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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기독교세계관
강설날짜 2012-01-15

2012년 1월 15일 한결교회 신년 기독교 세계관 특강

 

제3강 대중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1. 문화란 무엇인가?

 

일반적으로 우리는 문화라고 하면, 일단 예술이나 대중문화, 또는 entertainment를 떠올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주로 하는 말이, “지방에 있으니깐 문화생활을 별로 못한다.”라는 말에서 의미하는 바가 바로 이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화에 대한 생각은 좁은 의미의 문화 개념이고, 사실 문화라고 하는 것은 매우 폭넓은 개념입니다.

 

문화(culture)란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피조세계(creation)에 인간의 손(cure)이 가미되어진 모든 것을 말합니다. 여학생들이 손톱에 바르는 것을 ‘manicure’라고 하는데 그 말은 mani(손톱)와 cure(경작)의 합성어입니다. 손톱에 문화적 단장을 하는 겁니다. 그래서 문화라고 하는 것은 자연 상태의 환경에 인간이 들어와 살면서 그 자연을 가꾸고 개발하여 결국 거기에 인간 사회 공동체를 구현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즉 문화는 인간 사회의 모든 관습과 전통, 가치, 의식주와 관련된 모든 것들, 과학 기술, 의료, 경제, 정치, 역사, 문학, 음악, 예술, 학문, 언어 등 모든 것을 포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수단으로 사람들은 서로 소통하고, 그것을 누리면서 평생을 살아가고, 그것이 한 세대를 거쳐서 다음세대로 이어지면서 계속 발전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결코 문화를 떠나서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비록 촌에서 태어나서 문화생활을 하나도 못해도, 사실상 그는 이미 문화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2. 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들의 태도

 

그런데 문제는 인간이 타락했다는 것입니다. 인간이 본질에서부터 타락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이 세상의 문화도 다 변질되고 타락하였습니다. 그러면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인류의 타락한 문화에 대해서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논란이 되고 논쟁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취한 여러 입장들을 리처드 니버(H. Richard Neibuhr)와 로버트 E. 웨버(Robert E. Webber)가 각각 정리하였습니다. 리처드 니버의 견해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기로 하고, 지난번 중고등부 수련회 때 이미 배운바 있는 로버트 E. 웨버의 견해를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웨버의 문화관은 세 가지 모델로 구분되는데, 분리의 모델과 동일시의 모델, 변혁의 모델입니다.

 

1) 분리의 모델 : 그리스도인들은 세상 문화와 대립해야 한다는 입장.

 

주와 복음을 위한 일들은 거룩하지만, 세상의 문화는 다 썩고 부패했기 때문에 그러한 문화를 거부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그 성경적 근거로 신자는 이 세상의 나그네이고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요한일서는 “세상과 그 안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고 했고, 이 세상의 모든 문화는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으로 좇아 온 것이고, 결국 사단 마귀로부터 온 것이라고 했습니다. 신자는 오직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에만 충성을 바쳐야 하고, 자신에게 충성을 바치라고 요구하는 문화를 단호하게 거부해야 하는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에 속해 있지 않기 때문에 핍박을 당하고 사회에 함께 평화롭게 공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입장에 대한 지나친 강조는 육적이고 세상적인 것들은 다 악하다고 생각하는 그릇된 오류에 빠지게 해서 결국 신자로 하여금 속세를 떠나도록 만듭니다. 이것의 가장 절정의 형태가 바로 중세 수도원 운동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금욕적이고 탈 세속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귀신의 가르침이라고 반대합니다. 

 

(3)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식물은 하나님이 지으신 바니 믿는 자들과 진리를 아는 자들이 감사함으로 받을 것이니라(4)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딤전 4:3-4)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이고 선한 세상입니다. 타락한 것은 인간의 영혼인데, 아무리 이 세상이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가증스럽고 철저히 죄된 상태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이 세상 문화에 개입하셔서 악을 누르시고 계시고, 또 당신의 일반은총을 모든 사람들에게 두루 허락해주시며, 신자들에게도 이 일반은총 가운데서 그것을 누리며 살게 하신 것입니다.

