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9조 강해 -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

by 최상범 posted May 10,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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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19조
문답내용 제 19 조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
The Two Natures in the One Person of Christ

우리는 이 잉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위격(the person of the Son of God)이 인성과 분리되지 않고(inseparably) 연합되어(united) 있으며 또 연결되어(joined) 있어서, 하나님의 두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위격이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두 본성이 하나의 위격(one single person) 안에 연합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각각의 본성은 그 자체의 구별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신성은 항상 창조되지 아니하며,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히7:3), 하늘과 땅에 충만하십니다. 그분의 인성은 그 자체의 속성을 상실하지 않으시는데, 시작된 날이 있고 창조되었으며 유한하시고 참된 육체의 모든 속성들을 다 갖고 계십니다. 비록 그의 부활로 인하여 당신의 인성에 불멸성을 부여 받으셨을지라도, 그분은 인성의 실체(reality)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부활이 또한 그분의 몸의 실체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본성은 하나의 위격에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어서 두 본성은 그의 죽음에 의해서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죽으실 때 당신의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신 것은 그분의 육체로부터 떠난 참된 인간의 영이었습니다. 한편 그분의 신성은 항상 그분의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무덤에 계시는 동안에도 그분의 신성은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신성 그 자체가 잠시 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분이 어린 아이일 때에도 그분 안에 신성이 있었던 것처럼 신성은 그분 안에 언제나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그가 참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된 인간이심을 고백합니다. 곧 참된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능력으로 사망을 정복하셨으며, 참된 인간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육체의 연약함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강설날짜 2015-05-03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19조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

제 19 조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 
The Two Natures in the One Person of Christ

우리는 이 잉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위격(the person of the Son of God)이 인성과 분리되지 않고(inseparably) 연합되어(united) 있으며 또 연결되어(joined) 있어서, 하나님의 두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위격이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두 본성이 하나의 위격(one single person) 안에 연합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각각의 본성은 그 자체의 구별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신성은 항상 창조되지 아니하며,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히7:3), 하늘과 땅에 충만하십니다. 그분의 인성은 그 자체의 속성을 상실하지 않으시는데, 시작된 날이 있고 창조되었으며 유한하시고 참된 육체의 모든 속성들을 다 갖고 계십니다. 비록 그의 부활로 인하여 당신의 인성에 불멸성을 부여 받으셨을지라도, 그분은 인성의 실체(reality)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부활이 또한 그분의 몸의 실체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본성은 하나의 위격에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어서 두 본성은 그의 죽음에 의해서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죽으실 때 당신의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신 것은 그분의 육체로부터 떠난 참된 인간의 영이었습니다. 한편 그분의 신성은 항상 그분의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무덤에 계시는 동안에도 그분의 신성은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신성 그 자체가 잠시 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분이 어린 아이일 때에도 그분 안에 신성이 있었던 것처럼 신성은 그분 안에 언제나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그가 참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된 인간이심을 고백합니다. 곧 참된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능력으로 사망을 정복하셨으며, 참된 인간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육체의 연약함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오늘 배울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는 삼위일체 교리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어려운 내용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려고 하면 안 되고 성경의 증거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되 정확한 용어로 바르게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교회사와 신학을 먼저 배운 후에 벨기에 신앙고백서 내용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초대교회 당시부터 이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는 끊임없는 논란 가운데 이단들의 놀이터가 되었습니다. 굉장히 많은 이단들이 있었는데, 주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이단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대표적으로 에비온파와 같은 경우는 예수를 그냥 다윗이나 모세와 같이 하나님의 사명을 잘 감당한 훌륭한 사람들 중의 최고봉일 뿐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사모사타의 바울 같은 사람은 우리가 잘 아는 양자론을 주장했습니다. 그냥 평범한 사람인데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로고스(인격이 아닌 하나님의 신적 능력)가 임하여 하나님의 양자가 되고 그리스도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성령으로 충만하게 될 때, 하나님과 하나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뜻을 준행할 수 있듯이, 그렇게 성령님과 온전한 연합을 이루신 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또 아리우스 같은 사람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지만, 피조된 하나님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참된 신성을 부정하였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한 많은 이단들이 있었는데, 재미있는 것은 이러한 고대의 이단들이 오늘날 그대로 재현되어 나타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여호와증인, 자유주의 신학자들, 유니테리언 등입니다.

