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트신조
2018.02.02 17:40

2018년 도르트 신조(제2장 오류 논박)

조회 수 11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Extra Form
설교자 손재호
도르트 신조 제2장 오류 논박
강설날짜 2018-02-04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15)

 

제2장. 도르트 신조의 두 번째 교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그 죽으심을 통한 인간의 구속

 

<오류에 대한 반박>

 

올바른 교리가 지금까지 설명되었으므로 도르트 총회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이 죽음으로 인한 사람의 구속에 대한 참된 교리를 해명하고 다음의 오류들 곧 잘못된 주장들을 반박합니다.

 

1. 잘못된 주장: 성부께서 특정한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특별하고 한정된 계획이 없이 그 분의 아들이 십자가에 죽도록 정하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그 분의 죽음으로 획득하신 것은 필연적이며, 유익하고, 가치 있는 것이었으며, 비록 그리스도께서 획득하신 구속이 실제로 어떤 사람에게는 결코 적용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모든 면에서 완전하고, 무결하며, 온전히 남아 있을 것이다.

 

반박: 이 교리는 성부 하나님의 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공격(경멸)하는 입장이요, 성경과도 모순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구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11절에서는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라고 했고, 요한복음 10:27절에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구세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 53:10절을 보면 “그 영혼을 속건 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고 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의 오류는 보편적인 그리스도의 교회가 믿는 신조에 반대되는 것입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하나님 아버지께서 특정한 자들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계획이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죽음 역시 특정한 자들을 위한 죽임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마태복음 11:25-27절을 보면 “그 때에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 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 아이들에게는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내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주셨으니 아버지 외에는 아들을 아는 자가 없고 아들과 또 아들의 소원대로 계시를 받는 자 외에는 아버지를 아는 자가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보면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 속에서 구속역사 일어남을 알 수 있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구원하실 백성을 주셨으며, 아들은 아버지에게 특정한 자에게 구원의 계시가 일어나기를 소원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구속의 역사가 불특정한 자가 아니라 특정한 자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 속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0:14-15절을 보면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도 보면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양들을 위해 죽은 죽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0:27절에도 보면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도 보면 분명히 내 양이라고 지칭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불특정한 자를 위한 죽음이 아니라 특정한 자를 위한 죽음이며, 이는 이미 아버지가 정하신 자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특정한 자를 위한 것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의 필요성과 유용성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그 유용성이 불특정한 자에게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단지 사람들에게 구원의 가능성만을 제공하며 구원의 최종성은 결국 인간의 결정에 의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오류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은덕의 적용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둔 것입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구원의 적용을 위해 영적 각성이 일어나게 하시고, 영적 이해력을 주어서, 그리스도의 필요성과 소중성을 보게 하십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로 인해 발생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러한 성령의 역사를 생략하고, 그 부분을 인간의 자유의지로 대체해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있어서 믿음은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의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의 결단인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폄하합니다. 아버지께서 타락한 인간을 자신의 백성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계획하셨고, 방법을 약속하셨습니다. 그 계획과 약속의 성취를 위해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죽으신 후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등극하셨습니다. 그리고 구속이 실제로 일어나도록 성령 하나님을 보내셨습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이러한 구속의 경륜을 가치 없는 것으로 만들고, 결국 인간이 의지를 가지고 믿는 것에 구원의 확실성을 둔 것입니다. 이는 인간의 타락 이후 자신의 백성을 건지시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무시하는 셈입니다.

 

