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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20-23문
문답내용 20문 : 그러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멸망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답 :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서 그로부터 오는 모든 은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21문 :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는 확실한 지식일 뿐 아니라, 성령님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 곧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22문 :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답 : 복음에 약속된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보편적이고 의심할 여지없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조항들인 사도신경이 요약하여 가르쳐줍니다.

23문 : 사도신경의 조항들은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7주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요절 엡 2:8

 

20문 : 그러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멸망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답 :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서 그로부터 오는 모든 은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21문 :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는 확실한 지식일 뿐 아니라, 성령님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 곧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22문 :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답 : 복음에 약속된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보편적이고 의심할 여지없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조항들인 사도신경이 요약하여 가르쳐줍니다.

 

23문 : 사도신경의 조항들은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1.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가?

 

지난 시간에 우리는 중보자가 우리에게 절실하게 필요하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그 중보자는 의로운 참 사람이어야 하고, 그리고 참 하나님이어야 하는데, 이러한 조건을 만족하는 유일한 중보자는 예수 그리스도 밖에는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러한 사실을 어디서 알았냐고 물어봅니다. 이에 대해서 “이러한 사실을 우리는 복음에서 압니다.” 그렇게 대답합니다. 그리고 이 복음은 신구약 성경 전체에서 발견된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우리를 위해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음을 말하니깐, 이제는 이렇게 묻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중보자가 이 세상에 오셔서 구속을 이루셨으니 이제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것 아닙니까?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이 죄인이 되어 사망에 이르렀으니, 둘째아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의인이 되어 생명에 이르는 것 아닙니까?” 성경을 보면 그렇게 말하는 것 같은 구절들이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고전 15:22)

 

이 구절 보면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그런데 문맥을 잘 봐야 합니다. 그 다음 구절을 보면...

 

(23)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 자요

 

모든 사람이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붙은 모든 사람임을 우리는 이 구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아담 안에서 죽게 된 “모든 사람”과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 “모든 사람”의 범위가 다른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을 얻는 사람이 제한되어 있음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에 대해서 어떤 사람들은 반대하면서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렇게 말씀하셨어도 결국에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받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모든 사람이 구원받지 못한다 하더라도, 무슨 종교든 간에 참되게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무슨 종교든 간에 거기서 진리의 도를 깨우치고, 거기서 신을 발견하고 만나고(결국 같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거기서 영적인 체험을 하고 신앙의 경지에 이르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주장하는 신학자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러한 소위 하나님보다 인심이 좋은 목사, 예수님보다 사랑이 많은 신학자들이 인기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성경 가지고 성경 허무는 사람들이고, 복음전한다고 하면서 도리어 복음을 훼방하는 사람들입니다.

 

“(14)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요 10:14-15)

 

이 말씀에서 보는 것처럼 예수님은 양이든지 이리든지 늑대든지 상관없이 모든 사람들을 위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자기 양을 위해 죽으시는 것입니다. 즉 모든 사람이 구원받는 게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지만, 나로 말미암지 않고도 아버지께로 올 자가 많으니라...” 이렇게 넉넉하게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다.”라고 분명히 선언하셨습니다. 또 사도행전에서는 “(12)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행 4:12). 기독교는 철저하게 배타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러한 배타성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지만, 그럴지라도 이 진리를 우리가 고수하고 이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2.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구원의 핵심

 

그러면 수많은 사람들 중에 누가 구원을 받습니까?

 

20문 : 그러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멸망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답 :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서 그로부터 오는 모든 은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오직 믿는 자만 구원받는다고 선언합니다(롬 10:9-10). 그런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단순히 믿는 자만 구원받는다 하지 않고,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서 그로부터 오는 모든 은덕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라고 길게 설명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무엇인지, 그리고 믿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기에 구원받는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접붙여진다는 것입니다.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구속의 효력이 우리에게 적용되는 것입니다.


