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5461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최상범
69-71문
문답내용 69문 : 세례를 통해,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단번에 드리신 희생제사가 당신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깨닫고 확신합니까?
답 : 그리스도는 물로 씻는 이 외적인 의식을 제정하시면서 다음의 사실을 약속하셨습니다. 곧 내 몸의 더러움을 물이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이 내 영혼의 더러움을, 다시 말해 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신다는 것입니다.

70문 :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씻김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짐은 십자가의 제사에서 우리를 위해 흘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씻겨짐은 우리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거룩하게 되어,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71문 : 세례의 물로 씻김을 받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확실하게 씻김을 받는다는 약속을 그리스도는 어디에서 하셨습니까?
답 : 세례를 제정하실 때, 그리스도는 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그리고 성경이 세례를 “중생의 씻음”(딛 3:5)과 “죄를 씻음”(행 22:16)이라고 부를 때 이 약속은 또 되풀이되었습니다.
강설날짜 2014-04-06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6주(69-71문)

 

세례와 성화론

 

요절 : 딛 3:5

 

69문 : 세례를 통해,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단번에 드리신 희생제사가 당신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깨닫고 확신합니까?
답 : 그리스도는 물로 씻는 이 외적인 의식을 제정하시면서 다음의 사실을 약속하셨습니다. 곧 내 몸의 더러움을 물이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이 내 영혼의 더러움을, 다시 말해 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신다는 것입니다.

 

70문 :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씻김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짐은 십자가의 제사에서 우리를 위해 흘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씻겨짐은 우리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거룩하게 되어,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71문 : 세례의 물로 씻김을 받는 것처럼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확실하게 씻김을 받는다는 약속을 그리스도는 어디에서 하셨습니까?
답 : 세례를 제정하실 때, 그리스도는 이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마 28:19).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막 16:16). 그리고 성경이 세례를 “중생의 씻음”(딛 3:5)과 “죄를 씻음”(행 22:16)이라고 부를 때 이 약속은 또 되풀이되었습니다.

 

1. 세례? 침례?

 

오늘은 세례에 대해서 배워보겠습니다. 우선 69문답을 보십시오.

 

69문 : 세례를 통해, 십자가 위에서 그리스도가 단번에 드리신 희생제사가 당신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당신은 어떻게 깨닫고 확신합니까?
답 : 그리스도는 물로 씻는 이 외적인 의식을 제정하시면서 다음의 사실을 약속하셨습니다. 곧 내 몸의 더러움을 물이 깨끗하게 씻어내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이 내 영혼의 더러움을, 다시 말해 나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질문에 보면 “세례를 통해서 ... 어떻게 깨닫고 확신하게 됩니까?”라고 하고 있는데, 여기서 ‘깨닫고’는 ‘표’를 ‘확신’은 ‘인’을 의미합니다. 성례가 표와 인이라고 할 때, ‘표’는 우리로 눈에 보이지 않는 복음의 사실을 눈으로 보고 피부로 느끼며 입으로 맛보고 코로 냄새를 맡아보게 함으로써 더 분명하게 복음의 진리를 이해하고 기억하며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한편 인은 도장을 찍는 것으로서 이 세례의식을 통해서 과연 우리가 은혜로 죄를 씻음 받았음을 하나님이 확증해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은혜를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면 세례는 무엇을 표하고 도장찍는 것입니까? 그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단번의 제사를 통해 우리가 죄 씻음 받았다고 하는 것을 눈에 보이게끔 나타내주고 또 도장 찍는 것입니다. 세례라는 단어는 원어로 보면 ‘밥티조’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의 의미가 “죄 씻음”이냐 아니면 “죽고 사는 것이냐”에 대한 논쟁이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침례교와 장로교가 나눠진 것도 바로 이 ‘밥티조’를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 하는 것과 유아세례가 성경적인가 하는 것 때문에 나눠졌습니다.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분명히 침례교가 잘못 오해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와 관련해서 침례교는 약간의 오해를 하기는 했지만, 그러나 본질상 장로교가 주장하는 것과 동일합니다. 물론 표면상으로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세례 : 씻어내는 것, 물이 더러운 것을 씻어내듯이 우리의 죄를 씻어주셨음 표함.
침례 : 물에 잠기는 것, 물에 빠져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사는 것을 표함.