2. 잘못된 주장: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목적은 그의 보혈을 통하여 새로운 은혜 언약을 이루시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죽으심으로 인간과 함께 언약을 세우기 위한 단순한 권리를 성부 하나님을 위하여 얻으심으로 은혜로든지 행위로든지 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반박: 이러한 주장은 다음과 같은 성경의 가르침에 모순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7:22절 “이와 같이 예수는 더 좋은 언약의 보증이 되셨느니라”고 했고, 히브리서 9:15절과 17절을 보면 “이를 인하여 그는 새 언약의 중보니 이는 첫 언약 때에 범한 죄를 속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5), “유언은 그 사람이 죽은 후에야 견고한즉 유언한 자가 살았을 때에는 언제든지 효력이 없느니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도께서 더 나은 언약, 곧 새 언약의 보증과 중보자가 되셨다는 것과 유언은 죽은 후에만 효력을 가진다는 성경의 가르침에 반대됩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가 죽으신 목적이 하나님과 인간의 언약관계로 들어가기 위한 권리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인간과 하나님이 화목 관계가 되었으며, 하나님은 다시 인간과 거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율법의 의를 완전히 성취할 수 있으며, 이것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지 하나님 아버지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인데, 관계가 회복된 이후에 아버지가 요구하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획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오류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단지 하나님과 계약 관계를 다시 갖게 하는 것에 불과한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 마련된 구속의 축복이 선택된 백성에게 적용되는 것을 거부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는 그분의 언약된 백성의 머리로서 죽으셨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순종을 통한 은덕은 선택된 자에게 주어집니다. 이는 구원의 은혜를 포함하여 언약의 모든 축복입니다. 그리스도가 죽으신 목적은 은혜의 새 언약을 세우고 확증하는데 있습니다. 이를 히브리서는 더 좋은 언약이며(히 7:22), 그것은 효력이 있다고 말씀합니다(히 9:17).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해 언약의 축복이 선택된 자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 은덕으로 말미암아 의롭다함과 양자됨이 선언되고, 실제적으로는 성화가 이루어집니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 안에 마련된 은덕을 모두 무시하고, 자유의지의 능력으로 율법을 완전하게 지켜서 구원을 얻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들의 오류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은덕을 무시하는데 있습니다. 그 은덕이 있어야 거룩한 삶이 가능한데도, 이를 무시하고 자유의지의 능력으로 하려고 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를 내버려두고, 자신 스스로 경건과 거룩한 삶을 살려고 하는 어리석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무시하고, 인간 스스로 의로워지려는 오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들은 영적으로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진정 영적으로 겸손해졌다면 자신의 영적 무능을 철저히 인정하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게 됩니다. 그리고 설령 그들이 거룩한 삶을 산다 할지라도 이를 결코 자신의 능력이나 공로로 돌리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에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3. 잘못된 주장: 그리스도의 속죄의 죽으심은 사람을 위한 구원이나 믿음을 얻게 해 주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믿음에 의하여 구원에 이르는 그리스도의 속죄에 효과를 줄 뿐인데, 그리스도께서는 단지 성부를 위하여, 사람과 다시 교제하며 그분께서 원하시는 대로 새로운 조건을 제시하기 위한 권위와 완전한 의지를 획득하셨을 뿐이다. 하지만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는 것은 사람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 그렇게 하시므로 아무도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지 못하거나(거부함으로서 그 조건을 파기함), 모든 사람이 그것들을 충족시키는 것이 가능할 수 있게 하셨다.

 

반박 : 이러한 잘못 된 것(오류)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아주 가볍게 생각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의 가장 중요한 열매와 유익을 전혀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서 다시 한 번 펠라기우스의 엄청난 잘못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특정한 자의 구원을 위한 분명하고 확실한 하나님의 정하심인 것을 믿지 않습니다. 더욱이 그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는 한편 그리스도의 순종의 결과로 그 은덕이 택한자에게 적용되어지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분명히 성령 하나님의 유효한 역사를 반대하였습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가 아니라 인간의 자유의지에 의한 조건의 성취가 구원을 준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이 하나님께서 인간과 새로운 관계를 가질 수 있도록 길을 제공하는 것에 불과하다고 주장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하나님은 인간과 새로운 조건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새로운 조건은 믿음과 순종으로서 이는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유의지를 가지고 새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면 구원을 얻는다고 합니다. 물론 이러한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는 자는 구원을 얻지 못한다고 그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죄와 관련하여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순종은 선택된 자에게 구원의 축복을 제공하기 위한 것입니다. 이러한 구원의 축복은 선택된 자에게 믿음을 일으켜서 실제적으로 적용됩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단지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인간과 다시 거래할 수 있도록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정도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이 거래는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요구합니다. 만약 인간이 거래를 거절하거나 새로운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한 경우에는 구원이 없다는 것이며, 새로운 거래를 받아들이고 새로운 조건을 충족시키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그리스도의 죽음을 폄하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구원을 얻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에 있지 않고 인간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반드시 이 새로운 조건을 받아들이는 것을 결심해야 하며, 새로운 조건을 충족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결국 그들은 인간의 행위로 구원을 성취하는 구조를 갖게 됩니다. 그러면서 그리스도의 순종과 이로 인한 은덕을 철저히 무시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의 은덕을 부정하는 것입니다. 더욱이 성령 하나님의 유효한 역사로 인해 믿음이 발생되고,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게 되어 그리스도의 은덕에 참여하게 되는데, 이러한 모든 은혜의 방법을 부정합니다. 이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사역을 무시하거나 반대하는 태도로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다시 반복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그들의 오류는 그리스도와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마귀의 속임수로부터 온 것입니다. 요한일서 4:6절을 보면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고 했습니다. 마귀는 오류를 만들어 교회를 공격하고, 거짓된 가르침으로 교인들을 속여 진정한 구원의 은혜와 도에서 멀어지게 하는 전략을 구사하고 있습니다. 마귀의 수단은 거짓말(요 8:44) 즉, 오류입니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의 오류를 분명히 밝히고, 거짓된 가르침을 개혁해야 합니다.

