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8조 해설 - 교회에 가입해야 할 모든 사람의 의무

by 최상범 posted Jul 27,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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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28조
문답내용 제 28 조 교회에 가입해야 할 모든 사람의 의무
Everyone’s Duty to Join the Church

우리는,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이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교회에 가입하고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교회의 가르침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고 자신의 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숙여야 하며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좀 더 잘 지켜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불신자들)로부터 분리되어 어디든지 하나님이 설치하신 회중에 가입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설령 지배자들과 왕의 칙령이 그 의무에 반대될지라도, 죽음이나 육체적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모든 신자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오거나 그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러 행하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28조


교회에 가입해야 할 모든 사람의 의무


제 28 조  교회에 가입해야 할 모든 사람의 의무
Everyone’s Duty to Join the Church


우리는,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이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교회에 가입하고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교회의 가르침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고 자신의 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숙여야 하며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것이 좀 더 잘 지켜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불신자들)로부터 분리되어 어디든지 하나님이 설치하신 회중에 가입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설령 지배자들과 왕의 칙령이 그 의무에 반대될지라도, 죽음이나 육체적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모든 신자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로부터 떨어져 나오거나 그 교회에 가입하지 않는 자는 모두 하나님의 규례를 거슬러 행하는 것입니다.


먼저 첫 번째 문장을 보시면...


우리는, 이 거룩한 모임과 회중은 구속받은 자들의 모임이며 이 모임 밖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에 신분이나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도 이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더브레는 먼저 교회란 구속받은 자들의 거룩한 모임이며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왜 교회 밖에 있으면 구원 받지 못한다고 말합니까?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참되게 믿어 그와 연합하게 되면 반드시 교회에 연합하게 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더브레는 참된 성도가 이 모임에서 물러나 혼자 있는 것으로 만족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더브레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실제로 그 당시에 그렇게 하려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더브레 당시에 로마교회의 타락상을 보면서 제도권 교회가 필요 없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또 교회 나오면 핍박이 있기 때문에 죽음이 두려워서 교회 나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마지막 문장을 보시면...


설령 지배자들과 왕의 칙령이 그 의무에 반대될지라도, 죽음이나 육체적 형벌이 따른다고 할지라도 모든 신자들은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 당시는 거짓교회인 로마가톨릭이 참 교회를 핍박하던 시대였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고, 또 처형을 시켰죠. 그래서 죽는 것이 두려워서 교회에 나가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더브레는 그럴지라도 나와야 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교회 나오는 것을 망설이는 사람들이 많은데, 더브레 당시처럼 교회 나오면 목숨을 잃거나 감옥에 갇히는 핍박이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안 나옵니까? “목사님한테 상처받았습니다. 사모님이 맘에 안 들어서요. 장로님 때문에 너무 힘듭니다. 아무개 집사님에게 이런저런 문제가 있어서요.” 그러고서 여기만 교회냐 하고 다른 교회로 가버리는 것입니다. 목사님이 싫어서 다른 교회로 가면 그러면 새로 간 교회 목사님은 천사입니까? 그 교회는 천국입니까? 사람은 다 똑같이 전적타락한 인간이고, 지상에 있는 교회는 다 부족하고 연약한 것입니다. 다만 조금 더 성숙했느냐 그렇지 않느냐 하는 차이만 있을 뿐이지 문제없는 교회는 없습니다.