 

뭐가 맞습니까? 일단 용어상으로는 세례가 맞습니다. 성경에서 ‘밥티조’, ‘밥티스마’ 등의 용어는 씻는다는 개념 외에 다른 개념으로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을 들어가 보면 침례교가 주장하는 거나 장로교가 주장하는 거나 거기서 거기입니다. 옛날에 제가 뭣도 모를 때 어떤 전도사님하고 성경의 영감설이 ‘일점무오설’이냐 ‘유기적영감설’이냐 하는 것으로 피터지게 논쟁한 적이 있었는데, 사실 그 말이 그 말 입니다. 참 웃긴 일이죠. 그것처럼 침례냐 세례냐 하는 것으로 피터지게 논쟁하는 것도 사실 웃긴 일입니다.

 

2. 중생을 표현하는 다양한 이미지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할례’에서부터 설명을 시작해야 합니다. 할례는 남자의 성기의 겉 표피를 잘라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의식이 표현하는 것은 더러운 것을 잘라내어 정결하고 거룩하게 했다는 의미입니다. 곧 더러움과 부정함을 씻음 받고 그리고 죄를 사함 받아서 거룩하고 정결한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되었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외적인 할례는 행했지만, 실질적인 마음과 삶의 변화는 없었던 것입니다. 목이 곧은 백성으로서 늘 불순종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마음에 할례를 행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신 10:16). 외적인 할례의식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중요한 것은 마음의 할례라는 것입니다. 마음에 있는 근본 하나님께 대한 적개심, 그리고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하는 교만, 부패한 욕망을 좇아 살려고 하는 죄악된 본성... 이런 것들을 잘라내고 거룩하고 의로운 성품을 덧입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마음에 할례는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성령님의 사역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의 할례는 약속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집니다.

 

“(6)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이 구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이 친히 그들의 마음을 수술하셔서 이스라엘의 고질적인 문제인 이 마음의 부패와 죄악된 본성을 잘라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선지서의 새언약의 약속에서 보다 구체화됩니다.

 

“(24)내가 너희를 열국 중에서 취하여 내고 열국 중에서 모아 데리고 고토에 들어가서(25)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26)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27)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4-27)

 

선지자들의 새언약에서는 마음의 할례가 성령의 사역이라는 것이 밝히 드러납니다. 그런데 에스겔은 똑같은 마음의 할례를 두 가지 이미지로 표현합니다(중언법). 첫 번째는 25절에서 보는 것처럼 맑은 물을 뿌려서 모든 더러운 행실들, 죄들을 씻어 정결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율법에 명시된 정결예법의 맥락에서 나온 것으로서 물이 더러움을 씻어내듯이 성령님이 그렇게 우리의 더러움을 씻어주셔서 우리를 정결하고 거룩하게 만들어주실 것이라고 하는 ‘세례’의 이미지를 사용한 것입니다. 두 번째는 26절에서 보는 것처럼 마음에 있는 돌 같은 마음을 잘라내고, 부드러운 살코기의 마음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돌 같은 마음은 하나님께 대한 적개심과 자기가 신이라고 하는 교만을 말하고, 살코기의 마음은 하나님께 유순하게 복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이러한 마음의 수술은 신명기의 마음의 할례 이미지를 그대로 사용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마음의 할례를 통해서 결과적으로 27절에서 보는 것처럼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개념은 요한복음 3장에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요 3:5)

 

다시 태어난다는 말은 이전의 삶과의 단절을 의미하고, 옛사람의 죽음을 전제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이 중생을 예수님은 성령께서 물로 씻으시는 사역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에스겔의 “성령의 세례” 이미지로 표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도 우리는 옛사람이 죽고 사는 것이나 물로 씻어 깨끗하게 하는 것이나 같은 개념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이 중생에 대해서 얼마나 다양하고 풍성하고 표현하는지 모릅니다. 앞서서 세례요한은 이러한 중생의 사역을 아래와 같이 표현하였습니다.

