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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4,5조
문답내용 제 4 조 정경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의 두 책으로 되어 있고 이 책들은 정경이어서 이 책들에 대한 어떠한 이의도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책들 :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와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13개 서신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나머지 7개의 서신들 즉,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사도 요한의 계시록.

제 5 조 성경의 권위

우리는 이 모든 책들, 그리고 오직 이 책들만을 우리의 믿음을 구성하고(regulation) 기초하고(foundation) 확증하는(confirmation) 거룩한 정경(holy and canonical)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책들을 교회가 받아들이고 승인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 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우리 마음속에 증거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 안에 담겨진 내용들이 그 자체로 증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심지어 눈 먼 자라 할지라도 그 책들 안에 예언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강설날짜 2015-01-25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4,5조 강설


정경


제 4 조  정경


우리는 성경이 구약과 신약의 두 책으로 되어 있고 이 책들은 정경이어서 이 책들에 대한 어떠한 이의도 있을 수 없음을 믿습니다. 이 책들은 하나님의 교회에서 다음과 같은 이름으로 수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의 책들 : 모세오경, 즉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와 여호수아, 사사기, 룻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하, 에스라, 느헤미야, 에스더서와 욥기, 시편, 잠언, 전도서, 아가서, 이사야, 예레미야, 애가, 에스겔, 다니엘,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미가, 나훔, 하박국, 스바냐, 학개, 스가랴, 말라기.


신약의 책들 : 4복음서들, 즉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사도 바울의 13개 서신들 즉, 로마서, 고린도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 히브리서; 나머지 7개의 서신들 즉, 야고보서, 베드로전후서, 요한1,2,3서, 유다서, 사도 요한의 계시록.