 

2) 동일시 모델 : 그리스도인들은 세속적 삶의 문화를 지지하고 그것을 누릴 수 있다는 입장.

 

이 입장의 성경적 근거는 예수님의 성육신과 공생애에서 분명히 발견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친히 이 죄된 세상에 성육신하여 내려오셨고, 또 은둔하시거나 세상과 격리하여 지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의 대표였던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또한 바울은 모든 것이 가하다고 말한 적이 있고, 그리스도인들은 권력에 복종해야 하며 왕과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왜냐하면 통치자들과 권세자들을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교회만 다스리는 분으로가 아니라, 온 세상 나라와 문화를 다스리는 만유의 주권자로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문화 둘 중에서 하나를 택하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은 둘 다 하나님이 관여하시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중적 시민권을 가진 자이므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입장은 이 세상의 문화가 하나님께서 주신 것으로 생각하는 관점인데, 그러나 이 입장을 지나치게 강조하면, 이 세상 문화의 구조 속에 깃들여 있는 악의 영향력을 바로 식별하지 못하고 너무 급속히 문화를 수용함으로 인해 교회가 세속화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문화를 분별하고 비판하고 회개를 요구해야 할 교회의 책임을 다하지 못하게 됩니다.

 

3) 변혁의 모델 : 그리스도인들은 이 세상의 문화를 변혁해 나가야 한다는 입장.

 

이 입장의 성경적 근거는 복음이 개인의 영혼을 소생시킬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삶의 구조와 문화를 변혁시키는 능력이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입장은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온 피조세계를 다스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권세를 강조합니다. 주님께서는 “자기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셨습니다.”(골 1:20) 이 입장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이 현세 속에서 실현되기를 바라는 입장입니다. 세속적인 문화가 점점 없어지고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문화가 꽃피우기를 바라는 것이죠. 주기도문의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처럼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입장은 종종 기독교 이상주의를 결과합니다. 19세기 낭만주의자들은 기독교가 전 세계에 퍼져가는 것을 보면서 이제 바야흐로 이 20세기는 기독교의 세기가 될 것이며 기독교 황금기를 맞이할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1,2차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그러한 기대가 산산조각 나버렸습니다. 인간의 죄 된 본성과 기독교 문화에 대한 적대감은 시대가 갈수록 사라지는 것이 아님이 증명된 것입니다. 사실 이 입장이 진정 원하는 황금기는 오직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에야 비로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입장을 취하기 이전에 다음을 고려해야 합니다.

 

① 이들 각 모델의 기본적 주장은 모두다 성경의 가르침에 근거하고 있고, 다 옳은 얘기입니다.

② 중요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본질을 붙잡으면서 이 모든 모델들의 균형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의 본질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인간의 타락,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그의 공생애와 구속사역, 하나님 나라의 ‘이미’와 ‘아직 아니’의 종말론적 긴장관계, 주님의 재림을 통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소망함 등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복음의 본질을 붙잡으면서 앞의 세 모델의 균형을 잘 잡아야 합니다. 다른 모델에 대한 적절한 고려 없이 한 모델만을 강조하는 것은 불균형한 접근이 됩니다.

③ 문화적 상황은 때때로 다른 모델보다는 한 모델을 강조할 것을 요구하거나 지지합니다. 그래서 예를 들어 분리의 모델이 지나치게 강조된 중세시대에서는 동일시의 모델을 강조할 필요가 있고, 너무 세상과 구별되지 않을 만큼 교회가 세속화 되었을 때는 ‘분리의 모델’을 보다 강조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 세상의 문화를 완전히 배제해서도 안 되고, 그렇다고 이 문화에 잠식당해서도 안 됩니다. 도리어 우리는 문화를 변혁해가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이렇게 문화를 완전히 배제하지 않으면서도 그 문화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리고 그 문화를 변혁해가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것을 분별하고 통제할 수 있는 기독교 세계관이 필요합니다. 세계관이란 마음의 창을 말합니다. 어떤 색깔의 창으로 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법입니다. 성경적 세계관, 기독교적 세계관을 가질 때만이 우리는 세상의 문화를 올바르게 분별하고 판단해서 취할 것은 취하고, 누릴 것은 누리고, 거부할 것은 거부하며, 또 잘못된 것은 고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기독교 세계관을 가지려면 먼저 마음이 새롭게 되어야 합니다. 즉 중생해야 하는 것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고 영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 육적인 사람들은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분별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중생한 영적인 사람만이 분별할 수 있습니다. 거듭남의 은혜를 통해서 마음이 새롭게 되어서,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꾸준하게 배워감으로써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더욱 깊이 알아가야 만이 우리는 세상의 문화에 대해서 참으로 그리스도인다운 태도와 자세를 취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대중문화란 무엇인가?

