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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서론
강설날짜 2013-08-2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서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서론

 

1. 교리의 필요성

 

초대교회 시대 이후 기독교가 로마를 정복하자, 교회가 안정되면서 비로소 이단들에 대해서  내에 숨어있었던 이단들이 하나 둘 출현하면서 교회가 큰 혼란을 겪게 되었고, 교회내부에서는 이단을 정죄하고 바른 교리를 정립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하여 종교회의를 통해 삼위일체,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를 정립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니케아 신조와 칼시돈신조이다. 그리고 조금 있다가 또는 비슷한 시기에 사도신경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 그런데 한참 세월이 지난 후에 종교개혁이 있고 나서 이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 펼쳐졌다. 우후죽순처럼 교리가 만들어졌고, 그 내용에 있어서도 이전의 신조와는 달리 매우 방대하고 풍성했다.


이러한 교리가 왜 갑자기 종교개혁 이후에 만들어졌는가? 그 이유는 분명하다. 로마가톨릭의 그릇된 성경해석으로 인해서 지옥과 같은 중세 1000년을 보냈기 때문에 그러한 과오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성경적인 구원의 도리의 요약으로서 교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고 구원론뿐만 아니라, 성경전체가 말하는 바의 복음의 핵심을 요약하여 간추려야 했다. 그것은 성경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는 사람이 성경을 읽게 되었을 때 빠질 수 있는 오류를 방지하고, 올바르게 성경을 해석하도록 안내서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전체의 내용을 숙지하고 복음의 도리의 정수를 깨달은 사람들이 모여서 회의를 통해 성경전체가 말하는 바 그 복음의 핵심을 간추려 요약했다. 그리하여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핵심이고, 우리의 믿는 바다. 여기서 벗어나지 말자.”라고 구호를 외쳤던 것이다.

 

그리고 교리를 만든 데에는 교육적인 목적도 있다. 그냥 성경만 읽고 배워가지 않으면 안 되는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지만, 그러나 그렇게 할 때에는 역사 속에서 저질러졌던 수많은 오류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빠져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성령이 우리를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기 때문에 다시 빠져나오겠지만, 그러나 빠져나오는 동안 귀한 세월을 낭비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은 것이다. 성경을 수십 번 수백 번 읽고 그야말로 성경의 대가들이라고 할 수 있는 믿음의 선배들이 평생을 연구해서 발표 해놓은 이 교리라고 하는 믿음의 유산들을 무시해서 왜 쓸데없이 과거의 오류를 반복해야 하는가? 우리는 도리어 이 교리를 하나님이 우리 교회의 성숙을 위해 주신 신앙의 귀중한 유산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이러한 안내서를 공부하면서 성경을 읽어 가면, 허튼 데로 빠지는 실수를 줄일 수 있고, 보다 빨리 말씀의 본의에 접근해서, 복음의 핵심을 잘 배워갈 수 있다.

 

그리고 교리교육을 하면 복음의 핵심을 체계적으로 배워갈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성경을 각 권별로 배워나가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것만 하면 각 권별에 대한 개별적인 지식은 많이 가질 수 있지만, 성경전체가 말하는 구원의 도리나 어떤 주제에 대한 전체적인 내용을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다. 그러나 성경을 각 권별로 배워가는 것과 아울러서 성경전체가 말하는 복음의 진리를 주제별로 하나하나 체계적으로 배워간다면, 올바른 신앙관을 정립해 갈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교육의 목적을 위해서 교리들은 대개 문답의 형식으로 만들어졌다. 그리고 어렸을 때부터 이 교리문답을 반복교육 시켜서 거의 답을 외워서 무슨 문제든 물어오면 답할 수 있는 수준까지 교육시켰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그러한 바른 교리의 기초 위에 굳게 서서 바른 성경해석에 기초해서 교회를 잘 섬겨나갈 수 있도록 하였던 것이다.

