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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어린이 주일학교 교육에 관한 연구

 

이광호 목사

1. 머리말

    주일학교의 중요성은 두말할 나위없다. 어른들은 때로 어린이를 교육함에 있어서 자신을 기준으로 삼는 경향이 있다. 만일 어른 스스로 처럼 아이들을 교육시키고 그 아이들이 나중 지금의 그 어른들의 바램처럼 된다면 그것은 성공이 아니고 실패임을 알아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른들은 자신의 불확실하고 온전치 못함을 인정하면서도 불안정한 자기의 방법대로 교육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 교육은 잘못된 부모가 자신이 원하는대로 자녀를 교육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하신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어른들은 이런 저런 염려들을 한다. '그래도 아이들은 이러해야 된다'든지, '세상의 교육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면 이러 이러한 방법을 동원해야한다'든지 하는 것이다. 그러나 우선 어른들은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있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다'는 말씀 위에서의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2. 학부모의 위치와 부모교육

   교회교육의 키(key)는 교회의 주일학교 교사가 아니라 그 학부모들의 자리가 훨씬 중요하다. 일반학교와는 달리 교회교육은 강제성이 없다. 원래는 강제성이 있어야 한다. 과거의 유대인들의 회당교육에서나 청교도들에게 있어서는 교회 교육이 자율적 참여대상이 아니었다. 만일 부모가 자녀에게 교회교육의 참여에 협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중대한 징계사항이었던 것이다.

   원칙적으로 모든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은 전 교인 모두가 참여해야한다. 즉, 각 부모가 자기 아이만 책임지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가 공동체의 아이들을 공동으로 교육하는 것이다. 이는 한 국가나 사회에서 자라나는 아이들이 학교교육 뿐 아니라 사회의 여러 어른들이나 어른들이 만든 TV나 어린이 언론매체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고있는 것에서 공동교육의 의미를 알 수 있다.

   한 예를 들어보자. 청교도 정신을 이어 받았다고 하는 미국에서는 자기 아이라 해도 자기 마음대로 하지 못한다. 미국의 부모들은 자기 자식이라 해서 때리거나 아무렇게나 욕을 하지 못한다. 그것은 자녀학대죄에 해단된다. 만일 어느 부모가 내 아이니까 내 마음대로 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다가는 곧바로 철창행이다. 국가는 '우리의 아이를 왜 당신 개인의 아이인양 당신이 때리고 구박하느냐?'는 것이다. 적어도 미국의 아이는 개인에 속한 아이가 아니라 국가 즉 공동의 아이들인 것이다.

    많은 경우에 어른들은 자신들의 무책임을 절감하지 못한다. 그러나 성숙한 부모들은 적어도 자신의 공동 자녀들에 대한 무책임의 가능성에 대한 최소한의 인식이라도 해야만 한다. 교육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자기 자녀의 올바른 교육을 위해서도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부모들의 무분별한 과도한 관심이나 간섭은 어른의 어떤 만족감을 제공하거나 욕구를 풀어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자녀에게는 도리어 비효과 내지는 역효과적임을 알아야 하는 것이다.



3. 부모와 유아세례

   기독교에서 유아세례의 의미는 매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어른들의 세례가 자기 스스로의 고백이 중대한 근거가 될 수 있다면 유아세례는 세례를 받는 유아 당사자가 아니라 그 부모의 책임적 고백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그 부모가 보증하지 않는 유아세례란 존재할 수 없다.

   시대를 막론하고 유아세례의 의미가 희석되거나 무책임해진다면 그 시대의 교회는 타락한 교회이다. 만일 믿는 신자인 부모가 자식에게 유아세례를 받게하고 나서 무책임해 진다면, 자신이 세례를 받은 후 무책임하게 된 경우 보다 훨씬 더 악한 경우이다.

   부모가 자식을 위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자식에 대한 부모의 단순한 자기표현이 아니다. 옷 사주고 밥 먹여주고 교육비 대어주며 잘 돌봐주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한 일은 시대나 지역에 따라 변하는 것이다. 가난하고 낙후된 지역에서는 음식을 충분히 주지 못하고 새옷을 사주지 못하며 재미있는 거리를 마련해 주지 못해도 얼마든지 나름대로 자기의 자녀를 위할 수 있다. 부모 자신의 도움으로 자식을 소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자녀를 위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엄청난 오해이다. 그러므로 일반적인 견지에서 자녀를 위한다는 의미는 가변적이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가 자녀를 위한다는 뜻은 그렇지 않다. 그에 대한 진정한 의미는 유아세례를 받은 그 기준대로 양육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은 불변적이다. 물론 여러 사정상 자식을 유아세례를 받게하지 못한 부모라 할지라도 복음을 알게 된 이상 유아세례교인의 자녀를 둔 부모와 동일한 위치에 놓이게 된다.

