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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26-28문
문답내용 26문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때 당신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답 : 아무것도 없는데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하신 경륜과 섭리로서 지금도 그것들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나는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나에게 공급해주실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눈물의 골짜기와 같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내게 보내신 모든 역경들이 결국 나에게 좋은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신실하신 아버지로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7문 :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란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미치는 하나님의 힘을 가리키는데, 이 힘으로 그가 하늘과 땅과 모든 창조세계를 그의 손으로 여전히 붙들고 계시며 다스리시는데,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등의 모든 것들이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으로부터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8문 :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 앎으로 우리가 모든 곤란한 형편에서도 인내하고, 형통할 때는 감사하며,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모든 피조물이 그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으며, 그의 뜻을 거슬러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강설날짜 2013-11-1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설 제9-10강(26-28문)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말씀 : 창 1:1

 

26문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때 당신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답 : 아무것도 없는데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하신 경륜과 섭리로서 지금도 그것들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나는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나에게 공급해주실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눈물의 골짜기와 같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내게 보내신 모든 역경들이 결국 나에게 좋은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신실하신 아버지로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27문 :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란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미치는 하나님의 힘을 가리키는데, 이 힘으로 그가 하늘과 땅과 모든 창조세계를 그의 손으로 여전히 붙들고 계시며 다스리시는데,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등의 모든 것들이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으로부터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28문 :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 앎으로 우리가 모든 곤란한 형편에서도 인내하고, 형통할 때는 감사하며,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모든 피조물이 그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으며, 그의 뜻을 거슬러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사도신경이 세 조항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그것이 삼위일체적인 구조로 되어 있다는 것에 대해서 배웠고, 특별히 그 서론으로 삼위일체 교리에 대해서 간단하게 배웠습니다. 오늘은 그 세 조항 가운데 첫 번째 조항으로서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는 고백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배우고자 합니다. 사도신경 원어로 보면 단어들의 순서가 “나는 믿습니다.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로 되어 있습니다. 내용만 보면 굉장히 단순하고 짧습니다. 세 조항 가운데 가장 짧은 조항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것을 고백하면서 너무 쉽게 훅 지나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안 그래도 사도신경을 굉장히 빨리 읽는데, 첫 번째 조항이 아주 짧으니깐, 생각할 틈도 없이 지나가는 것이죠. 그러나 이 짧은 어구는 결코 그 내용이 단순하지 않고, 매우 풍부하고 깊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1. 전능하신 하나님

 

26문 :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고백할 때 당신은 무엇을 믿는다는 것입니까?
답 : 아무것도 없는데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하신 경륜과 섭리로서 지금도 그것들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나는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나에게 공급해주실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눈물의 골짜기와 같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내게 보내신 모든 역경들이 결국 나에게 좋은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신실하신 아버지로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먼저 그분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한글번역본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이라고 되어 있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속성을 창조사역에 국한시키는 듯한 뉘앙스가 나타납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온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즉 창조는 그 전능하신 하나님이 하시는 여러 가지 사역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전능하신 하나님에 대해서 말할 때는 창조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아주 자주 언약과 관련해서 말씀합니다.
 
“(1)아브람의 구십 구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2)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세워 너로 심히 번성케 하리라 하시니”(창 17:1-2)

 

하나님은 언약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시는 하나님으로서 전능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8)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계 1:8)

 

여기도 보면 전능하심은 알파, 곧 창조에만 관련되어 있는 게 아니라, 알파에서 오메가까지... 즉, 창조하셨을 뿐만 아니라 창조하신 것을 자신의 뜻을 따라 다스리시고 섭리하시고, 그리하여 궁극적으로는 영원전에 작정하신 것을 이루시고 완성하시는 것 까지 다 전능하심과 관련되어 있는 것입니다.