 

세 번째로 교회의 일치를 목표로 교리를 만들었다. 같은 개혁파라 해도 성경해석이 조금씩 다르다. 이 세상에 나와 모든 면에서 같은 생각과 신학을 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다. 다 다르다. 그러면 서로 다르다고 해서 함께 할 수 없느냐... 그것이 아니라, 복음의 본질과 관련해서는 서로 일치된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하고, 그리고 비본질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서로의 다양한 해석은 존중해줌으로써 서로 연합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함께 하려면 최소한 이러이러한 내용들은 우리 모두가 공통되게 믿는 바라고 하는 표준적인 고백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여기서 벗어나면 우리는 함께 할 수 없다 라고 하는 조건을 달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교리를 만들어서 그 교리로 다양한 교회를 묶어서 하나로 연합시키고자 하였다.

 

2. 개혁신학의 교리

 

개혁신학의 교리라고 말할 때는 일반적으로 4가지의 교리를 말한다. 제일먼저 1561년 네델란드에서 만들어진 벨직 신앙고백서와 그 이후에 1563년에 독일 팔츠연방에서 만들어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그리고 1619년에 알미니안을 정죄하기 위해 만든 도르트 신조, 그리고 장로교의 표준문서로 채택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그것이다.

 

개혁교회 신조.png

 

 


3.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만들어진 배경

 

기독교가 로마의 국교가 된 이후에 점차로 교회가 정치적인 힘을 얻게 되면서 교황제도가 만들어지게 되었고, 급기야 AD 800년 정도서부터는 나라이름도 로마에서 신성로마제국으로 바꾸게 되었다. 그런데 이름을 바꾸자마자 정치적으로 불안해져서 결국 이 거대한 신성로마제국은 세 나라로 분리가 된다(베르덩 협약). 아래의 그림을 보라.

 

베르덩 조약.png


신성로마제국은 프랑스의 모체인 샤를왕국과 독일의 모체인 루이왕국, 그리고 이탈리아의 모체인 로타르 왕국으로 분할되었다. 그리고 세 나라의 왕들 중 한 명은 황제가 되어서 나머지 두 나라를 진두지휘했다. 맨 처음 황제는 샤를왕국에서 나왔지만, 얼마안가 오토대제를 중심으로 루이왕국이 주도권을 쥐게 되면서 루이왕국이 황제국가가 되었다. 그리고 오토대제는 이 루이왕국이 바로 신성로마제국의 정통성을 잇는다 하여 자신의 나라의 이름을 신성로마제국으로 바꾸었다. 그리고 1356년부터는 황제를 뽑을 때, 신성로마제국의 여러 제후들 가운데 중심되는 제후 7명이 선거해서 뽑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선거할 수 있는 제후를 선제후라고 한다. 그리고 하이델베르크를 중심으로 하는 팔츠 연방의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3세에 의해서 이 하이델베르크 신조가 만들어지게 된다.

 

그 당시는 1517년에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 문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써서 붙임으로써 종교개혁의 서막을 알린 이후로 계속해서 로마가톨릭과 프로테스탄트간의 갈등이 있었던 시대였다. 그 당시는 매우 혼란스러웠는데, 제후마다 각자 자신의 신앙이나, 또는 여러 가지 정치적인 이유로 로마가톨릭 혹은 프로테스탄트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그 제후가 선택한 종교가 자신이 다스리는 영지의 종교가 되는 그런 시대였다. 그래서 로마가톨릭 진영과 프로테스탄트 진영이 서로 칼 들고 싸우고 또 화해했다가 또 싸우기를 반복하는 그런 아주 혼란스러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문제는 프로테스탄트도 다 똑같은 프로테스탄트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극단으로 치우친 재세례파를 제외하고 프로테스탄트에는 크게 세 부류가 있었는데, 독일의 비텐베르크를 중심으로 하는 루터파, 그리고 스위스의 취리히를 중심으로 하는 쯔빙글리파, 그리고 스위스 제네바를 중심으로 하는 칼빈파(개혁파)가 그것이다.