 

4. 잘못된 주장: 성부께서 그리스도의 죽음의 중보를 통해 사람과 맺은 새로운 은혜 언약이란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로워지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받아들이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사실에 있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완전한 순종을 요구하시는데 믿음 그 자체와 믿음의 순종이라는 것을 - 비록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 율법의 완전한 순종으로 여기셔서 은혜를 통하여 영생을 얻을 가치 있는 것으로 여기신다.

 

반박: 이들의 주장은 다음의 성경 말씀과 모순됩니다. 로마서 3:24-25절을 보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 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고 했습니다. 따라서 이 오류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불경건한 소시누스처럼 보편 교회가 가르치는 합의된 입장(교훈)에 반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사람에 대한 생소한 칭의론을 주장하는 것입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평가절하하고 성령 하나님의 유효한 역사를 부정해, 그리스도의 은덕이 선택된 자들에게 부여하는 것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것을 부정하며, 그리스도와의 연합으로 인해 구원의 은덕에 참여하는 것도 부정합니다. 복음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교리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속죄, 그리스도와의 연합, 이신칭의의 중요한 교리를 부정합니다.

 

그들은 옛언약(구약)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영생의 조건으로 규정하셨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새언약(신약)에서는 믿음과 믿음의 순종을 영생의 조건으로 규정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새언약에서는 믿음과 믿음의 순종이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이를 영생에 가치 있는 것으로 간주해 주신다고 주장합니다. 이러한 주장에서 우선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은덕을 부정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덕은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 머무르게 하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를 부정하고, 다만 불완전한 믿음과 믿음의 순종을 율법의 완전한 순종으로 보고 영생을 주시기에 합당한 것으로 여겨서 구원을 베풀어 주시는 것으로 말합니다.

 

그들의 말은 하나님께서 구원의 조건을 신약에서 경감해 주신 것과 행위가 구원의 조건이 됨을 뜻하기 위한 것으로 은혜와 행위를 섞는 방법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진정한 은혜가 순종을 낳으며 행위를 열매로 생산해 냅니다. 은혜와 행위가 섞여 영생에 합당한 것으로 간주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구원의 은덕을 마련해 놓으셨으며, 성령의 유효한 역사로 인해 그것의 소중성을 깨닫는 자들이 은혜로 발생된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의 은덕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래서 죄 용서함을 받고, 의의 전가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물론 신분의 변화인 양자됨이 일어나고, 실제적인 변화인 성화가 시작됩니다. 따라서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은덕을 누리는 것입니다.

 

알미나안주의자들의 주장은 소시니안주의자들의 이신칭의에 대한 주장과 같습니다. 소시니안주의자들은 예정과 원죄를 부정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적 죽음을 부정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의 죽음에까지의 순종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따라야 할 모범이며, 이러한 순종의 결과가 죄 용서함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소시니안주의자들의 오류는 삼위일체 교리를 부정하는 것에서부터 나왔으며, 그들은 그리스도 혹은 성령 하나님의 신성을 부정합니다.

 

그리고 칭의에 관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과 소시니안주의자들의 주장은 같은데 이신칭의의 교리가 참된 것인지 아닌지를 분별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오늘날에도 이신칭의의 교리를 무너뜨리는 잘못된 가르침이 교회에 유행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오류의 가르침들을 잘 개혁해 나가야 합니다.

