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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29-30문
문답내용 29문 : 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 곧 “구원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부릅니까?
답 :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또 그분 외에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 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30문 :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성인이나, 자기 자신이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도 오직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까?
답 : 아닙니다. 비록 그들이 말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해도 행위로는 예수님이 유일하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근거한다면, 예수님은 완전한 구주가 아닙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얻어야 합니다.
강설날짜 2013-11-17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주(29-30문)

 

유일하고 완전한 구주 예수님

 

말씀 : 마 1:21

 

29문 : 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 곧 “구원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부릅니까?
답 :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또 그분 외에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 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30문 :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성인이나, 자기 자신이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도 오직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까?
답 : 아닙니다. 비록 그들이 말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해도 행위로는 예수님이 유일하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근거한다면, 예수님은 완전한 구주가 아닙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얻어야 합니다.

 

지난시간 우리는 천지의 창조주,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에 대해서 배웠는데, 이 고백은 창조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섭리도 고백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이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성도로서 우리는 어떤 곤란한 형편에서도 인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현실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이끌어 가신다 하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리고 그것이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 그 자녀를 얼마나 아끼시고 잘해주실까 하는 마음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대한 성도의 마땅한 마음입니다. 이 사실들을 가슴에 새겨서 일평생 간직하고,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하고 고백할 때마다 속에서 생수 솟아나듯이 다시 새롭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오늘부터 좀 오랫동안 성자 하나님에 대한 고백을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사도신경에서 가장 긴 조항이 성자 예수님에 관한 조항입니다. 성자 하나님에 대한 사도신경의 첫 번째 고백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입니다. 이 간단하면서도 짧은 첫 소절에 성자 하나님에 대한 호칭 4개가 열거되어 있습니다.

 

외아들(독생자),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 이름들이 가지고 있는 의미들이 각각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이 이름에 대해서 하나하나 살펴봅니다.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단순이 이 이름의 의미가 무엇인지만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이름의 의미가 바로 그분을 믿는 우리에게 어떤 적용점을 가지는지 자세하게 가르쳐줍니다. 오늘은 바로 ‘예수’라는 이름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29문 : 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 곧 “구원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부릅니까?
답 :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또 그분 외에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 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1. 예수 이름의 의미

 

“(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마 1:21)

 

이 이름은 하나님이 친히 지어주신 이름입니다. 이름의 뜻은 “구원자”인데 좀 더 자세하게 풀어서 설명해주신 것이 마태복음 1장 21절 말씀입니다. 바로 어떤 점에서 구원자냐 하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해주는 그런 구원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자 하나님을 예수님이라고 부를 때에는 우선 그 이름 앞에서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이고, 또한 그분을 나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셔서 죄와 형벌에서 건져주신 구세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예수님을 ‘구주’ 혹은 ‘구세주(救世主, 구원할 구, 인간 세, 임금 주)’라고 말하는데 다 똑같은 말로서 ‘구원자’라는 말이고, 헬라어 ‘예수’와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하면 ‘여호수아’입니다. 구약에서 모세의 뒤를 이어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까지 인도한 지도자의 이름도 바로 이 ‘여호수아’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 많은 유대인들이 자식을 낳으면 바로 이 ‘예수’라는 이름으로 지었고, 때문에 ‘철수’와 ‘영희’처럼 흔한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라는 이름의 동명이인이 많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부를 때는 그냥 예수라고 하지 않고, ‘나사렛 예수’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나사렛은 천대받던 지역이었습니다.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겠느냐?” 반문했던 것처럼 나사렛은 멸시와 천대를 상징하는 지역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사렛 예수’라고 불리웠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부유하시고 존귀하신 분이 하늘 영광 다 버리고 우리를 위해서 낮고 천한 인간이 되셨음을 가르쳐주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를 위해 이 세상에서 멸시와 천대와 고난을 받으셨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2.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 - 죄 문제 해결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하신 일이 많습니다. 어린 시절과 공생애사역을 시작하시기 전까지 그분은 목수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시작하셔서는 3년 동안 온 유대 땅을 두루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파하시고 회당마다 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으며 그리고 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특히 그러한 기적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오해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문제를 해결하려 오셨구나...” 그래서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을 때 사람들은 이 예수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무엇인지, 왜 인생들의 병을 고쳐주시고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신 것인지, 그 뜻을 헤아려 알지 못했습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목회자가 예수님 믿고 복 받고, 병고치고, 건강하고, 사업 잘되고, 예수님 믿고 내 인생문제 해결 받자고 설교합니다. 무엇을 보든지 그것을 자기 원하는 대로 끌고 가서 왜곡하는 것이 이 땅의 종교입니다.