   위에서 예를 든 바와 같은 맥락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아이들은 '우리'의 아이들이다. 우리 모두는 '우리'의 아이를 마치 자신의 소유인 양 자기 마음대로 키우려고 하는 어리석은 죄에 빠져서는 안된다.





4. 주일학교 교육의 책무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다른 곳에서 보다 나은 어떤 재미나 흥미를 교회를 통해 제공하려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동서를 막론하고 과거시대에는 가능했다. 그 때는 어린이들이 교회를 통해서 지식을 배우고 교회를 통해서 노래나 율동을 배웠다. 많은 부모들은 자식들이 하릴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는 것 보다는 교회당에 가서 노래도 배우고 재미있는 이야기도 들으며 적절한 상을 받아오는 것을 좋아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는 달라졌다. 이제 교회에서 제공할 재미는 세상을 능가하지 못한다. 동네의 놀이방이나 유치원에서는 많은 재미를 제공한다. 그리고 TV는 주일 아침마다 재미있는 만화영화나 특별한 어린이 프로그램들을 마련하고 있다. 그것이 아니어도 아이들은 컴퓨터 오락이나 스포츠에 매료되어가고 있다. 학교의 선생님들은 훨씬 안정되고 믿음직스러워 보인다.

   그렇지만 교회에서 배우는 노래나 율동은 한계를 가진다. 교회에서는 시끌벅적한 재즈음악이나 이상한 몸놀림의 율동을 가르치지 않는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의 눈에 교회 선생님들은 학교 선생님들에 비해 신뢰감이 덜한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이러한 형편에 놓여있는 교회와 교사들은 주일학교 교육의 책무에 대해 올바른 인식을 해야만 한다. 이것은 어른들을 위해서가 아니며 주일학교 조직이나 활성화를 위해서도 아니다. 오직 자라나는 우리의 아이들을 위해서이다.

  

5. 주일학교 교육의 교육내용

    (1) 하나님의 말씀

       어른들은 때로 아이들에게는 그에 맞는 교육을 해야한다고 강조한다. 눈높이 교육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옳은 말이다. 그러나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의 구미에 맞는 교육과 눈높이 교육을 혼돈하여 생각할 위험성이 있다.

  교육은 원칙적으로 피교육자들의 구미를 우선적으로 생각지 않는다. 오히려 좀 재미가 없다고 하더라도 올바른 교육을 통해 교육의 목적에 다다라야 하는 것이다. 주일학교 교육의 가장 중요한 핵심은 역시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어야 한다.

    (2) 노래와 율동

       주일학교에서 교육을 위해 노래와 율동등을 도입하는 것은 그것 자체로는 나쁘지 않다. 그렇지만 그러한 것들은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말씀을 잘 교육하기 위한 보조적인 것이어야 한다.

   만일 어느 아이가 노래와 율동은 재미있는데 성경말씀은 듣기 싫어 한다면 그것은 곤란한 일이다. 설령 처음에는 그렇다하더라도 점차적인 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주일학교 교육은 기본원리 가운데 잘 이루어져가야 한다.

   아이들은 노래도 하고 율동도 하다가 보면 세월이 흘러 그 신앙이 자라게 된다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교육에는 항상 본질적 목적이 선행되지 않으면 파행적이 될 수밖에 없다.

    (3) 동화나 이야기

       주일학교에서 성경말씀과 무관한 동화나 이야기는 해주지 않아도 된다. 자칫 잘못하면 어른들이 나서서 아이들의 관심을 성경말씀이 아니라 옛날 이야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도록 만들어 버릴 수 있다. 동화나 이야기는 예배시간 이외의 시간에 교사들이 공식적이지 않은 모임이나 자리를 통해 아이들에게 해 줄수 있을 것이다.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는 '주일학교' 안에서 뿐아니라 항상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교사와 아이들의 관계는 발전적이어야 한다.

    (4) 물질을 도구 삼는 일

       주일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물질을 동원해 잡아두려고 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을 더 모으기 위해 주일마다 혹은 어느정도 주기적으로 선물을 준비한다든지 해서는 안된다. 만일 그런 방법을 계속하다 보면 아이들을 나약하게 만들게 될 따름이다.