그것을 모르고 좋은 교회 찾아 여기저기 헤매다가 결국에는 그런 교회가 없으니깐, 무교회주의자들이 생기는 것이죠. 이 교회 저 교회 다 문제가 있으니깐, 아예 교회 자체에 대해 환멸감을 느끼면서 “교회로 모여 봤자 문제만 생기니깐... 그냥 각자각자 신앙생활 잘하자...” 그러면서 혼자서 기도원에서 책읽어가면서 신앙생활 하는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극히 소수이기는 하지만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이유든지, 어떤 사연이 있든지 간에 교회 나오지 않으면, 그 사람은 스스로 멸망 길로 가는 것입니다. 사람이 자기를 책망하고 꾸짖고 진리로 인도해줄 사람 없이 혼자서 신앙생활 하겠다고 하면 틀림없이 이단사상에 빠지거나 잘못된 길로 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교회가 아무리 부족해도 그 교회가 참된 교회의 표지를 가지고 있으면 그 교회는 그냥 사사로운 인간들의 단체가 아닙니다. 교회가 아무리 작아도 천국열쇠를 가지고 있는 큰 권세의 모임입니다. 교회에 가입해서 세례 받아 교회 정회원 되는 것이 그냥 자기네들끼리 의식 치르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하늘의 천국 문을 열어 천국의 회원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땅에서 열면 하늘에서도 열리고 땅에서 잠그면 하늘에서도 잠가진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교회에 가입하고 안하고의 문제는 바로 천국 가느냐 가지 않느냐를 결정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교회 나오지 않는 것은 명백하게 주님의 규례와 명령을 어기는 것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성도가 하나님이 설치하신 교회에 가입하는 것이 주님이 명하신 것으로 성도의 마땅한 의무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주님의 명령을 지속적으로 어기면서 끝까지 회개치 아니하는 사람이 과연 구원받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럴 수가 없는 것이죠. 그러므로 교회에 붙어있는 것이 나의 구원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참된 신자는 벨기에 신앙고백서의 고백처럼 신분과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든지 반드시 눈에 보이는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 교회에 가입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 안으로 들어온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교회에 가입하고 교회와 연합해야 할 의무가 있으며 교회의 일치를 유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을 교회의 가르침과 권징에 복종시켜야 하고 자신의 목을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숙여야 하며 동일한 몸의 지체로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재능에 따라 형제자매들을 세우기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이 문장을 영어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But all people are obliged to join and unite with it,
1) keeping the unity of the church
2) by submitting to its instruction and discipline,
3) by bending their necks under the yoke of Jesus Christ,
4) and by serving to build up one another, according to the gifts God has given them as members of each other in the same body.


여기서 주문장은 “모든 성도는 교회 안에 들어와서 연합해야 한다”는 것이고, 나머지 문장들은 다 ing분사로서( “~하면서”로 해석됨) 주문장을 수식하는 부연설명인 것입니다. 즉 교회에 들어와 연합해야 하는데, 아래에 부연설명 된 4가지를 하면서 들어와 연합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깐 이 4가지를 하는 것 없이 그냥 주일날 교회 와서 설교 듣고, 예배 끝나면 적당히 친교 나누다가 시간 되면 집에 가는 것은 사실 교회 안에 들어와 연합한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교회의 마당만 밟을 뿐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하면서 교회와 연합해야 합니까? 첫째로 교회의 하나 됨을 힘써 지키면서 교회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2)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엡 4:1-3)


즉 하나 됨을 힘써 지킨다는 것은 형제자매들이 서로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면서 연합하는 것을 말합니다. 연합의 가장 중요한 본질이 사랑 아닙니까? 사랑 없이 그냥 사람들 모아다가 같이 있도록 하는 것은 집합이지 연합이 아닌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서로 사랑하면서 연합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다 냄새나는 죄인들이기 때문에 조금만 부딪쳐도 미워하고 싸울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늘 일만 달란트 빚진 나를 탕감해주신 주님의 십자가 은혜를 생각하면서 형제자매들 간에 빚진 백 데나리온에 대해서 긍휼히 여기면서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교회의 가르침과 훈련에 복종하면서 교회와 연합해야 합니다. 이것은 특별히 목회자가 가르치는 말씀을 사랑과 믿음으로 잘 받아들이고, 또 목사와 장로의 지도를 잘 받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적을 두지 않고 이 교회 저 교회 떠돌아다니는 떠돌이 신자들이 많이 있고, 또 예배 때 뒷자리에 앉아서 말씀 듣다가 예배 끝나면 곧바로 집에 가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사람들은 교회의 손님으로 교회의 겉만 맴도는 사람들이지, 결코 교회와 연합한 것이 아닙니다. 물론 이럼 사람들이 아예 교회를 부정하는 무교회주의자들보다는 낫고, 또 주일날이라도 예배당에 와서 설교말씀 듣는 것이 귀하지만, 그러나 신앙생활이란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물론 성령님께서 목회자의 강설을 가장 중요한 은혜의 방도로 사용하시는 것은 맞지만, 그것이 전부가 아닌 것입니다. 만일 그것이 전부라면 우리가 이렇게 모여서 예배드릴 필요가 없죠. 설교를 인터넷으로 생중계하고 다 집에서 설교 들으면 되는 것입니다. 뭣 하러 귀찮게 먼 길까지 와서 냄새나는 죄인들끼리 부대껴가며 설교를 들어야 하는 것입니까? 그럴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예배당에 함께 모이기를 힘써야 하는데, 그 이유는 교회가 단순히 성경배우는 학원이 아니라, 바로 목자 되신 주님께서 친히 다스리시고 지도하시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12제자 불러다놓고 강의 몇 번하시고 그냥 돌려보내신 것이 아니라, 그들과 친히 함께 거하시면서 그들을 그 가르치신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지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믿음이 없을 때는 꾸짖기도 하시고 또 제자들을 훈련하시기도 하신 것입니다. 사도바울도 전도여행을 떠나면서 항상 했던 일이 복음을 전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생기면 그 사람들을 모아다가 교회를 세우고, 또 그들 가운데 목사와 장로를 세워서 그 교회의 양떼들을 지도하도록 한 것입니다.


