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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50-52문
문답내용 50문 :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답 : 그리스도는 자기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을 하늘에서 보여 주시려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51문 :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이 영광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첫째,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지체인 우리에게 하늘의 은사들을 부어주십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자신의 권능으로 우리를 모든 원수들에게서 보호하고 지켜 주십니다.

52문 : 그리스도께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위로를 줍니까?
답 : 나의 모든 고난과 핍박 중에서 나는 나의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합니다. 그리고 전에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시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내게 임할 모든 저주를 제거해 주신 바로 그분이 심판자로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가 그의 모든 원수들, 곧 나의 원수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던지시며, 나를 모든 택자들과 함께 하늘의 기쁨과 영광 가운데 그에게로 취하여 들이실 것입니다.
강설날짜 2014-02-0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9주(50-52)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재림

요절 : 엡 1:20-23

50문 :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답 : 그리스도는 자기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을 하늘에서 보여 주시려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51문 :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이 영광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첫째,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지체인 우리에게 하늘의 은사들을 부어주십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자신의 권능으로 우리를 모든 원수들에게서 보호하고 지켜 주십니다.

52문 : 그리스도께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신다는 것이 당신에게 어떤 위로를 줍니까?
답 : 나의 모든 고난과 핍박 중에서 나는 나의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합니다. 그리고 전에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시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내게 임할 모든 저주를 제거해 주신 바로 그분이 심판자로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가 그의 모든 원수들, 곧 나의 원수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던지시며, 나를 모든 택자들과 함께 하늘의 기쁨과 영광 가운데 그에게로 취하여 들이실 것입니다.

지난주에 “하늘에 오르사”에 대해서 배웠고, 오늘은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1. 보좌 우편에 앉아계심

요절말씀인 에베소서는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으로 분류됩니다. 즉 사도바울이 감옥에 있을 때, 거의 죽을 날이 얼마 남지 않은 때에 사도가 에베소 성도들에게 쓴 편지입니다. 오늘 요절말씀은 바로 에베소서의 내용 중에서 에베소 성도들을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내용 가운데 있는 말입니다. 그 기도의 내용을 한 마디로 하면 에베소 성도들로 하여금 눈을 열어서 하나님의 능력을 보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바울도 감옥에 갇혀 있고, 고난과 핍박도 몰려오고 하니깐, 에베소 성도들이 지금 몹시 두려워하고 근심하며 기가 죽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아래와 같이 기도한 것입니다.

“(1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18)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19)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1:17-19)

사도 바울은 이 땅의 교회가 고난 받는 현실만 보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한지 알아서 자신들이 하나님의 능력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기를 원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능력을 말하면서 그 능력이 시범적으로 그리고 표본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했는데, 어떤 일이 일어났다고 합니까?

“(20)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 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21)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22)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0-23)

하나님께서는 고난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를 능력으로 역사하사 그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일으키시고 하늘에 앉히셔서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시고 그를 만유와 교회의 머리로 세우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을 보라는 것입니다. 이 위대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높아지신 것은 또한 우리의 부활과 높아짐의 보증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특히 22절의 표현이 의미심장합니다. 한글번역본은 “만물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고 되어 있는데 원문을 그대로 직역하면 아래와 같습니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셨다. 그리고 그를(예수님을) 교회에게 만물위의 머리로 주셨다.”

즉 예수님은 먼저 온 세상, 온 우주의 머리가 되신다는 것입니다(골 2:10). 온 우주의 주가 되시고 머리가 되신 예수님을 교회에게 교회의 머리로 주신 것입니다. 온 우주의 주권자이신 예수님을 우리가 머리로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온 세상이 우리 것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에베소서는 예수님이 만유의 머리가 되시고 또한 교회의 머리가 되심을 함께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주의 머리이시다. - 권능의 왕국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이시다. - 은혜의 왕국

