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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07.20 21:34

안식일의 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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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실리는 글은 저의 개인적인 의견이 아니며, 뉴스엔조이에서 발취된 글로써 읽어 본 후에 생각하게하는 글이라 판단이 되어 올리는 것입니다. 읽으시고 나름대로 하나님 앞에서의 안식일의 의미를 정립을 하여야 할 것으로 생각이 듭니다.

십계명과 주일성수의 불협화음 (뉴스엔조이)

어느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었다. 그러자 몇몇 바리새파 사람이 말하였다. "어찌하여 당신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굶주렸을 때에, 다윗이 한 일을 너희는 읽어보지 못하였느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그리고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솨바트)이라는 말의 의미는 '멈추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안식하는 날로서의 안식일은 6일 동안 해오던 일을 멈추는 날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모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다. 내일은 쉬는 날로서, 주의 거룩한 안식일이니, 너희가 구울 것은 굽고, 삶을 것은 삶아라. 그리고 그 나머지는 모두, 너희가 다음날 먹을 수 있도록 아침까지 간수하여라."(출16: 23)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안식일이라는 개념의 등장은 모세에게서 비롯됩니다. 이집트으로부터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 가운데 안식일 조항이 나타납니다. 물론 가나안과 그 주변 지역에서도 일곱째 날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모세의 율법에 나타난 안식일의 의미는 이스라엘의 출애굽 사건과 보다 연관성이 더 많아 보입니다. 노예의 특징은 노동입니다. 자유인은 자신의 생활을 위해 일하고 쉬기도 합니다. 그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노예는 오직 일을 합니다. 자신의 생계가 아니라, 주인의 이익을 위한 노동이 그의 삶의 본질입니다. 지속적인 노동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해 주인은 노예에게 먹을 것을 줍니다. 만일 노동 능력이 상실되면, 그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존재로 전락합니다. 이집트에서 노예 생활을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장 절실하게 다가오는 명령은 아마도 '안식하라' 였을 것입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노동의 연속으로 지친 몸과 영혼이 바라는 바는 잠시라도 노동의 굴레에서 벗어나 여유를 갖는 게으름의 시간일 것입니다. 늘상 게으름 속에 빈둥대는 부자에게는 게으름이 권태에 불과하나, 노동에 시달리는 자에게 게으름은 삶의 희망이요, 위로입니다. 이집트에서의 노예 생활을 청산하고 새 삶을 기대하며 나아가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에 대한 약속은 가슴에 와 닿는 절절한 현실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노예처럼 쉼이 없는 노동에 시달려서는 안 된다는 각오가 있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이런 각오를 뒷받침해 줄 도덕적 권위와 정당성이었습니다. 주인이 노예에게 일할 것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느냐는 사회적 통념에 대해 대항할 수 있는 이론이 있어야 했습니다. 일주일 중에 하루를 놀아버리면 생산에 막대한 차질이 있다는 가진 자의 원성에 대응하여 내세울 만한 안식의 이유가 필요하였습니다. 하나님도 6일 동안 창조하시고 하루를 쉬셨는데 감히 누가 쉬는 것을 마다할 수 있겠는가 라는 선언은 감격과 감사와 당위를 제공해줍니다. 노예는 일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하나님의 쉼이라는 절대적 권위에 의해 여지없이 박살나 버렸습니다. 안식의 권리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명령이기에 세상의 어떤 권력도 이에 대해 거부할 수 없습니다. 심지어 노예 된 자의 주인조차도 거역해서는 안 되는 절대적 명령(법)입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와,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이는,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출20: 9-11)