한편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들이 있었는데, 그들이 바로 영지주의자들이었습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선하신 하나님께서 악한 육신을 취하실리 없다고 주장하면서 그저 환영적인 몸(가짜 몸)으로 나타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또 한편으로 아폴리나리우스는 영원전의 로고스께서 인간의 ‘몸’과 ‘혼’만을 취하시고 ‘영’은 취하지 아니하고, 그 인성의 영의 자리에 로고스의 영이 임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즉 예수는 온전한 인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하는 이단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런 많은 이단들 앞에서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침묵하지 않고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반응했다는 것입니다. 즉 325년 니케아에서 니케아 신조를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를 확증하고 이단들을 공적으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교회는 이제 분별력을 갖추고 이단들을 그들에게서 배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이제 더 이상의 문제가 없느냐... 그것이 아니라 또 다른 이단들이 등장하는데, 그 신성과 인성이 어떻게 연합되어 있느냐 하는 점과 관련하여 새로운 이단들이 생겨났던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네스토리우스 같은 사람은 예수님의 신성, 인성을 다 고백했지만, 그 신성과 인성을 구분하고 나눌 수 있는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그는 마리아를 “하나님의 어머니”라고 표현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했는데, 왜냐하면 마리아는 예수님의 인성만을 낳았을 뿐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인성과 신성을 두부 자르듯이 잘랐습니다. 마치 삼위일체에서 성부와 성자의 관계가 하나이지만 또한 ‘나’와 ‘너’라고 하는 관계가 성립했듯이, 그렇게 인간 예수와 신성인 로고스 사이에 ‘나’와 ‘너’의 관계가 성립하는 것처럼 설명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 두 인격이 있다는 주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한편 유티케스 같은 사람은 이런 견해에 반대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한 인격 되심을 강력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런데 그 한 인격 되심을 강조하기 위해서 그는 신성과 인성의 구분을 없애버리고, 그 신성과 인성이 합쳐져서 제3의 본성이 되셨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런 문제로 교회가 시끄러워지자, 우리 믿음의 선조들은 성경의 가르침을 따라 451년에 칼케돈에서 다시금 회의하여 이 양극단의 교리를 정죄하고 그리스도의 신인 양성교리와 예수의 인격의 단일성을 함께 선언하였습니다. 오늘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바로 이 칼케돈 신조의 복사판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19조를 읽어보겠습니다.

