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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잠 22:13; 26:13
성경본문내용 (13)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 22:13)
(13)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잠 26:13)
강설날짜 2013-01-27

2013년 1월 27일 한결교회 오후강설

잠언 제44강


게으른 자의 핑계(1)


말씀 : 잠 22:13; 잠 26:13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 22:13)

“게으른 자는 길에 사자가 있다 거리에 사자가 있다 하느니라”(잠 26:13)


게으른 자는 ‘밖에’, ‘길에’, ‘거리’에 사자가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거리’는 ‘광장중앙’을 말합니다. 광장중앙에는 사람들이 많고, 군사도 있고, 성벽 안에 있기 때문에 사자가 나타날 확률은 제로에 가깝습니다. 그런데도 거기 사자가 있을 것이기 때문에 “나가서 찢겨 죽느니 차라리 집에 있는 것이 낫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핑계는 터무니없이 과장된 변명이요 어처구니없는 언사입니다. 물론 길거리에는 혹시 사자가 있을 수가 있습니다. 삼손도 길에서 사자를 만나 때려죽인 적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가 간혹 있습니다. 그러나 게으른 자는 그런 만에 하나있는 일을 가지고서 핑계 삼아 자기 게으름을 합리화합니다.

 

당시 문맥은 농경사회입니다. 오늘날처럼 집에서 프리랜서로서 일하는 경우란 있을 수 없습니다. 농사를 지으려면 밖에 나가서 일해야 합니다. 장사를 한다고 해도 밖에 나가서 활동을 해야 먹고 삽니다. 그런데 나가지 않는다는 것은 요즘 식으로 말하면 방안에만 누워서 TV나 보고, 빈둥빈둥 인터넷하고 게임하면서 놀기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게으른 삶을 살면서, 게으른 자가 자신의 의무를 회피하는 방식이 무엇입니까? 핑계입니다. 터무니없는 핑계를 대든지, 아니면, 만에 하나 있는 부작용을 들어서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회피합니다. 이것이 게으름의 본질입니다. 하기 싫어서 안하는 것인데, 그것을 핑계를 대면서 스스로 합리화 하고 일을 안 하는 것입니다. 우선 일반 은총 영역에서의 핑계와 변명에 대해서 살펴보고, 영적인 부분을 짚어보겠습니다.


1. 일반은총영역에서의 게으른 자의 핑계


이 세상에 쉬운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고 애쓰는 데도 쪽박을 차고 빚더미에 올라 가난을 면치 못하는 사례가 빈번합니다. 오늘날 음식점을 하나 차려도 10개 차리면 2-3개 빼고는 다 망한다고 합니다. 자영업자들도 마찬가지이고, 큰 사업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다들 이런 모험적인 사업보다도 소위 “철밥통”이라 불리는 공무원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이마저도 쉽지 않습니다. 경쟁률이 너무 세서 공무원 되는 것도 여간 힘든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게으른 자는 바로 그렇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너무 많은 위험들이 도사리고 있고, 무엇이든지 불확실하며, 무언가를 도전한다 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는 것 때문에 안하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냥 빈둥빈둥 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결국 먹고 살 길이 없으니깐, 생각하는 것이 불의한 방법으로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입니다. 복권이나 사고, 주식투자로 대박이나 노리고, 또는 부동산 투자해서 돈 벌 생각하거나, 아니면 더 나아가서 사기치고, 강탈하고, 속여서 팔고 해서 돈 벌어 먹고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매우 악하고 게으른 삶입니다.

 

두 번째로 이것보다 낫지만, 동일한 맥락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면, 뭔가 해서 겨우 먹고 살기는 사는데, 어떻게 새로운 도전이나 발전이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매일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막노동판에서 날품 팔아서 하루하루 먹고 사는데, 더 나은 생활을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지 못하고 계속 그런 상태로 끝까지 사는 것입니다. 물론 그렇게 사는 것이 불의를 행해서 돈 버는 사람보다 낫고, 가만히 게으르게 살아서 결국 마지막에 오갈 데가 없이 이사람 저 사람에게 가서 빌어먹고 사는 비굴한 사람보다는 훨씬 낫지만, 도전하지 않는 삶은 결국 같은 게으름의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삽니까?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전하다가는 결국 망하고 말 것이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뭣도 모르고 사업하거나 장사했다가는 “부도라는 사자가 와서 나를 찢을 것이다. 뭔가 새로운 걸 시도하면 무조건 망한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뭔가 새로운 것을 시도할 엄두조차 못내는 것입니다.