우리는 앞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3조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한 특별한 돌보심 가운데 선지자들로 하여금 하나님 말씀을 글로 기록하도록 하셨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 기록된 말씀이 바로 신성하고 거룩한 성경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4조는 우선 이 성경이 신구약의 두 권의 책으로 되어 있다고 고백합니다. “구약”과 “신약”이라는 용어가 오늘날 거의 고유명사화 되어서 사람들이 그 의미를 생각하지 않은 채 그냥 성경의 앞부분을 구약, 뒷부분을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구약은 옛 언약의 약자이고, 신약은 새 언약의 약자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언약적인 관점에서 보아야한다는 것을 벌써 이 두 책의 제목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많이 배워서 잘 알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신자들은 ‘언약’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그러면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우리는 언약하면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언약을 주권적으로 이루어 가신다. 언약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신다.” 라는 사실을 떠올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언약적 구속사의 성격이지, 언약의 정의가 아닙니다. 그러면 언약이란 무엇입니까? 언약이란 한 마디로 말해 두 당사자가 깊은 사랑과 의무의 관계로 들어가기 위해 의식 가운데서 서로가 서약한 것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가 결혼식을 통해 서로 서약하고 깊은 사랑과 의무의 관계로 들어가는 것이 바로 언약관계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도 바로 이런 부부관계와 같은 것이죠. 즉 하나님은 남편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그의 아내가 되어서 서로 깊은 사랑 가운데 서로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관계인 것입니다. 그리고 부자관계도 대표적인 언약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아버지가 되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장자가 되는 것입니다. 군신관계 또는 주종관계도 대표적인 언약관계입니다. 하나님은 왕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신하 또는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모든 언약의 관계는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이고, 또한 쌍방 간에 의무가 있는 법적인 관계이기도 합니다. 부부관계에서 아내가 남편 몰래 바람피우면, 남편의 사랑은 질투로 변하고, 여자는 그 언약을 깨트린 것에 대한 법적 처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부자관계에서도 자식이 부모를 불순종하고 훼방하면 그 자식은 율법에 따라 돌로 쳐 죽임을 당하는 것이죠. 군신관계에서도 신하가 왕을 반역해서 대적하면 반란죄가 되어 그 신하뿐만 아니라 그 신하의 삼족까지 멸망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언약관계라는 것은 깊은 신뢰와 사랑의 관계이면서도 또한 서로간의 의무를 신실하게 이행하지 아니했을 때는 법적 처벌을 받는 그런 서약관계인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시고 그 아담과 이러한 언약을 맺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아담의 관계가 깊은 사랑의 관계이면서도 또한 선악과 금령을 통해 나타나는 것처럼 행위에 따른 상벌이 있는 법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아담이 불순종하여 그 언약을 깨트려버렸습니다. 그래서 아담 안에서 모든 인류가 타락했고, 모든 인간은 근본 하나님과의 언약을 이미 깨트린 상태에 있는... 즉 언약을 깨트린 죄에 대한 처벌을 기다리는 사형수와 같은 비참한 입장에 서 있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인생들을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자격 없는 인생들에게 주권적이고 일방적으로 언약을 맺어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은혜언약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와 언약을 맺으실 때는 앞서 말한 서로 대등한 입장에서의 일반적인 부부관계, 부자관계, 군신관계가 아닙니다. 그래서 언약을 이야기하시면서 호세아에서는 “음란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해라” 라고 말씀하신 것이고, 누가복음에서는 배은망덕한 탕자를 그 아버지가 용서하고 영접하고, 구약의 전 역사를 보면 하나님은 왕 되신 자신을 반역한 그의 백성 이스라엘을 용서하시고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법을 초월한 일방적이고 하나님 주권적인 은혜의 언약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은혜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께서 그 은혜로 우리 마음을 변화시켜주셨기 때문에 이제는 그 은혜에 감사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예수님의 거룩한 아내로서 예수님의 자녀로서 예수님의 종으로서 자원하여 기쁨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언약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인생들과 이러한 은혜언약을 맺으셔서 당신이 친히 주권적으로 구속의 역사를 진행해 가시는 것입니다. 새 언약은 바로 이 은혜언약의 실체입니다. 왜냐하면 은혜언약이란 결국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주셔서 그로 사단의 나라를 파하고 우리를 죄와 사단마귀의 권세에서 구원해주심으로써 영원히 우리의 하나님이 되어주시겠다는 삼위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성찬식을 제정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이는 내 피로 세우는 새언약이니 이를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자신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이야말로 바로 모든 인생들을 구원하고 그리스도와의 깊은 사랑가운데로 인도하는 은혜언약의 실체인 것입니다.


