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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최상범
제35조
문답내용 제 35 조 주의 만찬의 성례

The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중략)...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떡을 우리에게 묘사하기 위해, 당신의 몸의 성례로서의 지상적이고 눈에 보이는 떡과 당신의 피의 성례로서의 포도주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 성례를 받아 들고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확실한 것만큼, 우리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우리 영혼에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확실하다고 증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헛되이 당신의 성례를 명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거룩한 표로 우리에게 나타내신 모든 것을 우리 안에서 이루십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감추어진 활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일이 행해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진짜 그리스도의 몸과 진짜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방식은 입으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영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하늘에서 당신의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우리와 끊임없이 교제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이 잔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든 혜택들과 함께 당신 자신을 받은 참여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 자신과 당신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를 즐기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영적 식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육체를 먹게 하심으로 우리의 가난하고 고독한 영혼을 육성하시고 강화시키시고 당신의 피를 마시게 하심으로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비록 성례가 표하는 바와 함께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 표하는 바가 항상 모든 사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악한 자들은 분명히 성례를 받음으로 정죄에 이를 뿐이고, 성례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유다와 마술사 시몬은 둘 다 성례를 받았지만 성례가 표하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신자들과만 교제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죽음을 감사함으로 기념하고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 신앙을 고백할 때 겸손과 경외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서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조심스럽게 자기를 살피지 않고는 이 식탁에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신다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고전11:28-29).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도록 자극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에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나 또는 혼합시킨 모든 가증한 고안물을 성례의 모독으로서 배격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가르치신 규례로 만족해야 하고 그들이 말한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강설날짜 2015-09-13

벨기에 신앙고백서 제35조


주의 만찬의 성례(2)


제 35 조 주의 만찬의 성례

The Sacrament of the Lord’s Supper


...(중략)...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떡을 우리에게 묘사하기 위해, 당신의 몸의 성례로서의 지상적이고 눈에 보이는 떡과 당신의 피의 성례로서의 포도주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 성례를 받아 들고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확실한 것만큼, 우리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우리 영혼에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확실하다고 증거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헛되이 당신의 성례를 명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거룩한 표로 우리에게 나타내신 모든 것을 우리 안에서 이루십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감추어진 활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일이 행해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진짜 그리스도의 몸과 진짜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방식은 입으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영으로 먹는 것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하늘에서 당신의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우리와 끊임없이 교제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이 잔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든 혜택들과 함께 당신 자신을 받은 참여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 자신과 당신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를 즐기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영적 식탁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육체를 먹게 하심으로 우리의 가난하고 고독한 영혼을 육성하시고 강화시키시고 당신의 피를 마시게 하심으로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비록 성례가 표하는 바와 함께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 표하는 바가 항상 모든 사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악한 자들은 분명히 성례를 받음으로 정죄에 이를 뿐이고, 성례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유다와 마술사 시몬은 둘 다 성례를 받았지만 성례가 표하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신자들과만 교제하십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죽음을 감사함으로 기념하고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 신앙을 고백할 때 겸손과 경외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서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받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조심스럽게 자기를 살피지 않고는 이 식탁에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신다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고전11:28-29).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도록 자극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에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나 또는 혼합시킨 모든 가증한 고안물을 성례의 모독으로서 배격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가르치신 규례로 만족해야 하고 그들이 말한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육적 생명이 지속적으로 양식을 공급받아야지만 살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영적 생명도 지속적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셔야지만 살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육적생명보다도 우리의 영적생명이 본질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우리의 육적 생명의 행복과 안녕을 추구할 것이냐, 아니면 영적 생명의 안녕과 행복을 추구할 것이냐 라고 하는 양자택일의 상황에서 후자를 선택해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삶의 최우선순위를 항상 영적생명의 안녕과 행복에 두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적생명이 강건하게 잘 자라기 위해서는 다른 것이 없습니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먹고 마셔야 합니다. 이것은 쉽게 말해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에서 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용할 양식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날마다 아침저녁으로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또 기도에 힘써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직장생활이 너무 바빠서 기도할 시간이나 말씀을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면 안 됩니다. 바빠서 말씀과 기도의 경건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하는 것은 변명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암만 바빠도 밥은 먹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우리가 아무리 바빠도 영적으로 밥을 먹어야 합니다. 밥 먹을 시간도 주지 않고 일시키는 직장이 있다면 우리가 당장에 그만두듯이 경건생활을 도무지 할 수 없을 만큼 일시키는 직장이 있다면 우리는 그 직장을 그만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말씀과 기도에 힘써서 은혜를 받아야지만 우리의 영혼이 살 수가 있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라갈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로 말씀과 기도를 충분히 하지 못할 때가 많고, 또 해도 그 말씀과 기도를 통해 충분히 은혜를 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것은 말씀과 기도가 불충분한 은혜의 방도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우리의 무감각함과 연약함이라는 한계 때문에, 말씀을 읽고 기도를 해도 믿음이 힘을 얻지 못하는 일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씀과 기도만으로는 믿음생활을 잘 영위하지 못하기 때문에 성찬이라는 것을 특별히 제정해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적이고 천상적인 떡을 우리에게 묘사하기 위해, 당신의 몸의 성례로서의 지상적이고 눈에 보이는 떡과 당신의 피의 성례로서의 포도주를 제정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우리의 손으로 그 성례를 받아 들고 우리의 입으로 그것을 먹고 마실 때, 우리의 육체적 생명이 그것에 의해서 유지되는 것이 확실한 것만큼, 우리가 우리 영혼의 손과 입으로 우리의 영적 생명을 위해 우리 영혼에 우리의 유일하신 구주 그리스도의 참된 몸과 참된 피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도 확실하다고 증거하십니다.


