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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9-11조
문답내용 제 9 조 이 교리의 성경적 증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성경의 증거로부터, 그리고 삼위 각각의 사역으로부터, 특별히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깨닫게 되는 삼위의 사역으로부터 압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삼위일체 교리를 믿도록 인도해 주는 성경의 증거들은 구약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증거구절 모두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고, 몇몇 구절들만 신중하게 선택하여 언급하면 충분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보라, 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창3:2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는 부분은 하나보다는 더 많은 신적 위격(divine persons)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느니라”라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임을 나타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위격(persons)을 가지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구약에서는 다소 분명치 않던 것이 신약에 와서는 매우 명백해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3:17) 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렸고, 성자께서는 물 가운데 계셨으며, 성령님께서는 비둘기의 모양으로 하늘에서 성자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의 세례의식에 대해서도 이 형태로 제정하셨는데, “너희는 모든 족속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 가브리엘은 우리 주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1:35)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증거구절들에서 우리는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in one only divine essence) 세 위격(three persons)을 가지신 것을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비록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를 한참 뛰어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교리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리의 완전한 지식과 열매를 장차 하늘에서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나아가, 우리는 우리를 향한 이 삼위의 독특한 직분과 사역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부는 그 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주로, 성자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자와 구속주로, 성령께서는 그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성화주(Sanctifier)로 불리우십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사도시대 이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대주의, 이슬람,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이단들 즉, 말시온, 마니(mani),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와 같이 정통 교부들에 의해 정식으로 정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항하여 참된 교회 안에서 항상 유지되고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리에 관한 세 신경인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교부들이 동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입니다.

제 10 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성에 따라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시요, 영원부터 나셨으며, 만들어지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창조되지도 않으셨고(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는 피조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동일한 본질(essence)이시고, 동등하게 영원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시고, 그 본성의 참된 속성을 나타내시며(히1:3), 모든 것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한 분이심을 믿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그가 우리의 본성(즉 인성)을 취하실 때부터가 아니라 성경의 모든 증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대로 영원부터 그러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으며, 사도 요한은 그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 그 말씀에 의하여 만물이 만들어졌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을 지으셨다고 증거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사도바울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될 당시에도 계셨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고 하셨고, 그가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전능자이시고, 우리가 바라고 예배하고 섬겨야 할 분이십니다.

제 11 조 성령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또한 성령님께서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태어나신 것도 아니라, 다만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순서에 있어서 삼위일체 가운데 제3위이시고, 본질(essence)과 위엄(majesty)과 영광(glory)에 있어서 성부, 성자와 동일하시고 하나이십니다.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령님께서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강설날짜 2015-02-15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9-11조


삼위일체(2)


우리는 지난시간 삼위일체 교리 전반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은 세 가지를 고백하는 것입니다. 곧 단일본질, 구별된 세 인격, 동일본질입니다. 우리가 이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리의 존재 목적이요 그것이 구원이며 그것이 우리 신앙의 본질이요 정수임을 알고, 삼위일체 하나님을 깨달아 알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은 이 교리의 성경적 근거를 서술하는 벨기에 신앙고백서 9조와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을 각각 다루는 10조와 11조까지 배워보겠습니다. 먼저 9조를 살펴보시면...


제 9 조  이 교리의 성경적 증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성경의 증거로부터, 그리고 삼위 각각의 사역으로부터, 특별히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깨닫게 되는 삼위의 사역으로부터 압니다. 우리로 하여금 이 삼위일체 교리를 믿도록 인도해 주는 성경의 증거들은 구약성경 곳곳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내용처럼 우리가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깨닫고 체험할 수 있기 위해서는 성경의 안내를 받아야만 합니다. 여러분 성경이 먼저입니까? 하나님이 먼저입니까? 그 존재에 있어서는 하나님이 먼저이고, 성경은 하나님이 구속의 경륜 가운데 자기를 계시하신 것이니깐 그 다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인식에 있어서는 성경이 먼저고, 그 성경의 계시를 통해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결코 성경을 제외하고 하나님을 직접 체험하여 하나님이 삼위일체이심을 알고 깨닫는 것이 아님을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방식을 추구하는 것은 사단마귀의 밥이 되는 지름길임을 알고 우리는 성경의 가르침에 목숨 걸어야 합니다. 그러면 성경 어디에 하나님이 삼위일체 되심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신구약성경 모두가 그것을 증거 하는데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먼저 구약성경의 증거구절을 제시합니다.