 

“(8)네 생물이 각각 여섯 날개가 있고 그 안과 주위에 눈이 가득하더라 그들이 밤낮 쉬지 않고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하고”(계 4:8)
“(17)가로되 감사하옵나니 옛적에도 계셨고 시방도 계신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여 친히 큰 권능을 잡으시고 왕 노릇 하시도다”(계 11:17)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신경 첫 번째 조항을 읽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 하면서 무엇을 떠올려야 하는 것입니까? 창조만 생각하지 말고, 창조와 더불어 섭리도 생각하면서 고백해야 합니다. 사도신경에 비록 섭리라는 말이 없어도 그렇게 생각하고 고백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이러한 측면을 잘 살려서 사도신경 첫 번째 조항에는 창조뿐만 아니라 섭리도 포함되어 있음을 분명히 언급합니다.

 

“아무것도 없는데서 하늘과 땅과 그 가운데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한 그의 영원하신 경륜과 섭리로서 지금도 그것들을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가...”

 

2. 이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렇게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성부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이십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특별히 그냥 아버지가 아니라 영원하신 아버지라고 고백합니다. 그것은 3세기 아리우스라는 사람이 “아버지가 아들을 낳았다고 했으니, 그러면 낳기 전에는 존재하지 않은 것 아니냐?” 그렇게 이상한 주장을 했기 때문에, 그것을 염두에 두면서 성부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아버지라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이 시간을 창조하시기 전, 영원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습니다. 아리우스의 오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태어나신 것을 갖다가 자꾸 시간 개념 속에서 이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물론 시간 개념에서는 전후가 있고 일의 흐름이 있습니다. 태어났으면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태어나신 것은 그러한 시간이 없는(timeless) 영원 전에 태어나셨습니다. 그래서 아리우스처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히려 성부 하나님은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시는 하나님이시고,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히 태어나시는 하나님으로서 서로의 관계성을 얘기해줄 뿐이지, 존재론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입니다.

 

3.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

 

답변을 이어서 보면, 이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또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하신 아버지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나의 하나님과 나의 아버지가 되신다는 것을 내가 믿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포인트는 “예수 그리스도 때문에”라는 말입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십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죄사함만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고 딸들이 되는 것입니다.

 

“(17)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를 만지지 말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 가지 못하였노라 너는 내 형제들에게 가서 이르되 내가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하라 하신대”(요 20:17)
“(15)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롬 8:15-16)
“(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6)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엡 1:5-6)

 

이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가 생각해보십시오. 우리가 어떤 존재인데, 감히 하나님을 나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습니까? 우리는 다 더러운 죄인이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구속을 힘입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일평생 그분의 사랑을 받고, 보호하심을 받으며 살게 된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은혜의 사실을 고백하는 것이죠.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을 내가 믿사오며”가 아니라,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가 되심을 나는 믿습니다.” 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능하신 하나님이 곧 나의 아버지라는 사실 때문에, 그분의 창조와 섭리에 관한 사실이 막연하거나 추상적이거나 공허한 교리가 아니라, 바로 나에게 직접적으로 위로와 은혜를 가져다주는 복음진리가 됩니다.

 

4.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

 

그러므로 성도는 이 은혜로운 사실 앞에서 어떤 반응을 나타낼 수밖에 없습니까? 그것은 바로 하나님께 대한 굳은 신뢰로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이어지는 답변을 보십시오.

 

“... 나는 그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합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의 몸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나에게 공급해주실 것을 전혀 의심하지 않습니다.”

 

먼저 무엇에 대한 신뢰냐 하면, 나의 몸과 영혼의 모든 필요를 책임져주시고 채워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31)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32)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1-33)

 

보통 부모가 자식한테 뭐라 말합니까? “네가 알바해서 돈 벌어서 너 스스로 먹고 살아라” 그렇게 말합니까? 그런 부모는 거의 없습니다. 오히려 대부분의 부모는 “너 먹고 쓸 거 내가 다 책임져줄 테니 너는 공부만 해라... 등록금 다 대줄테니깐... 너는 공부만 해라...” 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그런 식으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너의 먹고 사는 문제, 내가 다 책임져 줄 테니 너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해서만 살아라...”