과일농사를 지을 때 접붙임을 많이 하는데, 접붙임은 다른 종류의 나무를 인위적으로 절단면을 따라 붙여서 하나의 개체로 만드는 방법입니다. 이렇게 접붙이면 뿌리와 나무 부분은 영양을 공급해주는 역할을 하고(대목), 거기에 접붙임을 한 나무와 가지는 그 영양분을 받아서 열매를 맺는 역할을 합니다(접수, 수목). 왜 접붙임을 하느냐 하면, 여러 가지 유익을 얻기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가지는 나무가 전해주는 영양분대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는데, 나무마다 뿌리에서 끌어오는 영양분의 성분이 다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뿌리 역할을 하는 대목의 영양성분을 이용해서 열매의 품질과 수확량이라든지 그 외에 여러 가지 효과들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접붙이는 기술이 예로부터 발전했는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바로 이러한 접붙이는 농사기법을 가지고서 우리의 구원의 원리를 비유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는 비유를 그대로 가져다쓰는 것이죠.

 

“(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18)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19)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20)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21)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롬 11:17-21)

 

이스라엘 백성 중에 상당수가 버림을 당하고, 이방인 중에 상당수가 하나님의 백성에 편입되는 일을 두고, 마치 감람나무 농사짓는 사람이 감람나무 접붙임을 하는 그 상황을 빌어 와서 설명하는 것입니다. 원가지가 있는데, 일부만 남겨두고 나머지는 다 잘려나갔다고 했습니다. 이 원가지는 유대인들을 말하는데, 유대인들 중 남은 자만 구원받고 나머지는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그런데 거기 빈자리에 돌감람나무가 접붙여졌습니다. 이 돌감람나무는 이 서신을 받는 로마 성도들로서 이방인을 의미합니다. 구원에 대해서는 외인이었던 이방인들이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서 그로부터 오는 죄사함과 영생의 진액을 받아 누리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유대인들은 왜 잘려지고 이방인들은 왜 접붙여졌습니까? 그것은 유대인들은 믿지 아니했기 때문에 잘려나갔고, 이방인들은 믿었기 때문에 이방인임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도바울은 그것으로 자긍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원가지도 아끼지 않았는데, 너희 일까 보냐...” 이렇게 믿는 자만이 그리스도께 접붙여져서 그분으로부터 구원과 영생의 효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믿는 신자와 자신의 관계에 대해서 비유적으로 설명하시기를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가지가 나무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듯이 너희도 나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과 신자 사이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생명적인 연합, 생명적 관계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번 붙었다가 다시 떨어져서 사는 것이 아니라 일평생 예수님께 붙어 있어서 양분을 받아먹고 열매를 맺어 가는 것이죠. 그런 가지가 구원을 받고, 반대로 예수님께 붙어있지 않는 가지마다 사람들이 모아다가 다 불사릅니다. 붙어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도 못할 뿐만 아니라 궁극적인 구원도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볼 때 바로 그리스도께서 암만 십자가에 죽어주셨어도 그분과 연합하는 일이 있지 않고서는 그 십자가 죽음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오직 믿음으로 그분과의 연합하여져서 그 모든 은덕(유익들)을 받아들이는 자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의 참된 의미입니다.

 

내가 정말 예수님을 믿는가 하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그저 교회 다니고, 이력서의 종교란에 기독교라고 쓴다고 해서 믿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본질이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체험을 해서, 그분이 이루신 구속이 나에게 구원이 되었음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분과 연합했습니까? 그래서 그분으로부터 오는 모든 은덕들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까?