 

물론 새로운 도전을 한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도전했다가 피를 보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인데 무슨 도전을 하라는 말인가?”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우리는 도전해야 합니다. 무턱대고 하라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가치관을 가지고 부지런함과 성실함으로 도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지런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본죽 사장 이야기는 우리에게 매우 귀감이 됩니다. 본죽 사장이 크리스챤이었는데,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전까지만 해도 연매출이 500억원짜리 무역회사를 운영하던 갑부였습니다. 그러나 외환위기를 견디지 못해 결국 부도를 내고 말았는데, 그때 그는 사업을 하며 모았던 전 재산을 부도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쏟아 부었다고 합니다. 당시는 어려운 경제상황 속에서 고의로 부도를 내는 경우가 많았는데 본죽 사장은 “고의부도를 내고 재산을 빼돌려 나는 살 수 있겠지만 나를 믿고 거래한 사람들을 망하게 할 수는 없었다.”고 하면서 정직하게 재산 처분 다하여서 모든 빚에 대해서 자기가 책임을 짊어진 것입니다. 비록 세상적으로는 실패했을지라도, 이것이 참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승리한 삶입니다. 그리고 그는 아는 사람과 PC방을 차렸습니다. PC방이 한참 생길 때라 매출이 거의 대박수준이었으나 2달 만에 그만두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처음 나온 PC방에 대한 인기가 무척이나 좋았지만 청소년들이 집에 들어가지 않고 게임으로 밤을 지세는 모습이 안타까워 사업을 과감히 포기했다”고 했습니다. 돈이 절실했지만, 자신의 자식이 하면 싫어할 일을 남의 귀한 자식이 하도록 해 돈을 벌 수 없다는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입니다. 돈만 많이 벌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으로서 이 나라와 사회에 유익을 주고 섬기는 일을 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따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본죽 사장은 심각한 빚에 허덕이면서도 온갖 허드렛일을 하며 생계를 유지하였고, 그러면서도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였습니다. 그것이 바로 음식업이었습니다. 그는 조리학원 수강료조차 낼 수 없었기 때문에, 조리학원의 청소 등 허드렛일(재료준비, 강의실 청소)을 하면서 그 대가로 요리를 공짜로 배웠습니다. 그러면서 호떡 장사를 시작했고, 거기서 번 돈으로 ‘죽’ 집을 차렸습니다. 본죽 사장은 싸고 푸짐하면서도 맛있는 죽을 깨끗하게 만든다는 생각으로 일했고, 소문이 나면서 손님들이 줄을 서서 사먹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프렌차이즈로 확장되어 전국 각지에 1280개의 가맹점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병문안 갈 때 항상 이 본죽에서 죽 사가지고 가지 않습니까? 그 정도로 아주 맛있는 죽으로 성공신화를 썼던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가 한 말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새로 시작하는 음식점 중 80% 이상이 2년 안에 문을 닫는다고 하지만 ‘음식은 정성’이라는 말처럼 내 부모·형제·자식이 먹을 음식이라고 생각해 맛있고 푸짐하고 깨끗하게 만들면 성공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바로 이런 정신으로 부지런하게 도전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도전 안 하는 게 문제지 분명한 신념을 가지고 열심히 도전하면 이렇게 길이 열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세상에 두신 창조질서입니다.

 

그런데 어떤 음식점 가면 정말 맛없고, 더럽고, 불친절한 음식점이 있습니다. 그런데 가면 “왜 이렇게 장사하나?” 그런 생각이 들고, 다시는 갈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그런 음식점은 망해도 쌉니다. 오히려 맛없고 비싸고 불친절하고 위생상 더러운 집은 단합해서 가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서 문 닫게 해야 합니다. 반대로 본죽 사장처럼 잘하려고 노력하는 집에는 자주 가서 밀어주어야 합니다.

