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4.04 11:56

[기독교세계관] 회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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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성경본문 기독교세계관
강설날짜 2012-02-12

2012년 2월 12일 한결교회 신년 기독교 세계관 특강(193,318,338)

 

제5강 회심

 

말씀 : 엡 2:1-7

 

사도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성도이기 이전에 그들이 어떤 사람들이었는지를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그 정체성은 죄와 허물로 죽은 사람들이었다 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그들의 과거의 형편에 대해서 상기시키는 이유는 그들이 받은 구원의 은혜가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고생을 많이 해본 사람이 편안해진 것이 무엇인지를 알며, 노동을 열심히 한 사람들만이 참 휴식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를 감격스럽게 경험하려면 하나님을 모르고 살 때 우리들이 어떤 상태에 있었는지를 더 깊이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구원의 은혜는 아주 감격적으로 다가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도바울은 오늘 본문에서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과거에는 죄와 허물로 죽어있었지만, 하나님이 그들을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다 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회심한 상태와 회심하기 전의 상태를 삶과 죽음이라고 하는 서로 공존하거나 양립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것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이 강설을 듣는 여러분들 가운데 중립에 해당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자기 죄를 회개하여 영혼이 거듭난 구원받은 신자이거나, 아니면 아직 구원을 받지 못했지만 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사실상의 불신자이거나 둘 중의 하나이고 중립상태는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 사이에는 중립이 있을 수 있지만, 그러나 죽은 사람과 산 사람, 태어난 사람과 존재하지 않은 사람 사이에는 중간이라는 것이 있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둘을 구분 짓는 근본적인 차이점은 무엇입니까? 내가 정말 구원받은 자인지, 구원받지 못한 자인지를 점검해볼 수 있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저는 여러분들에게 여러분들이 정말 구원받은 사람인지를 점검해볼 수 있는 아주 소중한 몇 가지 기준을 성경에 입각해서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첫째로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가치판단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받지 못한 사람의 가장 중요한 표입니다. 신앙생활하면서 가끔씩 죄를 짓고 그리고 실패를 하는 것은 구원받지 못한 것의 증거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자들도 때로는 죄를 범하고 실수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치 판단이 자기중심적이라고 하는 것은 흔들 수 없는 구원 받지 못한 사람의 증거입니다. 아주 확실한 증거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가치판단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기준을 가지고 가치를 판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무엇이 선하고 악한 것인지, 그리고 어느 것이 더 많이 가치가 있고 어느 것이 덜 가치가 있는지를 기준을 가지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가치판단이라고 하는 것은 사실상 모든 사람에게 다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젊은 시절에는 방탕하고 타락하는 것이 옳은 것이고, 그것이 젊은 날의 가치다 라고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학생으로서 놀고, 게임에 빠지고, 인터넷에 중독되고, 연애를 하고,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하는 방탕한 생활을 하는 것보다는, 열렬하게 공부하고 학문을 연마해서, 이 젊은 날에 지성적인 준비를 잘 갖추는 것이 미래의 떳떳한 삶을 위해서 바람직하다 라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지금 방탕하고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 학생들조차도 이러한 가치판단이 마음속에 분명히 서있습니다. 여러분 놀랍지 않습니까? 나는 공부가 싫고 노는 게 좋다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어쩌다가 공부를 열심히 하는 날에는, 그래서 공부를 열심히 하고 저녁 늦게 도서관을 걸어 나올 때에는 마음속에 무엇을 느낍니까? 마음에 노래를 부르면서 마음의 시원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아~ 나도 할 수 있다. 이렇게 공부 열심히 하면 내가 뭐가 되어도 되겠구나.” 라고 스스로 뿌듯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공부 안하고 인터넷하고 게임하고 친구들이랑 놀고 그렇게 허튼 시간을 보내면, 마음이 어떻습니까? 마음이 편안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괴롭습니다. “그러지 말았어야 되었는데...”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기말고사 성적표 받아보면서 “이거가지고 어디 갈까? 아 정말 나는 왜 그러지...” 그러면서 심지어는 자기를 막 때리면서 후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아무도 야단치지 않아도 스스로 그렇게 후회하는 것입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가치기준이 명확하다는 얘기입니다. 다만 내가 그 가치대로 실천하지 못할 뿐이지, 기준은 항상 있는 것이죠.