 

프로테스탄트 진영의 세부류.png

 

이 세 부류는 이신칭의나 성경관,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복음 진리에서는 다 일치했는데, 성찬론이나 예정론이나 기타 여러 가지 부분에서 조금씩 의견이 엇갈렸다. 특히 성찬론 때문에 많이 갈등했다. 루터, 칼빈, 쯔빙글리가 모여서 성찬과 관련해서 논쟁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답을 찾지 못하고 각기 제갈 길로 갔던 것이다.


이러한 프로테스탄트들간의 갈등과 불신이 고조되어가고 있었다. 어느 정도였냐 하면, 예를 들면 그 지역의 제후가 프로테스탄트 편에 섰다 하더라도 만일 루터파를 지지했다면, 그 지역의 대학교에 있는 개혁파 교수들은 다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것이고, 그 반대로 제후가 개혁파를 지지하면 루터파 교수들은 다 쫓겨나는 신세가 되는 그런 판국인 것이다. 이렇게 프로테스탄트들 간에 서로 갈등하고 서로 적대시 하는 바람에 어부지리로 로마가톨릭은 그러한 분열을 틈타 프로테스탄트들을 공격하여 단숨에 제압할 수 있었다.

 

물론 이 상황에서 서로의 의견차이부분을 존중하면서 모든 프로테스탄트들을 연합시키려고 노력한 인물들이 많이 있었다. 대표적인 것이 불링거나 멜랑히톤 같은 사람이다. 멜랑히톤은 루터의 제자였고, 가장 가까운 동지였다. 그는 열렬한 루터주의자인데, 나중에 성찬론과 관련해서는 루터와 의견을 달리하여 개혁파 견해를 취했고, 또 루터가 율법에 대해서 죄를 깨닫게 하는 몽학선생이라고 하는 한쪽으로만 강조한 것에 반해, 멜랑히톤은 칼빈과 동일하게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할뿐 아니라, 이제 구원받은 성도가 지켜야 할 감사의 규범으로 제시하였다. 멜랑히톤은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개혁파에 가까운 사람으로서 자주 칼빈과 교제를 나누었고 루터파와 칼빈파의 연합을 위해 노력했던 사람이다. 그래서 순수한 루터주의자들이 볼 때, 멜랑히톤은 변절자였다. 그래서 루터파는 이후로 두 갈래로 나뉜다. 순수한 루터주의자들, 그리고 필립파(멜랑히톤의 이름이 필립 멜랑히톤이다)...

 

멜랑히톤.jpg

 

멜랑히톤 이야기를 왜 많이 하느냐 하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이 멜랑히톤이 대단히 중요한 인물로 등장한다. 왜냐하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만든 팔츠 연방의 선제후인 프리드리히 3세(Friedrich Ⅲ, 선재후 재위기간:1559~76)가 바로 이 멜랑히톤의 열렬한 지지자였기 때문이다.

 

프리드리히 3세.jpg

 

프리드리히 3세는 선제후이기 때문에 대단히 높은 권력을 가진 사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경건하고 신앙심이 깊은 사람이었고, 멜랑히톤의 열렬한 지지자였고, 특히 성찬론과 관련해서는 멜랑히톤과 마찬가지로 개혁파의 견해가 옳다고 생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 프리드리히 3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과 팔츠연방의 중요한 요직들에 개혁파나 멜랑히톤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채웠다.