예수님이 왜 병고쳐주셨습니까? 여러 가지 기이한 기적들을 일으키신 이유가 무엇입니까? 물론 여기에는 많은 설명이 필요하고, 병 고치신 목적에는 여러 가지 의미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중요한 의미 한 가지는 바로 불치병도 고치시는 이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 하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약의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그러한 기적들이 증거 해주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예수님은 단순히 사람들의 인생문제를 해결하려 오신 분이 아니시고, 참된 메시아로서 인생들을 죄와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이 중풍병자 이야기에서 잘 나타납니다.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침상에 메고 예수님이 계신 곳에 왔는데, 용신할 수 없을 만큼 사람들이 많아서, 어떻게 하지 못하고 결국에는 지붕으로 올라가서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달아 내렸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병고치심을 간절히 기대하였습니다. 이때 중풍병자나 그 중풍병자를 침상에 매고 온 사람들이나, 주변에 모든 사람들이 기대한 말은 “일어나 네 침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하는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마 이 말씀을 듣고 사람들은 몹시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인간을 근본적으로 불행하게 하는 문제가 무엇인지, 그리고 인간에게 있어서 가장 시급하고 절박하게 해결 받아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를 정확하게 보셨고, (그것이 바로 죄 문제인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곧바로 병을 고쳐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사함을 먼저 선포하심으로써 자신이 이 땅에 온 목적이 단순히 인생문제 해결해주는데 있지 않고 오히려 죄사하는 권세가 있는 자로서 죄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셨다는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고 말로만 하지 않으시고, 바로 그 말씀에 책임지시면서 그 중풍병자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십자가로 가셔서 비참하게 찢겨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소자야 네 죄사함을 받았느니라”라는 말은 “소자야 내가 너를 위해서 대신 십자가에서 죽겠노라”라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중요한 것은 모든 인간은 다 죄인이고, 그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의 모든 불행(질병,가난,고통,죽음)이 찾아오고, 무엇보다도 그렇게 고생하며 살다가 결국에는 죽고, 그리고 죽고 나서 끝이 아니라, 다시 부활해서 영원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인생이 처한 근본 비참한 상태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을 진정으로 불행하게 하고 비참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인생들이 모릅니다.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이야 이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지만, 문제는 교회 안에 예배당을 출입하는 사람들조차도 별로 이 문제에 대해서 신경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천로역정에 보면 크리스챤이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과 이 도시가 곧 파멸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나서 부터는 자신의 무거운 죄의 짐 때문에 밥도 안 먹고, 잠도 안 오고, 그렇게 고뇌하고 슬퍼하고 애통하고, 그래서 나중에는 미칠 지경이 되어버렸습니다. 가족들이 와서 위로해주고, 괜찮다고 타이르고, 때로는 그만 좀 하라고 꾸짖어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크리스챤이 이렇게 반응하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입니까? 정상적인 것입니까? 지극히 정상적인 것입니다. 이렇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 비정상적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반응이 오늘날 우리 가운데 있습니까? 나 자신이 주님의 뜻대로 바르게 살지 못하는 문제로 인해서..., 자신의 영혼 구원문제와 관련해서... 자신의 영혼의 핍절한 상태로 인해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될 정도로 고민하며 고뇌합니까? 또는 나의 자식들, 나의 가족 친지들을 보면서, “아 저 사람에게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는 죄문제다” 하면서 그들로 인해 고뇌하며 기도하면서, 그리고 시급히 복음을 전하면서 살아갑니까?


대부분 신자라고 하는데, 여기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입니다. 오히려 무슨 큰 사고가 나서 누가 죽었다거나, 암에 걸렸다거나, 자식이 불치병이 있거나, 집이 경제적으로 어려움에 처하거나 하면, 그런 세상적인 인생문제에는 우리가 골머리를 싸매고 고뇌하고, 아파하고 신음하면서 거기에만 몰두하는 경향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식 걱정을 해도 자식이 건강이 않 좋다든지, 무슨 공부를 못한다든지, 학교생활을 제대로 못한다든지 하면, 그것으로 인해서는 밥이 안 넘어가고 잠도 안 오고 안절부절 하는데, 자식이 신앙생활 제대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문제의식을 못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인 눈이 감긴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영적인 어두움에서 눈을 떠야 합니다. 눈앞에 밀려오는 멸망의 쓰나미를 보고 정신을 차려서 영적인 문제에 대해 깊은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자기 자신에게 있어서 뿐만 아니라, 자식을 볼 때에도, 그리고 누구를 보든지 간에, 죄 문제 해결 받는 것이 가장 시급하고 절박한 문제라고 하는 안목이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 문제를 해결 받고자 하는 시급하고 절박한 마음이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인생들의 복지를 해결해주시기 위한 사회복지사도 아니고, 소경들 눈 뜨게 해주는 유명한 안과협회 의사도 아니시고, 오병이어로 오천명을 먹이신 것처럼 사람들의 빵문제를 해결해주시는 제빵사도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우리를 바로 죄와 형벌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오신 구원자이십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분을 만나 죄사함 받고 영생을 얻는 것이 참된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0문 문제를 보시면...