 

“(5)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사도바울은 믿음에 있는가 확인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우리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합니다. 어떻게 확인합니까?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는지 아니 계시는지 살펴봄으로써 믿음의 여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에이.. 목사님.. 제가 왕년에 얼마나 믿음이 뜨거웠고, 또 얼마나 신비한 영적 체험을 했는데요... 나는 믿는 사람이 틀림없습니다...” 절대로 어떤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했다고 해서 스스로 예수님 믿는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놀라운 초자연적인 기적을 체험하고 권능을 행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위대한 신앙의 업적을 남겼어도 그것이 자신이 참된 믿음에 속해 있다는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참된 믿음에 속한 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의 모든 은덕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인 자입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지 그것을 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예수님이 계십니까? 만일 못 느낀다면 심각한 문제입니다.


물론 못 느낀다고 해서 예수님이 내 안에 무조건 안계시고, 나는 믿음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사도바울이 지금 이 말씀을 하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계신 것을 아는 자는 믿음에 속한 자고, 그리스도가 자기 안에 계신다는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하면 그는 구원의 은혜가 없는 자다 하는 이분법적인 사실을 말해주려고 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닌 것입니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를 향해서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 성도들이 이미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요, 그들 가운데 성령이 계시고, 그리스도께서 계시는데, 왜 그 사실을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하고 책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에서도 사도 바울은 “너희가 성령의 전인데 왜 그 성령의 전으로 창기의 지체를 만드는 삶을 살고 있느냐... 정신을 차리고 회개해라” 그렇게 말했습니다. 그런 것이죠.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 계시는데 왜 그것을 모르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처럼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살아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정신을 차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라는 것이죠.


실제로 교회에는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경험이 없는 거짓믿음에 속한 자도 있겠지만, 상당히 많은 경우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은혜를 받았음에도 여전히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자신이 성령의 전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처럼 죄 가운데 거하면서 성령을 소멸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하도 답답해서 “너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시는지 왜 알지 못하느냐... 정말 그리스도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버리운 자라는 것을 너희가 모르느냐... 정신차려서 회개하고 너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깨닫고 자신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라...” 지금 그렇게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 앞에서 이런 의미로 자신의 믿음을 시험하고 확증해야 하는 것입니다. 정말 내가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체험 자체가 없는 사람인지, 아니면 거듭나서 그분과 연합하기는 했는데, 그 사실을 잊어버리고, 자신이 성령의 전인 줄 알지 못하고,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처럼 그렇게 자기를 의지하고 죄 가운데 살고 있지는 않는지 자기를 돌아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우리로 우리 안에 그리스도께서 계심을 깨닫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고, 우리 자신이 그리스도와 한 생명이 되었고,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알고, 이 예수를 온전히 의지하는 자가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3. 참된 믿음이란

 

참된 믿음이란 바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의 은덕을 믿는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좀 더 구체적으로 그렇게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참된 믿음이 무엇인지 알아보겠습니다.

 

21문 : 참된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답 : 참된 믿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는 확실한 지식일 뿐 아니라, 성령님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 곧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대답이 깁니다. 긴 것은 토막을 쳐서 먹어야 합니다. 한꺼번에 먹으면 입이 찢어집니다.

 

가. 믿음은 확실한 지식

 

참된 믿음이 무엇이냐 하면, 일단 확실한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참된 것으로 여기는 확실한 지식일 뿐 아니라...”

 

오늘날 교회 가운데 이런 분위기가 있습니다. “뭘 그렇게 꼬치꼬치 설명합니까? 그런 것들은 목사님이나 알면 되고, 우리에게 설명 안 해주셔도 됩니다. 우리는 어쨌든! 다 믿습니다.” 그것은 믿는 것입니까 무시하는 것입니까? 주님께서는 자세히 설명하려고 성경을 한 페이지라도 더 만들어주셨는데, “이렇게 두꺼운 성경 필요 없습니다. 우리는 통째로 믿습니다.” 그리고 집어넣으면,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입니까? 안 믿는 것입니다. 믿는다고 할 때는 성경의 한 페이지도 소홀히 하지 않고 차근차근 다 읽고 그것이 참으로 그러하다라고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성경 가르치는 것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성경을 이렇게 체계 있게 잘 가르치도록 신앙의 선배들이 그렇게 목숨을 내걸고 우리에게 교리라는 것을 만들어 주었는데도, 사람들은 이런 교리가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성경은 통째로 믿습니다.” 그러고서 “예수! 예수!”하면서 노래하고 춤은 추는데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 속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과 사건들이 닥칠 때 성경과는 거꾸로 가고 있으면서 자기는 믿는다고 말하는 것이죠. 이것이 오늘날 기독교에 팽배한 일입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성경에 무지한 목회자들이 근본 문제이지만, 또한 어찌하든지 성경 전체를 바르게 배워나가려는 마음이 없는 성도들도 문제인 것입니다.