그 증거구절 모두를 일일이 열거할 필요는 없고, 몇몇 구절들만 신중하게 선택하여 언급하면 충분합니다.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창1:26-27)라고 하셨습니다. 또한 “보라, 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창3:22)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라는 부분은 하나보다는 더 많은 신적 위격(divine persons)이 있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에 대한 구약의 증거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 하신 말씀을 언급합니다. 곧 하나님께서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어떤 말씀을 하시고 나서 창조하셨는데, 그 내용이 “우리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고 그로 온 세상을 다스리게 하자”라는 내용입니다. 주어가 1인칭 복수로 되어 있고 마치 창조주가 여럿이 있어서 사람 창조를 위해 서로 의논하듯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담이 범죄한 후에 하나님께서는 “보라, 이 사람이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고 하시면서 “우리 중에(미메누)”라는 표현을 하십니다. 이 용어는 성경의 용례를 보면 항상 다수의 공동체를 전제하는 표현입니다. 이런 표현들이 한분 하나님이 위격에 있어서 단수가 아니라 복수로 계신다는 것을 강력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 다음 벨기에 신앙고백서 내용을 계속해서 보시면...


그리고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에, “하나님이 창조하셨느니라”라는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한 분 하나님임을 나타냅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냐 하면,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경우에는(영어도 그렇지만) 주어에 따라서 동사의 어미가 달라지는데, 창세기 1장 26절과 27절에 보면 ‘우리’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그 동사가 단수 형태를 취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말하다’ 동사 - 단수) 우리(복수)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창조하다’ 동사 - 단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그러므로 위격에 있어서 복수이시나 존재에 있어서 한분이심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많은 위격(persons)을 가지셨는지에 대해서 말씀하시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만, 구약에서는 다소 분명치 않던 것이 신약에 와서는 매우 명백해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마3:17) 라는 성부의 음성이 들렸고, 성자께서는 물 가운데 계셨으며, 성령님께서는 비둘기의 모양으로 하늘에서 성자 위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신자들의 세례의식에 대해서도 이 형태로 제정하셨는데, “너희는 모든 족속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마28:19)라고 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 의하면 천사 가브리엘은 우리 주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에게 말하기를 “성령이 네게 임하시고 지극히 높이신 이의 능력이 너를 덮으시리니 이러므로 나실 바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으리라”(눅1:35)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고후13:13)고 하셨습니다. 이 모든 증거구절들에서 우리는 하나의 신적 본질 안에(in one only divine essence) 세 위격(three persons)을 가지신 것을 분명히 배울 수 있습니다. 


이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의 증거로서 신약으로 넘어옵니다. 구약에서는 희미했지만, 신약에서는 분명하게 계시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4가지를 말하는데, ①예수님이 세례 받으시는 사건, ②대위임령, ③누가복음의 수태고지, ④고린도후서의 축도입니다. 모두 삼위를 동시에 동격으로 언급하는 구절들입니다. 신약에 보면 이 네 구절 말고도 삼위를 동시에 동격으로 언급하는 구절들이 많이 있지만, 이 네 가지만 말해도 충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을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 삼위가 함께 언급되고 있다는 것은 이 삼위의 구별되심과 동등하심을 분명하게 증거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보시면...


비록 이 교리는 인간의 이해를 한참 뛰어넘는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이 교리를 믿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리의 완전한 지식과 열매를 장차 하늘에서 누리게 될 것을 기대합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성화되면 성화될수록, 그리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더 깊이 누려 가면 누려갈수록 삼위일체의 신비를 더 깊이 깨달아 알게 됩니다만, 그러나 우리가 육체를 입고 이 땅에 사는 한은 언제나 죄와 육체의 방해가 있기 때문에 늘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우리가 거울을 보는 것같이 희미하게 본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재림의 때에 우리는 주님을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해서 희미하게 깨달아 알아도 이렇게 전율하며 감격하는데, 그날에 하나님을 온전히 알게 될 때 얼마나 감격하며 전율할까요?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소망과 기대가 있어야 합니다. 계속해서 보시면...


나아가, 우리는 우리를 향한 이 삼위의 독특한 직분과 사역에 주목해야 합니다. 성부는 그 능력에 따라 우리의 창조주로, 성자는 그의 피로 말미암아 우리의 구원자와 구속주로, 성령께서는 그의 내주하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성화주(Sanctifier)로 불리우십니다.