온 우주가 다 하나님을 대적하고 반역하고 있습니다. 정사와 권세와 악한 영들, 그리고 모든 불신자들이 다 하나님을 거스려 대적합니다. 그러나 그럴지라도 그 모든 존재들이 예수님의 손바닥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머리로서 그들을 주권적으로 통치하시고 주관하십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권능의 왕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우주의 머리이신 그분을 교회를 위하여 교회에게 주신 것입니다. 교회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이 예수님의 교회의 머리되심은 우주의 머리되심하고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값으로 사신 바 되어 주님과 사랑으로 연합한 자들입니다. 마치 깊이 사랑하여 함께 동거하는 남편과 아내처럼, 또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처럼, 그렇게 생명적으로 연합되어,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보호하시고 지키시고, 또 우리는 예수님을 공경하고 사랑하고 순종하는 언약의 관계로 연합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는 은혜의 왕국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주를 다스리는 그분이 교회의 머리가 되시고, 우리가 그분과 연합한 그분의 지체이기 때문에, 교회는 참으로 영광스러우며 존귀한 공동체인 것입니다. 머리가 보좌 우편에 앉으면 몸도 같이 앉아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얻으신 모든 공로와 영광과 존귀한 지위들과 부활의 영광과 심판의 권세, 만유의 통치권 등 예수님이 가지신 모든 것들을 교회도 누리는 것입니다. 지금은 이것을 영적으로 맛보지만 나중에는 궁극적으로 나라를 상속받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교회가 가진 능력과 권세와 부르심의 소망이 엄청납니다. 이 세상 사람들이 볼 때 교회는 힘없고 작고 초라해 보이고,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아도 한없이 연약하고 보잘 것 없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게 보십니다. 우리는 온 우주의 통치자이신 예수님의 몸입니다. 얼마나 존귀하고 위대하며 영광스러운지 모릅니다. 그리고 우리 각자 각자의 인생을 향해서 두신 하나님의 뜻이 얼마나 원대한지 모릅니다. 이 교회가 보잘 것 없어도 음부의 세력이 이길 수 없는 그런 권세를 가진 공동체임을 우리는 잊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높이 되신 예수님을 깊이 만나고 체험하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머리되신 그분 앞에 엎드리게 될 것입니다. 자기가 주인이 되고자 했던 교만을 회개하고 주님께 자원하여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순종하며 살면서 현실에서는 비록 수많은 고난과 어려움이 있다 할지라도, 그 모든 환난과 어려움이 하나님의 손안에 있음을 알기에 담대하게 참고 인내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그분께서 우리와 함께 하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가서 제사를 삼아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예수님의 권세와 하나님의 능력을 알 때에 우리는 복음 전함에 있어서도 주눅 들거나 두려워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도리어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며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이 사실을 모르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현실 때문에 위축되고 주눅이 들 것입니다. 복음 전하기를 부끄러워하게 되고, 눈에 보이는 세상이 더 커보여서 세상을 좇아 살게 될 것입니다. 만일 교회가 그렇게 되면, 버려져서 사람들에게 밟히는 비참한 신세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신을 차리고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고, 그분의 능력이 어떠한지, 그리스도께서 그 능력으로 말미암아 어떻게 높이 되셨는지, 교회가 어떤 권세를 가지고 있고, 또 우리를 부르신 그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알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셨다는 것은 두 가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분이 우주의 통치자가 되셨다는 것과(권능의 왕국) 교회의 머리가 되셨다는 것입니다(은혜의 왕국). 

50문 :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라는 말이 왜 덧붙여졌습니까?
답 : 그리스도는 자기가 교회의 머리라는 것을 하늘에서 보여 주시려고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는 그리스도를 통해 만물을 다스리십니다.

그런데 표현이 주의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말을 듣고서는 그러면 왼편에는 누가 있을까 하는 식의 질문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이때 우편이라고 말하는 것은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공간을 차지하는 분이 아니시기 때문에 그분께는 우편 좌편이 없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하나님 우편에 계신다는 말은 하나님의 우주적 통치권에 예수님께서 동참하신다는 상징적 표현일 뿐입니다. 

2. 교회의 머리가 되신 예수님의 이 영광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51문 : 우리의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이 영광은 우리에게 어떤 유익을 줍니까? 
답 : 첫째,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는 자신의 지체인 우리에게 하늘의 은사들을 부어주십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자신의 권능으로 우리를 모든 원수들에게서 보호하고 지켜 주십니다.