 

대중문화가 무엇인지 말하기 전에, 이 대중문화라는 것이 왜 나왔는지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대중문화라는 말이 있기 전에 사실 문화라는 말은 고급문화를 의미했습니다. “저 사람은 상당히 교양 있는(cultured) 사람이야”라고 했을 때, 이 ‘교양 있는’라는 단어가 ‘cultured’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누군가 세련된 얇은 시집을 읽고, 깊은 향의 진한 에스프레소를 마시면서, 셰익스피어를 말하고 있다면, 또는 바흐나 모차르트 음악을 듣고 있다면, 그는 교양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맥주나 콜라를 마시고, 담배를 피워가며 저질스러운 음담패설을 하고, 폭력적인 최신 유행 컴퓨터 게임을 하고, 저질스러운 3류 소설을 읽었거나, 또는 록이나 헤비메탈 음악을 들었다면 그는 교양이 없는 사람이었습니다(uncultured). 그러나 시대가 점점 바뀌고, 민주주의 시대로 들어가면서, 민중이 사회의 주도권을 잡게 되면서, 사람들은 소위 ‘고급’문화들의 엘리트주의에 반발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이 오만하고 겉으로만 고상한 체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게 된 것입니다. 그러면서 일반 민중들의 문화야 말로 귀족들의 엘리트 ‘고급문화’에 반대되는 ‘저급문화’가 아니라, 참으로 민중들의 꾸밈없는 삶을 잘 담아낸 나름대로의 가치가 있는 소중한 ‘대중문화’라는 인식을 가지게 된 것입니다.

 

4. 대중문화의 문제점

 

이것이 대중문화의 시초인데, 문제는 무엇이냐 하면, 이 대중문화가 극소수만 누리던 고급문화와는 달리 대부분의 일반평민들을 다 아우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 수많은 다양한 사람들의 공통적이고 기본적인 욕구와 필요들을 채워주는 방향으로만 발전해갈 수밖에 없다 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에게 기본적이고 공통적인 욕구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입니다. 그래서 대중문화는 끝까지 이 방향으로만 갈 수밖에 없습니다. 아주 타락한 문화로 점점 나아가는 것이죠. 그런데 여기에 매스미디어의 발달과 상업주의의 합류가 곁들여지면서 더욱 이 타락이 가속화되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예전에는 방송 PD가 어떤 프로그램을 계획할 때는 PD 나름대로의 유익한 방송을 만들어야겠다 라는 가치관을 가지고서 방송을 만들었는데, 이제는 PD들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자기가 만든 프로그램(드라마, 예능, 다큐 등)의 시청률이 높게 나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시청률이 높아야 광고 수입을 통해서 재정을 확보할 수 있고, 그래야 자기도 계속 방송 PD 노릇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시청률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공익만 생각하고서 아주 고상하고 고리타분한 내용으로만 꾸며서는 안 되고, 도리어 생각할 필요 없이 그저 한 번씩 빵 터지게 해주고, 단순하게 사람들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방향으로, 그리고 더욱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인 방향으로 제작해 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물론 자극적이고 선정적이고 폭력적으로 방송 드라마나 프로그램들을 제작하면, 분명 논란이 일어나고 비판도 받지만, 그래도 그렇게 하면 시청률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연예인들과 방송 PD들의 목표가 무엇이냐 하면, 일단 인터넷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르는 것입니다. 좋게 뜨든 나쁘게 뜨든 상관없이 일단 떠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방송을 제작할 때 일부러 지르고 보는 것이죠. 이것이 우리가 접하는 대중문화의 모든 면은 아닐지라도 거의 일반적인 현상일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중문화는 철저하게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추구하며, 그와 더불어 무신론적이고 이교적이고 우상숭배적인 사상을 사람들에게 주입시킵니다. 