“(28)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행 20:28)


성도는 반드시 이러한 교회의 지도에 순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먼저 목회자가 주님의 지도를 잘 받아야 합니다. 목회자가 그릇된 길로 가면, 결국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여 둘 다 망하는 것입니다. 그만큼 목회자의 책임이 막중합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늘 정신을 차려서 자기를 위하여, 그리고 온 양 떼를 위하여 삼가야 합니다.


“(17)너희를 인도하는 자들에게 순종하고 복종하라 저희는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저희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것을 하게 하고 근심으로 하게 말라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유익이 없느니라”(히 13:17)


목회자는 자기가 청산(결산)할 것처럼 양떼들을 쳐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양떼들은 그러한 목회자의 지도를 잘 받아서 목회자로 하여금 즐거움으로 이 일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전적부패한 인간인지라, 목회자가 어떤 일을 가지고서 권면하면 괜히 자기 인생에 간섭한다고 생각될 때가 있고, 또 막 훈련시키려고 일을 맡기면 부담스럽게 느껴지고, 또 책망하고 꾸짖으면 기분 나쁩니다. 문제는 그때 “여기만 교회냐” 하고 다른 교회로 가버리면 안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람을 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져버리는 행위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목회자가 양떼를 치는 일을 즐겁고 보람 있게 할 수 있도록 목회자를 응원하고 지지해주고 또 목회자의 다스림에 잘 순복해야 하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무엇을 하면서 교회와 연합해야 합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멍에 아래 우리의 목을 굽히면서 교회와 연합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실은 교회와 연합함에 있어서 본질이고 핵심입니다. 이 항목은 지금 다루고 있는 4가지 내용가운데 하나라기 보다는 다른 3가지를 함에 있어서 전제가 되어야 할 본질적인 항목입니다.


그러면 주님의 멍에 아래 목을 굽힌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멍에란 소나 말에게 짐을 지우거나 쟁기를 끌게 하기 위해서 목에다가 씌우는 막대기를 말합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8)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8-30)