 

음식점 통계를 보면 음식이 너무 맛있으면 그 집 음식이 맛있다는 소문이 6명까지 퍼져나가는 동안에, 음식이 맛이 없으면 맛이 없다는 소문이 24명한테 퍼져나간다고 합니다. 그래서 잘해서 성공하는 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망하는 데는 삽시간에 망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자영업의 경기가 안 좋은데, 물론 거기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바로 본인들이 게으르기 때문에 망하는 것입니다. 즉 손님들이 오면, 그 손님들을 돈 벌 건수로만 생각하고, 대충 어떻게 해서 이익이나 남기려고 하는 게으르고 불성실한 태도로 일하기 때문에, 소문이 퍼져서 결국 손님들의 발길이 끊기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요령이나 피우고, 작게 노력을 기울여서 많은 수확을 거두려고 하기 때문에 장사가 망하는 것입니다. 그래놓고 망하면 “나라가 어떠니... 정책이 어떠니...” 그렇게 원망하는 것이죠. 사람들이 자기 게으른 것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뭐든지 대충하고, 건수나 만들려고 하고, 불의하게 돈이나 벌려고 하면 망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사업하고 장사할 때 이런 정신으로 하면 안 됩니다. 정말 그리스도인의 가치관으로 세상을 섬긴다는 자세로, 고객에 대하여 주께 하듯이 최선을 다해서, 그리고 유능한 실력을 갖추어서 서비스 정신으로 봉사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 세상에서 성공할 가능성도 많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더 나은 삶을 위해 도전하는 삶을 살되, 이러한 정신으로 도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무언가 도전을 할 때, 앞에 아무리 큰 장애물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해야 합니다. 경쟁업체가 있어도 최선을 다해 도전해야 합니다. 예전에 쿠쿠 사장 이야기를 해드린 적이 있었는데, 이 쿠쿠 사장이 거의 망해가던 성광전기라는 회사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아서 경영을 하는데, 쿠쿠라는 이름의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고 전기압력밥솥을 개발해서 시장에 진출하려고 했습니다. 이때 아버지도 반대하고 회사 사람들이 다 반대했습니다. 그것은 매우 이성적인 판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기존의 유명 브랜드가 시장을 다 장악하고 있는데, 새로운 브랜드로 시장에 진출하려고 하는 것은 아주 큰 모험이었기 때문입니다. 누가 생각해도 그것은 미친 짓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도전도 안 해보고 그러한 현실의 장애물만 보고 그만두는 것은 밖에 사자가 있으니 나가면 찢겨 죽을 것이라고 하는 게으른 자와 어떤 점에서는 동일한 것입니다. 이 쿠쿠 사장은 그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원칙과 철학을 가지고 소신 있게 밀어붙이면서 최선을 다해서 노력했습니다. 물론 쿠쿠 압력밥솥이 나온 후 1년 동안은 사람들이 우려했던 시나리오대로 진행되었습니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이름도 듣지 못한 새로운 회사의 제품을 사람들이 사지를 않는 것입니다. 다 기존의 회사들의 상품을 구매했습니다. 그래서 거의 망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아이디어와 기술을 앞세워 계속해서 도전했고, 5억을 들여서 만든 CF가 대박나면서, 그리고 사람들의 입소문이 나면서 점점 매출이 급증하게 되었습니다. 급기야 2년이 채 안 되어서 시장의 70%를 이 쿠쿠밥솥이 점령을 하게 되었고 지금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고 있는 중입니다. 우리 교회에도 쿠쿠밥솥이 있고, 우리 집에도 쿠쿠밥솥있습니다. 여러분도 쿠쿠밥솥 하나씩은 들고 있을 것입니다. 이 쿠쿠사장이 망해가던 회사를 인수받아 모험하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최선의 노력을 다했을 때, 결국은 세계의 일류기업으로 만드는 성공신화를 썼던 것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기 위해 도전하기도 전에, 어떤 부작용이나 실패사례를 보면서 나도 그렇게 밖에 나가면 사자에게 찢길 것이라고 하면서 도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게으른 자의 모습입니다. 일단 원칙과 소신을 가지고 밖에 나가면, 어떻게 해서든 길이 있게 마련입니다. 대우의 김우중 사장이 했던 유명한 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것입니다. “외국에 나가서 뭐하고 먹고 사나... 무슨 사업이 되겠나...” 그러지 말고,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으니 나가서 도전하라는 것입니다. 나가면 되는데, 사자가 있을 줄 알고 겁을 먹고 안 나가니 문제라는 것입니다.