우리는 영적인 존재일 뿐만 아니라 육신을 가진 존재이며, 더욱이 우리의 영혼은 무감각하고 연약한 반면 우리 육신은 너무나 민감하고 눈에 보이는 것을 중요시합니다. 때문에 하나님은 바로 눈에 보이는 표징들로서 눈에 보이지 않는 십자가 은혜를 밝히 보여주시고, 또 눈에 보이는 떡과 포도주를 우리로 하여금 먹고 마시게 하심으로써, 눈에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피부에 와 닿도록 생생하게 체험하게 하시고 확신하게 하십니다.


분명 떡도 그냥 떡이고 포도주도 그냥 포도주일 뿐인데 그것을 우리가 우리 육신의 입으로 먹고 마실 때, 놀랍게도! 참으로!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게 되는 일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찬에서 가장 신비로운 사실이고, 또한 핵심적인 내용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헛되이 당신의 성례를 명하지 않으셨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이 거룩한 표로 우리에게 나타내신 모든 것을 우리 안에서 이루십니다. 우리는 마치 우리가 하나님의 영의 감추어진 활동을 이해할 수 없는 것처럼 이 일이 행해지는 방식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따라서 이 성찬의 신비 때문에 결코 쯔빙글리의 주장처럼 단순한 상징이 될 수 없음을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이 일이 이루어지는 방식이 우리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신비임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신비를 신학적으로 너무 파헤쳐가며 설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세 가지만 말하면 됩니다.


우리가 먹고 마시는 것이 진짜 그리스도의 몸과 진짜 그리스도의 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첫째는 우리가 성찬식을 통해서 주님의 진짜 살과 주님의 진짜 피를 먹고 마신다고 말해야만 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 우리는 성찬식에서 떡을 떼고 잔을 나눌 때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입니다.” 라고 말해야 합니다. 결코 “이것은 그리스도의 몸의 단순한 상징일 뿐입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할 뿐입니다.”라고 말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또한 다음을 말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먹는 방식은 입으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영으로 먹는 것입니다.


둘째는 이 떡과 포도주가 주님의 물리적인 몸이고 주님의 물리적인 피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이 떡과 포도주는 그냥 우리가 일반적으로 먹는 떡과 포도주와 전적으로 동일합니다. 그러나 이 물리적인 떡과 포도주를 먹을 때, 하나님은 영으로 우리 안에 일하셔서 우리의 영혼을 먹여주십니다. 다시 말해 입으로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이 아니라 영으로 먹습니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는 물리적으로 여기에 계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항상 하늘에서 당신의 하나님 아버지의 오른 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땅에서 물리적으로 그리스도를 만나고 체험할 길은 없습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뵙습니다. 즉 성령 안에서 믿음으로 교제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우리와 끊임없이 교제하기를 멈추지 않으십니다.


셋째로 우리는 이 성찬이 식탁교제이지 희생제사(미사)일 수 없음을 말해야 합니다.


이 잔치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당신의 모든 혜택들과 함께 당신 자신을 받은 참여자가 되게 하시고 당신 자신과 당신의 고난과 죽음의 공로를 즐기도록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영적 식탁입니다.


