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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성경본문 습 3:1-13
성경본문내용 (1)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진저(2)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3)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4)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5)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 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6)내가 열국을 끊어 버렸으므로 그 망대가 황무하였고 내가 그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 모든 성읍이 황폐되며 사람이 없으며 거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7)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8)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9)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10)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지라(11)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너의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너로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니라(12)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지라(13)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
강설날짜 2016-09-11

2016년 스바냐 공부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


말씀:스바냐 3:1-13


우리는 지난주까지 스바냐서 1장과 2장 말씀을 공부했습니다. 스바냐 1:1-2:3절까지 말씀은 예루살렘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내용이었습니다. 그리고 2:4-15절까지는 열방에 대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에 관한 예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서쪽의 블레셋, 동쪽의 모압과 암몬, 남쪽의 구스, 북쪽의 앗수르 등 유다를 둘러싸고 있는 동서남북에 있는 모든 열방을 심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이들이 유다를 괴롭히고,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하며 교만을 떨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심판하여 황무케 해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스바냐 선지자는 예루살렘이나 열방이 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은 여호와 하나님만이 참 신이심을 나타내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말씀은 예루살렘 성읍이 받을 형벌과 보호하심에 관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을 나타내야 할 성읍이 패역하고 더럽고 포악한 성읍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예루살렘 성읍을 심판하십니다. 그러나 그 심판 가운데서 남은 자가 있게 하십니다. 우리가 오늘 말씀을 살펴보는 가운데 이 말씀을 통해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가 무엇인지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2절을 보면 “패역하고 더러운 곳, 포학한 그 성읍이 화 있을찐저! 그가 명령을 듣지 아니하며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의뢰하지 아니하며 자기 하나님에게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예루살렘 성읍을 향한 스바냐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예루살렘 성읍이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은 어떤 곳입니까? 성전이 있고 율법이 선포되고 날마다 희생제사가 드려지는 곳입니다. 그런데 그런 예루살렘 성읍이 어떻게 되었다고 합니까? 패역하고 더러운 곳이 되었다고 합니다. 포학한 성읍이 되었다고 합니다. 예루살렘의 모습이 이렇다면 다른 곳을 말할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패역하고 더럽고 포학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교훈을 받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의뢰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지 아니하였습니다. 이런 예루살렘 성읍을 향하여 스바냐 선지자는 놀라운 심판을 선언합니다. “화 있을찐저”(1).


그런데 우리가 이런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말씀을 보면서 무엇을 생각합니까? 우리는 패역하지 말자, 포학하지 말고 명령을 듣고 교훈을 받으며, 여호와를 의뢰하고 하나님께 나아가자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렇게 돌아갈 자가 없다는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을 보면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직 여호와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도리어 어떻게 한다고 합니까?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다고 합니다. 곧 그들은 부지런히 하나님을 거역하는 일을 한 것입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실존이요, 우리의 실존인 것입니다.