 

5. 잘못된 주장: 모든 사람들이 다 하나님과의 화목의 상태와 은혜 언약 안으로 받아졌으므로 아무도 원죄 때문에 정죄 받을 책임에 있지 않으며, 그 때문에 정죄 받아서도 안 된다. 오히려 모든 사람은 원죄의 죄책에서 자유롭다.

 

반박: 이 주장은 “우리가 본질상 진노의 자식이라”고 가르치는 에베소서 2:3절의 성경 말씀과 상충되는 것입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이 부정하는 것은 원죄 교리입니다. 쉽게 말하면 그들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진노의 자녀라는 것을 부정합니다. 이들의 견해로 보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통회하며 회개하는 것은 어리석은 것이 됩니다. 우선 그들은 모든 사람이 화해의 상태와 은혜 언약 안으로 받아들여졌다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은 주장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다는 주장에서 옵니다. 따라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된 상태로 받아들여졌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모든 사람과 자신을 화목하게 만들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된 상태에 있으며, 나아가 은혜 언약 상태로 받아들여졌다고 합니다. 이러한 주장에 의한다면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로 형성되어 있어야 합니다. 따라서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만을 말하고 진노와 심판이 없는 하나님을 주장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알미니안주의자들의 주장은 성령 하나님의 갱신하시는 역사가 없어도 은혜의 언약 상태로 받아들여짐을 뜻합니다.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에서 성령 하나님의 사역을 제거해 버리는 가르침입니다. 결국 그들의 가르침에서 그리스도의 죽음은 아버지가 인간과 새로운 계약 조건이 가능하도록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아버지는 모든 사람과 화목된 상태 혹은 은혜로 받아주신 상태에서 구약보다 훨씬 쉬운 새로운 조건을 내세우고 그 조건을 충족시키는 자에게 구원을 베푸신다는 것입니다. 이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완전히 부정하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는 원죄와 그에 따른 죄책 그리고 부패성을 부정합니다. 또한 그들이 말하는 은혜는 삼위 하나님의 구속의 은혜가 아니라, 인간이 스스로 하다가 부족한 경우 돕는 정도의 은혜입니다. 실로 성경에서 많이 벗어난 가르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복음주의 진영의 대부분은 알미니안주의자들입니다. 그들이 인간적으로 만든 전도지가 온통 교회에서 사용되는데도 그것의 문제점과 오류를 모르는 시대가 된 것입니다. 그 결과 성경적 구원에 대한 이해가 오늘날 교회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6. 잘못된 주장: 그리스도의 공로와 그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있다. 하나님 편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인하여 얻으신 유익을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부여하시기를 원하셨지만, 어떤 사람은 죄 용서와 영원한 생명을 얻는 반면 다른 사람들은 얻지 못한다. 이런 구별된 차이에는 차별 없이 주어진 은혜를 사용하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달려있는 것이다. 이것은 예외 없이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은혜일 뿐 영생을 받는다는 것이 그들 속에 역사하는 어떤 특별한 자비(긍휼)의 선물을 입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를 그들이 잘 선용했기 때문이다.

 

반박: 이런 잘못된 교리를 가르치는 사람들은 구원의 획득과 적용 사이의 차이점을 오용하여 분별이 부족하고 미숙한 사람들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듭니다. 그들은 건전한 의미에서 이런 차별을 제시하는 것같이 가장하지만 실상은 펠라기우스주의의 치명적인 독소를 사람의 마음에 스며들게 하려는 것입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구원의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을 구별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구원의 은덕을 마련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 하나님께서 적용하심으로 우리에게 실제적으로 구원이 일어납니다. 이처럼 성경에서 말하는 하나님의 구원은 객관적 측면과 주관적 측면을 가지게 됩니다.