예수님이 교회의 머리라는 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 생명적 연합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머리는 주도적이고 지배적인 기관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몸도 그냥 붙어있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온 몸에 핏줄이 연결되어 있어서 모든 지체들에게 산소와 영양분을 공급해서 살아 움직이게 하고, 또 모든 지체에 신경이라는 것이 연결되어 있어서 머리에서 오는 지시를 받으면서 그래서 온 몸이 혼란스럽게 각자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몸을 세워가려는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각 지체가 각자의 역할을 하면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입니다. 

그렇게 예수님도 우리의 머리로서 우리 각 지체들에게 끊임없이 생명과 영적 양식을 하늘에서부터 공급해주시는 것이고, 성령을 통하여 은사들을 부어주심으로 교회를 통치하시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 은사라고 표현했는데, 영어판을 보편 gift가 아니라 grace입니다. 즉 은혜로 번역하는 게 더 정확합니다. 교회의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교회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십니다. 교회는 그 은혜를 받음으로 그분께 순종하게 됩니다. 주님은 성령과 말씀으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셔서 그 은혜로 우리를 통치하십니다. 그래서 그 은혜를 힘입어 우리 각 지체가 서로 도움을 주면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곧 성령으로 말미암아 은혜를 우리에게 부어주시기 위해서 예수님은 하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교회의 머리가 되신 것입니다. 그냥 단순히 자기 혼자만을 위해서 보좌 우편에 앉으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행 2:33)

예수님이 보좌 우편에 앉아계신 것하고 우리가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하고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절대적인 상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보좌우편에 앉으신 사건의 결과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를 받아서 방언을 하는 것입니다. 방언을 우리가 개인의 신앙과 경건의 관점에서만 볼 것이 아니라, 구속사적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은사로 방언을 하게 되었는데, 각 나라의 말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래서 바벨탑에서 언어를 흩으신 하나님께서 신약의 교회가 시작되는 그날에 잠시 그 언어의 장벽을 허무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상징하느냐 하면 장차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어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고 온 세상이 통일되고 만유가 통일되는 그 미래의 일을 언어의 통일되는 사건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심으로 교회가 시작되고, 그 성령 안에서 교회가 영적인 권능을 공급받고, 또 신령한 하늘의 은사들을 공급받으면서 (이것이 결국 은혜입니다) 이 은혜를 힘입어서 교회가 예수를 땅 끝까지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주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교회의 확장하고, 또 확장한 교회를 장성한 분량에까지 세워가는 일을 합니다. 그래서 교회를 통해서 만유가 통일되는 것입니다.

“(10)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0)
“(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엡 4:10)

에베소서 4장 10절에서는 통일을 충만으로 표현했습니다. 충만은 원어로 보면 “완성하다”는 의미입니다. 곧 만유를 복음으로 통일하시어 하나님의 창조목적을 완성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통일이나 충만이나 같은 뜻입니다.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엡 1:23)

교회는 그의 몸으로서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해 가시는 하나님의 목적의 완성 그 자체입니다. 즉 교회로 이미 충만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장차 이 교회를 통해 만유를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하여 완성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그 일을 예수님께서 어떻게 이루어가십니까?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성령을 우리 가운데 보내주셔서, 성령을 통해 은사를 허락하시어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이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의 머리가 되셨다는 사실에서 우리가 많은 위로와 유익을 얻는 것입니다. 머리되신 예수님께서 성령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 은혜, 은사가 셀 수 없이 많습니다.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 5:31)
“저희가 이 말을 듣고 잠잠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가로되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하니라”(행 11:1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엡 2:8)

믿음과 회개도 주님의 은혜요 선물입니다. 

“그러하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를 진리가운데로 인도하시는데, 그 진리를 성경에 기록하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도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런데 이 성경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8)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9)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 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냐(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엡 4:8-12)

성경뿐만 아니라 성경을 가르칠 사람들도 선물로 주셨습니다. 저와 같은 목사는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주시는 선물입니다. 저 자체는 별로 좋은 선물은 아니지만, 저를 통해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은 여러분들에게 최고의 선물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말씀 맡은 자만 주신 것이 아니라, 장로도 주시고 집사도 주셨습니다. 그것이 다 선물입니다. 그러면 그 외는 무엇입니까? 목사도 장로도 집사도 아닌 사람은 받기만 합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또한 하나님이 저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여러분도 각자 받은 은사가 있습니다. 성령의 은사가 다 다르지만, 그러나 그 모든 것은 교회의 몸을 세우기 위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이 주신 선물입니다. 그렇게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면서 성령과 말씀의 통치를 받아가고, 그리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은사를 가지고서 시샘 할 필요도 없고, 열등하게 생각할 필요도 없으며, 교만한 마음을 품어서는 더더욱 안 되고, 각자 받은 대로 섬기면 족한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재림과 심판