무거운 짐 진 자들에게 쉼을 주겠다고 해놓고서는 다시 우리에게 멍에를 메우고 짐을 지우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주님 안에서의 참된 쉼이란 짐을 벗는 것이 아니라 짐을 바꾸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바꾼다기보다는 교환이라고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을 끝없이 비참하고 수고스럽게 만든 죄의 짐을 벗겨주셔서 그 짐을 예수님이 대신 짊어지시고, 반대로 자신이 지고 있던 짐을 우리 등에 얹혀주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담당하셨던 그 죄의 짐은 정말 무거운 짐이지만, 우리에게 지워주신 예수님의 짐은 가벼운 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이나 예수님을 믿는 신자나 똑같이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지만, 예수님은 그 십자가상에서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하고 탄식하신 반면, 순교자들은 탄식하면서 순교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가운데 찬양하면서 순교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짐은 지면 질수록 즐겁고 재미있고 감사가 넘치고 기쁨이 넘치는 짐인 것입니다. 이것은 성령으로 말미암은 사랑의 힘을 의미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면 주님이 주신 사명이 무거운 짐이 아니라, 가벼운 짐인 것입니다.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지고 주님을 따르는 것이 기쁨인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연약해서 십자가 지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예수님의 온유와 겸손을 배워야 합니다. 주님은 온유하시고 겸손하셔서 양이 떨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같이 그렇게 우리가 짊어져야 할 모든 죄의 짐을 우리 대신 짊어지시고는 조용히 십자가의 길로 걸어가셨던 것입니다. 이 주님의 온유와 겸손을 우리가 배워야 하는 것입니다. 온유와 겸손은 인간적인 온순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사로서 온유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직 성령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우리가 우리 앞에 놓여진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지는 것을 기쁨으로 감당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을 굽혀 주님의 멍에 아래 내어놓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키는 자기부인의 행위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영적인 자세가 바로 교회에 들어와서 교회와 연합할 때 가장 기본적인 자세인 것입니다. 우리는 어떻습니까? 이런 기본자세가 있습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목이 곧은 채로 있어서 주님의 멍에를 메지 않으려고 버티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여 주님의 멍에를 기쁨으로 지고 주님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가는 복된 성도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마지막 네 번째로 참된 성도는 자신의 은사로 교회 형제자매를 섬기면서 교회에 들어와 연합합니다. 우리는 은사 하면 우리 교회 안에서 각자의 은사로 서로를 섬긴다는 개념만 생각하는데... 물론 성경이 그렇게도 이야기하지만, 본문들을 보면 보다 폭넓고 광대하게 가르칩니다. 즉 한 사람의 은사의 활용은 그저 그 사람이 속한 시대에 그 사람이 속한 교회에만 유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창조 때부터 하나님 나라 극치에 이를 때까지 하나님의 구속사역 전체에 걸쳐서 유익을 끼치는 것입니다.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 (11)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12)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엡 4:7-16)


예수님은 그 분량에 따라 각 사람에게 은사를 주셨습니다. 바울은 그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은사 몇 가지를 언급합니다. 말씀을 기록하는 사도들과 선지자들, 그리고 그 기록된 말씀을 풀어 가르치며 교회를 그 말씀으로 지도하는 목회자들, 신학 교수들을 언급하고, 복음전하는 자, 곧 선교사들을 말합니다. 바울이 비록 이 4가지만 언급했을지라도 이 외에도 다양한 은사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여 온 몸의 지체가 상합하고 연합하여 서로가 가진 은사들을 통해 서로가 도움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우리가 유기체라고 말하죠. 유기체란 다양한 부품들이 하나로 연합하여 각기 역할을 하여 하나의 목적을 이루는 기계를 유기체라고 말합니다. 교회는 바로 이런 유기체인 것입니다. 그래서 서로가 서로에게 없어서는 안 될 생명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 밖에서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님은 교회에 은혜를 베풀어주실 때 바로 이 은사나눔을 통해서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신앙생활하게 된 것이 그냥 하늘에서 은혜가 뚝 떨어져서 예수를 믿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머리로 하여 성경을 기록한 신구약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을 배우고 믿을 수 있었겠습니까? 이방인의 사도의 은사를 받은 바울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어거스틴이 오직 은혜의 복음을 전하지 않았다면... 루터와 칼빈이 종교개혁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어떻게 되었을까요? 더브레나 우르시누스나, 청교도들처럼 믿는 바를 잘 요약하여 교리를 정립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미국 땅에서 한국으로 선교사들이 파송되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성경이 이 한국 땅에 전해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주의 종들이 피를 흘렸는지 생각해보십시오. 그리고 지금 현재 우리 가운데 있는 목회자, 장로, 집사와 같은 직분자들... 그런 목회자들을 가르치고 훈련시키는 신학교수들... 그런 분들이 없었다면 우리가 어떻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지금 우리 옆에서 함께 기도해주고 격려해주고 이끌어주는 동역자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수많은 종들의 희생과 헌신의 혜택위에 이렇게 세워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바로 이런 경로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있습니까?