 

이러한 구원의 은혜는 택한 자에게는 구원의 들음으로 일어나며, 그렇지 않은 자들에게는 일반적 들음으로 끝납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이러한 가르침을 반대하며 복음에 대한 응답이 사람들의 자유의지에 달려 있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저항할 수 없는 은혜를 반대합니다. 은혜는 모든 사람에게 예외 없이 제공되고, 이에 대한 응답은 인간에게 달려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주장은 그리스도의 은덕으로부터 믿음이라는 선물이 나오는 것을 반대하며, 이를 실제화 하는 성령의 역사를 부정합니다. 결국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구원의 객관적인 면과 주관적인 면의 구별을 반대하고, 구원을 하나님의 신적인 요소와 인간적인 요소로 구별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든 자에게 동일하게 은혜를 제공하고, 이에 대한 응답은 인간에게 두셨다는 것입니다. 구원에 있어서 인간적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삼위 하나님의 구속 사역을 무시하고 배제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은 팔라기우스의 독이 알미니안주의에 스며들어간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복음에서 떠난 가르침입니다. 복음은 그리스도 안에 구원의 은덕이 마련되어 있음을 말해 줍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달은 자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덕이 필요함을 절실히 깨닫고 그리스도에게로 가는 원리를, 그들을 내동댕이치고 있습니다. 복음이 이 원리를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는데도(막 2:17) 그들은 이것을 뒤틀어서 다른 복음을 만들어냈습니다.

 

7. 잘못된 주장: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께서 지극히 사랑하시고 영생으로 선택하신 사람들을 위하여 죽으실 수 없었으며, 죽으시지도 않으셨다. 왜냐하면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음을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반박: 이런 잘못된 교리는 사도들의 가르침과 반대됩니다. 사도들은 다음과 같이 선포합니다. 갈라디아서 2:20절을 보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고, 로마서 8:33-34절을 보면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고 했습니다. 또한 구주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확증하십니다. 요한복음 10:15절을 보면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고 했고, 요한복음 15:12-13절을 보면 “내 계명은 곧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하는 이것이니라.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라고 하셨습니다.

 

# 해설 : 알미니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속죄는 가능하지 않으며, 필요도 없고, 실제적이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다만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만을 극대화해서 속죄 없는 하나님의 의로움을 주장하고 있습니다.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공의라는 표현을 싫어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기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싫어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을 인간이 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알미니안주의자들은 인간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임을 반대하며, 다만 죄인이, 십자가에서 보여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고 믿음과 순종의 믿음의 조건을 충족시키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논리는 매우 이성적입니다. 그러나 성경과 충돌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께서 택한 자들의 속죄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결국 알미니안주의자들은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을 부정하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알미니안주의를 정죄합니다.

TAG •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설교자 조회 수
37 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7문) file 소요리문답 제17문 손재호 164
36 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8문) file 소요리문답 제18문 손재호 175
35 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19문) file 소요리문답 제19뮨 손재호 131
34 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20문) file 소요리문답 제20문 손재호 182
33 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21-1문) file 소요리문답 제21문 손재호 159
32 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21-2문) file 소요리문답 제21문 손재호 166
31 돌트신조 2017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1장 12-14항) file 도르트신조 제1장 12-14항 손재호 176
30 돌트신조 2017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1장 15-16항) file 도르트 신조 제1장 15-16항 손재호 133
29 돌트신조 2017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1장 17-18항) file 도르트 신조 제1장 17-18항 손재호 124
28 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22문) file 소요리문답 제22문 손재호 193
27 돌트신조 2017년 도르트 신조(제1장 오류 논박) file 도르트 신조 제1장 오류 논박 손재호 175
26 소요리문답 2016년 소요리문답 공부(제23문) file 소요리문답 제23문 손재호 291
25 돌트신조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2장 1-2항) file 도르트 신조 제2장 1-2항 손재호 116
24 돌트신조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2장 3-4항) file 도르트 신조 제2장 3-4항 손재호 110
23 돌트신조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2장 5-7항) file 도르트 신조 제2장 5-7항 손재호 105
22 돌트신조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2장 8-9항) file 도르트 신조 제2장 8-9항 손재호 104
» 돌트신조 2018년 도르트 신조(제2장 오류 논박) file 도르트 신조 제2장 오류 논박 손재호 110
20 돌트신조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3장 1-3항) file 도르트 신조 제3장 1-3항 손재호 149
19 돌트신조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3장 4항) file 도르트 신조 제3장 4항 손재호 111
18 돌트신조 2018년 도르트 신조 공부(제3장 5-6항) file 도르트 신조 제3장 5-6항 손재호 108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Next
/ 8