그러면 이 사실이 우리에게 말씀해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우리는 스스로 패역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포학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며, 그 교훈대로 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범죄하고 타락한 우리 인생의 실존입니다. 시편 58편에 보면 이런 인간의 상태를 잘 묘사한 말이 있는데 그것이 ‘귀머거리 독사’라고 합니다. 시편 58:1-11절을 보면 “인자들아! 너희가 당연히 공의를 말하겠거늘 어찌 잠잠하느뇨. 너희가 정직히 판단하느뇨. 오히려 너희가 중심에 악을 행하며 땅에서 너희 손의 강포를 달아주는도다. 악인은 모태에서부터 멀어졌음이여 나면서부터 곁길로 나아가 거짓을 말하는도다.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 곧 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할지라도 그 소리를 듣지 아니하는 독사로다. 하나님이여! 저희 입에서 이를 꺾으소서. 여호와여! 젊은 사자의 어금니를 꺾어 내시며, 저희로 급히 흐르는 물 같이 사라지게 하시며, 겨누는 살이 꺾임 같게 하시며, 소멸하여 가는 달팽이 같게 하시며, 만기되지 못하여 출생한 자가 일광을 보지 못함 같게 하소서. 가시나무 불이 가마를 더웁게 하기 전에 저가 생 것과 불붙는 것을 회리바람으로 제하여 버리시리로다. 의인은 악인의 보복 당함을 보고 기뻐함이여 그 발을 악인의 피에 씻으리로다. 때에 사람의 말이 진실로 의인에게 갚음이 있고 진실로 땅에서 판단하시는 하나님이 계시다 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4절에 보면 “저희의 독은 뱀의 독 같으며, 저희는 귀를 막은 귀머거리 독사 같으니”라고 했습니다. 어떤 뱀을 부리는 마술사가 아무리 공교한 방술을 행하여도 그 독사가 말을 듣지 아니하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합니까? 그 독사가 귀가 먹은 귀머거리 독사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귀머거리 독사는 마술사의 말을 듣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마술사를 향하여 독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은 귀머거리 독사와 같은 모습이 바로 우리 인생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이 예루살렘 성읍 백성들의 모습이요, 오늘날 우리들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 인생들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3-4절을 보면 “그 가운데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 그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 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요, 그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간사한 자요, 그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범하였도다”고 합니다. 백성의 지도자와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와 같고, 재판장들은 이튿날까지 남겨두는 것이 없는 저녁 이리와 같다고 합니다. 선지자들은 위인이 경솔하고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며 율법을 범한다고 합니다. 백성의 지도자들이 이정도면 일반 백성들이야 어떠하겠습니까? 이미 끝난 것입니다. 도저히 손쓸 수가 없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부지런히 선지자를 보내시고 열심히 심판을 집행하셔서 경고를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택한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5-7절을 보면 “그 중에 거하신 여호와는 의로우사 불의를 행치 아니하시고 아침마다 간단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시거늘 불의한 자는 수치를 알지 못하는도다. 내가 열국을 끊어 버렸으므로 그 망대가 황무하였고, 내가 그 거리를 비게 하여 지나는 자가 없게 하였으므로 그 모든 성읍이 황폐되며 사람이 없으며 거할 자가 없게 되었느니라. 내가 이르기를 너는 오직 나를 경외하고 교훈을 받으라. 그리하면 내가 형벌을 내리기로 정하기는 하였거니와 너의 거처가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였으나 그들이 부지런히 그 모든 행위를 더럽게 하였느니라”고 했습니다. 그런 패역한 중에도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일하십니다.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간단없이 자기의 공의를 나타내십니다. 그러나 여호와 하나님께서 쉼 없이 공의를 나타내셔도 불의한 자들은 자기의 수치를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수치를 알게 하시기 위해서 예루살렘 안에서 심판을 행하십니다. 그런데 그들은 그래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주변나라들을 심판하십니다.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하는 그들의 교만을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예루살렘 백성들은 이런 열방이 심판 받는 모습을 보면서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돌이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루살렘 백성들은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어떻게 하셔야 합니까? 8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일어나 벌할 날까지 너희는 나를 기다리라. 내가 뜻을 정하고 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며 열국을 모으리라.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리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 일어나서 벌할 날 까지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제 심판만 남았다는 것입니다. 주께로 돌아오라고 선지자들을 보내었건만 그들은 듣지 않고 도리어 부지런히 거역하였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수치를 모르는 것입니다. 아무리 다른 사람이 재앙으로 심판을 받는 것을 보아도 감각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남은 것은 하나님께서 뜻을 정하셔서 심판하시는데 하나님의 분한과 모든 진노를 쏟으려고 나라들을 소집하고 열국을 모으시는 것입니다. “온 땅이 나의 질투의 불에 소멸하리라!” 이것이 예루살렘의 운명이며, 온 열방의 운명입니다. 또한 우리의 운명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질투의 불에 소멸될 것이 우리의 운명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우리는 오직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다고 하며 살아왔습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왔습니다. 자기 중심적으로 살아왔습니다. 자기 밖에 모르고 자기만 사랑하며 살아왔습니다. 이런 우리의 삶이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진노와 질투의 불에 소멸되어야 마땅한 것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진정으로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깨닫고 인정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앞에 원망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징계로 자신의 삶이 고달프고 힘 든다고 해서 원망할 처지가 못 됩니다. 어떤 역경이 다가오고, 일이 안 풀린다고 해도 불신에 빠질 수 없습니다. 지금보다 더 힘들고 어려운 지경에 빠지더라도, 욥과 같이 하루아침에 재산이 다 날아가고, 자식 열 명이 다 죽고, 마누라는 하나님을 욕하고 도망갈지라도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참조. 욥 1:21). 이런 고백을 해야 하는 것이 인간의 본래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누가 이렇게 합니까? 아무 인생도 이렇게 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인생은 여호와 하나님의 진멸의 대상일 뿐인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그 진노와 심판의 날에 구원받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9절 말씀을 보면 “그 때에 내가 열방의 입술을 깨끗케 하여 그들로 다 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리니”라고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의 때에 이방의 입술까지 깨끗하게 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놀라운 은혜의 역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 8절과 9절 말씀을 보면 이 두 절 사이에 전혀 어떤 연결고리가 없습니다. 다시 말하면 그렇게 진노를 받아 마땅한 인생들이 회개하였다거나 돌이켰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이 일방적으로 선포되고 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것은 여호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가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일방적인 은혜의 역사로 말미암아 우리 모든 인생이 심판을 받는 가운데서도 입술을 깨끗케 하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하나님의 백성이 있게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게 된 것이 바로 일방적인 여호와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이 놀라운 은혜를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오늘 본문 10-11절을 보면 “내게 구하는 백성들 곧 내가 흩은 자의 딸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부터 예물을 가지고 와서 내게 드릴찌라. 그 날에 네가 내게 범죄한 모든 행위를 인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은 그 때에 내가 너의 중에서 교만하여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너로 나의 성산에서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할 것임이니라”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호와의 구원입니다.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소멸되어야 하는 현장 속에서 어떻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섬기는 자들이 나오는 것입니까?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예루살렘의 흩어진 자들이 구스 하수 건너편에서 예물을 가지고 주께 돌아와 드릴 것이며, 그 날에 하나님께 범죄 한 자들이 수치를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교만한 자와 자랑하는 자를 제하여 다시는 교만하지 않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 가운데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일심으로 여호와를 섬기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의 역사라는 것입니다.