물론 이 말을 오해해서 직장 다 떼려치우고, 전도만 하고 기도만 하면서 살면 하늘에서 돈이 뚝 떨어진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책임져주셔도 결국 우리가 열심히 일해서 돈 벌어 먹고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필요를 채워주시는 주된 방식인데, 그래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건강 가지고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일하지 말라는 말이 아니라, 세상일로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불확실한 미래 일을 염려하기 시작하면 우리는 본성적으로 돈에 집착하면서 돈에 노예가 되고, 그것을 땅에 축적하는 데로 빠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죠. 염려로 인해서 재물을 이 세상에 축적하려고 하지 말고 아낌없이 주와 복음을 위해 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고 잘 곳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아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위해 살면 하나님이 모든 것을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재물관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까? 우리가 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무엇을 신뢰합니까? 답을 보면...

 

“또한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눈물의 골짜기와 같은 세상에서 사는 동안 내게 보내신 모든 역경들이 결국 나에게 좋은 것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전능하신 하나님으로서 능히 그렇게 하실 수 있기 때문이며, 또한 신실하신 아버지로서 그렇게 하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을 눈물의 골짜기로 표현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삶이 고난의 삶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눈물의 골짜기와 같은 세상에 사는 동안 어떠한 일이 일어나도, 심지어 나에게 나쁜 일, 악한 일들이 일어난다 할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의 섭리 하에 일어난 일이고, 반드시 나의 유익을 위해서 주신 것임을 믿는 것입니다.

 

“(28)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롬 8:28)
“(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 8:32)

 