 

이것이 프리드리히 3세때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이전부터 계속해서 진행되어왔던 일이었다. 사실 이 팔츠 연방은 불과 30년 전만 하더라도 로마가톨릭의 진영이었다. 그때 팔츠 연방의 선제후는 루트비히 5세인데, 그는 로마가톨릭 편에 섰지만, 어정쩡하게 섰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종교개혁을 지지하는 교수들이 자꾸 들어오게 되었다. 하이델베르크 도시 시민들도 종교개혁에 동조하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래서 루트비히 5세가 죽자 프리드리히 2세가 팔츠 연방 선제후로 즉위하는데, 이 사람은 아주 정치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루터를 지지하면서도 정치적인 욕심이 많아서 황제한테 잘 보이려고 로마가톨릭에도 갔다가 나중에 또 프로테스탄트로 갔다가... 왔다 갔다 하는 사람이었다. 이런 어정쩡한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해서 아무런 방해 없이 하이델베르크 도시와 대학교는 종교개혁 사상으로, 특별히 루터파 사상들로 물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이 프리드리히 2세 역시 죽고, 오트하인리히가 선제후로 뒤이어 임직되었는데, 이 오트하인리히는 아주 열렬한 루터주의자였다. 아니 특히 멜랑히톤을 지지했기 때문에, 순수한 루터파 보다는 개혁파에 가까운 필립파였다. 그래서 그는 하이델베르크 대학교를 필립파 교수와 학생으로 채웠다. 그리고 오트하인리히가 죽자 바로 프리드리히 3세가 즉위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 가운데 프리드리히 3세를 중심으로 이 하이델베르크 도시와 대학교는 종교개혁 사상으로 특히 개혁파에 가까운 필립파 사람들로 채워져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프리드리히 3세는 이 멜랑히톤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에 교수로 초빙하고자 했는데, 이 멜랑히톤이 죽는 바람에, 하는 수없이 취리히와 제네바에 있는 인재들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면서 궁정의 요직들과 대학교수들의 대부분이 개혁파 사람으로 채워지게 되었다. 이때 초빙한 대표적인 사람들이 바로 올레비아누스(Caspar Olevianus, 1536~87)라는 사람과 우르시누스(Zacharias Ursinus, 1534~83)라는 사람이다. 이 두 사람이 바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만든 주요인물로 추정된다.

 

프리드리히 3세는 특히 자신이 즉위하자마자 대학교 내에서 성찬논쟁이 있게 됨에 따라 기존에 사용되고 있는 루터파 신조를 대체할 개혁신학을 반영하는 교리문답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1562년에 새로운 교리문답을 만들기 위해 하이델베르크 교수들과 목회자들, 그리고 평신도 일부를 모아놓고 만들도록 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정황상 아마도 우르시누스가 가장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이고, 올레비아누스도 주도적으로 함께 참여해서, 이 두 사람이 대부분의 요리문답을 만들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왜냐하면 우르시누스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만들기 전에 자신이 이미 만들어놓은 우르시누스 소요리문답 대요리문답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하이델베르크와 상당히 비슷하다. 그래서 아마도 우르시누스가 주된 저자이고 올레비아누스는 보조적으로 동참하였을 것으로 추측된다.

 

올레비아누스.jpg

 

먼저 올레비아누스는 스위스 제네바에서 칼빈으로부터 배운 사람으로서 철저한 칼빈주의자였다. 그리고 멜랑히톤을 좋아한 사람이었다. 그는 교수직에서 가르칠 때 멜랑히톤의 책을 교재로 많이 사용했다. 올레비아누스는 우르시누스보다 일찍 하이델베르크 대학 교수로 초빙되었다.

 

우르시누스.jpg


한편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인 우르시누스라는 사람은 멜랑히톤의 제자였다. 열렬하게 멜랑히톤을 지지한 사람이고, 나중에 커서 23살 때 종교개혁 탐방 여행을 하게 되었는데, 그때 그는 취리히에 가서 쯔빙글리의 제자인 불링거를 만났고, 제네바에도 가서 칼빈을 만났다. 칼빈은 이 우르시누스에게 자신의 책을 여러 권을 선물했고, 이것이 아마도 우르시누스에게 매우 유익한 자료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여러 칼빈주의자들을 친구로 사귀었고, 또 신학적으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리고 1561년에 프리드리히 3세의 부름을 받아 하이델베르크 대학교의 교수직을 맞게 된 것이다. 이후에 올레비아누스는 이 우르시누스에게 자기 교수직을 물려주고 목회에 전념하게 된다. 어쨌든 프리드리히 3세는 이 두 인물을 중심으로 해서 1563년에 교리문답을 만들었고, 이 당시 올레비아누스는 26살이었고, 우르시누스는 28살이었다.

