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4문)

by 손재호 posted Sep 04,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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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자 손재호
소요리문답 제4문

#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4문)

 

문: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답: 하나님은 영이시요, 그의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십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본격적으로 성경이 제일 중요하게 가르치는 하나님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우리는 먼저 한 가지를 전제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 곧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피조물인 인간이 다 이해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여기서 한번 공부한다고 해서 다 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평생을 배우고, 아니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어 도래할 하나님 나라의 극치에서라도 온전히 다 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실망할 필요가 없습니다. 성경에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믿으며 예배하기에 충분할 만큼 우리에게 계시해 주십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인간의 지혜로 다 측량할 수 없는 크고 놀라우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생각할 때에, 그런 분이 나의 하나님, 나의 아버지 되심을 생각할 때에 감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하나님을 알아감으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놀라운 은혜를 경험해 가길 바랍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첫째로, 하나님은 신(영)이신 분이십니다. 곧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십니다. 소요리문답 제4문은 하나님이 신이심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4:24절에 보면 “하나님은 영이시니”라고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영이시라는 사실을 생각할 때에 일차적으로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물질이 아니시라는 것입니다. 곧 하나님은 영으로서 눈에 보이지 않으며, 만질 수 없으며, 냄새도 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무소부재하십니다. 시공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항상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그래서 “본래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으되”(요1:18),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요일 4:12) 라고 말씀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믿는 하나님, 곧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눈으로 볼 수 없고, 만져서 감각할 수 있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볼 수 없는 것은 없는 것이라고 하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그러나 볼 수 없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적 사고와 내재적 세계관에 사로 잡혀 있어서 알려지지 않거나 증명되지 않은 것은 존재하지 않거나 무의미하다고 여기는 습성이 있습니다. 이런 습성은 하나님께서 보이지 않으시기에 우리의 실존에 그리 커다란 영향을 끼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까지 나아가게 합니다. 이런 인간의 습성은 오늘날에 와서는 더욱 강화되긴 하였으나 본래 인간이 가지는 연약성이기도 합니다. 이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볼 수 없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당신을 인간이 볼 수 있는 여러 가지 형태로 역사 안에서 나타내 주셨습니다.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여러 번 나타나셨던 것을 볼 수 있으며(창 12:7), 출애굽 시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뽑힌 이들에게 자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출애굽기 24:11절에 보면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고 기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기드온에게도 볼 수 있는 형태로 나타나셨고, 솔로몬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그리고 성전에 임재하시는 모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역사 속에서 당신을 사람이 볼 수 있는 형태로 계시하셨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신 이유는 사람이 위에서 말한바와 같은 연약성을 가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사랑하셔서 사람과 교제하시고자 사람이 하나님을 조금씩 조금씩 알아 갈 수 있도록 자꾸 사람 편에서 알 수 있도록 자신을 계시 해 주신 것입니다. 종국에는 당신 자신을 인생들에게 충만히 보이시기 위해, 곧 계시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주셨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영이시다는 말은 지. 정. 의를 가지신 인격적인 분이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성을 생각하면서 이런 가정을 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영이시기에 계속 영으로만 계셨다면 인간들이 어떻게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었겠습니까? 아마도 사도행전 17장에 나오는 아덴의 어떤 사람들처럼 그저 알지 못하는 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에서 나오는 숭배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모습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원치 않으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격적으로 인간과 사귐을 원하셨고, 당신의 사랑을 이루시기 위해 당신을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모습으로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인간들이 하나님을 알고, 진정으로 하나님과 교제 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당신을 인간이 볼 수 있는 모습으로 곧 예수 그리스도와 같은 모습으로 보이지 않으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이 영이심을 알려주시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이 영이심을 온전히 알지 못하고서는 하나님과 온전한 교제를 이룰 수 없습니다. 누군가를 진정으로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가능한 것입니다. 대상에 대해 바르게 인식하지 못하면서 그저 사랑한다면 그것은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허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인간이 인식할 수 있는 형태 곧 물질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셨다면 인간은 하나님께서 온전히 영이심을 인식하기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씩 조금씩 보이시고, 오히려 당신이 영이심을 자꾸 말씀 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인간의 인식을 하나님이 영이심을 인식할 수 있는 데까지 끌어 올리셔서 진정으로 교제와 사랑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이것이 십계명의 제2계명 중에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인 것입니다. 그런 것을 만들면 하나님께서 온전히 영이심을 아는데 까지 나가지 못하게 막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영이시기 때문에 물질이 아니시고, 그러므로 당연히 하나님께는 육체가 없으신데, 성경에는 여러 형태의 몸을 가지신 것으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이사야 59:1절을 보면 “여호와의 손이 짧아 구원치 못하심도 아니요, 귀가 둔하여 듣지 못하심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 손과 귀를 가지고 계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또한 잠언과 시편과 이사야와 신명기에 보면 눈(잠 5:21)과 손가락(시8:3)과 입(사 1:20)과 발(신33:3)도 있으시다고 표현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표현을 신인동형설적 표현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께서 사람과 같은 모양을 가지신 것처럼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같은 육체를 가지시지 않으셨음에도 그런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 정. 의를 가지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인간은 육체를 가지고 있고, 이것을 근본으로 사고를 합니다. 그래서 몸이 있어야 어떤 일을 잘 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가진단 말입니다. 눈이 있어야 보고, 발이 있어야 가고, 손이 있어야 잡는다고 생각하고, 만일 그런 것이 없으면 못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런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존재보다 더 활동적으로 뛰어나게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가르치기 위해서 이처럼 더 뛰어난 몸을 가지신 것처럼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영이신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어떻게 강력한 능력을 보이시는가를 철학을 강의하듯 하면 사람들이 잘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좀더 가까이 접근하시고, 하나님을 잘 알 수 있도록 하시기 위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믿는 하나님, 곧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까? 오늘 소요리문답 제4문의 답을 보면 ‘존재하심과 지혜와 권능과 거룩하심과 공의와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이 무한하시며, 무궁하시며, 불변하십니다’고 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된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속성들을 설명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위와 같은 속성은 하나님만 가지고 계시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인간들도 이러한 속성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인간에게 유사함이 발견되는 하나님의 속성을 하나님의 “공유적 속성”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른 어느 존재보다도 양적으로 이러한 속성들을 훨씬 더 많이 소유하고 계시며, 질적으로도 훨씬 고상하게 소유하고 계십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되시는 것입니다. 인간은 지혜롭고 능력 있으며, 거룩하고 공의롭고 인자하고 진실한 존재로서 창조함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도움이 없이 존재할 수 없으며, 지혜도 한계가 있고, 능력도 한정되어 있으며, 거룩함도, 진실함도 모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런 모든 점에 있어서 무한하시고, 시간적으로 영원무궁하십니다. 그리고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면을 설명할 때에 인간에게는 있을 수 없는 것이기에 “비공유적 속성”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 우리가 모든 것을 알지는 못합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이렇게 가장 기본적인 지식으로부터 출발해서 성경을 통해 계시해 주시는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풍성히 알고 누리는 자리에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에 대해서 배우는 것을 통해 우리 마음 속에 반응이 일어나서 ‘이러한 하나님이시니까 우리가 어떻게 해야겠는가?’하는 상고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참지식이 될 수 없으며, 그저 정보에 불과한 것입니다. 정보가 아니라 참지식이 되려면 그것과 나와의 관계에서 마땅히 내가 인식하고 대우해야 할 것, 즉 인격적인 대응이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이렇게 정보의 수준에 불과한 상태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열심을 품고 우리가 믿는 하나님,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을 깊이 배워 나가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섬길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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