식사는 귀찮지만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영양공급시간이 아니라, 맛있는 것을 먹을 때 경험하는 행복을 느끼면서, 그리고 함께 먹는 가족과 교제를 나누면서 먹는 즐거움과 행복의 시간입니다. 벨기에 신앙고백서는 성찬의 성례가 바로 이러한 영적 식탁이기 때문에 성찬을 통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의 십자가 은혜를 즐겨야 함을 말합니다. 그래서 식탁일 뿐만 아니라 잔치라고 말합니다. 성찬에서의 주된 감정은 두려움이나 엄숙함이 아니라,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입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물론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잘못 성찬에 참여하면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욕되게 하여 스스로의 심판을 먹고 마시는 일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자기를 살피고 두렵고 떨림으로 경건하게 이 성찬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와 더불어서 우리 마음속에는 즐거움과 기쁨과 감사가 넘쳐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당신의 십자가 희생의 공로로 고독하고 가난한 우리의 영혼을 흡족하게 배불리 먹여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육체를 먹게 하심으로 우리의 가난하고 고독한 영혼을 육성하시고 강화시키시고 당신의 피를 마시게 하심으로 회복시키시고 새롭게 하십니다.


따라서 성찬을 통해서 우리는 믿음이 육성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영혼이 지금 가난하고 고독한(황량한) 상태라고 한다면, 말씀과 기도에 더욱 힘써야 할뿐만 아니라, 또한 성찬식 참여하기를 간절히 사모해야 합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내용을 보시면...


비록 성례가 표하는 바와 함께 결합되어 있을지라도 그 표하는 바가 항상 모든 사람에 의해서 받아들여지는 것은 아닙니다.


성례의 표로서 떡과 포도주와, 그 표들이 상징하는바 내적 은혜가 하나로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육신이 떡과 포도주를 입으로 먹으면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게 됩니다. 그러나 이것이 기계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그 두 가지를 하나로 결합하시는데, 성령님께서는 이 결합을 오직 신자들에게만 허락하십니다.


악한 자들은 분명히 성례를 받음으로 정죄에 이를 뿐이고, 성례의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유다와 마술사 시몬은 둘 다 성례를 받았지만 성례가 표하는 그리스도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오직 신자들과만 교제하십니다.


그런 의미에서 떡과 포도주에 그리스도께서 물리적으로 계시기 때문에 자신들의 신조에 동의를 표하고 성찬에 참여하면 반드시 구원의 효력을 받는다고 하는 로마가톨릭의 주장은 성경에서 벗어난 주장입니다. 다시 말해 교회 안에 있는 위선자들과 가라지들은 성찬식을 통해서 그 어떤 은혜도 받을 수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함께 우리 구주 그리스도의 죽음을 감사함으로 기념하고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 신앙을 고백할 때 겸손과 경외로 하나님의 백성의 모임에서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받습니다.


조금 번역이 매끄럽지 못합니다. 영어판으로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Finally, with humility and reverence we receive the holy sacrament in the gathering of God’s people, as we engage together, with thanksgiving, in a holy remembrance of the death of Christ our Savior, and as we thus confess our faith and Christian religion.


쉽게 설명하면 “우리는 거룩한 성례를 받습니다.”라는 문장이 주문장이고 나머지는 이것을 수식하는 부연설명들입니다. 다섯 가지 부연설명들이 쭉 나열되는데, 먼저 첫 번째는 겸손과 경외의 마음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자기 죄를 인해서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온 회중들이 약속한 시간으로 모였을 때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찬은 몇 사람 모여서 자기들끼리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약속된 시간으로 온 회중이 모였을 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찬은 온 교회가 가족이며 하나라고 하는 것을 나타내는 의식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초창기 때는 매일 온 회중이 모였기 때문에 매일 성찬을 행했습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 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행 2:46)


그것은 아마도 그때가 오순절 명절이었고, 또 성령강림이라는 구속사적 전환기로서의 특수상황 때문에 임시적으로 그렇게 한 것 같고, 얼마 안 있어서 다들 각자 생업으로 돌아가 매주일 예배로 모였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초대교회는 주일날 예배 때마다 성찬을 행했습니다.


“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고자 하여 저희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행 20:7)


그래서 교회는 전통적으로 매 주일날 예배 때 성찬을 행했습니다. 성찬의 횟수와 관련하여 많은 논쟁이 있습니다만, 우리가 은혜의 방도를 생각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은혜의 방도는 바르게 사용하기만 한다면 많이 하면 할수록 좋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신앙생활하면서 은혜는 많이 받으면 받을수록 좋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할 수 있는 한 은혜를 많이 받기 위해 은혜의 방도를 부지런히 사용해야 합니다. 확실히, 바르게 말씀을 읽고 배우고 묵상한다면, 적게 말씀을 읽고 배운 사람보다 많이 말씀을 읽고 배운 사람에게 은혜가 더 풍성한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기도도 마찬가지이구요. 그리고 성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온 교회가 매일 모일 수가 없기 때문에 전통적으로 교회는 함께 모여 예배드리는 매 주일날 성찬을 행합니다.