우리는 이 잉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의 위격(the person of the Son of God)이 인성과 분리되지 않고(inseparably) 연합되어(united) 있으며 또 연결되어(joined) 있어서, 하나님의 두 아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두 위격이 있는 것도 아니며, 오직 두 본성이 하나의 위격(one single person) 안에 연합되어 있음을 믿습니다. 각각의 본성은 그 자체의 구별된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즉 그분의 신성은 항상 창조되지 아니하며,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히7:3), 하늘과 땅에 충만하십니다. 그분의 인성은 그 자체의 속성을 상실하지 않으시는데, 시작된 날이 있고 창조되었으며 유한하시고 참된 육체의 모든 속성들을 다 갖고 계십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본성(nature)’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물이 있을 때 그 사물을 그것 되게끔 하는 본질적인 속성들의 총합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인간적 본성(human nature, 줄여서 인성)이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존재적 실체와 그 존재의 모든 특성들을 의미합니다. 한편 신적인 본성(divine nature, 줄여서 신성)이란 성부 성자 성령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하나님으로서의 존재적 실체와 그 존재의 모든 특성들(예를 들면 전지, 전능, 무한, 영원 등)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위격은 무엇입니까? 위격 또는 인격(person)은 지정의가 있는 완전한 실체를 말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이성적인 판단에 의하면 (논리적으로 말하자면) 인격이시며 신적인 본성의 로고스께서 온전한 사람을 취하시게 되면, 그리고 그 두 본성이 섞이지 않고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면, 예수님은 두 인격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은 두 본성 그대로 유지되는데, 한 인격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먼저 성경은 예수님께 두 본성이 있다고 증거합니다. 즉 예수님께 대하여 성경은 신성의 모든 특성을 다 적용하고 있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영원 전부터 계셨고, 만유의 창조주이시며, 예배의 대상이십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표현을 빌리면 “그분의 신성은 항상 창조되지 아니하며, 시작한 날도 없고 생명의 끝도 없이(히7:3), 하늘과 땅에 충만하십니다.” 그러면서도 이 예수님께 인성의 모든 특성이 또한 다 적용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 점에 대해서 “그분의 인성은 그 자체의 속성을 상실하지 않으시는데, 시작된 날이 있고 창조되었으며 유한하시고 참된 육체의 모든 속성들을 다 갖고 계십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님이 갓난아이로 태어나셨을 때, 그분이 하나님이라고 해서 별다른 아이처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갓난아이부터 어린 시절, 청년에 이르기까지 그 성장과정을 여느 다른 사람들과 다를 바 없이 (죄 빼고 전적으로 ) 동일하게 경험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육체는 피곤하기 쉬운 연약한 육체이고, 먹어야만 하며, 잠을 자야만 하고, 모르는 것이 있고, 유한하며, 시공간에 제한되셨습니다. 이렇게 두 본성을 그대로 유지한 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런데 그 예수님께서 두 본성이니깐 두 인격이 아니라, 하나의 인격이심을 성경은 또한 증거하는 것입니다. 성경 어디에도 신으로서 예수와 인간으로서 예수를 분리하여 계시하는 구절은 단 한구절도 없습니다. 또 예수님 안에 이중인격이 있다는 그 어떤 시사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냥 성경은 단순하게 한분 예수님, 한 인격 예수님을 증거합니다. 그 예수님이 온전한 하나님이시고, 또 온전한 사람이 되신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예수님은 우리의 이성으로는 도무지 파악되실 수 없는 분이신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 벌코프는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그나마 비슷한 유비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육체와 영혼의 연합의 유비를 예로 들어 설명했습니다. 영혼과 육체, 분명히 다른 두 실체입니다. 그러나 서로 밀접하게 하나로 연합되어 있는데, 그렇다고 혼합되었거나 섞이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영혼과 육체가 두 인격이 아니라 한 인격을 이루고 있습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우리 인격이 생각할 때, 그것은 육체의 뇌의 생각입니까? 영혼의 생각입니까? 뇌는 아무것도 안하는데 우리의 영혼이 생각하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우리의 생각은 뇌의 작용이기도 하고, 영혼의 움직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육체와 영혼이 개콘의 ‘다중이’처럼 서로가 각자의 생각을 하는 것이 아니라, 두 실체가 서로 연합하여 한 인격을 이루어 하나의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다만 한 인격이 생각을 할 때, 영혼과 육체가 각기 자기 나름의 특성과 방식을 따라 일하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이와 비슷하게... 신성과 인성이 어떠한 변화나 나눔이나 혼합이나 구분 없이 한 인격으로 연합하여 한분 예수 그리스도가 되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생각하시고 말씀하시고 행동하실 때, 그것은 한 인격이신 예수님의 생각과 말과 행동인 것이지, 이것은 로고스의 사역이고, 이것은 인간 예수의 사역이라고 나누어 말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전 로고스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온전한 인성을 취하셔서 신인 양성의 한 인격이신 예수님으로 태어나셨고, 또 우리를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이후에도 그 상태 그대로 영원히 계시는 것입니다. 

비록 그의 부활로 인하여 당신의 인성에 불멸성을 부여 받으셨을지라도, 그분은 인성의 실체(reality)를 바꾸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과 부활이 또한 그분의 몸의 실체에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두 본성은 하나의 위격에 밀접하게 연합되어 있어서 두 본성은 그의 죽음에 의해서도 분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죽으실 때 당신의 아버지의 손에 의탁하신 것은 그분의 육체로부터 떠난 참된 인간의 영이었습니다. 한편 그분의 신성은 항상 그분의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으며, 심지어 무덤에 계시는 동안에도 그분의 신성은 인성과 연합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신성 그 자체가 잠시 동안 드러나지 않았을 뿐, 그분이 어린 아이일 때에도 그분 안에 신성이 있었던 것처럼 신성은 그분 안에 언제나 남아있었습니다. 