 

물론 열심히 도전하다보면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또한 좋은 경험이 되어 더 좋은 기회를 가져올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가보기도 전에 실패를 두려워하여 도전조차 하지 않는 삶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세상을 섬기겠다는 일념으로 뜻을 세우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 사나이 대장부답게 도전하고 세상과 맞부딪쳐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지런한 자의 모습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주님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리스도인의 정신으로 그리고 섬기는 자세로 이 세상을 향해 도전할 때, 주님이 좋은 결과를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그 얻은 열매들로 넉넉히 세상을 섬기고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십니다. 우리의 사업장이 그러한 은혜의 사업장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2. 영적인 측면에서


그리고 보다 실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영적인 측면에서도 이러한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게으른 자는 말하기를 사자가 밖에 있은즉 내가 나가면 거리에서 찢기겠다 하느니라”(잠 22:13)


마찬가지로 영적으로 게으른 자도 밖에 나가면 사자가 있다고 핑계를 대면서 믿음의 길을 향해 도전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의 의무를 게을리 하고, 영적인 잠에 빠져서, 영적으로 게으른 삶을 살면서, 어떤 종류의 핑계를 댑니까?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이에 대해서 두 주간 살펴볼 것입니다.


① 너무 바빠서 말씀 읽고 기도할 시간이 없다


직장생활이 너무 바쁘고, 자녀 키우는데 너무 정신없이 바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도 할 시간이 없고, 말씀 읽을 시간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예배도 가끔씩 빠집니다. 결국 현실적으로 경건시간을 가지려면 잠을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잠을 줄였다간 피곤이 사자와 같이 나를 찢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리했다간 건강을 잃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건강 핑계, 바쁘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우리의 의무를 게을리 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핑계일 뿐 우리가 이미 배웠듯이 하나님 없이 살기로 자신이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밥 먹는 의무를 게을리 하는 법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안 먹으면 죽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영적 양식을 먹는 의무를 행하는 것도 우리의 영혼의 생명이 달려 있는 문제입니다. 그런데 육신을 위해서는 밥 먹는 것을 거르지 않으면서, 영적인 의무에는 태만하다면, 그것은 바로 자신이 영적인 것보다 육신적인 것에 가치를 두고 사는 삶이라는 것을 스스로 반증해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리 바빠도 본질을 잊어버려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의 것들은 잠시 잠간 있다가 결국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영혼은 영원한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이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것인지 분명하게 인식하면서 먼저 나의 영혼과 영원한 운명에 모든 주안점을 두어야 합니다.

 

특히 “오늘은 피곤하니 내일부터 해야겠다. 조금 상황이 나아지면 시작해야겠다.”라는 핑계로 오늘의 신앙의 의무들을 내려놓으면 안 됩니다. 내일 타령하면 평생 못합니다. 지난번에 말씀드렸듯이 상황과 형편은 우리가 싸워야 할 대상이지, 절대로 우리를 도와주지 않습니다. 경건생활을 최우선 순위로 두고 나머지를 내려놓든지 포기하든지 해야 합니다. 거기에는 타협이라는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② 고급신자와 저급신자로 나누는 이분법적 사고방식


우리가 사도바울과 같이 그리고 예수님처럼 주와 복음에 헌신해야 한다고 말하면 대뜸 하는 말이 “나는 아마추어인데, 나는 초신자인데, 나는 아직 어린데... 그런 뛰어난 삶은 교회에서 월급 받는 사람들이나 사는 삶이다... 당신은 목회자니깐,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하고, 나는 목회자가 아니고 평신도니깐 조금 못해도 괜찮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로마가톨릭의 잔재입니다. 로마가톨릭은 신앙의 계급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교황 - 추기경 - 사제 - 수도사 / 수녀 - 평신도