이러한 가치판단 기준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회심하지 아니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가치판단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을 회개할 수 없습니다. 후회는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심하지 아니한 자라도 이 세상에서의 상식으로서 가치판단의 기준들이 서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치판단에 어긋나는 일이 있으면 후회도 하고 때로는 눈물을 흘리며 안타까워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두 달 전에 대구에 한 중학생이 친구들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자살해서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었던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 중학생의 장례식에 가해자 학생이 찾아 와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면서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는 뉴스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믿지 않는 불신자들도 때때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울면서 뉘우치고 후회합니다. 그러나 그런 종류의 후회는 회개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회개란 하나님 앞에서 잘못했다는 의식 때문에 아픔을 느끼면서 후회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회개는 나의 모든 행동들이 하나님 앞에서 죄라고 하는 하나님 중심적인 가치판단이 서 있어야지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치기준이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절대로 회개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가치기준이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은 변하지 않는 자기 사랑이라고 하는 기초 위에 굳게 서 있는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은 자주 변합니다. 운동이 좋을 때는 공부고 뭐고 다 집어치우고 운동을 열심히 합니다. 외모에 딱 꽂히면, 뭘 갖다가 바르고 머리도 볶아보고, ‘셀카’도 찍고 그럽니다. 그래서 평소에 늦잠 자던 사람도 딱 외모에 꽂히면, 아침 일찍 일어나서 그 바쁜 아침에 예쁘게 꾸미느라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밥은 안 먹어도 예쁘게 꾸미고서 학교에 가는 것입니다. 그러다가 공부에 딱 꽂히면 이제는 공부를 열심히 하는 것입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이 가치 있게 생각하는 것들이 자꾸 변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파도치는 바다의 표면이고, 밑에는 흔들리지 않고 딱 서 있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 ‘나’ 중심입니다. 내가 좋아서, 나의 행복을 위해서 공부도 하는 것이고, 외모에도 꽂혀서 예쁘게 꾸미기도 하고, 그러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것이 다 자기 자신을 위한 것입니다. 그 기준은 흔들리지 않고 요지부동으로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회심하지 않은 사람의 특징입니다. 오늘 읽은 말씀에도 보면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일향 내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고,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회심하지 않은 자들의 가장 명백한 특징인 것입니다.


그래서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진실해진다든지, 회개한다든지, 자기의 행동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마음 아프게 생각하면서 눈물을 흘린다든지 그런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자기가 한심해서 울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회개가 아닙니다. 그러나 참으로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게 될 때에 그 내면에 놀라운 변화가 있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이 깨어지고, 자기중심적이던 가치기준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통해서, 성령의 조명하심을 통해서, 자신의 행동을 하나님 앞에 비추어보고, 하나님의 판단 기준으로 자신을 돌아보며, 그래서 늘 자신의 죄인 됨을 깊이 깨닫고 하나님께 눈물을 흘리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매일 회개하는 것입니다. 마음에 늘 이 회개와 애통하는 마음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것은 신자의 죽을 때까지 변할 수 없는 내면의 구조적인 특징입니다. 주님의 은혜가 넘치고, 기쁨으로 충만할 때조차도 우리의 심령에는 애통하는 마음이 함께 있습니다. 왜냐하면 늘 자신의 죄인 됨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바로 가치기준이 하나님 중심적이라는 것의 명백한 증거입니다. 그러나 회심하지 아니한 사람은 가치판단 기준이 자기중심적이기 때문에, 교회를 나와도 세상 사람들이 하는 것처럼 때때로 후회는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정말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애통하며 회개하는 것은 없습니다.


두 번째 기준으로, 회심하지 아니한 사람은 신령한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말하거니와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일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3-14) 그러면 신령한 것이란 무엇일까요? 신령한 것이라는 것은 영적인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것은 무엇입니까? 영적인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싶으면, 영적이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보면 쉽습니다. 영적이지 않은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물질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만져지고, 입맛으로 알 수 있는 이 오감에 의해서 파악되는 것들이 물질적인 것들입니다. 형체, 크기, 모양, 따뜻함, 차가움, 물렁함, 딱딱함, 도형 이런 것들을 가지고 있는 것이 감각적인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에 대해서는 관심이 아주 많은 것이죠. 이런 사람들이 유행에 아주 민감합니다.