무조건 매주 성찬식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초대교회는 때때로 매일 행하기도 하였고, 매주일 행하기도 했으며, 고린도교회처럼 문제가 발생했을 때는 일시적으로 중단하기도 했을 것입니다. 횟수는 교회가 교회 상황에 따라 알아서 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리고 성찬이 은혜의 방도라는 점을 감안했을 때, 성찬은 많이 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그리고 온 교회가 다 모일 수 있는 날이 주일임을 생각할 때, 매 주일마다 성찬식을 행하는 것은 아주 좋은 전통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매주 성찬식하려면 교회가 이 부분에 있어서 교육도 많이 되어야 하고 또 여러모로 준비가 잘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자칫 잘못하면 성찬식이 형식화되어져서 사람들이 잘못 참여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자기 죄를 먹고 마시는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도교회처럼 교회에 문제가 많은 상태에서 매주일 성찬을 행하면 오히려 문제가 커질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매주일 성찬을 목표로 하되,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 아니라, 충분히 교육도 하고, 성도들의 의식도 성숙해지도록 도운 후에, 매주일 성찬식을 행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세 번째로 감사의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성찬의 원어가 ‘유카리스테오’인데, 이 단어의 뜻은 ‘감사하다’입니다. 성찬에서 가장 중요한 자세는 바로 감사하는 자세입니다.


네 번째로 우리의 구세주이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기념하면서 참여해야 합니다.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고전 11:26)


다섯 번째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면서 참여해야 합니다. 당연한 것입니다. 믿음과 신앙이 일치하지 않으면 성찬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외지에서 손님으로 우리 교회에 오게 되었을 때, 설사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바로 성찬식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신앙이 우리와 일치하는지 확인한 후에 함께 성찬에 참여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를 보시면...


그러므로 누구든지 조심스럽게 자기를 살피지 않고는 이 식탁에 나오지 않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신다면 그 사람은 자기에게 주어지는 심판을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고전11:28-29).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항상 이 부분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죄 가운데 위선자의 삶을 살고 있으면서 뻔뻔하게 성찬식에 나와서 은혜 받겠다고 하는 것은 참으로 위험한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스스로 멸망을 자초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조심해야 하며, 자기 자신을 잘 살펴야 합니다. 이 말은 죄 없는 사람만 참여할 수 있다는 말이 아니라, 자신이 죄인임을 인식하는 가운데, 그 죄로 인해 애통하는 마음으로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간단히 말하면, 우리는 이 거룩한 성례를 사용함으로 하나님과 우리 이웃을 뜨겁게 사랑하도록 자극받게 되는 것입니다.


성찬을 잘 참여하면 은혜를 받아서 믿음이 육성되고 믿음이 육성되면 삶이 변합니다. 왜냐하면 십자가 은혜를 깨달으면, 단순히 “아.. 내가 확실히 죄 사함 받았으며 틀림없이 천국 가겠구나”라고 고백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그것도 포함하면서) 무엇보다도 자신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 일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성찬을 계속 참여하는데 삶의 변화가 없다면 그것은 성찬을 잘못 참여하는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심각하게 우리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보시면...


그러므로 우리는 성례에 사람들이 첨가한 것이나 또는 혼합시킨 모든 가증한 고안물을 성례의 모독으로서 배격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가르치신 규례로 만족해야 하고 그들이 말한 그대로 말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


결론은 로마가톨릭의 성찬을 비판하면서 신앙고백을 마무리합니다. 더브레의 관심은 로마가톨릭의 잘못된 성례론을 지적하는데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고 돌이키기를 바라고서 이 고백서를 작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설사 그들이 돌이키지 아니하고 도리어 핍박한다 하더라도 이 진리를 포기할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는 성찬식에 대해서 간단하게 배웠습니다. 우리가 성찬을 바르게 알고 바르게 참여하여서 풍성한 은혜를 받는 복된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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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9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4조 - 세례의 성례 file 제34조 최상범 723
208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신앙고백서) 제24조 - 우리의 성화와 선행 file 제24조 최상범 728
207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직 신앙고백서) 강설 제8조- 삼위일체 file 제8조 최상범 737
206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19조 강해 - 그리스도의 한 위격 안에 있는 두 본성 file 제19조 최상범 745
205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23조 -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의 file 제23조 최상범 749
204 벨기에 신앙고백서 벨기에 신앙고백서(벨직 신앙고백서) 제30조 - 교회의 정치 file 제30조 최상범 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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