12절을 보면 “내가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을 너의 중에 남겨 두리니.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을찌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구원받은 자의 특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 받은 자들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곤고하고 가난한 백성들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하여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13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악을 행치 아니하며 거짓을 말하지 아니하며 입에 궤휼한 혀가 없으며 먹으며 누우나 놀라게 할 자가 없으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심판 속에서 구원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이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나오게 될 자들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이 언제 성취가 되었습니까? 일차적으로는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옴으로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오는 것은 그림자에 불과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성취됩니다. 예수님이 실체입니다. 실체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이방인 중에서 주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의 이름을 부르며 돌아온 자는 더 이상 인간의 가능성을 믿지 않습니다. 오직 주의 이름을 부르며 오는 것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나의 이름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나는 주가 아님을 인정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인 것입니다.


오늘날 세상을 보면 누구의 이름을 부릅니까? 오직 자기의 이름을 부릅니다. 자기 명예와 자존심에 목숨을 겁니다. 오직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자기 이름을 위하여 삽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주께로 돌아온 자는 누구의 이름을 부릅니까? 오직 주의 이름을 부릅니다. 이것이 심판 속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우리 자신들은 어떠합니까? 오직 주의 이름만 부릅니까? 아니면 자기 이름을 부릅니까? 우리가 자기 이름을 부른다면 하나님의 구원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할 것입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 것은 주님의 주되심을 증거 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나타내신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남은 자가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리하여 평생에 오직 주의 이름만을 부르며, 주의 이름만을 찬양하며, 주의 이름만을 증거하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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