요즘 유행하는 장신구나 핸드폰이나 머리스타일이나 바지나 점퍼... 등등에 대해서는 예민할지는 모르지만, 영적인 신앙의 세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물질적인 것들이 그들의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감각적인 것들이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언젠가 10-20대 젊은이들을 모아놓고 “무엇이 제일 하고 싶냐?”라고 물어보았더니 78%가 “감동을 받고 싶다.” “뭔가 feeling을 느끼고 싶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즉 그들이 제일 원하는 것이 바로 이런 물질적이고 육체적인 감각을 통해서 즉시즉시 마음에 어떤 감동을 받는 것입니다. 그런 것들을 아주 좋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자신의 마음을 다 쏟아 붓는 것이죠.


영국은 우리나라 젊은이들보다 불쌍합니다. 거기는 물가가 워낙 비싸서 마땅한 놀 거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이 축구에 미치는 것입니다. 축구를 보는데, TV로 보는 것이 아니라, 수백 대의 버스를 동원해서, 700km 이상을 버스를 타고 새벽에 출발해서 축구장 주변 여관에서 하루 자고, (그것도 평소에 7만원하던 여관이 그날은 막 100만원까지 뛰어오를 때가 있는데, 그래도 잘 곳을 구하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그렇게 자고 일어나서 10만원을 훨씬 넘어가는 축구경기 티켓을 사고, 축구장에 들어가 축구경기를 보면서, 자기 팀을 응원하고, 그러다가 자기 팀이 골을 넣고 이길 때 뜨거운 감동을 받고, 거기에 열광하며 응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나고 나서도 T 셔츠 사고, 여러 가지 악세 사리나 옷들을 사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국의 젊은이들의 일상입니다. 축구가 그들의 우상이고, 퍼거슨 감독이 그들이 우상입니다. 맨유 스폰서가 AIG인데, 그것을 농담삼아 해석하시를, A는 알렉슨 퍼거슨 감독을 의미하고, I는 is, G는 God, 해서 AIG를 Alex is God 으로 해석하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축구에 충성을 합니다. 그래서 거기에 얼마나 많은 돈을 투자하느냐 하면, 그들이 일주일 내내 알바하면서 번 돈을 거기다가 다 쓰는 것입니다. 이렇게 감각적인 것들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시키지 않아도 막 빨려 들어가는 것입니다.