그러면 옛 언약은 무엇입니까? 새 언약이 실체라고 한다면, 옛 언약은 그 실체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반드시 실체가 오기 전에 모형과 그림자가 먼저 와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실체가 곧바로 와버리면 구약의 성도들이 그것을 도무지 감당할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마치 어린 아이에게 실제 자동차를 주어서 타고 다니라고 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기 때문입니다. 어린아이에게는 자동차 모형을 주면서 나중에 크면 그 모형과 똑같은 진짜 자동차를 주겠다고 말하는 것이 맞는 것입니다. 옛 언약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손가락질 하여 가리키는 은혜언약의 모형이요 그림자입니다. 그러나 옛 언약에 다만 이런 의미만 있다면 우리가 그것을 옛 언약이라고 말할 필요가 없죠. 왜냐하면 옛 언약, 새 언약을 따로따로 말한다는 것 자체가 곧 성경의 가르침대로 옛 언약이 폐하여졌고 그러므로 새 언약이 왔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이 은혜언약이라는 같은 맥락에 있으면서도 또한 다른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차이는 바로 시내산 언약에서 잘 나타나는 것처럼 은혜언약에 율법이 덧붙여졌다는 점입니다. 즉 은혜가 은혜 되기 위해서는 율법이 먼저 와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끝가지 은혜언약으로 구속사를 진행해 가시는데, 특별히 시내산 언약에 가서는 율법이 가입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내산 언약도 은혜언약인데, 거기에 낯선 침입자 율법도 추가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볼 때 이 두 가지가 공존하니깐 굉장히 헷갈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은혜로 구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또 법을 주시면서 “너희가 지키면 복 받고 어기면 죽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또 이스라엘이 불순종했는데도 법대로 다 심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오래 참으시고 선지자를 보내서 회개케 하시고 징계하시되 남은 자를 두셔서 다시 회복하시는 것입니다. 율법과 은혜가 공존하는 언약입니다. 그러면 왜 은혜만으로 안 하시고 율법이 추가되었습니까? 그것은 정말 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으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율법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확인시키고 이스라엘 백성들로 자신들의 죄를 깨닫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온전히 붙잡도록 하기 위한 몽학선생으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것을 이스라엘의 전 역사를 통해서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옛 언약이 먼저 와서 그것이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깨어지고, 그 다음에 새 언약이 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전체는 바로 이러한 언약적 구속사의 경륜을 담고 있는 책입니다. 이런 언약적 구속사의 흐름에서 성경을 읽어야 제대로 보는 것이지, 언약에 대한 이해가 없이 그저 단편적으로 부분부분을 읽으면 상당히 잘못된 오류에 빠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은 옛 언약과 새 언약으로 되어 있음을 생각하면서 열심히 그리고 바르게 성경을 배우고 읽어야 할 것입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내용을 보시죠.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어서 이 성경을 ‘정경’이라고 말합니다. 앞서 배운 3조에서는 기록된 말씀을 “거룩하고 신성한 성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 표현을 영어로 보면 “holy and divine Scriptures”입니다. 우리는 ‘성경’하면 영어로 ‘Bible’만 생각하는데, 그러나 ‘Scripture’라는 단어도 ‘성경’을 뜻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Bible’이나 ‘Scripture’나 동일하게 ‘책, 기록물’을 뜻하는 단어로서 의미상 별로 차이가 없는 단어들입니다. 그런데 오늘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4조에서는 이 성경을 ‘정경’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영어로 “the Canonical Books”입니다. 이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단어입니다. ‘canon’은 “규범, 계율 또는 특정작가의 정본목록”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canonical Books’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규정된 하나님의 저작목록을 뜻합니다. 이 세상에 하나님이 저자이신 책 목록이 딱 정해져 있는데, 그것은 사람이 임의대로 더하거나 뺄 수 없는 정경으로서 구약 39권, 신약 27권해서 66권 성경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 66권의 목록을 일부러 다 열거하며 고백합니다. 성경 목록을 언급하는 이유는 로마가톨릭이 외경을 제2의 정경으로 인정했기 때문이며, 또한 그 당시 루터가 야고보서를 정경의 목록에서 빼려는 듯한 인상을 강하게 나타냈기 때문에 그것에 대해서도 반대하려는 의도가 있었을 것입니다.


제 5 조  성경의 권위


우리는 이 모든 책들, 그리고 오직 이 책들만을 우리의 믿음을 구성하고(regulation) 기초하고(foundation) 확증하는(confirmation) 거룩한 정경(holy and canonical)으로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책들을 교회가 받아들이고 승인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 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우리 마음속에 증거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 안에 담겨진 내용들이 그 자체로 증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심지어 눈 먼 자라 할지라도 그 책들 안에 예언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5조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단어는 ‘받아들인다(receive)’라는 동사입니다. 영어로 보면 제일 먼저 나오죠. 다른 곳에서는 신앙을 고백할 때, ‘confess’나 ‘believe’를 써서 믿는 사람의 능동적인 행위가 강조되었는데, 여기서는 일부러 ‘receive’를 사용하여 주어진 것을 그대로 수납하는 믿음의 수동적인 행위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받아들인다.”라고 했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주는 편의 절대적 권위’가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께서 자신의 특별계시를 친히 종들을 사용하셔서 글로 기록하여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의 가부를 묻지 않고 그저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납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이 점은 조금 있다가 다시 언급될 것입니다.