우리가 사도신경을 외울 때 “저리로서 산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라고 하는데, 여기서 “저리로서”는 “거기로부터”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다가 하늘로부터 다시 재림하여 오실 것입니다. 이 재림은 심판의 재림입니다. 예수님은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여기서 산자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있는 사람들을 말하고, 그리고 죽은 자는 예수님 재림하기 전에 죽었던 모든 사람들을 말합니다. 곧 이 세상에서 살았던, 그리고 지금도 살아있는 모든 인류를 심판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죽은 사람들을 벌주는 경우가 없습니다. 간혹 죽은 사람을 무덤에서 끄집어내어서 부관참시하는 경우도 있지만, 사실 넌센스인 것입니다. 이 세상은 결코 죽은 사람을 심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죽은 자들도 벌하십니다. 어떻게 벌하십니까? 그들을 다시 부활시키셔서 벌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재림하시면 그때 살아있는 사람들이든 죽었던 사람들이든 모든 사람들이 불멸의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은 산채로 그렇게 변화될 것이고, 죽은 사람은 불멸의 몸을 다시 입는 부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부활은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로 나뉩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택자들은 모두 심판대 앞에서 의롭다고 공적으로 선언되고 즉시로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지만,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어린양의 진노를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천국과 지옥은 확실히 있습니다. 천국은 어떤 곳입니까?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신앙생활하면 하나님을 깊이 만나고 그의 감격적인 사랑을 경험한 적이 있을 것입니다. 그때 그 예수님의 찬란하고 탁월한 성품과 한 없이 아름다우심을 깨닫게 되고, 그와 더불어 그 앞에 더러운 죄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래서 나 같은 죄인을 향한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이 내 마음속에 부어지는 그런 황홀한 체험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것을 보면 사람은 그 대상 자체에 매료되어서 그 대상 자체로 인해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게 되는데, 그것을 우리가 사랑에 빠진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얼마나 아름다우십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을 참으로 만나고 체험한 사람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세상에서 깨닫는 예수님의 성품은 정말 부분적인 깨달음입니다. 여러 가지 죄의 영향력과 우리의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서 그 깨달음이 부분적이며 희미합니다. 그리고 각자의 믿음과 성화의 정도에 따라서 상대적으로 깨닫는 것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천국은 어떠합니까? 그렇게 주님의 성품에 대한 깨달음과 기쁨이 무한대로 확장되는 가운데 매순간 새롭게 전개되어 우리를 희열에 차게 만드는 그곳이 천국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천국을 자꾸 화려한 보석이 있고, 더 이상 불행이 없고, 병들지도 않고 영원히 행복하게 먹고 마시면서 사는 것을 생각하는데, 그것은 전혀 오해입니다. 하늘나라의 참된 행복은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습니다. 천국에서의 기쁨은 생명나무의 실과를 한없이 따먹고, 무공해 물을 마시고, 노동도 안하고 뒹굴고 노는데 행복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늘나라에 대한 계시록의 묘사에 등장하는 수많은 보석과 금과 은에 대하여 주목합니다. 금은보석이 가득한 화려한 집에서 살 행복을 꿈꿉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것에 주목할 이유가 무엇이 있습니까? 천국에 가서 그러한 보석을 가진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 것이며, 그 보석을 가지고서 누구한테 팔 것이며, 또 판들 그 판돈으로 천국에서 뭐하겠습니까? 그러한 행복을 바라고 예수님 믿는 것은 가짜 믿음입니다. 천국가려고 예수님 믿고 천국가게 해준다고 하니깐 교회를 섬기고 헌금도 하고 하는 것은 다 가짜 신앙입니다. 그런 사람은 죽어서 지옥갑니다.