 

“(11)나는 너희로 회개케 하기 위하여 물로 세례를 주거니와 내 뒤에 오시는 이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시니 나는 그의 신을 들기도 감당치 못하겠노라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예수님은 바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십니다. ‘세례’라는 말은 물로 씻는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성령과 불은 성령의 모든 더러운 죄를 불태우시는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순절 성령강림하실 때 불의 혀 같은 것이 각 사람의 머리 위에 보였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없애기는 없애는데, 불태워 없앤다고 표현하기도 하고, 물로 씻어 없앤다고 하기도 하고, 옛사람을 죽여서 없앤다고 하기도 하고 수술을 통해 잘라내서 없앤다고 하기도 하고... 똑같은 것을 여러 가지로 표현하는 것입니다(민 31:23). 그리고 이 약속된 성령세례의 성취가 사도행전에 나옵니다.

 

“(5)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 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행 1:5)

 

예수님의 약속대로 오순절날에 성령님이 강림하여 오셨고, 이 성령을 받은 제자들은 놀랍게 그 마음이 변화되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중생에 대한 풍성한 표현방식들 중의 하나인 세례 이미지는 바로 마음의 죄를 씻음받았음을 의미합니다.

 

“(16)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세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하더라”(행 22:16)

 

세례라는 단어 자체는 물로 씻는 것을 나타내지만, 그러나 그것에 함의되어 있는 의미는 매우 풍성합니다.

 

3. 죄책과 오염 둘 다를 씻어주심

 

세례란 죄 씻음을 의미하는데, 죄에는 죄책과 오염이 있습니다. 그러면 둘 중의 무엇을 씻어주셔서 없애주시는 것입니까? 둘 다입니다!


우선 죄책을 씻어주십니다.

 

"(38)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행 2:38)

 

여기 보면 세례를 받는 것은 죄사함을 의미하는 것으로서, 죄책의 제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결국 죄 씻음이란 우리의 죄책을 씻어주셔서 죄인이라는 신분에서 의인이라는 신분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죄의 오염도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즉 죄 씻음은 내면의 변화도 포함합니다.

 

“(9)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미혹을 받지 말라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나(10)도적이나 탐람하는 자나 술 취하는 자나 후욕하는 자나 토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하리라(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고전 6:9-11)

 

여기서 사도바울의 논지는 “옛날에는 우상숭배도 하고 불의를 행하기도 했지만, 주님의 부르심을 입어서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았느냐? 그런데 어떻게 또 불의를 행할 수 있다는 말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11절에서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서 그리고 성령 안에서 씻음을 받았고, 거룩하게 되었고, 의롭다 함을 받았지 않았느냐”라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씻음과 거룩함”은 죄책의 씻음과 오염의 씻음, 둘 다를 포함하는 것이지만, 특별히 그 초점이 오염의 씻음에 있는 것입니다. 즉 죄의 오염도 씻음 받았는데, 내면이 변화되었는데 어떻게 더 불의를 행할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죄 씻음은 오염의 씻음도 포함합니다. 또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26)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엡 5:26-27)

 

여기서도 역시 씻음과 거룩함은 신분의 변화를 배제하지 않지만, 초점은 내면의 변화에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주 중요한 의미가 나타납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교회를 물로 씻어 깨끗하게 변화시켜주시고, 거룩하게 만드실 때 무엇을 수단으로 사용하신다고 합니까? 말씀을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곧 성령님께서는 말씀으로 교회의 죄의 오염을 씻어 거룩하고 흠이 없도록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또 다른 구절로 오늘 요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딛 3:5)

 