   만일 '초콜렛'으로 아이들의 관심을 유도하고자 한다면 올바른 교육방법이 아니다. 학습이론에서 그것은 금물이다. 아이들은 '초콜렛'과 결부될 때 교회가 즐거울 것이며, 어른이 되어서는 또다른 어른식의 어떤 '초콜렛'을 주어야만 교회가 재미있게 될 것이다.

   일반학교에서는 아이들에게 절대로 초콜렛을 주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생각해 봐야 한다.  

6. 교육의 방법

    (1) 참여의 범위

       유년주일학교의 경우 부모와 함께 어린이 예배에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도 교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그 학부모들도 자기의 자녀들이 무슨 말씀을 어떻게 듣고 배우는지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자녀와의 대화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 때 부모들은 설교를 메모할 수 있는 노트를 준비한다. 그리하여 설교자가 설교하는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해만 한다. 그 정리된 노트는 아이들에게 교재로 사용될 것이며, 아이들은 부모(교사)의 그러한 자세를 통해 더 명확하게 그리고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2) 예배시간

       예배의 인도는 담당교역자가 인도한다. 교사는 아이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설교 한다. 설교를 하기에 앞서 약 10분 정도의 시간을 내어 아이들에게 맞는 복음송이나 율동을 가르쳐 줄 수 있을 것이다.

   설교시간에는 가급적이면 성경에서 말하지 않는 윤리적인 내용을 말하지 말아야 한다. 즉, 성경본문에 나타나지 않는 내용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지 말아야 한다. 그러한 내용들은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많이 이야기 할 것이며 가정에서 부모들이 자주 이야기할 것이기 때문이다. 설교시간에는 성경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성경에 나타나는 인물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어떻게 순종했는지에 대해 설명할 수 있다.

   약 10분 정도의 설교가 끝나면 반을 나누게 되는데, 가장 좋기로는 그 부모가 교사가 된다면 그것이 가장 좋다. 그날 설교되어진 본문말씀에 대한 내용을 다시한번 자기 아이(들)과 나누는 것이다. 아이의 질문에 답할 수도 있을 것이며, 어머니가 보충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종종 교사(부모)를 자체로 교환할 수 있을 것이며, 두세 반(가정)씩 합반하여 탄력성 있게 운영할 수도 있을 것이다. 분반공부는 약 15-20분의 시간 동안 충분한 대화를 할 수 있으면 좋다. 이때 교사인 부모들은 그 공부 시간이 잡담시간이 되지 않도록 각별히 유념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에게도 동일한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혹 부모님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 주일학교 어린이들이 있다면 한 가족에 편입시키거나 특별히 교사를 임명함으로써 교사의 역할을 맡길 수 있다.      

   분반공부를 할 수 있는 장소는 자유롭다. 교회당 한쪽 구석이어도 좋고 마당 바깥 조용한 곳이어도 좋다. 혹은 가까운 숲속이어도 좋을 것이며, 자동차 안도 괜잖다. 서로간 방해가 되지 않을 만큼의 거리이면 좋을 것이다.  

   분반공부가 끝날 때 즈음이면 종을 친다. 그러면 교사(부모)들은 빨리 정리를 하고 함께 교회당에 모인다. 모두가 다시 모여 교역자의 마지막 정리와 함께 약 5-10분간 복음성과 더불어 마무리를 하고 마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어른들의 부지런한 동작이 필요하며 상당한 훈련이 요구된다. 그래야만 짧은 시간에 효율적인 교육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7. 부모와 교사의 반성과 희생에 대한 준비  

    주일학교 교사들은 우선 아이들에게 절대적인 신뢰감을 주어야 한다. 학부모도 마찬가지이다. 엄마.아빠는 아이가 학교에 결석을 하면 난리가 난다. 그러나 교회는 그렇지 않다. 부모가 한번씩 빠지니까 아이들은 저절로 빠지게 되고 아이들의 생각에 학교는 중요하고 교회는 덜 중요한 것이다.  