하늘나라의 진정한 기쁨은 영적이고 정신적인데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어린양과 성령 하나님과의 신령한 교제... 거기서 오는 무한대의 희열과 행복... 그리고 그것은 멈추는 것도 아니고 좀 있으면 질리는 것도 아니며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게 전개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무한하시기 때문에 그분을 알기 위해서는 무한대의 시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영원무궁토록 주님의 찬란한 빛의 영광에 압도되어서 끊임없이 전율하는 기쁨이 증대되는 곳이 천국입니다.

그러나 지옥은 정반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지옥에서도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품 중 그의 엄격하심과 엄위로우심, 그의 무한한 공명정대함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 성품이 비칠 때마다 거기에 있는 존재들은 치를 떨며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큰 두려움을 경험해 본 적이 있을 것입니다. 아니면 상상으로라도 자신이 가장 두려워하는 상황을 떠올려 보십시오. 지옥은 바로 그 두려움을 극대화시켜서 그 두려움과 공포가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게 여러분들에게 다가오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정확합니다. 사람들은 지옥에서 견딜 수 없는 공포에 전율하며 떨면서, 그의 지성과 영혼은 하나님의 진노에 짓이겨질 것이고, 그의 육체는 불에 타면서, 구더기가 살을 파먹으면서, 몸서리칠 고통과 형벌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가장 절망적인 사실은 다시 구원받을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과 그 고통가운데서도 결코 소멸하거나 사라지지 않는 육체가 되어서 무한히 그런 고통을 받게 된다는 사실입니다. 천국에 들어간 성도들이 범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 것과 마찬가지로, 지옥에 들어간 사람들은 뉘우치거나 용서받을 수 없는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나님은 천국에서 하나님의 은혜의 영광을 바라보고 희열하는 성도들로 인하여 영광을 받으실 뿐 아니라, 지옥의 형벌 속에서 불타는 그 악한 자들의 심판을 인하여서도 동일하게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디에 가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다 예수 믿어 구원받고 천국가는 백성들이 다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 심판을 위해서 재림하여 오셔서 세상의 역사를 종결시키시고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실 것입니다. 그런 날이 반드시 올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자기 신앙을 돌아보고, 죄를 고집하는 마음을 회개하고 예수님을 참되게 믿어서, 항상 은혜의 복음 붙잡고, 경건의 교훈에 착념하면서 영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와 관련하여 아래와 같이 표현합니다.

답 : 나의 모든 고난과 핍박 중에서 나는 나의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합니다.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한다는 말은 깨어 있는다는 말입니다. 눅 21:7절부터 보면 마지막 때의 징조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결론적으로 아래와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왔느니라 하시더라”(눅 21:28)

머리를 들어 올려라는 말은 잠자고 졸고 있지 말고 깨어서 하늘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하늘을 예의주시하면서 하늘로부터 오실 주님을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이 머리를 들어 올리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 이어지는 말씀에서 설명됩니다.

“(34)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35)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36)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눅 21:34-36)

그것은 깨어 있는 것입니다. 장차 있을 주님의 재림을 생각하면서, 그리고 그 때 있을 심판을 생각하면서 두렵고 떨림으로 죄를 버리고 하루하루를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신자는 이런 생각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막 공포에 시달리고, 구원의 확신이 없이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그렇게 살아라는 것이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생각하면 무서워합니다. 특히 자기 삶을 볼 때 지은 죄가 많고, 제대로 신앙생활 못하는 것을 보면, 예수님이 빨리 안 왔으면 좋겠다고 “주님, 아직 오시면 안 됩니다”하고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죄에 대해서는 정말 회개해야 하겠지만, 재림에 대해서 두렵게만 생각하면 그것은 아주 잘못된 생각입니다. 