이 내용은 지난주에 우리가 살펴보았던 ‘전유’라고 하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사역이 삼위하나님의 공동사역임에도 불구하고 각 위에게 대표격으로 어떤 부분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성부에게는 창조사역이 돌려지기 때문에 창조주라고 불리고, 성자에게는 구속사역이 돌려지기 때문에 구속주라 불리며, 성령에게는 그 구속을 적용하시어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를 변화시켜주시는 사역이 돌려지기 때문에 우리의 성화주라고 불리는 것입니다.


이 삼위일체 교리는 사도시대 이후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유대주의, 이슬람,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이단들 즉, 말시온, 마니(mani), 프락세아스, 사벨리우스, 사모사타의 바울, 아리우스와 같이 정통 교부들에 의해 정식으로 정죄 받았던 사람들에 대항하여 참된 교회 안에서 항상 유지되고 보존되어 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교리에 관한 세 신경인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신조들에 일치하는 것으로서 고대교부들이 동의한 신조들도 받아들입니다.


그 다음에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다른 조항에서도 그렇지만) 삼위일체 교리와 관련한 이단들을 정죄하는 것으로 끝맺음을 합니다. 유대주의와 이슬람은 유일신 하나님을 믿고 고백하나 예수님과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을 믿지 아니하는 이단입니다. 말시온은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다르다고 주장하는 이단이고, 아주 반율법적이고 반유대적인 정서가 강한 인물입니다. 마니교는 3세기쯤에 마니라는 사람에 의해 창시된 종교인데, 기독교와 영지주의를 짬뽕시켜서 만든 종교로서, 모든 것을 선과 악, 육과 영의 이원구도로 보는 이단입니다. 제가 볼 때는 삼위일체 이단이라기보다는 사이비종교입니다. 프락세아스는 삼위의 구별을 없앤 양태론과 비슷한 이야기를 한 사람인데 ‘성부고난설’을 주장했습니다. 사벨리우스도 마찬가지로 양태론 이단자입니다. 사모사타의 바울은 한분 하나님만 계시고 로고스의 인격을 부정하면서, 로고스는 그저 하나님의 능력과 지혜일뿐이고, 그 로고스가 구약에서는 여러 선지자들 위에 임했는데, 예수에게는 좀 더 비상하게 임해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로 승격되고 신격화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양자론의 한 형태인데, 양자론이란, 성자는 창조된 피조물로서 어느 한 시기에 하나님의 아들로서 승격되어 신적인 존재가 된 것으로 보는 입장입니다. 사모사타의 바울은 예수의 세례시에 로고스가 임했다고 주장하였고, 소시누스는 탄생시에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였으며, 아리우스는 창세전에 그렇게 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다 삼위일체를 부정하는 양자론 이단입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이단이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마음으로 이런 이단을 배격하고 정죄해야 합니다. 그리고 삼위일체 교리를 잘 고백한 정통교리인 사도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 니케아 신경을 우리의 믿는 바로 고백합니다.


이제 10조를 배워보겠습니다.


제 10 조  예수 그리스도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신성에 따라 하나님의 독생하신 아들이시요, 영원부터 나셨으며, 만들어지지 않으셨을 뿐 아니라 창조되지도 않으셨고(왜냐하면 그럴 경우 그는 피조물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부와 동일한 본질(essence)이시고, 동등하게 영원하시며, 하나님의 영광을 반영하시고, 그 본성의 참된 속성을 나타내시며(히1:3), 모든 것에 있어서 성부와 동등한 분이심을 믿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0조는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고백하는 조항입니다. 이 10조의 강조점은 예수님께서 창조되거나 만들어진 피조물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리우스의 견해를 염두에 두고서 하는 말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강력하게 그리고 반복적으로 예수님께서 창조주로서 성부와 동일본질이시며 동등하신 하나님이심을 고백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은, 그가 우리의 본성(즉 인성)을 취하실 때부터가 아니라 성경의 모든 증거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바대로 영원부터 그러하셨습니다.


양자론의 주장처럼 예수님께서는 어느 시점에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 것이 아니라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의 독생자가 되십니다. 그러면 그렇게 주장하는 성경적 근거가 무엇입니까? 사실 성경에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한 증거들을 다 다루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래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증거하는 성경의 수많은 증거들 가운데서 딱 세 가지 측면에만 관심을 집중합니다. 첫 번째는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만유를 창조하셨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으며, 사도 요한은 그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 그 말씀에 의하여 만물이 만들어졌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또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세상을 지으셨다고 증거하며 그와 마찬가지로 사도바울도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말합니다.