사도바울은 구원의 은혜를 말하면서 중생을 이야기 합니다. 중생은 옛사람이 죽고 새사람으로 다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그 중생을 그냥 ‘중생’이라고 하지 않고, ‘중생의 씻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중생을 세례의 의미로 거듭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중생의 씻음' 바로 뒤에 “성령의 새롭게 하심”이라는 표현이 덧붙여집니다. 이것은 내면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구원을 말할 때 사도바울처럼 이 신분의 변화와 내면의 변화를 함께 말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책만 씻어주시는 것이 아니라 죄의 오염도 같이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이 둘은 항상 같이 있습니다. 또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22)우리가 마음에 뿌림을 받아 양심의 악을 깨닫고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히 10:22)

 

앞에서 성령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를 씻으신다고 했는데, 히브리서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이 궁극적으로 증거하는 십자가 복음, 곧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를 씻는다고 말합니다. 그러한 씻음 받음을 “몸을 맑은 물로 씻었으니”라는 표현을 통해서 세례 이미지로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씻음을 통해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의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마음의 악을 깨닫고 그 악을 사함 받을 뿐만 아니라 그 더러운 악한 마음을 씻음 받았다는 것, 곧 내면의 변화를 받았음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책뿐만 아니라 죄의 오염도 씻어주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구절만 더 보겠습니다.

 

“(21)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베드로는 노아의 홍수를 이야기하면서 그 홍수 물로 노아가 세례를 받았다고 말합니다. 동일하게 우리도 세례를 받는데, 그 의미에 대해서 말하기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라고 말했습니다. 여기서의 ‘육체’는 죄악된 본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리적인 몸뚱어리를 말합니다. 세례를 줄 때 목사가 물을 머리위에 흘려주는 것은 그 사람 머리가 더러워서 감아줄려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그 외적인 물은 그냥 표시일 뿐이고, 그 의식이 의미하는 바는 그 세례자의 마음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입니다. 그래서 악했던 양심이 씻겨지고 선한 양심으로 변화되어서 그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말이 좀 어렵습니다. 그래서 원어를 보면 “하나님을 향한 선한 마음의 간절한 갈망이다...”입니다. 이것은 말 그대로 “이제는 하나님 뜻대로 살겠습니다” 라고 결단하고 서약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세례는 “죄책을 씻음 받았습니다, 나 이제 죄사함 받고 천국가게 되었습니다”가 아니라, (물론 그것도 포함하지만) “내 근본 하나님께 대한 적개심이 깨트려지고, 굳은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하나님께 대한 사랑의 마음, 주님 뜻대로 살고 싶은 마음으로 변화되었습니다.”하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성화를 설명할 때 세례를 자주 언급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세례 이야기하면서 성화를 언급합니다.

 

70문 : 그리스도의 피와 성령으로 씻김을 받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답 : 그리스도의 피로 씻겨짐은 십자가의 제사에서 우리를 위해 흘린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은혜로 우리가 하나님께 죄 사함을 받았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씻겨짐은 우리가 성령으로 새롭게 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 거룩하게 되어, 점점 더 죄에 대하여 죽고, 거룩하고 흠이 없는 삶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답변에서 첫 번째 문장은 죄책을 씻어주심을 의미하는 것이고, 두 번째 문장은 죄의 오염을 씻어주심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에서 절대로 성화의 개념을 빠트리면 안 됩니다. 바울서신에서 이 개념이 아주 정확하게 나타납니다. 사도바울의 표현을 살펴보기 전에 일단 미리 말하자면, 사도바울의 표현의 특징은 이제까지 나왔던 모든 이미지들을 종합선물세트로 해서 한꺼번에 함께 사용하는 것이 사도바울의 표현의 특징입니다. 사실 여기서 침례교가 헷갈리고 만 것이죠.

 

“(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12)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골 2:11-12)

 

사도바울은 중생을 이야기하면서 먼저 할례 이미지를 사용합니다. 그리고 그 할례가 세례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중생을 말하면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죽고 사는 것으로 말합니다. 이때까지 우리가 살펴보았던 이미지들이 연거푸 열겨됩니다. 또 다른 구절을 보겠습니다.