그러면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무엇을 받아들입니까? 앞서 제4조에서 언급된 성경 66권을, 그리고 오직 그 66권만을 우리의 믿음을 구성하고 기초하고 확증하는 거룩한 정경으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강조점은 ‘성경만을’입니다. “성경을 받아들인다. 그런데 또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라고 문을 열어놓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만을”이라고 함으로써 모든 가능성을 닫아버리는 것입니다. 성경 66권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성경 66권만을 우리의 무엇으로 받아들입니까? 세 가지를 이야기하는데, 첫 번째는 성경 66권만이 우리 믿음을 구성(regulation)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regulation’은 ‘규정, 규제, 단속’을 의미합니다. 성경 66권만이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믿고 또 어떻게 신앙생활 해야 할지에 대한 모든 것들을 규정해주는 유일한 규칙 또는 규범인 것입니다. 두 번째는 사실 앞에 것과 같은 말이긴 한데, 성경 66권만이 우리의 믿음의 기초(foundation)라고 고백합니다. ‘foundation’은 “바탕, 토대, 기초”를 의미합니다. 즉 우리의 믿음은 내 마음대로, 내가 믿고 싶은 대로 믿는 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성경에 기초해야 합니다. 세 번째로 역시 똑같은 이야기인데, 성경 66권만이 우리의 믿음을 확증(confirmation)한다고 고백합니다. ‘confirmation’은 무엇이 참되며 무엇이 진리인지를 검증하고 확증해주는 것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 “이 사람의 믿음이 참된 믿음인가 거짓된 믿음인가?”하는 것은 그 사람의 고백이 성경66권과 일치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문장을 보시면, “우리는 이 사실에 대해서 추호의 의심도 없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이 번역이 잘된 번역인지 알 길이 없습니다. 여러 영어판이 있겠지만, 제가 참조하는 영어판에서는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And we believe without a doubt all things contained in them...”


그리고 이 영어판대로 손정원 목사님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우리는 이 책들 안에 포함된 모든 것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습니다.”


즉 성경이 무엇을 말하든지 어떤 사건을 이야기하든지 그것은 역사적 사실이며 참된 진실이고 진리임을 믿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성경은 어떠한 오류도 없는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실수투성이이고 오류가 많은 인간이 기록했을지라도 그것이 성령님의 영감하에 기록된 것이기에 그 어떤 오류도 없는 완전하고 온전한 하나님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의 모든 내용들에 대해서 어떠한 추호의 의심도 없이 그대로 믿고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목사라고 하면서 신학자라고 하면서 이것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곧 자유주의 신학자들과 소위 신정통주의라고 불리는 자들입니다. 먼저 자유주의는 말 그대로 이성의 자유를 주장하는 것입니다. 즉 중세시대는 인간의 이성이 폭군과 같은 종교와 신앙에 의해 철저하게 억압당한 시대였기 때문에, 너도 나도 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무조건 믿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미신적이고 맹목적인 자세를 취하며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르네상스를 통해 종교의 억압을 제거하고 이성이 자유를 얻었기 때문에, 이제는 이 합리적인 이성으로 성경을 새롭게 보자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주의자들은 성경을 그저 고대근동의 여러 신화들 가운데 하나로 인식하고, 삶의 교훈과 의미를 가르쳐주는 탁월한 문학작품으로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성경이 증거하는 모든 기적들을 다 지어낸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과 부활 사건을 우리나라 단군신화와 별다를 바 없는 이야기로 봅니다. 이런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아예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이기 때문에 이단이라는 말을 붙이기에도 아까운 자들입니다.