 

30문 :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성인이나, 자기 자신이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도 오직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까?

 

질문에 자신의 구원과 복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salvation and happiness" 즉 예수님 믿고 죄사함 받아서 구원받는 것이 진정한 복이라는 것입니다. 잘 먹고 잘살고, 병고치고, 건강하고, 부자 되고, 성공하고, 출세하는 것.... 이런 것이 복이 아니라, 죄 문제 해결 받는 것이 진정한 복입니다.

 

3. 오직 예수님만이 유일하고 완전한 구세주

 

그런데 이 지구상에서 누가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어디를 가면 죄문제 해결해준다고 하던가요? 우리가 아프면 병원에 가면 낫게 해줍니다. 스트레스로 우울증이 오면 정신병원가서 상담치료 받으면 괜찮아집니다. 배고프면 식당가서 돈만 내면 맛있는 음식으로 배고픔을 해결해줍니다. 돈 없으면 부모한테 가서 용돈 달라 하면 부모가 용돈 줍니다. 그러나 내 죄 문제는 누구한테 가야 해결함 받을 수 있습니까? 이 세상에 어느 누가, 어느 기관이 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습니까?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바로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29문 : 왜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을 예수, 곧 “구원자”라는 뜻을 가진 이름으로 부릅니까?
답 : 왜냐하면 예수님이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때문이고, 또 그분 외에는 어디에서도 구원을 찾아서도 안 되며 발견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라는 이름을 생각할 때에는 우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할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이 예수님만이 나의 유일한 구원자가 되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라는 이름 속에는 “예수밖에”라는 의미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 외에 다른 어떤 것을 의지하거나 다른 어떤 것에서 이러한 구원과 복을 찾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24)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그 제사 직분도 갈리지 아니하나니(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히 7:24-25)

 

예수님의 공로로 온전히(perpect) 구원받기 때문에 다른 제사장이 필요 없습니다.

 

“(6)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19)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골 1:19)
“(10)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골 2:10)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고 싶은 것, 그리고 주고자 하는 모든 것을 다 예수 안에 두셨습니다. 두시되 충만히 두셨습니다. 그래서 예수 안에서 우리는 그 모든 것들을 충만히 받는 것입니다.

 

“(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요 1:14-16)

 

예수님에게 다 있습니다. 다른데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일평생 예수님만 믿고, 예수님만 신앙하고, 예수님만 의지하면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들이 자꾸 예수님에다가 뭔가를 +a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심각한 문제입니다.

 

4. 예수+a

 

30문 :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성인이나, 자기 자신이나, 아니면 다른 곳에서 찾고 있는 사람들도 오직 유일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까?
답 : 아닙니다. 비록 그들이 말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자랑해도 행위로는 예수님이 유일하신 구원자라는 사실을 부인합니다. 그들의 주장에 근거한다면, 예수님은 완전한 구주가 아닙니다. 따라서 참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자신의 구주로 영접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그들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을 오직 예수님 안에서만 얻어야 합니다.

 

로마 가톨릭은 예수님도 믿어야 할뿐만 아니라, 예수님 외에도 여기저기서 적절한 도움을 받을 수가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 말고 또 어디서 도움 받는다고 말하느냐 하면, 첫째로, 성인들이고, 둘째로 자기 자신에게서, 그리고 셋째로 다른 곳이라고 지칭된 그 무엇으로부터 유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하나 살펴보죠.