 

“(3)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4)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롬 6:3-4)

 

이 구절에서 그만 침례교가 결정적으로 헷갈리고 말았습니다. 침례교는 예수님과 함께 죽고 사는 것이 ‘밥티조’라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밥티조’에는 ‘물에 담그다’라는 뜻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것을 연결시켜서 “아~ 물에 빠져서 죽고 물에 나오면서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하고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해석하는 것은 순전히 말에 놀아난 것입니다. ‘밥티조’에는 사실 담그다는 뜻도 있지만, 때로는 액체에 살짝 찍는다는 뜻도 있고, ‘뿌리다’는 뜻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대부분의 성경의 용례에서 ‘밥티조’는 완전히 담그든 살짝 찍든 간에 그렇게 하는 이유가 씻거나 목욕하거나 적시기 위한 것이지 죽인다는 의미는 전혀 나타나지 않습니다. 침례교는 단어 해석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쨌든 이 문제로 침례교와 싸우는 것은 전혀 무의미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물을 머리위에 뿌리면서도 그리스도와 연합해서 죽고 사는 것도 생각하고, 우리의 마음의 죄가 씻겨났다고도 생각하고, 우리의 죄가 불태워졌다는 것도 생각하고, 우리의 돌 같은 마음이 제거되고 살코기의 마음이 되었다는 할례의 의미도 생각하고... 다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중생의 여러 가지 다양한 이미지들일 뿐입니다. 다 똑같은 것입니다. 싸울 이유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세례를 이야기할 때, 죄책만 씻어주신 것으로 오해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장로교가 자주 이 부분에 실수를 범해서 죄책만 씻음 받았다고 말하고, 그리고 삶에는 변화가 없으니깐, 사람들이 그것에 대해서 반대하면서 침례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죄의 오염까지도 씻어주신 것을 고백합니다. “세례로 우리 옛사람이 죽고, 죄에 대하여 죽었는데 어떻게 우리가 죄 가운데 더 살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로마서 6장의 논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까지의 논의를 정리하면 아래의 표와 같습니다.


 죄책과 오염.jpg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 받은 자는 칭의되었을 뿐만 아니라 성화의 은혜도 받았기 때문에 더 이상 죄 가운데 살 수 없는 것입니다. 칭의와 성화는 이렇게 늘 함께 가는 것입니다. 한편 칭의는 믿음의 영역이고, 성화는 회개의 열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믿음과 회개도 이러한 관점에서 늘 붙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은 내가 할 게 없는 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나 회개는 무언가를 해야 합니다. 믿음은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 됩니다. 그러나 회개는 마음과 입으로만 하면 안 됩니다. 믿음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어도 되지만, 회개는 겨자씨 한 알만 있으면 안 됩니다. 회개는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믿음과 회개는 하나의 회심체험의 두 측면으로 우리 안에서 늘 동시에 경험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 없는 믿음을 이야기하는 것은 가짜 복음입니다.

 

4. 회개 없는 믿음은 사람들을 망하게 하는 설탕복음

 