한편 보다 교묘하게 성경을 훼손하는 자들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신정통주의자들입니다. 오늘날의 기장(기독교장로회-한신대)쪽 교회들이 전부 이 입장을 취하고 있고, 그리고 장로교에서는 통합(예수교장로회 통합-장신대)쪽 교회들이 일부 이런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칼 바르트의 입장인데, 그러니깐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 전에 한참 자유주의 신학이 온 세상을 판칠 때에 혜성같이 등장해서 자유주의 진영에 핵폭탄을 떨어뜨려 사람들을 어느 정도 정통으로 되돌려놓은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이 바로 칼 바르트입니다. 그런데 완전히 정통이 아니라, 어느 정도 자유주의와 타협을 보았기 때문에 신정통주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칼 바르트는 주장하기를 “성경은 인간의 책이므로 여러 가지 한계를 가지고 있고, 기록자의 사소한 판단착오나 실수가 나타나며, 역사적 과학적 연대적 오류나 신화가 포함되어 있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본질상 제한적이며, 상대적인 존재이기에 무슨 일이든지 완전하게 할 수 없고, 또 하나님께서도 이것을 잘 아시고 그것을 다 감안하셔서 자신의 뜻을 전달하셨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류와 실수가 있더라도 하나님이 궁극적으로 전달하고자 하시는 구속의 사실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므로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한다고 해서 무슨 대단히 큰 불경죄를 저지른 것처럼 안달할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그렇게 오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지금도 이 성경을 통해 말씀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때문에 성경을 존중해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칼 바르트에게 있어서 성경은 그 자체로 (곧, 정적인 상태로는) 하나님의 영감 된 책은 아닙니다. 축자적 영감을 부정합니다. 그러나 그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말씀하실 때, 즉 우리가 성경을 읽고 배우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대면하게 될 때, 그 하나님의 음성이 바로 영감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바로 우리를 그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체험으로 인도하는 하나의 중개자요 매개체일 뿐인 것입니다. 객관적인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주관적인 체험과 깨달음이 하나님의 말씀이 되었기 때문에, 객관적인 기준이 없으니깐, 각자 각자가 자기 나름대로 깨닫고 체험했으면 그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입니다. 상당히 주관적인 해석의 위험성이 다분히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는 성경도 하나님의 일점무오한 말씀이고, 이 말씀을 사용하셔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설사 내가 감격가운데 깨닫고 체험했다 할지라도 그것이 거짓일 수 있기 때문에 항상 객관적인 기준으로서 일점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칼 바르트는 그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이런 우리를 칼바르트나 신정통주의자들이 보면, 답답함을 느끼는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을 생생하게 체험하고, 성경보다 더 크신 하나님을 만나는 것이 중요한데, 우리는 맨날 성경문자만 붙잡고 성경문자에만 매여 있으니깐... 아주 답답한 통조림에 갇혀 있는 문자주의자들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처럼 “이 책들 안에 포함된 모든 것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믿는 것”이야말로 참된 신앙이며, 그것이 하나님이 이 책을 기록하신 의도에 충실 하는 것입니다. 성경만이 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이며 우리 신앙의 유일한 규범이고 기초이고 확증입니다. 우리는 여기에 목숨 걸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그들의 주장에 넘어가서 성경에 조금이라도 오류가 있다고 인정하게 된다면, 그 순간 모든 성경의 권위는 훼손되어지고, 결국 우리를 성경의 굳은 반석에서 떼어놓으려는 사단마귀의 전략에 넘어가는 꼴이 되고 말 것입니다.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의 말로를 보십시오. 성경의 무오성을 인정하지 않는 대부분의 신학자들 교회 목사들을 보면, 결국에는 여성목사안수를 인정하고, 로마가톨릭과 화해하려고 하며,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고 하는 WCC 운동에 참여하고, 그리고 대부분이 신비주의적인 영성운동쪽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유일한 표준이요 기준인 성경에 매여 있지 않으면 다 세상의 풍조에 휩쓸려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런 오류를 경계하고 성경만을 우리의 유일한 신앙의 규범으로 고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슨 근거로 그 수많은 하나님에 관한 책들 가운데서 성경 66권만을 일점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받아들이는 것입니까? 이점에 대해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그 책들을 교회가 받아들이고 승인했기 때문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 책들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임을 우리 마음속에 증거하시기 때문이며, 또한 그 안에 담겨진 내용들이 그 자체로 증거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내용 역시 번역이 좀 아쉽습니다. 영어판을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습니다.