“해품달” 드라마가 이제 시청률 38% 가까이 되었는데, 어느 날 뉴스를 보니깐 “여심을 초토화시킨 배드신보다 야한 한 마디”라는 기사가 뜨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니깐 주인공이 한 대사 중에 “중전을 위해 옷고름 한 번 풀지”라는 대사가 그렇게 섹시하고, 수많은 여성들이 너무 설레여서 밤잠을 설쳤다는 네티즌들의 반응들을 기사로 써서 올려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이 드라마에 열광하면서 빠져들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얼마나 열연을 했던지,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보면서 슬퍼서 펑펑 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러분 제가 TV에서 방송국에서 구원과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서 설교하면, 시청률이 38%가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고난을 눈물로 설교한들, 그 많은 사람들이 밤잠을 설치면서 그렇게 엉엉 울고 그렇게 하겠습니까? 안합니다. 왜냐하면, “해를 품은 달”은 감각적인 것이고, 설교는 신령한 것이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신령한 것들에 대한 감각은 오직 회심한 자들에게만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회심하게 되면, 제일 처음 내면에 일어나는 변화가 바로 영적인 눈이 떠지는 것입니다. 처음으로 영적인 세계를 보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느끼고, 예수님이 얼마나 아름다우신지, 그 은혜와 사랑이 얼마나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큰 것인지, 그런 것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전까지는 하나님이 하늘에 계셨는데, (그래서 예전에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나하고 직접적으로 상관이 없었는데), 지금은 내 마음에 와 계신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령한 것들에 대한 감각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신령한 것들에 대한 감각이 생기니깐, 설교시간에 하나님에 대한 평범한 이야기를 들어도 막 울고 눈물을 흘리는 것입니다. 회심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이런 신령한 것들에 대한 감각이 없습니다. 그러니깐 교회에 나와서 신앙생활하면서 “예배 시간의 설교가 왜 이렇게 기나, 아 지겹다.” 이런 생각은 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말씀을 들으면서 마음 깊은 곳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고 신령한 것들을 느끼고 하나님께 감사하고 감격하고 이런 일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이 예배를 드리는 자세나 말씀을 듣는 자세를 보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신령한 감각이 있는 거듭난 신자는 말씀을 집중해서 듣습니다. 왜냐하면 신자는 신령한 것들에 대한 좋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참 좋다는 느낌이 있고, 그것에 자꾸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집중해서 들으려고 하는 것이죠. 그러나 회심하지 아니한 자는 말씀에 집중하지 못합니다. 집중하고 싶어도 집중이 안 됩니다. 그래서 졸거나 왔다 갔다 하거나, 아니면, 몸은 교회에 와 있지만, 마음은 콩밭에 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성상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나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대학시험을 보고 나서, 이름을 부르면서 합격자를 발표하는 학교 강당에 자리하고 있다 라고 한다면, 거기서 왔다 갔다 하거나, 잡담하거나, 졸거나 하겠습니까? 합격자 발표가 자신에게 얼마나 중요한 것인데, 졸음이 오겠습니까? 도리어 시끄럽게 하는 사람이 있으면, 조용히 하라고 뭐라 하고, 귀를 쫑긋 세워서 고도로 집중해서 듣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예배드리는 태도를 보면 그것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거듭난 사람에게는 예배나 말씀이나 기도나 주님과의 교제나 이런 신령한 것들에 대한 좋음이 있고, 그것에 대한 끌림이 있습니다. 물론 신자가 항상 그런 상태로 있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어쨌든 신자는 그것이 좋고 아름답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난 신자에게 성경책을 지워주면, 그 성경책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어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면서 읽기도 하고, 때로는 손바닥을 치며 탄성을 내면서 읽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동일한 책을 거듭나지 아니한 사람에게 줘보십시오. 몇 분도 안 되어서 졸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람에게 재미있는 만화책을 줘보십시오. 아주 무서운 속도와 집중력으로 (거의 달인 수준으로) 읽어갈 것입니다. 이렇게 회심하지 아니한 사람은 신령한 것에 대한 좋음이나 끌림이 없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회심하지 아니한 사람의 중요한 특징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기준은 자기 의지를 굴복시킬 수 없다는 것입니다. 자연적인 것은 굴복시킬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자기가 담배를 피우다가 그것이 몸에 좋지 않다 그러면, 그것을 끊는 것입니다. 그런 것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런 자연적인 것 말고,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 앞에 올바르지 않은 일이라고 믿어지기 때문에, 나는 너무 너무 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그것을 싫어하시기 때문에 의지를 꺾고 굴복을 하는 그런 일들은 거듭나지 않은 사람에게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보십시오. 너무너무 하고 싶은데, 하나님이 살아계시기 때문에, 주님이 나에게 그것을 하지 말라고 하시기 때문에, 내가 그만둔 것이 무엇이 있는지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반대로 나는 너무너무 하기 싫은데, 그런데 하나님이 그것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실제로 그것을 한 일이 어떤 것이 있는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그것이 바로 의지를 꺾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의지를 나 자신에게 복종하던 의지를 꺾어서 하나님께 굴복하도록 만듭니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의 놀라운 효과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많이 받은 사람들은 항상 자신이 꺾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회개하고 뉘우치고,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갈 수 있는 놀라운 힘을 공급받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난 사람의 특징이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자기의 의지를 굴복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회심한 사람은 자기의 의지를 하나님 앞에 굴복시킬 때, 굴복시키는 그 순간까지는 갈등을 많이 하지만, 굴복시킨 후에는 기쁨이 밀려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를 꺾을 때 자기 깨어짐의 아픔도 느끼지만, 그와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이 강물처럼 자신의 마음속에 밀려오는 것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깊이 경험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심하지 않은 사람은 이러한 자기 깨어짐이나 의지의 꺾임이 전혀 없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네 번째 기준은 그렇기 때문에 실천적인 무신론자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입니다. 인터넷을 보다가 동물원의 사자들이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두발 들고 벌 서는 자세로 일어서기도 하고, 오른쪽으로 구르라고 하면 오른쪽으로 구르고, 왼쪽으로 구르라 하면 왼쪽으로 구르는 장면을 보면서 한편으로는 참 신기하다는 생각도 들었지만, 또 한편으로는 동물원 사자들이 참 비참하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밀림의 왕이라고 하는 사자가 그 고기 조각 몇 개 얻어먹기 위해서 그렇게 두 발 들고 서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니 너무 비참하고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것은 본래의 사자의 정신을, 사자의 정체성을 상실한 것입니다. 겉모습은 사자이지만 실제로는 사자가 아닌 것입니다.