답 : 나의 모든 고난과 핍박 중에서 나는 나의 머리를 들어 하늘을 향합니다. 그리고 전에 나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시고, 나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심으로 내게 임할 모든 저주를 제거해 주신 바로 그분이 심판자로서 하늘로부터 오실 것을 확신을 가지고 기다립니다. 그가 그의 모든 원수들, 곧 나의 원수들을 영원한 멸망으로 던지시며, 나를 모든 택자들과 함께 하늘의 기쁨과 영광 가운데 그에게로 취하여 들이실 것입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재림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면서도 또한 말할 수 없는 간절한 소망이기도 합니다. 왜 그렇다고 합니까? 우리의 대적이 심판주로 오면 정말 두려운 날이겠지만, 그러나 누가 심판주로 오십니까? 예수님이 심판주로 오시는 것입니다.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자기 몸을 버리셔서 모든 죄책을 제거해주시고, 지금도 나를 위해 변호해주시고 위하여 기도해주시는 그분이 심판주로 오시기 때문에 주님의 재림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 아니라, 오히려 위로와 은혜의 날이요, 승리의 날이며 기쁨과 환희가 넘치는 날인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모든 원수를 갚아주시는 날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를 거부한 모든 사람들과 사단마귀를 멸하셔서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십니다. 예수님의 원수는 우리의 원수인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 가운데 예수님의 원수하고 친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단 마귀하고 친하고 세상과 벗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 원수 노릇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속히 멸망당할 바벨론에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2)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3)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4)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2-4)

바벨론에서 나와서 주님의 뜻대로 살려하면 반드시 바벨론으로부터 고난 받고 핍박을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 신자의 이름을 목 베임을 당한 자입니다. 우리는 불신자들로부터 핍박과 고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에도 우리는 원수를 사랑합니다. 왜냐하면 그 사람들 중에서 나중에 예수님을 믿을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된 신자라면 자신들을 핍박하고 죽인 불택자들에 대해서 자신의 원수를 복수해주실 것을 하나님께 탄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6장 9절이하를 보면 의인의 영들이 하나님께 탄원하기를 “우리의 원수를 갚아주지 아니하시기를 어느때까지 하시겠습니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 하나님은 수가 찰 때까지 조금만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런 탄원의 말은 세상과 벗한 사람이 할 수 없는 말입니다. 주를 따라가면서 고난 받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천국 가서도 하나님께서 불택자들을 심판하시는 것에 불만을 가지면서 “하나님 용서해주십시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 아닙니까?”라고 말하고 싶은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의를 실현하시려는 하나님이 틀렸다고 말하는 것이고, 세상이 자신의 원수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완전히 잘못된 것입니다. 참된 신자라면 도리어 원수의 멸망을 진정으로 기뻐할 것입니다. 일제치하에 있던 대한민국 사람들은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에 떨어져서 일본이 망하게 되었을 때 만세를 외쳤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에 일본 사람들을 위해 염려하고 크게 근심한다면 그는 분명 친일파일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잡아다가 숙청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벗하는데서 벗어나 회개하고 주와 복음을 위해 고난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재림을 소망하면서, 원수 갚을 날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가 우리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기다리는 것입니다. 역사의 마지막 때까지 오래참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기다려도 기다려도 안 오면 “주님, 2000년이 지났는데도 왜 이렇게 안 오십니까?”하는 생각을 가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베드로는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기다려봤자 사실 얼마 안 기다린 것입니다. 우리 인생 암만 오래 살아봐야 100년입니다. 우리는 고작 100년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정작 누가 오래 기다리십니까?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하나님은 2000년을 기다리셨습니다. 우리의 기다림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다림이 있습니다. 모든 택한 백성의 정한 수가 찰 때까지, 그리고 택한 자들이 다 회개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우리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왜 빨리 안 옵니까?”하고서 원망하지 말고, 참고 기다려야 합니다. 반드시 끝이 올 것입니다.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성경은 약속의 말씀입니다. 그리고 약속의 특징은 기다림입니다. 옛 약속이 구약 백성들에게 주어졌을 때도 그들은 수천년 세월동안 기다렸습니다. 여인의 후손이 오시기까지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마침내 그분이 오셨습니다! 그것이 복음서입니다. 그런데 복음서가 마치기가 무섭게 또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시 오심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7)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9)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10)그 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서 영광을 얻으시고 모든 믿는 자에게서 기이히 여김을 얻으시리라 (우리의 증거가 너희에게 믿어졌음이라)(11)이러므로 우리도 항상 너희를 위하여 기도함은 우리 하나님이 너희를 그 부르심에 합당한 자로 여기시고 모든 선을 기뻐함과 믿음의 역사를 능력으로 이루게 하시고”(살수 1:7-11)