 

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자체적인 목적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읽어보면 교리답지 않게 목회적인 따뜻함을 느낄 수 있다. 마치 은혜로운 경건서적을 읽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리고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소요리문답보다 훨씬 그 용어가 쉽다. 그래서 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만들어진 후에 곧바로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유럽에 보급되었고, 보급되는 곳마다 폭발적인 인기를 얻게 되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성경과 천로역정, 토마스 아 켐피스의 『그리스도를 본받아』 다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널리 보급된 책이다.

 

우리나라는 웨스트민스터 신조를 표준 신앙고백서로 정한 미국장로교의 영향 아래 있었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는 잘 알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잘 모른다. 그러나 유럽에서는 하이델베르크가 더 유명하다.

 

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만든 목적에 대해서 선제후 프리드리히 3세는 그 서문에서 이렇게 밝혔다.

 

“다음 사실들에 근거해서 판단할 때, 우리는 교회의 교육 제도에 전혀 결함이 없다고 주장할 수 없다. 학교나 교회 안에서 우리의 자라나는 청소년들은 기독교의 핵심적인 가르침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어떤 청소년들은 기독교에 대한 교육을 전혀 받지 못했다. 또한 기독교의 핵심진리에 대해서 올바르고 명백하게 가르쳐 주는 표준적인 교리 문답이 없다. 그러므로 어떤 청소년들은 기독교의 핵심 진리를 체계적으로 배우지 못했다. 단지 선생의 개별적인 계획이나 판단에 따라서, 이 청소년들은 기독교 교육을 받았다. 따라서 여러 가지 취약점 가운데,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심각한 결과가 빚어지게 되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없이, 또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없이, 거의 모든 청소년들이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청소년들은 아무런 유익한 교육도 받지 못했거나, 아니면 불필요하고 타당하지 않은 질문들로 말미암아 혼란스러워하고 있다. ... 우리의 청소년들이 일찍부터 교육을 받는 것이 꼭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이들이 거룩한 복음에 대해서 순수하고 올바른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또한 이들이 하나님에 대한 올바르고 참된 지식을 갖도록 잘 교육받아야 한다. 이 결점을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기독교에 대한 요약적인 가르침, 곧 교리문답을 만들게 되었다.”

 

“목회자들과 학교의 교사들에게도 어떤 고정된 형태의 모범적인 교육 자료가 제공되어야 했다. 그와 같은 교육 자료에 근거해 목회자들과 교사들은 청소년들에게 일관된 내용을 가르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가르치는 내용을 자기의 임의적인 생각대로 선택하거나, 또는 날마다 가르치는 내용이나 방법들을 바꿀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면 이들은 청소년들에게 잘못된 가르침을 전달하는 오류를 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면 전능하신 하나님은 기꺼이 공공의 도덕과 개인적인 삶을 새롭게 변화시켜주실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의) 일시적인 행복과 (오는 세상에서의) 영원한 복락을 허락하실 것이다.”

 

이러한 프리드리히 3세의 서문을 요약하면 이 교리를 만든 목적은 다음과 같다.

 

1) 진리를 모르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바른 신앙위에 굳게 세우기 위해 기독교의 핵심 되는 가르침을 요약하였다. 그리고 교사가 일관된 내용으로 가르치기 위해서 표준문서가 필요하였기에 이 교리를 만들었다.