위로 갈수록 더 고차원적이고 높은 수준의 경건이 요구됩니다. 이것이 구약과 매우 흡사합니다. 구약에서도 계급이 있고, 높이 갈수록 높은 차원의 거룩함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신약에서는 그러한 계급이 다 폐지되었습니다. 우리는 다 왕 같은 제사장이요 거룩한 나라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로마가톨릭의 그릇된 사상이 교회 안에 흘러 들어온 것입니다. 그래서 거룩하고 고차원적인 경건은 목회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으로 생각하면서 자신들의 마땅한 의무들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물론 교회 영적 지도자들과 목회자들이 모범을 보여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러나 그것이 신약의 모든 성도들의 마땅한 의무들에 대한 책임까지도 없애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게으른 삶을 그런 식으로 핑계를 대면 안 됩니다. 신자는 모두 하나님 앞에서 동일한 신자요, 목회자가 충성해야 하는 것도 목회자이기 이전에 신자로서 마땅히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직분의 차이가 있을 뿐, 모두 동일하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께 일사각오로 헌신하며 충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③ 머리로는 알겠는데, 삶이 안 따라 온다


이것은 우리가 자주 말하는 것입니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것이죠. 아는 것과 실제 삶 사이의 괴리야 말로 우리 신앙생활에 있어서 제1의 과제이고 고민거리입니다.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참으로 가르치는데 그리고 배우는데 힘써왔습니다. 그러나 실제 삶은 거기에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 우리의 솔직한 현실입니다. 거기에는 일차적으로 가르치는 자가 믿음의 본을 보이면서 이끌지 못한 잘못이 있고,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나 가르치는 자가 어떠하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머리로만 간직하는 우리 자신에게도 문제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구약에서 하나님이 애굽에 장자재앙을 내리시기 전에 유월절을 제정하신 사건을 생각해보십시다. 아마도 그때에 애굽 사람들 중 일부가 모세에게 찾아와서 “어떻게 죽음의 사자로 인해서 재앙 받는 것을 면할 수 있습니까?”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이것을 말할 수 있는 이유가, 애굽의 모든 사람들이 망하고, 오직 혈통적인 이스라엘만 구원받아 출애굽하여 나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보면,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유대인과 더불어서 중다한 잡족 들이 함께 나옵니다. 히브리사 람들만 출애굽 하는 것이 아니라, 애굽에 있던 노예들, 애굽 사람들, 오만 잡족 들이 다 하나님을 믿고 출애굽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어떻게 해야 장자재앙에서 구원받는지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물어볼 때, 모세가 “좌우 문과 문설주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시오.” 그렇게 말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것을 들은대로 순종 하면 재앙을 면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는,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로 어떻게 해야 될지를 모르겠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까? “머리로는 어떻게 해야 되는 것은 알겠는데, 삶이 왜 안 따라 올까요?” 그럴 수 있습니까? 없습니다. 만일 머리로는 알지만, 행동이 없다면, 그것은 단 하나의 이유 때문입니다. 갑자기 하기 싫은 마음이 들어서 안 했든지, 아니면,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아서 까먹었든지 둘 중의 하나일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삼일 굶은 사람이 있는데, 먹어야 산다는 것을 아는데, 그 사람이 하는 말이 “먹어야 산다는 것을 머리로는 알겠는데, 왜 먹는 것을 실천하는 것이 어려울까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국 머리로는 알겠는데, 실제 삶에서 적용하지 못하는 문제는 영적 본질을 깨닫는 믿음이 없음과 영적인 소원이 없는 문제입니다. 그것은 근본 그 사람이 중생하지 아니했거나, 아니면, 중생했다 하더라도, 주님 없이 살기로, 그리고 영혼을 방치하기로 적극적으로 선택한 것의 결과입니다.

 