그런데 이 기다림이 왜곡되어서 현실도피적인 삶으로 나타나면 안 됩니다. 참으로 기다리는 자는 일상생활에서 순종의 삶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재림의 징조에 대해서도 바르게 인식해야 합니다. 재림의 징조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 여러 가지 재난, 전쟁
2) 그리스도인들이 핍박을 당함
3) 적그리스도와 거짓선지자들의 출현
4)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전파되어야 함
5)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민족의 대대적인 회심(로마서 11장)

주님은 이 재림의 징조를 주님의 재림의 때를 분별하도록 주신 것입니다. 참으로 우리가 이 세상을 바라볼 때, 주님의 재림이 가까워왔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더욱 깨어서 주의 일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가지고서 이상하게 끼워 맞추고 날짜를 맞추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이상하게 살도록 선동하는 일이 있습니다. 이러한 미혹의 영의 역사를 우리가 분별해야 합니다. 또한 이러한 징조를 가지고서 백투예루살렘 운동과 같이 이상하게 적용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성경번역자들이 번역을 해가면서 “모든 민족에게 성경을 보급하면 주님이 오신다. 어디까지 번역이 되어 있나... 안된 거 빨리 해서 주님 빨리 오시게 하자..” 그렇게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또 다른 예로 “성령의 바람이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럽으로, 그리고 미국으로, 그리고 아시아로, 그리고 중국과 중동으로 그리고 마침내 이스라엘로 다시 돌아간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대거 회심할 때 주님이 재림하신다. 빨리 복음이 중국과 중동과 이스라엘로 선교하러가서 이스라엘의 대대적인 회심을 이끌어내자. 그래서 주님이 빨리오시도록 하자.”라고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모든 민족에게 가야 한다는 목표의식은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사도바울은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목표를 가지고 자신의 사역을 진행했습니다. 사도바울에게 땅 끝은 스페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땅 끝은 이스라엘이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사도바울이 거쳐 가는 곳에 복음 대충 전하고 그 목적지만을 향해서 돌진한 게 아닙니다. 교회를 세우고, 그 교회가 자립할 수 있을 때까지 계속해서 지원하고 몇 번이고 다시 방문하고... 그러고 나서 그 다음 지역으로 차근차근 진행해나갔습니다. 그것을 자기 마음대로 하지 않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민족에게 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아직도 미전도 종족이 많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도 복음을 전하려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 전에 우리 주변의 사람들, 가족과 친척들, 이 한국 땅에 있는 사람들, 가까운 북한이나, 중국이나 일본, 러시아... 이런 나라는 무시해버리거나 무관심해버리면서 무조건 미전도 종족으로 가자고 하고, 운동을 일으켜 이스라엘로 가자라고 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물론 거기에도 갈 사람은 가야 합니다. 운동을 일으켜서 가는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그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꾸 백투예루살렘이라는 운동으로 그 일을 하게 될 때, 그것은 주님이 하시는 일이 아니라 우리가 하는 일이 되어버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을 이루어감에 있어서 굉장히 인간중심적인 오류들이 개입할 여지가 많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의식이 결여될 수가 있고, 우리가 노력해서 주님의 재림을 앞당길 수 있다는 식의 교만에 빠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으로 선교열정을 자극해서 효과만을 중요시하다가 결국에는 복음도 인간중심적으로 왜곡해서 전하기도 쉽고, 주님께서 이루시는 역사를 기다리기보다도 인위적으로 만들어내려고 하는 일들이 있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만사를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경륜을 우리가 다 알 수 없다는 겸손의 마음을 가지면서 다만 목표를 가지면서 각자의 부르심을 따라 최선을 다해 선교해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의 선교방향은 전방위적이어야 합니다. 꼭 중동이나 이스라엘로만 가야하는 것이 아니라 미국과 유럽으로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사실을 잘 숙지하면서 백투예루살렘 운동에 대해서 분별해야 하는 것인데, 문제는 개혁파를 추구하면서 잘못하면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신나게 비판만하고 정작 자신들은 선교에 아무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오류에 빠질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다라고 한다면 백투예루살렘운동보다 우리가 더 잘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백투예루살렘 운동을 비판만 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바르고 참되게 선교에 힘써야 합니다. 선교의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감당해 가야하고, 기도해야 하고, 물질적으로도 아낌없이 지원해야 합니다. 그것이 참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자의 모습일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면서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죄를 버리고, 세상과 벗하는 삶을 회개하고 정말 주를 위해 힘쓰는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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