 

대중문화의 무서움이 무엇이냐 하면 화려한 볼거리와 재미를 통해서 우리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해주는 사이에, 나도 모르게 내 잠재의식 속에 무신론적이고 반기독교적이고 온갖 세상적인 가치관들을 심는 것입니다. 대중문화가 얼마나 위력적인지 예를 들어 보면... 왁스의 ‘지하철을 타고’라는 곡이 있습니다. 이 곡의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은 기분이 왠지 꿀꿀해

내 전용 자가용 지하철을 타고

약수역 금호역 다리 건너 압구정에 내려

 

이 동네 분위기 부담스러워서

다시 또 반대편 지하철을 타고

2호선 갈아 타 이대 연대 홍대 앞에 내려

 

오늘 처음 만남 사람과

사랑에 빠져보고 싶어

내가 잘 나가든 못나가든

신경 쓰지 않는 사람과 밤새

 

맨 처음에 이 가사만 보면 “뭐 이런 가사가 다 있나? 말도 안 된다”라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이 가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음악이 곁들여지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일단 음악을 들어보면, 리듬감이 좋고, 몽환적인 분위기에다가, 노래가 참 좋습니다. 그래서 일단 가사는 둘째 치고 노래 때문에 계속 듣게 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반복해서 듣다 보면, 그리고 같이 흥얼거리다보면, 우리의 귀가 즐거운 사이에 나도 모르게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아~ 나도 one night stand 해보고 싶다.”하는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음악의 힘입니다. 음악의 힘에 대해서 어떤 로커는 말하기를, 사람들로 하여금 나를 숭배하게 만드는데 5분이면 충분하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음악만 그런 것이 아니라, 드라마나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화를 상영하면서 잠재의식에 대한 실험을 한 적이 있었는데, 영화를 상영할 때 영화 중간 중간에 ‘팝콘을 드세요’ 라는 문구를 자막으로 넣어서 방영했습니다. 영화 볼 때 사람들은 그런 자막에 신경 안 쓰고, 영화 보는 데만 몰두합니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영화 끝나고 나서 많은 사람들이 팝콘을 구매하려고 모여들었다는 실험 결과가 나왔습니다. 영화나 드라마에 이러한 잠재의식 기법이 바로 광고에 있어서는 아주 탁월한 효과를 발휘하는 것입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옷, 가방, 차, 음식 등 모든 것들이 사실은 광고 협찬을 받아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드라마가 재미있어서 보지만, 결국에는 그 드라마에 나온 제품들을 선호하고 구매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잠재의식 기법이 참으로 광고에 효과적인 것인데, 중요한 것은 이러한 효과를 가장 즐겨 사용하는 자가 누구냐 하면, 광고주도 아니고 기업도 아니고 바로 사단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사탄이 이 마지막 때에 대중문화를 자신의 아주 중요한 도구로 선택했다고 확신합니다.

 