여기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예수님의 인성의 불변성과 신성과의 불가분성을 이야기합니다. 이런 이야기들이 우리의 구원과 본질적으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과 직결되어 있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의 부활의 첫 열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활하셨는데, 인성이 사라지게 되었다든지 다른 본성으로 바뀌셨다면, 우리의 구원과 부활은 그대로 끝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포인트입니다. 우리가 이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습니다. 어떤 분은 이런 어려운 내용은 목회자나 신학자들만 알면 되지 왜 일반성도들에게 가르치느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그리스도의 신인성교리를 바로 알지 못하면 구원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부분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남녀노소에게 다 가르쳐야하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그리스도의 신인성교리가 신학적 잡동사니가 아니라 우리의 구원의 복음에 있어서 본질적인 부분임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위와 같은 이유에서 우리는 그가 참된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된 인간이심을 고백합니다. 곧 참된 하나님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능력으로 사망을 정복하셨으며, 참된 인간으로서 그분은 당신의 육체의 연약함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말이 어려운데, 쉽게 말해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는 신성과 인성이 다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을 좀 풀어서 설명하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예수님이 온전한 사람이셔야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의 구원이 대속의 죽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데, 하나님은 그 본성상 죽으실 수 없으시고 고난이나 고통을 받으실 수 없으시기 때문에 반드시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셔야지만 우리를 대신하여 죽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로고스께서는 죽기 위해서 인성을 취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히브리서는 그분의 참된 인성이 어떻게 우리의 구원이 되는지에 대해서 또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17)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18)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7-18)
“(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이 구절에서 우리는 참된 대제사장의 두 가지 조건을 발견하는데, 첫 번째 조건은 우리와 같은 혈육이 되어서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받아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시험을 받아봐야 참으로 시험에 넘어진 자들을 위로하고 도울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받으셨기 때문에 시험받는 우리를 능히 위로하시고 도우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된 대제사장은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셔야만 하는데, 그런데 시험을 받기 위해서는 사람이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시험을 받으실 수 없고 또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로 참된 대제사장은 우리와 동일하게 시험을 받으셨으나 반드시 시험을 극복한 자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사형수가 동일한 사형수에게 아무런 도움을 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에서 구속할 대제사장은 죄가 없으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 죄가 없어야 한다는 조건은 대제사장이 사람이기만 해서는 안 되고 참 하나님이셔야 함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냥 죄 없는 사람이기만 해서는 첫 사람 아담에게서 보았던 것처럼 율법 순종에 실패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 본인만이 온전히 죄를 이기고 순종하실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대제사장은 참 하나님이셔야만 합니다.

그리고 또 중보자가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 이유는 인생들의 죄가 무한하기 때문에, 무한한 가치를 지닌 존재가 대속의 죽음을 죽어야 하는 것입니다. 무한한 존재는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보자는 양쪽을 자신의 존재로 끌어안아 서로를 연합시키는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에 참 사람임과 동시에 참 하나님이셔야 하는 것입니다(벨기에 신앙고백서 9-11조 내용 참조). 결국 연합이 구원입니다. 중보는 서로를 화해시키기만 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연합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성부와 성령과 온전히 하나이시고 동등하신 하나님으로서, 곧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신 분으로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중보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동일본질이실 뿐만 아니라 또한 사람의 몸을 입으셨으므로 우리와 동일본질이신 분으로서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중보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신성과 인성이 하나로 연합된 자신의 인격으로 사람과 하나님 양쪽을 끊을 레야 끊을 수 없는 생명적 관계로 연합시켜 중보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주의 깊게 생각해야 하는데, 문제는 우리 마음속에 이미 아리우스의 이단이 잠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연중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무시하거나 잊어버리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예수님이 하나님 되심을 깊이 깨닫지 못하고 신앙생활하게 되면 결국 우리는 중보자를 잃고 방황하는 상태가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할 수 없게 되고, 죄로 인해 절망하며 끊임없이 행위에 얽매이는 율법주의적인 신앙생활로 전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도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십자가 공로로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고 우리를 예쁘게 봐달라고 하나님께 애걸복걸하는 식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이 생각 속에는 예수님은 나를 사랑해서 희생하여 죽기까지 하셨는데,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죄를 향해 진노하신다고 생각하는 오류가 내포되어 있는 것이고, 그 생각 속에는 나도 모르게 예수님을 하나님과 분리시켜 예수님을 하나님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는 것입니다.

“(28)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우리의 회개란 예수 그리스도의 피의 공로를 힘입어서 하나님을 설득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회개란 오히려 하나님 자신이 우리를 위해 피흘려주셨다는 것을 깨닫고 그 불가항력적인 은혜와 사랑 앞에 마음이 녹아내려 눈물로 참회하며 엎드리는 것이 회개입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를 향한 상한목자의 심정으로 자신의 목숨을 바쳐 이 사명을 끝까지 완수할 수 있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자식이 철로에서 기차에 치이게 되었을 때, 그를 구해내고 대신 죽을 존재는 그의 부모밖에 없습니다. 누가 그 일을 감당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우리 인생들의 참 부모이신 하나님이 죄와 비참함 가운데 있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타락의 밑바닥까지 자기 자신을 내던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를 깊이 배우고 묵상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생활에 있어서 생명과 같아서 오직 이 진리로부터 우리가 말할 수 없는 위로와 은혜를 얻고 믿음 가운데 굳건히 서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날마다 이 그리스도의 신인성 교리를 더욱 깊이 깨달아 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의 은혜가 어떠한지 알고, 우리의 마음이 주님께 대한 감사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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