교수님들이 중국 선교지에 방문해서 집회를 인도하고 가르치는 경우가 많은데, 돌아와서 하시는 이야기가 “중국 성도들은 말씀 듣는 자세가 우리랑은 다르다. 거기는 우리 70-80년대처럼 신앙이 뜨겁다.” 그렇게 말합니다. 말씀을 사랑하고 말씀을 배우고자 하는 열망과 소원은 뜨거운데, 그렇게 가르쳐줄 사람이 없는 것으로 인해 늘 안타까워한다고 합니다. 특히 그들이 성경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는 한 예가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요즘 중국 성도들 사이에 유행하는 선물이 필사하는 성경책입니다. 이 성경을 펴보면 안에 글이 하나도 없고 백지로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전부 자기 손으로 쓰게 되어있는 것입니다. 중국성도들은 그런 선물 받으면 부담스러워하는 게 아니라 너무 좋아하고 기뻐한다고 합니다. 여러분은 이런 선물 받으면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그 선물은 좋은 선물인가 고달픈 선물입니까?


중국 땅, 북한 땅에서는 성경을 필사하는 게 예사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귀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북한은 성경을 필사하는 정도가 아니라 달달 외우고 다닙니다. 성경이 귀할 뿐만 아니라 들고 있다가 걸리면 수용소에 잡혀 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달달 외우고 다녀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북한 땅에서 신앙인들은 목숨 걸고 신앙 지키는데, 남한 땅에 있는 성도들은 배도 부르고, 할 일도 많고, 취미생활 할 것도 많고, 볼 드라마도 많고, 성경 쓰기는 고사하고, 성경 한 장 읽을 세도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없는 그런 무기력한 종교활동일 뿐입니다.


믿음은 확실한 지식입니다. 성경을 읽고 배워서 확실히 아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한번 배웠다고 해서 성경전체를 완벽하게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성경의 깊이를 평생을 가도 다 파악할 수 없습니다. 그럴지라도 우리는 그것을 목표로 해서 평생을 배워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일부분만 읽고 배울 것이 아니라, 자기가 좋아하는 부분, 자기 마음에 드는 부분만 취사선택할 것이 아니라,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22장까지 하나님께서 그의 말씀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하신 모든 것을 참된 것으로 알고, 귀히 여기고,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그 성경전체를 읽고 배워 가는데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성경전체에 대한 확실한 지식입니다. 우리가 모르고 믿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고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예수님을 아는 만큼 우리는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식이 전부가 아닙니다. 만일 지식이 믿음의 전부라면, 이 세상에서 머리 좋고 공부 많이 한 신학자가 제일 믿음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무식한 시골 농부가 신학자보다 더 믿음이 좋을 수가 있습니다. 만일 지식이 믿음의 전부라면 필시 사단 마귀가 이 세상에 가장 믿음이 좋을 것입니다. 사단 마귀는 그 어떤 탁월한 신학자보다도 하나님에 대한 선명한 지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 마귀는 믿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참된 믿음은 지식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신뢰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가르침이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결론입니다.