여러분들의 눈과 귀와 마음이 즐거운 동안 사단은 여러분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사랑, 모든 경건을 다 파괴하고,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잠재의식 속에 온갖 세속적인 생각들과 가치관들을 심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세상의 가치를 따라가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중고등부 대학 청년부 여러분들이 이 대중문화에 심취해 있으면, 무엇보다도 여러분들이 한창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해가는 시기에 있는데, 이런 대중문화에 길들여져 있으면, 결국에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에 세속적인 가치관으로 꽉 차서, 하나님 앞에서 아주 교만하고 부패하고 패역한 사람으로 자라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참으로 무서운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에서 세상의 문화에 대해서 세 가지 견해를 균형 있게 가져야 된다고 말했지만, 그러나 특별하게 이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느냐 하면, ‘분리의 모델’을 강력하게 주장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어떤 점에서 대중문화가 문제가 되느냐 하면, 첫째로 대중문화는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성적인 타락의 끝을 보여준 도시로서, 결국 하나님의 불 심판을 받고 역사 속에서 완전히 소멸된 도시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대중문화도 바로 이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를 그대로 따라가고 있습니다. 오늘날 대중문화가 얼마나 음란하고 선정적입니까? 요즘 인기를 얻고 있는 걸그룹들의 노출과 춤들도 바로 섹시 코드가 아니면 통하지 않는 대중문화의 한 폐단을 잘 보여줍니다. 이러한 걸그룹들의 노출과 선정적인 춤들을 따라하는 것이 청소년들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그래서 많은 여학생들이 그러한 걸그룹의 미모를 가지려고 성형을 하거나, 또는 걸그룹들처럼 자신도 미니스커트와 같은 노출이 심한 옷들을 입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되고, 그래서 교복도 미니스커트로 만들어서 입고 다니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음악뿐만 아니라, 드라마도 마찬가지이고,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음란하고 선정적인 문화를 계속 접촉하면서 청소년들과 대학 청년들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의 노예가 되어, 결국은 어두운 정욕의 늪에 빠져 들어가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대중문화는 라멕의 문화입니다.

 

(23)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배이리로다 하였더라(창 4:23-24)

 

라멕은 자신의 살인을 자랑처럼 여겼습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 대중문화는 살인과 폭력을 자랑으로 여기는 문화입니다. 살인에서 쾌락을 얻는 문화입니다. 이제 영화나 드라마에서 폭력적인 장면이 없으면, 시시하고 싱겁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 번째로 대중문화는 바알의 문화입니다. 곧 자기만족과 쾌락을 위해서 우상을 숭배하게 만드는 것이 대중문화입니다. 대중문화는 화려하고 멋지고 예쁜 연예인들을 우리 앞에 보여줌으로써 우리로 그들을 숭배하게끔 만듭니다. 그래서 많은 청소년들이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들 좇아다니고, 팬클럽에 가입하고, 연예인 사진들을 구입해서 자기 방에도 붙이고, 그렇게 마음으로 숭배하면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다 우상숭배입니다. 만일 자기가 좋아하는 연예인을 실제로 만나서 그에게서 사인을 받는다고 생각해보십시오. 아마 설레고 즐겁고 기분이 날라 갈 듯 좋아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예배하는 그 시간은 아무 감정 없고 지루한 것이죠. 그것이 우상숭배입니다. 무엇이든지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이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아무리 건전하고 심지어는 많은 유익을 주는 대중문화라 하더라도 말씀 읽는 것보다 기도하는 것보다 더 마음을 기울이고, 그것을 더 좋아하면 그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대중문화는 이렇게 우리를 계속해서 신령한 것보다 세상적인 것을 더 사랑하도록 이끌어가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대중문화는 우상숭배의 문화, 바알의 문화입니다.

 

네 번째로 대중문화는 결국 바벨탑의 문화입니다.

 

(4)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창 11:4)

 

바벨탑은 인간 스스로를 숭배하는 사상을 말하는데, 대중문화는 바로 이 바벨탑 문화입니다. 왜냐하면 대중문화는 은연중에 무신론적인 사상을 심고, 인간을 높이며, 그리하여 결국 자기 자신을 신으로 숭배하도록 만드는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서태지의 “take 2” 가사를 보면 “너의 맘대로 살아가도 돼 / 상관없어 그대로 썩어가도 널 누가 / 왜 너는 그냥 맞기만 해 왜(다들 왜) 왜 그냥 멋대로 돼”라는 가사가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기가 자신의 인생의 왕이요 신이 되어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도록 권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보다 이러한 사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뉴에이지 음악인데, 이 뉴에이지는 감미로운 음악을 들으면서 명상을 통해 자신을 신성화하는 것을 추구합니다. 우리가 이런 문화에 길들여지면, 나도 모르게 우리 마음속에 자기를 신으로 숭배하는 자기숭배의 우상숭배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실 이 자기 숭배가 결국 모든 죄악의 근본이 됩니다. 그래서 이 자기 숭배의 바벨탑에서 앞에서 살펴본 소돔과 고모라의 문화도 나오는 것이고, 라멕의 문화도 나오는 것이고, 바알의 문화도 나오는 것입니다. 결국 대중문화는 자기를 숭배하는 바벨탑의 문화입니다.