2) 팔츠 연방 안에 있는 다양한 프로테스탄트 그룹을 연합시키기 위해서이다. 특히 서문에서 반복되는 표현 “거룩한 복음에 대한 일관된 가르침”, “하나의 고정된 형태와 본보기”, “자기의 생각대로 선택하거나, 날마다 바꾸지 않으며”, “이 교리문답에 따라서 가르치고 행동하고 살도록 하는 것” 등의 표현들은 교리문답을 통해서 다양한 프로테스탄트 그룹들을 조화롭게 연합시키고 통일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준다. 이 프리드리히 3세는 날카로운 칼빈주의자라기보다는 온유한 마음으로 다른 것들도 포용하는 부드러운 개혁파를 추구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로마가톨릭에 대해서는 아주 맹렬하게 비판하고 또 기독교 복음을 변증하지만, (그래서 이 하이델베르크에만 로마가톨릭의 미사에 대한 비판하는 문답이 있다[80문]. 제세례파를 염두에 두면서 유아세례에 대해서도 중요하게 가르친다.) 그러나 프로테스탄트 내부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신학적 논쟁들에 대해서는 간략히 다루거나 아예 생략하는 경우가 많다. 아래의 경우가 그렇다.

 

1) 예수님의 높아지심과 재림을 설명하는 부분에 루터파의 공재설에 대해 은근히 비판하면서도 성찬론을 이야기할 때는 가장 핵심되는 논쟁점 자체에 대해서 깊이 논의하지 않고 적당히 넘어간다.
2) 예정에 대해서도 언급하지 않는다. 선택받은 자라는 단어는 몇 번 나오지만, 영원 전 선택에 대해서 설명하는 곳은 단 한 곳도 없다. 그리고 제한속죄에 대해서도 설명하지 않는다. 유기라는 단어에 대해서는 전적으로 침묵하고 있다.
3) 언약에 대해서도 거의 언급하지 않는다.

 

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구조와 내용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129문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문과 2문은 전체 서론이고 3문부터 그 내용을 크게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죄와 인간의 비참한 상태에 대하여(3-11문),
둘째 부분은 인간의 구원에 대하여(12-85문),
셋째 부분은 감사 생활에 대하여 다루었다(86-115문).

 

이것은 로마서의 구조를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로마서 역시 1장부터 3장까지는 죄와 비참한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4장부터 11장까지는 구원과 복음의 진리에 대해서, 그리고 12장부터는 감사의 삶의 규범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다.

 

특히 둘째 부분에서 사도신경을 중심으로 삼위일체와 기독론, 칭의론 문제를 다루고 있다는 것은 하이델베르크만의 독특한 특징이다. 그리고 ‘칭의’의 문제를 다루고 난 후, 세례와 성찬을 다루었는데, 성찬에서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주장하였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감사의 생활에 대하여 서론적으로 논한 후(86-91문), 십계명과 주기도를 해설하였다. 특히 율법을 감사의 삶의 규범으로 제시하는 것은 루터파와 차별되는 중요한 부분으로서 율법의 제3용례를 말하는 칼빈과 멜랑히톤의 맥락을 그대로 가져오는 것이다.

 

이러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과 다음과 같은 상이한 점을 발견한다.

 

1) 율법의 용례에 대해서

 

십계명의 위치만 보아도 이것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소요리문답은 그 순서상 십계명이 먼저 나오고, 그 다음에 모든 인생이 그 십계명을 지켜 행할 수 없음을 지적하면서 하나님의 진노와 천벌을 피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후에, 어떻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을 이야기 한다. 즉 소요리문답은 율법을 죄를 깨닫게 하고 정죄 아래 있게 하여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는 몽학선생의 측면을 강하게 부각시킨다. (물론 감사의 규범의 목적에 대해서도 다루기는 하지만 분량이 1문에 불과하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율법을 감사의 규범으로 제시한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칭의론, 구원론을 다룬 후에 십계명을 다룸으로써 구원받은 자가 어떻게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쳐준다.

 

2) ‘위로’에 대한 강조점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우리가 받는 ‘위로’, 우리가 받는 ‘유익’에 대해 많이 이야기 한다.

