게 변했는지는 차치(且置)하고라도, 구역이란 단어 자체가 이제는 우리 귀에 촌스럽게까지 들린다.

교회 공동체성을 회복하려는 이런 의식있는 움직임은 오히려 때늦은 감마저 든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구역모임을 대척(對蹠)의 개념으로 설정하고 그 의미를 애써 폄하(貶下)하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구역모임을 '일주일에 한 번 더 드리는 예배' 정도로 매도하는 것은 한국교회 역사에 대한 몰이해(沒理解)를 단적으로 드러낸 것이다.

내게는 구역모임에 대한 잊지 못할 아름다운 추억이 있다. 대구에서 피난생활을 하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다. 나는 피난민들이 세운 복현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굶기를 밥먹듯 하던 그 시절 우리 집은 그래도 끼니 걱정을 하지 않고 살았다. 또 교회 가까이에서 살았기 때문에 우리 집은 구역모임의 단골 장소였다.

금요일 저녁, 언제나 식사 시간 이후에 모였지만 고구마, 감자, 옥수수 등을 삶아냈다. 저녁을 거른 사람은 그것이 그날 저녁식사였다. 앞집 일수 엄마는 예수를 믿지 않았으나 애들까지 데리고 와 그것으로 저녁을 때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아마 일수 엄마는 금요일 저녁을 기다렸는지도 모르겠다.

그때 우리는 저녁에 모여 결코 예배만 드리지 않았다. 교회 안에서 공적예배를 통해서 맛보기 어려운 성도의 교제가 이 구역모임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다 아는 대로 구역모임은 감리교의 속회(屬會: Class meeting)에서 유래되었다. 속회의 정신은 재정자립이 어려운 이웃교회를 돕기 위해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다. 그것이 후일 개 교회 내의 조직으로 발전하여 구제와 복음전도의 기능을 해온 것이다. 구역모임에서 헌금을 하는 이유를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바로 이런 목적으로 시작된 모임이기 때문이다.

기존의 구역모임과 셀 교회 운동이 지향하는 목표와 활동이 동일하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작은가정교회운동이나 평신도사역, 제자훈련등은 기존 구역모임만으로는 미흡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고 그런 기능과 활동이 교회 안에 전혀 없었던 것이 아니다.

우리가 회복해야 할 것은 교회 공동체서의 의미와 정신이지, 명칭이나 조직이 아니다. 흔히들 초대교회로 돌아가자는 이야기를 한다. 초대교회가 가진 정신을 오늘에 되살리자는 것이지 초대교회의 제도나 조직을 그대로 복원하자는 말이 아니지 않는가?

조직을 바꿔야만 방관자가 적극적인 참여자로 바뀌는 것이 결코 아니다. 먼저 그 공동체를 자율적인 공동체로 바꾸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 손잡고 기도'하고, '얼싸 안고 위로'하는 극적인 일이 일어나기를 언제까지 꿈꾸고 있어야 하는가? 공동체 밖에서라도 전화 한 통화로 형제를 위로할 수 있다. 이메일 한 통으로라도 얼마든지 형제의 상처를 치료할 수 있다.

조직 속에 실린 사랑의 마음이 형제를 위로하고 변화시키는 것이지 조직이 그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조직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은 성령의 역사하심을 우리 스스로 제한하는 누를 범할 수 있다. 우리가 목매야 할 일은 조직이 아니라 영성개발이다.

조직의 힘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우리나라 어떤 그룹의 총수는 전 임원에게 1년에 적어도 두 번 이상 가족과 함께 음악회에 참석하여 감동에 푹 빠져보라고 지시한다고 한다. 또 어떤 생명보험회사 설립자는 감동을 줄 수 있는 시를 발견하면 이것을 전 사원에게 읽게 하고 더러는 액자에 넣어 사원들에게 선물한다고 한다. 조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는 인간 감성 개발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이들 경영인는 오래 전에 터득한 것이다.

플래카드를 내걸어야 영성이 개발되는 것이 아니다. 플래카드는 사람을 격동시킬 수는 있으나 감동시킬 수는 없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격정(激情)이 아니다. 마음 속에서 이는 잔잔한 성령의 감동이다.

새 부대는 내 의지대로 바꿀 수 있다. 그러나 부대를 바꿨다고 그 속의 포도주까지 내 뜻대로 발효되는 것은 아니다. (심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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