이점과 관련하여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예수님의 창조사역을 말하기 전에 먼저 창세기에 나오는 하나님의 창조사역을 언급합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즉 창세기 1장에 보면 온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아리우스의 주장처럼) 능력 많은 어떤 피조물을 만드시고, 그 피조물로 하여금 다른 모든 피조물을 만들도록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홀로 하늘과 땅의 모든 세계와 만유를 직접! 말씀으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은 철저하게 창조는 오직 하나님의 사역이며, 때문에 창조자는 곧 하나님이심을 의미함을 가르쳐줍니다. 따라서 이분법이 가능합니다. 창조자이면 피조물이 아니고, 피조물이면 창조자가 아닙니다. 이 전제를 분명히 가지고서 신약의 구절들을 보면, 요한복음, 바울의 서신들, 히브리서 등 곳곳에서 언급되는 예수님의 창조사역은 바로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예수님께 ‘하나님’의 칭호가 돌려지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세계를 창조하셨다고 말하고 있으며, 사도 요한은 그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바 그 말씀에 의하여 만물이 만들어졌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될 당시에도 계셨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아래의 구절들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어떠한 애매모호함도 없이 분명하고도 직접적으로 증거하는 구절들입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사 9:6)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요 20:28)
“또 아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 이르러 우리에게 지각을 주사 우리로 참된 자를 알게 하신 것과 또한 우리가 참된 자 곧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니 그는 참 하나님이시요 영생이시라”(요일 5:20)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저는 만물 위에 계셔 세세에 찬양을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롬 9:5)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딛 2:13)


세 번째로 예수님의 선재하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모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될 당시에도 계셨음이 분명한 것입니다. 따라서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요8:58)고 하셨고, 그가 기도하시기를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요17:5)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앞의 내용만 살펴보아도 논리적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 내용이고, 또 성경 곳곳에서 이 예수 그리스도의 선재하심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가 인용하는 구절 말고도 미가서 5장 2절도 이런 내용을 증거합니다.


“(2)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태초에니라”(미 5:2)


그 외에도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죄 사함을 예수님이 선포하신 다든지, 하나님께만 돌려져야 하는 예배와 찬양과 영광이 예수님께도 동일하게 돌아간다든지 하는 것들을 통해서도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적으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며, 전능자이시고, 우리가 바라고 예배하고 섬겨야 할 분이십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예배에 나아가기 위해 의지해야 할 구속주만 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예배의 대상이 되십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도 보면 예수님께 동일한 예배와 찬송과 영광이 돌려지고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13)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바다 위에와 또 그 가운데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능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계 5:13) [계 4:11, 5:12 참조]