 

1) 성인

 

먼저 로마가톨릭에서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 특출하여서 자기의 공로를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정도로 신앙의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은 성인으로 인정됩니다. (한국사람 중에서도 성인으로 인정된 사람이 100명이 넘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로마가톨릭에서 성인으로 인정 되면, 그 사람의 이름이 다른 사람의 세례명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요... 가톨릭 신자들은 바로 이러한 성인들에게 기도하고 부탁함으로써 그들로부터 어떤 유익이나 은혜를 공급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대표적으로 생각하는 성인은 마리아입니다. 그들은 마리아가 하나님을 낳은 어머니가 될 정도로 신앙심이 두터웠다고 생각합니다. 심지어 로마가톨릭은 죄 없으신 예수님을 낳으려면 마리아도 죄가 없어야 한다고 함으로써 무흠수태설을 주장하고, 이 마리아가 육체로 승천해서 지금 예수님 옆에 앉아있다고 함으로써 육체승천설을 주장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직접 부탁하기 어려운 것들은 마리아를 통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럽 성당에 가보면 유리창에 그림이 그려져 있는데, 그 그림에서 마리아는 전면에 크게 그려져 있고, 예수님은 아기로 안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그림에는 예수님이 그려져 있는데 눈매가 무섭게 그려져 있어서, 어떤 심판자의 이미지를 나타내고 있고, 마리아가 그 예수님의 옷자락을 잡고 있는 그림이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웬만해서는 용서 안 할라고 하는데, 옆에서 마리아가 “좀 봐줘라...”하면서 옷자락 잡고 부탁하고 있는 것이죠. 이러한 성자숭배사상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에 또 다른 것을 덧붙이는 우상숭배가 되는 것입니다.

 

2) 자기 자신

 

또 어떤 경우가 있습니까? 예수님도 믿고, 또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성인의 덕과 공로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 자신이 덕과 공로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자기 자신이 부지런히 종교적인 수양을 하면 자기 공로를 쌓을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그래서 금욕과 고행과 자신을 힘껏 쏟아 붓는 인간 편에서의 노력과 분투, 수고와 선한행실들... 이런 것들을 통해 공로를 쌓아야지만, 하나님이 거기에 반응하셔서 비로소 기쁘게 받아주시고 은혜를 주신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사안이 중요하기 때문에 조금 있다가 다시 언급하겠습니다.

 

3) 다른데

 

세 번째로 다른 곳이라고 표현해서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지만, 아마도 면죄부를 비판하는 것으로 생각됩니다. 구원을 성인의 공덕이나 자기 자신의 공로뿐 아니라 다른 데, 곧 면죄부에서 찾는 경우가 그 당시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에는 “금화가 접시 위에 짤랑하고 떨어지면 연옥에 있는 사람의 영혼이 천당으로 튀어오른다.” 말이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이 말에 속아 헌금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 안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믿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a 했을 뿐입니다. 그러면 그것은 예수님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입니다. 정확한 비유는 아니지만, 이런 비유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남편과 아내가 결혼해서 살아가는데, 자기 남편이 돈도 좀 적게 벌고, 사회적인 지위도 낮아서 부인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죠. 그런데 옆집의 남자는 인물도 좋고 돈도 잘 벌고, 대기업의 높은 사장인 것입니다. 그래서 옆집 남자에게 가서 꼬리를 쳐서 꼬셔가지고, 데이트도 하고, 돈도 받고 하는 것입니다. 그런다고 남편 부인한 것이 아닙니다. 남편하고 같이 살면서 아침에 남편 밥 해주고, 출근할 때 잘 가라고 인사도 하고, 남편한테 해 줄 거 다 해주고, 남편 없을 때, 옆집 남자랑 데이트 할 뿐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무엇입니까? 남편을 이미 부정한 것이요, 부부관계가 이미 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남 이야기가 아니라, 전부 구약의 이스라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속하시고 부르셔서 가나안 땅을 선물로 주셨는데, 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백성들의 찬란한 문화를 보면서 부러워하는 것이죠. 그래서 우리도 그런 찬란한 문화를 좀 누려보자 해서 그들의 우상숭배를 흉내 냈던 것입니다. 그들이 한 번도 하나님 부인한 적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것을 뭐라 하십니까? 마치 남편을 떠난 여인으로 비유하고 바람난 여자로 비유하셨던 것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입술로는 암만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고, 예수님을 자랑해도 실제 삶 속에서 예수님 말고 다른 성인 이름 부르고, 자기 공로를 의지하고, 다른 곳에서 구원과 복을 찾는다면 그것은 이미 예수님을 부정하는 것이고, 예수님을 가증하게 배반한 것입니다.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오직 예수님만 바라보고 의지하고 신앙하며 살든지, 아니면 예수님을 부정하든지 둘 중의 하나인 것입니다.