“(18)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얻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심으로 자라느니라”(골 2:18-19)


여기 언급된 사람은 어떤 신비한 영적인 체험을 한 사람인데, 사도들의 가르침과 목회자들의 지도를 받지 않고 직통으로 계시 받고 은혜 받는다고 하면서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오늘날 무교회주의자들이 사실은 다 이런 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 자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들 주변에 많이 있습니다. 어떤 목사 가운데 “나는 주석 같은 거 절대 안 봅니다. 저는 말씀만 읽고 기도 가운데 영감 받아서 설교합니다.”라고 말하는 목사가 많이 있는데, 그렇게 말하는 분은 빨리 피할수록 좋습니다.


성경은 자기가 처음 읽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공적인 문서입니다. 성경은 보편적 교회에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래서 2000년 동안에 기독교회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쓰신 종들이 얼마나 많을 것인데, 그 사람들을 한 마디로 무시해버리고... 성경을 원어로 라틴어로 수십 번 수백 번 읽고,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 속에서 성령님의 인도하심 가운데 깨달은 바를 책으로 남긴 주석들... 그리고 그렇게 믿음의 선배들이 해석해놓은 결과들 가지고서 서로 의논하고 논의하고 논쟁하고, 무엇이 바른 해석이냐... 의논해서 우리의 믿는 바를 체계적으로 정리해놓은 교리들... 이런 거 무시해버리고 “나는 교리나 신학 필요 없습니다. 그냥 성경가지고 기도하면서 은혜 받습니다....” 라고 하는 것은 참으로 교만이 아닐 수 없고, 교회가 뭔지 모르는 무지가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교리나 신학을 통해서 은혜를 주시고자 하는 것인데, 스스로 그런 은혜를 걷어차는 것입니다. 그래도 성경이라도 읽으니 구원이 전혀 없다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그 신앙이 진리위에 굳게 서서 진행해나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나의 머리로 삼고, 그 머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그것은 2000년 교회사동안에 주님이 주신 은사를 따라서 내어놓은 교리와 신학을 감사함을 받는 것을 포함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중심으로 읽고 연구하지만, 앞선 시대 하나님께서 귀하게 쓰신 종들의 그런 글들을 아주 중히 여기고, 내가 성경 읽고 깨달은 것이 과연 바른 것인지 아닌지를 그분들을 통해서 늘 확인하는 과정이 꼭 필요한 것입니다.


이렇게 은사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모든 교회에 유익을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의 피 흘린 헌신의 혜택을 받아서 지금 이 자리에 서 있습니다. 그러면 그러한 은혜와 혜택을 받아 누린 우리로서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까? 우리도 기꺼이 주님이 나에게 주신 은사를 따라서 우리 자신을 헌신하여 교회를 섬겨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우리가 피를 흘릴 차례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섬길 때 한결교회 안에만 갇혀서 한결교회 만을 위해서 헌신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큰 그림을 그리면서 한결교회를 힘써 섬겨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가 처한 상황이나 은사는 달라도 우리의 목적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께서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주님의 몸 된 교회를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 주님은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우리가 자신의 은사를 잘 알고 그것을 활용하여 온 교회를 힘써 세워가는 헌신하는 복된 자들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것이 좀 더 잘 지켜지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교회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불신자들)로부터 분리되어 어디든지 하나님이 설치하신 회중에 가입하는 것은 모든 신자의 마땅한 의무입니다.


몸된 교회를 잘 세워나가기 위해서는 불신자들과의 분리가 있어야 합니다. 이것은 세상을 떠나서 산으로 사막으로 동굴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니라 영적으로 세상과 결별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 속하면 교회에 소속될 수 없습니다. 세상을 사랑하면 교회와 연합할 수 없습니다. 교회와 연합한다는 것은 세상과 원수가 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우리가 이 마땅한 의무들을 기억하여서 자기 부인 자기 십자가 지고 하나님이 설치하신 교회와 연합함으로써, 주님의 몸 된 교회를 힘써 섬겨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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