우리를 위해 아들을 주신분이 무엇인들 우리에게 아끼시겠습니까? 그러므로 현재 나에게 아주 좋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그것조차도 하나님께서는 다 선한 것으로 바꾸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역경’으로 번역된 단어가 사실은 ‘evil(사악한)’이라는 단어입니다. 그래서 영어판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하나님이 우리에게 보내신 사악한 일들...” 이 됩니다. 이 표현이 굉장히 오해의 소지가 있어서 ‘역경’, 또는 ‘고난’으로 순화해서 번역하였습니다. 이러한 표현은 단지 단순한 불행스러운 일들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굉장히 악한 일들도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사단 마귀가 교회를 핍박하고 공격하는 것이 그것입니다. 그것은 굉장히 악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렇게 교회가 핍박을 당하고 공격을 당하도록 허용하십니다. 그렇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이 악한 일을 역이용하셔서 교회를 성숙시키시는 방도로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창세기 3장 15절에서 여자의 후손만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뱀의 후손도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 본다면 하나님께서 뱀은 다 멸하시고 여자의 후손만 남겨두시면 될텐데 하나님께서는 뱀의 후손들도 살려주시고, 여자의 후손과 뱀의 후손 사이에 치열한 갈등과 반목, 전투가 있게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 뱀의 후손을 도구로 삼아 구속역사를 이루시고 여자의 후손으로 세상을 구원해 가시고자 하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이 애굽의 노예가 되게 하사 고난을 당하게 하셨습니다. 애굽은 뱀의 후손으로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핍박하는 것이고, 그것이 다 하나님의 허락하심 하에 일어나는 일입니다. 즉 이를 통해서 이스라엘로 하나님을 기억하고 찾고 부르짖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은 배부르고 등 따시면 하나님을 찾지 않습니다. 인간의 죄악된 본성은 그 인생이 코너로 몰려야 하나님께 두손두발 다 들고 의지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스라엘로 고난 가운데 거하게 하시고, 그들이 부르짖을 때, 모세를 보내사 애굽을 밟으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것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우상숭배하며 죄를 범할 때, 뱀의 후손들인 이방인들을 사용하셔서 그들을 징계하십니다. 그러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정신을 차리고 회개하면서 부르짖죠. 그러면 사사를 보내셔서 이방민족을 밟으셔서 그들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결국 여자의 후손 언약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궁극적으로 성취됩니다. 뱀의 후손인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핍박하고 죽입니다. 굉장히 사악한 일이죠. 그런데 하나님은 그러한 뱀의 후손들의 악을 역이용하셔서 구속역사를 완성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도 교회가 세워져 감에 있어서 고난과 핍박과 여러 가지 사악한 일들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일을 통해서 교회는 정결하게 되고 오히려 믿음이 굳건히 세워지는 역사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성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안에 남아있는 죄와 악도 다 이유가 있어서 남겨두신 것입니다. 만일 제가 하나님 같으면 죄만 사해주는 것이 아니라 신자들 마음에 죄성도 없애주고 천사로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의 죄책은 사해주셨지만, 우리 안에 죄성은 일부 남겨두셨습니다. 그래서 그것 때문에 우리는 매순간 넘어지고 그 죄로 인해 쓰라린 아픔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내 안에 있는 악까지도 하나님은 선용하십니다. 첫째로 이러한 우리의 죄성을 통해서 교만해지기 쉬운 우리의 마음을 낮추어 우리를 겸손케 하시고 끝까지 그리스도의 십자가공로를 붙잡게 하십니다. 둘째로 늘 죄짓는 자신임에도 여전히 은혜를 베풀어주시고 용서해주시고 회복해주시는 한량없는 은혜와 사랑을 깊이 깨닫고 엎드려 감사와 찬양과 경배를 올려드리게 하시고, 자기와 같이 연약한 자들을 향해 정죄하는 마음이 아니라 긍휼의 마음을 갖고 섬기게 하십니다. 셋째로, 그 남아있는 악과 싸우는 헌신하는 과정, 곧 사도바울이 끊임없이 자기를 쳐 복종시키면서 신앙의 경주를 힘써 싸워가는 그 과정을 통해서, 우리로 열매를 맺어 칭찬과 명성을 얻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일은 사실 오직 은혜인데, 거기에 우리로 동역하게 하심으로 열매를 맺었을 때, 우리의 공로로 인정해주시고 칭찬하시며 상주시기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라고 해봤자 너무나 볼품없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몸부림친 우리의 노력을 은혜로 좋게 봐주시고 잘했다고 칭찬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모든 허락하신 악들도 결국에는 다 합력하여 선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불행한 일로 생각되는 것들, 심지어는 나에게 악한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 그런 것들 때문에 고달프고 아프고, 눈물이 날 정도로 힘들어도, 우리는 낙심할 수 없습니다. 희망을 가질 수 있고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내가 잘났기 때문이 아니라, 무슨 방식으로든 그것을 하나님이 선용하셔서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그것을 신뢰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악을 다 합해서 선으로 바꾸실 수 있는 전능하신 분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나를 사랑하사 결코 포기치 아니하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것을 신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이 있습니까? 이 믿음을 우리가 가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5.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

 

27문 : 하나님의 섭리라는 말을 통해서 당신은 무엇을 믿습니까?
답 : 하나님의 섭리란 전능하시고 어디에나 미치는 하나님의 힘을 가리키는데, 이 힘으로 그가 하늘과 땅과 모든 창조세계를 그의 손으로 여전히 붙들고 계시며 다스리시는데, 잎새와 풀, 비와 가뭄, 풍년과 흉년,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등의 모든 것들이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으로부터 우리에게 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우리 주변에 흔히 있는, 그것도 심지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안에도 흔히 있는 생각이 무엇이냐 하면 풍년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인데, 흉년은 사단 마귀가 주었다는 생각입니다. 건강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질병은 사탄 마귀가 준 것이고, 부는 하나님이 주시지만, 가난은 사탄 마귀가 준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적이지도 않고, 성경의 근거도 없는 말이 공공연하게 교회 강단에서 말해지고 있고, 통용되고 있습니다.