똑같이 우리들이 거듭난 사람들에게는 영적이고 신령한 자존감이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는 정체성을 가지고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가는 모습이 그 삶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런데 회심하지 않고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물론 교회는 나올 수 있습니다. 마치 사자가 굴러도 사자인 것처럼, 그렇게 교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신자의 모습을 따라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기독교적인 문화의 가정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기독교적인 분위기에 맞추어서 따라갈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실천에 있어서는 자기가 하나님 앞에 회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처럼 살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회심하지 아니한 사람은 하나님이 자기 마음속에 살아계시지 않기 때문에, 결코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을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말로는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며, 양상은 교회를 나오지만, 실천적으로는 무신론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거듭나지 못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만약에 여러분들이 이 4가지 기준을 적용하면서, “나는 부족하지만, 온전한 사람은 아니지만, 나는 회심하고 구원받은 신자가 맞다.”라고 생각이 든다면, 하나님께 감사하고, 그리고 여러분들이 더욱 더 신실한 신앙을 가질 수 있도록 영적인 충만한 삶을 위해서 더욱더 기도하고 자기 죄와 더불어 싸우고 말씀으로 이기는 신앙생활을 여러분들이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만약에 이 기준을 보면서 “가치판단에 있어서 나는 자기중심적일 수밖에 없고, 신령한 것들에 대한 좋음이 무엇인지를 모르며, 나는 내 의지를 하나님 앞에 굽히는 적이 거의 없구나. 나는 입으로는 신앙을 고백하고 주일은 교회를 나오지만, 사실상 삶의 실천에 있어서는 하나님 없는 삶을 사는 것이 맞구나.” 라고 한다면, 오늘 깊이 회개하고 거듭남의 은혜를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놀라운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기회는 호흡이 내 코에 붙어있을 때까지만 주어지는 것입니다. 죽은 뒤에는 더 이상 기회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내일 잘 믿어 보겠다고 생각하지 마시고 지금 거듭남의 은혜를 구하십시오. 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면서 거듭나서 하나님의 진정한 자녀가 되고 싶은 소원이 있다면 여러분들이 이제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할 일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는 이제껏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를 범하며 살아왔다는 것과 하나님의 진노와 천벌을 피하지 못할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자신의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해야 할 것은 이런 멸망 받아 마땅한 나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피를 흘려주셨다는 사실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예수님은 우리가 어떠한 죄를 범했다 하더라도, 다 용서해주시고 형벌에서 구원해주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시고, 우리 마음에 성령을 부어주셔서 우리를 고쳐 새 삶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가치기준으로 삼도록 만들어 주시고, 우리에게 없었던, 신령한 것들을 좋아하는 새로운 성향을 우리의 마음속에 불어넣어 주십니다. 의지를 굴복하지 않았던 우리들에게 주님의 의지 앞에 기꺼이 굴복할 수 있는 순종하는 마음과 감동을 주십니다. 그리고는 우리의 삶 속에서 우리의 신앙을 진솔하게 고백하며 실천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아주 놀라운 새로운 힘을 주십니다. 그렇게 주님과의 놀라운 기쁨의 교제 속에서 살 수 있도록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주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아 누리고 하나님의 참된 자녀로서 살아가는 주의 귀한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대중문화를 제외한 기독교 세계관 특강 대부분은 열린교회 김남준 목사님의 설교를 참조하였습니다. 아래는 참고 서적입니다.

 

요한네스 힐쉬베르거, 서양철학사(상,하)
D.A 카슨, 교회와 문화 그 위태로운 관계
로버트 E. 웨버, 기독교 문화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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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기독교세계관] 대중문화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태도 file 기독교세계관 최상범 4141
58 [잠언] 게으름 8강 - 현숙한 여인 잠 31:10-31 최상범 4501
57 [기독교세계관] 이성교제의 문제점 file 기독교세계관 최상범 4827
56 [잠언] 게으름 1강 - 게으름의 본질과 그 결말 잠 6:6-11외 다수 최상범 6379
55 [2017년 복학기 교회론 특강] 성령의 인도하심을 신실히 받드는 교회(3) file 갈 5:16-26 손재호 2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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