그러므로 우리는 진리 되신 예수님을 의지하고 성령 안에서 성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과 성령님을 의지하여 성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고백이 또한 중요한 이유는 다만 예배와 관련해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이 우리의 구원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아타나시우스신경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 자에게는 구원이 없다.”고 나와 있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고 사람이기만 하시다면 그분은 우리의 참 중보자가 되실 수 없는 것입니다.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습니다. 첫 번째로 예수님이 하나님이 아니시면 우리의 죄 사함이 불가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가 무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를 지니신 그분이 담당하셔야만 온전한 죄 사함이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중보란 결국 양편의 화해를 이끌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연합시키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가 이 세상 사람들의 관계처럼 그냥 악수하고 화해만 하면 되는 관계가 아니라, 붙어있지 않으면 죽는 생명적인 관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그렇게 사람을 창조하셨고, 또 사람으로 하나님과 연합하여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도록 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처음부터 하나님을 닮게 창조되었고, 신적인 존재로 창조되었습니다(요 10:35).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면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한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 밖에 있는 존재이며 생명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 밖에 있는 인간들은 그렇기 때문에 끊임없이 자신의 행위와 공로로 하나님을 감동시켜 하나님께 용납되고자 하는 율법주의적인 종교성을 띕니다. 그러나 그것은 스스로 자기가 하나님 밖에 있는 존재임을 드러내는 것일 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연합해서 영생을 누리는 것은 우리 편에서 자격을 갖추고 조건과 방도를 마련하고 구비해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사람의 몸을 입고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를 불가항력적인 은혜로 자기와 연합시켜 친히 구속하심으로써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지 않는 모든 이단들의 공통된 특징은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들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마음속에 이미 아리우스의 이단이 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하게 되면 결국 우리는 중보자를 잃고 방황하는 상태가 되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없게 되고, 죄로 인해 절망하며 끊임없이 행위에 얽매이는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예쁘게 봐달라고 하나님께 애걸복걸하는 식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이 생각 속에는 예수님은 나를 사랑해서 희생하여 죽기까지 하셨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죄를 향해 진노하신다고 생각하는 오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그 생각 속에는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하나님과 분리시켜 예수님을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씀과 기도에 힘쓰는 가운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깊이 깨닫게 되면, 우리는 즉시로 다음의 사실을 깨닫습니다. 즉 나는 그토록 하나님으로부터 죄 용서를 받고 하나님께 용납되기를 원했는데, 하나님은 나를 용서해주시고 용납해주시는 정도가 아니라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대신 죽으셨다 라는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즉 중보자 예수님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서 제3자로서 중보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이 아닌, 또는 하나님과 분리된 제3자로 생각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예수님의 공로로 하나님께 애걸복걸하는 식의 신앙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참으로 예수님은 성부와 성령과 온전히 하나이시고 동등하신 하나님으로서 곧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신 분으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보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몸을 입으셨으므로 우리과 동일본질이신 분으로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연합된 자신의 인격으로 사람과 하나님 양쪽을 끊을 레야 끊을 수 없는 생명적 관계로 연합시켜 중보하시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 가운데 바로 우리가 이런 깨달음에 도달하게 되면, 우리는 용서해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값없는 은혜와 사랑으로 인해 엎드려서 하염없이 눈물을 흘릴 뿐인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알고, 그분이 행하신 일을 제대로 인식하게 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삼위 하나님을 제대로 바르게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곧 그 성자 하나님의 희생의 사랑 속에서 우리는 그 독생자를 내어주시는 성부의 사랑, 그 구속을 적용하시고 지금도 내 안에서 탄식하시며 기도하시는 성령님의 사랑... 이러한 깨달음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모든 불신과 절망이 물러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심체험입니다. 회심의 체험의 첫 출발점은 언제나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을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깊이 깨닫게 되어졌을 때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깨닫고 믿고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주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우리로 선명하고 밝히 깨달아 알게 하여주셔서 참 중보자 되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는 은혜를 허락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다음 이어서 제11조를 배워보겠습니다.


제 11 조  성령님은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또한 성령님께서 영원부터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는 것을 믿고 고백합니다. 그분은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태어나신 것도 아니라, 다만 성부와 성자로부터 나오신다고 말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순서에 있어서 삼위일체 가운데 제3위이시고, 본질(essence)과 위엄(majesty)과 영광(glory)에 있어서 성부, 성자와 동일하시고 하나이십니다. 따라서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바대로 성령님께서는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십니다.


사실 성경에 보면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에 대해서는 별로 언급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성령님의 겸손하심과 거룩한 수줍음 때문입니다. 성령님의 독특한 특성은 성부와 성자로부터 보냄을 받아서 자기를 감추시고 오직 성자와 성부의 영광만을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전혀 언급되지 않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한 증거구절들이 있습니다. 구약에서부터 ‘하나님의 신/여호와의 신’이라는 표현이 나오는데, 이 표현은 구약성도들에게 하나님 자신을 의미했습니다.


“(7)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8)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시 139:7-8)


그리고 아래의 고린도전서 말씀은 성경 66권 가운데 성령님이 하나님 되심을 가장 분명하게 증거하는 구절일 것입니다.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11)사람의 사정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는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전 2:10-11)


사람과 사람의 영의 관계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의 관계와 비슷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곧 우리 자신이듯이 하나님의 영도 하나님 자신이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령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분을 예배하며 그분께 복종해야 합니다. 성령님을 그저 어떤 신의 힘이나 감화력 정도로 생각하는 신성모독적인 모든 생각과 언행을 배격해야 합니다. 성령님은 근심하시기도 하시고 탄식하시기도 하시며 우리가 세상을 사랑하면 시기하기까지 우리를 사모하시는 인격이십니다.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성령을 속여서 교회 가운데 자기 욕심을 채우고 자기 인정과 영광을 얻고자 하였을 때 그 결말이 어떻게 되었는지 우리는 똑똑히 보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곧바로 멸망에 처해지며 회개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안에 계시는 이 성령님 앞에서 두렵고 떨림으로 신앙생활 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어떠한 죄나 부정한 것이 있다면 지금 즉시로 버리고 회개해야 합니다. 매순간 성령님만을 의지하며 성령님을 좇아 행해야 합니다. 그러면 육체의 일을 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허락해주셔서 우리로 예수님의 하나님 되심과 성령님의 하나님 되심을 깊이 깨달아 알게 하여주셔서 참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믿고 사랑하는 자들이 다 되게 하여주시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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