 

5. 대중문화와 바벨론

 

여러분 우리는 성경에서 이 바벨탑이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는지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단순히 언어를 혼잡케 하시는 것으로 그 인간의 교만을 심판하신 것이 끝이 아니라, 계속해서 이 인간의 바벨탑 사상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등장하고, 하나님은 그러한 세상을 심판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 바벨탑이 무엇으로 연결되느냐 하면 바벨론으로 연결됩니다. 성경에서 바벨론이라는 나라는 이스라엘을 징계하기 위해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도구이기도 했지만, 또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우상을 숭배하고 자기를 높이고 자랑하며 온갖 불의와 음란으로 가득한 악의 세력으로 묘사됩니다. 

 

(4)너는 바벨론 왕에 대하여 이 노래를 지어 이르기를 학대하던 자가 어찌 그리 그쳤으며 강포한 성이 어찌 그리 폐하였는고 ... (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13)네가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산 위에 좌정하리라(14)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사 14:4, 12-14)

(1)처녀 딸 바벨론이여 내려 티끌에 앉으라 딸 갈대아여 보좌가 없어졌으니 땅에 앉으라 네가 다시는 곱고 아리땁다 칭함을 받지 못할 것임이니라(사 47:1)

(8)그러므로 사치하고 평안히 지내며 마음에 이르기를 나 뿐이라 나 외에 다른 이가 없도다 나는 과부로 지내지도 아니하며 자녀를 잃어버리는 일도 모르리라 하는 자여 너는 이제 들을지어다(사 47:8)

 

이러한 개념이 신약에까지 그대로 넘어옵니다.

 

(13)함께 택하심을 받은 바벨론에 있는 교회가 너희에게 문안하고 내 아들 마가도 그리하느니라(벧전 5:13)

 

베드로전서에서 바벨론은 로마를 의미하는데, 이 말 속에서 로마의 교만과 불의, 음란함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는 이 바벨론의 심판에 대해서 자세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4)그 여자는 자주 빛과 붉은 빛 옷을 입고 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미고 손에 금잔을 가졌는데 가증한 물건과 그의 음행의 더러운 것들이 가득하더라(5)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계 17:4-5)

(2)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3)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4)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2-4)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바벨론 왕국은 용과 짐승이 지배하는 나라로서 사탄의 나라를 말합니다. 이 사탄이 지배하는 바벨론 왕국의 문화는 교만하고 음란하고 사치하고 화려한 문화입니다. 저는 바로 교만하고 음란하고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바벨론 문화가 오늘날 대중문화를 통해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이 요란스러운 대중문화에 희희낙락거리며 즐기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그 배후에 은밀하고 무섭게 역사하는 사단의 세력을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대중문화에 휩쓸려가게 되면 결국 바벨론의 멸망과 함께 우리도 멸망당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이러한 바벨론 왕국과 하나님의 백성을 분명하게 대립되는 구조로 묘사합니다. 특히 이 바벨론 왕국은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고 괴롭히는 왕국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의 문화를 따름으로서 거기서 안위와 쾌락을 보장받을 것이냐, 아니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이 바벨론을 거부하고 바벨론의 핍박을 받으며 순교할 것이냐 하는 분명한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바벨론 문화도 따르고 하나님도 섬기고 그런 것은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표를 받는 것으로 분명히 구별됩니다. 계 13장에 보면, 용과 짐승이 나오고, 사람들이 이 짐승을 경배합니다.

 

(15)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16)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17)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8)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 수는 사람의 수니 육백 육십 륙이니라(계 13:15-18)

 

여기서 표는 화인을 말하는데, 노예나 적국의 포로에게 소유권의 표시로 주거나, 종교적으로는 교주에 대한 충성의 의미로 화인을 주었습니다. 이런 ‘표’ 이미지는 앞에 요한계시록 7장의 이미지를 그대로 이어받고 있습니다.