일을 해서는 안 되는 사람들 중에 네 아들과 딸과 여종과 남종 그리고 집짐승까지 포함되어 있습니다. 물론 그 집에 머무는 나그네에게도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세심한 배려도 잊지 않았습니다. 항상 주인은 쉴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자신이 재물에 대한 욕심을 감당치 못해 쉬지 않고 일을 할 수도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기가 원해서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식이나 종의 위치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부모나 주인의 요구에 의해 노동을 해야 합니다. 더구나 종은 노동이라는 목적 때문에 생겨난 신분입니다. 부모의 재산을 승계 할 자식과는 입장이 또 다릅니다. 주인에게 자신의 권리를 내세울 형편이 아닙니다. 당연히 주인에 의해 혹사당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여 있습니다. 짐승 역시 종과 마찬가지의 상황입니다. 주인이 일을 시키면 해야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짐승에게 일을 시키면 자연스레 그 짐승이 일하는 것을 이끌기 위해 사람이 필요할 것이고, 그 역할은 종의 몫으로 돌아갈 것이 뻔합니다. 그러니 짐승에게조차도 일을 시켜서는 안 된다는 명령이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라' 는 명령이 어느덧 '주일날(안식일 다음날) 반드시 교회에 가라' 는 명령으로 번역되어 통용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면 죽이라고 할 정도로 엄격했던 초창기 이스라엘 공동체의 명령은, 오늘날 그대로 살아나 주일날 교회를 빼먹으면 당연히 천벌 받아 마땅하다는 살벌함으로 그 엄격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안식일의 본래 취지는 말 그대로 안식을 보장해주기 위한 조처였습니다. 아담의 타락으로 땀 흘리지 않으면 먹지 못하게 된 인간에게, 회복될 천국의 삶에 대한 상징으로서 안식이 주어진 것입니다. 인간이 인간을 노동으로 구속하는 사회 제도의 성립은 인간의 모습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었습니다. 주인의 여유 넘치는 사치를 위해 노예의 피 눈물 나는 노동이 요구되는 계급사회가 형성되었다는 현실에, 하나님께서 대응하신 방안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안식일 대신에 통용되고 있는 '주일 성수' 라는 계명에서는 어느덧 안식의 의미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피곤하고 지친 몸을 이끌고서라도 몇 시간씩 차를 타고 본 교회를 향하여 달려가서는 하루 종일 각종 예배와 모임에 빠짐없이 참석하는 성의를 보여야 하는 또 다른 노동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예배만 참석하면 된다는 '예배 성수' 가 곧 '주일 성수' 의 본질이 된 것입니다. 안식의 의미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예배 참석 여부가 중요 사항으로 부각되었습니다. 예배는 언제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틈엔가 꼭 주일에 해야 한다는 절대적 규정이 암암리에 전염병처럼 퍼졌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일이 아닌 날 하는 예배는 주일 예배 (그것도 아침 대 예배) 와 비교할 때 그 가치가 떨어진다는 의식을 갖게 되었습니다. 심지어는 아무리 평일 예배에 참석해도 주일 대예배에 참석하지 않으면 제대로 주일성수를 못하는, 믿음이 부실한 교인으로 낙인찍히는 별 희한한 일도 벌어집니다. 더욱 가관인 것은 이러한 현상을 아주 당연시하는, 대책 없는 성직자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입니다. 가게를 하는 어떤 장로님이 주일이 되자 식구들과 함께 교회에 가면서 가게는 점원에게 맡겨 놓았습니다. 자신은 안식하러(주일성수 하러) 간다며 점원에게 일을 시킨 것입니다. 물론 자신은 주일날 교회 가서 예배하였으므로 주일을 범하지 않았고, 점원은 어차피 예수를 안 믿으니까 교회 갈 일도 없고 가게나 보고 있으면 된다는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네 남종이나 여종이나 문간에 거하는 나그네에게조차 일을 시키지 말라고 했습니다. 예배에 참석하는 것으로 안식의 계명이 지켜지는 것이 아니라, 쉼을 줌으로써 안식의 계명이 지켜지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쉼을 줄뿐만 아니라, 남에게도 쉼을 줄 것을 하나님께서는 요구하셨습니다. 그 계명은 여전히 살아서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일 예배' 라는 미몽에 갇혀 하나님의 명령을 보지 못하는 현대판 바리새인의 무리에 우리가 속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 볼 일입니다.
유성오 (2002-11-16 오후 9:4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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