“not so much because the church receives and approves them as such but above all because the Holy Spirit testifies in our hearts  that they are from God, and also because they prove themselves to be from God.”


영어로 “not so much because A but above all because B”는 “A 때문만이 아니라 무엇보다도 B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즉 성경 66권만을 일점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분명 교회의 승인이 하나의 근거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성령의 증거와 성경의 자증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것을 승인하기에 앞서 먼저 수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승인해야만 했던 이유는 하도 이단들이 성경 목록들에 대해서 왈가불가하니깐 문을 닫아놓는 의미로 승인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66권만이 하나님의 무오한 말씀이라는 근거는 오직 성령의 증거와 성경의 자증입니다. 사도바울은 서신을 쓰고 나서 때때로 그 서신을 여러 교회에 돌려서 보라고 말했습니다(골 4:16). 사도바울은 자신의 서신이 성경이 될 것을 알고 있었을까요? 아마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서 베드로도 이 사도바울의 서신을 받아 보고서는 곧바로 그것이 의심의 여지없는 성경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벧후 3:15-16). 물론 사도바울이 썼다고 해서 무조건 성경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도바울이 쓴 서신이 최소한 16개 이상은 된다고 생각되는데, 성경에 수록된 서신은 13개입니다. 사도바울이 썼다고 다 성경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영감이 있느냐 없느냐가 성경이냐 아니냐를 좌우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어떻게 사도바울의 서신 가운데 13개는 성경으로 나머지 3개는 그냥 서신으로 구분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신자가 그 서신들을 읽을 때, 신자 안에 계신 성령님께서 이 글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일점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친히 증거하심으로써 구분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거듭나서 성령을 받지 아니하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 글이나 저 글이나 다 그게 그거 같은 것입니다. 그러나 성령을 받은 자는 읽어보면 딱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여러 사도들과 여러 선지자들이 수많은 서신들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역사가 한참 흐른 후에 어느 순간 보니깐 교회들마다 성경으로 대하고 읽는 사도들의 서신의 목록들이 완전히 일치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신약 27권입니다. 교회가 모여서 이것만 성경으로 읽자고 의논한 적도 없는데 온 교회가 그 27권의 서신을 특별한 성경으로 귀하게 여기면서 그렇게 읽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가 성령님의 증거를 그대로 수납하였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내용 자체가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자증합니다. 1500년의 긴 세월동안 40명가량의 다양한 저자가 다양한 장르로 글을 썼는데도 불구하고, 마치 한 사람이 쓴 것처럼 놀라운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그것이 사람의 글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감된 말씀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과거의 모세의 예언이 이스라엘의 역사에 그대로 성취되었고, 또 선지자들의 예언이 신약의 예수님께 하나도 빠짐없이 그대로 성취되는 것을 보면서, 무엇보다도 지금도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되고 있음을 보면서 우리는 성경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임을 확신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내용 자체가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스스로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확실한지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그렇기에 심지어 눈 먼 자라 할지라도 그 책들 안에 예언된 모든 것들이 성취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정말 성경의 모든 말씀과 예언이 이 세상 역사 속에서 다 성취가 되었고, 또 지금도 성취되고 있다는 것을 눈먼 자라도 안다는 것입니다. 즉 그 누구라도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본 자라면 이것을 부인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불신자도, 심지어 자유주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은 다만 자신의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면서 억지를 부리고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오직 거듭나 성령을 받은 자는 성경만이 참으로 일점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임을 참되게 믿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사실을 정말 마음에서부터 믿고 받아들이십니까? 그래서 성경을 사랑하고 귀하게 여기며 성경만 붙잡고 살아가면서 성경을 열심히 읽고 배우며 살아가십니까? 그렇다면 우리 안에 성령을 주시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수납하게 하시고, 그래서 성경이 말하는 예수님을 믿게 하심을 인해서 감사하십시오. 왜냐하면 이를 우리로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마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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