물론 병과 관련해서 그것이 자신이 지은 죄와 관련이 있을 수 있고, 사단 마귀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난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로 우리의 게으름의 죄와 어느 정도 연관성이 있습니다. 사단 마귀가 우리로 게으르게 해서 가난하게 만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욥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흉년이나 재난 재해들, 사건 사고들이 사단 마귀에 의해서 생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럴지라도 그러한 사단마귀 활동이나, 우리가 죄 짓는 것 까지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 하는 것이 일차적으로 인정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질병, 가난, 재난들이 다 자신의 죄나 사단 마귀에 의해서 온 것이라고 볼 수 없습니다.


나면서부터 소경된 사람에 대해서 제자들이 “누구 죄 때문입니까?” 그렇게 물었을 때, 모든 사람들은 그것이 이 사람이 죄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대답하시기를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시는 일을 나타내시고자 함이라.”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가 소경된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인 것입니다. 사실 소경 입장에서는 평생 소경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비참하고 불행한 일입니까? 그러나 주님을 만나서 그 눈일 띄어지는 일을 통해서 주님을 믿고 주님께 영광을 돌려드리는 인생이 된 것입니다. 만일 그가 소경이 아니라 바리새인처럼 멀쩡한 눈을 가졌다면 그는 영적인 소경이 되어서 영원한 멸망에 처해졌을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 소경은 주님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그 교훈을 하시기 위한 시청각자료로 쓰임 받았습니다. 주님께 쓰임 받는 인생만큼이나 복된 인생이 어디에 있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에서 아주 당연한 진리로 통용되는 잘못된 사상, 곧 행복적인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고, 모든 불행적인 것은 사단마귀가 준 것이라고 하는 이분법적인 생각은 아주 잘못된 것입니다. 마치 선신과 악신의 거대한 영적투쟁이 우주의 역사라고 말하는 사상들, 음양의 거대한 소용돌이 그것이 역사인 것처럼 말하는 생각들, 빛은 하나님이 창조했고 어두움은 사단 마귀가 창조했다는 식의 사상들은 성경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역사와 모든 일의 근원은 오직 하나님 한분에게 있습니다.


사단 마귀의 위치라고 하는 것은 타락한 천사로서, 하나님 앞에 그저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저 하나님이 정하신 한도 내에서만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지내다가 결국에는 영원한 사망에 떨어질 존재입니다. 그러한 천사가 어떻게 하나님을 대항해서 일할 수 있으며 하나님의 작정에 어떤 수정이나 변경을 가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풍년과 흉년, 먹는 것과 마시는 것, 건강과 질병, 부와 가난, 이런 것들이 아무렇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들이 결국에는 아버지와 같은 그의 손으로부터 우리에게 오는 것입니다. 때로는 사단 마귀로부터 오는 일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의 허락 하에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따라 당신의 지혜를 따라 우리에게 주시는 형편과 처지를 각 사람에게 맞게 주시는데, 이런 내용을 아는 성도로서 어떻게 감히 이건 싫고, 저거는 좋아요 그렇게 말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말하기 어렵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현실 속에서 믿음의 눈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내게 주어진 부요의 기회도, 가난의 기회도, 건강의 기회도, 질병의 기회, 풍년의 기회도, 흉년의 기회도, 하나님께서 당신의 선하신 뜻을 따라 내게 주실 때에는 하나도 버릴 것이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불행을 겪으면서 인격이 더 성숙하게 됩니다. 반대로 불행을 거쳐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인격의 미성숙함을 느껴집니다. 물론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많은 경우에 자신의 자녀들에게 부와 건강을 주시기보다도 가난과 질병과 어려움을 주십니다. 실제로 질병 속에 있는 사람이 범죄 할 확률이 많습니까? 아니면 건강한 사람이 범죄 할 확률이 많습니까? 당연히 건강한 사람이 죄짓기 쉬운 것입니다. 그리고 돈도 마찬가지입니다. 돈 많으면 부패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들에게 딱 적당할 만큼, 아니면 조금 부족하게끔 돈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모든 신자에게 고생시키기만 하시고 부와 건강이나 성공, 이런 것은 절대로 안주십니까? 그것은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하나님을 향해 더욱 풍성한 열매를 맺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서 성공하게 하시고, 돈도 많이 벌도록 하시고, 형통하게 하시고, 건강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신 뜻 가운데 우리에게 부와 풍요와 번영을 주십니다. 그 가운데서 더욱 하나님께 헌신하게 하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또 반대로 생각해보십시오. 가난과 어려움 고난 속에서 있으면 무조건 신앙이 성숙해지느냐... 그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원망불평하고 그 인격이 삐뚤 해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깐 가난이 더 좋냐, 부가 더 좋냐... 그것을 우리가 단정해서 말할 수 없는 것이죠.