 

(3)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3)

 

그래서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과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밖에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디에 속해 있습니까?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입니까? 666표를 받은 사람입니까? 만일 여러분이 정말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 이마에 인침을 받은 자라면, 우리는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4)는 주님의 음성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는 멸망의 바벨론 문화에서 나와야 합니다. 우리가 멸망 받을 이 세상을 따라갈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대중문화라고 하는 것은 바벨론을 따르고 바벨론에 충성하는 자들, 곧 666표를 받은 사람들이나 즐기고 누리는 것들입니다. 우리가 거기 있으면 안 되는 것이죠.

 

6. 결론

 

그러므로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 등 무엇이든지 간에 우리는 대중문화에 대해서 조심해야 합니다. 물론 대중문화도 다른 문화의 측면과 동일하게 우리가 이 대중문화를 벗어나 살 수 없고, 또 어느 정도 유익한 점들이 있으며, 또 우리가 감사함으로 누려야 할 것들이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다른 문화의 측면보다도 이 대중문화가 훨씬 더 많이 인간의 죄악과 부패성을 내포하고 있고, 사단의 중요한 도구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보다 더 경계할 필요가 있고, 또 분별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대체로 분별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특별히 이 음란하고 폭력적인 대중문화에 대해서는 ‘분리의 모델’의 입장에 서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여러분이 보고 듣고 즐거워하는 세상의 가요들은 확실히 세속적이고 선정적이며 음란한 것들이 대부분입니다. 그런 것들을 통해서 유익한 것은 거의 없다고 보시면 됩니다. 그러니깐 그런 세상의 노래들은 다 지우시고 가요 프로그램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영화도 웬만해서는 다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기 때문에 가려서 보시고, 드라마는 그래도 대부분 만 15세 등급이어서, 보다 덜 폭력적이고 선정적이기 때문에, 가려서 보면 때때로 좋은 유익들을 얻을 수 있습니다. 특히 좋은 사극 같은 경우는 유익한 점이 많이 있기 때문에(물론 아무리 유익해도 세상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죄가 깃들여져 있습니다만), 너무 빠지지 않는 한도 내에서는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씀 읽고 기도할 시간은 없으면서 드라마 볼 시간은 있다면, 그런 경우라면 아무리 유익한 드라마라도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마지막으로 여러분들에게 전도서의 말씀을 해드리고 싶습니다.

 

(9)청년이여 네 어린 때를 즐거워하며 네 청년의 날을 마음에 기뻐하여 마음에 원하는 길과 네 눈이 보는 대로 좇아 행하라 그러나 하나님이 이 모든 일로 인하여 너를 심판하실 줄 알라(10)그런즉 근심으로 네 마음에서 떠나게 하며 악으로 네 몸에서 물러가게 하라 어릴 때와 청년의 때가 다 헛되니라(전 11:9-10)

 

제가 오늘 강의에서 “mp3 다 지워라. 안 좋은 영화는 보지 마라, 연예인들 좋아하지 말고 좇아 다니지 마라, 이 세상의 문화를 따라가지 마라”라고 암만 말한다고 해서 들을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사람이 더 많을 것이라 생각 됩니다. 오늘 강설이 얼마나 여러분들에게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러나 저는 여러분에게 한 가지만 분명하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마음대로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십시오. 여러분이 보고 싶은 것 보고, 듣고 싶은 음악 듣고, 즐기고 싶은 것을 즐기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고 여러분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기억하십시오. 자신의 행위에 대해서 반드시 책임을 질 날이 올 것입니다. 바벨론은 반드시 심판 당하고, 그 바벨론의 음란하고 교만하고 우상숭배적이고 사치스러운 문화를 좇은 사람들도 다 심판 당할 것입니다. 주님을 정말 믿는 자라면, 주님을 사랑하는 자라면, 이 대중문화에서 돌이키시길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이 대중문화의 배후에 있는 사탄 마귀의 간교한 음모를 깨닫고, 이 세상의 대중문화를 분별하고 절제하여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거룩하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우리 중고등부 대학 청년부가 될 수 있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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