여러분 우리 안에는 죄악 된 본성이 남아있습니다. 날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내적 부패성이라고 하는 잡초를 우리가 부단히 제거하지 않으면, 그대로 방치하면, 결국 머리로는 많이 알아도 그 죄가 그 사람을 지배해서 부패한 삶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내가 어쩔 수 없이 그런 삶을 살게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부패한 삶을 살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머리로 아는데, 삶이 안 따라온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머리로만 간직하고 싶은 우리의 악하고 게으른 본성에 대한 핑계에 불과합니다. 우리는 그러한 변명을 버리고, 그것이 우리의 악함이요 게으름이라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문제의 유일한 해답은 내가 회개하고 믿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그리고 머리로 배우고 아는 대로 실천하는데 힘써야 합니다. 정 어떻게 해야 될지 모르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며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매달리면 하나님이 은혜를 주시고 길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④ 전도할 때 안 될 것이라는 핑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아 자녀가 되면, 거기에는 은혜에 마땅한 신앙의 의무들이 주어지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에 힘쓰고, 그 말씀대로 이 세상에서 거룩하고 정직한 삶을 살아야 하고, 또 주님이 주신 사명을 따라 열심히 복음을 전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특히 이 전도하는 일이 교회의 중심 되는 사명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이 신앙의 의무를 저버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족과 친척 중에 믿지 않는 사람들과 우리의 이웃들, 학교와 직장 동료들, 우리가 만나며 부딪치는 모든 사람들에게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그러나 실질적으로 전도하는 삶이 쉽지 않습니다. 많은 경우 우리는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면서 이 의무를 회피하려 합니다. 예를 들면, “아직 타이밍이 아니다. 조금 더 타이밍을 기다리자.”라고 합니다. 아니면 “나도 제대로 못사는데 내가 무슨 남을 전도하는가?”라고 하여 전도하기를 포기합니다. 또는 “내가 전도해봤자 이 사람은 보나마나 차갑게 거절하고 도리어 나를 멸시하고 달려들 거야.”라고 말하면서, 전도할 마음을 싹 달아나게 합니다. 또는 “요즘 시대가 어느때 인데, 전도를 하나? 요즘 전도가 되나? 옛날에나 전도가 되었지, 오늘날 누가 이 복음을 믿겠는가? 안 된다.”라고 하면서 아예 전도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것이 밖에 사자가 있어서 나갈 수 없다고 하는 게으른 자의 모습과 같은 것입니다. 사실은 복음을 부끄러워하는 마음, 그리고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을 살기 싫어하는 내 악하고 게으른 마음을 합리화하는 핑계들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고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안에서 새 인생을 살게 하셨고, 주님의 영광스러운 교회를 세워가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받은 자는 마땅함으로 감사함으로 복음을 사람들에게 증거하며 복음과 함께 고난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전도 안하는 삶을 산지 오랜 시간이 지났습니다. 교회의 사명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은 것입니다. 결국 이렇게 된 원인은 은혜를 망각했기 때문이고, 결국 그 배후에는 복음과 함께 고난 받고 고생하기 싫고 편한 것을 좋아하는 게으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복음전도란 마땅함으로 자원함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가 하는 일도 아닙니다. 자꾸 내가 해야 하는 일이고, 내가 잘해야 될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전도하기도 전에 겁을 먹고 안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전도하는 일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다만 전달해주는 역할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전해야 합니다. 택한 사람에게는 그 전도가 구원하는 방편이 될 것이지만, 불택자에게는 그 전도가 심판 앞에 핑계치 못하게 하는 능력의 메시지가 될 것입니다. 듣든 안 듣든 전도하기만 하면 되는 것입니다. 결코 땅에 헛되이 떨어지는 전도는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전도할 때에 사람들로부터 차가운 거절과 무시, 그리고 멸시와 조롱과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결국 자기 자존심과 체면, 자기 명예에 대한 사랑이 있으면 그런 것이 두려워 복음과 함께 고난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전도하는 것도 결국은 자기 깨어짐이라는 신앙의 본질문제로 연결되는 것이죠.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 주님의 은혜를 아는 마음, 주님을 위해 자기를 깨드리면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 아니면 내가 살아서 내 인생의 주인이 되어 내 마음대로 살고자 하는 마음이 있느냐, 그것이 문제입니다.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단순히 여러 의무들 가운데 한 두 가지 소홀히 하는 문제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신앙의 본질에 문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주님의 은혜를 알고 우리의 죄된 삶을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명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우리가 주님께 기도하고, 자기가 깨트려지는 은혜를 허락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기도만 하고 가만히 있지 말고, 적극적으로 자기를 부인하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사람들에게 나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내가 전도한다고 누가 믿겠나?” 싶지만, 그러나 밖에 나가서 열심히 도전하면서 전도하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과가 어떠하더라도 그렇게 순종하면서 살면, 하나님의 은혜와 기쁨과 평강이 우리 마음에 넘칠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게으름을 합리화하고 핑계 대는 데서 벗어나서 정말 신앙을 회복하고, 사명을 회복하여, 열심히 주님 뜻대로 살고, 열심히 전도에 힘쓰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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