 

나. 믿음은 신뢰

 

다시 답을 보면, 믿음은 확실한 지식 일뿐 아니라 성령님께서 복음으로써 내 마음 속에 일으키신 굳은 신뢰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가 성경을 읽고 배울 때, 그 지식을 사용하셔서 우리 안에 하나님을 향한 신뢰의 마음을 일으키십니다.

 

“(16)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7)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6-17)

 

여기서도 보면, 베드로가 믿은 것에 대해서, 그 믿음의 출처가 하나님께 있음을 예수님은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로서, 믿어보겠다는 결심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말미암아 믿어지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러한 베드로의 예수님께 대한 신뢰와 확신을 갖다가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이라 하여 ‘아는 것’, 곧 ‘지식’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신뢰와 지식을 동일시하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믿음이란 지식과 신뢰 두 가지인데, 이 두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이것을 잘 보여줍니다. 그래서 믿음은 지식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신뢰라고 말합니다(not only ~ but also ~ 용법). 일단 지식을 쌓고 나중에 신뢰가 생기고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신뢰가 없으면 지식도 없고, 지식이 없으면 신뢰할 수 없습니다. 아는 만큼 신뢰하게 되고, 신뢰하는 만큼 더 알게 됩니다. 그러니깐 신뢰 없는 지식은 믿음이 아닙니다. 신뢰는 없어도 지식이 있으면 믿음의 반쪽이라도 가진 것이 아니라, 믿음이 아예 없는 사람입니다. 지식만 있고, 확신과 신뢰가 없는 믿음을 우리가 역사적인 믿음이라고 합니다. 역사 교과서를 배우듯이 성경배우는 사람입니다. 반대로 신뢰와 확신만 있고 지식이 없는 믿음을 갖다가 우리가 사이비신앙, 무당신앙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식과 신뢰란 믿음의 두 구성요소가 아니라, 하나의 믿음의 두 측면을 말하는 것으로서 사실은 같은 맥락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지식”이라는 개념만 잘 살펴보더라도 이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알다(야다)’라는 말을 체험적인 앎으로 이해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동침하매...”라는 말은 원어로 보면 “아담과 하와가 알매(야다)...”로 되어 있습니다. 가브리엘이 마리아에게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니깐 마리아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내가 남자를 알지 못하매 어찌 그럴 수 있습니까?” 그러므로 지식은 단순히 상대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몸을 섞으면서 체험적으로 아는 그런 지식을 말하는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로 예수님께서는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17:3). 지식은 신뢰를 동반한 체험적인 지식이고, 반대로 신뢰는 지식에서 비롯된 확신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성경을 배워서 여러 가지 정보들을 습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그 가르침이 참으로 그러하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새겨서, 그 성경의 가르침에 나의 존재와 삶 전체를 다 내 던져 넣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신뢰입니다. 그런데 그냥 신뢰가 아니라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표현하기를 “굳은 신뢰(assured confidence)”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뿌리가 깊이 박혀 있는 신뢰로서, 천지가 무너지고, 내가 그것 때문에 손해를 보고, 가족과 원수가 되어도, 핍박이 있어도, 심지어 그것 때문에 죽게 되어도, 요지부동하지 않고, 그것을 붙잡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굳은 신뢰와 믿음이 나에게 있습니까? 이 믿음을 가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다. 믿음은 공로가 될 수 없다

 

그 다음 답변을 계속 보십시오.

 

“곧 순전히 은혜로, 오직 그리스도의 공로 때문에 하나님께서 죄 사함과 영원한 의로움과 구원을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용서받고 의롭다 함을 받은 게 아닙니다.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로 의롭다 함을 받고 죄 용서함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받아들이는 손입니다. 굶어 죽어가는 거지에게 누군가가 빵을 줍니다. 그러면 그 빵을 손으로 받아서 먹고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손 때문에 배고픔을 해결하고 이 사람이 살게 되었습니까? 아닙니다. 그 사람이 준 빵 때문에 산 것입니다. 손은 그저 그 빵을 받는 수단에 불과한 것입니다. 믿음도 그렇습니다. 믿음이 구원받는 공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받지만, 믿음 때문에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을 갖다가 자기 공로로 삼고, “나는 믿었고 너는 안 믿었다.” 그렇게 자기를 자랑하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왜 못믿냐” 그렇게 말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엡 2:8-9)