 

1문 : 생사간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 생사간의 나의 유일한 위로는 내가 자신의 것이 아니라 사나 죽으나, 나의 몸도 영혼도 오직 나의 신실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다는 것입니다....

 

제52문 :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재림은 당신에게 어떤 위로를 줍니까?
답 : 박해와 고통 가운데 처해 있을 때에도 나는 하늘을 보며 내 대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심으로써 나에게 미칠 모든 저주를 없애 주신 심판의 주를 확신 있게 기다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원수들에게 영원한 형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그러나 나를 비롯한 모든 성도들은 하늘의 기쁨과 영광으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이러한 특성에 대해서 월필드(B. B. Warfield)는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에 비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사람 중심적이고 주관적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런 평가는 충분히 이해된다. 우리가 위로를 받고 유익을 얻기 위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이 위로 안 해주셔도 우리는 사나 죽으나 주님만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 그러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말하는 위로는 그러한 이기적이고 사람중심적인 마음의 평안이나 만족이 아니다. 오히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는 것이고, 하나님 안에서 위로를 얻고자 하는 것으로서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랑하는 마음 상태를 가리킨다. 정말 문제는 이 세상에서 위로를 얻고자 하는 것이다. 그것이 우상숭배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모하고 의지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기를 원하신다. 우리가 위로를 받음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 그리고 그 위로와 은혜를 통해 우리의 영혼이 변화되어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 중심적인 면에서 웨스터민스터 소요리문답과 거의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 있다.

 

3) 개인적이고 신앙고백적인 성격(1인칭 단수로 답함)

 

그리고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의 또 다른 특성은 개인적이고 신앙고백적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요리문답을 통해서 학습자들이 이해할 뿐만 아니라 자신이 고백할 수 있도록 의도하였다.

 

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3문 : 의롭다 하심이 무엇입니까?
답 : 의롭다 하심은 하나님이 그저 주신 은혜의 행위로써 그가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 하시고 자기 앞에서 우리를 옳게 여겨 받아 주시는 것인데, 다만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돌려주시고 우리는 오직 믿음으로 그 의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제60문 :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 앞에서 의로와질 수 있습니까?
답 :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비록 내 양심이, 내가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범하였고 그 계명 중 어느 하나도 지키지 못했으며 아직도 죄로 향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다고 고소할지라도 하나님게서는 이렇게 무가치한 나를 그리스도께 대한 참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마치 내가 죄지은 일이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순종하신 것을 내가 순종한 것처럼 대하시며 그리스도의 완전한 속죄의 의와 성결을 나의 것으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단지 내가 해야 할 일은 믿는 마음으로 이러한 하나님의 선물을 받는 것 뿐입니다.

 

4) 시적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했기 때문에 단어가 매우 쉽고, 또 시적이며 아름답다. 그래서 소요리문답보다도 훨씬 부드럽고 은혜롭게 느껴진다. 물론 소요리문답은 그 나름대로 장점이 있다. 그것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보다도 정확하게 그리고 압축된 표현으로 되어 있다는 점이다.

 

소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문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이 무엇입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하시는 일은 지극히 거룩함과 지혜와 권능으로써 모든 피조물과 그 모든 행동을 보존하시며 통치하시는 일입니다.

제27문 : 하나님의 섭리란 무엇입니까?
답 : 섭리란 하나님께서 항상 지니고 계신 전능하신 능력으로서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하늘과 땅과 모든 만물을 붙드시고 다스리십니다. 따라서 꽃잎과 풀잎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양식과 음료 건강과 질병 번영과 궁핍 이 모든 것들이 사실상 우연히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그의 자애로운 손길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후의 모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설은 김헌수 목사님의 책, 그리고 이승구 교수님의 책, 그리고 캐빈 드영의 '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사랑하는가',  유투브의 김민호 목사 동영상, 신반포중앙교회의 김성봉 목사 동영상을 참조하여 정리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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