   교사도 마찬가지다. 학교 선생님은 거의 결석을 하는 예가 없다. 담임 선생님 뿐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도 마찬가지다. 지각이나 조퇴도 거의 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고 시간에 맞춰 퇴근을 한다. 집이 멀거나 가깝고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그런데 교회에 오면 그렇지 않다. 선생님이 지각을 하거나 결석을 하는 것은 그저 보통(?)이다. 다른 어른들도 결석을 하거나 지각을 하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것 같다. 아이들은 그 가운데서 어른들의 모습을 하나씩 둘씩 배워간다. 어른들은 자기들의 잘못에 대해서는 아무런 인식도 없이 자기들은 무엇을 잘못하는지 알지도 못한 채 아이들에게는 신앙과 교육을 강요하는 것이다.

   이제 어른들은 반성을 해야한다. 교회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거의 절대로 참석해야 하며, 차라리 학교는 한번쯤 결석을 해도 되는 곳으로 가르쳐야 한다.

   이것은 과거의 유대인 교육에서나 청교도들의 교육에서 절대로 중시되던 부분이다.

    부모는 항상 교사의 기능을 한다. 교회에서나 가정에서나 마찬가지다. 우리나라 부모들은 부모의 교사로서의 기능을 거의 포기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달라야 한다. 말로나 행동으로나 삶으로써 자녀들을 교육하지 않으면 안된다.

   자칫 잘못하면 부모 자신은 자기의 자녀에 스스로 참된 교사이기를 꺼려하거나 싫어하면서 입으로만 허공을 향한 '교육'만 외쳐대는 부조리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부모는 실질적이고 실제적인 참교사가 되어야만 한다.

   사실 이것은 어렵고 힘든 것이기는 하지만 자녀를 위해서 부모가 감당해야할 희생이기도 하다.  

  

8. 결론

    자녀가 어떤 인물이 되는가에 대해서는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소위 훌륭한 사람이 될지 혹 아닐지에 대해서는 아무도 알 수없다. 우리의 주된 관심은 자녀의 '성공' 보다는 '올바름'이어야 한다.

   성도의 자녀교육의 중대한 목표 가운데 하나는 부모인 자신의 선한 책무 때문이다. 즉, 자식을 잘 키우는 것도 중요한 기대적 목표이기는 하지만 더욱 본질적으로는 그것이 부모인 자신의 마땅히 해야할 사명이기 때문이다.

   자녀에 대한 부모의 지나친 기대는 욕심에 근거한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단순하고도 세속적인 비교논리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는 자녀를 교육함에 있어서, 나중에 유명한 인사가 되기를 바란다든지 돈을 많이 벌어서 편안하게 살게하기 위해서가 아님을 늘 명심해야 한다. 아무리 높은 지위를 차지할 수 있고, 아무리 유명한 박사가 되고, 아무리 많은 돈을 벌 수 있다해도 진리에 의한 정도(正道)에서 벗어난 방법이라면 포기하고 평범하게 사는 지혜를 그 부모들이 일깨워주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일 부모들이 미리 그러한 것들에 오염되어 있는 상태라면 말씀앞에서 더욱 겸손한 자세를 가지고 자녀교육에 힘써야할 것이다.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전체교회도 힘을 쓰고, 우리 각자는 자신의 자녀를 위해서 스스로 희생하며 애쓰는 아름다운 부모들이기를 바란다.      

   특히 유아세례교인인 자녀를 둔 부모들은 더욱 각성해야 한다. 자녀를 진정으로 위한다는 의미가 무엇인지 깨달아야 한다. 이미 나 자신에게 속한 자녀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자녀임을 하나님과 하나님의 몸된 교회 앞에서 고백한 바라면 '내'가 원하는 대로 키우려 해서는 안된다. '내'가 바라는 아이로 자란다면 위험하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자녀로 키우려고 해야하며 그것이 안전하다. 그것이 자녀를 위한 유일한 길이다.

    자녀의 올바른 성장을 방해하는 것은 주변의 다양한 여건들이 아니라, 참 자녀교육에 대한 인식을 제대로 못하며 자녀를 위한 진정한 희생을 아끼는 부모인 '나' 임을 깊이 자각해야만 한다. 자녀가 비뚤게 자란다면 그것은 곧 그 부모인 '나' 때문이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을 위해 정신을 바짝 차릴 때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엡 6: 4)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자를 찾나니" (벧전 5: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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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경록 2004.04.29 23:54
    목사님 홈피가 고장 났나봐요? 않들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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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재호 2004.04.30 01:54
    들어가는데---다시 시도해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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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재호 2004.04.30 12:56
    제 홈페이지 일반자료실을 볼려면 파일로 읽어야합니다. 전용읽기가 나타나면 클릭하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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