 

믿음은 근본적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이요, 뿐만 아니라 믿음의 본질도 내가 믿었다는 그 행위에 있는 게 아니라, 무엇을 믿느냐 하는 믿음의 내용에 있습니다. 누구를 믿었느냐 무엇을 믿느냐가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그분이 값없이 베풀어 주신 은혜 때문에 내가 구원받은 것입니다.

 

라. 믿음은 개인적이고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것

 

이어지는 답변을 보십시오.

 

“다른 사람뿐 아니라 나에게도 주심을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단순히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하나님은 (그냥 뭉뚱그려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다.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라는 주장들을 이론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의미 없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이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바로 나!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셨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냥 대충 뭉뚱그려서 우리를 위해 죽어주셨다라고 말하지 않고, 바로 나!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어주셨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음이란 철저하게 개인적이고 인격적이고 체험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나와의 인격적인 체험과 확신 없이, 그저 공동체 신앙고백에 숨어서, 소위 꼽사리 껴서 다른 사람들의 신앙에 얹혀 갈려고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남들이 말하는 하나님, 남들이 체험한 하나님만 말하고, 자기는 별 간증거리가 없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스스로 속는 것이죠. 참된 믿음은 그저 뭉뚱그려서 우리의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내가 만난 나의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에게도...” 이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인격적인 체험이 바로 참된 믿음입니다.

 

4. 복음의 요약 : 사도신경

 

이제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으니 이제 본격적으로 그러면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그 복음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다룹니다. 사도신경입니다.

 

22문 : 그러면 그리스도인은 무엇을 믿어야 합니까?
답 : 복음에 약속된 모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 복음은 보편적이고 의심할 여지없는 우리의 기독교 신앙의 조항들인 사도신경이 요약하여 가르쳐줍니다.

 

이 사도신경은 칼시돈 신조(AD 451년)가 만들어진 시기와 비슷한 시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그러니깐 이 사도신경은 사도가 만들어서 사도신경이 아니라, 사도들의 가르침, 곧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만든 교리다 라고 해서 사도신경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교리들을 암만 찾아보아도 우리의 믿는 바를 이렇게 짧으면서도 또한 믿음의 핵심을 잘 표현해낸 교리는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릴 때마다 이 사도신경을 고백하는데, 그렇게 하는 이유는 하나님 앞에서 그리고 온 세상을 향해서 우리의 믿는 바가 이렇게 하나가 되었음을 고백하기 위함입니다. 같은 교회를 다녀도 사람들마다 성경해석이 틀리고 신학이 조금씩 틀리지만, 그러나 복음의 본질에 있어서는 일치해야만 하나 된 주님의 몸 된 교회 공동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리고 거기서만 예배가 성립하는 것입니다.


한편으로 우리가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주의해야 할 것은 사도신경을 읽는 것은 기도하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대부분 눈 감고 사도신경을 외우는데, 그렇게 하면 절대로 안 된다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해서는 이 사도신경을 읽는 참된 의미가 잘 드러나지 않는 것입니다. 주기도문 외울 때는 그것이 기도이기 때문에 눈감고 외우지만, 그러나 사도신경 할 때는 눈뜨고 찬송가 앞에 사도신경을 보면서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과 온 세상 앞에서 “우리 모두가 믿는 것과 아는 일에 이렇게 서로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는 의미로 선언하듯이 읽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앞으로 몇 주 동안 이 사도신경에 대해서 깊이 배우게 될 것입니다.

 

23문 : 사도신경의 조항들은 무엇입니까?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만에 죽은 자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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