오늘날 한국교회, 그리고 서방교회의 복음의 설명에 있어서 심각한 문제점이 무엇이냐 하면, 아주 쉽게 구원받도록 하기 위해 구원의 문턱을 낮추고 예수님을 쉽게 믿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즉 회개 없는 믿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왜 그렇게 전합니까? 사람들이 그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천국 안 가고 싶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런데 천국가려면 자신의 전 재산을 팔아야 합니다. “주님이 나의 전부입니다.” 하고서 내 인생전부를 주님께 내던져야 하는데, 그것은 부담스러운 것이죠. 즉 죄책은 씻음 받고 싶은데, 죄의 오염은 씻음 받기 싫은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죄악된 본성이 무엇이냐 하면, 아이들이 김밥을 통째로 먹지 않고 맛있는 햄만 쏙 빼먹듯이 그렇게 칭의만 쏙 빼먹는 것입니다. 죄 사함과 영생만 취하고 자기부인은 없는 것입니다. 자신이 주인이 된 것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으면서 교회는 나오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그렇게 살아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말하고 자기 스스로도 구원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다 지옥 갑니다. 자기를 위해서 사는 자는 지옥 갑니다. 자기를 위해서 예수님 믿는 자도 지옥 갑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구원 받을 자가 많지 않습니다. 지금의 한국교회 안에는 구원받지 못할 설탕 같은 복음이 많이 있습니다. 오직 믿음을 말하면서 회개 없는 믿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손쉽게 믿을 수 있어서 좋지만 결국 망하게 하는 복음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회개하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디모데후서 말씀에서처럼 성경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는데, 그 구원에 이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현대 대형교회는 그것을 교훈과 격려와 위로와 사랑으로 교육하기에 유익한 책으로 바꾸었습니다. 회개를 말하지 않고, 사랑과 위로와 긍정의 힘, 격려만 말합니다. 연신 “믿고 안심해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라고 말하면서 사람들을 멸망에 빠트립니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를 위한 책입니다. 교회는 여러분에게 위로하고 격려하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닙니다. 회개를 외치는 곳이 교회입니다. 자기 부인을 외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목회자들의 설교는 회개하도록 설교하는 것이 아니라 믿기만 하도록 설교합니다. 그런 식의 믿음은 가짜 믿음입니다. 우리가 오직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맞는 말이지만, 그 믿음 안에는 회개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회개 없는 믿음은 불법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노릇하며 병을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라고 하였습니다. 이 사람들은 목사나 영적지도자들로서 엄청난 사역을 행한 사람들이고, 열정이 대단하며, 주님을 너무나 잘 알고 믿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잘 알면 뭐합니까? 주님이 우리를 알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아는 것이 구원입니다. 재난구조영화에서 빠짐없이 나오는 장면이 무엇이냐 하면 지금 무인도에 떨어져 있는데, 헬기를 발견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방방 뛰고 소리 지르고 하는데, 헬기는 나를 발견하지 못하고 그냥 지나가는 것입니다. 내가 헬기 발견하고 방방 뛰면 뭐합니까? 헬기가 나를 발견하는 것이 곧 구원인 것입니다.