한국교회가 너무 기복신앙을 가르쳐서, “예수님 잘 믿으면 복 받는다... 세상에서 성공해서 하나님께 영광돌려드리자...” 이런 식의 잘못된 가르침이 난무하는데, 틀림없이 이런 생각들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러나 이것을 비판하다가 또 다른 극단에 치우쳐서 이제는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에서 고난 받는 것이 정상이고, 세상에서 형통하고 소위 잘되는 것에 대해서 뭔가 부정적으로만 이야기하는 경향이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지양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에서 형통하고 사업 잘되고 자식 서울대가면 죄책감 느껴야 합니까? 아닙니다. 도리어 그러한 형통한 길을 주신 것으로 인해서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헌신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은 각 사람의 형편과 처지에 맞게 하나님의 놀라운 지혜로 가장 적합하게 섭리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만 이 모든 것들이 다 하나님의 섭리 하에 있다는 것을 알고, 빈에 처하든 부에 처하든, 존귀에 처하든 빈천에 처하든 건강에 처하든 질병에 처하든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알아야 하고, 범사에 감사해야 합니다.

 

“(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8)

 

그래서 하나님의 섭리를 믿는 믿음으로 고난이 올 때에는 기도하면서 그 어려움을 인내하고, 또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고, 반대로 형통할 때는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더욱 주어진 부와 건강과 성공의 기회로 하나님께 헌신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아래와 같이 고백합니다.

 

28문 :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를 아는 것이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하나님의 창조와 섭리에 대하여 앎으로 우리가 모든 곤란한 형편에서도 인내하고, 형통할 때는 감사하며,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의 신실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굳게 신뢰할 수 있는데, 이는 모든 피조물이 그의 손안에 있기 때문에, 그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그의 사랑으로부터 끊을 수 없으며, 그의 뜻을 거슬러 움직일 수 있는 것은 단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사실을 알기에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든 상황 속에서 기뻐하고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장래 일에 대해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굳게 신뢰합니다. 왜요?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29)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요 10:29)

 

모든 만유를 손안에 쥐고 계신 그분이 우리를 포기치 않으시고 우리 인생을 붙잡고 계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장래에 일어날 모든 일들은 다 하나님의 선하신 손길로부터 오는 것으로서 나에게 유익이 되게 하실 것입니다. 어떤 유익을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까? 우리를 거룩하게 하사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게 하시는 유익인 것입니다.


이러한 섭리에 대한 신앙을 가지고 우리는 범사에 감사하면서 주님이 인도하시는 대로 따라가면 되는 것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어디가자...” 그러면 자식은 부모 손잡고 잘도 따라갑니다. “어디가요?” 물어보지 않습니다. 당연히 좋은 데로 데려가실 것으로 생각하고 그냥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불확실한 세상이라 하더라도 아무리 염려스러운 상황이라 하더라도 우리는 염려하지 말고 이 주님의 섭리의 손을 잡고 따라가야 하는 것입니다. 일평생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을 최우선 목표로 삼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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