자기 공로 세우려는 인간의 종교성이야 말로 우상숭배의 피라미드에서 가장 꼭대기에 위치해 있는 것입니다. 우상숭배라고 해서 다 같은 우상숭배가 아닙니다. 단순히 다른 신을 숭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의 가장 초보적인 형태이고, 그나마 진보한 형태가 세상의 것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여자를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는 것이 바로 우상숭배입니다. 그러나 가장 고차원적인 우상숭배는 자기 공로입니다. 겉으로만 보면 대단히 종교적인 것 같고, 죄를 미워하고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 같은데, 사실은 가장 악독하게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가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공로에 자기 공로를 덧붙이려는 문제가 바로 교회가 처음 시작할 때부터 있었던 것입니다. 바울이 갈라디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습니다. 그런데 유대주의자들이 와서 다른 것을 보태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예수도 믿고, 율법도 지켜라는 것입니다. 예수 믿는 것을 포기하라고 말한 것이 아닙니다. 거기다 무언가를 덧붙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뭐라고 말합니까?

 

“(4)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갈 5:4)

 

입으로는 그리스도를 시인해도, 실상은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는 것이라고 경고한 것입니다. 그러면 율법 지키지 말라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구원받으려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구원받은 자로서 어떻게 감사하며 살아야 하는가 하는 것과 관련해서 율법을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은 자의 살아가는 방도가 주의 계명의 말씀인 것이지, 주의 계명의 말씀을 지켜서 구원받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이 순서가 바뀌면 은혜의 종교가 율법 종교로 바뀌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 당시만의 문제가 아니라, 그리고 로마가톨릭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천성적으로 지독한 율법주의자들이고, 우리 안에는 자신의 명예와 공로를 사랑하는 죄악된 본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적인 생각이 우리에게 다 있습니다. 알미니안의 주장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의 구원을 이루어 놓으셨으니, 우리가 구원받으려면 자신이 믿음으로 그것을 받아들이고 완성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이루신 구원에 이제 우리 편에서도 뭔가를 보태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 반절하셨으니 우리가 나머지 반절을 하자는 것입니다. 즉 내가 믿어야 하고, 내가 끝까지 순종하면서 신실하게 살아야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그런 것입니까?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100% 전부를 하셨고 우리는 그것을 믿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에 보면 행위에 대한 강조점들이 있고, 신자라도 똑바로 살지 못하면 심판받고 말 것이라는 수많은 경고들이 나옵니다. 그래서 구원에 있어서 우리의 행함이 매우 중요합니다. 행함을 무시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행함은 이미 구원받은 의롭게 된 신분에서 나오는 자연스러운 열매와도 같습니다. 좋은 나무는 반드시 좋은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서 끊임없이 은혜를 베풀어주셔서 우리로 거룩한 삶으로 진전해 나아가게 하시는 것을 말합니다. 다만 여기에 우리가 순종하여 따라가는 것으로서 우리의 노력과 애씀과 행위를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구원은 협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 십자가 은혜의 공로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에 신자라도 똑바로 살지 못하면 망할 것이라는 경고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때때로 신자가 이러한 은혜를 망각하고 죄의 길로 갈 것 같으면, 잘못 살면 멸망하고 말 것이라는 통렬한 경고를 통해 신자들을 일깨우셔서 구원의 길을 완주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 안에서 주어진 완전한 구원을 아는 것에서 오는 확신과 더불어서 하나님 나라의 ‘아직 아니’의 측면과 관련해서 우리가 잘못 살면 망할 수도 있다라고 하는 적절한 긴장감을 동시에 가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그래서 그 긴장감을 가지면서 더욱 주님을 붙잡고 의지하며 신앙의 길을 걸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베푸신 구원의 은혜와 예수님의 사랑을 잊어버리고 그러한 경고의 말씀들만을 생각하게 될 때 우리는 적절한 긴장감 정도가 아니라, 평생 구원의 확신 없이, 그렇게 구원이 자기가 하는 것에 달려있다는 식으로 늘 자신의 행위에 얽매이는 신앙생활 해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이요,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공로를 의지하는 배은망덕의 우상숭배인 것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유일한 중보자, 그리고 완전한 중보자 예수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의 행함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구원받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과 행복에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 다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충분하다 하는 것이 늘 인정되고 고백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 안에 끊임없이 자기 공로를 붙잡고자 하는 이 악독하고 교만한 종교성과 날마다 싸워가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말씀과 기도에 힘써서 우리 안에 악한 종교성을 죽여주시고 예수님만 믿고 의지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우리의 죄로부터 건져내셔서 구원하시고 참 행복을 누리게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가 입으로만 부를 것이 아니라, 그분을 내 마음에 구세주로 인격적으로 모시고 살고, 또 일평생 그분만을 의지하는 복된 인생들이 다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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