회개 없이 혼자 열심히 믿으면 주님은 그 사람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믿는 자는 그 이름을 생명책에 기록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회개란 무엇입니까? 그것은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신학교 다닐 때, 어떤 후배가 질문했습니다. “정말 내가 구원받았는지 안 받았는지 헷갈리고, 내 삶을 볼 때 늘 절망스럽고 구원받지 못할 거 같다... 하나님이 나를 버리실 것 같다...” 그렇게 말하니깐 동기 분 중의 한 명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여러분들이 많이 들어봤을 내용입니다. “장자재앙을 생각해봐라. 그 집안에 있는 사람들이 다 죄인이지 않았느냐... 어떤 사람은 정말 구원받을까 의심도 하는 사람이 있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았든 어떤 마음을 품든 문설주에 피만 발려 있으면 구원받는다. 그 피가 발린 문 안에만 있으면 구원받는다.” 그러니깐 후배가 아주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대답에는 의도하지 않은 치명적인 오류가 있습니다. 안에서 어떻게 하든 피만 칠하면 구원받는다는 말인데, 과연 그렇습니까? 정말 그들이 밖에다가 피만 칠했습니까? 무엇도 같이 했습니까? 그 피 흘려 죽인 유월절 양을 온 집안 식구들이 먹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냐 하면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아서 그분과 연합하는 내면의 변화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나 피칠 했다. 나 죄 용서받고 구원받았다...” 그러면서 여전히 자기가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피로 씻음 받았다고 하는데, 영혼은 죽어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염(殮)하고 있는 것입니다. 깨끗하게 씻음 받았는데 시체인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에 염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다 지옥갑니다. 구원은 밖에다가 주님의 피로 칠할 뿐만 아니라 내면에서는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아서 주님과 연합하는 내면의 변화가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자신을 돌아보십시다. 혹시 우리가 삶의 변화도 없고, 그분과 연합되는 경험도 없고, 여전히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있는데도, 그런데 예수의 피로 내 모든 죄가 씻음 받았다는 것을 철떡 같이 믿고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회개의 열매가 없다면 우리는 우리 신앙에 대해서 근본에서부터 진지하게 의심해보아야 합니다. 회개는 반드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물론 은혜로 회개해서 주인이 바뀌어도 조금 있다가 다시 자기가 주인으로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참된 신자라 하더라도 죄악된 본성이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날마다 지속되어야 합니다. 죄책의 씻음은 영단 번에 다 씻음 받았습니다. 그것은 반복되지 않습니다. 이미 목욕한 사람은 다시 목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은 계속해야 합니까? 발은 매일 씻어야 합니다. 매일 죄의 오염을 씻음 받는 회개가 반복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평생 똑같은 상태로 매일 반복하는 게 아니라 발전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회개 가운데서 점차로 더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믿음이 자라는 것이고, 그 믿음의 자라감에 따라 그 열매가 삶에서 그리고 성품에서 점차로 분명히 나타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처음 믿을 때는 그래도 열심히 믿었는데, 10년 20년 지나면서 오히려 믿음이 차갑게 식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회개의 합당한 열매는 한번 맺었으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맺혀야 합니다. 예수님은 “롯의 처를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롯의 사위를 생각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롯의 사위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심판받아 불에 타 죽었습니다. 그러나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에서 불타지 않았습니다. 거기서 일단 탈출해서 구원받았습니다. 그런데 나온 다음에 조건이 있습니다. 뒤돌아보지 말고 멈추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여자가 소돔에 미련이 남아서 뒤돌아보다가 결국 소금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경고로 주어졌습니다. 우리가 처음에는 신앙의 길을 열심히 달려갔는데, 중간에 멈추고 뒤를 돌아보고 세상과 벗하면서 살아가게 된다면 우리가 결국에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에 대한 경고인 것입니다. 참으로 손에 쟁기를 들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치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신을 차려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고 믿음을 회복하고 참되게 회개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내 안에 있는 죄를 죽이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리할 때 우리가 날마다 새롭게 변화를 받아 하루를 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주님 사랑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설교자 조회 수
24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서론 file 서론 최상범 8088
24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제1주(1문,2문) - 생사간의 유일한 위로 file 1~2문 최상범 7750
23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7주(20문,21문,22문,23문) - 참된 믿음이란 무엇인가? file 20-23문 최상범 5873
23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8주(24문,25문) - 삼위일체 하나님 file 24-25문 최상범 5866
237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제5주(12문,13문,14문,15문) - 우리의 중보자 file 12-15문 최상범 5561
»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26주(69문,70문,71문) - 세례와 성화론 file 69-71문 최상범 5461
23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해설 제2주(3문,4문,5문) - 율법 앞에서 죄인된 우리 file 3-5문 최상범 5183
234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강설 제3주(6문,7문,8문) - 사람의 원죄 file 6-8문 최상범 5107
23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9-10주(26문,27문,28문) 하나님은 우리 아버지이시다 file 26-28문 최상범 5091
23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해 제6주(16문,17문,18문,19문) - 유일한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 file 16-19문 최상범 5028
231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설 제4주(9문,10문,11문) - 하나님의 공의로운 심판 file 9-11문 최상범 5009
230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6주(40문,41문,42문,43문,44문) - 주님과 함께 죽어 장사된 우리 file 40-44문 최상범 4235
229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3주(33문,34문) - 외아들, 우리 주 file 33-34문 최상범 3972
228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5주(37문,38문,39문) -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당하신 예수 file 37-39문 최상범 3952
227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9주(50문,51문,52문) - 보좌 우편에 계신 예수님의 재림 file 50-52문 최상범 3916
226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주I(31문) - 그리스도 file 31문 최상범 3867
225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1주(29문,30문) - 유일하고 완전한 구주 예수님 file 29-30문 최상범 3758
224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4주(35문,36문) - 동정녀 탄생 file 35-36문 최상범 3737
223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7주(45문) - 예수님의 부활이 주는 유익 file 45문 최상범 3735
222 하이델베르그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제18주(46문,47문,48문,49문) - 예수님의 승천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 file 46-49문 최상범 3709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Next
/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